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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타고 날다(부분)

등록일 2021-10-18 19:01 게재일 2021-10-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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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숙

옷에 다른 사람의 손이 닿을 때

옷은 날아간다

꽁지를 까닥거리다 연기가 된다

 

옷은 끊임없이 시중을 원한다

그래서 치맛자락이 길거나 자잘한 무늬로 틈을 보인다

나는 벗겨주는 시중보다

입혀주는 시중이 더 좋았다

 

옷들은 저마다 기념일을 갖고 있었다

아주 작은 옷에서 내가 나왔다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할까

그 옷을 벗었다고 할까

점점 작아진 옷은 커버린 나를 잡고 칭얼거렸다

 

옷장을 열어놓으면

옷들은 자꾸 날아가려 한다

위의 시에서 ‘옷’은 ‘나’를 치장하기 위한 한갓 도구가 아니다. 아니 마치 옷을 위해 ‘나’가 존재하는 것 같기까지 하다. 안은숙 시인은 사물에 대한 투시와 시적 사유를 통해 저 ‘옷’의 영혼을 인식하고, ‘옷’이 품고 있는 주체적인 욕망-날고자 하는-을 형상화했다. 그런데 주체의 욕망은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 저 ‘옷’의 욕망에는 그 옷과 밀착되어 살아온 시인의 기억과 욕망이 스며들어 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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