고형렬
서울역 뒷산에 아름다운 노을이 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당신은
하얀 컬러를 목에 두르고 있던 소녀였습니다
나무들은 없고 아파트만 언덕에 가득해
능선과 하늘이 없어졌지만
우리의 마음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겠지요
그 능선의 길은 어린 날의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도시를 내려다보며
우리는 지금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이 뒷산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그 민둥산 언덕에 오월의 바람이 불면
빼곡한 우리의 나이테는 그 능선을 노래하죠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살게 된 “서울역 뒷산”에는 예전에 존재했던 삶의 향기인 “우리의 마음”이 남아 있다. 그것은 그 도시 뒷산 능선을 걸으며 함께 소년소녀 시절을 살았던 ‘우리’ 세월의 체취다. 그 체취, “어린 시절의 향기”는 여전히 능선의 길에 배어 “빼곡한 우리의 나이테”가 되어준다. 그 나이테는 옛날 아름다운 시절을 노래하며 도시화가 삶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말소시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