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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는 날

등록일 2024-06-30 18:12 게재일 2024-07-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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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진

오늘 하루 내가 바라는 건

먼지 구름 까치집 엉겅퀴 푸른 하늘

아무것도 아닌 것들만 잔뜩 바라보는 일이다

 

압셍트 한 잔을 놓고 구부정하게 앉아 있던 화가처럼

 

가장 가까운 나무 한 그루의 색을 바꿔주는 것

 

결국 그 말이 아무 의미도 아닌 것처럼

결국 그 손길이 허공인 것처럼

가벼움을 가지는 것

 

내가 정말 원하는 건

개 한 마리가 짖는 소리에도

앞서 간 네 마음을 따라잡지 않은 채

조금 더 오래 앉아 있는 것뿐이다

마음도 쉬고 싶을 때가 있다. 무심해지는 것. 온갖 마음을 짓누르는 무게로부터 해방되어 “가벼움을 가지”고 싶을 때. 어쩌면 그때 “가장 가까운 나무 한 그루의 색을 바꿔주는” 예술이, 시가 잉태될 수 있을지 모른다. 말을 의미의 족쇄로부터 놔주고, “앞서 간 네 마음을 따라잡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닌 것들만 잔뜩 바라보”며 “조금 더 오래 앉아 있는”, 이 ‘하염없는’ 평화로움을 마음에 되찾아줄 때 말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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