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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투리 한 켤레, 사랑 두 짝

▲ 박시윤수필가 현관에 벗어놓은 남편의 해진 신발이 유독 눈에 띈다. 발이 빠져나간 신발 속은 어둠만 남은 듯하다. 하루의 고단함이 쾨쾨한 냄새로 남아 무거운 체증처럼 뒹굴고 있다. 한쪽 발을 넣어보니 내가 남편에게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 새삼 넓게만 느껴진다. 나머지 한쪽 발도 넣었다. 땅을 짚고 굳건히 서 있는 내 몸은 늘 남편 앞에서만은 목소리 크고, 당당한 아내였다. 남편의 신발은 다른 식구들의 신발에 비해 유독 낡았다. 현관에 널브러진 신발들을 정리할 때면 남편의 신발을 늘 구석이거나 가장 낮은 위치로 옮겨 놓았다. 깨끗하고 앙증맞은 아이들의 신발과 굽이 있는 나의 구두보다 한 번도 맨 위이거나 중간이었던 적이 없었다.안동대박물관에 다녀온 후 며칠째 생각이 신발에 머무른다. 지극히 단순한 모양새의 미투리 한 켤레 때문이다.안동의 고성 이씨 분묘 이장(移葬) 작업에서 출토된 `원이 엄마의 마지막 편지`와 나란히 있었던 미투리라 한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세상을 요절한 남편에 대한 망부의 애끓는 사연과 병(病)중인 남편의 쾌유를 빌며 삼 줄기와 머리카락을 한데 엮어 만든 미투리였다. 원이 엄마의 사연은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사랑의 미투리`라는 이름으로 특집 게재될 만큼 세계적인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단순한 미투리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한국의 숭고한 사랑을 세계에 알렸던 것이다.망부는 왜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엮었던 것일까.신발은 보드라운 발을 감싼다. 그리고 자신의 보드라운 얼굴을 바닥에 내어 준다. 흙을 덮어쓰고, 각진 모래에 상처도 난다. 온몸의 무게를 받고도 묵묵히 견딘다. 그러면서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오로지 발을 보호한다. 때로는 빗물에서, 때로는 눈밭에서 뒹군다. 뒹굴다 돌아온 툇돌은 싸늘히 그를 맞이한다. 밤새 싸늘한 잠을 자고도, 다음 날이면 또 원래의 모습으로 길을 나선다. 요절한 남편은 원이 엄마에게 미투리와도 같았을 것이다. 땅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낮게 엎드린 것이 미투리였다. 그러면서 발을 보호하는 미투리에게 망부는 몸의 가장 윗부분에 자리한 머리카락을 엮음으로써 존경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사백여년 전의 이야기다. 편지를 감상하는 내내 미투리의 엮인 부분 부분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 떠나는 남편에게 미투리를 자신인 양 머리맡에 넣어 주었으리라.신발장을 열어젖힌다. 식구 다섯에 꽤 많은 신발이 있다. 돌돌 말린 신문들이 신발의 허한 속을 채우고 있다. 언제 적 것인지 아예 먼지가 보얗다.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아쉬운 마음에 끝내 버리지 못한 신발들도 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신발이 있다. 남편의 지극히 단순한 작업화다.현장 일에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작업화는 유난히 낡았다. 모양이나 형체를 고정할 가치도 없어 신문하나 말아 넣지 않은, 속이 텅 빈 신발이다. 비어있어도 한 번도 채워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남편이다. 가족들을 위해 세상에 몸을 바삐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그저 묵묵한 사람이었다. 가족을 감싸고 가족을 위해 기꺼이 신발이 되고 있는 남편이 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유심히 보고 있었던 걸 기억한다.아이와 함께 신발가게에 간다. 사이즈를 묻는 주인 앞에서 얼굴이 붉어진다. 여태껏 남편의 발 사이즈도 모른다. 신어보고 엄지손가락 세 개 정도의 간격을 둔다. 마음은 벌써 남편의 귓전에 맴돌고 있지만 꾹꾹 눌러 입을 봉한다. 현관 중간에 남편의 새 신발을 정리해 둔다. 아이가 달려와 먼저 신고는 온 집을 돌아다닌다. 커다란 남편의 신발이 아이의 자그마한 몸과 보드라운 웃음을 감싸고 있다.오늘은 나도 원이 엄마가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엮듯 마음 깊숙이 남편의 미투리 한 켤레에 몸을 맡긴다. 싸늘한 신발 속이 내 체온으로 후끈 덥혀지는 중이다.

2014-08-01

본심

이상렬대구 반야월성덕교회 목사득구와 나는 같은 반이었다. 이름만으로 주먹이 세 보이는 아이 득구, 고르게 자란 잔디 위에 잡초 하나가 쑥 올라 있듯 그의 키는 또래 아이들보다 한 뼘 더 솟아있었다.산그늘이 드리워진 학교 운동장에서 득구와 시비가 붙었다. 주변을 빙 둘러선 아이들은 편을 갈라 득구와 나의 실랑이를 부추기고 있었다. 평소 골비 단지로 늘 골골대던 나, 이길 승산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만큼은 약골이라는 말을 듣기 싫었다. 내가 먼저 냅다 주먹을 날렸다. 허무하게 빗나갔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순식간에 득구의 덩치 밑에 깔리고 말았다. 맹수의 공격에 목이 눌린 사슴처럼 무력하게 뭉개지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는 선혈의 떪은 맛이 느껴졌다. 누워서 바라본 득구의 얼굴 뒤로 펼쳐진 잿빛 하늘만큼 내 생애에 무서웠던 장면이 또 있었을까.순간 황급히, 누군가가 배를 깔고 앉아있던 득구를 걷어 냈다. 선비 선생님으로 불렸던 6학년 주임 선생님이셨다. 그리고는 나를 일으킨 다음 다짜고짜 나의 따귀를 때렸다. 어안이 벙벙했다.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그 사건은 모든 이들에게 묘한 궁금증을 남겼다. 왜 주임 선생님은 힘센 득구 밑에 깔려 있는 작은 아이의 따귀를 때렸을까. 섧다는 감정을 억누르기에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날 밤, 어린 자존심은 노적가리 속에 숨어 바른 볏단을 젖혔다.그해 가을, 학년 전체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불국사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대열을 정리하고 있을 때, 주임 선생님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이상렬, 이리 나와 봐!”정적이 흘렀고 나는 주춤주춤 걸어나갔다. 선생님은 두 팔로 나의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전교생 앞에서 보란 듯이 단 한 명, 나와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가에 들려왔다. 선생님이 갑자기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그러나 나는 안다. 지난 슬픈 봄날에 득구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내 따귀를 때린 이유를, 또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한 사람, 나를 지명하여 불러내어 사진을 찍은 이유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 선생님은 바로 나의 아버지다.그날, 아버지는 그랬다. 교무실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다 우연히 한 무리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 중간에 으르렁대는 두 아이를 목격한 것이다. 제 몸뚱어리보다 큰 덩치에 깔린 채 힘없이 누워있던 아들, 거센 주먹질에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고 있는 자식을 본 아버지, 그 순간 아버지는 더는 선비 선생님이 아니었다. 자식을 구출하기 위해 맹렬히 타는 불 속이라도 기꺼이 뛰어들 수 있는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복도를 달렸다. 한걸음에 뛰어와 득구를 밀친 후,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아들을 일으켜 세웠다. 떳떳이 나를 아들이라 드러내기에 앞서 스스로 반듯하게 자라주기를 조용히 눈으로 지켜주며 묵묵히 계셨던 아버지, 순간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행동뿐이었으리라. 아들의 따귀를 때린 것이다. 아니, 득구에게서 아들을 구한 것이다.아버지, 오늘같이 무시무시한 세상이라는 괴물 밑에 깔려 속절없이 뭉개지고 있을 때, 더 절실해지는 이름이다. 그 깊디깊은 아버지의 본심이 가슴에서 찡하게 울려온다.이제 내가 아버지가 되었다. 한번은, 아들 녀석이 친구에게 맞고 들어왔다. 격정을 삭이지 못하고 집에 와서야 제 혼자 분을 터트린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야 했다. 함께 걸었다. 아니, 부글부글 타는 속상한 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걷다 보니 인근 학교운동장이다. 아들에게 물었다.“득구, 무서웠니?”“네? 득구가 누구예요?”능선으로 넘어가는 노을 한 자락이 아들의 울긋불긋한 얼굴을 어루만진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멋쩍어하는 아들의 볼을 가만히 쓰다듬는다.“아들아~미안하다.”텅 빈 교정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두 개가 다정스럽다.

201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