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희
하는 수가 없어 나는
배를 가른다
가른 배를 마리나 앞에 열어 보인다 마리나는 토한다
하는 수가 없어 나는 갈비뼈를 톱질한다
섬벅섬벅 뛰는 심장을
꺼내
마리나의 손에 쥐여 준다 마리나는 기절한다
달은 여태 푸르고 마리나는 깨어나지 않고 여태 나는
살아 있다 등 뒤에서 목을
쳐 주기로 한
당신은
언제 오는가?
이 시의 ‘마리나’를 시의 독자로 치환하여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화자의 자해 행위는 시 쓰기를 의미하며, 위의 시는 화자 자신의 시 쓰기가 시의 독자에게 이해되거나 사랑받지 못했다는 우울한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해로는 자신의 목숨을 끊지 못하는 법, 목을 쳐줄 당신이 시인의 시 쓰기를 끊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당신은 나타나지 않고 있고, 시인은 시 쓰기를 계속해나간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