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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검정 (부분)

등록일 2021-10-28 20:08 게재일 2021-10-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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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형

(전 략)

 

피가 고인 스테이크를 포크와 나이프로 써는 순간에도 오는

지난밤 먹다 남은 치킨 조각을 한 입 물고 등교하는

아이들과 함께 게으른 식탁을 뛰어넘어가는

난민의 가방 속에 화약 냄새와 함께 머무는

 

지극한 평화, 지독한 평화

언젠가 사진에서 보았던 마더 테레사의 눈빛을 닮은

 

평화는 흰 손이 아니라 검은 손, 애타는 검정

클로이를 연주하는 열대 지방 사람의 검은 손에서

피어나던 꽃의 이름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검정색은 통상적으로 죽음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 검정색은 평화를 상징하는 색으로 전환된다. 평화는 평온한 것만이 아니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고통 속에서 평화는 온다. 평화는 고요하면서도 뜨거운, 소용돌이 속의 태풍의 눈처럼 강렬한 것이다. “클로이를 연주하는 열대 지방 사람의 검은 손”처럼 고난을 딛고 피어오르는 예술에서, 그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를 꽃에서 평화는 자신을 검게 드러낸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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