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대구 반야월성덕교회 목사득구와 나는 같은 반이었다. 이름만으로 주먹이 세 보이는 아이 득구, 고르게 자란 잔디 위에 잡초 하나가 쑥 올라 있듯 그의 키는 또래 아이들보다 한 뼘 더 솟아있었다.산그늘이 드리워진 학교 운동장에서 득구와 시비가 붙었다. 주변을 빙 둘러선 아이들은 편을 갈라 득구와 나의 실랑이를 부추기고 있었다. 평소 골비 단지로 늘 골골대던 나, 이길 승산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번만큼은 약골이라는 말을 듣기 싫었다. 내가 먼저 냅다 주먹을 날렸다. 허무하게 빗나갔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순식간에 득구의 덩치 밑에 깔리고 말았다. 맹수의 공격에 목이 눌린 사슴처럼 무력하게 뭉개지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는 선혈의 떪은 맛이 느껴졌다. 누워서 바라본 득구의 얼굴 뒤로 펼쳐진 잿빛 하늘만큼 내 생애에 무서웠던 장면이 또 있었을까.순간 황급히, 누군가가 배를 깔고 앉아있던 득구를 걷어 냈다. 선비 선생님으로 불렸던 6학년 주임 선생님이셨다. 그리고는 나를 일으킨 다음 다짜고짜 나의 따귀를 때렸다. 어안이 벙벙했다.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그 사건은 모든 이들에게 묘한 궁금증을 남겼다. 왜 주임 선생님은 힘센 득구 밑에 깔려 있는 작은 아이의 따귀를 때렸을까. 섧다는 감정을 억누르기에 너무 어린 나이였다. 그날 밤, 어린 자존심은 노적가리 속에 숨어 바른 볏단을 젖혔다.그해 가을, 학년 전체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불국사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대열을 정리하고 있을 때, 주임 선생님은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이상렬, 이리 나와 봐!”정적이 흘렀고 나는 주춤주춤 걸어나갔다. 선생님은 두 팔로 나의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전교생 앞에서 보란 듯이 단 한 명, 나와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가에 들려왔다. 선생님이 갑자기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그러나 나는 안다. 지난 슬픈 봄날에 득구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내 따귀를 때린 이유를, 또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한 사람, 나를 지명하여 불러내어 사진을 찍은 이유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 선생님은 바로 나의 아버지다.그날, 아버지는 그랬다. 교무실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다 우연히 한 무리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 중간에 으르렁대는 두 아이를 목격한 것이다. 제 몸뚱어리보다 큰 덩치에 깔린 채 힘없이 누워있던 아들, 거센 주먹질에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고 있는 자식을 본 아버지, 그 순간 아버지는 더는 선비 선생님이 아니었다. 자식을 구출하기 위해 맹렬히 타는 불 속이라도 기꺼이 뛰어들 수 있는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복도를 달렸다. 한걸음에 뛰어와 득구를 밀친 후,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아들을 일으켜 세웠다. 떳떳이 나를 아들이라 드러내기에 앞서 스스로 반듯하게 자라주기를 조용히 눈으로 지켜주며 묵묵히 계셨던 아버지, 순간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행동뿐이었으리라. 아들의 따귀를 때린 것이다. 아니, 득구에게서 아들을 구한 것이다.아버지, 오늘같이 무시무시한 세상이라는 괴물 밑에 깔려 속절없이 뭉개지고 있을 때, 더 절실해지는 이름이다. 그 깊디깊은 아버지의 본심이 가슴에서 찡하게 울려온다.이제 내가 아버지가 되었다. 한번은, 아들 녀석이 친구에게 맞고 들어왔다. 격정을 삭이지 못하고 집에 와서야 제 혼자 분을 터트린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야 했다. 함께 걸었다. 아니, 부글부글 타는 속상한 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걷다 보니 인근 학교운동장이다. 아들에게 물었다.“득구, 무서웠니?”“네? 득구가 누구예요?”능선으로 넘어가는 노을 한 자락이 아들의 울긋불긋한 얼굴을 어루만진다. 걸음을 멈추고 서서 멋쩍어하는 아들의 볼을 가만히 쓰다듬는다.“아들아~미안하다.”텅 빈 교정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두 개가 다정스럽다.
201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