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딸 넷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몇 년 전에 결혼한 남동생 가족도 왔다. 타국에서 근무하는 큰 형부와 캐나다에 유학 중인 조카까지 모두 모이니 시골집이 왁자하다. 스물아홉의 큰조카부터 이제 세 살이 된 동생의 아이까지 대가족이다. 식사 시간이 되면 거실에 상이 몇 개가 차려진다. 주방에는 온종일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기분 좋은 노동이다.
확히 말하면 아버지 자리만 비었다. 여름에 쓰러지신 아버지는 지금 요양병원에 계신다. 어찌 보면 편찮으신 아버지가 자식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다. 그날 밤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의사의 말에 총출동된 가족이 눈물로 지새운 날이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고비를 넘기고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셨다. “낼모레쯤 퇴원해도 되겠다” 하시며 부축하려는 손을 마다하고 혼자 걷는 연습을 하신다.
올여름엔 누구 하나 휴가를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다섯 자식 모두 중환자실에서 교대로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휴가를 다 써 버렸다. 누구 하나 망설임 없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세상이 변해도 핏줄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결혼하고 자주 보지 못했던 언니들과 모처럼 오랜 얘기도 나누었다.
병실을 지키면서 딸 막내라는 이유로 나는 중환자실에서 자주 쫓겨났다. 쉰을 넘긴 큰 언니도, 나보다 훨씬 작은 체구의 작은 언니도 항상 동생 걱정을 먼저 했다. 교대로 잠깐씩 눈을 붙이려고 휴게실에 가져다 놓은 이불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아버지 곁에서 새로 쌓은 자매의 정은 더 끈끈해졌다. 이 후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생활하다 가을의 어느 날, 홀로 계신 어머니 곁으로 다시 모인 것이다. 아버지가 편찮으신 와중에도 어머니는 논밭에서 부지런히 수확한 곡식을 다섯 보따리씩 만들어 놓았다. 저녁 무렵,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는 옥상에 말려놓은 토란 줄기와 도라지를 또 가져오신다. 집으로 향할 트렁크에 짐이 그득하다. 당신의 몸이 불편한 중에도 병원을 찾은 손자의 용돈을 챙기는 아버지의 마음과 참기름부터 고춧가루까지 자식에게 줄 양념을 준비하느라 며칠 동안 방앗간을 오고 갔을 어머니의 사랑이 시골집에 넘친다.
해가 진 하늘에 달 뜨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기울긴 했지만, 여전히 그 빛은 환하다. 마당에 서서 가을바람 사이로 별을 센다. 별자리도 찾아본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 무리를 보니 어릴 때 서로 자기별이라고 부르던 생각이 난다. 나이 들어 올려다본 하늘에 수많은 별이 빛나고 있지만, 휘영청 말 없는 달 옆에 내 별은 이제 기생충 자리로 이름 지어야 할 것 같다. 몸은 독립해서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직 부모님 없이는 먹는 것 하나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주는 대로 주섬주섬 차에 싣는 내 모습이 너무 익숙하다. 편찮으신 중에도 자식들 걱정이 먼저인 그 삶에 흡착하여 나머지 등골마저 빼먹고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살아온 모습이 그대로 자식들에게 대물림되고 생각을 이어 받아 산다는 뜻이다. 아이에게 늘 당당하던 모습이 부모님 앞에 서니 한없이 작아진다.
초록의 몸을 세운 잔디가 저녁 이슬에 촉촉하다. 후텁지근한 낮의 공기와 달리 저녁이 되니 바람이 차다. 그럼에도 떠나야 할 가족들이 마당에서 서성거리며 차마 발길을 못 떼고 있다. 희미하게 보이는 서로의 얼굴과 몸짓에서 이미 익숙한 도시의 피로가 엿보인다. 잠시라도 머무를 이유를 찾은 사람처럼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고 별자리를 찾는다고 야단법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