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등록일 2014-08-08 02:01 게재일 2014-08-08 17면
스크랩버튼
▲ 최보금보금 공인중개사 대표
자동차 급유 신호에 불이 들어왔다. 연료통 게이지가 E를 가리킨 건 어제부터였다. 일부러 주유소 가는 것이 귀찮아 출근길에 넣기로 했다. 차 문을 내리고 `가득`을 주문했다. 웅웅거리는 소음을 타고 기름이 들어온다.

서툰 독립생활에 빨간불은 수시로 들어왔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였다. 변변치 않은 자취 살림은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생활비가 떨어진 날은 학교까지 걸어가느라 지각하기 일쑤였고 차가운 방에서 고픈 배를 움켜잡고 눈물만 흘렸었다. 따뜻한 방에서 김이 나는 국밥 한 그릇 먹는 게 소원이었다.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해 준다면 나무에라도 매달려서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다달이 계획을 세우고 아무리 아껴 써도 생활비는 턱없이 모자랐다. 여름은 여름대로 살기가 힘들었다. 사방이 막혀 있는 월세방은 조그만 창문 하나가 전부였다. 선풍기도 없이 여름나기도 만만치 않았다. 차가운 콜라 한 모금만 마실 수 있다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하루는 일기장에 `콜라`만 잔뜩 적은 적도 있었다.

서른이 넘어서였다. 어린 두 딸아이와 함께 대구로 오게 되었다. 살림만 하던 내가 갑자기 직업 전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젊다는 것 외엔. 최선을 다했지만 경험이 없어서인지 노력도 허사였다. 가족들에게 짐이 될 수도 없었다. 생활은 점점 어려워져 갔다. 아이들만이라도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주고 싶었지만 내 고등학교 다닐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자존심 따위는 버리기로 했다. 가진 것이 없으니 더는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담담해졌다. 자식을 생각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도 생겼다. 공인중개 사무소에서 말단 직원으로 있으면서 일을 배웠다. 월급이라야 고작 팔십만 원이 전부였지만 한 푼 벌이 없는 나에겐 감읍할 따름이었다. 생소하고 두렵던 부동산 문턱을 넘어선 것이 내 삶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이런 일을 하려면 차가 필요했다. 통장을 탈탈 털어 중형차를 샀다. 운전이라고는 면허증 딸 때 몰아본 경력이 전부였다. 마음을 다잡고 용감하게 거리로 나왔다. 손님을 차에 태우고 물건을 보기 위해 차에 올랐다. 손님보다 운전대를 잡은 내가 더 떨고 있었다.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고 신호를 어겨서 벌금 내는 날이 많았다. 삼 년에 걸쳐 갚아야 할 할부금도 많았다. 무모했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부동산 중개 일은 무엇보다 내 형편에 딱 들어맞는 일이었다. 밑천이 없어도 몸만 건강하면 되고 상품처럼 재고가 없어서 좋다. 경기의 등락에도 크게 손해 볼 일이 없다. 거기다 투자 대비 수익구조도 나쁘지 않다. 운전이 손에 익듯이 일도 점점 많아졌고 내 개인 사무실을 가질 정도가 되었다.

부동산 사무실에는 돈 많은 사람이 투자하기 위해 드나 들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래 일을 하다 보니 내 생각이 편견임을 알았다. 사람들은 빠듯한 살림도 아끼고 아껴서 더 좋은 전셋집을 구하고, 더 넓은 집을 사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홀몸으로 아이들을 양육해야지만 그들을 보면서 열심히 살 희망이 생겼다. 내 부동산 사무실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할 것 없이 희망을 파고 산다. 나도 `하늘이 돕는 자`보다 `스스로 돕는 자`가 되리라 결심했다.

오일표시기 바늘이 가득 쪽으로 움직인다.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휴대전화기를 보며 깔깔거린다. 아이들이나 나나 오랜만에 가져 보는 여유다. 일상에서 바빴던 몸을 잠시 쉬고 재충전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비워져 있어야 채워진다는 깨달음이 문득 스친다. 비어있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채우기 위한 과정이요, 또 다른 시작이다.

겁도 없이 장만했던 차는 내 손발이 되어 십 년이 넘도록 함께 일했다. 천정부지로 기름값이 치솟을 때는 한 푼이라도 싼 곳을 찾아다녔지만 지나고 보니 그 일 조차 행복이었다. 이젠 다른 차와 손발을 맞춘다. 내 옆지기다.

출발 버튼을 누른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해.

Essay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