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임
수타산 중턱에서 커다란 적송 그루터기를 보았다
아직 바닥에 흩어져 있는 송화빛 톱밥이
숲으로 향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이제 소나무는
200년의 생애를 밑동에 꾹꾹 눌러 담고
나이테 속으로 사라졌다
마음의 길을 가늘고 촘촘하게 새겨놓고 떠났다
틈 없이 새겨진 나이테의 흔적에서
소나무가 남긴 단단하게 여문 생의 기록을 보는 것 같았다
(….)
수타산 중턱 적송 그루터기는
온 숲을 채우기도 하고 다시 비우기도 한다.
이 지상의 삶을 끝내고 떠난 소나무는 하나의 ‘사원’과 같은 ‘생의 기록’인 나이테를 남긴다. “한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깊어진 이 나이테는 ‘마음의 길’을 새겨놓은 시집과 같은 것 아닐까? 시에 따르면 소나무의 죽음은 “지상의 집 한 채”인 자신의 시집을 “완성하러 떠”난 것, 그 시집-나이테-은 더 깊어지는 삶을 스스로 살아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여, 소나무는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삶을 낳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