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청둥오리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겨울 들판에 청둥오리들이 내려앉는다. 내몽골이나 시베리아 어디쯤에서 덜 추운 곳으로 월동을 하러 온 철새들이다. 충남 아산의 곡교천에 날아온 청둥오리들의 이동경로를 추적해보니, 3월 말경에 700km 거리인 중국 랴오닝성 선양으로 날아가서 약 2주일간 머문 뒤에 다시 670km를 날아서 서식지인 내몽골 힝간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11월 말에 다시 내몽골을 출발해서 갈 때와는 달리 중국 지린성과 압록강을 거쳐 12월 초순에 아산의 곡교천으로 돌아온 여정도 알 수가 있었다. 청둥오리는 오로지 맨몸 하나로 살아간다. 옷도 입지 않고 집도 없고 돈도 신분증도 지닌 것이 없다. 조금 덜 추운 곳에서 겨울을 나려고 수천 리 먼 하늘을 날아 여기까지 왔다. 잡식성이라 풀씨나 곤충 등을 먹이로 한다지만 그 많은 무리가 이 얼어붙은 땅에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 놀라운 일이다. 요즘은 볏짚조차 소 먹이로 다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들판에 떨어진 이삭도 별로 없을 것인데, 맨몸으로 혹한을 견디는 것도 그렇고 더없이 열악한 생존 환경임에도 비관하고 좌절하거나 우울해 하는 기색이 없이 다들 참 씩씩해 보인다. 수십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다녀도 영토나 먹이를 두고 싸우는 걸 본 적도 없다.겹겹이 옷을 껴입고 겨울 들판에 서서 청둥오리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인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져야 더 안심이 되고 행복할 거라는 강박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경쟁과 성과를 위해 소모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대단한 자유와 행복을 성취하게 되었는지.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안전하고 평화롭게 되었는지. 그래서 어떤 비전과 보장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인지.이사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얼마나 복잡하고 군더더기가 많은지. 사람이 사는데 온갖 생활용품이며 옷가지들은 왜 그렇게 쌓이는지. 우리나라 보통 사람 하나의 의식주에 드는 물품과 비용이면 아프리카 난민 수십 명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것이다. 더구나 그 모두가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한 산물이 아니던가.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는 걸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행복을 싫어하고 불행해지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땀 흘려 일을 하고 치열하게 경쟁을 하는 것도 다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지만 그래서 얼마나 더 행복해 졌는가. 국민소득이 수십 배나 높아지고 편리한 문명의 이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왜 자살자가 늘어나고 범죄는 날로 흉포해지는 것일까.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은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일인가.절대빈곤을 벗어나 경제대국의 반열에 든 우리나라에서는 욕심을 버리면 이미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가 있다.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욕심과 어리석음에 눈이 멀어 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비관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슨 일에든 성실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의식주를 해결할 수가 있지만 사람이 어찌 밥으로만 살겠는가.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위해서는 여가생활도 있어야 하고 요즘 한창 인구에 회자되는 인문학적인 콘텐츠도 필요하다. 그것 역시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돈을 들이지 않고도 최고의 음악과 문학과 미술을 향유할 수가 있는 세상이다. 언제 어디서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수가 있고, 고흐나 피카소의 그림도 영상으로 볼 수가 있다. 관심과 열성만 있으면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도 마음껏 누릴 수가 있다. 예술과 철학과 종교와 역사 등 어느 분야든지 최상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길이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다. 방안에 앉아서 세상 구석구석의 풍물을 구경할 수도 있게 되었다.우리가 이미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그런데도 무엇을 더 가지려고 아득바득하는지를 저 겨울 들판의 청둥오리들이 돌아보게 한다.

2017-12-22

장사꾼과 가재미

▲ 김순희 수필가몇 해 전 이맘때쯤이었다. 지나가던 승용차에서 누가 나를 불렀다. “아가씨, 길 좀 물어봅시다. 대보파출소가 어디쯤이죠?”차 번호판이 타지인 걸 보니 한참을 헤맨 것 같았다. 여기는 장기면인데 대보면이라면 정반대 방향이라 길을 영 잘못 들었다. 찬바람이 휘감는 쌀쌀한 날씨라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가씨`라고 불러준 말이 내 기분을 한없이 들뜨게 했다. 기분대로라면 대보파출소까지 안내해주고 싶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를 되돌려 가라고 손으로 약도까지 그려 알려준 후, 무슨 장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집에 들어가서 떠들었다. 남편은 또 장사꾼에게 속았다며 웃어넘겼다.요즘은 동안(童顔)이 대세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길 원하는 게 대다수 여자의 바람일 것이다. 동안의 원래 의미는 나이 든 사람의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일컫는다. 최근엔 사회적으로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의 사람`이라는 의미로 변하였다. 젊다는 말에 노여워할 사람은 없다. 한 살이라도 어려보이려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다. 화장을 하고, 변장을 서슴지 않는다. 때론 분장의 수준을 넘어 가면을 쓰기도 한다.다음날 죽도 시장에 갔다. 장볼 것이 많다고 어머님과 손위 시누이도 함께였다. 채소 가게를 먼저 들렀다. 주인아주머니는 시금치 한 무더기를 올려놓으며 나에게 눈짓을 곁들여서“아가씨, 덤으로 마이주께.”한다. 이 말에 어머니는 박장대소를 했다.“아이고, 아가 대학생이구만. 옆에 있는 이 아는 아가씨 안 같은교?”어머님의 손길은 시누이를 향했다. 당신 딸이 장성한 아들을 둔 중년인데도 아가씨 소릴 듣기 원하셨고, 어시장 좌판에 문어와 개복치 무게를 달 때도 `젊은 아지매가 야무지네` 라는 소리에 스르르 지갑을 여셨다.늦은 밤, 잠자리에 누워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려주었다. 가만히 듣더니 남편은 가재미들의 대화라며 피식 웃었다. 가재미? 장삿속에 늙은 나를 아가씨로 보는 채소 아줌마의 눈이 가재미고, 오십 넘은 딸도 아가씨로 봐 달라는 어머니 눈도 가재미처럼 돌아갔고, 장사꾼 말에 기분 좋아서 낄낄거리는 내 눈도 가재미라고 놀렸다.남편은 옆에서 쉽게 코를 골지만 나는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잡념삼매경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나를 아가씨라 부르는 사람은 남편 말처럼 장사꾼이거나, 나보다 연배가 훨씬 높은 어른들이었다. 장사꾼이야 손님 기분을 맞추려고 거짓말을 보태는 것이고, 나이 든 어른들 눈에야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이 다 젊은이로 보일테니 그저 아가씨라고 불러줬을 것이다.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이나 서로 기분 좋자는 뜻일 게다. 그 생각이 나를 더 잠 못 들게 했다. 잠을 잘 자야 피부가 고와진다는데 말이다.동안의 전제 조건은 젊게 보이는 피부라고 한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규칙도 많았다. 물 많이 마시기, 매일 운동하기,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기 외에 잠도 함부로 잘 수 없다고 했다. 옆으로 누우면 눌린 얼굴에 주름이 생기니 똑바른 자세로만 자야 된다. 나는 왼쪽으로 누워야 잠이 잘 오고, 물을 많이 먹은 다음 날엔 몸이 퉁퉁 부어오른다. 그러니 내가 아가씨 소릴 듣는 것은 분명 접대용이다.얼마 후, 친정엄마가 무릎에 인공 관절을 해 넣으셨다. 중환자실에서 꼬박 한 달을 보내며 물리치료실을 오갔다. 오래 병원에 입원해 계시니 찾아오는 친척이 많았다. 이모부 내외분도 멀리에서 일부러 찾아오셨다. 병문안 오신 이모부는 아픈 엄마도 위로했지만, 옆에서 병시중 하는 나를 더 챙겼다. 오랜만에 봐서인지 아이들 안부부터 물으셨다. 둘째가 고등학생이라 했더니,“아직도 아가씨 같은데 아가 벌써 고등학생이가?”아가씨란 말에 옆에 있던 남편이 가재미눈을 뜨고 대답했다.“이모부님도 장사 하는교?

2017-12-15

까마중, 도시빈터를 살다

▲ 강길수 수필가세상에는 알고 보면 겉보기와 다른 것들이 많다. 까마중도 그렇다.지난 봄, 걸어서 출퇴근하는 길옆에 한 주택의 철거작업이 있었다. 중장비가 동원되더니 이틀만엔가 다 헐렸다. 빈터에는 산을 깎은 것으로 보이는 흙이 두툼하게 깔렸다. 새 흙이어서 당분간 풀도 없는 맨땅이겠구나 생각하고 관심 없이 지나다녔다.얼마나 지났을까. 아마도 봄비가 내린 다음 어떤 날이지 싶다. 새 땅에 어린 싹들이 많이도 돋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자라나자 새싹들이 까마중이란 것을 알았다. 신기했다. 까마중은 오륙십 평 되어 보이는 도시빈터의 절반가량을 차지하였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행운이다! 한 곳에서 이렇게 많은 까마중을 만나다니, 그것도 도시빈터에서…. 올 한해는 출퇴근길을 까마중이 살아내는 모습 보며 심심찮게 지내겠구나!”그랬다. 시골에서 자라났지만, 한 곳에 이렇게 많은 까마중이 서식하는 것은 본적이 없다.어릴 때 우리 친구들은 까마중을 `개머루`라 불렀다. 아마 누군가 열매가 머루를 닮아 그렇게 부른 것이 이름이 되었지 싶다. 나중에야 표준어가 까마중임을 알았다. 그 외에 가마중, 강태, 깜푸라지, 먹딸기, 먹때꽐, 까마종 등 다양한 이름들도 있다는 것을 온라인으로 배웠다. 뿐만 아니라, 한약재나 나물로도 쓰인다는 사실도 알았다.6·25 전쟁 직후, 보릿고개를 넘던 시골 아이들에게 까마중열매는 감칠맛 나는 주전부리였다. 길가, 밭둑, 담장 밑, 집 뒤란, 도랑 가 등 동네 주위에서 흔하게 만나던 까마중…. 여름부터 가을까지 까만 열매가 동자승머리같이 반질거리면, 아이들은 놀다가 수시로 따먹었다. 입안이 까맣게 변하도록 먹는 날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탐스런 열매가 입안에서 톡 터지면, 맛세포로 느껴지는 달짝지근한 맛이 일품이었다. 부주의로 덜 익은 열매가 입에 들어가 으깨질 때면, 온 입안을 콕콕 찔러대던 아릿한 맛이 톡톡 쏘는 사춘기소녀의 매력마냥 지금도 미뢰속에 남아있다.어떤 연으로 도시빈터에 군락으로 살게 된 까마중은, 도회사람들에게는 관심 밖의 존재인가보다. 정면에 철제펜스가 막고 있지만, 옆으로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그런데도 열매를 따 먹거나, 나물이나 약재로 쓰기 위해 채취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나 혼자만 비밀스레, 아침저녁으로 낯선 도시빈터에 태어난 까마중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봄, 여름, 가을을 지냈지 싶다. 새 땅에 거름기도 없을 텐데, 까마중은 무럭무럭 잘도 자라났다. 초겨울 까만 열매를 조롱조롱 많이 매달았어도, 할 일이 남았는지 하얀 꽃을 바지런히 피운다. 서리에 잎과 줄기가 검은 빛이 감돌고 일부 잎은 조금 말라도 개의치 않고, 겉보기와 달리 자기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까마중도 우리나라처럼 노령화시대에 접어들어 노후준비가 덜 된 걸까. 아니면 지구촌의 기후변화 때문일까. 길가에 고인 물이 어는 초겨울 날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연약해 보이지만, 여느 풀 못지않게 강인한 까마중. 혼자건, 여럿이건 따지지 않고 의연히 사는 까마중. 외진 곳과 번잡한 곳, 황무지와 비옥한 땅, 양지와 음지,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의 틈새 같은 곳을 묻지도, 가리지도 않고 잘도 살아내는 까마중….까마중은 겸손하고 온유(溫柔)하며, 사랑과 부활을 사는 풀이다. 자신을 다른 생명에게 먹이로 내어주는 사랑을 행함으로써, 자신도 부활하는 삶을 사는 까마중이다.까마중열매 몇 개를 따 입에 넣어본다. 맛이 옛날 그대로다.초겨울 하루. 싸늘한 해가 서산을 베고 눕는 시각에도 까마중 하얀 꽃은, 집 헐린 도시빈터 가득 배시시 웃고 있다.나도 까마중처럼 살면 좋겠다.

2017-12-08

불안과 공포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땅이 흔들렸습니다. 모든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인간이 땅 위에 쌓아올린 온갖 것들이 한낱 사상누각이었습니다. 사람들, 문을 닫아걸었던 집을 뛰쳐나와 불안과 공포에 떨며 서성거렸습니다. 평수를 늘리고 공들여 가꾼 집도 더 이상 아늑한 보금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문명의 바벨탑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새삼 절감합니다.”작년에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놀란 가슴으로 인터넷에 올렸던 글의 일부입니다. 이번에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밑에서 또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것이 아니라, 호랑이를 보고 놀란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을 했는데 또 다시 호랑이를 만나 혼비백산한 격이랄까요.작년보다 진도는 낮다고 하지만 지표에서 얕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이라 피해의 정도나 체감한 충격은 더 큰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되풀이 되는 여진으로 인해 배가된 불안과 공포는 이 지역의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안겨주었습니다.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불안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침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외에도 사고나 질병, 자연재해 등 살면서 수시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위험 요소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없을 수가 없지요.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요소까지를 포함해서 불안을 갖게 되는 이유를 보통 다섯 가지로 분류합니다.불안의 요소 중에 가장 저변에는 `소멸에 대한 불안`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가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여기에 포함됩니다.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절단에 대한 불안`입니다.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불안감이지요.세 번째로는 `자유의 상실에 대한 불안`을 들 수가 있습니다. 마비되거나 갇히거나 제재를 당해서 스스로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되는 상태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물리적 차원의 `폐소공포증`을 일컫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네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분리에 대한 불안`입니다. 버려지거나 거부되어서 관계를 상실하는데 대한 불안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존중의 대상이나 가치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집단 따돌림 등이 개인에게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 이유입니다.마지막으로 `자아의 죽음`에 대한 불안입니다. 수치심이나 자괴감 등으로 자신감을 잃어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겁내고 실패를 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안이란 본질적으로 위해한 결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긴장하고 경계해 위험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심리적 기능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불안이 평균적 일상에 함몰되어 본래성을 상실한 존재의 고유성을 드러낸다고도 보았지요. 하지만 위험의 정도에 비해 과도하게 불안을 느끼는 경우는 불안장애나 공황장애, 강박장애, 심리적 외상 스트레스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지진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불안장애나 우울증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다잡아야겠습니다.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나간 들녘에 청둥오리들이 떼를 지어 내립니다. 덜 추운 곳에서 겨울을 나려고 만 리 길을 날아온 철새들입니다. 오로지 맨몸 하나로 살아가는 저들에게는 지진에 대한 공포 따윈 없어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진에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은 인류의 문명일 뿐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한다는 걸 알겠습니다.`메멘토 모리`란 말처럼, 지진의 공포와 불안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각성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불안을 덜기 위해선 욕심과 집착을 덜어내고, 보다 겸허하게 지금 여기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사랑하는 삶이기를 다짐하게 됩니다.

2017-12-01

그냥

▲ 김순희수필가 긴머리를 짧게 잘랐다. 다들 이유가 무엇이냐고,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심지어 부산에 살고 있는 언니는 카톡 대문사진을 보고 놀라서 전화를 걸어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래 기른 것을 싹둑 잘라버린 것이냐며 맛난 것 사 먹고 마음 달래라고 용돈까지 보내왔다.사실은 별 뜻 없이 어제보다 좀 산뜻한 오늘을 맞이하려고, 무거워서 잠시 쉬어가자는 느낌으로 미용실에 들어갔다. 십여 년 단골로 다녀 내 스타일을 잘 아는 원장님도 짧게 잘라내기 전에 몇 번을 되물었다, 아깝지 않느냐고. 금방 길 것이니 과감하게 가위질을 하라고 하니 그제야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내가 머리스타일을 바꾼 이유는 `그냥` 이었다. 하지만 만나는 이마다 자꾸 명확한 이유를 말하라고 하기에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답을 정해보았다. 새로운 인생관을 가졌다는둥 실연당했다는둥 너스레를 떨어주었다.긴머리 모양을 수십 년 간직하듯, 나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오래 하는 편이다. 수필 또한 그랬다. 시나 소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수필`을 쓰게 되었느냐, 뭐가 그리 좋아서 십 년 넘게 매달리느냐고 가끔 물어온다. 그럴 때 내 대답도 `그냥` 이다.서른 즈음에 시작했으니 내 년이면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뀐다. 그 사이 같이 시작한 친구들과 동인이 되었고, 몇 해 지나고부터는 동인지를 만들어 그 해 공부한 글들을 엮기 시작했다. `포항수필사랑`이라는 멋진 이름표도 달았다. 동인지가 책꽂이에 열 권이 꽂혀있으니 이것도 오래한 여행이다. 잘 쓰기 위해 수필을 배운지도 십 년이 넘는다. 천재적인 소질이 없는 나같은 사람은 그만두지 않고 묵직하게 오래 배워야 한다. 배울 때에는 세 선생이 필요하다. 하나는 앞서 글을 먼저 만난 선배이고 그 다음은 다독과 잘 쓰는 것이다.글을 잘 쓴다고 알려진 작가들이 말하는 노하우는 대부분 많이 쓴다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을 정해 컴퓨터 앞에 앉아 A4 용지 한 장을 채운다는 사람, 사물 하나를 정해 그것을 유심히 관찰해서 묘사하기를 매일 반복한다는 사람. 방법은 달라도 다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잘 쓰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쓴 일기장이 한가득이고, 결혼 후에는 등장인물이 몇 명 늘어서 소재도 다양해졌다. 예전에는 종이에 쓰던 것을 십 년 전부터는 SNS에 기록했다. 장점이라면 글에 사진을 붙여 놓으니 내용이 더 풍부해졌다는 것과 친구들이 댓글로 공감해주는 일이다.오늘도 저녁을 준비하며 하루를 되새김질 한다. 압력솥이 밥 익는 소리를 내느라 칙칙 거린다. 하지만 난 가스 불을 끄지 않는다. 1단으로 줄여 5분정도 더 열을 가한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누룽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나는 잘 된 밥보다 꾸덕꾸덕한 누룽지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나와 남편, 아들 둘 이렇게 네 식구 밥을 풀 때에도 내 밥은 맨 나중이다. 세 공기를 덜고 나머진 밥통에 옮겨 담고 바닥에 붙어 있는 누룽지를 손목에 힘을 주어 긁어낸다.수필은 누룽지와 같다. 쓰기는 내 마음속 저 깊은 곳에 눌어붙어 있던 감정들을 박박 긁어내는 작업이다. 급하게 불을 끄고 김을 빼면 글은 미완성이 된다. 눌어붙길 기다리며 콧노래를 부르고 식탁위에 수저도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 국그릇까지 상에 오른 다음 퍼야 한다.포항수필사랑은 올해로 11집이라는 누룽지 한 그릇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제부터 만나는 이들에게 구수한 누룽지를 배달할 것이다. 하지만 매해 동인지를 받아 읽고서도 나에게 시인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있을 만치 수필은 푸대접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한눈팔지 않고 수필 곁에 `그냥` 머물 것이다.곁에 있는 사람이 왜 사랑 하냐고 했을 때 그냥, 너니까! 구구절절한 이유보다 이런 간단명료한 대답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냥, 수필이니까, 포항수필사랑이니까!

2017-11-24

낙엽이별의식

▲ 강길수 수필가성당 가는 보도(步道)가 이별로 가득하다. 빨간 이별, 노란 이별, 보랏빛 이별, 푸르딩딩한 이별도 있다. 한 가족으로 봄에 태어나 살다가, 때가 차 나눈 이별들이 이처럼 서로서로 다르다니 웬 까닭일까. 이별들의 표, 낙엽을 밟으며 걷는 내 마음창고에 수많은 이별이 켜켜이 쌓인다. 가을이 깊다. 가로등 빛에 기력을 잃은 늦가을 열나흘 달이 벚나무 단풍잎 사이로 외롭다. 세상 만물은 어찌하여 헤어져야만 하는가. 사람은 물론 동식물, 미생물, 무생물, 심지어 행성과 항성, 은하계, 우주까지 이별로 점철되어 있다. 도대체 나는, 너는, 우리는 이 이별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만 하는가.창백한 달 앞에서 신성한 의식(儀式)이 시작되고 있다. 추운 겨울동안 가장(家長), 벚나무를 살리기 위해 잎이 제 몸을 스스로 자르는 낙엽이별의식이다. 빨간 이별인지, 노란 이별인지, 무슨 빛 이별인지 벚나무 뒤에 선 달은 내게 비춰주지 못한다. 슬프고도 결기 찼을 이별의 노래도 귀엔 들리지 않는다.그래도 의식은 준엄하게 진행된다. 낙엽이별노래의 끝소리가 `툭!`했는지, `우지직!` 맺었는지, 아니면 `짱!` 하였는지도 모른다.아무튼, 벚나무 잎 하나가 가지를 떠나는 거룩한 낙엽이별의식은 끝이 났다. 잎은 뒤풀이 이별여행을 가려한다. 이른 봄, 날씨를 착각하고 나타난 나비의 서툰 날개 짓 마냥 팔랑팔랑 하늘을 날아서 먼 길을 떠난다. 하지만, 잎은 저만치 날아 저쪽 벚나무 둥치 옆 땅위에 풀썩 주저앉고 만다. 그래. 갈 곳이라곤 땅밖에 없지. 땅에서 왔으니 땅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이 이별인 게야.저 잎은 제 가장을 떠나 땅에 안착한 느낌이 어떨까. `이제 다 이루었다! 삶에 여한이 없다`싶을까. `대지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다시 돌아왔으니, 이젠 쉬고 싶다`라 할까. 아니면 `봄, 여름 가장을 위해 힘껏 일했다. 가을에도 가장이 겨울에 얼지 않는 영양분까지 만들어 주었으니, 이제 할일 다했다. 그러나 서럽다!`라 여길까.이쪽 벚나무둥치 곁에 커다란 비닐봉지가 입을 벌리고 있다. 미화원이 가을 보도를 메운 낙엽을 쓸어 담다 말았나보다. 비닐봉지에 담긴 저 낙엽들에게는 무슨 운명이 다가오는가. 폐기물처리장에 묻히거나, 소각로에서 태워질 것이다. 왠지 비닐봉지 안의 낙엽들이 가엽다. 산야나 들에 앉았다면 다른 생명들로 다시 태어날텐데, 썩거나 불타버릴 운명에 처해졌으니 말이다.벚나무 무성한 성당 가는 길은, 내겐 도시의 옹달샘이다. 진종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채워진 공간에서 살아내기 때문이다. 도시란 제대로 쳐다보면 숨 막히는 공간이다. 편리성을 담보로 자연도, 하늘도, 공기도 제약당한 채 살지 않는가. 아파트와 학교를 등진 성당 가는 보도는, 제법 길고 한적하여 걷기엔 안성맞춤이다. 봄엔 벚꽃에 취하고, 여름엔 녹음을 즐기며, 가을엔 낙엽과 속삭이고, 겨울엔 앙상한 가지 사이로 꿈을 꾼다. 굳이 시간 들여 야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자연을 숨 쉬고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곳이어서 좋다.해마다 낙엽이 본격적으로 날리기 시작하면, 마음이 진한 아쉬움으로 물들곤 한다. 미화원이 낙엽을 자주 쓸어치우기에, 낙엽이별의식을 오래 만나고 느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다. 차도(車道) 등 사람생활에 불편을 주는 곳은 낙엽을 치우더라도, 성당 가는 보도처럼 한적한 곳은, 낙엽이 다 말라 부서질 때까지 그냥 두었다가 후일 치우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 삭막한 도시민들이 낙엽을 보고, 밟으며 걸을 수 있게 말이다. 사람들이 자기 삶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결심하며, 위로받고 치유하는 낙엽이별의식을 드리기도 할 테니까.성당 가는 보도의 벚나무들은, 지금도 신성한 낙엽이별의식을 바치고 있다.

2017-11-17

나는 누구인가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실제로 가능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상을 해본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양육을 하고, 다른 아이는 공기와 물과 영양을 제외한 어떤 정보도 차단된 인큐베이터 같은 곳에서 길러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둘을 30년쯤 후에 나란히 놓고 본다면 모습은 비슷하게 닮았을지 모르지만 전자는 정상적인 청년인데 비해, 후자는 소위 자아(自我)라는 것이 전혀 형성되지 않은 완전한 백치상태의 식물인간이 아니겠는가.우리가 나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 자아라는 것이 사실은 처음부터 그렇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입수하게 된 모든 정보의 총화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그 정보들에 반응하는 기질적인 성향은 각자가 다르게 타고났다고 해야겠지만 황당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이 예화가 의미하는 것은 그러나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사고체계라는 것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어떤 절대적인 기능이 아니라는 것이다.`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우리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서,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신념에 대해서, 의심하고 반성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간이란 얼마든지 잘못된 정보의 입수에 따라서 그릇된 인식이나 신념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 개인적인 불행은 물론 엄청난 역사적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서구인들에 의해 마야문명과 잉카문명이 처참하게 파괴되고 말살된 것이나, 히틀러의 나치즘이 2차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이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수천만의 인명을 앗아간 피의 숙청이 자행된 것 모두가 인간의 그릇된 생각이나 신념이 낳은 결과인 것이다.그런 역사적인 사건은 아닐지라도 우리들 개개인의 삶에서 잘못 형성된 자아나 가치관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과오나 어리석은 행동은 얼마든지 있다. 특히 빈익빈 부익부가 극단화 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대적 빈곤이나 박탈감으로 괴로워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이 차지하고 크게 이룬 사람들의 삶은 그만큼 가치 있고 행복한 것이지만, 못 가지고 이룬 것이 없는 사람들은 저열하고 불행할 뿐이라는 고정관념이 우리의 삶과 생명을 쉽사리 파괴하기까지 한다.사업에 실패했다고, 시험에 낙방했다고, 애인에게 배신당했다고, 가진 것이 너무 없다고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자포자기하고 싶을 때, 우리는 조용히 자문해 봐야한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를 이토록 괴롭고 절망스럽게 하는 이 생각들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지금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 이 가치관이나 통념들이 과연 나의 생명과 바꿀 만큼 절대적이고 올바른 것인가.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 광대무변한 우주 속에서 나의 존재란 먼지의 먼지의 먼지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지구상에 맨 처음 생명체가 등장한 이래로 수십억 년을 줄기차게 이어져온 것이 바로 나란 존재가 아닌가. 수억 개의 정자 중 선택된 하나라는, 로또복권을 수백만 번이나 연달아 당첨이 된 것과 같은 확률에다 온 우주를 통털어 오직 하나뿐인 기적의 산물이 바로 내가 아닌가.나란 결코 하찮고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들이 자의로 만들어낸 그릇된 관념의 잣대로는 결코 나를 잴 수가 없다. 비록 돈이나 명예나 지위를 가진 것이 없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처지라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비관하거나 절망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엄청나고 존귀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사회가 만들어낸 그 모든 기준이나 가치관도 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한낱 초개와 같은 것일 수가 있다는 얘기다. 어찌 나뿐이랴. 오늘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가 수십억 년의 계보를 가진 존재들이다. 그러니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인들 비천하고 하찮은 존재라 할 수가 있겠는가.

2017-11-10

투덜이 스머프

▲ 김순희수필가 시댁에서 내내 남의 편이었던 사람이 친한 척 산책을 가자고 졸랐다. 온갖 전 부치며 박인 근육도 풀 겸 따라 나섰다. 제 방에 누워 휴대폰만 쳐다보는 둘째까지 데리고 말이다. 나서기 전에 다짐을 받았다. 분명 산책이니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 거리여야하고 오르막길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월포 포스코 연수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늘 산책할 곳은 `용산`이었다. 밑에서 딱 봐도 오르막이다. 출발하자마자 너무 가파르다고 나는 칭얼거렸다. 남편은 조금만 가면 내리막길이 나온다며 더 가자고 달랬다. 새로 장만한 휴대폰을 펼쳐서 우리가 걷는 동안 칼로리가 얼마나 소모되는지, 몇 미터 왔는지, 속도도 알 수 있다며 내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 기어이 끌고 올라갈 속셈이었다.미리 다운 받아 놓은 노래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노래가 듣기 좋아 가파른 길을 참아가며 올랐다.헉헉. 이십 분을 올라도 오르막길뿐이었다. “이게 무슨 산책이야?” 힘겹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투덜거렸다. 올라갈 때 힘들면 내려오는 건 쉽지 않느냐며 남편은 나를 다독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산행에 대해 모르는 나지만, 이런 가파른 길은 내려올 때가 더 힘들다는 것 정도는 안다. 무릎에 힘을 주며 조심해서 내려와야 하니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사십 분 정도 오르는 동안 내내 투덜거렸다. 투덜거리는 나를 산이 알아차린듯 이내 쉼터가 나타났다. 소박하게 나무에 매달린 표지판에는 정상이라고 써 있다. 조그맣고 빨간 우체통도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벤치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며 숨고르기를 하자니 귓가에 `쏴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올라오는 길에 계곡은 말라있어서 물소리는 아니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말소리 숨소리를 잠잠히 하자 더 잘 들렸다. 파도소리였다! 산 속에서 바다가 만들어내는 음률을 들을 수 있다니. 소리에 취한 나를 보며 남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소리인양 으스댔다.조금만 소리를 따라 나아가니 월포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다. 늘 보는 바다지만 산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감흥이 다르다. 발치에 바다를 끼고 있는 용산의 위엄이 이런 풍경을 만들어내 순식간에 내 몸을 파랗게 채워 버렸다. 조금 더 눈길을 왼편으로 옮기니 이젠 청하면 월포리 평야가 누런빛으로 일렁거렸다. 긴 호흡으로 그 자리에 머물렀다.길섶에는 고인돌도 몇 기 보인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풍요를 비는 곳이었을 테고, 때로는 자식의 안위를 빌러 우리의 어머니들이 찾은 곳이기도 했을 것이다.지금은 등산로에서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소풍장소가 될 때도 있다. 청동기인들도 오늘 내가 섰던 곳에서 바다와 평야를 눈에 담았다고 커다란 바위가 묵직하게 알려주었다. 고인돌의 움푹한 곳마다 옛날이야기가 서려있다.올라갈 때는 한 시간이나 걸리던 길이 내려올 때는 순식간이었다. 남편 손을 잡고 나뭇가지에도 의지해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럴 때마다 풍경은 잊어버리고 잔소리만 되풀이 했다. `겸재정선 감사둘레길`이란 길 이름이 무색해졌다.동행하는 이가 남편이 아니었다면 입도 안 떼고 따라 갔을 길이다. `랄랄라 랄랄라` 노래하며 등장한 스머프 만화가 생각났다. 투덜이 스머프는 모든 일에 짜증이며 트집이었다. 오늘 내가 남편에게 보인 모습이다. 나는 엄마를 닮아 처녀 적부터 무릎이 튼튼하지 못하다. 발도 평발이라 오래 걷는 데는 소질이 없다. 엄마는 몇 해 전 인공관절을 무릎에 넣었다. 수술 후 옆에서 돌보는 내내 마음이 아플 정도로 힘들어 해서 나도 그 길을 따라 가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긴 투덜거림에 변명은 더 길어진다.투덜이 스머프도 분명 관절염을 앓았을 것이다.

2017-11-03

제비집

▲ 강길수 수필가우리 집 근교 모 마을회관 처마 밑에 추억 하나 달려 있다. 푸른 하늘 신나게 누비던 내 소년의 마음도 담긴 보금자리다. 오랜만이다. 참 반갑다. 언제 지었기에 저렇게 새 집일까. 계절이 지금쯤이면 다 자란 새 생명들이 하늘 향해 날개 짓을 신나게 시도하고 있을 때다. 한데, 웬일인지 주인공들이 안 보인다. 사발 모양으로 처마 밑에 붙어 있는 제비집. 날기만 한다면 언제 어떤 새도, 바로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천장엔 제비가 집을 틀며 튀긴 흙물자국이 선명하다. 한데, 문이 없다. 비단 제비집만이 아니다. 내가 본 새들의 집은 문이 없었다. 엉성한 비둘기집도, 예쁜 종달새둥지도, 입구만 있는 까치집도 문은 없었다. 대문도, 방문도, 창문도 없는 것이다.문이 없어도 새들은 자연과 더불어 잘도 살아간다. 내가 만난 곤충들과 다른 동물들의 집도 문은 없었다. 왜 동물들은 집을 지으며 문을 낼 줄 모를까. 창조주는 원래 문이 없는 집에 생명들이 살도록 마련한 것일까. 사람은 문 없이 살 수 있을까. 원시인처럼 털이라도 많다면 몰라도, 현대인은 문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몸이 변화하는 환경에 지탱할 수 없으므로….인간도 집을 짓기 전까지는 동굴에서 살았다고 배웠다. 처음에는 문을 만들 줄 몰랐다는 이야기다. 변하는 날씨에 대응하려 옷을 만들어 입었을 테다. 다음엔, 기후변화는 물론, 적에게서 생명을 보호하려 집을 짓고 문과 창을 달았으리라.어릴 때 산골 작은 우리 동네 집들은 대문이 없었다. 어느 집 마당에 들어서면 각 방마다 하얀 문종이 발린 여닫이 출입 살문이 보였다. 방엔 작은 봉창 하나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살문은 짐승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약한 구조였다. 나무로 살을 짰으나 간단한 도구로 쉽게 부술 수 있는 문이다, 그러니 범죄자 방어는 불가능하다. 지금 생각하면 살문은 역설적으로 범죄 없는 마을의 증거물이었다 싶다. 아홉 집 우리 동네는 대문이 없어선지 마치 한 가족처럼 정답게 살았다. 잔치나 제사음식을 꼭 나누어 먹는 것은 기본이고 관혼상제나 농사일도 내 일처럼 함께하며 지냈다.살기 위해 집을 짓고, 문과 창을 만들어 환경 변화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인간. 하지만, 그로인해 이웃과 자연과의 소통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리라.진화를 다루는 학문에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 하는 현생인간. 그가 추구하는 삶이 과연 동식물의 삶보다 썩 나은 것일까. `슬기나 지혜`로 번역되는 `사피엔스`가 다른 생명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질이라면, 그는 왜 생명체들 중에 가장 잔인할까. 혹시 잔인성이 집에 문을 만들어 살면서 생긴 것은 아닐까. 집 문을 닫으며 마음도 함께 닫아버려, 심성이 점점 사악해져 간 것인가.우리 생태계 생명들은 다른 생명이나 물질을 먹어야 살도록 설계되어 있다. 살기 위해 타자를 죽이거나 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간사회의 현실은 권력, 돈, 명예, 오락, 유희, 범죄 같은 것들을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거나 취하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 이 행태는 슬기로운 삶과는 상반된다. 죄악이며, 생존법칙을 거슬리는 일이다. 때문에, 인간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 부르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인간이 제대로 된 호모사피엔스라면 적어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고, 미(美)적이어야 한다.동물들이 생존영역싸움을 해도, 그것은 생태계의 생존법칙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인간처럼 환경을 파괴하고, 죄악을 저지를 줄은 모른다. 인간이 정말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면, 제비집처럼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과 동식물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해, 사회와 나라와 지구별에 대해 나도 열린 마음이고 싶다.사람들이 마음 열린 집에서, 어우렁더우렁 사는 모습이 그립다.

2017-10-27

이 죄를 어찌할꼬

▲ 김병래 시조시인·수필가도덕적, 법률적, 종교적 규범에 위반되는 모든 행위를 죄(罪)라고 한다. 죄에 대한 사전의 풀이다. 한마디로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이 죄인 것이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짓을 하지 않는 것도 죄에 속한다. 그런데 `해서는 안 되는 짓`이나 `마땅히 해야 할 짓`에 대한 구분은 사회마다 다르고 시대를 따라 변해왔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삶의 형태가 다르고 종교적 규범이 다르기 때문이었다.인류에게 죄에 대한 개념이 생긴 것은 아마도 종교의 성립과 뿌리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류가 사회를 형성할 때부터 종교적 규범이 곧 인간 삶의 질서체계였고, 그에 따라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나 규정이 생겨났으리라는 추측이다.중세를 지나도록 대부분 문명의 발달은 종교의 성장과 궤를 같이했다. 윤리적 사고의 발전도 종교적 교리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종교적 규범이 곧 사회질서를 위한 규율이었고 삶의 의미나 지향성에 대한 가치이고 도리였다. 그에 따라서 죄의 개념이나 인식도 확고해져 갔다.근대 이후 과학문명의 발달 등으로 종교의 권위와 세력이 약화되자 각 문명권의 윤리적 규범도 많이 인본주의적이고 보편화 되었다. 기독교나 이슬람은 여전히 신에 대한 숭배를 최상위의 윤리로 삼고 있고 불교에서는 모든 동물의 살생까지를 금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죄의 개념은 `사람이 사람에게 저지르는 잘못`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종교를 떠나서는 선악의 규범을 적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죄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견지해온 가치관이다. 종교적인 계율을 어기는 사람은 종교적인 규제나 심판을 받을 것이고, 사회적인 규율을 어긴 범법자는 사회에 의한 제재를 받게 된다. 그리고 도덕적인 죄를 짓는 사람은 죄의식, 즉 양심의 가책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고대 사회에서는 자연재해나 질병 등의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종교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종교적인 신념이 그런 재앙들을 직접 막아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불안과 공포로부터의 위안을 받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그런 종교적인 역할은 상당 부분 과학기술로 넘어갔다. 이제 웬만한 자연재해나 질병은 예측, 예방, 극복, 치료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종교의 몫은 따로 남아있기도 하다.21세기에 들어선 오늘, 인류는 죄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을 할 수밖에 없다. 이제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직접으로 끼치는 해악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에게 가장 크고 확실하게 위협이 되는 것은 문명의 발달과 인구의 증가에 따른 각종 공해의 발생과 그로 인한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괴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서 인류는 물론 자연생태계까지 치명적인 위협에 놓이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지금에 와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자연을 파괴하는 것보다 인류에게 더 큰 위협이 없으니,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종교에서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죄라고 하듯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이 시대의 가장 중대한 범죄인 것이다. 하루하루 먹고 입고 거처하는 일이 다 죄업이고, 집집마다 골목마다 넘쳐나는 생활쓰레기가 다 죄의 부산물이다. 인류가 구가해마지 않는 찬란한 문명의 성과들이 모조리 죄의 산물이고 문명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안락과 편리가 죄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공기와 물과 토양을 오염시켜 시시각각 인류의 생존환경인 생태계를 훼손하는 온갖 매연과 오폐수와 쓰레기, 이 죄를 다 어찌할꼬.

2017-10-20

호석

▲ 김순희수필가 찻집 창문으로 내다뵈는 능선이 곱다. 어느 왕이 누운 자리인지 알기 힘드니 능이 아니라 총이라고 해야 하나. 멀리 경주남산을 배경으로 한 도시의 풍경은 고개를 돌리는 어디에나 공룡알 같은 능이 엎드려있다. 경주나들이를 할 때면 옆지기가 역사전공이라 늘 가이드와 함께하는 셈이다. 오늘은 무엇을 보여줄까 궁금해 하자 `나를 따르라`며 능을 보호하는 둘레돌의 변천사를 공부하자고 했다. 도착한 곳은 석탈해왕릉 주차장이다. 포항에서 출발해 경주에 들어서는 길가에 있어서 첫코스로 선택한 듯하다.신라 제 4대 탈해능에는 둘레돌이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들만이 능을 향해 허리를 구부린 채 빙 둘러서있다. 능을 만들기 시작한 초기라서 아직은 호석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나? 학생시절 배운 국사책에 써져 있던 역사조차도 다 기억하지 못하는 낙제생인지라 궁금한 것 투성이다.부족한 학생에게 남편은 호석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두 번째로 향한 곳은 우리에게 첨성대를 비롯한 많은 유산을 남겨준 27대 선덕여왕릉이다. 석탈해능에서 차를 타고 10분이 안 되는 거리에 있다.산중턱에 위치한 능까지 오르는 오솔길에 소나무가 만드는 풍경이 사람을 압도한다. 겨우살이 준비하는 청설모가 나무를 오르내리다 가을바람결에 땀을 식힌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놓았지만 비가 내리면 그곳이 물길로 변한다. 거센 빗물에 흙이 쓸려갔는지 뿌리가 다 드러난 것이 마치 고향집을 지키는 늙은 어미의 손등 같다. 되도록 밟지 않으려 애쓰며 발을 옮겼다.길 끝에 놓인 돌계단을 올라 둥긋한 능을 보며 가쁜 숨을 고른다. 애써 쌓아놓은 능의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을 끼워 맞춰 능 주변에 둘러놓았다. 크기도 고르지 않고 돌의 종류도 각각이다. 소박하게 두 단으로 천년 넘는 시간을 버텨준 돌과 눈을 맞추며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본다.산을 내려오다 보면 건너다보일 거리에 31대 신문왕릉이 있다. `뉴스페이퍼킹`이라며 아재개그를 무심히 던지는 남편가이드의 말에 울퉁불퉁한 돌을 신문지처럼 네모반듯하게 깎아서 호석을 둘러놓았으니 썰렁한 농담도 인정해주기로 한다.다섯 단으로 더 올라간 높이, 같은 종류의 돌을 같은 모양으로 다듬었고 단 위에는 얇고 넓적한 돌로 흙을 떠받혀서 마무리를 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여섯 단이라고 해야 하나. 그도 모자랄까 싶은지 둘레를 일정한 간격으로 직각삼각형의 돌로 받혀 놨다. 떡하니 버티고 있다고 해야 한다. 27대에서 31대까지의 세월이 이런 기술을 만들었구나싶어 호석 사이사이의 받침석에 핀 돌꽃을 손으로 한번 어루만져주었다.십여 분 더 울산방향으로 차를 달려 이제 호석의 끝판왕을 만나러 가자. 괘릉이란 별명의 원성왕릉은 능 둘레에 넓은 판을 붙여 12지신상을 새겨 넣었다. 그 걸로 모자라 무인석과 문인석을 입구에 배치해서 구성미를 더했다. 사자 두 마리도 양 옆을 차지해서 능을 지키고 있으니 38대로 내려오는 동안 기능과 멋 모두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아랍인을 닮았다는 무인석 옆에서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았다. 능선이 서라벌을 감싸 안고 가로누웠다. 이제는 느긋하게 쉬어가라고 나를 타이르는 듯하다.처음 호석이 나타난 27대까지 6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지만 31대왕까지 50년 만에 다듬어지고 단단해졌다. 38대 괘릉까지 호석이 발달한 몇 백 년의 시간을 한나절 만에 보려고 경주에서 울산가는 도로를 따라 길가에 위치한 능을 중심으로 일정을 잡았다. 우왕좌왕 하지 않고 한 길로만 달려가면 되니 이런 나들이도 꽤 괜찮은 것 같다.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은 서라벌이 아닌 경기도에 있다. 나라를 지키지 못했기에 고향에 누울 수 없었다. 재미난 역사지식을 알려 준 남편에게 신라시대 왕들도 마셨을 법한 차 한 잔 사주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두런거려야겠다.

2017-10-13

한가위가 더 기다려지는 이유

▲ 김동헌시인 한가위를 앞둔 9월말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분주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문중에서 벌초 공지가 왔다. 이제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문중의 고문으로 벌초에서 자유로워지셨다. 우리 가문에 아버지께서 최고의 연장자라는 말이다. 몇 년 전이었던가 문중 어르신들께서 벌초하시다가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이제 다음 차례는 아버지다”고 하셨는데 그 때는 농담 반 진담으로 들어서 그런지 별 대수롭게 않게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래도록 그 말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알 수 없으나 아버지께서는 그날 이후로 문중 모임에도 벌초에도 더 이상 오시지 않으신다. 성경에 다윗 왕이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유언에서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라는 말이 열왕기상 2장 2절에 나온다.모든 사람들은 모두 이 길을 갔고, 지금도 가고 있고, 앞으로도 갈 것이다.이 길에서 예외 된 인생은 아무도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게 될 아버지를 위해 오래전 계획해 놓았던 추모동영상을 만들었다. 먼저 아버지의 팔십평생을 인터뷰하고, 함께 해 오신 어머니의 삶을 조금 곁들였다. 일상에 바쁜 삼형제들도 모두 약속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부재중이었다. 마치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 속에 부재중이듯…. 아버지는 내 유년의 사진작가였다.터울이 5년씩 가지런한 삼형제는 아버지의 치밀한 가족계획 덕분에 성장하면서 위계질서가 확실하여 싸울 일이 별로 없었다. 인터뷰 속의 아버지는 삼형제가 살아온 연수만큼의 공평한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아버지를 회상하는 기억 속에서 장남은 자신도 모르게 감정의 굴곡을 겪기도 했으나, 삼형제는 모두 아버지라는 프리즘을 통해 유년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그때를 그리워하고 가족의 의미를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아름다운 소풍 같은 가을날의 한나절을 보냈다.빛바래 오래된 흑백사진 속에 부모님은 내가 결혼할 때보다 더 새로운 신랑 신부의 모습이었다. 이 한 장의 사진 속에는 함께 해온 50여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함께 해온 쉰 다섯 해의 세월을 되돌아본다. 높은 산과 깊은 강을 함께 건너온 부부이기에, 한결같은 사랑으로 동행해온 세월이기에, 함께 해온 세월만큼의 사랑으로 기억될 것이다.이제, 나도 아버지가 되어 지천명에 이르고 보니 부모님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가장 사랑했을 때는 `차마 사랑한다` 고 말하지 못했던 그 시절이 지나가고, 아버지라는 말,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가슴 한 켠에서 밀려온다. 살아가면 살아갈 수 록 더욱 그러하다.이번 포항문학 44호 기획 특집 `작가의 어머니를 찾아서`를 진행했다. 지역 작가 6인의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시인, 동화작가, 소설가로서 그들이 글 마당에서 노닐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어머니였을 것이다. 가장 기대고 싶었던 이름, 기대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머니였다.우리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의 생애가 얼마나 더 남아있는지 알 수 없듯이, 앞으로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한가위도 몇 번이 더 남아 있는지를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남은여생을 되돌아 볼 수 있듯이, 이번 추석은 가족들과 더불어 의미 있는,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추석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떨까?이번 추석을 더 기다려온 이유는 유난히 길어진 연휴 기간이어서도 아니고, 세상사는 일이 갈수록 만만치 않아서도 아니다. 비록 연로하시지만, 부모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이며, 사랑하고 공경할 기회를 주셨기 때문이다.

2017-09-29

오빠와 사는 와이푸들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텔레비전을 보다가 출연자들이 `와이푸`라는 말을 연발하면 채널을 돌려버리게 된다. 사석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공영방송에서도 공공연히 쓰이고 심지어는 탈북자들까지도 와이푸라는 말을 예사로 한다. 한때는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더니 요즘은 너나없이 `오빠`라고 한다. 외국 사람이 들으면 한국인들은 대다수가 가족끼리 결혼을 하는 줄 알 일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대한민국 표준어규정에 의하면, 이제는 당연히 `아내`나 `남편`이란 말 대신`와이프`나 `오빠`를 표준어로 정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교양이 있는`이라는 단서에 중점을 두어서 서울 사람 대다수가 교양이 없다는 전제를 하지 않는다면, 남녀 배우자를 일컫는 말로 `와이프`나 `오빠`를 표준어로 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아내`라는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데도 왜 대다수 남성들이 자기 배우자를 와이푸라고 하는 걸까. 아마도 아내란 말은 왠지 촌스럽고 와이푸라고 해야 세련된 식자층에 든 것 같은 사대(事大)적 열등의식의 발로이거나, 남들이 와이푸라고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따라서 하게 되는 부류가 대다수일 것이다. 어느 쪽이거나 우리말에 대한 일말의 긍지나 자부심도 없기는 마찬가지일 터이니, 모국어를 그렇게 천시하고 홀대하는 사람들을 어찌 기본적인 양식이나 교양을 갖춘 국민이라 할 수가 있겠는가.누가 뭐래도 나는 우리의 말과 글을 우리 민족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꼽는다. 고유한 언어가 없었다면 외세의 끊임없는 침략에도 불구하고 과연 수천 년 동안이나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올 수가 있었을까?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던 유대민족이 다시 뭉쳐서 독립된 나라를 세우면서 민족의 말이었던 히브리어를 복원하는 일을 우선으로 했던 것도 동족으로서의 유대와 동질성을 일깨우고 유지하기 위한 일이었다.중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말과 글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일제가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우리의 말과 글을 못 쓰게 한 것도 그것이 곧 우리 민족의 얼이요 문화와 전통의 근간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민족이 비록 간난과 치욕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동질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언어의 힘이라는 걸 누가 부인하겠는가?말이 곧 사람이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불량배들은 불량배의 말을 하고 사기꾼들은 사기꾼의 말을 한다. 물론 선량한 사람은 선량한 말을 하고 진솔한 사람은 진솔한 말을 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학벌과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걸핏하면 막말을 하거나 저속한 말을 내뱉는다면 그는 분명 천박한 인성의 소유자일 뿐이다.쓰레기나 오폐수는 자연환경을 오염시키지만 함부로 뱉는 말은 정신환경을 오염시킨다.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우리말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 정신상태의 현주소이기도 한 것이다. 비속어를 입에 달고 사는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터넷에 난무하는 말의 오염과 파괴는 결국 우리 사회를 폭력과 선정과 비리로 얼룩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욕설과 비속어뿐만 아니라 바른 말인 줄 알고 잘못 쓰는 경우도 말의 왜곡과 오염의 한 원인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되세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별하지 못하는 말버릇 등이다. 올바른 언어생활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모국어를 아끼고 가꾸는 일인 동시에 심성과 사고를 순화하고 바르게 하는 일이다.사회를 바꾸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고 사람을 바꾸려면 말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서 `바르고 고운말 쓰기 운동`을 벌이도록 제안한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2017-09-22

무인 건빵가판차량

▲ 강길수 수필가유리알 향수(鄕愁) 한 봉지를 샀다. 길을 가끔 다니면서 건빵 파는 차를 보았었다. 화물칸 뒷문을 열고 파는 건빵을 쌓아둔 밴 가판(街販)차량이다. 좌회전하여 무심코 달리다가 건빵가판차량이 갑자기 보이면, 위치상 차 세우기가 어정쩡하여 지나치곤 했었다.가판차량을 지날 때마다 옛 건빵 추억이 유리알처럼 향수를 자극했다. `다음엔 꼭 사야지!`하고 생각하며 달려가지만, 까마득히 잊고 살다가 그 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지나치며 건빵을 사지 못했다. 오늘은 다행히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건빵 생각이 나서 차를 멈추었다.건강에도 좋다는 보리건빵이다. 나는 아예 비상식량이란 구실을 달아 큰 종이포대에 든 건빵을 사고 싶었다. 생산자, 생산일자, 원재료 등을 내가 확인하는 동안 주인 만나러 운전석 쪽으로 갔던 아내가,“어, 이 차 사람이 없네요. 무인가판차량인가 봐요!”라고 말했다.“아! 그래?”하고 대답하는 순간, 저절로 가슴이 뿌듯해져 왔다.아내가 우선 작은 것 한 봉을 사 먹어보고, 또 사든지 하자고 해 그러기로 했다.투명 비닐에 포장된 건빵 한 봉을 손에 들고 쳐다본다. 낱개는 옛날 건빵 보다 조금 작고 얇아 보였으나, 모양은 그대로다. 입에 군침이 돈다. 우리 차에 돌아와 얼른 건빵 한 개를 입에 넣었다. 바로 옛 맛이다. 입 안에서 `아삭!`하고 부서지는 건빵의 담백함을 타고, 마음은 이내 옛 까까머리 때로 뛰어갔다.6·25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이 휴전된 후, 초등학교 시절….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를 해마다 넘으며 살았다. 산골 아이들에게 과자나 빵 같은 주전부리는 먼 꿈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건빵을 먹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며 자랐다. 한 해 한두 번에 그쳤지만, 건빵 주전부리하는 며칠간은 정말 행복한 나날이었다.삼촌 두 분이 6·25 참전용사로 군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촌들은 휴가 올 때 마다 건빵을 제법 여러 봉 선물로 가져왔다. 후일 내가 군에 입대한 뒤에야 안 일이지만, 그분들은 본인에게 지급되는 건빵을 조카들을 위해 아껴 모았다가 휴가 때 가져온 것이다. 그때는 누구나 군에 가면 마음대로 건빵을 먹으며 사는 줄 알았다.군에 입대해서 처음 건빵을 받았을 때도, 어릴 적 건빵추억이 떠올랐었다. 삼촌들이 비로소 고마웠다. 담배를 못 피우던 나는, 군에서 지급되는 화랑담배 대신 건빵을 받았다.동료들보다 건빵이 많아 주로 신참병들과 늘 나누어 먹었다. 건빵 받은 신참병들은 봉지 안에 든 별사탕을 또 나와 나누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사탕은 고된 병영생활의 샛별이었다.무인 건빵가판차량을 놓아둔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들판 한가운데나 다름없는 곳에서, 차량 무인가판을 할 마음을 어떻게 먹었을까. 소득과 지식수준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불신이 깔린 우리사회다.아내는 무인카메라라도 있을 거라 했지만, 추측일 뿐이다. 사람이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건빵과 돈을 훔치기라도 한다면, 도둑을 찾기가 쉽지 않을 현실을 주인도 모를 리 없을 터. 그런데도 그는 무인 건빵가판차량을 가져다놓았다. 아마도 주인은, 우리사회를 굳게 믿었으리라. 믿음에 희망을 걸고, 믿음과 희망을 사랑이란 밭에 심고 가꾸어내며 사는 분이리라.무인 건빵가판차량을 만난 것은, 나에겐 또 하나의 행운이다. 유리알 같은 건빵향수를 만난 기쁨에다 믿음, 희망, 사랑이란 사람의 세 덕(德)을 무인 건빵가판차량으로 묵묵히 실천하는 샛별이웃을 만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 마음에도 샛별이 내려앉은 기분이다.며칠 후, 우리부부는 건빵 한 포대를 더 사서 아이들과 나누었다.세상은 살펴보면 살만한 곳이 아닌가.

2017-09-15

진경산수문

▲ 김순희수필가 그림 한 장을 들고 내연산에 오른다. 겸재의 `내연삼용추`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다. 내연산은 온통 돌산이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에도, 물이 타고 흐르는 계곡에도 제각각의 바위와 자갈로 채워져 있다. 그 옛날 험한 길을 청하의 현감이었던 겸재는 가마를 타고 올랐다고 한다. 가마꾼들은 다름 아닌 보경사의 스님들이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이양반 저양반이 하도 자주 가마질을 시키니 스님들로서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지체도 그리 높지 않은 성미 고약한 양반들이 하는 짓이 볼썽사나워, 태우고 가던 스님들이 우연을 가장해 가마를 뒤집어 혼을 내주었다고 한다. 나는 겸재같은 호사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니 아픈 무릎을 달래가며 천천히 다시 산을 오른다.흐르는 물소리에 취해 오르다 보니 어느새 관음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폭포아래는 너럭바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물길을 돌리고 있다. 산에 오르던 사람들이 그림 속에 선비들 마냥 바위에 둘러앉아 일행들과 음식을 나누고 있다.여기쯤일까 싶어 그림을 다시 펼친다. 내연삼용추는 겸재가 청하 현감으로 있을 때 그린 여러 장의 그림 중 하나이다. 학소대 위로 계조암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세 개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삼용추는 잠용폭포, 관음폭포, 연산폭포를 아우르는 말이다. 관음폭포 곁으로 쏟아지는 소 옆에 경치를 감상하는 세 명의 선비와 그 수행원들이 그려져 있다. 그 뒤로 사다리가 놓여 있어 그 당시 정선도 연산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가파른 절벽을 올랐을 거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실제로 관음폭포 위로 그림 속 사다리를 닮은 계단이 있고 그 끝에 구름다리가 보인다. 연산폭포는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소리가 먼저 내 몸을 덮친다. 발걸음이 그 기에 눌려 조심스럽다. 폭포아래 서자 서늘한 기운이 바람을 일으킨다. 한참동안 그 아래서 가만히 물보라를 맞는다.고찰 보경사를 품고 있는 내연산은 경치가 수려해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찾는 명승지였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관광객들이 셔터를 누르듯 옛 사람들도 너나없이 석공들을 데려와 바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 앞에서 우리도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이제 정선이 앉아서 그림을 그렸을 만한 자리가 어디인지 찾아야 한다. 세 개의 폭포가 보이는 곳이니 반대편 바위일 것으로 짐작하고 그 주변을 살펴 자리를 잡는다. 겸재 특유의 도끼로 찍은듯한 강렬한 필법이 돋보이는 맨 아래 잠룡폭포와 그 위에 너럭바위, 소 밑에 사람들, 그 위로 관음폭포와 구름다리가 눈앞에 펼쳐진 경치와 어쩌면 이렇게 일치하는가.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진경산수화답게 모든 것이 손에 든 그림과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절벽에 가린 연산폭포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그 세월 동안 폭포의 물길이 바뀐 것인가. 조금씩 자리를 바꿔 보아도 두 개의 폭포만 보일 뿐 삼용추 중에 제일로 꼽는 맨 위의 연산폭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중국의 화첩을 보고 그리던 화보모방주의시절, 겸재는 명승지를 직접 답사하고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어떤 방면에서 무언가 처음 시도한다는 것은 기술을 넘어서는 눈을 가져야 가능해진다. 그는 눈으로만 경치를 감상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내연산을 그린 것이 아닐까. 절벽 뒤에 숨은 연산폭포까지 보이도록 구도를 잡아야 내연산의 진짜 절경을 담을 수 있기에 내연삼용추가 가능한 것이다.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 연산폭포를 눈에 보이도록 옮겨 그린 것은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압도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사실(寫實)에서 사의(寫意)로의 대전환이었다.가만히 겸재가 머문 자리에서 눈을 감는다. 삼용추 아래에서 분위기에 따라 깊이와 폭을 달리한 폭포의 연주가 울려 퍼진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2017-09-08

명품족이 되자

▲ 김병래 수필가·시인`명품족`이란 말이 있다. `이름나고 값비싼 의류나 소품을 주로 사서 이용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란 게 사전의 풀이다. 어원을 따지자면 명품 브랜드를 소비하는 부유층의 소비행위를 모방하는 미국의 고소득 여피족들을 일컫는 용어인 `럭셔리 제너레이션`을 들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냥 고가의 유명 브랜드를 특별히 선호하는 부류를 통칭해서 명품족(名品族)이라 한다. 우리나라처럼 소위 명품을 선호하는 국민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국제컨설팅업체 맥킨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명품 시장은 2006년부터 매년 12%씩 늘어나서 2011년까지 45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다는 통계다. 따라서 세계적인 명품 회사들이 한국을 주요 시장으로 인식하고 앞 다투어 매장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서울대 김난도 교수팀은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4가지로 분류했다. 먼저 `과시형`을 들 수 있는데, `나는 어중이떠중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우리나라 특유의 체면의식에 서열의식이 더해진 소비형태로 주로 신흥부자들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질시형`은 `나라고 못할 것이냐`라는 선망의식과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평등의식이 결합한 경우로, 열등감이 강한 중산층에서 많이 나타나며 무리하게 빚을 내 명품을 사들이기도 한다는 것. 그 다음 `환상형`은 초라한 모습을 사치품으로 감춰보려는 심리로 젊은이들과 유흥업 종사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는 유형이고, 끝으로 `동조형`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집단문화가 부채질한 경우로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김 교수는 이같은 소비유형들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기보다는 물질 문화가 길러낸 소산으로 봐야한다고 분석하고, 우리나라의 고가 명품 열기는 개인이나 계층의 도덕성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국가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아무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값비싼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볼 수 있지만, 명품선호 풍조가 경제적 계층 간의 위화감이나 상대적 박탈감, 과도한 집착으로 인한 개인 경제의 파탄 등 사회 전반에 적잖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에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청소년들까지 유명 브랜드에 현혹되어 불건전한 가치관을 갖게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니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하지만 돈이 없다고 명품족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명품이 어찌 옷가지나 장신구만 있겠는가. 그런 것들 말고도 자타가 공인하는 명품으로 음악과 미술과 문학 등의 예술작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명품 중의 명품인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음악에 심취한다든가 명화를 감상하고 불후의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고상하기 이를 데 없는 명품의 분위기에 젖어서 인생을 산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명품족이 아니겠는가.사람이 든 명품에 비할 바 없는 조물주의 작품인 대자연은 또 어떤가. 어떤 찬란한 보석을 밤하늘의 별과 견줄 것이며 어떤 값비싼 옷을 저 온갖 꽃들의 아름다움과 품격에 비기겠는가. 이토록 신비롭고 오묘한 오리지널 명품 속에 살면서 뭐가 아쉬워서 그까짓 옷가지나 장신구 나부랭이에 연연할 것인가.무엇보다 진정한 명품족이 되는 길은 명품을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명품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고가의 브랜드를 두른다고 사람의 품격이 높아지는 건 아닐진대, 사람자체가 명품이라야 진짜배기 명품족이 아니겠는가. 수백만 원짜리 명품 백을 들고 다니는 것보다 몇 만 원짜리 비닐백에 시집 한 권 넣어 다니는 것이 훨씬 더 품격이 있는 줄 아는 것이 명품족이란 얘기다.가을이 온다. 세계적인 명품 한국의 가을이다. 이 찬란한 계절에 명품 시를 읽고 명품 음악에 취하노라면 사람도 명품이 되지 않겠는가.

2017-09-01

두 얼굴

▲ 김주영 수필가거울을 본다. 마치 사진이 인화되듯 내 인식의 세계에 선명히 그려지는 이미지다. 사람들 얼굴은 대부분 좌우 면이 다르다.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의식적으로 왼쪽 얼굴이 많이 나오게 포즈를 잡곤 한다. 오른쪽보다 왼쪽으로 비스듬히 서서 찍은 사진이 실물보다 더 예쁘게 나오기 때문이다. 거울로 보던 이미지보다 예쁘게 인화되어 나온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얼마 전의 일이다. 얼굴 사진을 가지고 대칭하는 놀이를 해보았다. 콧잔등을 중심으로 좌우를 구분하여 나눈 다음 왼쪽 면을 복사해서 오른쪽 면에 붙여서 얼굴형을 만드는 놀이이다. 내 얼굴사진의 왼쪽 면을 복사해서 오른쪽에 붙였다.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얼굴의 오른쪽 면을 다시 대칭해 보았다. 한번쯤 뉴스에서 본 듯한 모습이다. 내 얼굴의 한쪽 면으로 만든 모습인데 전혀 다른 얼굴이 되었다. 얼굴은 좌우가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을 대칭해 보았을 때와는 달리 얼굴을 이용한 대칭이미지는 의외로 낯설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이 놀이는 인간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왼쪽과 오른쪽을 함께 보고 기억하기에 한쪽 면만 가지고 대칭시킨 이미지가 낯설게 보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누군가를 생각하면 그 사람의 눈이며 코, 입 등 기호화된 이미지가 인식의 세계에서 얼굴을 불러오듯 떠오른다. 얼굴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통과 기억의 이미지로 작용하고 모든 관계맺음의 시작이 된다.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기억하다는 말과 같다. 첫인상이 기억에 오래남고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외모에 신경 쓰기도 한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의 내면을 모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보이는 모습을 통해서 상대방의 성격이나 내면을 가늠해볼 수도 있다. 이미지 관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누구나 자신의 좋은 모습이 기억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사람과의 관계 맺음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마음과 달리 의식적으로 좋은 인상과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가면을 쓴 것처럼 행동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스위스 심리학자 융은 페르소나가 있기 때문에 개인은 사회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반영하고 주변세계와 상호 관계를 맺는다고 했다. 페르소나(persona)는 고전극에서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웃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정말 하기 싫은 일이 나에게 주어져도 해야 할 때도 있다. 연극을 하는 셈이다. 그런 모습을 가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려는 연극은 긍정의 힘으로 작용한다. 화가 날 때는 거울을 보며 활짝 웃어 본다. 두 얼굴이 거울 안에 있다. 웃고 있는 나를 찾아본다. 내가 임의로 만든 자아는 가장 밝은 모습으로 타인에게 보이지만 결국 나 자신도 밝은 모습으로 변화됨을 느낄 수 있다.생각이 곧 마음이 되듯 긍정의 생각은 얼굴에 나타난다. 오른쪽과 왼쪽 얼굴을 대칭했을 때 또 다른 모습이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나일까 아닐까 고민을 하는 것처럼 화가 나더라도 억지로 웃는 모습도 자신의 모습이다.화가 난 마음을 걷어내고 그곳에 웃음을 얹어보자. 의식적으로 화가 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다보면 화가 난 원인에 대해서 객관화된 생각을 얻을 수 있다. 자신도 알지 못한 내면의 지혜로운 생각은 객관화시킨 마음에서 만날 수 있다. 의식적으로 만든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항의할 수도 있겠지만 꾸며져 웃는 그 모습 또한 그 자신의 일부이며 전부이다.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늘 좋은 생각을 선물한 결과라 생각해도 된다. 당신의 진짜 모습은 지금 거울 안에서 바라보고 있는 모습, 늘 좋은 생각을 하고 활짝 웃는 바로 그 모습이다.

2017-08-25

어떤 텔레파시

▲ 강길수 수필가무척 덥다. 마른 장마철이어서 더 더운 기분이다. 마실 물을 페트병에 부어 주머니에 넣고 나선 등산길이다. 산 초입인데 벌써 얼굴에 땀이 난다.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 길가 이암 틈새에 작은 명아주 몇 포기가 가물에 시들어가고 있다. 손수건으로 얼굴 땀을 훔치며 별 생각 없이 전처럼 걷는다. 평탄한 길로 접어들자 목이 말라왔다.무조건반사 같은 동작으로 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고 물을 마시려 고개를 쳐들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뭉게구름 한 송이가 외롭게 떠 있다. 저 송이로 많은 구름이 몰려와, 빗님이 목마른 땅을 푹 적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물병을 입에 대었다. 그때, 조금 전 만났던 명아주가 떠올랐다. 비를 갈망하는 명아주의 이운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이 물이라도 나누어주었더라면 명아주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래, 물을 남겨 돌아오는 길에 꼭 나눠주자`고 마음먹으며 한 모금 마셨다. 한참동안 걸어가면서도 그 생각이 마음을 맴돌았다.반환점에 도착했다. 운동기구가 있는 곳이다. 늘 하던 대로 거꾸로 매달리기 운동부터 하였다. 두 아주머니가 오더니 가까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운동을 마치고 물 한 모금을 마시며 다른 의자에 앉았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천도복숭아가 세 개인데, 아저씨 한개 드세요”하면서 가져다주었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받은 것을 먹기 시작했다. 말랑하게 익어 참 맛있다. 가까운 등산길이어서 물 이외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하여 이 산에서 무얼 얻어먹는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기에 참 고마웠다. 먹는 사이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아주머니는 산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먹을 것을 잘 나누지 않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나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천도복숭아를 다 먹었다. 새콤달콤한 뒷맛에 입이 개운하다. 복숭아물 묻은 손이 끈적대어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물병을 드는 순간, 아까 본 시들었던 명아주가 또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앉은 바로 앞에 가뭄에 시든 풀 한포기가 보였다. 속으로 감탄하며 손 씻은 물이 이운 풀에 가도록 하였다. 시든 잎이 물을 머금으며 금방 생글생글 웃는 것만 같았다. 고맙다고 온몸으로 인사를 하구나 싶기도 했다.보이지 않는 소중한 비밀을 알아챈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서 나아가 우주 안에서,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존재들 사이에는 언제나 이적(異蹟)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하는 자각(自覺)이 그것이다.이어 이런 느낌들이 이어졌다. `아까 가뭄 타는 명아주 앞에서 내가 보낸 연민의 마음을 명아주가 느끼고, 명아주는 텔레파시로 아주머니 마음에 전달한 거야. 그 결과 나에게는 천도복숭아라는 선물을 가져다주면서, 또 다른 시들어가는 풀을 되살리게 했을거야. 때문에 명아주는 내가 돌아가는 시각에, 자기에게 물을 나누어 주리라는 사실을 느끼고 기다리고 있을 게야.`어떤 이들은 텔레파시 곧, 정신감응(精神感應)현상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이지, 사람과 동식물사이의 일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굳이 전문서적 내용을 들추지 않더라도,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식물도 인간과 정신교감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돌아갈 때 갈증에 극도로 시달리는 명아주에게 남은 물을 꼭 주어야 한다. 명아주의 갈망을 저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명아주에게서 거짓 마음장이라는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손에 든 병에 조금 남은 물을 확인하며 일어선다. 길 가 이암 틈새에서 가물에 잔뜩 이운 채, 목말라 서있을 명아주의 모습이 다시 눈앞에 아른거린다.발걸음이 빨라진다.

2017-08-18

반려동물

▲ 김병래 수필가·시인인류가 개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 말부터라 한다. 늑대 새끼를 데려다 길들인 것이 개의 시초일 거라는 추측이다. 가축으로 길러진 개는 사냥을 돕거나 침입자를 막고 썰매를 끄는 등 지역과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인류에게 도움을 주었다. 지금도 인명을 구조하거나 마약을 탐색하고 맹인을 인도하는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들이 많다. 옛날 우리나라 시골의 개나 고양이는 소나 닭처럼 그냥 가축이었다. 곡식을 축내는 쥐를 잡으라고 고양이를 길렀고, 집을 지키고 새끼를 많이 낳아 살림에 보탬을 주는 것이 개의 역할이었다. 먹이로는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나 보릿겨 따위가 고작이었고, 어린 아이가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똥을 누면 기다렸다가 냉큼 먹어치우기도 했다.개나 고양이가 애완동물로 불린 것은 사람들의 주거환경이 도시화 되어 실내에서 함께 살면서부터였다. 마을 전체가 이웃사촌이고 한 집에 너댓 명 이상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대가족 집안에서는 애완동물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어른들은 일에 바쁘고 아이들은 어울려 놀기에 바빠서 주변에 얼씬거리는 개들은 걸리적거린다고 걷어차이기 일쑤였다. 핵가족과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치열한 경쟁사회가 도래하면서 삭막하고 소원해진 인간관계가 애완동물에 집착하고 의존하는 성향을 만든 것 같다. 걸핏하면 속이고 배신하는 이기적인 인간들과는 달리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언제나 반겨주고 오로지 제 편이 되어주는 동물들에게 애착이 가는 건 일견 당연한 일로 보인다.애완동물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주인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체내에 옥시토신의 분비를 활발하게 하는가 하면 심장병 발병 위험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반면 2009년 8월 스칸디나비안 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애완동물이 행복감을 높이거나 우울증상을 낮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인간관계의 회복에 대한 노력이나 문제의식이 없이 단지 애완동물을 통해 소외감을 해소한다는 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애완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천만을 넘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개인적 취향을 넘어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애완동물 관련 산업도 성장일로에 있어 연간 시장의 규모도 2조원을 넘었다는 통계다. 애완동물에 드는 비용과 정성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못지않다고 하니 명실상부 가축이 아닌 가족인 셈이다. 그래서 애완동물 문제는 이제 정치적 이슈가 되기도 하고 공공장소에서의 관리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애완동물이란 명칭도 반려동물로 격상이 되었다.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인간과 애완동물 관계를 주제로 하는 국제 심포지엄에서 그 가치성을 재인식 한다는 취지로 제안된 `companion animal`이란 명칭을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들인 거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 일방적으로 선택해서 제멋대로 꾸미고 길들이는 대상을 마치 동등한 관계인 것처럼, 반려라고 하는 것은 가당찮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하는 경우는 고작 12%에 불과하고, 싫증이 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내다 버리는 유기견이 하루에도 250여 마리나 된다고 하니 반려동물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수 없다.명칭이야 어떻든 애완동물을 병적으로 애착하고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소음과 냄새에다 털을 날리고 위협을 가하기도 하는 동물로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사람도 적지가 않아서 가족 간, 이웃 간의 불화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분쟁의 소지가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동시에 애완동물에 대한 보다 성숙한 문화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7-08-11

독수리 바위의 꿈

▲ 김주영 수필가동해에서 보는 일몰은 황홀경이다. 포항 호미곶은 해맞이 장소로 유명하지만 해넘이 명소로도 손색이 없다. 해가 질 무렵 호미곶 서쪽 해안 길을 가다보면 동해바다의 낙조를 볼 수 있다. 호미곶 `상생의 손` 광장에서 호미곶길을 지나 해안가 구만길로 3km정도 가다 만나는 작은 포구, 구만 2리에 있는 구포(鉤浦)다. 사람들은 이곳을 `까꾸리개`라 부른다. 까꾸리는 갈퀴의 경상도 방언이다. 끝이 뾰족하고 ㄱ 자로 구부러진 모양도 `까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해안의 여느 포구와 달리 바닷물이 얕고 갯바위가 많다. 물이 얕아서 바위 주변으로 갈매기들이 많다. 예전에는 갯바위 언저리까지 청어 떼가 밀려와 까꾸리로 긁어 담았다하여 `까꾸리개`라 불렀다. 포구 옆에는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바위에 앉아 바다를 굽어보는 독수리 형상이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매일 매일 꿈을 꾸는 바위. 해넘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다보면 독수리의 꿈을 보는 듯하다. 미동도 없이 웅크려 앉아 바람소리며 파도소리를 꾹꾹 눌러 자신의 몸속에 시간을 축적시키며 날아오르기 위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풍화의 힘을 빌어 날개의 근육을 키우고 있는 바위의 시간이 느껴진다. 새의 꿈을 꾸는 독수리바위는 파도와 바람에 날개를 매만지고 있다. 저 바위에 앉아 바라본 해넘이는 얼마나 될까? 몇 번의 노을을 더 보내야 날아오를까?1월의 매서운 겨울바다에서 새해 소망을 담아 호미곶 일출을 보았다면 이글거리는 여름바다에서는 꿈을 담아 독수리바위의 일몰을 본다. 호미곶의 양력 8월은 일몰풍경이 절정이다. 해가 지는 방향과 각도가 독수리의 부리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붉은 해가 독수리 입안에 잠시 머무를 때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것 같다. 순간, 독수리가 하늘로 날 것만 같고 실제로 바위가 꿈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독수리바위에서 보는 일몰은 또 다른 설렘이 있다. 포구를 중심으로, 월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호미바다에 달이 뜨면 멀리 배경으로 보이는 포스코쪽 하늘에는 해가 진다. 바다를 풍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해와 달이 푸른 바다위에서 떠있는 장면은 자연이 그려내는 한 폭의 일월도이다. 비록 반달이지만 경이로운 풍경이다. 물때와 보름날을 잘 맞추면 멋진 일월도를 볼 수 있기에 구름이 없는 날은 늘 이곳을 그리워한다. 어떤 날은 월출과 일몰의 시간 간격이 넓고, 바닷가 날씨가 그렇듯 어떤 날은 갑자기 구름이 끼어서 볼 수 없지만 올 8월에는 그 풍경을 꼭 보고 싶다. 호미곶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이곳을 호미바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이곳을 일월바다라고 부른다. 해가 독수리의 품안에 머무는 순간은 아주 잠깐이다. 바다의 생명력과 해와 달의 기운을 모두 담은 사진을 찍고 싶은데 눈으로 보는 감동을 사진으로 고스란히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내 솜씨의 부족함을 새삼 느낀다.카메라를 내려놓고 바람에 조각되는 독수리 날개를 보며 바위가 축적하는 시간을 호흡해본다. 어느 날 아침 이곳을 찾아오면 무한천공 어딘가로 날아가고 바위의 흔적만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구포포구의 일몰을 좋아하는 것은 독수리가 꾸는 꿈을 볼 수 있어서다. 그 꿈을 보면서 나도 접었던 꿈을 다시 꾼다. 반복되는 일상과 계획한 일들의 실패에서 마음이 허약해질 때 자연은 늘 치유의 새 힘을 준다.서해안에서 낙조를 보면서 혼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비움`을 배웠다면 동해의 독수리바위에서는 다시 솟아오르는 `비상`을 배운다. 꿈이든 일이든 열정만 가지고는 다 이룰 수 없다.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 인내와 고독을 견디는 일이다. 바로 자신에게 내재된 시간의 힘이다. 삶에서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내심임을 비상을 준비하는 독수리에게서 배운다. 나도 언젠가 푸른 하늘을 비행하는 한 마리 독수리가 되리라.

2017-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