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서원
그 골목은 벗겨진 담쟁이 줄기처럼 늘어져 있었다 산비탈에는 또르륵 또르륵 고라니가 뱉어낸 울음이 굴러다녔다 골목의 기울기로 저녁의 질감을 읽어내던 달빛은 가끔 탱자나무 가시에 걸려 오래 머물렀다 담쟁이 줄기를 묶어 제기를 차면 너풀너풀 땅거미가 내려오던 저녁 이동하는 궤도를 따라 땅거미가 번식하는 기형의 골목 저 사슴 보여? 너는 고라니를 사슴이라 했고 나를 부를 때 다른 이름을 불러도 내가 대답했다 탱자꽃이나 달빛이나 애써 구분하지 않아도 그 골목은 길게 잘 자랐다
……..
뒷골목이 점차 사라지는 시대. 나이 든 이라면 미로같이 뒤엉킨 골목길에서 유년을 보낸 이가 적지 않을 테다. 필자도 그랬다. 이 시를 읽으며 “벗겨진 담쟁이 줄기처럼 늘어져 있”던 유년의 골목을 떠올렸다. “땅거미가 번식하는 기형의 골목”이라는 표현도 당시 골목의 인상을 잘 이미지화시켰다. 어떤 정확한 명칭이 필요 없던, “구분하지 않아도” “길게 자 자랐”던 골목. 이젠 ‘오래된 안녕’이 되어버린 유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