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아무리 애 터지는 슬픔도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흐릿해지지
시간은 흐르고
흐려지지
장소는
어디 가지 않아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 같은
영원한 것 같은
아플 것 같은
아픈 것 같은
장소들
이야기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기억 속에? 시간 속에? 하지만 위의 시에 따르면, “애 터지는 슬픔도/시간이 흐르고 흐르면/흐릿해지”는 것. 흐름은 흐릿함을 가져온다. 하나 이야기가 흐릿해지지 않은 곳이 있다. ‘장소’다. “장소는/어디 가지 않”는 것, 슬픈 이야기가 묻혀 있는 장소들에 가면 슬픔은 되살아난다. 그곳에서 아픔은 “영원할 것 같”고 “영원한 것” 같이 나타난다. 공간이 시간보다 더 영원한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