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재직하고 있을 때다. 교장선생님이 갑작스레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조경된 향나무를 캐내고 소나무를 심자는 것이었다. 수령 30년이 넘는 향나무를 캐내고 뚱딴지같이 소나무를 심자니…. 내심 반감이 솟았다. 목장지에서 나무를 사 들이고 나무 이식 전문가와 크레인을 동원하여 심고 나니 나무 한 그루에 300여 만원이 넘게 들었다. 그런데 이듬해가 되자 나무는 3분의 1 가량이 말라 죽고 말았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가 세한연후에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라고 했던가. 한 해 두해를 지나면서 학교 정원의 소나무는 기품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슬비가 내리는 날 창가에 서 있으면 내가 깊은 산에 들어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식을 하면서 잘라낸 가지의 흔적이 사라질 무렵이 되자 소나무가 고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무를 심고 몇 해가 지나서야 노교장의 혜안에 감탄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산이란 산에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 소나무다. 그래서인지 우리 민족은 소나무와 가장 친근하게 살아 왔다. 땔감에서부터 집은 짓는 재료,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 심지어 구황식품에 이르기 까지 소나무는 우리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변변한 땔감이 없는 여름 장마철에 소깝 연기가 자우룩하게 피어오르면 그네들은 팍팍한 삶 때문인지, 연기 때문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면서 어서 빨리 가을이 오기를 염원했고 늦가을이 되면 갈비를 끍??모아 아궁이를 지핀다. 갈비가 솔솔 타들어가는 모습은 정겹다.
소나무의 용도가 어디 땔감에만 국한되랴. 이른 봄, 해토가 되면 농부는 진흙을 이겨 담장을 새로 수선하고 소깝을 덮어 치장했다. 마을 뒷산에서 잘 생긴 섯가래 감을 구해 집을 고치고, 외양간도 새로 손질을 했다. 밋밋하게 잘 자란 소나무는 기둥감이나 들보감으로 쓰였고, 특별히 잘 생긴 소나무는 대궐이나 북촌 대갓집 대들보로 뽑혀 서울 구경을 가기도 했다. 밑둥치가 두 자쯤 되는 나무는 관재로 쓰려고 특별히 아껴 둔다. 또 당산의 아름들이 소나무에는 신이 들어 있어서 마을을 수호한다고 믿었다.
소나무는 자라면서 격을 갖추어 간다. 초부의 낫을 피한 소나무는 자라면서 나무로서의 격을 갖추어 나간다. 기둥감 정도만 되어도 사람들은 나무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고, 100 여년 세월을 넘기면 족히 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톡톡해 해낸다. 동네 당산 아름드리 소나무 쯤 되면 이미 경외의 대상이다. 고향 마을 입구를 늘어선 늙은 소나무는 갑옷을 입은 장수처럼 변함없이 마을을 수호하는 것이다.
소나무에는 우리 민족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질곡의 세월을 겪으면서 자라났고 늙을수록 더욱 정정하고 기품이 서리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가 아닌가. 우리 민족은 역사의 수많은 굽이굽이를 슬기롭게 헤쳐왔다. 그러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소나무가 아니겠는가. 소나무는 어울려 살아야 멋이 난다. 정이품송이니 석송령이니 하는 수백년 묵은 소나무의 기품도 대단하기는 하지만 어울려 숲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만이야 하겠는가. 자식이 없는 친구는 어린 소나무를 자식처럼 생각하고 심었을지 모른다. 우리집 뜰에도 소나무 여섯 그루가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80에 가까운 노송, 50이 넘은 소나무, 그리고 스물이 갓 넘은 소나무가 더불어 숲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나 아닐까. 친구의 그 미소가 솔향기처럼 싱그럽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