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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저녁놀 비칠 무렵

▲ 강길수 수필가세레나.한가위를 며칠 전에 지냈습니다. 계절은 가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것이겠지요. 올 초가을 날씨는 습도가 높아 제겐 여름을 방불케 하도록 더웠습니다. 하지만, 한가위를 지나고 나니 소슬바람 부는 가을 저녁나절을 만납니다. 웬일인지 이런 날이면, 소년시절 겪던 ‘저녁놀 비칠 무렵’들이 생각납니다.꿈 많던 소년의 동공에 비친 저녁노을…. 들에서 부모님 일을 돕고 돌아오거나 또는, 소를 먹이고 들어오거나 혹은, 꼴을 뜯어 망태에 메고 집에 올 때 말입니다. 붉은 해는 서녘 산등을 타고 시나브로 내려앉습니다. 그때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저녁놀의 황금색 시네마는, 소년의 마음을 홀려내기에 충분했었습니다.소년은 저녁놀에 취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콧노래를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었지요. 배운 적 없는 매혹의 멜로디들이 저절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그땐, 그 가락들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 옛 흥얼거림이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영가(靈歌)’였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소년 시절 영가를 알았더라면, 음악의 길을 걸어갔을 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세레나.사람은 누구나 세월이 많이 흘러도,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들을 소중하게간직하고 살고 있을 테지요. 제겐 ‘저녁놀 비칠 무렵’이 그런 기억들 중 하나입니다. 고향 집이 남서 방향으로 서 있어서 저녁놀이 비치는 날은 언제나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땐 집 출입로도 서쪽으로 나 있어서, 저녁 해와 저녁놀은 마치 친구와도 같이 익숙하게 살았으니까요.아홉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고향 산골마을은, 대문이나 사립문이 있는 집이 없었습니다. 출입로가 있을 뿐이었지요. 누구네 집이라도 그냥 드나들 수 있어, 동네가 마치 한집 형제간 같이 살았다 싶습니다. 우리 집 뒤쪽에는 야산 자드락에 묘소 몇 기가 있는 잔디밭이 서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동네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였지요. 잔디밭이 언덕을 이루고 있어 동네를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아이들은 저녁밥을 먹고 나면, 남녀 할 것 없이 잔디밭에 몰려들어 놀았습니다. 열 발 뛰기, 숨바꼭질, 상석(床石)에 앉아 노래 부르기 등의 놀이였습니다. 명절이나 겨울철 주말 등엔, 남자아이들이 모여 자치기를 하며 노는 장소이기도 했지요. 그때 우리들은 놀이터를 ‘양소’나 ‘미뿔’로 불렀는데, 왜 그런 사투리를 썼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가끔 양소에 놀면서 저녁놀을 바라볼 때도 있었지요. 마을 지붕들을 병풍으로 둘러 선 앞산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 위로 저녁놀이 황금빛왕관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은, 지울 수 없는 동영상으로 제 마음망막에 저장되어 있습니다.세레나.원래 하늘색은 붉다지요. 아침저녁으로 보이는 붉은 하늘이 제 색깔이고, 낮의 푸른색은 하늘의 먼지에 햇빛이 분산되어 그렇다는 과학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소년 제가 저녁놀에 취한 것은, 원래의 하늘모습에 감응한 것일까요. 세상에 태어나서 사랑하며 살다가 하늘본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인생일진데, 어린 저는 본능으로 저녁놀에서 그런 것을 느꼈던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많은 세월이 흐른 요즈음도 저녁놀 고운 황혼녘이나, 호젓한 산길을 걸을 때, 혹은 교교한 달밤이면, 주어진 제목도 곡조도 없는 즉흥멜로디를 흥얼거립니다. 멜로디 파동에 그 옛날 눈부시던 내 소년이, 여전히 가슴속에 살아있음을 바라봅니다. 소년은 행복이자 은총이며, 그리움이자 가슴 시린 슬픔임을 되새기면서….

2018-10-12

꼭두각시

▲ 김병래시조시인·수필가얼마 전 우리나라 대통령을 위시한 방북단 일행이 평양에 가서 관람한 북한의 집단체조 공연에 대해서 말들이 많다. 그 규모와 기량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을 얼마나 혹사했으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어 소름이 끼쳤다는 사람도 있었다. 북한의 집단체조와 카드섹션은 세계 최대로 기네스북에도 올랐지만, 아이들을 체제선전과 외화벌이 수단으로 혹사한다는 비판에 몰려 몇 년간 중단을 했다가 이번에 다시 재개했다고 한다. 전체 10만여 명의 학생들을 6개월에 걸쳐 혹독하게 훈련하는 과정이 아동학대와 인권유린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지난여름의 유난했던 폭염에도 집단체조 훈련에 동원됐을 아이들의 고통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 훈련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의 말에 의하면 실신해서 쓰러지거나 억지로 소변을 참느라 방광염에 걸린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훈련기간 중에 정상적인 학교 수업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줌이 마려울까봐 물도 제대로 마시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남한에서도 올림픽이나 전국체전 등에서 각종 매스게임을 하지만 목적이나 과정이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얘기다.방북단의 일원이었던 한 중견시인은, 연도에 나와서 열렬히 환영하는 북한 주민들 표정에서 진심을 보았다고 했다. 일사불란하게 한복을 차려입고 붉은 모조꽃다발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장군님 만세를 외쳐대는 주민들의 열광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면, 그게 어찌 감동을 받을 일인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공개처형도 서슴지 않고 고모부와 친형까지도 죽이는 포악한 독재자를 절대존엄으로 떠받드는 광경을 보고도 느낀 점이 고작 그것이었다니, 명색이 시인이란 사람의 지극히 피상적인 현실인식에 실망을 넘어 아연해진다.언젠가 북한의 어린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공연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섬뜩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어린 것들을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야 저 지경에 이를 수가 있을까. 더욱 소름끼치는 것은 그 아이들의 음성이나 표정까지도 하나같이 똑같게 만들어 놓은 거였다. 그것은 천진한 동심의 아이가 아니라 고도의 기능을 입력해놓은 로봇이거나 꼭두각시의 모습이었다. 편하고 자유로워야 할 어린 영혼들을 그렇게 세뇌하고 혹사한다는 건 결코 감동하고 찬사를 보낼 일이 아닌 반인륜적 죄악일 뿐이다,지난 70년 동안 김일성 일족의 세습 독재는 북한 주민들을 모조리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았다. 유아기부터 일체의 다른 정보를 차단하고 오로지 김일성을 위대한 어버이 수령이자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세뇌교육을 시켰으니 어떻게 정상적인 자아가 형성된 인간일 수가 있겠는가? 얼핏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아이들보다 덜 때가 묻은 순수함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만 현혹되어 실상과 본질을 놓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거짓된 선전선동이나 포퓰리즘에 곧잘 휩쓸리는 게 민심이다. 가슴이 미어지는 연민과 공분으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인데도 감동과 감격으로 보았다는 사람들 역시도 알게 모르게 학습이 된 그릇된 이념이나 편견의 꼭두각시라는 생각이다. 남쪽에도 그런 꼭두각시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 놀랍고 씁쓸하다.꼭두각시란 팔 다리에 실을 달아서 조종하는 인형을 말한다. 한자어로는 괴뢰(傀儡)라고 하며, 남한에서는 북한군을 괴뢰군이라 하고 북한에서는 남한 정부를 미제의 괴뢰정부라고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무엇에 홀린 듯 남한에서도 북한 주민이 모조리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유엔의 대북제재로 궁지에 몰린 김정은을 밖으로 끌어낸 것까진 좋은데, 그것을 마치 독재자가 개과천선이라도 한 양 착각을 하고 호들갑을 떠는 행태도 개탄스럽다.

2018-10-05

그리운 소리

▲ 김순희수필가프랑스대사가 되어 파리에 간 네루다. 잠시 머물렀던 곳인 시골 이슬라네그라의 토박이 마리오에게 그리운 고향의 소리를 녹음해 달라고 소니 녹음기를 보내온다. 자신이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마음을 두고 온 그곳이 고향이라 여겨 네루다는 그곳에 묻혔다. 네루다에게서 시와 사랑을 배운 마리오는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종탑에서 공기를 가르는 종소리, 밤하늘에 별이 흐르는 소리까지 잡아낸다. 영화 ‘일포스티노’에서 주인공 마리오가 하늘을 향해 녹음기의 마이크를 가져가는 장면을 보며 심쿵했다. 나에게 그리운 소리는 무엇인가.내 고향은 안동 남후면 접실. 동네 앞에 낙동강을 향해 가는 내가 흐르고, 그 물을 먹고 무언가를 키우는 들이 넓은 곳이라 접실이라 불렀다. 산 밑으로 옹기종기 붙어 앉은 집에서 밥안개가 피고 고봉밥 저녁을 나누어 먹고 강아지도 밥을 먹을 때쯤 개밥바라기별이 말갛게 얼굴을 닦으면 마을은 점차 고요해 진다.별은 더 밝게 빛나고 우리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가로등은 하나도 없던 캄캄한 밤, 신작로에 자동차가 달려오면 멀리서 부터 자갈이 바퀴에 밀리는 소리가 방에 누운 내 귀에까지 들렸다. 그 소리는 아스팔트길에서 남후초등학교 앞에서 흙길로 내려 설 때부터 시작된다. 우회전해서 강을 끼고 달리는 소리, 윗동네 무릉에서 우리 동네 어귀로 접어드는 소리. 지금은 삼촌이 돌아가셔서 누군가에게 팔아버린 우리 과수원 사이를 가로지른다. 방앗간 즈음에서 코너를 도느라 속도가 늦춰지고. 그러다 향나무 울타리집 앞에서 빗물이 고였다 패인 턱에 살짝 몸체가 닫는 소리가, 우리 집 앞을 지나서 점빵을 지나 누구네 집쯤에 멈추는 것까지 알 수 있던 내 동네의 밤소리. 그 집에 손님이 오는구나. 외지 나가 출세한 큰아제인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방바닥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으면 멀리 초등학교 앞에서 부터 차바퀴가 내게 달려오는 소리가 자그락자그락 턱! 들렸다.갱년기에 접어든 요즘 깊은 밤에도 얕은 잠뿐인 나는 생각만 깊어졌다.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니 책꽂이에서 오래된 다이어리를 들춰 읽고 그해 그날로 가본다. 읽었던 책을 펼쳐 밑줄 그은 부분에 눈길이 멈추고 왜 이 글귀에 마음이 갔었나 되새김질도 한다.어제는 큰아이 유치원 다니던 시절의 공책을 발견했다. 표지에 웃는 아이 사진이 있고 ‘엄마 아빠 들어주세요.’ 란 제목이 붙었다. 아이와 부모의 대화를 여섯 살짜리 솜씨로 삐뚤빼뚤 적어서 한 달에 한 번씩 원으로 가져가는 숙제장이었다. 할머니는 누가 낳았냐는 물음에 엄마인 나는 할머니의 엄마가 낳았다고 답했다. 아이는 할머니도 엄마가 있구나 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새벽이 훤해질 때까지 2000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문득, 이 공책은 누구의 추억인가. 내 것인가 아들의 것인가. 며칠 추억의 주인을 놓고 마음속 줄다리기를 했다.책꽂이에는 내 6학년의 일이 적힌 새마을일기장도 있다. 언니와 수박을 놓고 다툰 일, 짧은 글로 일기를 때우려고 쓴 시를 보며 ‘6학년의 김순희는 시인이었는 걸’하며 혼자 킬킬거린다. 6학년 이전에 일기장은 모으지 않았으니 사라져버렸지만 전학에 이사에 오랜 세월 버리지 않고 간직한 덕분에 아직 살아있는 추억이다. 큰아이는 저 공책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내 것이라고 결론을 냈다. 추억은 간직한 사람의 몫이니까.옛 시간을 들쳐보는 이 시간 또한 그리운 날이 오겠지. 그 날을 위해 사춘기 오춘기 갱년기를 지나는 소리를 카카오스토리에 기록한다. 내 몸 안에서 나를 향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내 모든 시간이 자그락자그락 세월을 밀어내는 소리에 마이크를 들이댄다.

2018-09-28

잔꾀에 넘어지다

▲ 강길수수필가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스스로 작성하여 보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증거물이, 비수로 변신하여 망막을 통해 심장에 파고들었다. 통증을 느낄 겨를도 없이, 머릿속이 하얀 진공상태가 되었다. 틀린 사실을 알려준 대표에게 변명도, 사과도, 그 무엇도 할 수 없어 그냥 멍하게 있었다. “사과할 일 만들고 말았네….”잠시 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뱉은 말이다.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에둘러 말했을 뿐이다. 눈길이 컴퓨터 모니터로 다시 갔다. 보낸 메일을 열어놓은 화면이다. 찬찬히 뜯어보았다. 분명히 두 군데 틀린 곳이 있다. 두 항목인 단가는 고쳤고, 그 합계 항목은 숫자 두 개 중 하나만 바꾸고 그대로 두었다. 고치다 만 것이다. 따라서 두 단가를 합한 금액이 틀렸다. 한데, 하단의 총합계 금액은 맞게 고쳐져 있다. 또, 머리 부분의 총 견적금액에서 괄호 안 아라비아 숫자는 수정하고, 밖 한글표시 금액은 고치지 않아 그전 금액이 적혀있다. 엉망이다.젊은 날, 취업하자마자 대기업 실험실에서 분석원(分析員)으로 일했다. 실험분석 절차는 간단한 것에서부터, 수십 단계를 거쳐야 되는 것들까지 다양했다. 여러 조작(操作)단계를 거치는 실험분석에서는 하나만 실수를 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는 경우도 가끔 생겼다. 분석자가 자기 실수를 모르고 진행하면, 데이터가 안 나오거나 틀린 것이 나온다. 때문에 실험 시에는 착오나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다. 주어진 일에 집중과 선택이 강요되는 긴장의 세월이었다.진급을 하며 실험데이터를 적용한 보고서나 정기적 통계작성 보고, 불합격품 처리방안 협의, 연구같은 품질관리업무가 주가 되었다. 이때, 피디씨에이 사이클(PDCA Cycle) 곧, 관리 사이클은 업무수행의 금과옥조(金科玉條)였다. 계획(Plan), 실행(Do), 점검(Check), 조처(Action)가 그 것이다. 새 제품이나 공정간 혹은, 출하된 제품에서 발생된 품질문제에 대해 생산 또는 개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결과를 점검하고, 발견된 문제에 대해 조처를 취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이런 일들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점점 실수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그런데, 보낸 한 면의 견적에서 두 군데나 틀렸으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품질관리업무를 떠난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애초 빈 양식을 썼거나, 관리 사이클의 ‘점검’만 제대로 했더라도 이런 실수는 범하지 않았을 터다. 좀 편하게 하려고 다른 곳에 썼던 견적을 모니터에 올리고, 내용만 고치다가 이런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한 달 가까이 지나선지, 아무리 생각을 더듬어 봐도 문서 작성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지 않았다. 보낼 시간에 쫓겼던지, 작업 중 전화 등 급한 일이 생겼었는지, 너무 더운 날씨에 더위를 먹었던지, 아니면, 노화현상이 나타 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원숭이가 제 잔꾀에 넘어간 격이 되었다.구차한 자기합리화를 위한 추론이, 스무고개의 답처럼 차례로 마음에 피어올랐다. ㉠견적작성 중에 급한 일이 생긴다. ㉡작성 중인 견적서를 임시저장 한다. ㉢급한 일을 처리한다. ㉣임시저장된 견적서를 완료된 것으로 착각한다. ㉤견적내용을 확인 않고 메일로 보낸다. ㉥잊는다. ‘그럼, 그랬을 거야. 사람이기에, 오래 안 쓴 관리 사이클을 잊고 지낸 거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은 애써 자기위안을 삼고 있었다. 다행히 견적 낸 일을 맡게 되어, 발주처의 담당자를 만났다. 오류 있는 견적 제출에 대해 사과했다. 담당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사회 시스템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처음 견적을 받았을 때, 잘못된 견적을 다시 내달라고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관청에 공문을 내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한 경험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의 품의(稟議)나 결재제도는, 결함을 없애기 위한 중복점검 성격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잔꾀에 넘어진 견적오류 사건을, 자기정화능력 향상의 계기로 삼아야겠다.

2018-09-21

라면 한 개

▲ 김병래 시조시인·수필가라면 하나에 물을 좀 넉넉하게 붓고, 된장 반 술과 파와 풋고추를 썰어 넣고 끓인 다음, 둘로 나누어 찬밥을 한 술씩 말면 우리 내외 단란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가끔씩 별미로 먹는 소박한 식단이다. 돈으로 치자면 천 원쯤 될 터이니 소위 ‘천 원의 행복’인 셈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가 십억이 넘는다는데 무얼 먹든 굶어죽을 염려는 없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에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배를 채웠으니 식후경, 들판으로 나간다. 더도 덜도 아니게 쾌적한 가을의 볕과 바람, 차츰 황금빛을 띠며 영글어가는 벼들, 높푸른 하늘에 유유히 떠가는 흰 구름처럼 몸과 마음이 더없이 자유롭고 한가하다. 이만큼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돈과 권력, 명예를 움켜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무엇으로도 바꾸고 싶지 않은 평온이요 여유로움이다.재벌들은 벌어놓은 돈벌이에 노심초사할 것이고, 권력자들은 치열한 권력다툼에 혈안일 것이며, 혹자는 자칫 멍에가 되는 명예에 집착하겠지만, 그 어느 것도 갖지를 못했으니 나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소위 갑질을 일삼는 많이 가진 자들과 그 횡포에 기죽고 멍드는 을들도 많지만, 갑을의 논리를 벗어난 병이나 정도 없지는 않은 것이다.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삶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에 이견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 행복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기준과 조건이 다른 것 같다. 행복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욕구가 충족되어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라고 한다. 행복감이란 다분히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말이다. 바라는 기대치가 높을수록 그만큼 도달하기 어려운 것이 행복이고, 반대로 욕구가 아주 소박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인생사 모든 것이 그렇듯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것도 결국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그렇다고 행복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나 조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의식주나 건강에 문제가 없고 가족은 물론 이웃이나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의 기본조건일 것이다. 일견 대수로울 것이 없는 조건인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을 고루 잘 갖춘 사람이 드물 정도로 어려운 조건이기도 하다. 호사다마란 말도 있듯이 세상은 어디에나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다만 악조건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잃지 않는 긍정의 마인드가 행복을 보다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나는 자연인이다’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요즘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대개 사업에 실패하거나 중병에 걸려서 모든 걸 버리고 홀로 산 속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인데, 의식주가 열악한 환경에서도 모두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다. 회생할 수 없도록 실패와 좌절이었던 처지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반전의 삶으로 바뀔 수 있다는 예를 보여주었다.행복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찾는 것이다. 기왕에 있거나 가진 것 중에서도 찾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의 요소다. 무궁무진한 삼라만상이 그렇고, 그 중에 살아있는 내 생명이야 말로 세상 무엇보다 엄청나고 소중한 행복의 요소다. 그것은 최고의 부와 권력을 가진 자가 그 모두를 내놓고도 바꾸거나 연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결국에는 빈손으로 병들고 죽어갈 수밖에 없는, 그 생명을 내가 지금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조건 팔 할은 충족이 된 거라는 생각이다.가뭄과 태풍이 비껴간 들판은 올해도 풍년이다. 보릿고개를 넘어온 세대에게는 황금물결 넘실대는 들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하고 넉넉해진다. 수로에 물옥잠이 자라고 있어서 기대를 했는데, 오늘 드디어 청초한 남청빛 꽃이 피어서 또 한 기쁨을 더한다.

2018-09-14

당신의 첫 번째 책은 무엇인가요?

▲ 김순희수필가책을 처음 자세히 들여다 본 곳은 화장실이었다. 사람보다 바람이 더 자주 드나들 수 있게 문도 따로 없이 입구가 달팽이처럼 생긴 그곳에는 삼촌 고모의 교과서와 참고서들이 있었다. 지금처럼 두루마리 휴지나 사각티슈는 구경도 못하던 시절, 볼일을 보고 난 후 그만한 게 없었다. 한 쪽을 부욱 찢어 비벼주면 쓰기에 좋을만치 부드러워진다.그 이전부터 철지난 책들이 거기 있었겠지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일곱 살 쯤이었다. 처음엔 그림만 보며 책장을 넘겼고,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글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만히 앉아서 아랫배에 힘을 주다가 철사고리에 걸어둔 책을 읽게 되었다. 수학공식이나 과학용어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내가 가장 좋아한 똥닦개는 국어교과서와 국어완전정복이었다.한 권을 그대로 책머리에 구멍을 뚫어 손이 닿는 벽에 매달아 두었는데, 펼쳐진 곳을 읽다보면 재미있어서 정작 볼일이 다 끝난 뒤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화장실을 쉽게 나올 수 없었다. 한 장을 뜯어야 뒤처리를 할 수 있었지만 국가가 엄선한 소설과 수필들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서 나는 뒷간에 오래 머물렀다. 하지만 완전정복에는 어떤 글이든지 전문이 실려있지 않았다. 이야기에 몰입하는가 싶은 찰나에 지문이 끝나버려서 뒷이야기가 무척 궁금했었다.지금이야 ‘네이버’라는 친절한 선생님이 곁에 있어서 원하기만 하면 눈 앞에 펼쳐주지만 그때는 나 혼자 상상해서 나머지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언니나 할아버지가 미리 앞장을 찢어버린 단원은 이야기의 처음이 사라지기도 했다. 내 상상력은 마구마구 꿈틀대며 담장을 넘어갔고 구리구리한 변소냄새도 소설의 클라이막스 덕분에 오히려 구수해지는 시간이 되었다.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세 살 많은 언니는 중학생이 되었다. 그 시절 부모님은 안동에서 떨어진 포항에 살았고, 삼촌과 고모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찾아 도시로 떠나고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모님 대신으로 옷과 학용품을 부족함 없이 사주셨지만 좋은 책을 골라주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 하셨을 것이다. 언니는 나보다 몇 발 앞선 선배역할을 했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춘희’, ‘제인에어’, ‘여자의 일생’ 같은 명작들을 빌려 와서 읽고 어깨너머 곁눈질 하는 내게 순서를 넘겨 주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 읽었다. 언니가 읽은 다음 봐야했고 반납해야 하는 기한이 있는 책이라 읽어내기에 바빴다. 그러다 슬슬 재미가 붙어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났다.6학년 가을쯤이었나, 삼촌이 월급을 탔다며 서울에서 동화책 한 권을 보내왔다. ‘15소년 표류기’였다. 언니가 빌려온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내 또래 아이들이 즐겨 읽는 동화였다. 그 책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책이 아니라 처음 갖는 내책이었으니까. 내 표준전과가 계절이 바뀌면 화장실에 걸리는 운명이 되어도 ‘15소년 표류기’는 오랫동안 책꽃이의 젤 좋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시골아이에게 책은 어떤 것이든 귀한 시절이었다. 삼촌 고모들의 버려진 교과서나 참고서 이외에 내 마음대로 펼쳐 볼 만한 책이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 앞으로 날아온 ‘새농민’ 의 부록 ‘어린이 새농민’을 매달 기다리며 그속에 실려온 오성과 한음 이야기에 푹 빠졌다.나는 그렇게 늘 할아버지 그늘에 있었다.초등학교 입학식에도, 첫 운동회에도 내빈석에 앉아서 달리기 하는 나를 향해 박수 쳐 주시고, 처음 잡지책을 내게 안겨주시며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셨다.지금은 하늘 나라에서 내 인생의 중반부를 응원하며 빙긋이 웃고 계실 것이다. 할아버지는 내 인생이라는 책의 첫 장을 펼쳐 주셨다.

2018-09-07

스펙

▲ 강길수수필가팔월 중순, 들판은 희망이다. 봄에 모내기했던 논에서 초록 벼가 패기 시작한다. 갓 팬 이삭을 살짝 만져본다. 아삭하면서도 보드라운 촉감에 생명과 삶의 비밀이 녹아있다. 우주의 꿈과 벼의 꿈, 농부의 꿈이 하나 되어 손가락에 흘러든다. 먼저 팬 이삭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고향엔 이맘때 한창 논을 맸다. 보리를 베어내고 늦게 모를 심었기 때문이다. 이마에 구슬땀 흘리며 논에 엎드려, 튼실한 벼 포기 사이에 난 잡초를 손으로 뽑아내는 작업이었다. 방학 때 여러 번 논매기를 도운 적이 있다. 까칠한 볏잎 끝이 땀 맺힌 얼굴을 따갑게 찔러대는 것을 요령껏 피하며 잡초 뽑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손 초벌논매기를 마치면 다음부터는 논매는 기계를 썼다. 벼 포기 사이를 두 손으로 기계를 밀며 걸어간다. 이때 도는 두 바퀴 날에 논바닥이 패여 뒤집어지며 잡풀도 뽑히는 쉽고 신기한 작업이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다. 막 고개 숙이기 시작하는 벼이삭에 어떤 기품(氣品)도 함께 서리는 것 같다. 갓 심은 모, 땅내 맡은 푸른 벼, 막 패는 벼이삭에서는 볼 수 없는 격(格)이다. 쪄내는 모의 앳됨도, 심는 모의 간절함도, 땅내 맡은 벼의 싱그러움도, 모두 이삭 되어 고개 숙이기 위함이 아니던가. 고개 숙인 벼이삭의 품격(品格)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볍씨 뿌려 모 키우고, 때 되어 모심고, 부지런히 가꾸는 농사는 결국 벼이삭이 패 올라 영글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농사짓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벼가 잘 자라도록 적기에 물 대고, 잡초 제거하고, 비료 주는 등 도와줄 뿐이다. 볍씨가 싹트고, 자라나고, 열매 맺는 주체는 바로 벼란 사실이다.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면 볍씨에 있는 유전자의 설계내용에 따라, 벼는 싹터 새로운 한 생을 스스로 산다. 벼이삭 모두가 고개 숙여 익었을 때 벼의 품격 즉, ‘스펙(Specification의 줄임말)’은 완성된다. 사람은 이처럼 익어가는 생명현상에 둘러싸여 살기에 그 소중함을 간과하고 마는 게 아닐까.요즈음은 ‘스펙’이란 말이 젊은이들의 취업전선에 바이블처럼 통용되는 시대이리라. 스펙을 쌓아야 경쟁자를 재치고, 내가 뽑힌다는 생각이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해 보인다. 번듯한 직장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은 직장절벽시대다.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사람의 품성, 품위, 인격 등을 운운 하는 것은 잠꼬대이거나 모자란 사람 또는, 꼰대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의 품성이나 인격을 그의 스펙 곧, 학교졸업장이나 자격증, 봉사경력 등으로만 과연 제대로 평가하고 판별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스펙이란 명사의 사전적 뜻은 많지만 규격, 기준, 사양, 명세 등이 산업이나 업무현장에서 주로 쓰인다고 본다. 첫 직장을 실험실에서 시작한 이래 스펙을 참 많이도 다루었다. 필요 검체(檢體)의 품질을 실험하여 그 결과를 스펙과 대조하고 조치를 취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시기를 헤쳐 나가는 동안 원료, 공정, 생산, 출하, 수출품들의 스펙이 올무 되어 마음을 옭아맨 삶을 살아왔다. 생산과 판매와 연구 등에 쓰이는 원료, 제품의 품질을 다루던 스펙이 어찌하여 사람의 격(格)을 따지는 데 쓰이게 된 걸까. 누가, 어디서, 어떻게 스펙이란 말을 사람의 평가 자료로 쓰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을 상품의 질(質)로 보는 마음이 그 안에 스며든 것은 아닐까.익은 벼가 고개 숙이듯, 인력모집에서도 고개숙인사람 곧, 인격자가 뽑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스펙의 보완책으로 이력서, 자기소개서, 면접, 수습기간, 추천제도, 연수 등 다양한 방안들을 강구하는 듯하다. 사람 뽑는 측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도, 현행 방법 이외에 다른 뾰족한 방안이 당장 생각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스펙을 사람 뽑는 큰 잣대로 쓰는 현상에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람의 격 곧, 인격이 원료나 재료, 제품의 질 차원으로 낮추어져 쓰이는 것 같아서다. 딜레마다.어디, 직장이 필요 없는 유토피아는 없을까.

2018-08-31

좌편향 시대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기독교 성서에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갈 때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옷을 벗어 길바닥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열렬히 환호했다. 그러나 초라한 죄수가 되어 빌라도 총독 앞에 끌려나온 예수의 모습을 본 군중들은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라고 소리쳤다. 로마의 속국이 되어 도탄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바뀐 까닭이었다.군중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기대를 저버린 예수가 메시아인 척 속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빌라도 총독도 놓아주고자 했듯이 예수에게는 사실 아무런 죄도 거짓도 없었다. 유대교 랍비와 제사장들이 씌운 죄명은 신성모독과 혹세무민이었지만 군중들이 반대를 하지 않았으면 빌라도는 주저 없이 예수를 석방했을 것이다. 결국 군중들의 오해와 편견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것이었다.군중이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기 보다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이기 쉽다. 그런 민중은 곧잘 정치나 이념의 선동에 휩쓸려 폭력과 광기의 집단이 되기도 한다. 히틀러의 나치스가 그랬고 스탈린의 볼셰비키가 그랬다. 희대의 독재자들은 바로 그런 군중의 힘을 동원해서 자신의 야욕을 채우고 독재체제를 공고히 했다. 물론 군중의 힘으로 불의를 타도하고 자유를 쟁취한 역사가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광기와 증오로 살육과 숙청을 자행한 역사가 더 많았다. 특히나 한반도 북쪽의 김일성은 자신의 독재체제를 위해 날조된 선전선동과 악랄한 숙청에 이어 철저한 세뇌로 인민을 모두 꼭두각시로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3대 세습에 걸친 폭정과 우상화 사기에도 대다수 인민들은 감히 의구심을 갖거나 저항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우리 민족에게도 의로운 민중 봉기의 역사가 있었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이 그랬고 기미년 3·1운동이 그랬다. 비록 실패와 좌절로 끝났지만 그 뜻과 정신의 맥은 끊이지 않았다. 그 후로도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민중 시위와 봉기가 있었지만 그 공과에 대해서는 좌우의 평가가 현격하게 엇갈리는 실정이다.오늘날은 매스컴의 발달로 민중을 선동하고 민의를 결집하는 일이 아주 손쉬워졌다. 무슨 정보든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는 모바일 정보화 시대에는 군중의 영향력을 무시하고는 경제도 정치도 설 자리가 없다. 누구든지 군중을 설득하고 선동할 능력만 있으면 상당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우파정권의 실정으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간 군중은 그 여세로 좌파정권을 탄생시켰다. 국민의 대다수가 좌측으로 쏠린 현상 앞에서 누구도 섣불리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론을 펼 여지가 없었다. 고공의 지지율을 업고 좌파들의 전횡이 불거지기 시작했지만 그 서슬 퍼런 위세에 언론도 공권력도 한통속이 되거나 알아서 기는 경향이 뚜렷한 현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동안 쌓아온 자유와 민주에 대한 내공이 가볍지만은 않은 나라다. 좌로 쏠린 민심과 정권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국가는 배와 같아서 무게중심이 한쪽으로만 쏠려서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좌편향 민심의 상당수를 우로 돌려놓아야 한다. 좌파정권을 견제할 건강한 우파세력의 결집과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무엇보다 좌우가 극명하게 대립하는 것은 대북정책이다. 북의 정권은 철저한 일인독재체제다. 모든 결정권이 절대존엄이라는 김정은의 손에 달렸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보장하는 체제유지 뿐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몰리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하거나 개혁개방을 할 까닭이 김정은에게는 없는 것이다. 통일의 최우선 목표는 억압받고 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을 김일성 일족의 마수에서 해방시키는 데 두어야 한다. 대화든 협상이든 그 원칙을 벗어난 것은 모두 반역이고 사기극일 뿐이다.

2018-08-24

건넌들

▲ 김순희 수필가건넌들은 소나기가 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았다. 맑기만 하던 하늘이 산모퉁이를 돌자 비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강 건너 들에서부터 비릿한 비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소나기는 내가 건너기 어려운 강도 순식간에 건너더니 늘 나보다 한 발짝 앞서 우리 집까지 와버리곤 했다. 바쁜 소나기도 강을 건너야만 마을로 올 수 있기에 들 이름이 건넌들이었다. 건넌들 앞의 강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집 앞에 작은 강이 흘렀고 그 물을 따라 30분 정도만 떠내려가면 큰 강에 이르렀다. 가락국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란 뜻인 낙동강이 안동에서 합쳐져서 큰 물이 되어 내가 살던 동네를 지나갔다. 지나면서 만나는 지류들을 한 몸으로 받아들여 몸집을 불렸다.지류라고 해도 강은 강이었다. 한번씩 물이 질 때마다 흐름이 달라지고 흐름에 못 이겨 제방이 깎여 나갔다. 그 강을 우리는 ‘큰물’이라 했다. 큰물이 휘감아 도는 자리는 특히 깊어 내 키를 넘었다. 물의 흐름이 느렸고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바닥이 보였다. 하지만 가장 깊은 곳은 푸른빛이 더 짙어 속을 드러내지 않아 정확한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큰큰물’이라 부르던 그곳에는 용기 있는 동네 오빠들이 들어갈 뿐이었다.해가 긴 여름은 점심 먹은 배가 다 꺼지도록, 햇살에 살갗이 홀랑 벗겨질 때까지 강에서 나오지 않았다. 튜브 같은 것은 구경도 못한 시골 가시내들은 빈 플라스틱 기름통을 의지해 헤엄을 쳤다. 수영이라는 과목은 들어보지도 못한 탓에 언니들이 하는 모양을 어깨너머로 따라하며 자랐다.물장구 겨우 치던 여름, 물에 빠져 한껏 물을 먹은 후 한동안 물가에 가는 일이 줄었다. 하지만 오래참지 못했다. 여름 내내 친구들은 큰물에서만 놀았기 때문이다. 헤엄치기가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하얀 차돌을 던져서 찾아오는 놀이를 즐겼다. 너무 깊지 않고, 조막만한 차돌을 던져 넣으면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곳에서 놀이를 했다. 서로 겁쟁이가 아니라는 듯 차례가 되면 물속으로 들어가 숨을 참으며 하얀 돌을 찾아 나왔다. 좀 더 깊은 곳으로 던져 넣으며 우리는 마음의 키를 키웠다.물놀이하기에 조금 스산해지는 아침이 오면 여름방학이 끝나간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배추씨를 뿌려야 한다는 뜻이다. 만날 노는 게 일인 조막만한 손을 가진 손녀였지만 씨 뿌리는 시기엔 할 일이 따로 있는 농촌이었다.할아버지는 건넌들에다 정성으로 배추 농사를 지었다. 그곳은 거름을 넣지 않아도 농사가 잘되는 찰진 밭이었다. 비가 내릴 적마다 큰물은 누런 황톳물이 넘쳐흘렀다.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가지만 황토는 건넌들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가기에 강물이 거름을 넣어주는 역할을 했다.배추씨를 뿌리는 날, 북을 돋아서 만든 밭고랑을 큰 흙덩이가 없도록 할머니가 잘 다듬었다. 그 뒤를 적당한 간격의 걸음으로 꾹꾹 발자국을 내며 지나갔다. 뒤축에 힘을 주어서 걸어야 했다. 적당한 깊이와 간격을 맞춰야 하기에 이 일은 할아버지가 하셨다. 힘을 주며 디딜 때마다 세로로 갈라진 틈새가 더 벌어졌다. 거기에 흙이 들어가 골이 더 선명해졌다. 마치 오래 쓴 막도장에 붉은인주가 베 있듯 할아버지가 걸어 온 시간들이 스며있는 듯했다.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자 늘 내게 주어질 것 같던 여름방학이 사라졌다. 여름방학이 사라지며 함께 가져간 것은 배추씨를 뿌리기 위해 뒤따라가며 뚫어져라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뒤꿈치이다. 뒤꿈치가 하나뿐인 할아버지도 사라져버렸다.내게 강에 대한 추억을 가득 안겨주고 개구리헤엄이라도 가르쳐준 것은 큰물이다. 큰물과 큰큰물이 모여 큰 강이 되었다. 들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맑게 흘러가는 넉넉한 강이 되었다. 나와 할아버지의 추억이 담겨 있어서 더 큰 낙동강이 되어 흘러갔다. 건넌들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흘렀다.

2018-08-17

목자 없는 양들

▲ 강길수 수필가얼마 전 성당 미사 때 들은 복음(福音)에서,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란 구절이 저절로 마음에 와 닿았다. 돌아오며 왜 그 말이 가슴에 파고들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현 우리 국가사회의 모습이 그와 닮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기후변화나 국제정치상황을 볼 때, 지구촌도 예외는 아니다 싶었다. 진정한 목자가 없는 시대를 우리는, 지구촌은 살고 있다는 추론이 마음을 자욱한 안개 속으로 밀쳐댔다. 예수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많은 군중을 보고 ‘목자 없는 양들’ 같이 가엾은 마음이 들었단다. 하여, 많은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주고 끼니때가 되자, 유명한 오병이어(五餠二漁) 표징(表徵)을 베풀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양들이란 산양같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양이 아니라, 목자의 보호아래 길러지는 양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시의 목축은 오늘날처럼 기업의 형태가 아니라, 가업(家業)의 형태였음을 성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가업이란 가족의 생업이며, 생업은 가족의 생사가 걸린 일이다.목축생업에서 ‘목자 없는 양들’이 처한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목자 곧, 양치기가 없는 양들은 우선, 위험에 노출된다. 보호자가 없으니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음으로, 어디로 가야 먹을 풀밭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길들여진 양들은 먼 곳에 있는 풀을 스스로 알아낼 수 없을 터다. 끝으로, 구심점을 잃어 자중지란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늘 풀밭을 안내하고 보호해 주던 목자가 없으니, 양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다.자연환경이 척박한 예수 시대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어쩌면 목숨을 걸고 양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야생의 포식동물로부터 양들을 지켜야 하며, 양들이 먹을 물도 찾아야 하고, 무엇보다 양들이 뜯어먹을 풀밭을 알고 있어야 했으리라. 또 풀과 물을 찾아 많은 양들을 데리고, 광야를 떠돌아다녀야 하는 유목민 삶을 견디고 이겨내야 했을 것이다. 유목민에 있어 가축은 바로 가족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기에 목자의 역할이 크고 중요한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오늘날의 국가도 속을 들여다보면, 유목민의 목자와 양들 관계와 다를 바 없다고 본다. 현대 선거제도하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목자들은 누구일까. 넓게 보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뿐 아니라, 언론기관도 포함되어야 한다. 나라일꾼을 뽑는 여러 선거에서 여론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좁게 본다면, 당연히 정부가 목자에 해당되리라.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이 국민의 자유, 권리, 의무, 재산 등 삶의 질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생명까지 좌우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목자에 해당하는 기관종사자들이 가져야할 기본 마음은 무엇일까. 바로 ‘목자의 마음’이리라. 끊임없이 양들을 돌보며 지키는 마음, 살아낼 물과 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마음, 앞날을 위해 때로는 양들이 따르기 힘든 길도 마다 않고 이끌어가는 굳센 마음 등일 것이다.지난봄의 남북정상회담, 유월의 미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는 많은 국민들은 국가안보가 불안하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진전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양떼 곧 국민의 시각으로 볼 때, 북한정권이 진정 겨레와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다면 비핵화를 못할 이유와 명분이 그 어디에도 없다. 동족의 머리위에 가공할 핵무기와 화학무기, 생물학무기를 얹어놓은 상태로 북한정권이 종전선언 등 평화체제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요, 어불성설이 아니겠는가. 때문에 그 뒤에 숨은 목적이 6·25남침 때와 같이, 한국의 적화통일에 있다고 보는 것은 나라를 위한 지당한 시각이다.

2018-08-10

여름밤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에는 열대야라는 말도 몰랐다. 여름이 더운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날씨에 따라 더 덥거나 덜 더울 수도 있지만 일일이 온도를 재고 이름을 붙일 생각 따위를 하지 않았다.종일 땡볕 아래 들일을 하고 돌아와서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감자와 애호박을 썰어 넣은 칼국수나 수제비가 주로 먹는 석식이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우선 모깃불을 피워서 여름밤의 무법자들을 막을 일차 방어선을 친다. 그 방어선을 통과한 적들은 부채질로 쫓는다. 기름 먹인 종이를 붙인 태극선 하나면 여름밤의 더위와 모기를 물리치는데 그다지 아쉬움이 없었다.옛날의 여름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계절이었다. 밤마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쳐다보는 밤하늘은 쏟아질 듯 별들이 많고 가까웠다. 세상의 반은 하늘이고 하늘의 별과 달과 은하수는 땅 위의 산과 들과 바다처럼 가까운 것이었다. 달 밝은 밤의 풍경도 그윽하지만 그믐밤에는 반딧불이 불빛이 더 영롱하고 초가지붕 위의 박꽃도 더 새하얗게 보였다.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은 밤마다 들판으로 나간다. 들판 한가운데로 나가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서 부채질을 하며 두어 시간 여름밤을 보낸다. 후텁지근한 열대야에도 들판으로 나오면 그다지 더운 줄을 모른다. 사방이 탁 틔어 어디선가는 산들바람이 불어오거나 낮의 열기가 식으면서 차츰 선선한 기운이 돌기 마련이다. 들판 가운데로 나가는 또 다른 이유는 벼논에 수시로 치는 농약 때문에 모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들판에 누워 밤하늘의 별과 달을 쳐다보면 나는 우주인이 된다. 그까짓 장난감 같은 우주선을 타고 고작 달에나 가는 우주인이 아니라 지구라는 행성을 타고 무한천공을 떠가는 우주적 존재가 된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산다. 눈앞의 세상사에만 코를 박고 온갖 번뇌와 망상에 사로잡혀 무궁무진한 우주의 일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세상 어느 하나 우주 아닌 것이 없고 내가 바로 무궁무진하고 불가사의한 우주의 일부임을 안다면, 그까짓 덧없는 세상사로 쉽사리 절망하고 포기하거나 헐뜯고 싸울 일이 없지 않겠는가. 갈수록 끔찍해지는 온갖 사건사고, 세계 최상위라는 자살률, 난무하는 비방과 적개심과 분쟁과 시위의 현상들, 갑질이라 일컫는 가진 자들의 가히 엽기적인 횡포…. 우주적 존재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군상의 모습들이다.우리의 태양계가 속해있는 은하계에만도 천억 개의 항성이 있고, 그 은하계와 같은 우주가 다시 수천억 개가 있고…. 그 밖에는 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게 우주다. 그런 우주의 일부고 본질인 내가 지금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뿐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말아야 군자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내가 우주적 존재라는 사실에 추호의 의혹이나 망설임이 없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말든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고 엄연한 사실이니까.오늘 밤에는 아예 텐트와 막걸리 병을 들고 들판으로 나왔다. 옛날에는 밤새워 물꼬를 지키거나 미꾸라지 통발을 놓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요즘은 밤중에 들판에 나오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다. 수백만 평 너른 들판을 독차지한 기분을 누가 또 알란가. 오이와 풋고추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거나해진 기분에 수천만 벼 포기들을 관중삼아 리사이틀을 벌인다. 동요메들리에서 가곡을 거쳐 뽕짝으로…. 그야말로 독무대다.박수갈채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유하는 소리도 없으니, 이 들판의 벼들이 내 노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고 간주한다. 그런즉 내 노래의 흥겨운 기를 받은 이 들판의 쌀은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기능성 식품으로 특허를 내도 좋으리라. 후텁지근한 열대야를 흥겨움 열(十) 대야로 바꾸는 이 노하우도 함께.

2018-08-03

39번

▲ 김순희수필가이상한 처방전을 받았다. 발목이 아파 걷지도 못하겠다는 나에게 한의사는 지금 생각나는 사람의 이름을 발로 써보라고 했다. 통증을 참으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보이자, 침도 맞지 못할 정도로 기가 약하니 입에 맞는 음식 먹고 틈 날 때마다 발목에 힘을 주어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하루에 스무 번씩 쓰라는 숙제를 내 줬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한의원을 나오며 소개했던 친구에게 약도 안 지어주니 돌팔이 같다며 다녀온 이야기를 떠벌리자, 남편 이름 열심히 쓰면서 몸을 보하라며 웃었다. 남편 가족끼리 손도 잡는 거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무슨 소리하냐고 눈을 흘겼다. 내가 쓴 세 글자는 남편도 아들 이름도 아닌 다른 남자라고 하니 친구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해졌다. 바람난 여자 보듯 말이다. 하루에 몇 번씩 되뇌려면 좋아하는 걸 넘어선 ‘사랑’이어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뛰는 사람,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해지는 사람이라야 ‘애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내겐 그런 남자가 있다. 그이의 이름을 오늘만도 수십 번 발을 들어 허공에 긁적거렸다. 즐거운 숙제다.나는 몰래 이 남자를 지켜본다. 이 사람은 훔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도루를 하기 위해 1루 베이스에서 두세 걸음 떨어져 마운드의 투수를 노려보는 등번호 39번의 눈빛은 매력적이다. 투구 폼을 먼저 읽고 뛸 타이밍을 노리느라 가끔 눈에서 불꽃이 떨어질 듯하다. 2루 베이스를 점령하기 위한 그의 발놀림은 마치 투우사에게 달려가기 전 성난 황소의 그것이다. 견제구가 날아 올 때마다 슬라이딩을 한다. 1회 말 공격이 끝날 때쯤이면 그의 유니폼은 흙투성이가 된다.이 선수가 가장 빛날 때는 수비할 때이다. 외야수 중에서도 가장 수비 범위가 넓은 중견수가 그의 포지션이다. 딱! 배트에 정확히 공이 맞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달리기 시작해서 있는 힘껏 몸을 날려 글러브와 함께 잔디위로 미끄러진다. 슈퍼세이브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수비라고 캐스터가 목소리를 높인다. 몸을 사리지 않는 탓에 부상이 잦다. 몇 해 전에 동료선수와 부딪혀 턱이 부러져 수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허슬 플레이는 멈추지 않는다.늘 달리는 이종욱 선수라 팬클럽 이름도 ‘런투유’이다. 팬클럽에 가입해서 응원을 하고, 길가다 39번 거리라는 표지판을 발견해도 인증샷을 찍는다.서울에서 팬미팅이 열렸다. 몇 천 명 회원 모두가 참석할 수는 없고 등급이 높아야만 했다. 운 좋게 나도 스태프에게서 초대를 받았다. 화면으로만 보던 선수를 같은 공간에서 본다는 기쁨에 시댁 김장하는 날임에도 교육 간다는 핑계를 대고 팬미팅에 갔다. 만나면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막상 눈앞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떨려서인지 앞에 놓인 음식도 넘어가지 않고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39번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휴대폰으로 투샷을 찍으리라 마음먹었지만 집에 돌아올 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진 한 장도 못 찍고 나왔다는 걸 알았다.올해는 특히 이 선수에게 중요한 해이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더 이상 경기장에서 그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 자신의 등번호와 같은 나이인 서른아홉이라는 숫자와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소중한 시간이다. 어제 경기, 3점 뒤진 채 9회 말 만루 찬스에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전 타석까지 병살에 땅볼에 역전찬스를 날려버린 그였기에 투수는 앞 타자를 포볼로 거르고 이종욱과 승부를 내기로 한 것이다. 보는 사람도 떨리는 순간이었다. 딱! 맞는 순간 만루 홈런이었다. 그가 한 손을 들고 경기장을 돌 때 나도 같이 뛰어 올랐다. 아프던 발목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열심히 쓴 덕분이다.사랑의 힘이다.

2018-07-27

지형지물

▲ 강길수수필가“1조, 공격 앞으로!”보도블록 위를 걷는데, 왜 이 말이 불현듯 생각났을까. 숱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잊지 않고 있다니…. 그랬어. 저 작은 무리가 내 기억창고를 클릭하여 불러낸거야. 뒤따라 그 옛날, 군에서 훈련을 받던 때의 한 장면이 마음스크린에 비추어진다.내 눈은 보도(步道)가장자리 보도블록 위에 멈추었다. 작은 애집개미들이 집을 파고 있다. 모두가 바지런하다. 가까이 다가가 작업광경을 살핀다. 어떤 개미는 제 몸보다 무거워 보이는 모래알을 물고 나온다. ‘내가 개미라면 아마 100 킬로그램이 넘는 돌을 운반해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이 작은 존재가 나보다 위대해보이기도 한다. 한데, 이 개미들은 왜 하필 보도블록 밑에 집을 만들까. 모래 나를 때나 먹이 구하러 다닐 때,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을 위험성을 모르는가. 일어서서 개미집들의 분포를 다시 살핀다. 개미들은 위험성을 감지하는 듯도 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개미집짓기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을 피해 가장자리 보도블록 밑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눈길 따라 생각도 이어간다. 그래. 본능일거야. 개미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의 위험성을 천부적으로 느끼고 알기에, 발길이 잘 닫지 않는 곳에 집터를 잡은 거다. 보도블록은 돌처럼 단단해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에 안성맞춤이고, 그 사이는 출입구내기가 쉽다. 또, 밑이 모래여서 파내기도 좋다. 그러니 이 작은 개미들도 지능을 가진 게야. 어쩌면 인간이 ‘본능’이라고 치부하는 생명체들의 유전자엔 설계자의 지능이 숨어있는 게 아닐까. 길어야 몸이 3밀리미터 미만으로 보이는 애집개미들. 맞아. 이 작은 존재들은 본능이든, 지능이든 제 능력으로 보도블록이란 멋진 ‘지형지물(地形地物)’을 집짓기에 이용하고 있는 거다. 따져보면 어릴 때 자연에 뛰놀면서 많이 보았던 곤충, 새, 동물의 집들도 다 지형지물을 이용토록 마련된 자연의 섭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먹고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그 어떤 생명체든, 먹이를 구하고 살 곳을 마련해야 하는 틀 속에 있다. 우리 생태계의 이 엄연한 진실이, 개미들이 집을 지으며 만들어지는 조그마한 모래둔덕 너머로 시신경을 자극하며 가슴 속을 후벼 판다. ‘내가, 우리 국가사회가, 나아가 인간사회가 이 애집개미들보다 나을 게 뭔가’ 하는 물음이 하늬바람으로 마음에 불어오기 시작했다. 군대시절 훈련을 받을 때,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은폐, 엄폐를 잘 해야 전쟁터에서 살아남는다!’고 귀가 따갑도록 교관과 조교들로부터 사전에 들었다. 하지만 막상 공격훈련을 시작하면, 머리로 아는 것보다 몸으로 부딪치는 고통회피행동이 더 우선된다는 사실에 맞닥뜨리던 때의 헷갈리던 감정도 되살아난다. 한데, 이 작은 개미들이 지형지물을 주저 없이 잘도 이용하고 있다니…. 지형지물은 말 그대로 땅의 모양과 물체들을 말한다. 군에서는 유형물 곧 언덕, 구렁, 바위, 나무 같은 자연물과 건물, 구조물 등 인조물도 지형지물에 포함된다고 배웠다. 인간생존에 필요한 지형지물은 유형물은 물론, 무형물도 많다고 본다. 국가사회의 규범, 법규, 국가 간의 조약, 협정 같은 것들이다. 고로, 지형지물 이용은 군대뿐 아니라 국가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그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일이 된다.우리 사회는 남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있는 지형지물에 대한 갈등이 있어 보인다. 한미동맹을 유지 발전시켜야만 자유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는 주장과, 그보다 우리민족끼리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이다. 지형지물이용이란 시각에서 보면, 우리사회는 지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헌법, 교육정책,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국가사회의 중요한 지형지물은 그 명운을 가름할 근본이기에 섣불리 손대어서는 안 된다. 애집개미가 보도블록을 지형지물로 삼아 그 밑에 안전하게 살 집을 짓듯, 우리 사회공동체도 유용한 지형지물을 함께 지키고, 개선하며, 쓰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2018-07-20

연못가에서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자주 산책을 하는 마을 앞에 연못이 하나 있다. 먼 옛날 이곳이 미질부성이었을 때 생활용수를 공급하던 저수지였다고 한다. 오래 방치해서 거의 메워지다시피 한 것을 십여 년 전에 다시 준설하고 주변을 단장해서 주민들이 많이 찾는 휴식공간이 되었다. 몇 해 전부터 빈 못에 연잎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누가 일부러 심은 것은 아니라는데 해마다 뿌리를 벋고 씨를 퍼뜨려서 지금은 천여 평의 못이 온통 연잎으로 뒤덮여 명실 공히 연못이 되었다. 새로 생긴 연못에는 잎보다 꽃이 더 많을 정도로 개화가 왕성해서 여름 한 철 장관을 이룬다.지난해의 죽은 잎줄기가 거의 다 삭아 내린 유월 중순경에 새 연잎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먼저 수련처럼 작고 갈색을 띤 잎을 수면에 납작 붙게 띄우고 이어서 잎줄기를 길게 뽑아 올려 너울너울 연잎을 피운다. 연잎이 물 위로 올라올 때는 길쭉하게 양쪽에서 돌돌 말려 있어 마치 무슨 사연이 적힌 두루마리 같다. 못 바닥 진흙 속에 무슨 간절한 사정 있어서 무수히 상소문 두루마리를 밀어 올려 연못 가득 펼치는 것일까. 그 상소가 마침내 상통이 되어서 환하게 웃음꽃이 피는 것이고.여름 연못에는 날마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열린다. 흔히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모습을 일컫어 야단법석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야외에 설치된 설법의 자리’라는 불가의 용어였다. 활짝 핀 연꽃은 연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을 연상케 하고 넓고 둥근 연잎은 초록 양산 같다. 그런 상상을 일으키는 것은 그 모습보다도 여인들의 분 냄새 같은 연향(蓮香) 때문이다. ‘칠월의 연못에 야단법석 열렸다/ 연분홍 치마저고리 초록 양산 운집했다/ 부처님, 아직 안 오시고/ 분 냄새만 분분하다’- 拙詩 칠월 연못. 하지만 끝내 부처님은 오지 않을 것이다. 쨍쨍한 햇볕 아래 펼쳐진 장관이 곧 화엄(華嚴)이고 법열(法悅)일진데 구태여 설법이 따로 필요하진 않을 테니까.비 오는 날에도 즐겨 연못을 찾는다. 우산을 받고 서서 하염없이 비 맞는 연못을 바라보는 동안은 세상의 시름을 잊게 된다. 넓고 푸른 연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난타의 공연을 연상케 하고, 방울방울 구르는 빗방울을 하얗게 모았다가 슬쩍 기울여서 쏟아내는 연잎은 바라춤 춤사위를 떠올리게 한다.‘넓고 푸른 연잎이 하나도 젖지 않고/ 방울방울 빗방울을 모았다가 무거워지면/ 슬쩍 기울여서 쏟아버리곤 하는 동작은,/ 잎을 두드리는 빗물의 난타에 맞추어 추는/ 바라춤 춤사위였다, 비오는 연못은/ 온갖 번뇌 씻어내는 한바탕 씻김굿이다// 나는 나는 갈 테야, 연못으로 갈 테야/ 세상 번뇌 씻으러/ 연못으로 갈 테야’ - 拙詩 ‘연못으로 갈테야’ 중에서연못가에는 몇 그루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있다. 경치도 좋지만 여름내 시원한 그늘을 지어서 더위를 식혀준다. 실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능수버들인데 수령은 아마도 내 나이와 비슷할 것 같다. 왕잠자리를 잡으려고 발갛게 익은 얼굴로 이 연못가를 맴돌던 어린 시절엔 큰 버드나무가 없었다. 어린 버드나무가 무성하고 늠름한 고목으로 자라는 동안 못가에서 잠자리를 잡던 소년은 초로의 늙은이가 되었다.버드나무가 주는 것은 멋진 경치와 그늘뿐만이 아니다. 까치가 보금자리를 틀고 뻐꾸기가 와서 울기도 한다. 짝을 부르는 뻐꾸기소리는 초여름의 신록을 한층 더 싱그럽고 그윽하게 한다. 뻐꾸기소리가 그친 칠월 초부터는 매미소리가 배턴을 받아 버드나무 그늘을 청량하게 한다. 매미소리가 없다면 여름 풍경은 마치 무성영화처럼 답답하고 더 무더울 것이다.사람도 나이를 먹을수록 그늘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아름드리나무의 그늘처럼 연륜을 더한 만큼 넉넉해진 품으로 남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다면 한결 편안하고 든든한 세상이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이 세상에 드리운 그늘은 과연 몇 평이나 될까.

2018-07-13

꽃땡시

▲ 김순희 수필가꽃과 행복은 동의어다. 며칠 전, 남편 차를 타려고 조수석 문을 여니 장미꽃다발이 떡하니 앉아 있다. 향긋한 행복의 냄새가 차 안 가득하다. 먹지도 못 하는 데 왜 좋아하느냐고 투덜거리지만 기념일마다 꽃을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을 준다. 차를 타고 국도를 달린다. 차창으로 내다뵈는 푸른 능선이 곱다. 잎이 나기 전까지 산에 서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어설픈 내 눈은 분간을 못 한다. 볼 줄 모르는 수묵화처럼 검은 것은 그냥 나무로 보일 뿐이다. 잎이 무성해진 여름에도 구분 못 하기는 마찬가지다.하지만 멀리서도 나무 이름이 단번에 튀어 나오는 시기가 있다. 꽃이 필 때이다. 조물주가 계절이란 마이크로 신호를 주면 산은 일제히 멋진 카드섹션을 벌인다. 멀리서도 달콤한 향기가 풍기면 아카시아 꽃이 핀 게 분명하다. 아마 저 하얀 골짜기마다 벌들이 붕붕 대는 소리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 바톤을 이팝꽃이 이어받아 고슬고슬한 고봉밥을 지어올린 다음, 먼 산엔 비릿한 냄새의 밤꽃이 한자리 차지한다. 그럴 때야 저 밤골에 늦가을 즈음 밤 주우러 가면 대박이겠구나 싶어 마음이 설레지만 꽃이 지고나면 어디쯤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는 푸른 숲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꽃은 사람을 당기는 힘이 있다. 그래서 봄부터 겨울까지 전국에서 꽃 축제를 연다. 튤립 축제에 가면 정원 가득 향기가 난다. 튤립은 별달리 향기가 없는데 말이다. 꽃밭 디자이너가 아름다운 꽃을 보면 당연히 향기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관람객을 위해 튤립 사이에 향내 진한 히아신스를 심어 두었다. 그것이 어느 꽃의 향인지 따지는 사람은 없다. 그저 기념사진을 남길 뿐이다. 소확행을 주는 꽃 지도를 그려보았다.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에 나와 있겠지만 나만의 방법이 더 있다. ‘꽃땡시’, 꽃이 땡기는 시간에 찾아가려고 매년 기록을 추가하며 즐긴다. 올 해 새로 발견한 꽃길이 있다. 5월 중순경에 도음산 산책로를 오르면 오솔길에 별이 가득 떨어져있다. 때죽나무 군락지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내내 하얀 별꽃이 길안내를 담당한다. 산바람이 불면 꽃잎에서 샤라랑 소리가 나는 듯하다. 찔레꽃이 옆에서 향기를 더해 걷는 이의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6월엔 접시꽃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때 보슬비가 오면 금상첨화이다. 경주 첨성대를 원경으로 넣어 찍으면 무조건 인생사진을 얻게 된다. 접시꽃을 접수 했다면 이젠 수국이다. 6월 말부터 7월 초순까지가 수국의 시간이다. 태종대에 자리 잡은 태종사는 절 부근에 온통 수국을 심어 비 오는 날 가면 물빛 머금은 우아한 자태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여름은 배롱나무의 계절이기도 하다. 석 달 열흘 동안 붉게 핀다고 나무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떠도는 이야기로는 선비들이 ‘백일홍 나무’를 아껴 뜰에 심어 놓고 즐겨 보았고, 그 걸 지켜본 머슴들의 귀에 백일홍이 ‘배롱배롱’으로 들려 그리 불렀다고 한다. 나무 백일홍도 멋진 이름이지만 배롱나무라는 이름이 더 정겹다.구룡포 해봉사, 죽장 입암서원, 초곡 칠인정, 덕동마을 용계정이 포항에서 배롱나무꽃을 가장 예쁘게 피우는 곳들이다. 멀리 갈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여름방학을 이용해 안동 병산서원으로 달려가 봐도 좋다. 장판각 앞에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백일홍이 책처럼 펼쳐진다. 대청에서 내다뵈는 풍경 한 폭을 읽노라면 선인들이 즐겼던 여유라는 명제가 나를 깨우친다. 더 멀리 눈을 돌리자. 담양에 자리한 명옥헌은 배롱나무가 정자를 둘러싸고 있어 두 개의 연못에 비친 그림자도 온통 배롱나무뿐이다. 물에 떨어진 꽃잎은 빨간 양탄자가 되어 일렁거린다. 스마트폰을 들고 탄성을 지르며 몇 시간씩 셀카 삼매경에 빠지고 만다. 담양은 가로수도 백일홍이라 한여름에 가면 몸도 마음도 붉게 물들어 돌아오게 된다.비의 계절이다. 여름 꽃이 땡기는 시간이다. 떠나자!

2018-07-06

잘려버린 꿈

▲ 강길수수필가마리안나의 소박한 꿈이 댕강 잘려나가 버렸다. 오늘 동행하지 않은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함께 왔더라면 그녀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내년 봄 우리 텃밭에서 이루려던 꿈이, 누군가에게 참수 당해버렸으니 말이다.등산가는 길가, 아파트 단지가 생기며 새로 쌓은 높은 담장 아래 틈. 그 틈바구니에 어떤 연으로 보리 한그루가 살고 있었다. 관심 없이 지나다녀 보리가 패기 전에는 그 곳에 보리가 자라는지 몰랐다.사월 중순 오랜만의 부부 주말등산길…. 튼튼한 보릿대 하나가 갓 빚어내어 탐스레 팬 초록보리이삭을 처음 만났다. 그 앙증스런 모습에, 아내 마리안나는 곧바로 새 보리이삭 꿈을 꾸었다.“보리이삭 익으면, 가져 가 내년에 우리 텃밭에 심어야지!”그녀의 꿈이, 갓 세상에 태어난 보리이삭의 싱싱한 꿈이기도 할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며칠 흐른 날, 일찍 퇴근한 김에 오후등산길에 올랐다. 지난 주말 아내와 보았던 보리이삭에 저절로 눈이 갔다. 이게 웬 일인가. 보릿대는 윗몸 절반이 사라지고 없었다. 눈 씻고 다시 봐도 없다. 실망감이 큰 파도로 밀려왔다. 누군가 일부러 잘라 간 게 분명해 보였다. 이삭만 없다면 아이들이 장난으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보릿대도 함께 잘렸으니 누군가 꽃꽂이재료라도 쓰려고 가져 간 것이라 싶었다.보리이삭을 자른 이는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을까. 대보 구만리라도 가야 만날 수 있을 보리이삭을, 도심 담장아래서 발견했으니 말이다. 꽃꽂이재료로 쓰였다면, 보리이삭의 마음은 어땠을까. 어느 집이나 다른 어떤 공간에서 꽃들과 어우러져, 폭력에 몸이 잘린 고통도 잊고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데 보람을 느낄까. 아니면 사람들은 먹고 사는 일도 아닌데다, 너무 많은 생명들을 희생시키는 이상한 동물이라고 원망할까.일주 정도 지난 후, 보리그루는 다시 나를 놀라게 하였다. 어리던 다른 두 개의 보릿대가 웃자라, 푸른 보리이삭이 또 패있는 게 아닌가. 하나는 제법 튼실했고, 다른 하나는 가냘팠다. 불과 열흘도 안 되는 기간에 남은 보릿대 두 개를 열심히 키워낸 보리그루…. 그 힘과 열성이 어디서 나왔을까. 처음 갓 팬 보리이삭 한 개가 잘려버리자, 보리는 얼른 두 개의 이삭을 더 키워낸 것이다. 생명체는 자기가 어디에 있든 환경에 묵묵히 적응하며 굳세게 살아낸다는 사실을, 이 보리그루 역시 팩트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오월이 되었다. 사람에 의해 요절한 형을 대신한 아우이삭 둘은 잘 자라났다. 하지만 아우이삭들도 보기 좋아지자 어떤 사람에게 형 따라 희생되고 말았다. 허전한 내 마음은 신록가지사이로 떠가는 조각구름이 되었다. 구름위로 수년전, 등산로 산기슭에 처음 피어났던 참나리꽃의 일도 떠올랐다. 칠월이면 참나리를 만나러 먼 바닷가까지 여러 해 갔었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 참나리꽃이 피어났으니, 나는 무척 기쁘고 반가웠었다. 그 행복도 그날뿐이었다. 누군가 나리꽃을 보리처럼 싹둑 잘라 가 버렸기 때문이었다.우리민족은 세상 만물을 살아있는 존재로 상정하고, 경천애인(敬天愛人)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민간신앙이 전통적자연관으로 면면히 이어져왔다고 한다. 단군설화나 풍수지리설만 보아도, 우리 겨레가 생명의 근원이자 터전인 자연을 숭배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수질, 대기, 화학 등 환경 분야 관련 현장에서 오래 일을 해온 내 경험으로 보아도, 우리 선조들의 전통자연관이 타당하고 아름답게 가슴에 와 닫는다.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 국민들은 어떤 자연관을 가지고 살아갈까. 지구촌 최빈국에서 근대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아름다운 전통자연관은 없어져가는 듯하다. 자연을, 생태계를 대하며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과연 어떤가. 보리이삭이나 참나리의 예에서 보듯, 자연과 생명을 유희의 도구로 삼고 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2018-06-29

초록 유월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정자나무 그늘에 앉아 유월의 산과 들을 바라봅니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은 착근을 한 벼들이 초록을 더해가고 녹음 우거진 숲에서는 뻐꾸기소리 들립니다. 올해는 봄비가 잦아서 초목이 더 무성하고 녹음이 짙습니다. 인공구조물을 제외하고는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초록입니다. 바야흐로 초록제복의 군대가 이 땅을 점령했습니다. 여름 한 철 의무복무를 하는 뭍 생명의 수호자들이지요.녹색식물의 엽록소가 물과 공기와 햇빛을 합성해서 탄수화물을 만들어낸다는 걸 생물시간에 배웠지만, 정작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일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교육이 대부분 그러하듯 생물선생님은 그 광합성이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지구생태계를 유지하는 동력이라는 걸 강조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엽록소의 광합성이라는 자연현상의 과학적 이해뿐만 아니라 그것이 갖는 삶의 의미와 중요성까지를 깨우치는 교육이 되지는 못했던 것이지요.인류가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 온갖 첨단무기들을 개발하고 심지어는 핵무기까지 보유할지라도 저 녹색군대의 힘과 역할에 비한다면 한갓 부질없는 짓에 불과하지요. 생명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불모의 땅에서는 국가니 안보니 하는 개념조차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인류 역시도 생태계의 일부로 존망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까먹을 때가 많지요. 울울창창한 녹색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한 이 땅의 생명전선은 올해도 이상이 없습니다.초여름의 햇볕은 따갑지만 잎이 무성한 정자나무 그늘은 쾌적하게 시원합니다. 인동꽃 향기를 실어오는 훈풍과 적막한 뻐꾸기소리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고 앉아 있노라면 세상에 아무것도 더 바랄 게 없는 무욕(無慾)의 상태가 됩니다. 지나간 것을 괴로워하고 다가올 일을 근심하는 마음을 잠시라도 내려놓으면 이 땅의 유월은 얼마든지 밝고 평화롭고 생기가 넘칩니다.요즘은 치열하고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심신이 지친 사람들이 ‘명상’을 하기 위해 사찰이나 수련원 등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가 많은 현실로부터 몸과 마음을 떼어 놓음으로써 긴장을 풀고 밖으로 향했던 마음을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하여 마음의 정화와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지요. 무엇을 얻겠다는 목적이나 옳고 그름의 판단도 없이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명상의 첫 단계라고 하고요.‘멍때리기 대회’라는 것도 있더군요. 현대인들의 지친 뇌를 쉬게 하자는 취지로 2014년부터 개최된 대회인데, 대회의 규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 대회의 첫 우승자는 의외로 아홉 살 소녀였지요. 자기 아이가 그렇게 ‘멍때리기’나 하고 있으면 대다수 부모는 왜 공부를 안 하고 멍청하게 있느냐고 꾸짖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멍하니 있는 것이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이는 뇌의 기능을 더 활성화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하네요. 정작 부모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멍때리기’하는 아이가 아니라 잠시도 멍하니 있지를 못하고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는 아이들이라는 얘기입니다.나는 따로 명상이라는 걸 해본 적도 없고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이나 선정(禪定)의 경지가 어떤지도 알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녹음 우거진 초여름 한나절 정자나무 그늘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서 다른 어떤 경지도 궁금하지가 않습니다.“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다// 초여름의 눈부신 태양과 녹음/ 인동꽃 향기 실어오는 훈풍의 한나절// 부귀와 권세와 명예/ 또 무슨 의미와 보람을 위해/ 촌음을 아껴야 할 황금 같은 시간에// 그 무엇으로도 바꾸려고/ 애쓰고 안달하지 않고, 멍하니/ 내가 그냥 그 시간 속에 앉아 있다” - 拙詩 ‘인동꽃 향기’

2018-06-15

눈치 없는 기 잉가이가

▲ 김순희 수필가오래전 일이다. 결혼하기 전이니 이십 년도 훨씬 전의 케케묵은 일이다. 남편(아직은 남자친구였던)이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퇴근 후에 만나러 갔다. 대학 동기라며 경주가 집인데 포항 근처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 조용한 말투의 남편과 달리 키가 크고 걸걸한 목소리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헤어스타일은 주변머리만 있는 편이라 친구라기보다는 한참 선배 같았다. 하지만 두런두런 농담도 잘 건네고 식성도 좋은 것이 사람 참 좋아 보였다. 저녁은 무얼 먹었는지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남편이 계산했다. 그러자 커피는 자기가 사겠다며 일어섰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포항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로마’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남편은 녹차를 시켰고 그 친구는 커피를 시킨 것 같다. 그때 난 카페인이 맞지 않는지 커피를 못 마셨다. 마시면 볼은 홍조를 띠고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티백만 띄워주는 녹차는 돈 주고 마시기 아까워서 파르페를 시켰다.남편은 자꾸만 파르페는 맛없다며 녹차를 마시란다. 싫다, 난 녹차 싫어해. 파르페 먹고 싶다니까. 아이스크림에 과자도 올려져 있는 파르페 꼭 먹을 거야하며 우겼다. 한숨을 쉬며 종업원에게 녹차와 커피, 파르페를 주문했다. 차가 나오는 동안 두 사람은 학창시절 이야기며 전국에 흩어진 친구들 근황을 늘어놓았다.잠시 후 화려한 장식의 파르페가 나왔다. 보트모양의 그릇에 아이스크림이 얌전하게 담겼고 작은 초코과자가 흩뿌려졌다. 웨하스가 돛대처럼 꽂혔고 그 옆에 빼빼로는 덤이었다. 작은 스푼으로 예쁜척하며 맛을 보았다. 즐거운 대화가 계속 되는 동안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가끔씩 미소를 지어주며 파르페의 시간을 마음껏 즐겼다.파르페보트가 바닥을 보일 즈음, 경주로 가는 차시간이 되어 일어서기로 했다. 주섬주섬 일어서는데 남편은 나부터 먼저 밖에 나가 기다리라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문밖에서 기다렸다. 한참 후 친구가 터미널을 향해 길을 건너갔고 우리도 차를 타고 출발했다.집에 바래다주는 남편에게 물었다. 나부터 밖에 나가 있으라 하고 뭐 한 거냐고. 아무것도 아니란다. 뭐가 아무것도 아냐. 뭐했는데, 뭐 있잖아, 어서 말해봐.“ 마, 그냥 녹차 먹지. ”남편이 어렵게 입을 뗀다. 으잉? 이게 무슨 말이지. 내가 녹차를 마시지 않은 게 잘 못한 일이란 말인가?자초지종은 이랬다. 교사발령 기다리다 경력도 쌓고 용돈도 벌 겸 대학에 시간 강사로 나선 친구였다. 대학 강사는 허울만 좋지, 적은 강사비로 포항까지 왔다갔다 차비 빼고 만원도 안 되는 돈이 남는데 내가 녹차 아닌 파르페를 먹는 바람에 경주 갈 차비가 몇 백 원 부족해진 것이다. 남편에게 차비를 빌리지 않으면 경주로 갈 수도 없는 상황. 서른의 어른 남자가 처음 만난 한참 어린 내게 그런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지금도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그때의 나 또한 가난한 20대였다. 다 같이 어려운 시기였다. 아르바이트해서 힘겹게 공부하느라 성적장학금을 못 받은 우리는 눈물겨운 FM(Father, Mother)장학금으로 어렵게 졸업했기에 집에서 놀며 공밥을 먹는 다는 것은 죄악이었다. 줄줄이 비엔나처럼 뒤따라오는 동생들을 부모와 함께 돌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그런 내가, 눈빛만으로 녹차를 마시라는 남편의 충고를 받아들였어야 하는데도 기어이 먹고야 말았다. 떼써서 파르페 먹었으면 조용히 입 다물고 집에나 가지. 뭘 자꾸 캐물었는지. 눈치 없는 기 인간이가.

2018-06-08

태극이의 큰 메시지선물

▲ 강길수 수필가첫 손자 태극이가 큰 메시지를 선물했다. 우리 가족의 품으로 온지 아홉 달을 막 지날 때였다. 돌아보면 두 달이 되기 전에도 주었는데, 내 미련이 늦게 알아챈 것이다. 메시지선물이 바로 태극이인 듯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녀석은 그동안 우리 가족을 즐겁게도 하고, 놀라게도 하며, 애간장을 태우게도 하였다. 난지 두 달을 며칠 앞둔 날. 할머니가 “맘마 먹었어?”하고 어르는 말에, “응!”하며 대답하기에, “맘마 먹었어요?”라고 또 물으니, “응!” 하고 다시 대답하였다. 세 번째도 같은 대답을 해 식구들을 감탄케 했었다.석 달이 될 무렵 녀석 엄마가 찍어 보낸 동영상. 엄마는 어르고, 녀석은 힘찬 고성반응으로 서로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여러 번 소리 질렀다. 끝부분에는 성질부리는 얼굴모습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을 보는 동안, ‘요놈이 천의 얼굴을 가졌구나!’하고 드는 생각에 놀라면서도 기뻤다.다섯 달을 넘길 때. 예방접종과 감기가 겹친 후유증으로 경기(驚氣)를 일으켰는지 몸에 열은 높은데, 피부가 파래지며 녀석이 까무러졌단다. 처음 혼자 당한 아이의 위급사태에, 엄마는 아빠에게 급히 알린 뒤 아이를 꼭 감싸 안고 울 수 있을 뿐이었다. 급보에 황급히 달려간 할머니가 손가락을 따고 주무르는 등, 민간응급처치요법을 하며 부랴부랴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 작은 발에 주사바늘 호스를 달고도 천진난만한 모습이, 보는 마음을 더 아프게 했었다.아홉 달이 막 지나는 한 날. 녀석의 삼촌과 숙모가 오랜만에 조카 집에 가 형제, 동서지간의 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단다. 녀석 삼촌이 짧은 동영상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이 동영상이 커다란 메시지선물로 다가올 줄을 처음엔 몰랐다.동영상은 비록 반분정도로 짧았지만, 작품급이었다. 동영상을 보는 어른, 아이들도 다 보고 웃게 했으니까. 동영상은 태극이가,“아빠, 아빠, 아빠아아!”라고 삼세번 부르며 오른쪽으로 돌아눕는 장면이었다. 할머니도, 나도 하도 신기하고 기특하여 보고, 또 보곤 했다. 며칠 지나면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영아가 왜 아빠를 삼세번 불렀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고, 물음은 메시지로, 선물로 변신하여 찾아왔다.‘태극이’는 제 부모가 지은 태명이다. 그래서 일까. 돌아보면, 생후 두 달이 채 안되었을 때, 할머니와 옹알이를 나누며 ‘응!’하고 삼세번 대답했다. 또, 아홉 달 무렵에도 누가 묻거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빠!’를 삼세번 불렀다. 영아인 태극이가 ‘삼세번’이란 메시지를 선물한 이유는 무엇인가. 삼세번은 우리겨레는 물론, 하늘이 사람에게 내리는 소명이 아닐까.삼세번과 연관된 겨레의 풍습이나 사상, 표상은 많다. 삼세번은 겨레의 삶에 스민 천부적인 문화란 마음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태어 난지 두 달 및 아홉 달 밖에 안 된 태극이가 삼세번을 대답하고, 삼세번 아빠를 불렀을 리가 없지 않은가.우리겨레의 삶에는 ‘삼세번문화’가 서려있다. 국회를 비롯한 지자체, 단체 등의 회의 때엔 의사봉을 삼세번 친다. 만세삼창, 운동시합의 삼세판, 잘못도 삼세번은 용서해주는 풍습이 있다. 이렇듯, 삼세번은 바로 우리겨레가 사는 양식(樣式)이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그리스도교의 신앙대상인 하느님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신이다. 또 힌두교에도 창조신 브라마,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의 삼신일체설이 있다. 이런 종교들의 신조도 삼세번과 관련이 있다고 믿어진다.흑백논리로 치닫기 쉬운 이원론문화보다, 천지인삼태극사상이 뿌리내린 우리겨레의 삼세번문화가 사람의 소통과 화합에 더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꼬여가는 지구촌에 삼세번 문화가 퍼져나가, 꼬인 매듭을 푸는 지구공동체가 되면 참 좋겠다.맏손자 태극이의 삼세번 메시지선물이, 그 따사한 아가 손으로 가슴에 스며온다.

2018-06-01

오월의 노래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 가 흰 구름 보면/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라/ 즐거워 즐거워 노래 불러요.”오월이면 절로 흥얼거려지는 노래입니다. 앞의 두 소절을 부르면 나는 단박에 오십년 세월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달려가곤 하지요.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면 식구들은 모두 들일 나가고 외양간 누렁이만 목을 빼고 나를 기다렸지요. 보리밥 한 덩이 우물물에 말아 먹고는 누렁이를 몰고 나가는 게 내 몫의 일과였어요. 풀이 많은 산자락에 누렁이를 놓아주고 나는 망태기 가득 꼴을 베지요. 여남은 살 소년이면 벌써 낫질이 익숙해져서 망태기 하나쯤 금방 채울 수 있었지요.꼴을 다 베고 나면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 가 흰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지요. 누렁이는 어쩌느냐고요? 요령(워낭)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멀리 가지는 않았네요. 요령소리가 가물가물 멀어지면 그 때 쫓아가서 붙잡으면 되니까요.잔디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노래의 후반처럼 ‘가슴이 저절로 부풀어 올랐’거나 ‘즐거워 즐거워 노러를 불렀던 것 같지는 않네요. 그냥 멍하니 미루나무 끝에 걸린 구름이나 쳐다보았던 것 같네요. 뻐꾸기소리 요령소리에 귀를 열어 놓고요.“보리밭 물결을 스치며 부는/ 오월의 훈풍이여 우거진 신록이여/ 푸를 대로 푸르른 하늘 저 편에/ 하얀 구름이 꿈처럼 인다.”봄이면 들판이 온통 청보리 물결이었지요. 논이건 밭이건 놀리는 일 없이 보리나 밀을 심었거든요. 그러고도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오월은 보리가 패고 익어가는 계절이지요.초록 물결 넘실대는 보리밭 귀퉁이에는 샛노란 배추꽃이나 밤송이 같은 파 장다리꽃이 피기도 했지요. 그 위로 노랑나비 흰나비가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풍경은 미술시간에 즐겨 그렸던 소재였지요. 그 때 그렸던 그림이야 남아있지 않지만 그 풍경의 기억만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네요.시골 소년에게 오월의 보리밭은 낭만적인 풍경은 아니었지요. 머지않아 보리 베기와 타작이라는 고된 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오뉴월 뙤약볕 아래서 보리를 베고 타작하는 일은 농사일 중에서도 그중 고된 일이지요. 하지만 산천이 짙푸르게 녹음으로 짙어가는 오월에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은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기대만큼이나 선명한 빛깔이었습니다.꽃으로 치자면 오월은 아카시아꽃의 계절이지요. 장미의 계절이라고도 하지만, 안개처럼 산자락을 온통 뒤덮는 아카시아꽃을 당할 수야 없지. 멀리서는 그저 뿌옇게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아카시아꽃은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처럼 탐스럽고 향기도 진하지요.마침 찔레꽃까지 거들어서 꽃향기 가득한 오월의 동구 밖 과수원길 저 끝에서 단발머리 여학생이 오고 있네요. 남녀 공학인 시골 중학교에 같이 다니는 이웃마을 소녀지요. 까까머리 소년은 길모퉁이에 숨어서 소녀를 기다렸다가 스무 걸음쯤 다가왔을 때 앞서서 걸어가지요. 소년이 아무리 태연하게 우연인 척을 해도 사실은 아침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소녀가 모르지 않지요. 그렇게 날마다 저만치 떨어져서 등교를 하면서도 끝내 둘이는 말이 없었지요. ‘얼굴 마주 보고 싱긋’ 웃었다면 그것은 대단한 사건이고 친밀감의 표현이지요.아아, 눈부신 생생초록 오월은 다시 왔지만 그 때 그 시절은 저만치 더 멀어져 가네요.“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저녁놀 먼 하늘만 눈에 차누나.”

2018-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