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숙
옷에 다른 사람의 손이 닿을 때
옷은 날아간다
꽁지를 까닥거리다 연기가 된다
옷은 끊임없이 시중을 원한다
그래서 치맛자락이 길거나 자잘한 무늬로 틈을 보인다
나는 벗겨주는 시중보다
입혀주는 시중이 더 좋았다
옷들은 저마다 기념일을 갖고 있었다
아주 작은 옷에서 내가 나왔다
그곳을 빠져나왔다고 할까
그 옷을 벗었다고 할까
점점 작아진 옷은 커버린 나를 잡고 칭얼거렸다
옷장을 열어놓으면
옷들은 자꾸 날아가려 한다
위의 시에서 ‘옷’은 ‘나’를 치장하기 위한 한갓 도구가 아니다. 아니 마치 옷을 위해 ‘나’가 존재하는 것 같기까지 하다. 안은숙 시인은 사물에 대한 투시와 시적 사유를 통해 저 ‘옷’의 영혼을 인식하고, ‘옷’이 품고 있는 주체적인 욕망-날고자 하는-을 형상화했다. 그런데 주체의 욕망은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 저 ‘옷’의 욕망에는 그 옷과 밀착되어 살아온 시인의 기억과 욕망이 스며들어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