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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매미

정미영 수필가 어제는 아침부터 온종일 여름비가 내렸다. 거실 창문에 빗물이 고여 있는 것을 기회로 삼아 모처럼 창틀에 쌓인 먼지를 닦으려고 했다. 창문을 열다가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에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아파트 16층은 웬만한 나무 우듬지보다 훨씬 높다. 이곳에서 만난 매미는 반가움을 넘어 뜻밖이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에 매미 날개가 젖을까봐 신경이 쓰였다. 제비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듯 다행히 빗물이 들이치는 곳이 아닌 장소에 본능적으로 몸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척 대견스러웠다.방문객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손전화를 찾았다. 나 혼자 호들갑을 떨다 결국 방충망을 건드렸다. 놀란 매미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매미가 조용히 쉴 수 있게 혼자 둘 것을. 매미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쉬움을 달랬다.하루가 지난 오늘은 햇볕이 쨍쨍한 날이다. 전형적인 한여름 날씨를 보여 주려는 듯 후텁지근한 오후다. 갑자기 매미 울음소리가 수직으로 치솟는가 싶더니, 수평으로 눕기를 반복한다. 밀도 높은 울림소리의 방출이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답다. 유달리 내 귀를 자극하는 커다란 소리에 혹시나 하고 작은 방 창문을 올려다본다.매미가 방충망에 붙어 자신의 존재를 우렁차게 알린다. 어제 우리 집에 방문했던 그 매미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으면서 자세히 살펴본다.몸매가 좀 더 통통한 것 같기도 하고, 다리가 좀 더 가느다랗게 긴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려면 어떤가, 연일 찾아와 생의 편린 중에 하나를 나에게 펼쳐 보인다고 여기니 매미가 정겹다.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매미는 대략 7년간의 땅 속 생활을 마치고 일주일 정도를 땅 위에서 살다가 일생을 마친다고 들었다. 수컷 매미는 살아있는 동안 구애를 하기 위해 배 안쪽에 있는 울림주머니를 맹렬하게 빨리 움직이는 것일 텐데, 암컷 매미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아 안쓰럽다.몸피를 뚫고 큰 소리로 우는 매미일수록 암컷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집 안을 뒤흔드는 소리로 짐작을 하건데 필히 울음통이 커서 매미들에게는 매력적일 것 같다. 얼른 자기 짝을 만나면 좋으련만. 사랑을 찾지 못하고 애타게 울고 있는 매미를 응시하다 보니, 사랑에 버림받아 매미가 된 트로이 왕자 티토노스가 불현듯 떠오른다.새벽의 여신 에오스는 미남 왕자 티토노스를 보자 한눈에 반했다. 그를 에티오피아에 있는 자신의 궁전으로 데려가 남편으로 삼고 두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에오스는 인간인 남편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걱정했다. 제우스에게 티토노스를 불사(不死)의 몸으로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제우스는 에오스의 부탁을 들어주어 영원히 죽지 않게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늙지 않는 불로(不老)의 몸은 주지 않았다고 한다.에오스의 사랑은 점점 식어갔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피부가 주름투성이인 노인으로 티토노스가 변하자, 그를 궁전의 구석방에 가두고 청동 문을 잠가 버렸다. 슬프게도 티토노스의 몸은 점점 쪼그라들더니 작아져서 결국에는 요람에 눕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우스는 티토노스를 불쌍히 여겨 매미로 바꾸어 버렸다고 한다. 매미는 벽에 붙어 에오스를 애타게 부르며 울고 있었다는 비극적인 그리스 신화다.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명한 대사로 인해 한 동안 내 가슴이 먹먹했던 것처럼, 변해버린 에오스의 사랑 때문에 매미로 변한 티토노스의 이야기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영원성을 믿고 싶은 나를 절망스럽게 만든다.요즘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이 칭찬 받는 세상이다.그러나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의 사랑만은 변덕을 부리지 않고 영속성을 유지하면 좋으련만. 우리 집을 찾아온 매미도 서둘러 사랑을 찾아 결실을 맺고 난 뒤,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자신의 일대기에 한 줄 적히기를 바란다. 매미를 관조하며 사랑의 가치를 가늠해본 시간이다.

2022-07-27

안기러 가다

양태순 수필가 차가 느리게 달린다. 파도와 갈매기가 썸타듯 지분거리는 해안도로를 벗어나니 너른 내(川)가 펼쳐졌다.바다에 물들었던 눈이 파란색을 걷어 올리기 전 물소리가 젖어 들었다. 투명한 물소리가 차르르차르~찰 음악처럼 감겨들어 더없이 느긋하다.구부러진 길이 펴졌다 다시 구부러지는 동안 내가 따라왔다. 넓은 내를 꽉 채우지 못한 물길이 크고 작은 바위를 돌아서 혹은 틈을 비집고 저만의 길을 유유히 가고 있다. 깎인 바위가 둥그스름하다. 아마도 바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고즈넉이 시간을 둥글게 익혔나 보다. 15킬로미터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에서 제각각인 바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불영사 일주문 앞에 섰다. 천축산불영사 현판이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 다그치는 듯하다. 부처의 그림자가 있는 절, 지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닿은 곳이다. 거대한 문 앞에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많은 번뇌가 일어섰다 사그라지고 다시 안개처럼 피어나는 길 잃은 마음을 문밖에 두고 문턱이 없는 경계를 넘었다.솔향이 달려와 반겼다. 길옆으로 늘어서 있는 소나무가 인사를 하듯 수굿이 가지를 살랑이고 있다. 한껏 들이켜서 깊숙하게 채운다.숨어있는 새소리도 정겹다. 꽁지깃 까딱까딱 흔드는 재롱둥이 새가 눈앞에 있는 듯 흐뭇하다. 눈을 돌리니 하늘을 가린 나뭇잎 틈으로 들어온 빛이 빗질을 열심히 하는지 잎새들이 반짝인다. 모두가 청량한 향기로 다가온다. 살짝 내리막길을 따라 걷는 걸음에 자박자박 박자가 실린다.초록이 빚어낸 풍경에 눈도 마음도 시원해진다. 솔숲을 지나니 굴참나무와 싸리나무, 나무를 기어오르는 덩굴들이 어우렁더우렁 어울려 있다. 서로 가타부타 따지지 않고 제자리에서 자신만의 색을 내는 모습에서 마음 수양이 한참 부족한 자신을 발견한다.늘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미련이 많다. 미처 채워지지 않는 물질적 정신적 허기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 고약한 심보를 떼어내고 싶으나 쉽지 않다. 가끔 뒤죽박죽인 채로 날이 선 감정을 갈무리하지 못해 난감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고단하다. 이제는 정말 내려놓자 다짐한다.다리 아래로 계곡물이 출출 흘러간다. 없는 길을 만들며 수천 년을 굽이져 낸 길에는 갖가지 조형물이 계곡의 아름다움을 보탠다. 흔한 너럭바위를 비롯하여 새, 얼굴, 부처, 동물 등속이 보는 이의 심상에 따라 형상이 보인다. 내 마음이 부처면 남도 부처로 보인다는 말에 공감하는 순간이다.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불영사에 도착했다. 신라시대 기암절벽을 끼고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절, 저절로 신심이 우러나는 곳은 아니다. 일주문을 지나 걸어오는 동안 세속의 부질없는 생각들을 다 부려놓고 천축산에 폭 안기면 세상만사 다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절이다. 나보다 바람이 먼저 도착해 내 소식을 전했는지 품 벌려 맞아주는 불심이 향기롭다.불영지에 연꽃이 아련하다. 법영루 물그림자가 바람의 무늬를 밀어내고 연잎 위에 법경을 펼쳐놓았다.가만히 귀를 연다. 마음을 내리치는 죽비 소리에 속이 뜨끔 따가워진다. 모두가 내 탓이고 내가 부족한 탓이다, 방언 터지듯 고백한다. 슬며시 불심에 기대어 ‘그러나 오늘만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안아주세요.’ 털어놓는다.산에서 내려다보는 부처를 올려다본다. 불쌍한 중생이라 안타까워할지 측은지심으로 기회를 줄지 아리송하다. 아무렴 어떨까.내가 내 마음 둘 데 없어 안기러 왔으면 안기면 그만인 것을. 천 근의 무게로 짓누르던 화기와 슬픔이 한쪽으로 비켜났는지 속이 편안하다. 아늑한 품속 같은 불영사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물소리 바람 소리 휘휘 몰려 와 경전을 풀어낸다. 받아적는 손이 바쁘다. 거리가 멀어 그림자로 다녀가는 부처의 마음을 마음에 들이며 고요히 두 손 모은다.

2022-07-20

책(冊)탑을 보며

거실에 책장 세 개가 모두 빈틈없다. 책꽂이 위도 앞쪽도 숨을 못 쉴 만큼 책으로 들어찼다. 딸아이 사진조차 구석으로 쏠렸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이 밀리고 구겨진다.일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거실의 모든 물건을 꺼내고 책들도 바닥에 쏟아냈다. 이젠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챙길밖에 도리가 없다. 어제도 그저께도 누군가로부터 책이 왔다. 지인이거나 낯선 사람이 쓴 수필집이 봉투째 책상에도 쌓였다. 수필잡지, 개인 수필집, 동인지, 목차를 보면 알 만한 사람들의 이름이 책의 곳곳에 박혔다. 때론 펼친 책자에 나의 이름 석 자도 종이 위에 무늬 진다.바닥에 쌓인 책들이 탑처럼 높아졌다. 묵직한 서사가 초석이 된다. 그 위에 처마의 날렵함처럼 잘 써진 글들이 감탄을 자아내며 층을 이룬다. 수필의 근간을 만들어 갈 수필들이 한 층, 한 층 높이를 만든다. 그리고 어떤 책은 풍탁이 되어 바람이 지나갈 때면 청아한 소리로 세상에 한 줄기 고운 바람이 된다. 탑 꼭대기에 이르러 당대에 이름 석 자를 논할 문장가가 쓴 글이 떡하니 차지한다.그러고 보니 각각의 수필은 모두 그 사람의 사상, 문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평생의 철학이 글자를 통해 우러났다. 때론 흥미롭게 가끔 눈물을 머금게 하고 파안대소를 낳게 한다. 어디 그뿐이랴. 황제에서 철학자, 교수와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써놓았다. 에세이는 바로 삶을 우려낸 곰국 같은 글이다.나의 이야기에서부터 부모, 형제, 친구와 스승의 이야기다. 이웃과 고객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주인공도 다양하다. 작고 사소한 이야기부터 큰 사상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삶의 희로애락이 그 속에서 춤을 춘다. 들판에 핀 꽃 한 송이나 길가의 은행나무나 나무 백일홍과 다르지 않을 우리의 인생이 긴 강물처럼 풀어져 흐른다.흐트러지지 않도록 빨간 노끈으로 묶어보니 결코 작은 양이 아니다. 책장 두 개 분량의 책이 나를 빤히 본다. ‘어쩔거냐고? 너 또한 세상 어느 구석진 자리 시끄러운 자리에 냄비받침처럼 쓰일 이름자 하나 갖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다. 오죽하면 냄비받침이란 책 제목을 내놓았을까. 세상을 꿰뚫어 본 혜안이 아닌가. 그 책은 차마 노끈으로 묶을 자신이 생기지 않는 동류의 아픔이 느껴졌다. 배문경수필가 혼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는 사이 책탑은 쌓여가고 내려놓지도 펼치지도 못하는 작금의 사태에 커피 한잔을 마시며 창밖을 본다. 한 사람의 전 생애가 담긴 자서전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기막히고 답답한 사연이 녹아있다. 나의 동감 없이 서운해할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마음을 나누어 가져야 하지 않을까. 비슷하지만 조금씩은 다른 훈계도 있다. 삶의 지혜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곁에 많다. 따뜻한 커피 향기 같은 내용이 한 스푼의 설탕만 넣으면 하루가 행복할 그런 수필이 나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책탑을 다시 바라본다.내가 저 무거운 탑을 아파트에서 땅으로 내려놓으면 경비아저씨는 부녀회와 얘기해서 종이 무게로 몇 푼에 팔 것이다. 마음의 무게는 정녕 사라지고 활자의 무게마저 무시된 채 종이의 무게만큼 금이 그어진다. 나의 책조차 누군가에 의해 쓰레기통에서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온 생애가 녹아있다고 발문에 써놓았던 책은 김칫국물에 버무려져 빗물에 녹아 내려지고 구겨진 채, 아이쿠.책탑은 높아져 가는데 현관은 멀기만 하다. 지인의 북카페에 연락해서 무료 나눔을 하고 싶다고 했다. 차 한 잔 마시며 풍경 한 번 책 한 줄 읽으면 좋을 것 같았다. 차 트렁크에 실으며 그간 넘치도록 받은 관심에 감사하며 힘들게 책을 옮겼다. 카페 창가로 햇살이 한 줌 들어오더니 음악에 섞여 커피 향이 짙다. 커피와 어울리는 수필 한 편을 꺼내 읽어본다. 자리 때문일까. 글이 노랑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정원에 심어진 진분홍색 송엽국과 우단동자와 수레국화 사이를 오간다.무너진 책탑의 일부분이 꽃들 사이에서 배시시 웃고 있다.

2022-07-13

구두

정미영 수필가 수술 받았던 친정어머니의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셨다. 병원에 함께 다녀올 요량으로 신발장에서 어머니의 빛바랜 운동화를 꺼냈다. 몇 년째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한 켤레의 신발로 생활하다 보니 군데군데 실밥이 터지고 뒤축이 닳아 테석테석했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신발에 스며든 것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수술 전, 어머니의 무릎 통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약을 먹어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길을 가다보면 몇 발자국을 못가 절뚝일 때도 있었고,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가 싶으면 이내 주저앉았다. 가까운 곳에 볼일을 보러 가는데도 남들보다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앉을 데가 있으면 무조건 쉬어야 했고, 마땅한 데가 없으면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쉬어야만 걸을 수 있었다.늘 푸른 물이 돌 것 같던 어머니의 육신이 쇠약해져 갔다. 내 어머니만큼은 세월이 비켜가기를 빌었는데, 자연의 섭리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음이 눈물겨웠다. 보다 못해 수술을 권했지만 한사코 망설였다. 나는 자식의 입장을 먼저 걱정하는 어머니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더는 수술을 늦추기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기에 어머니에게 퇴행성관절염 말기라는 설명을 하며 날짜를 잡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다.어머니가 병실에 있는 동안, 나는 구두를 사러 갔다. 전부터 어머니에게 구두를 사드리려고 했는데, 내 살아가는 형편을 핑계로 계속 미루었다. 구두를 고르는데, 어머니에게 묵혔던 구두에 대한 빚이 한 순간 빗장뼈를 세워 고개를 내밀었다.초등학교 때, 우리 집 앞에 개울이 있었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자주 빨래놀이를 했다. 그 날도 세수 대야에 비누와 신발 몇 개를 챙겨나갔다. 신발로 물을 퍼내어 대야를 가득 채우고 나서 개울에 떠내려 보냈다. 그러고는 잽싸게 뛰어가 건져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한참을 뛰어다니면 지쳤다. 헐떡이는 숨을 고를 겸 물가에 자리를 잡고앉아서 신발에 비누칠을 했다. 이왕 빨 것을 찌든 때가 있는 빨랫감이나 걸레를 들고 갔더라면 칭찬 꽤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발에 어머니의 구두가 섞여 있었다. 가난했던 아버지가 내 입학식 때 신고 가라고 큰맘 먹고 어머니께 사다준 신발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가 구색을 맞춰야 하는 자리에만 신고 나갔던 하나뿐인 구두였다.나는 잠시 뒤에 알았다. 구두는 물에 빨면 안 되고, 불 옆에 두면 안 된다는 것을. 말린다고 연탄보일러 주위에 젖은 운동화와 함께 구두를 세워 두었더니 일그러지고 눌어붙어 영영 신지 못하게 되었다.정작 어머니는 야단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항상 자식 걱정이 먼저인 분이었다. 구두를 태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혼날까 봐 불안해 한다는 사실에 더 신경을 쓰셨다.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미안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어머니에게 구두를 사드려야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구두를 장만해 병실에서 꺼내 들고, 얼른 회복해 꽃구경 가자고 말씀드렸다. 자식이 마련한 선물을 귀하게 여겨 어머니는 구두를 들여다보며 흐뭇해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나는 새삼 코끝이 찡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새 구두를 신지 못했다. 무릎이 성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새 것보다는 예전 것이 좋다며, 운동화를 신었다.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진작 구두를 사다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후회가 밀려들었다.“엄마, 미안해.” 내 후회의 탄식이 길게 여음을 남겼다.나는 예전에 어머니의 구두를 연탄불 옆에 두었다가 눌어붙게 했던 날의 용서를 다시금 구했다. 어머니는 이제껏 마음에 두고 있었느냐며 본인은 벌써 잊었다고 말씀하셨다.오늘도 늙으신 어머니는 자식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셨다. 세월이 흘러도 덜어지지 않는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결이 소실점으로 향한다고 해도 끝없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 속에 은은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노모의 사랑이 짙어지는 오후였다.

2022-07-06

미루나무 꼭대기에 고무줄이 걸렸던

양태순 수필가 습한 기운이 몰려온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에 맞게 날씨는 종잡을 수 없게 제멋대로다. 쨍쨍한 햇살에 싱그럽던 잎마저 시르죽하다 싶은데 천둥이 우르릉 울리더니 한줄기 비가 내린다. 열에 달궈진 대지를 식혀준 비 때문에 습도가 높아져 몸이 까라진다.여름은 언제나 뜨거웠다. 십 리 길을 걸어올 때면 가방의 무게에 어깨가 늘어졌다. 정수리에 내리꽂는 빛살에 얼굴이 익어가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은 축축해서 잠시 다리쉼을 해야 했다. 그런 우리에게 그늘이 필요했고 그 그늘을 제공해준 나무는 미루나무였다.여름 하굣길을 지켜주는 미루나무였다.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타박타박 걸을 때면 길가에 쭉 늘어선 미루나무가 잎사귀를 살랑살랑 흔들어 더위를 식혀줬다. 우리는 가방을 한데 모아놓고 그늘에 앉아 웃고 떠들다 지나가는 친구가 보이면 불러서 같이 고무줄놀이하고는 했다.마을 공터에는 미루나무가 있었다.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간 나면 거기로 갔다. 매미 소리 쨍하던 한낮의 열기가 조금 숙지면 고무줄놀이가 시작되었다. 노래를 부르며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고무줄에 발을 걸어 꼬기도 하고 고무줄을 잠시 지르밟았다 풀어주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여자애들 옆에서 남자애들은 저들끼리 키득거리며 놀이에 코를 박고 있다가 슬쩍 곁눈질을 했다. 때로는 슬금 다가와 훼방을 놓기도 했지만 고무줄놀이를 멈추지는 않았다.산 위로 노을이 펼쳐지고 집마다 인기척이 나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이 떠난 빈터를 미루나무가 지켰다. 아이들의 하루를 갈무리하여 결로 새기고 쏟아지는 별을 초록으로 받아내어 위로 위로 가지를 키웠다. 그 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반가이 맞아주었고 우리 성장의 시간을 켜켜이 품었다.아이들은 자랐고 고무줄놀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에 관심을 보였다. 새로운 놀이와 새로운 친구에 빠졌고 고민거리가 늘어나면서 뒤를 보기보다 눈앞에 놓여있는 현실을 좇아 걸어가기 바빴다. 더 자라서는 할 일이 많았고 시곗바늘은 빨리 돌았다. 그렇게 미루나무는 잊혔다.미루나무가 사라졌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하는 이도 없이 뿌리마져 뽑혀 나갔다. 그 자리는 농협 창고가 차지했다. 무심한 사람들은 창고의 효용성에 고마워할 뿐이었다. 아무도 성장기의 소중한 한 페이지가 뜯어져 나가는 것을 알지 못했고 시간은 앞으로만 흘렀다.앞에는 무슨 대단한 것이 기다리는 줄 알았다. 이것이 맞는지 헷갈릴 때마다 조금만 더, 나중에, 라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일 센티미터만 벗어나도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지나고 보니 아픈 만큼 아파하고 슬픈 만큼 슬퍼하고 죽을 만큼 힘든 일도 겪어야 하는 사람다워지는 과정이었다. 가끔 곁길을 걸어도 좋았을 성싶다.이제는 숨이 차도록 달릴 필요 없는 안정기다. 재물에 안달복달하거나 자식에게 애면글면 매달리는 것에서 몇 발자국 뒤에 있다. 순리에 따르는 것이 모두가 편안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시간의 여유도 생겼다. 현재를 느긋하게 즐기면 되는데 내 시계는 자꾸 과거로 돌아간다. 앞으로 나아갈 시간보다 돌아볼 시간이 많아진 탓이다.여름이면 미루나무 아래서 고무줄놀이하던 때를 더듬는다. 놀이를 온전히 즐기며 순수하게 땀 흘렸던 그 시절이 가슴을 물들인다.씨아질로 뽑아낸 목화 같은 추억들이 몽글몽글 피어 흥건하게 고이는 날에는 잊었던 친구들의 얼굴이 곱게 어룽거린다.간만에 옛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여전히 단발머리인 그녀에게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그악스럽게 울어대던 매미와 고무줄놀이하던 친구들 어디 있는지, 추억팔이하며 더위를 식혀야겠다. 지나는 바람에 잎들이 쏴아쏴아 더위를 몰아간다.

2022-06-29

산책길 소묘(素描)

배문경 수필가 이른 새벽 산책하기에 좋은 계절이 있다. 지루한 겨울을 지난 뒤, 연초록 봄이 그렇고 녹음 짙은 여름이 그렇다.오뉴월은 뜨거움을 숨긴 채 맑고 그윽한 꽃향기를 가득 품었다. 밤을 희롱하듯이 깊게 들어온 여명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여섯 시를 막 넘긴 시간은 한겨울엔 엄두도 못 낼 밝음으로 온 세상이 환하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타박타박 밖으로 나섰다.오늘은 좋은 소식이 올 거라며 까치가 꺅 깍 깍깍 나뭇가지에서 꽁지를 든 채 반긴다. 저도 누가 나오면 함께 길을 나서고 싶었던 모양이다. 까치 소리와 함께 내딛는 걸음이 한결 가볍다.푸른 잎이 투명한 햇살을 튕겨낸다. 나무 두엇을 지나자 차도가 나오고 초등학교의 계단을 내려가면 붉은 양귀비며 노란 금계국이 화단 가득하다. 오밀조밀한 보도블록을 지나는 길가에 맥문동이 이파리를 단단히 세웠다. 주어진 한 시절을 구가하는 생명의 잔치가 햇살을 받아 더욱 눈부시다.교문을 나서서 맞은편 길을 바라보며 걷는다. 이곳은 차들의 길이다. 사고로 가로등이 부서지거나 보도블록이 깨진 흔적이 낭자했던 곳이다. 인간을 위한 문명의 이기인 차가 인간을 해치는 이 아이러니는 언제쯤 사라질까. 문명은 세상을 밝히지만, 그만큼의 그림자도 생긴다는 사실을 실감한다.길을 건너 강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낮은 담장과 낡은 건물들이 적당히 눈높이에 맞게 들어오다가 비닐하우스에 이르면 갑자기 눈이 뜨인다. 비닐하우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푸른 부추가 자라고 있다. 자르고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저 부추의 매운 생명력이 새삼 부럽다.좀 더 걷다 보니 물을 관리하는 수문이 있다. 주의하라는 관리자의 공고문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아마 태풍이나 홍수가 나면 이곳을 여닫아 물 높이를 조절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가뭄에 강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유속은 급하지 않고 넓은 강 중간쯤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배처럼 생긴 섬이 하나 있다.지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갈 때 나는 이곳에 서 있었다. 콸콸 소리를 내는 물은 강둑의 목까지 들어차 모든 것을 삼키며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저 나지막한 섬은 물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장마와 홍수로 인해 강둑조차 파괴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물은 위세가 대단했다.문득 유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던 뒤꼍의 도랑이 장맛비에 살아 꿈틀거렸다. 세찬 물살에 떠내려가던 소와 솥과 나뭇가지와 잡동사니들이 흙탕물에 뒤섞였다. 소는 발버둥 치며 떠내려갔고 나뭇가지는 서로 얼기설기 엉키며 부피를 키웠다. 우르릉 천둥소리 쩌적 번개소리, 나는 엄마 옆에 붙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도랑물이 생전 처음으로 집을 삼킬 듯이 불어나자 동네는 소란스러웠다. 아득한 기억 속의 도랑물 소리가 지금의 강물 소리와 오버랩되어 두렵기까지 하다.오십 년이 지나고서야 태풍의 이름을 찾아보니 ‘올가’라는 이름의 태풍이었다.다행이다. 지금은 태풍에 잠겼던 섬은 푸른 나무와 잡초들이 무성하다. 군데군데 꽃들이 싱겁지 않게 장식한다. 섬 주위로 물고기들이 퍼덕거린다. 은빛 꼬리를 세차게 흔들자 중심에서 번져나가는 물결무늬가 종소리를 연상시킨다. 작은 숲이 살아있어 걷는 길이 충만해진다. 살아있다는 것, 얼마나 큰 기쁨인가.나는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산책은 놓친 것을 되새김질시켜주는 힘이 있다. 때론 일상에 지쳐 머릿속이 잘 감긴 테이프처럼 끊임없이 반복될 때 잠시 멍 때리는 휴식을 위해 걷고 또 걷는다.저 눈 부신 태양의 선물과 자연의 이름으로 부여된 각각 다른 모양의 꽃과 나무와 풀들이 기운을 내뿜는다. 나는 연초록 향연에 아득히 취한다. 가슴 가득 바람을 안고 총총히 강둑을 뒤로하며 집을 향해 돌아서자, 방전되었던 심신이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된 느낌이다. 일상이 천천히 다가온다. 산책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2022-06-22

사진 감상문

양태순수필가 가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 있다. 시선을 붙잡는 예쁜 물건과 반가운 얼굴을 보거나 튀는 행동을 볼 때다. 익숙한 멜로디, 그림과 사진에는 눈은 물론 마음까지 빼앗기고 만다. 그런 일은 계획되지 않고 불시에 일어나는 현상이어서 느낌의 파동이 크다.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만난 사진이 그랬다.할머니가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다. 건물 이층에 자리한 작은 휴게 공간에 걸려 있는 사진이다. 밤이라 간접 조명이 있어도 사물이 어른거려 계단을 조심히 올라와 소파로 가던 나는 홀린 듯 사진 앞으로 갔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팝콘인가 싶어 자세히 보는데 이였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 번개가 일었다. 감당키 어려운 선한 기운이 몸에 들어와 심장을 마구 두드리는지 가슴이 둥당거렸다. 나는 할머니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말보다 먼저 찰칵찰칵 소리가 났다.아침에 지난밤 찍은 사진을 불러냈다. 밤새 되돌려 본 마음에 담은 이미지가 헛것일까 떨렸다. 숨을 길게 쉬었다. 서서히 전체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밝은 데서 찬찬히 보니 밤과는 다른 순박한 평화로움이 그곳에 있었다. 낡은 소쿠리와 버석한 손, 검게 탄 얼굴이 말쑥하게 피어나는 꽃 같은 웃음이다. 난전에서 채소를 파는 할머니가 앉은 자세로 쳐다보며 웃고 있는데 할머니 앞에는 분명 누군가 서 있겠지만 사진사는 그것은 생략한 채 웃음만 드러내었다.사진 속 할머니의 하나뿐인 이는 머리말이었다. 그것만으로 살아온 날들이 읽혔다. 아랫니 윗니 스물여덟 개의 이가 난바다를 헤쳐오면서 흔들리고 흔들려서 끔찍한 치통의 밤을 지새며 뭉그러졌을 것이다. 그뿐일까. 뭉그러진 이를 뱉지도 못하고 꾹 삼키고는 위에서 주물럭거린 시간이 또 얼마였을지 가늠할 수 없다. 길게 잇대어진 삶의 터널을 통과하느라 갖은 애를 썼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새겨진 무늬는 밭고랑 같은 주름으로 남았다. 낱낱의 주름은 일기였고 남을 탓하기보다 그저 자신이 노력하면 되리라는 다짐의 연속으로 채워진 날이었다. 할머니는 폭우와 폭풍을 맨몸으로 맞서 왔기에 티끌 같은 부끄러움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 웃음은 진흙 속에서 무심으로 피워낸 에필로그다. 참 아름다운 책을 읽은 기분이다.아름답다는 말은 감동을 포함한다. 살아보니 감동할 일이 드물다. 여리던 마음은 세상사 격랑을 건너느라 점차 무디어지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웬만해선 좋다와 멋지다를 적절히 섞어 감정의 구색을 맞춘다. 하지만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노동자의 하루를 경건히 갈무리 하는 노을의 품은 아득한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지런히 퍼주는 넉넉한 씀씀이 또한 가치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럴 때면 나는 조용하고 엄숙한 감동으로 떨린다.꾸미지 않은 모습이 작품이 된다. 사진사가 시장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사진을 찍는다고 이렇게 해주세요, 주문을 했더라면 할머니는 어쩔 줄 몰라 어색함이 묻어났을 것이다. 작가는 프로답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치와 각도를 달리하며 수백 장을 찍었고 그중에 하나를 건졌지 싶다. 아마도 종일토록 렌즈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예술혼을 불태웠으리라. 한 사람의 삶을 필름에 압축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사진은 수명이 길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눈을 감을 때까지 살아있다. 종이나 손전화의 사진은 보관 상태에 따라 분실되기도 하고 오래되면 품은 이야기가 흐릿해진다. 하지만 눈으로 찍은 사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진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순간순간 되살림 기능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인물을 찍는 사진작가는 삶의 여러 형태를 보여준다. 오래된 골목이나 시장, 노동자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두를 수식어 없이 담아낸다. 무심코 지은 표정이야말로 진솔한 인생을 담은 책이다. 어느 것 하나가 더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담백하게 보여준다. 삶이란 바다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있는 모두가 훌륭하며 잘 살아내고 있다는 위로를 건넨다. 덧붙여 스스로를 안아 대견하다 다독였으면 하는 바람도 얹은 듯하다.

2022-06-15

콩주머니에 담긴 추억

정미영 수필가 양말을 꺼내 신으려니 구멍이 나 있었다. 아끼던 양말인데 엄지발가락이 쏙 얼굴을 내밀었다. 부끄럽기보다는 재미가 있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실과 바늘을 찾았지만 구멍이 커서 꿰매 신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버리기가 아까워 오자미라고 불렀던 콩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구멍난 곳을 촘촘하게 박음질한 뒤에, 콩을 넣고 양말목 부분에 땀의 크기가 고르도록 바느질에 신경을 썼다. 예전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내가 어렸을 때에는 놀잇감이 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가끔 구멍 난 양말을 박음질해, 그 속에 솜을 넣고 인형을 만들어 주셨다.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인형을 움직이며,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할머니의 손놀림에 따라 그럴싸하게 움직이는 인형을 보면 이야기가 더욱 실감났다.할머니는 콩주머니도 만들어 주셨다. 콩주머니를 만드는 할머니의 모습은 여유로웠다. 춘향가의 한 대목을 흥얼거리기도 하고, 가끔 꽃이 핀 마당을 내다보기도 하셨다. 고개를 들지 않고 바느질에 집중하면서도 꽃밭에 나비가 나는지 벌이 날아드는지, 알아맞히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멋있어 보였다.나는 친구들이랑 공터에서 콩주머니를 가지고 놀았다. 콩주머니 놀이는 먼저 가위바위보를 해서 편을 가르고 땅에 선을 그어 영역을 나누었다. 그런 다음, 콩주머니를 힘껏 던져 상대편을 더 많이 맞혀야 이길 수 있는 놀이였다. 이리저리 뛰다 보면 이내 땀범벅이 되고, 손으로 땀을 훔치면 얼굴까지 시꺼메졌다.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얼굴이어도 창피한 줄 몰랐다. 서로 마주 보며 키득거렸다.할머니는 우리가 노는 것을 한 번씩 구경하셨다. 상대편 아이가 던진 걸 손녀가 잘 받아 내면 손뼉을 치며 주름살이 펴질 듯 환하게 웃으셨다.내가 콩주머니를 받지 못하고 몸 어딘가에 맞으면 무릎을 치며 안타까워하셨다.콩주머니를 바구니에 던져 넣는 놀이도 했다. 한 친구에게 바구니를 지게하고 차례대로 던져서 누가 더 많이 넣는지 내기했다.그러면 술래가 된 친구는 큰 바구니를 등에 메고, 펄쩍펄쩍 메뚜기처럼 뛰어다녔다.그 놀이는 콩주머니가 수십 개 필요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아이들은 각자 집에서 저마다 콩주머니를 가져와야만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가져가고 싶었다. 구멍 난 양말이 없을 때에는 멀쩡한 양말을 들고 가서 만들어 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꿀밤을 맞고 울음을 터트렸다.그러면 할머니는 손녀에게 콩주머니를 한 아름 안겨 주셨다. 구멍 난 속옷이나 양말을 이용해 미리 만들어 놓은 것들이었다. 보물이 따로 없었다. 나는 보물 상자라도 안은 듯 친구들이 기다리는 골목길을 향해 의기양양 달려 나갔다.콩주머니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았다. 비가 오거나 혼자 집을 봐야 할 때 갖고 놀기 좋았다. 빈 요구르트 병을 세워 놓고 콩주머니를 던져 쓰러뜨리기도 하고, 공기놀이 하듯 손등에 받았다가 다시 움켜잡기를 되풀이했다. 천장까지 높이 던졌다가 잘못 받아 얼굴에 떨어지기도 했다.그러다 싫증나면 내가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천 조각을 부여잡고 씨름한 끝에 겨우 하나 만들기만 하면 야호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뿌듯했다. 하지만 바늘땀이 엉성한 그것이 튼튼할 리 없었다. 한두 번만 던져도 툭 터져버렸다.오랜만에 바느질을 했더니 가슴 가득 설렜다. 콩주머니를 만드는 재미도 소소했지만, 할머니와의 추억 조각들을 떠올려 보는 것도 감회가 새로웠다. 어린이들의 장난감이 다양한 재질과 성능으로 넘쳐나는 요즘이다.하지만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위해 정성껏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이용한 인형이나 소품을 만들어 선물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오늘따라 할머니가 그립다. 손녀에 대한 사랑과 따뜻한 손길이 담겼던 그 많던 콩주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

2022-06-08

쓰레기 줍지 마세요

배문경 수필가 아침 운동을 하다 몇 명의 여성을 만났다. 손에는 집게와 종량제 봉투가 들려있었다. 밤새 지저분해진 거리를 정리하는 사람들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크고 작은 공식적인 모임에서도 쓰레기청소를 하고 정화작업을 한 후 인증 샷을 남기곤 한다.출근하면서 보니 앳된 여성 청소부가 형광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직장 앞 정류장에는 할머니 두 분이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거미줄을 제거하고 유리를 닦았다. 잠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청소를 하며 얘기를 나누곤 했다.누가 쓰레기를 거리에 함부로 버리는지. 그래서 애꿎은 노인네들 고생시키는지. 시민의식 실종이며 공중도덕 결여라고 비판할 일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쓰레기를 줍고 청소하는 일은 노인들 일자리면 좋겠다. 쓰레기 줍기는 중노동이 아니라 가벼운 일일 수 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운동 삼아 할 일이라서 일석이조다. 그렇게 해서 받은 임금은 생활에 쓰거나 손자 손녀들에게 용돈을 준다고 한다.“전 아직도 하이패스를 설치하지 않았어요. 가능하면 아주 늦게 설치할 생각이에요.”후배의 친구가 톨게이트 수납원이었는데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직장을 잃었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이동하면서 남편 차에도 하이패스가 없다는 걸 알았다. 수납원이 많던 예전과 달리 혼자서 반가운 모습으로 결제해 주었다. 몇 년 전 수납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시위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식사하러 들어간 식당에 주인 내외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로봇이 나타나 메뉴판과 물 잔을 가져와서 주문을 독촉했다. 어쩌면 이곳도 2~3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곳곳에서 사람이 아닌 무인기계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득 내 일자리는 안전할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햄버거 가게에도 아이스크림 판매점에도 키오스크가 메뉴를 선택하라고 떡하니 섰다. 순서를 누르다 잘못 눌러 처음부터 다시 한다. 모든 것이 이렇게 되면 나이 든 세대는 머지않아 주문하지 못 해 굶는 일이 다반사이겠다. 겨우 선택된 메뉴와 영수증을 챙겨 들고 전광판에 번호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 대화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제품을 조립, 포장하고 기계를 점검하는 전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공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든 설비와 장치가 무선통신으로 연결되어 있어 실시간으로 전 공정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할 수 있는 스마트 팩토리가 자리 잡았다. 사람들의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현상은 시대적 조류이다. 어디로 갈지 몰라 출렁대는 변화라는 큰 배에 올라탄 것은 분명하다.팬데믹 사태의 코로나를 거치며 변화를 더 많이 경험한다. 재택근무와 화상채팅으로 하는 업무 보고시스템은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듦을 느끼게 한다. 실직자는 늘고 오토바이 맨들이 아슬아슬하게 거리를 질주한다. 택배차가 거리와 집 앞에서 끊임없이 물건을 나르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서 또 다른 일자리가 창출되긴 하는 것일까.일이 자동화되면 그로 인한 이익을 분배하는 문제가 생긴다. 큰 자본이 들어가는 자동화는 자본가들이 투자한다. 그러므로 이익은 자본가들이 챙긴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눠줄 리 없다. 낙수효과 또한 없는 셈이다. 그리하면 못 가진 사람은 더욱 빈곤에 빠지게 된다.커피를 살 때도 키오스크보다 아르바이트하는 청년에게 주문하자. 은행에 가서도 불편하더라도 번호표를 뽑아 직원과 대화를 하자. 고속도로가 조금 막혀도 하이패스 차선이 아니라 팔을 길게 뻗어 표를 뽑아 출구에서 사람에게 카드를 건네자. 이렇게 주장하면 억지일까?기계화를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속도를 조금 늦추며 새 일자리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노인들이 거리를 배회하면 그 부담은 누가 질까. 결국 젊은이에게 돌아갈 몫이다. 평생 할 수 있는 안전한 직장을 꿈꾸지 못하는 젊은이에게…. 덤으로.

2022-06-01

다람쥐, 간이 커지다

양태순수필가 산에서 다람쥐를 만났다. 대부분의 다람쥐는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면 부리나케 숨거나 달아난다. 그런데 도망가지 않고 뒷다리로 서서 입을 오물거리며 나와 눈을 맞추고 있다. 황당하기도 하고 어찌 나올지 궁금하기도 해서 땅에 앉아 지켜본다. 다람쥐는 나와의 눈싸움에서 결코 피하지 않고 볼록한 볼을 움직이며 태연하다. 마치 너는 나를 잡을 수 없다는 당당한 눈빛이다. 내가 어이가 없어 발을 쿵 굴리며 잡을 듯한 자세를 취하자 그제야 나무 사이로 사라진다.다람쥐의 간 큰 행동이 하루아침에 나오지는 않는다. 처음 낯선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숨기에 바빴을 것이다. 숨이 팔딱거려서 기절할 정도였지 싶다. 몇 번을 경험하고 나서는 호기심에 숨어서 콩닥거리는 심장을 달래며 주위를 살폈고, 그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저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가 보다. 발소리에 서서히 적응하여 환경을 받아들인 반응이다.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엇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렵다. 변화하는 환경에 나름 적응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 키우는 문제만큼은 쉽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는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서로에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내가 아이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이들이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다. 눈 앞에서 아이의 방문이 수없이 닫히고 내 입에서 독이 든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씩씩거리며 냉수를 마신 뒤에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부족한 부분만 도드라져 보인 적이 많았다. 밤이 깊어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아이의 자는 모습을 몰래 들여다보며 공부가 뭐라고 이리 안달복달하는지 반성을 하곤 했다. 아이의 좋은 점만 봐야지, 굳게 마음을 먹었다.사람마다 환겅의 적응 방법이 다르다. 내가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성적보다 인간성, 사교성을 우선이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아이는 엄마의 잔소리에 토를 달기보다 “알았어요, 알았어.”하며 반성하는 척 했다. 그렇게 나는 나대로 성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산에서 만난 다람쥐도 이런 과정을 겪었기에 저리 태평한가 보다. 그러나 아직 사람 가까이 다가와서 재롱을 부리지 않는 것을 보니 조금의 경계심은 있다. 만에 하나 저를 해치려는 의도가 보이면 단숨에 사라지겠다는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해서 안심이다. 환경에 백 프로 적응보다는 나만의 색깔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듯해서 대견하다.간이 큰 다람쥐를 만나고 온 나는 자꾸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사람을 보고 도망가지 않은 것이 기특해서다. 다람쥐 세계에서 반항아로 찍힐 만큼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의 산경험이 친구들에게 틀림없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지 않은가.주변의 환경은 늘 변화한다. 아침이면 새로운 소식이 쌓여있고 지구촌 어디에서는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세계가 놀란 가슴이 되기도 하는, 속도의 경쟁이기도 하다. 또 어제 멀쩡하던 전화기가 고장이 나서 연락처가 다 날아가서 당황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그러나 변화의 중심은 늘 사람이라고 믿는다.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내가 살아갈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무작정 두려워하는 것보다 개개인의 소중한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다람쥐는 자신의 영역만 고집하지 않았다. 조금씩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는 노력을 했다. 가끔 발소리를 듣고 놀라기는 하지만 무작정 도망가지 않고 서로 눈짓을 교환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 작은 생명체가 덩치가 큰 사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배울 점이기도 하다.서로를 향한 조금의 배려와 존중이 삶의 가치를 향상시킨다. 다람쥐는 조금 더 간이 커지고 사람은 더 큰 품으로 안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부족한 대로 어울려서 채워가는 세상, 큰 그림을 꿈꾼다.

2022-05-25

내 가슴이 뛰니 숭어도 뛰고

정미영 수필가 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순천만으로 향했다. 차창 넘어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여행의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여행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 마음은 끊임없이 너울댔다.상춘객들이 많아 예정보다 한 시간쯤 더 걸려 광양에 다다랐다.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가까운 음식점으로 찾아들었다.메뉴는 그 유명한 광양불고기였다. 불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여행지에서의 들뜬 기분 때문이었을까, 솜사탕을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고기가 살살 녹아내렸다. 색다른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여행의 멋이지만, 그 고장의 음식을 맛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리라.남편은 반주로 지역 특산품인 매실동동주를 곁들였다. 매실동동주는 섬진강변의 매화향이 빚어낸 술이라고 한다. 섬진강변의 매화. 봄이면 매화축제로 강 마을이 온통 떠들썩하다는 그 꽃! 봄바람에 하르르 흩어지던 꽃잎이 술잔에 아른거렸다. 나도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한 잔의 유혹에 빠졌으리라.드디어 순천으로 향했다. 순천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띄었다.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맑은 하늘 아래 살랑살랑 흔들리는 초록나무의 몸짓 또한 아름다웠다. 드디어 대대포구에 도착했다. 자연이 만든 생명의 정원에 도착하니, 나도 모르게 야호 소리가 나왔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갈대밭의 풍경이 장엄했다. 갯바람에 물결치는 갈대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하구의 갈대밭 저편에는 칠면초 군락지도 들어서 있었다. 계절마다 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칠면초는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내 눈이 호사하는 순간이었다.갈대밭을 한 바퀴 돌아보기 위해 배를 탔다. 갯벌에는 새들이 군데군데 무리지어 앉아 있었다. 갯벌에 내리쬐는 햇볕을 즐기는 듯 갈대들의 수런거림에 귀를 기울이는 듯. 잘 보전된 갈대 군락은 새들에게 은신처, 먹이를 제공하여 철새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국제보호조인 흑두루미, 검은머리갈매기와 같은 조류 외에도 저어새, 황새, 흑부리오리, 민물도요 등이 서식하고 있단다.그때 갑자기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새떼가 아니라 나비 떼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 아름다운 비상(飛上)! 역동적인 몸짓이 황홀했다.물살을 가르며 배는 신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배 뒷머리에 있던 남편이 소리쳤다.“물고기가 날아올랐다!”이게 무슨 소리인가. 뒤돌아보니 숭어였다. 장정 팔뚝만한 숭어가 배 안에서 펄떡거렸다. 숭어도 물속에서 내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을까? 여행의 기쁨으로 내 가슴이 뛰니 숭어도 덩달아 뛰어올랐는가? 숭어가 힘이 좋아 간간히 그렇게 뛰어든다며 선장은 우리에게 숭어를 선물로 주었다. 갑자기 우리에게 뛰어든 숭어는 이번 여행의 느낌표였다. 아주 크고, 아주 힘찬 느낌표….여유롭게 흐르던 물결 위로 햇살이 저물었다. 갈대밭 틈새로 땅거미가 내려앉자, 갈대도 물빛도 변했다. 장소에 따라 감흥도 달리하는 법이다.이번에는 마치 내가 순천만 갈대라도 된 것처럼 석양의 붉은 노을 기운이 온몸에 스며들 수 있도록 두 팔을 힘껏 벌렸다. 감동의 전율이 흘렀다. 물아일체가 이런 것이던가.저녁 식사로 재첩국을 먹었다. 가마솥에서 뽀얗게 우러난 재첩국물이 식욕을 돋게 했다. 숟가락 대신 대접을 들고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시니 담백하고 시원했다. 그 맛 그대로 집에 가져가고 싶어 포장을 부탁했더니, 인심 좋게 몇 국자 더 넣어주셨다. 사장님의 정까지 더해진 뜨거운 국물에 가슴까지 훈훈해졌다.여행은 삶을 따뜻하게 해준다. 혼자만의 여행도 좋지만, 나는 가족끼리의 여행을 좋아한다. 같은 추억을 만들어 두고두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이번 순천만 여행은 다른 날보다 기대 이상으로 큰 수확이었다. 내 마음밭이 순천만의 갈대밭처럼 넓어진 느낌이었다.

2022-05-18

빵과 함께

배문경 수필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빵 한 조각에서 출발한다. 가지치기 노동자였던 그에게 빵은 가족의 생계를 연명하기 위한 목숨이었다. 추운 겨울 일거리를 찾지 못해 힘없어 돌아오는 길, 빵집에서 갓 구운 빵 냄새는 그를 기다리는 배고픈 조카들과 오버랩되었다. 그는 빵을 훔쳐 달아나다 붙잡혀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빵 한 조각 때문에 젊은 청년 장발장은 삶에서 19년이란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다. 여러 번의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그는 마흔넷에 출소한다. 그 대가는 너무 혹독했다. 그에게 빵은 신(神)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세월에 따라 빵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 것일까. 장발장이 그토록 갈망하던 빵이 지금은 하나의 캐릭터로 변해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고 있다. 최근 90년대 감성이 인기를 끌고 옛것에 대한 레트로 열풍이 불자 spc삼립은 20여 년 전 ‘포켓몬빵’을 다시 생산했다. 그때도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만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포켓몬스터 캐릭터 카드가 든 빵은 품절 사태를 가져올 만큼 인기가 있다.빵 맛을 찾는 것이 아니라 빵에 들어있는 159개의 포켓몬 ‘띠뿌띠뿌씰’ 빵에 든 캐릭터에 관심이 쏠려있다. 연예인이 나오는 프로에서 조차 60개의 빵을 뜯어 뮤와 뮤츠 스티커 찾기를 했다. 이제 빵은 빵이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빵들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던진다. 호빵맨이란 만화 또한 아이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어릴 적 아이들 사이에서는 보리개떡이 간식으로 만점이었다. 보리쌀 간 것과 밀가루를 섞은 것에 막걸리를 부었다. 뜨뜻한 곳에 놓아두었다가 팥과 콩 등을 대충 흩뿌려 쪄내면 밀가루의 네다섯 배로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만든 빵은 배고픈 그 시절 들고 다니며 친구들과 놀며 먹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지금의 보리떡과는 다르게 단맛도 없고 고소한 맛도 없지만 감자나 고구마로도 성이 차지 않던 그 시절 아이들의 군것질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최근엔 빵지 순례라는 기행도 있다. 경주를 찾는 여행객들은 신라 천년의 역사여행을 와서 맛집을 찾고 황리단길에서 경주 다보탑이 새겨진 십 원 빵을 먹는다. 그러고는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린다. 미니 핫케이크 모양의 찰보리빵도 대세다. 빵은 선교사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을 전하면서 말이다. 첨성대와 불국사가 경주를 지키는가 했더니 빵이 한 몫을 차지했다. 주령구는 통일신라시대 귀족들의 술자리 흥을 돋우는 놀이도구로 14면체의 14가지의 벌칙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놀이문화이다. 이런 주령구 모양의 빵도 신라의 문화전수자로 나섰다.빵은 어디든 함께 한다. 두 탑이 노을 아래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감은사지, 문무대왕 수중능의 파도치는 감포 바다, 바다에서 돌꽃이 피어나는 주상절리가 보이는 창가, 연둣빛 보리밭에 푸른 바람이 일렁이는 황룡사, 어디서든 입을 즐겁게 하는 빵이면 힘들었던 시간이 설탕처럼 달콤하게 녹아내린다.중학교 때 짝꿍은 학교 앞에서 빵집을 했다. 그 친구가 과학이나 생물 시험을 치면 늘 빵점이라서 놀림을 받았다. 0점 시험지에 맛있는 빵이 붙어서 맛난 점수가 되었다. 빵점이건 백 점이건 우린 또 빵이란 단어 앞에서 조금 약해지고 아무렇지 않게 빵 한 조각을 떼서 입에 넣는다. 실실 웃음이 난다.초등학교 시절, 체육 선생님은 육상을 끝내고 온 우리들에게 급식으로 주고 남은 밀가루 빵을 모았다. 그것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넣고 바싹하게 튀겼다. 땀 흘린 뒤에 운동장 계단에 앉아 파란 하늘을 보며 땀을 식혀가며 먹던 고소한 맛,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잊을 수 없는 빵맛이다.빵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 중의 하나다. 새 번역 성경이 나오면서 떡으로 번역했던 것을 밥으로 바꿨다고 한다. ‘빵순이’라 불리는 내게 빵은 밥이나 마찬가지이다. 삶을 되돌아보면 빵은 나의 역사와 함께 하며 나를 살렸다. 누가 내게 ‘신神과 함께’냐 묻는다면 ‘빵과 함께’라고 대답할 것이다.바쁘게 뛰어다니느라 때를 놓친 오후, 커피 한 잔에 바싹하고 고소한 오리지널 스콘을 떼먹는다.

2022-05-11

내나무

정미영수필가 봄기운이 완연한 내연산 수목원을 걷는다.싱그러운 나뭇가지들이 연초록 바람을 일으키며 눈인사를 건넨다. 나뭇잎 속에 담겨 있는 바람의 지문을 열심히 정독하는데, 묘목을 심느라 애썼던 어릴 적 추억이 찰랑거리는 바람결에 실려 온다.초등학교 오 학년 때였다. 집 가까이 신축 학교가 들어섰기에 친구들과 그곳으로 등교했다. 전에 다녔던 학교까지는 강둑을 걸어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늘 뭉쳐 있던 다리를 만지며, 앞으로 다리 고생은 줄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리 대신에 손 고생이 시작되었다. 새로 지은 학교 운동장에는 돌이 많았다. 매주 월요일 조회 때나 체육 시간은 물론, 틈만 나면 돌을 주워 화단 한쪽에 돌무더기를 쌓았다.선생님들께서 돌 줍기를 시키신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뛰다가 넘어졌을 때 돌이 있으면 다칠 가능성이 높았다. 또 돌과 시멘트를 섞어 건물 뒤편 구석진 곳에 낮은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서너 마리의 토끼를 풀어놓고 키웠다.어느 날, 담임선생님은 우리 반만의 추억 만들기를 하자고 하셨다. 집에서 꽃씨나 묘목을 가지고 오라고 당부하셨다. 친구들 대부분은 구하기 쉬운 꽃씨를 가지고 왔다. 우리 집에는 마침 아버지가 마당에 심으려고 했던 동백 묘목이 있었다. 나는 신문지에 뿌리를 둘둘 말고는 비닐봉지에 넣어 조심스레 들고 갔다. 나무를 가지고 온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친구들은 나무에 관심을 보였다. 심을 장소를 물색하고 학교 창고에서 삽이며 호미를 들고 와 구덩이를 팠다. 선생님의 지시대로 땅은 알맞은 깊이로 파였는지 삼십 센티미터 자로 재어보는 개구쟁이도 있었다. 나는 뿌리가 상하지 않게 손으로 흙을 덮고 발로 다지며 잘 자라기를 빌었다.추억 만들기는 선생님의 나직한 가르침이었다. 선생님은 평소에 우리가 주워 나른 돌멩이를 가지고,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를 빙 둘러쌌다. 그러고는 이제 묘목은 장대비에도 끄떡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동안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돌들이 고마웠다. 짜증스럽던 돌 줍기가 보람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선생님은 나에게 이름표를 만들라고 하셨다. 나는 나무 이름과 소망하는 것을 빼곡히 적었다. 내가 만든 이름표를 보고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다.동백나무가 ‘내나무’라고 말씀하시며, 내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셨다.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심는 풍속이 있었다. 아이를 족보에 올리면서 집 주위나 논두렁에 몇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딸 앞으로는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위해서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었다. 딸이 커서 시집갈 날을 받으면 그 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주었다. 아들의 경우는 관을 짜는 데 사용되었다.‘내나무, 내나무’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부를 때마다 동백나무는 소중한 의미로 마음에 담겼다. 날마다 키 재기를 했다. 자주 들여다보며 물을 주고 말을 걸었다. 걱정이 있거나 비밀이 있을 때 친구들 몰래 찾아가 내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지끈거렸던 머릿속이 한결 나아졌다.나만의 작은 나무가 있어 생활이 즐거웠다.학교는 점점 신나는 곳이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갔다. 무릎을 굽히고 내 키를 낮춰 악수하듯 이슬 맺힌 동백나무를 살며시 잡으며 속삭였다. 꽃망울을 맺어주어 고맙다고.시간이 흘러 꽃송이가 붉게 터졌다. 꽃봉오리에 코를 박고 한참을 머물러 있으면 가슴이 찌르르 떨렸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감동이 전해지는 것만 같아 기분이 벅차다. 투덜이 여학생이 긍정적인 소녀로 바뀐 것은 모두 내나무 덕분이었다.나무 계단을 올라 수목원 전망대에 오른다. 드넓게 펼쳐진 숲이 바다가 되어 일렁인다. 초록 물결이 출렁대자, 어릴 적 교정에 심었던 내나무가 떠밀려와 품에 안긴다. 동백나무와의 추억들이 열심히 여물어 간다.

2022-04-27

무소유와 에세이

배문경수필가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마하트마 간디가 했던 말을 시작으로 법정 스님의 ‘무소유’수필은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은 법정스님이 향년 77세로 입적하신지 12년이 되었다. 넘치는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세상의 욕망에 맑고 향기로운 스님의 정신을 느껴보고 싶다.밝은 성격의 단짝 친구가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어두운 시절, 사회의 등불로 혜성처럼 나타난 법정 스님이었다. 그의 ‘무소유’와 ‘서 있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발간된 에세이집은 사회적인 갈등과 반목에서 벗어나는 시원한 사이다 느낌이었다. 많은 매스컴과 입소문은 큰 화제가 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새 책이 나올 때면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는 친구에게 법정 스님은 신적인 존재였다. 절친의 손에 들려있던 ‘무소유’를 나도 받아 읽었다. 나는 책을 읽고 친구만큼 감동을 받지는 못했지만, 친구는 좀체 마음을 다잡지 못하더니 2학년 여름방학에 승려가 되겠다며 승가대학엘 들어갔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고야 말 것 같은 느낌에 친구에게 필요한 것까지 준비해 주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절에 들어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집으로 되돌아왔다. 아마도 간호사가 되어 다시 오라는 승가대학의 요구에 실망하여 집으로 되돌아온 듯 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비구니가 되기 위해 운문사 승가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친구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달려가 상을 치른 후 친구 집 서재에서 ‘무소유’를 다시 읽게 되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정말 친절하고 특별히 나를 잘 챙겨주신 분이었다. 책을 읽으며 삶의 집착과 소유하는 마음을 덜어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세월은 급류처럼 흘러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바쁘게 살았다.법정 스님의 글에서는 맑은 바람과 은은한 난향이 느껴졌다. 난을 애지중지하다 결국 집착에 끌려 다닌다는 생각에 타인에게 주는 순간 이미 스님의 그 마음은 난 향기로 가득해졌을 것이다. 집착에서 벗어난 것이다. 세속에 사는 나에게도 욕망에서 벗어나길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넌지시 공감하도록 설득하는 글이었다. 매력적이었다.문장은 군더더기가 없다.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놓여있는 문장과 문장이 돋보였다. 깊이 사유한 글이란 이런 것이란 느낌도 받았다. 뒷 문장이 앞 문장을 설명해주고 깔끔하니 담백하고 모든 글이 더 이상 줄일 수 없도록 적절했다. 오랜만에 다시 펼친 법정 스님의 글은 세월 탓인지 문장이 옛 글의 느낌이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아직 그대로 나의 가슴에 먹먹한 메시지를 던져준다.또 승려라는 신분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더욱 정확하게 자신을 수련할 수 있다는 점은 글에서도 읽혔다. 혼자 기거하는 불일암에 한여름 더위에 낮잠이라도 잘 수 있으련만 스님은 계율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나무를 뾰족하게 깎기도 했다. 남이 아니라 나를 흐트러지지 않게 지키기 위한 노력은 놀라웠다. 그리고 스님은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했다. 세속과 절집이 어떻게 균형을 잡고 스님과 신도들이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는지 그 길을 알고 계시는 듯했다. 33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간 초대형 베스트셀러인 ‘무소유’가 세상에 나오자 김수환 추기경마저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할 만큼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 후 친구는 법진이란 이름으로 운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승려의 길을 걷게 되었고 나는 동국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각자가 맡은 일을 하면서도 법정 스님이란 화두를 안고 출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고심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수학 방정식처럼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녀를 승려의 길로 제시한 사람이 법정 스님이라면, 수필이란 글이 내게로 와 닿아 큰 숙제처럼 날마다 끙끙거리는 것 또한 법정 스님의 책 인연 때문이다.돌이켜보면 한 사람의 인생에 씨알 하나 던져 놓는 일,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법정 스님이 아니라 다른 누구였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주제를 생각하며 만드는 연(聯)과 연(聯) 사이에서 넘실대는 푸른 보리처럼, 유난히 빛나는 벚꽃 잎처럼 세상에 청량한 바람 한 점 일으킬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2022-04-13

생강나무와 수필가

배문경수필가 봄은 노란빛을 뿌리며 온다. 겨우내 메말랐던 땅속을 뚫고 산수유가 노란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하자 담장 울타리에도 노란 개나리가 ‘나도 여기 있어요’라며 손을 흔든다. 또 한 개의 노랑은 생강나무 꽃이다. 산수유가 익숙하다 보니 숲에서 만난 생강나무를 보고도 산수유일 것이라 짐작하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생강나무는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이들에게 섭섭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산수유는 열매를 약으로 쓰기 위해서 중국에서 들여온 나무다. 그래서 대부분 집 근처에 심었다. 하지만 생강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로 주로 산에서 자란다. 그러니 두 나무를 구분하는 기준점은 어디에 사느냐이다.또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는 꽃 생김새로 구분을 하는데 산수유나무는 꽃 한 송이에 암·수술이 함께 있는데 반해 생강나무 꽃은 암·수꽃이 각각 따로 있다. 생김새와 향기가 각각 다른 두 나무를 이제 숲에서 보면 노란 꽃이라고 성급히 산수유라 부르지 말고 생강나무라 불러주자.나무에서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여름부터 겨울눈을 만들기 시작해 잎눈과 함께 좀 더 큰 꽃눈을 만든다. 많은 꽃이 피기 전에 먼저 벌과 나비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생강나무, 벚나무, 목련, 진달래, 매화나무, 산수유가 모두 이런 선택을 했다. 이 꽃들은 성질이 급하다.김유정 소설 ‘동백꽃’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와 생강나무처럼 성질 급한 점순이가 “산 중턱에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라고 나온다.알싸하고 노란 동백꽃이라고 분명 작가가 써 놓았지만, 독자들은 남쪽 지방의 빨간 동백꽃으로 흘려 읽었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고 부른다.장기읍성에 갔을 때도 노란 꽃이 피어 있기에 산수유인지 생강나무 꽃인지 잠시 헷갈리다 통합검색을 통해 겨우 알아냈다. 노란빛은 비슷할지 몰라도 모양은 확실히 다르다. 생강나무 꽃은 가지에 바짝 붙은 채로 둥글게 뭉쳐있고, 산수유는 꽃자루가 길어 활짝 펼쳐서 핀다. 또, 줄기 끝이 녹색이고 갈라지지 않았다면 생강나무고 줄기가 갈색이면 산수유다.경주에도 산수유가 무더기로 피어나 봄 소풍 가기에 좋은 곳이 있어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온통 노란 세상이다. 햇빛조차 무더기로 피어났다. 건천 백석암으로 가는 길에 오래된 산수유나무가 온몸을 다해 피어 올린 노란 꽃들이 환호성을 불러일으킨다. 무채색의 겨울이 끝났다고 누군가 세상을 향해 노란 물감을 흩뿌린 듯하다.꽃은 필 때마다 각 각의 이름으로 봄을 빛낸다. 우리는 그때마다 잠시 고개를 끄덕일 뿐 더 기억에 담아두지 않는다. 꽃이 피어야 겨우 저 자리에 그 나무와 꽃이 있었음을 다시 상기하게 될 뿐이다. 대충 보아 넘기고 어설피 보아왔다는 뜻이다. 그때는 기억해도 시간이란 저장창고는 자꾸만 망각의 공간을 넓힌다.수필집을 출판하며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잘 받았다는 인사가 되돌아 왔다. 몇 해가 지나 우연히 만나자 어르신들은 “아이쿠, 배시인!”이라고 인사를 건넨다. 나는 멋쩍게 ‘수필가입니다’ 라고 한두 번 정정해 드리지만, 다음에 만나면 또 시인이라 불렀다. 일 년에 한 번 뵐까 말까 싶으니 그것 또한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어 웃고 만다.내심 나는 수필가로 불리기를 원하지만 나를 자세히 모르는 이들은 나를 시인으로 불러준다. 그런데 수필가면 어떠하고 시인이면 어떠랴. 산수유도 생강나무도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피어 있는 것은 아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많은 이들에게 자연의 혜택을 선사하듯 나 또한 그리하면 될 것이다.수필가(隨筆家)가 생강나무 꽃 같다. 시인이나 산수유로 대치되어 버리는 상황이 조금은 아쉽다. ‘아쉬워 마라. 나는 평생 산수유로 불렸다’며 생강나무를 못 알아보는 나를 나무라는 듯해서 봄의 말을 노랗게 새겨듣는다.

2022-03-23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정미영수필가 기억의 정원에서 그리운 추억들을 불러내 이름표를 붙여 주고 싶었다. 희미해져 가던 실루엣이 뚜렷한 흔적으로 남았다. 때로는 바람결에 실려 다니는 말들을 내 마음에 빼곡하게 걸어 놓고 날마다 행간을 놓칠세라 열심히 읽었다. 아담한 수필이란 집을 짓기 위해서다.몇 년 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공연장에서 신명나는 사물놀이를 구경했다. 김덕수 명인이 태평소를 불며 등장하자 관객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복을 몰고 가는 길놀이로 시작된 공연은, 사물놀이패의 꽹과리, 징, 장고, 북의 화려한 연주와 조화로움으로 어깨춤을 유발하더니 농악을 기본으로 사물굿판이 펼쳐졌다. 상모꾼의 상모돌리기에서 절정을 이룰 때에는 흥겨운 장단에 내 어깨도 다른 관객들과 어우렁더우렁 들썩이고, 덩달아 손도 박자를 맞추기에 바빴다.공연이 끝난 뒤였다. 전율이 찌르르 온 몸을 에둘러 나가도 가슴에는 한 줄기 짙은 감동이 여운으로 자리 잡았다. 공연 시간은 짧았지만 구경꾼들의 영혼을 맑게 해 주었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내 마음에도 수필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와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릴 수 있다면. 누군가의 가슴에 스며들어 희망을 주고 기쁨을 준다면 좋으련만.나는 수필을 사랑한다. 울림을 주는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언어의 바다를 헤엄치며 살고 있다. 좋은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는 소재가 중요하다. 글감이라는 보물을 찾으려고 나는 항상 두리번거린다. 학창 시절에 소풍의 재미는 보물찾기에 있었다. 나무 밑이나 화단 근처, 돌무더기를 뒤지며 찾던 종잇조각. 학생이었을 때 내 눈빛이 그 순간만큼 반짝거릴 때가 있었던가. 글감 찾기는 내 생활 속에서의 보물찾기다. 빛나는 글감이 떠오르면 며칠을 머릿속에서 반죽하고 숙성시킨다.자아 성찰의 시기를 거친 내 글쓰기는 주로 밤늦은 시각에 이루어진다. 모두가 잠든 뒤에 수필을 쓰려고 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겨울은 유난히 마음이 추웠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듬지를 비추는 달빛 한 점이 있어 차가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다. 고요히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한 마리 새처럼 조용히 의자에 파묻혀 한 줄씩 적어 내려갔다. 깊은 밤을 지새울 만했다.가끔 언어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싶을 때도 있다. 주옥 같이 펼쳐지는 언어의 황홀경에 흠뻑 취해 있다가도, 쓰는 작업이 힘에 겨워지면 수필에서 달아나고자 버둥거린다. 하지만 새벽바람의 기척으로 해가 강물 속에 풀어지는 모습을 보면 또 다시 삶의 아포리즘을 받아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햇귀와 타전을 시작하고는, 윤슬을 머금은 수필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수필을 사랑한 후에 오는 것들을 기대하며.내 사랑의 결실은 책이 출판되는 것이다. 드디어 며칠 전 2022 Prose Quartet ‘작은 것들’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작가가 StoryLab 숨비에서 기획하고 주최하는 산문 축제에 초대를 받아, 앤솔로지를 출판하고 3월 한 달간 전시회 및 낭독회를 진행한다. 작가들이 보내는 울림과 공감의 파장을 독자들이 폭넓게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꽃샘바람이 불어와도 아파트 화단의 홍매화 꽃눈은 얼지 않았다. 봄꽃이 피어나기를 오매불망 지켜보는 나의 시선 때문인지 앙증맞게 피어났다. 이른 봄, 산책을 나가면 붉게 물들기 시작한 매화 나뭇가지가 나를 향해 봄 내음을 물씬 풍기며 반갑게 손짓한다. 마음 가득 봄빛으로 물들이면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세상이 훨씬 곱게 보일 거라며, 나보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나무가 나를 위해 덕담 한 마디 따스하게 건네주는 오후다.헤아릴 수 없는 깊은 음률로 내 방 창문을 환한 햇살이 두드리고 있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내 가슴 안에 담겨 있던, 기록되지 않은 단어와 추억을 소환하여 수필이란 이름의 옷을 입혀 준다. 수필을 사랑한 후에 오는, 또 다른 것들을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분주할 것이다.

2022-03-16

골목에 갇힌 고래들

양태순수필가 마을은 공동체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여 유기체적 조직을 이루고 삶을 공유 또는 정서적 유대를 이루어 나가는 곳이다.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인 공급을 위해 노력하고 손을 번성시킨다. 그리고 골목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정으로 맺어준다. 각각의 역할이 어우러지면 마을은 살아서 움직인다.날이 좋아 나선 길이 신화마을에 닿았다. 마을은 고요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할머니 세 분을 보았다. 여기저기 고개를 디밀었다. 분홍담 너머로 들여다본 집은 벽이 무너지고 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했다. 그런 집이 여럿이었다. 낮은 처마여서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여 멀리서 서성이다 돌아선 집들은 곰팡이꽃이 자라고 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도 뒤죽박죽 쌓아둔 물건과 다 닳은 신발, 소쿠리가 보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고래 그림 앞에서 멈췄다. 수영하는 아이가 헤엄치는 고래의 턱을 만지자 고래는 할아버지 같은 웃음으로 반긴다. 금을 넘어 파란 물이 밀려왔다. 내 주위에는 마을에서 본 갖가지 고래들이 꼬리를 휘저으며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마음이 포실해지려는 찰나였다. 게시판에 펄럭이던 월세 이십 만 원, 방 하나 부엌 하나 벽보가 잉잉 울었다. 문득 이 마을에는 벽화 속에 갇힌 고래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연약한 고래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신화마을에는 한때 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였다. 공단에는 일손이 필요했고 돈벌이가 필요한 사람이 몰려들었다. 한 지붕 세 가족으로도 집이 모자랐다. 공단에 출근하는 사람이 대다수였으므로 월급날은 온 마을이 흥으로 들썩였고 밤낮없이 발소리, 싸움소리, 웃음소리가 골목골목을 누볐다. 수돗가에서 엉덩이 부딪치며 투덕거려도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는 사람냄새가 있는 마을이었다.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도시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번듯한 주택이 늘어났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더 나은 곳으로 이사 가기를 꿈꾸었고 그 꿈을 차근차근 이루어갔다. 자전거를 이용하여 출퇴근하던 사람들이 자동차에 흠뻑 빠졌다. 그동안 정들었던 마을을 떠나기 싫어 뭉그적대던 사람들도 자식 교육을 앞세워 슬금슬금 보따리를 샀다. 그렇게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생활 전선에서 물러난 퇴역일꾼들 뿐이다.신화마을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자란 고향마을도 그랬다. 새마을운동의 잘 살아 보자는 구호를 믿고 집집이 아들과 딸을 도시로 떠나보냈다. 처음에는 생활비에 보태라고 꼬박꼬박 보내주던 돈은 객지에 가정을 이루자 끊어졌다. 때마다 찾아오던 고향 나들이 횟수가 줄어들더니 번거롭다며 이사를 재촉했다. 싫다고 보채던 가족들은 편의를 따라 도시를 택했다. 골목이 조용해지고 빈집이 늘었다. 지금은 허리 굽은 어른들만 오종종 모여 옛이야기에 열을 올린다.흐름을 쫓아가지 못한 프리즘에 갇힌 동네가 되었다. 삶의 공간은 생물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망각한 탓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개발의 바람과 최신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랬더라면 들어온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다양한 각도로 투영되어 새빛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우리의 각성이 한 박자 늦어서 안타깝다.마을이든 사람이든 변화하는 물결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지나온 시간에 얽매여 편한 상태에 천착하면 발전은커녕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게 된다. 하나 둘 떠나간 마을의 쓸쓸한 마을지기가 될 것이고, 새로운 물결에 탑승한 떠들썩한 이들 옆에서 곁가지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다 그물에 걸린 고래가 바다를 그리워하듯 프리즘에 갇힌 채 바깥을 기웃거린다.신화마을에는 고래가 많다. 벽화에 담긴 고래, 하늘을 나는 고래, 오래된 골목을 휘휘 돌아다니는 고래들이다. 그 고래를 보러 오는 관광객을 향한 지느러미는 안간힘이다. 더 넓은 세상과 더 푸른 세상을 향한 몸짓은 물꼬를 틔워 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듯하다.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고 구름은 바람의 장난질에 가벼운 춤사위다. 고래벽화를 보고 있는 동안 마을 골목에 갇혀 있는 고래들을 풀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망치로 벽을 부수면 고래는 지느러미 펄럭이며 바다로 가겠지. 바다로 가는 여정은 설렘이 반짝이는 시간이다. 내 가슴이 쿵쾅댄다.

2022-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