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우리 아파트 경내(境內)를 산책한다. 지은 지가 오래되어서 건물은 낡았지만 조경수는 울창하고 아주 멋진 조그마한 단지의 아파트이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다섯 개 동 전체를 열 바퀴 돌고 별로인 날은 여덟 바퀴쯤 돈다. 소요 시간은 40~50분 정도, 그렇게 걷고 나면 등이 촉촉하게 젖는다. 간단한 정리 운동 몇 동작을 하고는 바로 내 노래방으로 향한다.
웬 노래방? 마이크 시설이 갖춰진 그런 노래방이 아니다. 아파트 정원의 커다란 단풍나무 아래 벽돌 여섯 장을 삼 층으로 쌓아 놓은 지극히 단출한 노래방이다. 밀폐된 지하 노래방같이 답답하지 않아 좋고 담배 냄새가 배어 있지 않아서 더 좋다.
반주는 딱따구리, 뻐꾸기, 종다리, 얘네들이 알아서 해준다. 가을에는 풀벌레들도 한 몫 거든다.
청중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강아지나 고양이면 족하다. 이 녀석들은 내 노래 톤이 조금 올라가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서 돌아본다. 그런데 재수 좋은 날은 청중이 한 명 더 늘어난다. 맞은 편 가죽나무 꼭대기 둥지에서 방금 아가 젖 물리고 있던 까치 한 마리가 그만 내 노래에 반해 냉큼 내려온다. 내려와선 까딱, 인사부터 하고 그리고 얌전히 앉아서 경청한다. 풀어헤쳐 진 그녀의 앙가슴에서는 젖내음이 폴폴 나는 것 같다. 그런 때는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한껏 목청을 돋우어 근사하게 한 곡 더 뽑아준다. 더더 재수 좋은 날은 순찰 중인 경비원에게 내 노래가 들키는 것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는 그를 못 본 척, 한층 더 목소리를 가다듬을 때 나는 최고로 기분이 좋아진다.
바로 옆 잔디밭에서는 보랏빛 제비꽃과 보송보송 노랗게 올라온 민들레가 내 노래를 가지고 저희끼리 쑥덕거린다. `남쪽 나라 내 고향` 할 때는 목을 살짝 꺾어야 하는데 저게 뭐냐는 둥, `초가삼간` 할 때 올라가야 하는 데 엉뚱하게 `그립습니다`가 더 올라가니 할머니가 혹시 노망든 게 아니냐는 둥, 작년보다 많이 늙어 보인다느니 어쩌느니 촌평(寸評)이 구구(區區)하다.
이때 살며시 고개 내민 쑥이 한소리 한다. “할머니가 기운 없어서 그렇지 노래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뭐니뭐니해도 기운 나게 해주는 보약은 나거든, 그러니 올해에도 할머니 건강은 내가 책임질 거야” 곁에서 돌나물도 나선다. “맞아, 저희들이 뭘 안다고, 나는 새콤달콤 초무침으로 할머니 입맛 찾아드릴 거야” 조잘대는 얼굴들이 참 귀엽다.
“모두 모두 고맙고 또 고맙다. 얘들아!”
아카시아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힐 때는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이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같은 이슬비`를 중얼거리고,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비 내리는 고모령`을 목청껏 불러본다. 언제나 이 노래 끝 소절쯤에서는 목소리가 그만 젖어버린다.
어떤 때는 내 노래방이 애완견의 변이나 담배꽁초 같은 것으로 아주 지저분해져 있다. 운동 후의 달콤한 휴식시간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날은 내 걸음걸이에 힘이 없어진다. 따라서 행복지수도 다운된다. 언제나 한결같이 우리 주민들을 보호해주고 반겨주는 저 꽃과 나무들 앞에서 그 인심(人心)은 부끄럽지도 않은지.
며칠 전에는 새로 부임한 관리소장이 봄맞이 대청소를 하던 중 내 노래방 벽돌 의자를 몽땅 치워버렸다. 그런데 한 경비원이 소장에게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하고 다시 정성껏 쌓아주었다. `눈이 떠 있는지 감겨 있는지조차 분간 안 되는 실눈의 경비아저씨 고맙습니다! 그 얼굴에 패인 굵고 깊은 훈장은 괜히 받은 것이 아니랍니다.`
몸이 부실한 형편이다 보니 그 벽돌 의자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 정원에 앉아서 노래도 부르고 사계절의 아름다운 경치도 감상하고 멋진 글도 구상할 수 있도록 내 건강이 더욱 좋아졌으면 하고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