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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보관함

등록일 2014-09-12 02:01 게재일 2014-09-1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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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향수필가·병원 근무
할아버지의 아내는 치매 환자였다. 자식들은 간간이 얼굴을 내밀 뿐 할머니를 돌보려 하지 않았다. 이태 전에는 혼이 빠지도록 놀랐다며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할아버지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할머니가 사라졌다. 헤매다 지쳐 있을 즈음, 파출소에서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달음에 달려가니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스스로를 자책했다. “얼른 죽어야 할 텐데.” 딱한 일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그런 할머니라도 곁에 있어 주어서 든든하다고 하셨다. 얘기가 끝나자 할머니의 손을 잡고 더디게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나는 문득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3년 전 가족여행을 갔다. 나는 수다를 떠느라 시동을 켜둔 채 내린 적이 있었다. 내 정신머리에 깜짝 놀라며 그 후 한동안 강박 관념에 사로잡혔다. 외출을 하다가도 다시 돌아가 잠긴 문을 확인하는가 하면 자동차 문을 잠그고도 또다시 당겨보곤 했다. 중년에 들면 흔히 있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건망증이라고 하기엔 횟수가 잦았다. 피부에 주름이 생기 듯 나의 뇌세포에도 이미 구김살이 점령해 버린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앞선다.

알츠하이머병, 노화로 인한 대표적인 퇴행성치매이다. 결국,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자신감도 꺾인다. 기억이 지워진 만큼 누군가에게 의존해야하는 치매는 결코 가벼운 병이 아니다. 고령화와 함께 현재 치매 환자는 52만 명에 육박한다. 무거웠던 삶들을 내려놓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나이에 무서운 병을 떠안은 노인을 보니 쓸쓸함마저 든다.

해맑은 할머니의 미소 속에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치매를 부탁한다고 당부를 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지금, 남아있는 정상적인 세포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껏 버티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반듯한 대답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워지고 엉클어진 머릿속에 들어찬 망상으로 엉뚱한 소리를 한다. 더 진행이 되면 그 망상마저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아내에겐 달라진 세상을 같이하는 남편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마도 치매는 가족이 더 사랑하라는 메시지인 것 같다.

구태여 치매가 아니더라도 디지털 세대에 살고 있는 나는 그런 증상을 느낄 때가 많다. 심지어 노래방 기기 없이는 한 곡도 부를 수 없을 만큼 기계들이 다 알아서 해준다. 컴퓨터가 그렇고 PDA가 그러하며 휴대 전화도 그렇다. 거기에 내비게이션까지 한 몫을 한다. 이렇듯 우리의 뇌는 제 기능을 디지털 기기에게 내어주고 기억의 영역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발전된 문명의 혜택을 즐기는 나도 손에 든 것을 찾기도 하고 외우고 있던 전화번호마저도 깜빡깜빡한다. 이런 게 신(新)현대판 치매가 아닐까.

문득 할아버지의 웃음이 떠오른다. 같은 웃음이어도 감정은 제각각이었으리라. 할머니가 지었던 멋쩍은 웃음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이런 일이 또 있을 수 있다는 암시의 의미일 것이고, 할아버지의 웃음은 절망에서 찾은 희망의 미소였을 것이다. 동문서답의 대화 속에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 노부부에게는 얼마나 남아 있을까. 여든이 넘어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그저 천진하게 아내와 놀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치매가 준 선물은 아닐는지.

치매, 지워지는 기억.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인정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남의 일 같아도 나의 일이 될 수 있고,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알츠하이머, 피할 수 없다면 어머니가 나를 보듬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부모님의 흐린 기억을 가슴으로 안아야 할 것이다.

훗날 내 머릿속의 잠재가 표면화 되었을 때 나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타인에게 보여 질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곱고 행복한 추억을 뇌리에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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