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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방식

등록일 2021-10-26 20:01 게재일 2021-10-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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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호

나뭇잎은 나무의 고통이다. 나무는 뿌리에서 길어 올린 눈물의 유전자를 가지마다 매달린 익명의 이파리들에게 은밀히 주사한다. 실핏줄 속을 흐르는 붉은피톨들, 하지만 쉽사리 들키지 않게, 고통의 무늬는 뒷면에 양각으로 맺힌다. 나뭇잎은, 저려오는 아픔을 참아가며 여름 내내 써내려간 문장들. 가을이면 나무는, 더는 참지 못하고 나뭇잎을 붙잡았던 손을 놓아버리지만, 온 산이 핏빛으로 물드는 순간에도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는다.

 

나무에게 나뭇잎은 기억 같은 것 아니었을까? 결국 소멸할 운명에 처한 사랑의 아픈 기억…. 그런데 나뭇잎은 나무의 시이기도 하다. 뒷면에 “고통의 무늬”가 “양각으로 맺”히는 고통의 시. 그래서 탈고 직전 단풍 든 나뭇잎은 ‘핏빛’이며, 그렇게 핏빛 시를 떨어뜨리는 나무는 굳건한 시인이다.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주사한 기억-시-을 고통스럽게 떠나보내면서도, 나무는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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