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방 구하기가 힘에 부쳤다방 구하려는 궁리가 돈에 막혀창문이 막힌 방 구했다창문이 높아 목매달 만한 높이에서목련나무 보였다막다른 곳으로 몸 옮겼다창문도 생각도 막힌전화도 가끔 먹통 되는막다른 골목에서 목련꽃 올라왔다오오내 안 적막한 골목에서스스로 올라오는 목련이 보였다알다시피 이 세상에서 “돈이 막”히면, 삶은 “막다른 곳으로” 밀린다. 시인은 이를 직접 체험한 듯하다. “막다른 골목”에 있는 “창문이 막힌 방”을 구한 시인은, “목매달 만한 높이”에 창문이 달려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는 “창문도 생각도 막”혀 죽음을 상상하게 되는 “막다른 곳”까지 밀려 살게 된 것, 하지만 그 창문을 통해 “스스로 올라오는 목련”을 발견한다. 시인에게 살아갈 의지를 불어넣어줄 목련을. 문학평론가
2023-10-15
내 안에 고여 있던 어둠을토해 내고 싶었습니다검은 피, 검은 장기들을 비워 내면무엇이 남을까요그믐이 지났고동쪽 하늘은 또다시 텅, 비었습니다분명 눈을 감았으니완벽한 어둠이 완성될 겁니다너무 캄캄해서 외롭습니다당신은 무사합니까우리 모두, 어둠을 품고 살고 있지 않는가? 하여, 진실된 안부는 “당신은 무사합니까”라는 말일 수 있다…. 시인은 토해내고 싶은 어둠-“검은 피, 검은 장기들”과 같은-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토해내고 남은 마음은 ‘동쪽 하늘’처럼 “텅, 비”어 있을 터, 이에 눈을 감으면 “완벽한 어둠이 완성”된다. 텅 빈 마음이 완전히 캄캄해질 것이기에. 삶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 ‘완벽한 어둠’을 통과해야 하리라. 문학평론가
2023-10-12
밤은 너의 눈에서 평온을 빌리고폭풍은 너의 분노에서 노호를 빌렸다너의 말소리는 밭을 일구고너의 숨소리는 꽃을 피운다우물은 네가 눈물 떨군 뒤로 출렁출렁한다아침은 네 눈의 새벽에서 꽃을 피우고밤은 어둠 속에서 기도하러 일어선다별은 모두 네 눈빛을 빌렸다네 미소가 허락하면 삶을 얻는다꽃봉오리는 모두 네 미소의 자손이다(신견식 옮김)이란 현대시다. 위의 시의 ‘너’는 신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 ‘너’를 시인이 사랑하는 이로 읽을 수도 있다. 사실, 사랑에 빠지면 그 대상은 신처럼 우리를 압도하지 않는가. 하여 별은 사랑하는 이의 눈빛과 닮아 보이고, 아침의 꽃은 “네 눈의 새벽”과 닮아 보인다. 그이의 미소는 삶을 살게끔 한다. 아니, 시인이 사랑하는 이가 바로 신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에게 신은 그만큼 친근한 대상이라 하겠다. 문학평론가
2023-10-11
밤이 드리우자나는 들어가서 창문을 닫았다나뭇가지는 바람에 흐느적흐느적집에 홀로 남은 나는슬픔의 세상으로 들어갔다문득누가 밖에서마당에서창문 바로 뒤에서 우는 것 같았다새벽이슬이 떨어졌다사과꽃에(신견식 옮김)이란 현대 시인의 시. 우리는 밤이 되면 밖에서 집에 들어와 창문을 닫는다. 위의 시인이 그리하듯이. 그런데 시인은 밤의 방 안에서 “슬픔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 이 시간에 그는 떠나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는 그만이 슬픔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창문 바로 뒤에서 우는” 존재자가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것은 ‘사과꽃’ 위에 떨어지는 ‘새벽이슬’인 바, 그 이슬은 신의 눈물 아니겠는가? 문학평론가
2023-10-10
그는 난간이 두렵지 않다벚꽃처럼 난간을 뛰어넘는 법을아는 고양이그가 두려워하는 건 바로 그 묘기의명수인 발과 발톱냄새를 잘 맡는 예민한 코어리석은 생선은 고양이를 피해 달아나고고양이는 난간에 섰을 때가장 위대한 힘이 솟구침을 안다그가 두려워하는 건늘 새 이슬 떨구어내는 귀뚜라미 푸른 방울꽃하느님의 눈동자 새벽별거듭나야 하는 괴로움야옹야옹시인은 고양이가 되고 싶은 것일까. 그에게 고양이는 “난간을 뛰어넘는 법을” 잘 아는 존재자다. 난간 위에 서 있다는 것은 경계선 위에 서 있다는 것, 고양이는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다. 도리어 고양이는 “난간에 섰을 때/가장 위대한 힘이 솟구”치는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자연 속 작은 존재들의 아름다움이 뿜어내는 신성과 영원회귀의 괴로움을 살아나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다. 문학평론가
2023-10-09
여자들은 저마다의 몸 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죽음과 탄생이 땀 흘리는 곳,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영원히 눈먼 항구.알타미라 동굴처럼 거대한 사원의 폐허처럼굳어진 죽은 바다처럼 여자들은 누워 있다.새들의 고향은 거기.모래바람 부는 여자들의 내부엔새들이 최초의 알을 까고 나온 난생의 껍질과죽음의 잔해가 탄피처럼 가득 쌓여 있다.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또 죽기 위해선그 폐허의 사원과 굳어진 죽은 바다를 거쳐야만 한다.여성들이 많은 공감을 할 시이겠지만, 남성도 여성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하리라. 시인은 ‘여자들’의 몸을 무덤과 폐허, 죽은 바다로 비유한다. 하지만 생명이 탄생하는 곳 역시 여자들의 몸이다. “새들이 최초의 알을 까고 나온” 곳이 그곳이기에. 그래서 여자들은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이-새-들의 고향이다. 하지만 그 고향은 지금은 파괴된 곳, “죽음의 잔해가” “가득 쌓여 있”는 곳이 되어버렸다. 문학평론가
2023-10-04
너의 눈을 내게 줘,늙은 내 얼굴 안에 심도록,나 화려해 보이도록.너의 눈을 내게 줘,언제나 창조하고, 언제나 자비롭고,언제나 아름답게 하는, 너의 푸른 시각을.너의 눈을 내게 줘,죽이고, 타고, 갈망하는 눈,나를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너의 눈을 내게 줘,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내 자신도 사랑할 거야나는 너의 눈을 선망해.(한경민 옮김)가장 아름다운 눈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눈 아닐까. 시인은 그러한 눈을 “내 얼굴 안에 심”고 싶어 한다. ‘내’ 마음을 태우며 사랑을 갈망하게 만드는 ‘너’의 눈을. 자비로운 사랑은 아름다운 무엇을 창조하도록 이끄는 것, 시인은 ‘네’가 보내는 사랑의 푸른 눈빛을 받아 창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다. 하여 시인에게 ‘너’를 향한 사랑은 “내 자신도 사랑”하려는 열망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10-03
그 개는 내 뺨에 뺨을 마주 대고마음을 표현하는 작은 소리들을 내.내가 깨어 있거나 잠에서 깨어나면발랑 등을 뒤집어 네 발을공중으로 들어 올리지,그 열렬한 검은 눈.“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줘.” 개가 말하지.“또 말해줘.”이보다 더 달콤한 편곡이 있을까? 자꾸만 자꾸만개는 묻게 되지.나는 말하게 되지.(민승남 옮김)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개를 사랑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개는 사랑에 순수하고 정직하기 때문이다. 개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표현”할 줄 안다. “작은 소리들을 내”면서. 개의 “열렬한 검은 눈”은 그 열망을 순수하게 표현한다. “발랑 등을 뒤집”고 그 검은 눈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달라는 개의 요청은 끝없이 반복되고, 하나의 ‘달콤한 음악’으로 편곡된다. 이 요청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문학평론가
2023-09-26
밤이 내리고,그리운 기억을 따라 오솔길로 들어간다혹시 네가 있을지도 몰라가로등 지나고 나무 지나고오르막 오르고 내리막 내리니숲 속의 그 자리 거기에 그대로 있다네가 앉았던 그 자리에 앉는다하늘 위 별빛은 사탕처럼 반짝이고사방의 바람은 과자처럼 부드러운데느닷없이 가슴이 뭉클해진다이런!언제였던가?우리들 가슴이 뭉클하던 때가!‘그리운 기억’은 예전의 오솔길을 그대로 재생한다. 가로등, 나무, ‘그 자리’ 역시. 하지만 기억은 ‘나’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너’가 지금은 내 옆에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너’와 함께 있던 기억은 여전히 달콤하고 부드럽지만. 그때의 뭉클했던 가슴은 재생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역설적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데, 그것은 “우리들 가슴이 뭉클하던 때가” 사라졌음을 깨달으면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9-25
나무를 심은건가 내 몸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 우아한 풀들이 자라나는 공중의 들판 너는 길고 나는 아름다워 꼬리에서 자꾸만 긴 뱀이 자랐네 팔에선 좁은 들길이 자랐네 내가 걸어간 발자국을 달빛 내려앉은 공중이라고 해줘 나에게 와주었을 때의 저녁, 나무가 흔들리는 들판에서의 만남 별들이 고요해지면 우리는 긴 혀를 뻗어 서로의 입술을 훔쳤네 관자놀이에서 흘러내리던 별몸에서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공중에 들판이 펼쳐진다. 그 들판 위에 길게 늘어져 있는 ‘너’는, ‘나’의 ‘꼬리’에서 자라난 뱀이 되고, ‘좁은 들길’이 된다. ‘나’는 이 들길을, 뱀을, ‘너’를 걷는다. 그곳에도 나무가 있어 바람에 흔들리고, 달빛이 내려앉으며, 별들이 ‘나’의 “관자놀이에서 흘러내”린다. 이 들판 위에서 뱀의 혀를 가진 ‘너’와 ‘나’는 “서로의 입술을 훔”친다…. 관능적인 사랑의 꿈이 펼쳐지는 공중 들판. 문학평론가
2023-09-24
햇살 한 줄기에그렇게 단단했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움켜쥔 늑골마저 포기하고 형체 없이 사라져 갔다온전히 녹여진다는 의미는이승의 경계를 넘었다는 것아버지의 붉은 상처까지 비우고 떠났다는 것그 자리에 머위 순 같은 언어 하나 자라났다다시 눈이 내리면나는 아버지를 단단하게 뭉쳐드리고맛있는 오리탕으로 밥상을 차려내고 싶다그 아침이 다시 맑게 깨어난다면시인은 ‘아버지 눈사람’을 만든다. 그 눈사람은 해가 뜨면 ‘붉은 상처’와 함께 “이승의 경계를 넘”을 것이다. 눈사람은 밤 시간에 행하는 기억을 통해 존재하기에. 그 기억은 사라지게 될 터, 하지만 그 흔적은 남는다. 사라진 “그 자리에 머위 순 같은 언어 하나 자라”나는 것, 시인은 이 언어를 받아 시 쓰기를 시작한다. 이 시 쓰기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다시 눈이 내리면”‘아버지를’ 뭉쳐드리겠다는 것을 보면. 문학평론가
2023-09-21
난데없이 쓰러져야 할 때꽃은 스스로 억울해하는 법 없이아름다움을 끝낼 줄 안다서정을 경계하며 살아온 지 얼마인가함부로 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나는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한 채차라리 꽃이라도 될걸 그랬다형형색색 지천으로지천의 너머로피어날걸 그랬다시인은 왜 “서정을 경계하며 살아”왔을까. 시인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인 감정의 남발을 조심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함부로 반”할 수밖에 없는 세계가. “억울해하는 법 없이/아름다움을 끝”내는, “형형색색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들이 그렇다. 의미 없이 피어 있다가 지는 꽃들. 시인은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한” 자신도 저 “지천의 너머로” 핀 꽃이 되길 희망한다. 문학평론가
2023-09-20
네가 아무리 기억의 머리칼 소중히 받들어도기억은 시간과 어깨동무 언제란 듯 사라지고시간 밖의 나는 시간의 그림자로 떠돌 뿐이다똑딱똑딱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의 나 또한모든 순간의 똑딱임에 지나지 않는다결국 모든 기억은 백지 한 장으로 남겨진다나의 아버지가 그랬고, 숱 많은 할머니도 그랬다기억이란 눈앞이 가물가물한 무형의 실체안녕이란 이별의 손수건에 다름 아니다빈 나뭇가지의 몽유 그 허허로운 공백의모든 기억은 백지의 백지로 자손을 잇는다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되살리기 위해 기억한다. 하나 아무리 “기억의 머리칼 소중히 받들어도”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기억한다는 것은 결국 “시간 밖”에서 “시간의 그림자로 떠”도는 일, 기억 역시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하여 기억의 끝은 “백지 한 장으로 남겨”질 뿐, 기억이란 “빈 나뭇가지의 몽유”임이 드러난다. 이는 ‘아버지’도, ‘할머니’도 마찬가지여서, “백지의 백지로 자손”은 이어지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9-19
모든 것은제때다해가 그렇고, 달이 그렇고방금 지나간 바람이,지금 온 사랑이 그렇다그럼으로 다 그렇게 되었다생각해보라 살아오면서피할 수 있었던 것이 있었던가진리는 나중의 일이다운명은 거기 서 있다지금이다시인에 따르면, 지금 여기만이 삶을 이룬다. 세계도 마찬가지다. 지금 여기, 바람이 불고 해와 달이 저기 떠 있다. “모든 것은/제때”인 것, 지금 일어난 일도 이미 피할 수 없다. 제때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기에. 그러니 후회하지 말 것. 그 일은 그렇게 됨으로써 운명이니.“지금 온 사랑”도 역시 운명이다. 하여, 여기 나타난 세계와 지금 일어난 일을 온몸으로 받아들여라. 그 이후에야 진리는 가시화될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9-18
서편으로 가는 동안 이별이 다가온다사막은 깊고 멀어야 한다별이 내려 작은 모래와 살을 맞대고지나온 기억들은 반짝인다부르카가 흔들리지 않는다길을 잃지 않기 위한 느린 걸음(중략)모든 신들은 사막에 산다목마른 자들만이 신들을 추억한다숨을 곳이 없는 자들만이 죽음을 마주한다심연이 이내 신들이 되곤 했던 그곳걸음들이 깊은 발자국만큼 겸손해지곤 했던사막 끝, 그곳 어디‘목마른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삶이란 죽음(‘서편’)을 향해 깊고 먼 사막을 걷는 일이다. “이별이 다가”오는 사막에서는 별빛에 모래가 반짝이듯이 “지나온 기억들”이 반짝인다. 또한 사막은 “숨을 곳이 없”어서 “죽음을 마주”할 수 있는 곳, 그 마주한 죽음의 심연에서 신들이 나타난다. “모든 신들은 사막에” 사는 것, 하여 사막에서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한 느린” 발자국은 더욱 깊어지며, 삶은 겸손해진다. 문학평론가
2023-09-17
어스름 퇴근길에 뜬 반쪽 달덩그러니 쳐다보며 우울했던 적 있네잠깐 떴다가 사라지는 달이슬프냐고 물어주고 측은해주기도 했네따스한 인적은 가닿을 수 없이 멀고드넓은 하늘 혼자 흘러갈 수밖에 없네 귓바퀴에 걸리는 고뇌의 음악은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네상현, 그 예리한 각에 삶이 베이네 ‘현(弦)’은 활시위를 뜻한다. 반달을 활처럼 생겼다고 하여 오른쪽이 둥근 반달을 상현, 왼쪽이 둥근 반달을 하현이라고 한다. 시인은 어느 퇴근길에 우울에 빠지고, 하늘을 쳐다본다. 상현이 시인을 쳐다보며 위로해준다. 나아가 시인은 그 상현달에 자신의 운명을 투사한다. “드넓은 하늘 혼자 흘러갈 수밖에 없”는 달의 운명을. 하여, 그는 상현의 한쪽인 날카로운 선에 자신의 삶이 베이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3-09-14
한북정맥을 이어보려고/적근산으로 향한다/군부대가 길을 막자/산에서 산으로/이어진 산경표의/길이 흩어진다흩어지는 길을 따라/생창리로 달리다/생창상회 옆 공터에서/트램펄린 위에서/샘물처럼 솟아오르는/아이들 본다. 그 웃음/그 맨발에 북녘 하늘이 첨벙거린다(중략)애기똥풀 무성한/지뢰밭에서그 웃음 그 맨발에/끊어진 정맥에서/적근산 벽력암산이/맥박 뛰듯 솟아오른다북쪽으로 향한 ‘한북정맥’을 걷다보면 군부대가 가로막을 것이다. 여기서 “산경표의/길이 흩어”지는데, 시인이 흩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온 곳이 생창리. 마을 자체가 분단된 곳. 하지만 이곳에서도 새로운 삶은 자라난다. 마을 북쪽엔 무시무시한 지뢰밭이 있건만, 웃음을 퍼뜨리고 있는 아이들. 시인은 아이들의 웃음이 정맥을 이을 수 있는 미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저기 솟아올라있는 “적근산 벽력암산” 같은 힘. 문학평론가
2023-09-13
서로가 만나지 않았을 때엔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렸다서로에게 기대어 결이 통하게 된 후더는 울지 않았다속리산 천왕봉 오르는 길두 나무라 부를 수 없는 한 나무굴참나무 사랑이 눈부시다두 나무라 떼어놓을라 치면생살이 잘려 나가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나무에게도 이별은 아픔으로 온다‘연리지’란 한 나무와 다른 나무의 가지가 붙게 되어 결이 하나가 된 나무를 가리킨다. 몸이 이어지기 이전의 나무의 삶은 “쉽게 흔들”리고 그래서 눈물을 흘리곤 했지만, 다른 나무와 한 몸이 된 삶은 “더는 울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눈부신 사랑이다. 연리지를 떼어놓는다면 두 나무는 “생살이 잘려 나가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이별할 때에도 그러한 고통이 올 터이다. 문학평론가
2023-09-12
볕 바른 곳산기운이 품고 있는 뜬봉샘강줄기 돌돌 말은 물길에이고 온 구름 빠뜨리며물속을 들여다본다몸속으로 열리는 물길물 흐르는 대로물 아랫마을 할머니들아득한 손자들 모으라고물 흐르는 대로합수머리에 이름 없는 길 모으라고뜬봉샘엔 새순 같은 물방울이 돋아 나온다 (부분)‘뜬봉샘’은 금강의 발원지라고 한다. 먼 길을 걸어온 시인이 뜬봉샘에 도달하고, 그는 “강줄기 돌돌 말은 물길” 속을 들여다본다. 그러자 ‘몸속으로’도 물길이 열리며 그는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물 흐르는 대로”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 삶은 이미 “물 아랫마을 할머니들”과 같은 민중들이 살아온 삶이었다. 손자들을 모으는 그들은 “새순 같은 물방울이” 새로이 “돋아 나”오는 생명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2023-09-11
나는 벼랑 끝에 엎드려구름 흐르는 대로장전항에서 온정리로 들어온다.풀 매는 할배와 이불 너는 아낙과뵈지 않을 때까지 흔드는아이들의 웃는 손에 이끌려군사분계선을 막 벗어 나온다.비로봉에서 지리산으로백두대간 줄기차게 뻗어 내려간다.오, 지리산에 살다 죽어도백두산에 살다 죽는 한 핏줄이여벼랑 끝에 있는 시인은 구름을 타고 “장전항에서 온정리로 들어”올 때의 장면을 기억한다. 평화로운 사람들. “뵈지 않을 때까지 흔드는/아이들의 웃는 손”은 시인을 ‘절벽-군사분계선’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이끈다. 그러자 “줄기차게 뻗어 내려”가는 백두대간이 구름 위에 있는 시인의 눈에 들어온다. 백두대간은 그 아래 옹기종기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같은 곳에서 “살다 죽는 한 핏줄”임을 선연히 드러낸다. 문학평론가
2023-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