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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채화 같은 망중한(忙中閑)

▲ 김주영수필가 경주여행은 망중한(忙中閑)에 그리는 수채화 같은 여행이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좋다. 그러나 행선지를 미리 정하면 여행은 훨씬 알차고 의미 있다. 나는 가끔 여행을 하면서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어디로 떠나야 할까 고민을 하다보면 어느덧 마음은 여행을 시작한다.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하고 그곳에 얽힌 역사와 전설을 미리 공부하는 일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여행은 설렘이다. 설렘은 늘 어디론가 나를 떠나게 한다. 바쁜 가운데서도 멀리 떠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여행지가 경주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다녀온 여행이 초등학교 수학여행이었고 그곳이 경주였다. 어릴 적 가을밤에 느꼈던 첫 설렘, 어른이 된 지금도 경주는 새로운 설렘으로 이어진다. 유적과 유물을 통해 오래전 살았던 이들의 삶을 느끼고 교감할 수 있다. 선조들의 역사와 얼을 함께 호흡하는 일은 특별한 설렘이다. 천 년을 넘나드는데 어찌 아니 설렌단 말인가.신라 천 년의 고도답게 경주는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주역사유적지구` 중에서 신라왕조의 궁궐터였던 월성지구를 좋아한다. 계림, 첨성대, 반월성, 안압지를 걷는다. 천년의 숨결을 걸으면서 느끼기 좋은 곳이다. 반월성에서 동북쪽으로 십여 분을 걸으면 안압지가 나온다. 안압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직후, 바라보는 기능으로 만들어진 궁원이었다. 통일신라 시기 영토 확장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한 강력한 왕권이 화려하고 호화스러운 궁전을 짓는 데 중점을 두고 지은 궁전이다.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 못을 바라보며 연회를 베풀었고 한다.안압지는 걷는 여행의 백미이다. 바람결 따라 푸른 하늘에 그려지는 구름을 바라보며 마음도 구름 따라 일렁인다. 기와지붕 너머로 황금빛 노을이 그려진다. 붉게 물드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천년의 숨결을 눈으로 보는 것 같다. 안압지 주변을 산책하면 내가 신라의 왕족이 된 듯하다. 어둠이 처마 끝에 내려앉으면 안압지는 화려한 야경으로 또 한 폭의 새로운 그림을 펼친다. 어둠속에서 빛과 어우러지는 안압지의 야경은 그 옛날 신라왕족도 누려보지 못한 풍경이 아닌가?안압지를 돌아 반월성을 걸으면 그 길에서 만나는 사계는 늘 새롭다. 봄이면 들판 가득 노란 유채 밭에 마음을 잃고, 초여름에는 홍련과 백련의 고즈넉함에 빠져든다. 황화코스모스의 황홀함과 가로수 길의 알록달록한 단풍에 물들어 볼 수도 있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은 코끝이 시리도록 그 길에서 신라천년의 숨결에 그저 취하면 된다. 매번 다른 얼굴로 맞이해줘서 정답다.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느리게 경주에 물들고 싶다. 울창한 굴참나무 숲에 정적을 깨뜨리는 딱따구리의 맑은 소리와 그 짧은 파장에 놀라 떨어져 내리는 단풍잎 하나. 아름다운 수채화 한 폭이 그려진다. 형형색색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 잎 하나 가슴에 얹고 불국사 경내를 돌아 석굴암에 올라 바라보는 동해의 일출은 또 어떨까?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경주를 찾고 싶다. 또 한 편의 수채화 같은 망중한을 그려 보고 싶다. 가을밤이 깊어지는 소리에 잠 못 이룬다.

2016-09-30

“내다”

▲ 이순영수필가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개똥`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오, 개또이~!” 반가움이 앞서 별명을 부르고 말았다. 그런데 “개똥이 아니고 내다.”라는 굵직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한테 `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급하게 머릿속 안테나를 작동시켜 찾아보았지만 낯선 목소리의 주인은 탐지망에 잡히지 않았다. “누구세요?”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야, 내다, 내. 니 내 모르겠나.”라고 쏜살같이 한마디를 내뱉고는 전화를 끊어버리는 게 아닌가. 서너 시간이 지나서 같은 번호의 전화가 또 걸려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더니 다짜고짜 하는 말이 “순영아, 내다. 니 진짜 내 모르겠나.”하지 않은가. 나를 알고 있는 사람임에는 분명한 것 같은데 나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은빛 머리카락이 슬몃슬몃 보이는 나에게 황소 같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를 사람도 몇 안 된다. 해서 나도 “야, 니 누고. 이름을 밝혀라.”라고 씩씩하게 대응을 했지만 돌아오는 응답은 뚱딴지같다.나를 모르겠나, 섭섭하다, 너무하다, 그럴 수가 있나, 따위의 말만 되풀이 하더니 또 전화를 끊어버린다. 모임에 가 있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나한테 전화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 동무도 가관이다. 지금이라도 오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을 해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책장구석에 있는 졸업앨범을 펼쳤다. 흑백사진 속에서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눈에 힘을 가득 모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입을 꼭 다물고 근엄한 표정들이 한결 같다. 남아(男兒) 열다섯에 못할 일이 무엇 있겠느냐는 표정이다. 나무에 기대어 교모(校帽)를 약간 삐뚤게 쓴 녀석도 정색이긴 마찬가지다. 산이라도 옮길 기세다. 동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들여다보니 활짝 핀 나리꽃 같은 웃음이 절로 난다.길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나에게 밤송이를 던졌던 진이일까. 염소주인 찬이는 아니겠지. 운동장에서 소리 지르는 염소를 쫓아내고 교실로 오다가 뒤에서 쫓아 온 염소에게 고무줄 바지가 벗겨졌던 동무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앞 신작로를 씽씽 달리던 눈이 까만 국이와 운동장에 여학생들이 모아 둔 돌멩이를 리어카에 싣고 유난히 천천히 가던 형이도 있었지. 키가 작고 얼굴이 뽀얀 아이였는데…. 하얀 새 운동화에 몰래 검정색 물감을 뿌려 나를 몹시 속상하게 했던 녀석, 그 악동이 사십 년도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자수를 하려고 행여나 전화한 건 아닐까. 장난꾸러기 동무들을 생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지만 앨범을 넘기며 주소록까지 살펴도 잃어버린 기억조각은 찾을 수가 없었다.늦은 저녁, 전화기에 개똥이 또 나타났다. 이름을 꼭 알아내리라 마음을 먹고 전화를 받았다. 내 딴에는 머리를 썼다. “사실은 네 이름이 뱅글뱅글 도는데 말이 얼른 안 나오네.” 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똥이는 알고 소똥이는 모르느냐, 냉정하게 그럴 수 있느냐, 해도해도 너무하다며 넋두리까지 한다. 얄팍한 나의 전략은 한 방에 날아가고 말았다. 갈수록 태산이다. 소똥이는 또 누구란 말인가.그래. 내가 나도 모르는데 내가 너를 어찌 알겠느냐고 했다. 통쾌하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마치 폭포수 같았다. 전화기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동무들이 나를 놀리면서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동창회에 참석 하지 못한 나를 대상으로 동무들이 더 재미있어 하는구나, 여기니 비록 같은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나를 기억해주는 동무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이런저런 이유로 신명이 나지 않는 작금에 나를 한달음에 단발머리 소녀가 되어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준 동무들이 고맙다. 그런데 걱정이다. 다음에는 꼭 이름을 불러달라고 한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동무. 대관절 `내다`는 누구일까.

2016-09-23

전통문화

▲ 손달호 수필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치관이 바뀌어야 할 부분이 있다. 거추장스럽고 소모적인 것은 시대에 맞게 변용되어야 한다.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당연하다. 다수의 정서에 빠르게 움직여야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변 상황을 빙자하여 고유의 전통을 과소평가하거나 낡은 인습으로 치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품위 있고 격조 높은 삶을 추구해 왔다.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만족도에 질량을 느꼈었다. 이런 정신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꺾이지 않는 힘의 원천이 되었고, 역사의 가시덤불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뎌온 버팀목이었다.불필요한 부분은 걷어내되, 바탕에 흐르는 정신은 살려야 한다. 정신은 형식을 존중하는데서 출발한다. 밖에서 갖춰지는 엄숙한 형식은 안으로의 마음을 여물게 한다. 마음 안에서 정성이 일어나게 만든다. 우리 선조들은 제물은 주과포혜뿐이라도 격식을 따졌다. 물질은 빈약해도 예를 소중히 여기는 올곧은 사고를 지녔었다. 말씨 하나에도 격조를 찾았고 행동 하나하나에도 품위를 지켰다. 서릿발 같은 자존심은 우리 민족을 지켜온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다.몇 년 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튿날 신문 일 면에 엘리자베스의 생일상이 화려한 색상으로 보도가 되었다. 궁중의 예법을 좇아 격식을 갖춘 생일상을 바라보며 감동에 젖었던 기억이 난다. 신문은 생일상을 진두지휘한 조옥화 여사와 하회 류씨 종부의 애국심을 기리는 덕담으로 메워졌다. 영국의 신사도에 맞서는 우리의 선비 문화에 자존감이 인 것도 빼놓을 수가 없었다. 하회 마을에서 전통문화로 손님을 맞이한 정부의 지혜는 보는 이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어쩌면 하회 마을에서의 생일상이 그분을 감동시킬 최상의 프로젝트였을지 모른다. 서울의 명동이나, 포스코, 대덕 연구 단지 등은 엘리자베스의 환심을 사기에는 미덥지 않다. 그녀의 눈이 그 이상으로 세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흔들기가 어려운 것은 고령의 여왕이 얼마나 지구촌을 누볐겠는가.종요로운 상황에서 전통문화가 요긴하게 쓰였다. 동방의 문화가 숨 쉬는 생일상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취한 여왕의 함박 미소는 우리 문화의 수준을 웅변해 준다. 누가 뭐래도 두 분은 애국자임에 틀림없다. 생일상은 전통문화의 진실한 표백이었고 효과적인 홍보 콘텐츠였다. 앞으로 인터넷을 통해 하회 마을을 찾는 지구촌의 방문객이 한꺼번에 몰릴 것만 같았다.하지만 지금까지 흥분으로 설렜??마음이 금방 가라앉았다. 오히려 그 마음자리에 슬픈 감정이 일어났다. 미래에 엘리자베스 3세가 한국을 찾을 때는 누가 생일상을 차릴 것인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서구의 가치가 우선시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밀려난 전통문화의 현주소는 이런 사정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급할 때는 선조가 남긴 문화를 기웃거리면서 이를 소중하게 전해 주려는 기성세대도, 계승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대도 눈에 띄질 않는다.유대 겨레가 수억의 아랍권에서 아니, 이 지구상에서 큰 소리 치는 것은 온전히 문화의 힘이다. 그들은 자기네의 고유문화로 유대의 끈을 단단히 죄고선 끊임없이 외면적 능력을 키워 나간다. 탈무드와 성경은 유대인을 유대인답게 만든 지혜의 지침서이자 삶의 교과서이다. 안으로는 탈무드와 성경 읽기를 실천하여 민족적 정체성을 일깨우고, 밖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지적 교육에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다.우수한 인재를 가진 민족이 힘 있는 나라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인 아인슈타인이 유대인이고, 세계적인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그 민족이다. 칼 마르크스, 로버트 위너, 레오 칠라드, 스피노자가 또한 그렇다. 노벨상의 상당수를 그들이 차지했다. 세계의 심장부에는 유대인이 있었고, 그들은 지구촌의 실질적인 조정자였다.퇴색되어 가는 전통문화를 바라보다 유대 겨레가 생각남은 왜일까?

2016-09-09

시간여행

▲ 김주영 수필가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의 시간이다. 사진의 기록성은 사진이 가진 힘이다. 카메라가 발명되고 사진을 미술로부터 독립하여 발전시킨 사진가들도 사실성과 기록의 힘에 주목했다. 사진을 찍으며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본다. 산책만 하여도 여행을 떠나온 듯하다. 풍경들을 사진에 담는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사진으로 바라보는 일출의 순간은 언제보아도 늘 감동으로 다가온다. 시시각각 명도와 채도를 바꾸며 꿈틀거리는 먹빛은 마치 거대한 공룡이 잠에서 깨어나는 듯하다. 심해 어디쯤에서 밤새 참았던 호흡을 일시에 내뿜으며 치솟는 태양을 바라보는 일은 황홀경 그 자체다. 수많은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점 하나를 포착해내는 게 사진이다. 사진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게 한다. 사진을 보면서 순간의 기록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시간여행을 한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공유하고 기록된 시간을 소유한다.기록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고대나 현대나 다르지 않다. 고대인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에 그림을 그려 기록으로 남겼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겪으며 형성된 시간의 퇴적을 만나기에 좋은 곳이 고분벽화나 암각화이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기고 싶은 날은 유적지를 찾는다.영일칠포리암각화에 가면 선사시대에서 산책을 즐기는 듯하다. 암각화란 바위나 동굴 벽에 동물그림이나 기호 같은 문양이 새겨진 것이다. 지나온 시간을 만나는 것은 살아있는 신화를 만나는 일이다. 이정표를 따라 좁게 난 산길을 올라가면 `암각화 가는 길`이라는 작은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칠포리 암각화는 `흥해읍 칠포해수욕장 서쪽의 곤륜산 계곡 옆에 놓여있는`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 모두 세 군데 있다고 하는데 쉽게 볼 수 있는 바위는 오솔길 옆에 있는 서북향 사암(砂巖)바위다. 길이 3m, 높이 2m 크기로 새겨진 그림이 실패처럼 보인다. 선각(線刻)으로 새겨진 무늬를 자세히 살펴보면 칼 손잡이처럼 생겼다. 새겨진 문양은 석검의 날이 분리되어있는 모양이다.그림들 밑으로 희미한 선의 흔적이 보인다. 먼저 새긴 그림들이 풍화작용으로 마모되면 그 위에 다시 마찰을 가해서 새긴 흔적처럼 보인다. 제사의식 때마다 바위에 마찰을 가한 교접 주술적의미로 추측해 본다. 신성하게 여기는 바위에 마찰을 가함으로써 그 자체가 성행위적 주술이 아니었을까? 암각화의 그림은 농경시대의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주술행위의 결과물인 것 같다.영일칠포리암각화는 청동기시대 바위위에 새겨진 그림이다. 주술행위로 추측되는 선들은 풍년과 다산의 의미를 담은 선조들의 기원이었다. 농경의례에서의 간절한 소망이 선과 선 사이로 느껴진다. 암각화에 대해 정확히 전해지는 문헌기록은 없으나 새겨진 그림을 토대로 청동기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암각화를 사진에 담는다. 청동기시대의 시간이 새겨진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신성함이 느껴진다. 암각화의 새겨진 무늬를 바라보며 시공간을 넘어 선조들의 삶과 조우해본다.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프레임에 담으며 시간여행을 즐긴다. 그곳에 미래의 시간이 함께 공존한다.오후 빛에 내 그림자의 무늬가 길다. 낮과 밤의 경계에서 나는 천천히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시간의 경계를 넘어 또 다른 시간을 찾아 여행을 나선다. 시간여행이 즐거운 것은 현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간은 하나의 점이다. 시간여행은 일상적인 내 삶에 추억을 하나 보태는 것이 아니라 삶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 시간여행의 정거장은 현재다. 현재는 미래의 과거이다. 시간은 영원히 흐르고 흐른다. 하지만 삶은 영원하지 않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서녘에는 어느덧 해가 진다. 오후 햇살을 등에 진 내 그림자, 암각화 무늬 같다.

2016-09-02

나리꽃, 기쁨과 슬픔

▲ 강길수수필가 오래 전 한 여름….동해 아름다운 바닷가, 작은 섬 같은 바위산에서 우연히 나리꽃군락을 만났었다. 하늘나리꽃이었다. 온 산 양지바른 곳에 붉은 정열을 뿜어내는 나리꽃이 참 많이도 모여 피어있었다. 푸른 바다를 얼싸안고 예쁜이대회라도 하는지 사람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얼마나 기뻤던지, 그만 와락 나리꽃을 좋아하게 되었다.며칠 뒤, 구식카메라를 들고 하늘나리꽃을 찍으러 갔었다. 렌즈 안쪽에 나도 모르게 습기가 오염되어 사진이 선명하지 못했다. 일 년을 기다린 끝에, 설레는 마음으로 또 갔었으나, 이번에는 그 많던 나리꽃이 날씨 탓인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슬펐다.그런데 몇 년 전 여름, 도심에 가까이 있어 자주 가는 등산로 초입 양지바른 비탈진 곳에, 아름다운 나리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있는 게 아닌가! 헤어졌던 첫사랑을 만난 듯,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다시 올 때, 디카사진을 꼭 찍어 연중 내내 나리꽃을 만나리라 마음 먹었다.하지만 이틀 뒤 디카를 가지고 갔을 때, 나리꽃은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왈칵 솟구치는 슬픔을 억지로 삼켜야 했다. 그리고 예전처럼, 또 일 년을 기다리겠다고 다짐했다. 제발 나리꽃을 가져 간 사람이 뿌리는 두고 갔기를 기도하면서….매미소리가 다시 여름 하늘을 힘차게 유영하였다. 어느새, 일 년이 후딱 갔나보다.세상살이에 묻혀 살던 나는, 미안하게도 만날 하늘을 보면서도 하늘나리꽃 생각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사흘 전, 그 산에서 만난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려오는 길이었다. 꼭 일 년 전 나리꽃이 피었던 그 자리에, 두 송이의 나리꽃이 찬란하게 피어 있는 모습이 내 동공에 비치는 아닌가! 옆 사람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나는, “어! 나리꽃, 그 것도 두 송이네!”하고 감탄했다.아마도 나리꽃이 나를 불렀거나, 그 꽃을 만나고픈 내 잠재의식이 작동했는지 무심결에도 나리꽃을 찾고 있었던 게다.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무지막지하게 꺾여버린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나리꽃은 덤을 얹어, 두 송이의 꽃을 아름다이 피어냈던 것이다. 올해는 제발 무사하여 자기가 핀 자리에서 그 목숨 다할 때까지, 사람들과 짐승들과 곤충, 풀과 꽃들과 나무들, 공기와 구름과 하늘, 해와 달과 별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나누어 주기를 나는 간절히 빌었다.이틀 뒤, 나리꽃과의 신나는 재회를 위하여 일부러 조금 일찍 나리꽃 코스로 갔다.그러나 나리꽃은 올해도 또,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나리꽃을 잃은 슬픔과 사람에 대한 실망이 또다시 밀려왔다. 그때, 속에서 오래 감추어져 있던 말 한마디가 불쑥 솟아났다. 그 옛날 우리 둘째가 첫돌을 앞둔 어느 가을, 우리 집 작은 화단은 탐스런 국회가 만발했었다. 예쁜 국화꽃에 반해, 꽃을 꺾으려던 젊은 이웃집 젊은 아주머니를 크게 부끄럽고 당황케 했던 말이….“꽃은 두고 보는 거야!”제발, 나리꽃이 시집간 그 집에서, 내가 못다 준 사랑보다 훨씬 더 높고 진한 사랑을 받기를 두 손 모으는 마음 간절했다.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억누르며, 나는 또 일 년을 기다리기로 맘먹는다. 그리고 못다 찍은 디카사진 대신, 마음의 메모리에 이틀 전 본 두 송이 하늘나리꽃을 예쁘게 찍었다.아마도 내년에는, 나리꽃나무가 더 많은 송이의 예쁜 꽃을 피워내겠지!

2016-08-26

여름나들이

▲ 손진숙 수필가 사계절 중 여름은 나와 가장 인연이 깊다. 무엇보다 나는 여름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자 할머니는 산후조리에 좋다는 늙은 호박을 고며 혀를 끌끌 찼다고 한다.“이 더위에 딸을 낳아 가지고….”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나는 판에 반갑지 않은 손녀가 태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할머니의 심사에도 열불이 피어올랐으리라. 내 위로 오빠가 셋 있는데도, 육이오전쟁 통에 작은아들을 잃어 아버지가 외아들이 된 터라 할머니는 손자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채 이 세상에 여름나들이를 나왔다.몇 살 때였는지 아슴푸레하다. 아버지는 친지들과 포항 송도해수욕장 나들이에 나와 작은오빠를 데리고 갔다. 어른들은 먹고, 마시고, 내기를 즐겼지만 동무가 없는 나는 마땅히 할 놀이가 없었다. 오빠는 가끔씩 바닷물에 들어가 헤엄을 치다가 나오곤 했지만 나는 물이 무서워 그마저 할 수 없었다.그리고 뜨거운 모래와 북적이는 사람들이 싫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천막에서 먼 눈길로 하늘빛과 수평선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개봉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파도 따라 교차하며 철썩거렸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와 함께 한 유일한 여름나들이였다.그 시절, 시골 사람들에게는 약물탕 가는 게 중요한 여름나들이에 속했다. 비지땀을 흘리며 콩밭을 다 매고나면, 맑은 날을 택하여 약물탕엘 갔다. 객수(客水)가 들면 맛도 없어질뿐더러 약효도 떨어진다 하여 비 오는 날은 피했다. 약물을 신령한 처방약으로 믿었던 것 같다. 체증이나 장염 같은 내장의 병은 약물을 먹어서 다스리고, 땀띠나 종기 같은 피부의 병은 약물을 맞아서 치료했다. 한여름 논밭 일에 탈진한 몸으로 받아들이는 물은 더욱 시원하고 달았으리라.외갓집이 있는 마을의 약물탕에 갈 때면 엄마와 함께 하는 즐거움에 촐랑거리며 따라다녔다. 약수를 맞고 온 뒤, 어머니 등에 났던 땀띠가 스러진 걸 보면 신기하기도 했다. 여름나들이로 한숨 돌리게 된 어머니가 짓던 희미한 미소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몇 살 때였는지 역시 어렴풋하다. 여름날 해 질 무렵이었다. 외할머니가 사립문을 밀고 들어왔다. 마당에 내놓은 평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평소 `옴마니반메훔`을 읊조리곤 하던 할머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외할머니와 함께 양동마을 `심인당(心印堂)`에 밤나들이를 갔다.나는 골목을 쏘다니며 옥수숫대나 탱자나무 울타리에 앉은 풍뎅이를 잡거나, 풀숲에 숨은 반닷불이를 손 안 가득히 잡았다. 꼬물거리고 반짝이는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에 도취되었다가 날려 보내는 아쉬움을 무제한 즐겼던 것 같다. 그게 만남과 헤어짐의 전주곡이었음을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평상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생풀을 베어 지펴놓은 모깃불에서는 매캐한 연기와 알싸한 향(香)이 풍겨 나와 여름밤 마당에 깊숙이 드리우곤 했다. 심인당에 갔던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늦은 밤에야 담 모퉁이를 돌아 사립문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할머니들은 그 여름밤 길동무가 되어 새로운 길나들이를 준비했던 것 같다.삶은 나들이의 연속이다. 외할머니, 아버지, 할머니가 순서 없이 이 세상나들이를 끝냈다. 여러 해 전 어머니마저도 나를 낳은 날짜, 사흘 지나서 훌쩍 먼 나들이를 떠나고 말았다.올여름도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여름에 만난 인연은 가을이 오기 전에 헤어지고 마는, 어쩌면 여름은 슬픈 계절이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여름이 또다시 나를 버려두고 나들이를 떠나려는 태세다.

2016-08-19

영일대의 꽃이 피는 밤

▲ 김주영수필가 황홀한 밤이다. 화려하게 불꽃들이 수를 놓는 듯하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불의 씨앗들이 캄캄한 밤하늘에 흩뿌려진다. 하늘로 올라간 씨앗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다. 낙화를 바라보는 것 같다.모래사장 위에서 불꽃을 바라보았다. `포항국제불빛축제`는 불과 빛의 도시 포항을 대표하는 여름축제이다. 올해도 영일대해수욕장과 형산강체육공원에서 축제가 열렸다. 축제기간 중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펼쳐진 불꽃 축제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10여만 발의 폭죽들이 쏘아 올려졌다. 밤바다를 배경으로 불꽃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노라면 폭죽이 터진다는 말보다 밤하늘에 꽃이 핀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불꽃들은 꽃잎처럼 밤하늘에 나부낀다. 모래톱 위에서 음악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불꽃의 낙화를 보고 있으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불빛축제가 열리는 영일대해수욕장은 한 여름 밤의 새로운 휴양지가 되었다. 해마다 축제를 보러오는 관람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어머니와 함께 관람하기로 했다. 아흔의 어머니가 인파들 사이에서 축제를 즐기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걱정이었지만 많이 걷지 않아도 되는 곳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밤바다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불꽃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순간 내 곁에 서 계시던 어머니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으며 바라보신다. 펑펑 터지는 소리에 놀라셨나보다.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시는 듯하여 돌아가려하자 어머니는 “곱다 참 곱다” 하시며 밤하늘을 바라보고 계셨다.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며 집에 돌아와서도 연신 불꽃이야기를 하셨다. 무서움을 느꼈냐는 내 질문에 “처음에는 난리통처럼 난리가 난 줄 알았다”하며 빙그레 웃으셨다.어머니는 전쟁을 겪은 세대이다. 폭죽소리, 함성소리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 경험에 의한 두려움이 무의식으로 나타났나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불꽃놀이를 함께 본 후로 아이들은 큰소리만 들리면 불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어린아이들에게 큰소리에 대한 경험은 불꽃놀이로 연상이 되었던 것이다. 경험은 참으로 중요하다. 경험에 의해서 생겨난 인식이 오랫동안 무의식에 남아서 긍정과 부정의 생각으로 나타나게 된다. 부정적 무의식은 새로운 좋은 경험으로 긍정적 무의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부정적 무의식을 극복하고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기에 삶은 풍요로울 수 있다. 어머니에게 오늘 밤의 경험은 두려움보다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축제기간에 찍은 사진들의 색감은 붉고, 푸르고 화려한 꽃처럼 보인다. 한 장의 사진에 `영일대의 꽃이 피는 밤`이라고 제목을 붙어본다. 노란 불꽃들이 꽃처럼 활짝 피어 있다. 밤바다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과 불꽃들이 어우러져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고흐의 그림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 떠오른다. 파리를 떠나 아를에 도착한 고흐가 론강의 밤풍경에 매료되어서 그린 그림. 고흐의 여러 작품 중에서 좋아하는 그림이다. 푸른 밤의 풍경, 강가를 거니는 연인들, 황금색의 별빛과 강물에 비친 불빛의 그림자. 황홀한 노란빛이 꿈과 희망을 주는 것 같아 이 그림을 특별히 좋아한다.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흘러내린다. 폭염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긴다. 요즘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축제들이 열리고 있다. 계절별 지역별로 주제도 다양하다. 매일 축제가 열린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축제의 성격과 의미도 변화되었다.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여가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더위 속에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며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행복한 경험은 삶의 또 다른 에너지가 된다. 영일대 밤바다의 불꽃놀이를 바라본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한여름 밤의 아름다운 기억은 뜨겁고 화려한 삶의 꽃으로 피어나지 않을까? 어둠속에 솟아오른 폭죽들이 화려한 꽃으로 핀다. 허공에 핀 불꽃들은 별빛처럼 반짝인다. 불의 씨앗들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듯 어머니 마음에 행복한 기억의 꽃이 피어나길 바래본다.

2016-08-12

온라인 인연

▲ 강길수 수필가2002년 7월 13일. 한 인터넷포털 사이트를 통해,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 사는 어떤 여성 교포를 알게 된 날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십사 년째가 된다.`은하수별`이란 닉네임을 쓰는 그녀와 이메일을 통해 이런저런 소식과 관심사를 서로 주고받으며 보냈다. 소녀시절 온 가족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간 은하수별은, 옷가게를 하면서 삶을 꾸려 자수성가한 분이었다. 온라인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반갑게 그녀의 온 가족도 우리 집안같이 가톨릭신자였다. 이 점에서, 나는 은하수별이 마치 한 가족처럼 느껴졌다. 어느 땐가 그녀가 음성메일을 보내왔기에, 나도 서툰 솜씨로 음성메일을 보내기도 했다.사업 파트너 여부의 검토를 위해 여러 종류의 마시는 차 샘플을 받기도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열장이 넘는 한 한국 신부님의 신앙생활 피정(避靜) 지도 시디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또 아르헨티나 산 포도주, 왕새우, 안데스 산의 고 순도 암염(岩鹽)도 선물로 받았다. 그에 반해, 나는 매년 발간되는 보리수필 동인지와 내 발표 글이 실린 계간 수필 전문지, 그리고 내가 편찬책임을 맡았던 대해성당 25년사등을 보낸 것이 고작이다.메일이 오간지 10년째 되는 해엔, 그곳에 함께 사는 남동생이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 동생부부가 한국에 검진받으러 온 적이 있다. 그때, 먼 길을 마다않고 은하수별 동생부부는 이곳 까지 우리를 찾아왔었다. 우리부부는 정보화시대 인연의 우연성과 소중함을 체험하며, 지구반대편 나라 아르헨티나에서 온 얼굴도 모르는 은하수별의 남동생 부부와 만났다. 그녀의 남동생 요한씨와 부인 글라라씨는 우리를 만나기 위해, 광주에서 네 시간씩이나 고속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제주도에 이어, 홍도를 다녀온 다음 날 바로 이곳으로 왔단다. 저녁식사를 요한씨의 건강을 고려해 채식으로 함께하고, 포스코와 북부 해수욕장 등지의 야경을 함께 구경한 다음 일찍 호텔에서 쉬게 해 주었다.고향이 원주인 요한씨는 초등학교시절 누나와 함께 온가족이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갔는데도, 우리말을 하나도 잊지 않고 잘했다. 비결을 물어보니, 젊은 날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에게서 한국어를 배웠다 했다. 자신은 그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 주면서 품앗이처럼 서로 가르치고 배웠단다.다음날. 주일이어서 우리 두 부부는 함께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주임신부님과 인사도 나누었다. 구룡포에서 점심을 하고, 호미곶을 총총 들른 후 바로 경주로 향했다. 첨성대와 박물관 관람으로 경주 돌아보기는 만족해야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떠날 시간은 금방 왔다.슬프게도 요한씨는 다음해 9월, 고국에서 치료 후 돌아 간지 달포 만에 지병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피붙이를 떠나보낸 가족들의 고통을 누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상심한 가족과 은하수별의 슬픔이 머나먼 이곳 내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그 여파로 이메일도 뜸해지기도 했다.인연이란 무엇일까? 또, 인연이란 어떻게 맺어지는 걸까? 시대, 개인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연…. 인연의 법칙으로 모든 존재의 생성과 소멸, 해탈을 통한 구원의 길을 안내하는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웃사랑과 하늘사랑이, 고통이란 길을 통해 은총으로 주어지는 구원의 길에 대한 가르침도 생각났다.경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요한씨 부부를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아쉬움과 기쁨, 변해가는 정보화기술 시대의 한가운데를 사는 존재감으로 가득했다. 인터넷 웹사이트, 가상공간을 통해 안 인연이 현실로 이루어진 지난 이틀을 생각하며 7번 국도를 달려오는 발길은, 내일을 잉태하는 석양으로 아련히 물들어갔다.

2016-08-05

성욕과 문명

▲ 김병래시조시인 언제부턴가 `섹시하다`는 말이 보통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말로는 `관능적이다` `성적인 매력이 있다`는 의미라서 젊잖은 자리에서는 잘 안 쓰는 말이었다. 원래 사람을 목전에 두고 성적 매력 운운하는 것은 상대를 품격 있게 대접하는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적인 것을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야비하고 천박한 음담으로 여겼는데 이제와서 듣는 사람이나 말하는 사람이나 전혀 거리낌이 없어진 것은 그만큼 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개방된 때문일 것이다.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말을 빌리자면, 성욕(리비도)은 `생의 본능`인 `에로스의 에너지`라는 것인데,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성장하지 못하면 고착, 퇴행, 억압 등의 병적 증후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 정신분석학적 견해에 힘입어서 성(sex)의 해방이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말로 표현되는 성에 대한 새로운 가치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한마디로 성이란 숨기고 감출 것도 아니고 윤리나 제도의 틀에 가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성을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거나 무조건 터부시 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해방이 되어야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방종과 난잡으로 이어지는 것은 오히려 성을 황폐화시키는 폐단이 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남녀 간의 애정행위와 무분별한 성욕해소는 당연히 구별이 되어야 한다. 성욕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성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욕을 남녀 간 애정문제와 분리해서 본다면, 그것은 식욕(食慾)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는 본능적인 욕구의 하나인 것이다.식욕이 일차적으로는 생명의 존속을 위한 영양공급에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성욕은 종족보존을 위한 생식기능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고, 부차적으로는 둘 다 쾌락을 수반한다는 점이 유사한 것이다. 그런데 식욕이든 성욕이든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본능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현존하는 인류의 식욕과 성욕은 이미 자연상태의 원시적 본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문화적 요소가 유입된, 여타의 동물들이 가진 본능과는 구별이 되는 `문명화 된 본능`이라는 것이다.문명화 된 본능의 특징은 상당부분 자동제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생상태의 동물들은 식욕이나 성욕을 자유의지로 통제할 필요가 없지만, 인간은 그것을 스스로 조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야생의 동물들은 필요 이상의 과식이나 번식을 위한 것이 아닌 성행위를 하지 않는데 비해 인간은 얼마든지 과도한 식욕이나 성욕으로 인해 건강이나 생명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식욕이든 성욕이든 그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본능이니만치 결코 폄하하거나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생존은 물론 삶을 건강하고 활기차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식욕이 동한다고 마구잡이로 먹었다간 배탈이 나거나 비만이 되고, 또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것을 훔쳐 먹어서는 절도죄가 되는 것처럼, 적절하게 절제되지 않은 성욕은 자신의 건강은 물론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인류의 문명은 부단히 성욕을 왜곡해왔다. 문명이 개입된 성은 번식보다는 쾌락의 수단으로 변질이 되었다.정보화 시대에 넘쳐나는 음란물과 성에 대한 불건전한 정보는 성본능의 왜곡과 변질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갈수록 증가하는 성범죄와 무관할 수가 없는 것이다.특히나 청소년들이 불건강한 성적 자극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각종 공해의 문제와 더불어 불건강한 성문화 역시 또 하나 인류의 난제가 되고 있다.

2016-07-29

“뭘 해도 못 믿죠?”

▲ 김주영 수필가 청소년기는 어른과 어린이의 중간시기이다. 신체적인 변화는 물론 정서의 발달에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인격형성에도 중요한 과정이다.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인격체로 거듭나며 자아발견을 하는 시기이다. 사춘기라는 큰 변화를 겪는다.대학생 아들을 둔 나는 자녀의 청소년기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이해를 하며 키웠을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빵점짜리 엄마였다. 생각과 욕심이 앞섰기에 이해는커녕 대부분의 시간을 야단치는 데 허비했다. 아이의 인격은 뒷전이었고 부모의 권위가 우선이었다.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보여준 아들의 행동은 무언의 항변이거나 반항이었을 것이다. 나는 늘 공부만을 강요했고 아이가 컴퓨터게임이라도 하고 있으면 독서실로 내몰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작정하고 독서실을 가겠다는 아들에게 칭찬을 해주었어야 했지만 나는 불시에 가방 검사를 했다. 아들은 이런 엄마의 극성스런 행동을 예견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아주 당당하게 검사에 응했다. 가방 안에서 담배가 나왔다. 기가 막혔다. 무슨 현행범이라도 잡은 듯 그 날 이후 더 심하게 야단을 쳤다. 점점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홀로 아프고 힘들었다. 그 때 아들이 반항하듯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엄마는 늘 내가 뭘 해도 못 믿죠?”피우지 않았다는 아들의 말을 듣기는커녕 다그치기만 하였다. 그 사건을 계기로 관계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소통의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대학교 입학 후 어느 날 아들과 술을 한잔 할 기회가 있었다. 술잔이 오가고 얼굴이 불콰해지자 아들은 담배사건에 대한 진실을 털어놓았다. 늘 잔소리를 퍼붓는 엄마가 미웠고 담배는 피우기 위해서 가지고 다닌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걸 엄마가 보는 순간 아들에게 실망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한다.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 그때라야 엄마 스스로도 공부에 대한 집착을 버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담배 사건은 아들에 대한 기대감의 변화와 소통의 전환점이 되었다. 늘 내 입장에서만 말을 했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아이 스스로가 선택한 엄마 길들이기의 한 방법이었던 셈이다.아들의 경우는 비행을 위장한 긍정적 자기 노출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과 책임을 아이에게 떠넘긴다. 너는 도대체 `누구를 닮아서`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한다. 세상 부모들은 누구나 자녀에게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나 또한 그러했고 많은 부분에서 조급증을 냈다. 자녀의 개성을 존중하기보다 내 욕심을 먼저 내세웠으니 늘 잔소리가 차고 넘치지 않았을까?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녀에 대해 느긋한 유형과 조급한 유형이다. 나는 전적으로 조급한 엄마였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아이의 생각과 선택을 존중하기보다 내 생각과 경험을 먼저 내세우게 된다. 자녀교육이 성공할 확률은 느긋한 유형의 부모가 훨씬 높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녀가 실수를 하더라도 관대하게 넘어가며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 주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지름길이 아니어도 언젠가는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곁에서 지켜주는 방법이다.최근에 대학생 아들과 또 한 번 큰 갈등을 겪었다. 휴학계를 내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데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들이 포기하기를 강요했다. 내가 가진 삶의 경험을 근거로 아들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인가.현명하고 여유로운 부모가 되는 것은 이론처럼 쉽지가 않다. 조금 돌아가면 어떤가. 조금 늦으면 또 어떤가. 생각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것을 향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믿고 바라봐주자. 그 선택으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고 있으니 얼마나 귀중한 시간인가.

2016-07-22

말짱 도루묵은 없다

▲ 손진숙 수필가 어느 해 `여름문학캠프`에 참가했을 때였습니다. 유독 내 입맛을 끄는 반찬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도루묵조림이었습니다. 손가락 두어 개 정도의 크기라 한두 입에 쏙 들어가고, 부드러운 살이라 씹어 삼키기 좋으며, 삼삼한 간에 구수한 맛이 감돌았으니까요.캠프에서 돌아온 이튿날이었습니다.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서 생선가게 앞을 지나는데 불현듯 도루묵 맛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맛을 내 손으로 살려내고 싶어 도루묵 한 무더기를 샀습니다.냄비에 담은 도루묵에다 갖은 양념을 넣고 잠길락 말락 물을 부었습니다. 그러고는 국물이 졸아들게 하느라고 가스 불을 조금 강하게 켜 놓았어요. 졸아드는 짬을 이용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방에 들어가 펼쳐진 신문을 보았어요.기사 하나를 다 읽고 거실에 나오려고 방문을 여는 순간 탄내가 훅 코에 끼쳐왔습니다. 재빨리 가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도루묵이 새까만 먹옷으로 갈아입었지 뭡니까.가스 불을 급히 끄고 막 뒤처리를 하려는 참인데 퇴근한 남편이 들어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코를 막은 채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어젖히고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았기에 이 냄새가 나도록 음식을 태우나”며 핀잔을 하였습니다. 핀잔은 좀체 그치지 않았습니다. 콩이야 팥이야 잔소리를 늘어놓았어요.`그만 좀 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에까지 치밀었지만 백번 내 잘못한 일이니 참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어요.근사한 맛을 흉내 내 가족의 입맛을 돋우려던 내 계획은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았습니다.본래 도루묵은 우리나라 근해에 살고 있는 물고기입니다. 임진왜란 때 몽진(蒙塵) 길에서 무척 시장하던 임금님이 한 어부가 바친 `묵`을 먹어보고 너무 맛이 좋아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답니다. 그런데 난이 끝나 궁궐로 돌아온 임금님이 문득 그 은어가 생각나서 가져오라 하여 먹어 보니 몽진 길에서 먹은 그 감칠맛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도로 묵이라 불러라” 명했답니다. 한껏 올랐던 묵의 위상이 도루묵으로 순식간 곤두박질쳐버린 겁니다.오기가 뻗친 나는 이튿날 다시 도루묵을 샀습니다. 전날의 실패에 대한 설욕전을 펼 요량으로 양을 배로 늘렸습니다. `망할, 물이 적어서 그랬던 거야!` 도루묵이 잠기도록 넉넉하게 물을 부었습니다. 불도 중불로 낮췄어요.도루묵이 익을 동안 딴 짓을 하지 않으려고 냄비 앞을 얼쩡거리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문학에 풍부한 지식을 갖춘 지인이었습니다. 한동안 전화 두절이더니 한가한 모양인지 문학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도루묵조림에 신경이 쓰여 건성으로 장단 맞추던 것이 다양한 문학 소식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지인의 입담에 흠뻑 빠지고 말았답니다. 경청하면서 맞장구도 치고, 질문도 하고, 웃기도 하고, 감탄도 하며 문학 저변에 대한 잡담에 정신을 팔다가 깜짝 놀라 냄비를 돌아보니 제법 센 김이 뿜어지고 있었습니다.황급히 전화를 끊고 냄비에게 달려갔지요. 얼른 뚜껑을 열고 보니 이게 또 웬 변고랍니까. 자작하니 익어 있어야 할 도루묵이 푹 삶아져 흥건한 국물 속에 잠겨 있으니 말입니다.전날은 물이 모자라 말썽이던 것이 다음날은 넘쳐서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모자라거나 넘치면 말짱 헛일이 된다는 걸 도루묵이 몸소 확인해 보인거지요.`묵`이었다가 `은어`가 되고 도로 `묵`이 된 것은 결코 물고기의 탓이 아닙니다. 도루묵은 수심 100~400m의 바다에서 자유를 꿈꾸는 선량한 물고기일 따름입니다. 순하디 순한 물고기일 뿐이랍니다. 말짱 도루묵은 없습니다. 굳이 도루묵이 있다면 사람들이 붙인 새로운 이름일 뿐입니다.

2016-07-15

꺼병이와 고양이

▲ 김병래시조시인 풀숲에서 웬 삐약삐약 소리가 들립니다. 들여다보니 깬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꿩병아리들이 오글거리고 있습니다. 닭병아리보다 몸집은 작지만 야생답게 반짝이는 눈빛과 삐약거리는 기세가 여간 아닙니다. 꿩병아리를 지칭하는 `꺼병이`가 `겉모양이 잘 어울리지 않고 거칠게 생긴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인기척에 숨어버린 것인지 어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앙증맞은 것들을 붙잡아보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어미와 만나도록 얼른 자리를 피해 줍니다. 삐약삐약삐약 소리가 한동안 귓가를 떠나지 않습니다.저만치 고양이가 한 마리 지나갑니다. 한눈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고양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군살이 없는 몸매와 경계심이 잔뜩 밴 행동이 그렇습니다. 요즘은 고양이를 집안에서는 잘 기르지 않아서인가 주위에 도둑고양이로 살거나 아니면 아예 산짐승으로 살기도 합니다. 호랑이나 늑대 같은 맹수들이 없는 숲에서 야생 고양이는 먹이사슬의 꼭대기를 차지하는 포식자(捕食者)인 셈입니다. 사뿐한 몸동작과는 달리 숲을 팽팽한 긴장감으로 몰아넣는 놈이지요. 아까 그 꺼병이들이 무사할지 걱정입니다.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낙원입니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자연 상태, 즉 오염과 파괴가 안 된 생태계가 바로 정토낙원이지요. 땅 위에 그 이상의 파라다이스는 존재할 수가 없으니까요. 반세기 넘도록 사람의 발길이 통제된 휴전선 비무장지대가 동식물들에게는 낙원인 까닭이지요.그것은 그러나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과는 거리가 멉니다. 문명과 격리된 타잔이나 로빈슨 크루소를 꿈꾸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지구상에서 건강한 생태계 이상의 낙원을 꿈꾼다는 것은 결국 욕심과 어리석음이 지어낸 망집(妄執)일 뿐입니다. 문명이란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고 생태계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일시적인 성과는 몰라도 소위 `지속 가능한` 세상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자유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종교적 구원이나 해탈이 아니라면 자유의 본질은 자연스러움 이상일 수가 없습니다. 사람 역시 생태계를 떠나 살 수 없는 자연의 일부이기에 그렇습니다. 자연스러움이란 인위적 간섭이 없는 자연생태계의 균형과 질서를 말하는 것이지요.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포식동물이 없는 초원이 얼룩말이나 가젤영양의 낙원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포식동물이 수시로 잡아먹어 개체수를 조절해 주지 않으면, 과잉번식으로 인한 먹이의 고갈되로 초식동물이 더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니까요.생태계의 먹고 먹히는 긴장관계를 벗어난 자유를 꿈꾼다는 것은 과욕이고 오만이고 오산입니다. 문명화된 인간사회라 할지라도 자유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나 아니면 남이라도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지요. 세상에 남을 억압하지 않는 자유란 환상일 뿐이니까요.인류는 그동안 문명이라는 꾀를 동원하여 생태계의 균형과 질서를 파괴하면서 과잉번식을 해왔습니다. 칠십억이 넘는 개체수는 생태계는 물론 인류 자신에게도 재앙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다른 동물에 비해 수천 배나 많은 숫자니까요. 인류의 직접적인 훼손이나 배출하는 공해로 인해 멸종되는 동식물만도 해마다 100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제 인류에게 남은 과제는 파괴하고 오염시킨 자연에 대해 참회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닥쳐올 종말을 멈추고 지속가능한 삶이 되게 하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꺼병이들을 걱정하는 나보다는 고양이가 훨씬 이 숲에 잘 어울릴지 모릅니다. 벌써 숲의 일원으로 먹이사슬의 한 축을 루고 사는 것 같으니까요. 고양이가 꺼병이들을 잡아먹어도 꿩의 개체수는 아마도 적당 선에서 유지될 것입니다.

2016-07-08

한 청개구리의 특별한 여행

▲ 강길수 수필가 “제발 하루라도 더 살아다오!”“하늘아, 구름아 비를 내려다오!”콘크리트 옹벽 옆에 서서 삼사 미터 아래 있는 갈대밭을 보며 한 혼잣말이다.“어! 이게 뭐야.”빗자루로 차 화물칸을 쓸어내며 저절로 나온 소리다. 열무 잎 조각이 바닥에 떨어지는데 그 속에서 청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 뛰어올랐기 때문이다.간밤에 어머님 기제사 모시러 고향집에 다녀왔다. 어제 저녁 무렵, 고향에서 제수씨와 아내가 소나기에 젖은 열무를 뽑아 골판지 상자에 넣어두는 것을 보았다. 청개구리의 특별한 여행은 여기서 시작되었다.고향을 출발하며 열무상자를 차에 싣고 왔었다. 아침 출근길에 차창으로 열무 잎 몇 조각이 화물칸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사무실에 도착하여 빗자루를 가져다 화물칸을 무심코 쓸어내렸다. 한데, 열무 잎 조각으로 보이던 것 중 하나가 청개구리였다니.청개구리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등이 조금 말라 보였다. 불쌍한 마음이 든다. 잠시 갈등에 빠졌다. 길 건너 유수지(遊水池)에 놓아주면 좋겠으나, 거의 매일 먹이를 찾아오는 조류들이나 다른 포식자들의 먹이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그래서 마당 앞 농경지에 놓아주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작년에는 사료용 수수를 재배했는데, 바닥이 연중 젖어있었다. 올해는 휴경이다. 조심스럽게 청개구리를 갈대가 우거진 쪽으로 던져 놓아주었다. 청개구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청개구리는 외롭고 낯설테지만, 우거진 새 갈대밭과 어우러져 잘 살기를 바랐다.올해는 웬일로 가물까. 농경지의 풀들도 가물을 탔다. 청개구리가 걱정되었다.마당에 작업을 한다는 여직원의 말에 내려가 보았다. 청개구리를 놓아 준지 두 주쯤 지난 때였다.성토 차량이 통행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순간, 이 낮은 농경지가 거대한 청개구리의 무덤이 될 것이란 마음이 들었다. 저절로 이런 기도가 마음 가득 물들였다.“청개구리야! 제발 차가 안다니는 밤에 저 길을 건너 유수지로 탈출하려무나. 네가 생매장 당하기보다는 살 수 없다면 백로에게 먹혀 하늘을 날아보는 게 낫지 않겠니? 지금 네 앞에 죽을 위험이 닥치고 있단다.”청개구리는 이런 내 기도에 어떻게 응답했을까?“고마워요. 아저씨! 가뭄 끝에 오는 소나기가 너무 좋아 전 열무 잎을 타고 목욕 마치고 잠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아저씨네 차 화물칸이었어요. `이젠 죽었구나!` 생각했는데, 아저씨가 살려주어 물설지만 갈대밭에서 잘 지냈어요. 전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제가 바로 아저씨의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우리 동물들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보는 게 평생소원이거든요. 그래서 전 여기 그냥 살래요”라고 했을까. 아니면,“아저씨, 고마워요! 아저씨 차 화물칸에 실린 열무 잎을 타고 노는데 깊은 밤이 되자, 차는 제 고향 산골을 떠나 울긋불긋한 불들이 별빛처럼 빛나는 도회에 도착했지 뭐에요. 그 빛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없는데, 열무를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는 바람에 저는 바닥에 떨어졌지요. 전 살려고 죽은 듯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아저씨는 직장에 출근 했고, 저를 모르고 빗자루로 쓸어내렸어요. 제가 죽을 것 같아 달아나니까 잡아서 갈대밭에 살려주셨어요. 그래요. 전 새가 되어 하늘을 날고 싶어요. 전 오늘밤 저 유수지로 건너가겠어요”라고 했을까.내가 아는 청개구리의 특별한 여행은 여기까지다. 그 이후 청개구리의 운명을 알 수가 없다. 마치 나 자신이나 모든 존재의 운명처럼.

2016-07-01

유월의 노래

▲ 김병래수필가 유월의 아침 공기를 깨치며 뻐꾸기소리 들린다. 도라지꽃 산나리꽃이 마침내 꽃망울을 터뜨리듯, 초여름 이 산 저 산에서 뻐꾸기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시골에서 오래 살다 보면 사람의 오관(五官)이 자연의 변화에 민감해진다. 초여름의 한낮은 뭔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섭씨 30도를 육박하는 더위와 숨가쁘게 부풀어 오른 녹음방초들로 산과 들의 한껏 고조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질 즈음, 터질 듯 한 긴장감과 조바심을 깨뜨리며 드디어 뻐꾸기가 울기 시작하는 것이다.뻐꾹 뻐꾹 뻑뻐꾹 뻑꾹….동양화의 여백이 그림 속의 풍경을 더욱 그윽하고 운치 있게 하듯, 뻐꾸기 소리는 녹음 우거진 유월의 풍경을 한결 고즈넉하고 시정(詩情)이 넘치게 한다. 태양의 열기와 녹음의 울창함에는 반드시 뻐꾸기 소리를 더해야만 하나의 완성된 여름 풍경이 되는 것이다. 마치 조명과 배경이 아무리 좋아도 음향효과가 빠져서는 완전한 영상물이 될 수 없는 것처럼.뻐꾸기 소리는 수컷이 짝을 부르는, 그러니까 연가(戀歌)인 셈이다. 대개의 조류들처럼 뻐꾸기도 수컷이 노래를 불러 암컷들을 유혹한다.암컷들은 고작 `뿟, 삣, 삐이` 정도의 소리를 내는 것이어서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뻐꾸기 소리는 모두 수놈들의 소리인 것이다.녹음 우거진 여름 한낮을 짝을 찾는 수컷들의 애절한 노래 소리가 이 산 저 산을 메아리 칠 때, 암컷들은 숨을 죽이고 그 연가들에 담긴 사랑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리라. 그리고는 마음을 끌고 영혼을 뒤흔드는 노래 소리의 임자를 찾아가 아름다운 사랑을 완성하리라.여기까지는 얼마나 낭만 적인가! 짝을 찾고 선택하는 기준이 오로지 한 소절의 연가뿐이라고 할 때, 그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일 것인가. 인간 세상에도 그 제도(?)를 도입해서, 남자는 결혼 적령기가 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기울여 한 편의 시를 짓고 여자는 또 시를 보는 안목을 길러서, 그 한 편의 시에 담긴 사랑과 진실과 아름다움을 배우자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아마도 살다가 등 돌리고 갈라서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그런데, 뻐꾸기가 스스로 둥지를 짓지 않고 다른 새들의 둥지에다 탁란(托卵)을 해서 새끼를 키운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뻐꾸기 새끼의 유모로 선택되는 불행한 새들은 주로 개개비, 때까치, 멧새, 할미새, 종달새 등인데, 그들이 둥지를 틀고 산란할 때를 엿보고 있다가 주인이 둥지를 비운 사이에 그 알 중에 하나를 먹어버리고 제 알을 대신 낳아 놓는다.그런 줄도 모르는 가짜 어미 새는 열심히 알을 품는데, 제일 먼저 알에서 깨어난 뻐꾸기 새끼는 나머지 알들마저 둥지 밖으로 밀어내어 떨어뜨려 버리고 가짜 어미가 물어오는 먹이를 독식하면서 무럭무럭 잘 자란다는 것이다.무려 3, 4 주 동안이나 자기보다 몇 배나 덩치가 커지도록 남의 새끼를 위해 허겁지겁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유모의 정성과 수고를 정작 어미 뻐꾸기는 모른체하고 있다니 세상에 이런 파렴치가 있는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지만, 일찍이 노자(子)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했던가. 그것에도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섭리가 있는 거라고 믿을 수밖에….딸의 소리에 한이 서리게 하려고 일부러 눈을 멀게 했다는 소리꾼의 얘기가 있듯이, 탁란의 숙명이 뻐꾸기소리를 더 애절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뻐꾸기의 구애 이벤트에 산천초목이 다 가담을 했으니 모두가 공범이라고나 할까.

2016-06-24

붉은 맛에 물들다

▲ 김주영수필가 새벽 바다의 파도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지난 밤 세차게 불던 바람이 잔잔해졌다. 일출사진을 찍으러 바다를 찾았다. 캄캄한 어둠속의 기다림은 설렘이다. 설렘은 붉게 눈으로 가슴으로 스며든다.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이기고 돌아오는 어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항구에 서 있는 여자아이와 아주머니를 바라본다. 귀항하는 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바람이 거세었던 지난밤에 모녀는 얼마나 가슴 조이며 기다렸을까. 나는 슬그머니 사진기를 가방에 넣었다.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을 바라본다. 여자아이는 나와 시선이 마주칠 때 마다 연신 웃어주었다. 배 한척이 도착하자 여자아이는 항구 쪽으로 뛰어갔다. 사라져가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느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만선의 꿈은 항구에 닻을 내리고 저 가족이 함께 마주앉는 온기 넘치는 밥상은 얼마나 달고 감사한가.생각이 여유롭지 못할 때 바다를 찾는다. 먼 바다에서 밤을 지새우고 돌아오는 고깃배들, 뱃고동 중저음소리에 마음이 고요해진다. 바다는 늘 나에게 넉넉함을 안겨준다. 나는 바다가 좋다. 그 중에서도 구룡포 호미곶 앞 바다를 좋아한다. 새벽 일출은 물론 오후의 일몰도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해안 어디서든 일출을 볼 수는 있지만 일몰을 보기란 쉽지 않다. 호미곶은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해 지는 시기에 따라 독수리바위가 해를 품는 풍경도 만날 수 있다.서쪽 하늘이 붉게 빛난다. 붉고 화려하게 물드는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뜨겁던 여름 한 낮의 시간들이 형형색색으로 흩어지는 빛의 채색이다. 저 화려한 빛이 사라지면 곧 어둠이 내리겠지 생각하는 순간, 숙연해진다. 하루가 조용히 저물고 있다. 내가 스쳐 지나온 시간과 걸어갈 시간을 생각하게 하는 붉은 노을이다. 뭉게구름들 위로 노을이 번졌다 사라진다.유년의 기억 속으로 다시 붉게 번진다. 해넘이 바다는 그리움이다. 회사에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기다릴 때였다. 아버지 등 뒤에 그려진 붉은 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시작되는 과정은 매순간 매혹적인 시간이다. 하늘에서 시작한 붉은색은 바다를 붉게 물들인다. 붉게 물든 바다가 점점 옅어지면 어둠이 찾아온다.어두워지기 시작하니 허기가 느껴진다. 바다에 오면 늘 물회가 먹고 싶어진다. 포항의 겨울 별미가 과메기라면 여름 별미는 물회다. 물회는 주재료가 싱싱한 생선이니 더위에 지쳤을 때 입맛 돋우는 음식이다. 도다리, 광어, 오징어, 전복 등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물회 이름이 달라진다. 밥과 함께 먹지만 국수와 함께 먹으면 그 맛 또한 감칠맛난다. `생선회를 어떻게 물에 말아 먹을까` 하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생선회를 찬물에 말아먹으면 살이 쫀득쫀득해져서 식감이 살아난다. 매콤하고 담백한 맛을 알고부터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어렸을 적, 아버지는 장날이면 싱싱한 횟감을 사와서 물회를 해주셨다. 한 숟가락 떠 먹여주시던 그 붉은 국물 맛은 어른이 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매콤하면서 달콤한 그 맛. 입맛이 없을 때 새콤달콤한 물회가 먹고 싶어진다. 물회는 아버지가 요리해주신 사시사철 보양음식이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만들어 주시던 그 맛의 물회는 먹을 수 없다. 고추장 붉게 푼 얼음물에 회를 넣어 말아주시던 아버지의 그 손맛이 그리운 날이다.새벽 어둠속에서 붉게 떠오르는 동해의 일출이 설렘이라면 태풍이 지나간 바다에 붉게 채색된 노을은 그리움이다. 잠시 멈춰 그리운 것에 붉게 물들어 보았다. 밤바다를 거닌다. 방파제에는 밤낚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바다냄새가 코끝에 시원하게 머문다. 붉은 맛에 물든 하루다. 후덥지근하고 답답한 무더운 여름도 살맛난다. 눈과 귀는 정화되고 입맛도 되찾은 하루다. 삶의 오감을 깨우는 붉은 맛에 물들고픈 날에 다시 바다를 찾을 것이다.어둠이 내리면 등대의 불빛이 바다에 물든다. 빛의 경계에 서서 다시 생(生)에 붉게 물들어 본다.

2016-06-17

인재(人災) 후렴

▲ 이순영 수필가운전면허증을 갱신했다. 절차에 따라 먼저 시력검사를 했다. 스푼처럼 생긴 눈가리개로 오른쪽 눈을 가리고 왼쪽 눈으로 시력 측정 판을 보았다. 검사관이 가리키는 숫자와 그림이 두 겹 세 겹으로 일렁거리더니 어느 순간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답답함과 당황스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얼른 눈을 가렸던 가리개를 떼고 측정 판을 보니 잘 보였다. 나의 행동을 본 흰 가운을 입은 검사관은 번개같이 `그렇게 하면 불합격 처리합니다.`라고 말했다. 기계처럼 냉정한 그 말에 겁이 덜컹 났다. `불합격`에 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에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시 검사관이 하는 지시대로 착한아이처럼 왼쪽 눈, 오른쪽 눈을 가리고 보이는 대로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 결과는 오른쪽 눈은 영점 팔, 왼쪽 눈은 영점 오란다.오른쪽 눈에 의지해서 운전을 하고 있는 셈이니 매우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양쪽 눈의 시력이 차이가 많으므로 안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은 후에 안경을 반드시 쓰고 운전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경을 쓰니 앞이 환하게 보인다.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니 안전하게 운전을 할 수 있다. 비 내리는 날 밤길운전도 불편함이 거의 없다.어머니께서 백내장 수술을 하셨다. 어머니는 의사선생님께 양쪽 눈을 한꺼번에 수술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수술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만분의 일이라도 잘못 될 수 있어요, 의사는 만분의 일의 실수로 볼 수 있지만 환자는 백 퍼센트 실패인거예요. 완전실명이 될 수도 있으니 한쪽 눈을 먼저 하고 안정이 된 후에 다른 한쪽 눈을 마저 하자고 했다. 완전실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어머니의 표정은 긴장이 역력했다. 정해진 날에 왼쪽 눈을 먼저 수술한 후, 안대로 눈을 가리고 오른쪽 눈에 의지하여 생활했다.오른쪽 눈을 수술하고는 왼쪽 눈으로 산천초목을 보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가벼운 여행도 할 수 있었다.어머니는 불편한 기간이 오래되더라도 의사선생님의 말 듣기를 참 잘 했다고 한다.또 인재(人災)다.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열아홉 살 청년이 희생되었다. 우리의 아들이 밥 먹을 틈도 없이 혼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참변을 당했다.2인1조로 현장에서 일을 해야 하는 매뉴얼은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매뉴얼과 시스템을 운운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도 유리 상자 속에 갇힌 박제가 되려는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형국이 언제까지 이어지려는가.행정안전부를 안정행정부로 바꾼 까닭은 무엇일까. `안전`을 명칭의 첫 글자로 앞세워도 효과는 크지 않는가보다.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면 단순화가 특효약이 아닐까 싶다. 개인이든 단체든 안전규정을 어긴 책임자는 예외 없이 엄청나게 큰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그들을 엄정하게 감독하면 통탄할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나. 또 사고의 뒷수습을 공식처럼 되풀이만 하려나.각계에서 진실을 규명하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다고 야단일 것이고, 몇몇 사람만이 처벌을 받을 것이고, 처벌 받은 이들은 관행과 억울함 사이에서 가슴을 두드릴 것이고, 솜방망이 처벌에 힘없는 서민은 분노할 것이고, 이어서 여론이 들끓을 터이고, 백성들은 슬퍼하며 희생자를 추모할 것이고, 그곳에는 리본이 꽃잎처럼 바람에 나부낄 것이며, 마침내 잊어지고 고요해지리라.자연재해도 미리대비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거늘 하물며 인재임에랴. 후렴구만 언제까지 목청껏 외칠텐가.

2016-06-10

잔칫집

▲ 손달호 수필가이제 어지간히 헤맸나 보다. 회귀 본능 같은 것을 자주 느낀다. 예식장 뷔페에서 고급 음식들을 배불리 먹었는데도 허전하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이들도 같은 정서일 것이다. 귀소성은 훗날 거개가 느끼는 공통된 감정 같다. 옛날 도장간에서 받았던 잔칫상은 보통 집에서 먹던 밥상하고는 달라 애최 황홀감에 빠져들었다. 윗말 할머니가 부조한 감주가 혀를 감치고는 목구멍으로 꿀꺽해 버렸다. 토종 메밀묵을 젓가락으로 집기가 간지러웠다. 놋젓가락과 메밀묵이 겉도는 것 같다. 메밀묵을 초고추장에 묻히면 입안에서는 침이 곤두박질한다. 쫄깃한 잔치 국수를 빼놓으면 잔칫집에 온 기분이 안 날 것이다. 가마솥에서 우려낸 멸치 다시 물에 국수 한 줌 적시고는 양념간장을 얹어 준다. 비싼 재료도 안 쓰고, 별난 요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국수만의 풍미는 잔칫집의 터줏대감이었다. 요즘 아무리 느껴 보고 싶어도 좀처럼 그 맛을 만나기 어렵다. 옛날의 잔치 국수는 여전히 물음표다.씩씩거리며 도장을 빠져 나오면 마당에는 교배례가 시작되었다. 사모관대를 두른 신랑이 정중히 엎드리면 신부의 족두리가 땅바닥에 닿으며 백년가약을 다짐한다. 시자가 받쳐 든 모형 기러기가 두 사람의 금슬이 어떠해야 함을 귀띔한다. 초례상 위에서 교배례를 지켜보던 송죽(松竹)이 쪽빛으로 화답한다. 당가 집 떠꺼머리 머슴이 눈알을 반들거리며 침을 삼킨다. 군침이 도는 색다른 눈요기다. 집례의 창홀 소리가 뒤란에까지 무겁게 깔린다.합근례를 끝으로 상을 물리면 구경꾼들 속에서 폐백이 이어진다. 폐백상에 놓인 삼실과에 윤이 난다. 열매를 주렁주렁 다는 대추는 자손의 흥성을, 밤은 자손에 대한 조상의 내리사랑을, 접을 붙여서 생산되는 감은 혼인을 의미한다는 말씀을 잔칫날 어른들로부터 듣는다.폐백을 보고나면 어김없이 새신랑 다루기로 접어든다. 얼굴에 숯검정을 바르고는 뒤로 넘어뜨려 발바닥에다 매를 친다. 장모를 불러 감춰 뒀던 음식을 꺼내오게 함이다. 새신랑 입에서 첫 `장모` 소리를 이끌어 내는 것도 이 때다. 사위에게 매를 칠 때 안절부절못하는 장모의 안달을 놀이꾼은 즐긴다. 큰손 치려고 다락방에 숨겨 두었던 등심살, 육회, 문어, 치자로 물들인 갖가지 전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위가 맞는데 상객인지 뭔지 장모 눈에는 뵈는 게 없다.오늘 최신식 고급 예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내밀었더니 답례로 봉투를 줬다. 점심 식사로 대체하는 모양이다. 어떤 이는 그것을 받고는 바로 옆 실로 옮겨간다. 그렇다. 또 다른 집의 하객으로 가야 되는 것도, 축의금으로부터 봉투를 건네받는 모습도 이젠 어색하지가 않다. 수모가 안내하는 판에 박힌 폐백은 통과의례에 불과하니 고유한 폐백 문화를 지켜보는 구경꾼도 없어졌다.갑자기 로비에 와글대는 하객들이 다 축의금으로 보인다. 옛날 정성껏 부조한 감주나 곡주가 지금은 봉투로 해결되는 시대에 나는 서 있다. 정성이나 인정 같은 것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예식장 안은 규격품, 기성품으로 채워져 있다. 뷔페 문화는 이것의 극치다.옛날 잔칫집은 다양한 문화가 숨 쉬는 날이었다. 유가의 품격이 살아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입체적 풍속을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날이기도 했다. 옛 어른들은 말씀으로 가르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합일을 중시했다. 초례상이나 폐백에 담긴 의미를 어른들이 들려주는 것은 이것의 실천적 모습이었다. 손수 담근 술로 신명을 풀었던 잔칫날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날이었다.예식장에서 볼 일을 마친 나는 주머니 속의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순간, 옛날 잔칫집에서 듣던 집례의 홀기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부선재배(婦先再拜), 서답일배(壻答一拜)`.

2016-06-03

금단현상

▲ 김병래수필가·시인 담배를 끊은 지 몇 달이 지나도록 흡연욕구가 가시지를 않는다. 오랜 세월 담배연기에 절고 찌든 체질을 원상회복하기란 쉽지 않을 터이니 금연의 괴로움을 아주 떼어놓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 같다. 담배를 끊기 어려운 것은 물론 중독성 때문이다. 장기간 지속적으로 흡연을 하게 되면 니코틴에 만성중독이 되고, 그것을 갑자기 중단하거나 사용량을 급격히 줄이면 금단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지속적으로 음용하던 물질을 갑자기 중단하거나 줄일 경우 발생하는 생리적이나 심리적 반응을 금단현상이라고 하는데, 술이나 담배와 같은 기호품이나 각종 향정신성 약물들을 끊었을 때 금단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중독성 때문이다.정신적인 현상에 대해서도 중독이란 말이 쓰인다. 도박중독에서부터 게임중독, 쇼핑중독, 심지어는 일중독이란 말까지 있다. 요즘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이 없으면 안절부절못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그 역시 중독이라 할 수 있다. 돈이든 권력이든 종교든 오락이든 그것에 빠져들어 헤어나지를 못하면 중독인 것이다. 당연히 끊기가 어렵고 갑자기 중단하면 금단현상을 일으키게 마련이다.금단현상은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에 이를 정도로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술이나 마약, 도박 등을 끊지 못한 채 결국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특히나 청소년들의 인터넷 게임중독도 이젠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가 되었다. 언젠가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이 게임을 못 하게 하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극단적인 금단현상의 한 예가 될 것이다. 호기심이나 치기로 가볍게 시작한 것일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집착을 하게 된 경우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파탄지경에 이르고 마는 것이 만성중독의 일반적인 현상이다.중독이 성실이나 열정과 잘 구별되지 않는 경우도 없지 않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신념 따위에 중독이 된 경우가 그렇다.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대단한 성실과 의지로 인식되어서 존경받을 만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상당한 재물이나 권력, 명예 등을 성취하고 외관상 성공적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때문에 정서가 고갈되고 인성이 피폐해지는 등 다른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리거나, 의지가 꺾이고 성취의 길이 막혔을 때 극심한 금단현상을 겪게 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중독이냐 아니냐는 집착의 정도로 알 수가 있다. 언제든지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으면 물론 중독이 아니다. 가진 것을 잃거나 좌절했을 때 그 충격과 혼란에서 헤어날 수가 없으면 중독을 의심해도 좋을 것이다. 담배를 즐기면서도 무병장수 하는 사람에겐 니코틴중독이 별 문제가 없듯이 중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집착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죽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흡연욕구를 참아야 하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담배에 맛을 들이지 않았더라면 겪을 필요가 없는 괴로움이다. 사람이 겪게 되는 괴로움이 대부분 그렇다. 애초에 탐욕하고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아도 되는 괴로움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도 마약 못지않은 중독성이 있어서 그것에 연연하고 집착할수록 붙잡기 위해 노심초사하게 되고, 욕망이 좌절되거나 얻은 것을 잃었을 때 견딜 수 없는 충격과 고통을 받게 된다.그렇다고 아무런 욕망도 의지도 없이 살아야 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꿈과 열정과 노력이 없는 삶은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할 뿐이다. 다만 무엇에건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과도하게 욕심내어서 중독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욕망에는 반드시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금단현상이 주는 교훈이다.

2016-05-27

매실차

▲ 김주영 수필가 매실을 깨끗이 씻어 채반에 받쳐둔다. 청매실과 황매가 반반이다. 꼭지를 따고 상처 난 것들을 골라내고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린다. 매실의 무게만큼 설탕을 준비한다. 유리병에 매실을 한 켜 넣고 그 위에 설탕을 넣고 켜켜이 매실과 설탕을 담는다. 맨 위쪽에 남은 설탕을 모두 붓고 뚜껑을 닫아둔다. 날짜를 적어 통에 붙이면 올해의 매실담기의 첫 과정은 끝이다. 이제 매실과 설탕이 적당히 녹아서 발효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처음에는 매실에 설탕이 녹는 것을 바라본다. 설탕이 녹고 그 녹은 물에 매실이 절여진다.몇 해 전 담아둔 매실로 차 한 잔을 만들어 마신다. 설탕과 매실, 서로 다른 두 성질이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벗 생각이 난다. 매실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 친구와의 인연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 서로의 생각들은 단단한 덩어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의 생각들이 서로에게 스며들고 서로 참 많이 닮아있다. 비슷하니까 어울리지 하고 말을 하지만 우리 둘은 결코 비슷하지도 닮지도 않았다. 서로의 생각이나 주장은 늘 다르다. 하지만 어떤 일과 문제를 해결했던 과정을 가만히 되짚어 보면 매실이 익어 가는 과정과 참 많이 닮은 듯하다.어떤 문제점이 생겼을 때 서로의 생각들이 양보가 없으면 결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양보하는 마음은 매실이 숙성되어가는 과정에서 공기가 필요한 것과 닮았다.몇 해 전 매실을 담을 때 일이다.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베란다 유리창이며 벽이 설탕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매실담은 통 하나가 폭발했다. 뚜껑은 열려있고 안에 들어 있던 내용물이 온 사방으로 튀어있었다. 베란다에 놓아둔 몇 개의 통에서 유독 하나가 왜 폭발했을까? 베란다 청소를 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 통만 공기가 통하지 않게 꼭 닫은 것이 원인이었다. 매실 액을 만들 때 뚜껑을 꽉 닫아도 문제지만 또 너무 느슨하게 풀어놔도 문제가 된다. 뚜껑을 느슨하게 열어두면 설탕이 쉽게 녹는다. 녹는 과정에서는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 설탕 녹은 물에 매실이 푹 절여질 쯤 달달한 향이 진해진다. 하지만 그 달콤한 향에 초파리들이 침투를 한다.매실 액을 만드는데 매실과 설탕의 촉매 역할은 공기와 빛이다. 넘쳐도 모라지도 않아야 한다. 빛이 넘치면 신맛이 강해지고 공기가 넘치면 초파리가 생긴다.친구와의 만남에서 촉매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시간과 배려이다.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생각들은 매실처럼 단단한 알맹이다. 두 생각들이 부딪치고 의견을 조율하는 데는 배려와 시간이 필요했다.공기는 나와 친구의 관계에서 배려이고 빛은 시간이다. 생각들이 부딪칠 때 각자의 주장만 강조하면 그 의견들은 조율 할 수 없다. 생각은 한쪽으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한다. 매실 액을 담을 때 설탕도 적당히 들어가야 제 맛이 나듯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적당한 것이 좋다. 배려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야 한다. 친구의 생각이 자신과 다른 걸 알면서 배려가 넘쳐 잘못된 판단인줄 알면서도 내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적당한 배려와 시간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한다.매실 액을 만드는 첫 과정에서 설탕이 녹기 시작할 때 거품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설탕이 어느 정도 녹으면 고요해진다. 사람의 인연도 그러하다.매실이 빛과 시간에 잘 숙성되어가듯 나도 벗과 배려와 시간 속에 성숙되어 왔다. 시간이 흐르고 그 의견들이 조율되면서 서로에게 스며들어 달달한 우정이 생겼으리라. 매실차 한 잔 마시러 오라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찻물을 준비하는 마음이 바빠진다.

2016-05-20

저녁

▲ 차성황수필가 순대 같은 골목길 안이 어둠으로 꽉 채워졌다. 허리가 꾸부정해진 늙은 나무 가로등이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불을 밝혔다. 아버지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늘 똑같은 노래였다. 특정한 가사부분만 무한 반복하여 부르셨다. 때로는 구슬프게 부르시다 어떨 때는 군가처럼 목소리를 높여 부르셨다. 아버지의 노래는 언제나 희미한 가로등 불빛과 술에 절어 있었다.달이 산을 딛고 서 있었다. 사무실의 창문들도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하루 온종일 의자 속에 묻어 두었던 하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고단함이 발끝까지 전해졌다.동료들이 하나 둘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여기저기 사무실의 불빛들이 도미노처럼 꺼져갔다. 바로 옆 사무실에는 전구들이 박쥐처럼 까맣게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퇴근을 결심하였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귀신같이 찾아오는 배고픔이었다.아버지의 늦은 퇴근은 무서운 저녁으로 기억되었다. 세상의 부당함과 당신 삶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오셨기 때문이었다. 잠자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잠을 다 깨우고 장남하며 나의 볼에 입맞춤을 하셨다. 지독한 술 냄새와 까칠하고 따가웠던 굵은 수염의 공포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의 퇴근과 저녁이 무서웠다.카톡하는 소리가 반갑다. 객지에서 생활하는 두 딸들이 언제부턴가 내 퇴근시간에 맞추어 카톡을 보내오기 시작하였다. `아부지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아부지 아부지 우리 아부지 힘내세요` 같은 내용이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내가 처음 보는 우스꽝스러운 이모티콘과 함께 보내 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저녁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나는 결코 아버지와 같은 저녁을 보내지 않으리다. 내 아이들에게 공포스럽고 무서운 저녁의 기억은 남겨주지 않으리다.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약속이었다. 술을 달고 오지 않는 퇴근길, 세상의 고단함까지 나와 함께 현관문을 넘지 않는 그런 저녁을 다짐하였다. 출근이 뿌듯함이라면 퇴근은 고마움과 감사함이었다. 아침이 희망이라면 저녁은 그 희망을 다시 정비하고 새롭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며 기회였다.이제 결혼생활 26년에 오십 대 후반이 되었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나도 아버지가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보니 내 아버지의 퇴근길과 저녁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한 아버지의 고단한 저녁들이 지금의 밝은 내 저녁을 가져다 주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휴대폰 벨이 울린다. 마눌이라는 글씨와 함께 아내의 목소리가 이내 귀에 가득해졌다. 늘 하는 이야기다. 마누라 보고 싶어도 천천히 운전조심 하란다. 아내의 목소리 너머로 보글보글 김치찌개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은 아내의 손 맛 때문에 더 행복해진다.달이 아파트 22층 옥상 위에 걸터앉아있었다. 아까 사무실에서 봤던 그 달이었다. 29년째 하는 퇴근길이지만 늘 새롭고 즐겁다. 아침에 나가서 다시 돌아오게 해주는 마법 같은 시간이 저녁이다. 다시 가족에게로 돌아오겠다고 한 가장의 약속을 지켜주는 것 또한 저녁이다. 퇴근이 좋고 저녁이 고맙다.오늘 저녁에 다시 한 번 약속하였다. 아버지처럼 치열하고 열심히 살더라도 아버지와 같은 저녁, 아버지와 같은 퇴근길은 결코 흉내 내지도 않으리다. 그것이 팔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의 소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내일 저녁 아내의 반찬이 기대되고 두 딸의 카톡과 새로운 이모티콘이 벌써 궁금해지는 저녁이다.

2016-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