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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穴)

등록일 2014-11-07 02:01 게재일 2014-11-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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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기옥수필가·모리코트 대표
돌구멍에 갇혔다. 함께한 일행은 거뜬히 빠져나왔건만 나만 홀로 낭패를 당했다. 이곳을 통과해야만 극락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위`극락굴`이다.

중암암, 일명 돌구멍절이다. 돌구멍 속에 세웠기에 그렇게 명명했으리라. 갓바위에서 발원한 능선이 동으로 힘차게 내달아 정기가 멈춘 곳, 바위틈 벼랑에 중암암이 고즈넉이 엎드렸다. 법당을 중심으로 둘러친 바위들은 제비집 형상이다. 풍수설에는 터의 기운이 좋다 하여 연소혈(燕巢穴)이라 하였던가. 법당 입구부터 돌구멍이다. 거대한 바위가 작은 틈을 열고 손님을 맞이한다. 암자는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 겉모습은 초라해도, 법당에서 미소 짓는 부처님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암자 뒤에는 건들바위가 위태롭게 얹혀있고, 전생(前生)·현생(現生)·내생(來生)의 화복을 관장한다는 삼인암(三印巖)이 위용을 자랑한다. 삼인암에서 기도하면 영험이 있다 하여 불자들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다.

무리 지은 바위 속에 큰 구멍이 뚫려있다. 극락굴이다. 극락에 들겠다는 인간에게 부대끼어 몸살을 앓고 있다. 어두컴컴한 저편에 한 줄기 햇살이 파고든다. 중생을 건지려는 부처님의 빛이리라. 극락구멍 앞에 선 일행의 모습은 자못 진지하다. `석가의 가르침을 바로 알기만 하면 누구든 통과할 수 있다.`라는 구멍이다. 마음이 올곧은 친구가 이 말을 증명이나 하듯 가볍게 통과했다. 다음은 가슴과 엉덩이가 엄청나게 큰 여자 친구가 시도한다.

“극락행, 어려울 꺼로.” 일행은 회의적이다. 지은 죄가 없다면서 용감하게 대든다. 바위틈에 끼여 난감해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천신만고 끝에 용하게 빠져나온다.

내 차례다. 지은 죄업들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처럼 몸에 힘이 들어간다. 다리를 먼저 넣고 윗몸을 구겨 넣었다. 하체와 상체가 닿는 곳은 오목렌즈처럼 공간에 여유가 있었지만, 신체의 중심부가 문제였다.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었다. 막다른 곳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극락 가는 길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주범은 불거져 나온 아랫배였다. 해우소에 들어가는 초입도 돌구멍이다. 돌 틈은 집채만 한 너럭바위를 머리에 이고 있다. 삐걱거리는 해우소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지금은 환경오염 문제로 측간의 역할은 끝났지만, 해우소는 영겁의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를 지키면서 무언의 교훈을 던지리라.

중암암은 아담한 모습에 걸맞게 비움을 가르치는 검소한 암자이다. 나그네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조용한 기도처다. 이를 비아냥거리듯 상당수의 사찰은 앞다퉈 불사(佛事)를 일으킨다. 신도를 늘리고 교세를 키우기에 분분하다. 이러한 현상을 볼 때마다 가난 대신 풍요를 걱정하는 모순을 발견한다. 어려움을 겪은 세대이기에 민감한 반응일까. 어디 불교뿐이랴. 오늘날 종교계는 너무 많은 것을 추구한다. 비우라고 말하면서 채우기에 급급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외치면서 행동은 뒷전이다. 불편한 진실들이 비 온 뒤 대순처럼 고개를 내민다. 정신과 물질의 아름다운 조화, 이사무애(理事無碍)가 진정 부처님의 가르침일 진데.

중암암, 명당이 더러는 있었겠지만, 척박한 바위틈에 자리를 잡은 것은 선각자의 계시리라. 혈(穴)은 비어 있다. 비움은 공(空)이다. 혈과 공, 의미도 비슷할 성 싶다. 불교는 비움의 종교가 아니던가. 속이 텅 빈 돌구멍은 끝없이 채우려는 중생의 물욕을 경계하고, `비움`을 터득게 함일 터다. 성서에는 `부자가 천당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라고 했다. 이 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르치는 청빈 정신과 법정 스님이 일깨운 무소유와 속뜻이 같으리라. 이러한 경구(警句)들은 돌구멍에 갇힌 나 같은 사람을 두고 이름이다.

극락구멍에서 낭패를 당한 자신이 부끄럽다. 때맞춰 예불 드리는 소리가 유장한 계곡에 너울 되어 흐른다. 평소에는 청아하게 들렸던 독경과 목탁 소리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 소리는 날이 선 칼이 되어 탐욕으로 얼룩진 나의 영혼을 해부한다. 두려움이 밀려온다. 뭔가를 잡고 싶다. 입술은 어느새 `남무관세음보살`을 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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