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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제로 살다 사제로 죽게 하소서

▲ 강길수 수필가지인 부부의 자녀 삼남매 중 외아들이, 지난 주 대구 신학교에서 사제(司祭)로 서품(敍品)됐다. 신학교에 입학한지 십년 만에 새 신부(神父)가 된 것이다.사제수품(受品) 후 며칠 전, 그 첫 미사와 축하 행사가 이곳 성당에서 있었다. 우리 부부도 참석했다. 거룩한 미사를 마치고, 축하식이 열렸다. 인사말에서 갓 사제가 된 젊은 신부는 참석한 신자들에게 이렇게 부탁하며 말을 마쳤다.“교우 여러분, 제가 사제로 한평생을 살다가 사제로 죽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해 주십시오!”나는 이 말을 들을 때, 눈시울이 저절로 뜨거워졌다. 분명 영광스럽고 감사하며, 축하하고 축하받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날인데도 말이다.우선, 외아들을 사제로 봉헌(奉獻)한 지인 부부의 지극한 믿음이, 바로 가슴에 전류처럼 찌르르 타고 흘렀다. 내가 새 사제의 아버지라면 외아들의 신학교 입학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일생을 하느님 뜻에 따르고 신자들을 양치기처럼 돌보며, 독신으로 살아내야 하는 사제의 인생길. 그 길이 얼마나 크고 진한 고난의 길, 희생의 길이 될 것인지….또한, 젊은 사제의 말이 마치 내 아이들의 일이나, 우리 가족의 일, 나의 일, 아내의 일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것은, `자녀로서, 가족으로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한평생, 그리고 인간으로서 한평생 제대로 살다가 죽게 해 달라`는 기도 부탁과 같이 들리기도 했다. 내가 여태 아버지의 몫, 남편의 몫, 가장의 몫, 인간으로서의 몫을 제대로 하며 살았는지 되묻게 했다.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자기 몫을 하도록 되어 있다. 사람의 자기 몫은 직분(職分)을 넘어서는 본질적 개념이기에 좋든, 싫든 걸어가야 할 길과 같은 것이리라. 시간이 보이지 않지만 흐르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거부할 수 없이 한 존재로서 감당해야 하는 몫이기도 할 것이다.젊은 사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남편과 아버지의 직분을 포기하고 사제의 직분을 선택했다. 사제직과 혼인한 셈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는 일생 독신으로 성직(聖職)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 길은 고독과 희생으로 점철된 봉사의 길, 모든 이를 품어야 하는 고통과 사랑의 길이 되어야 하리라.세상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속한다. 희생의 톱니로 맞물려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운행되고 있는 것이다. 너와 나는 희생이란 톱니로 서로 소통하고 하나 되어 세상공동체를 이룬다.생명은 다른 생명들의 희생 위에 존재한다는 준엄한 사실…. 오늘 새 사제가 봉헌한 거룩한 첫 미사는 생명은 다른 생명의 희생의 대가로 산다는 소름 끼치는 사랑의 진실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삶의 `거룩함` 안에는, 다른 존재의 죽음이 뒤따르는 `잔인함`이 숨어있다는 진리가 눈물 되어 흘러내렸다.자연의 아름다움도, 찬란함도, 화려함도 먹고 먹히는 잔인함과 거룩함이 함께 해야 가능하다는 신비 앞에 오늘 또 마주 섰다. 새 사제는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거룩한 사랑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나는 마음을 다독였다. 삶은 죽음의 다른 모습이며, 죽음은 삶의 다른 모습이라고…. 그리고 기도하였다.`하느님, 새 사제가, 사제로 살다가 사제로 죽게 하소서!`

2017-02-24

쑥떡

▲ 김주영 수필가동생은 떡을 좋아한다. 이맘때가 되면 쑥떡을 사와서 같이 먹자 한다. 떡을 먹을 때마다 “옛날에 먹던 그 맛이 아니야” 하고 습관처럼 말한다. 떡에 콩고물을 묻혀 먹으면 그 맛이 달다. 고물의 단맛과 잘 어우러지는 떡이 쑥떡이다. 쑥의 쌉쌀한 맛과 콩고물의 고소함이 어우러지면 봄향기가 입 안 가득 번지는데 예전의 `그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인간의 입맛까지도 변화시키는 모양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동생은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다. 어릴 적 동생과 나는 봄이 다 가도록 집안에서만 놀아야했다. 동생 돌보기는 내 몫이었기에 봄방학이 되어서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방학 내내 우리들의 간식은 으레 쑥떡이었다.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서 콩고물 듬뿍 묻힌 떡을 먹으며 가루로 범벅이 된 얼굴을 보며 깔깔 웃었던 기억들. 이월에 쑥떡을 해먹는 풍습은 영남지방이나 바닷가 지방에서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풍습이다. 이월 초하루에 떡을 해서 나눠먹는 것은 바람을 관장하는 신이 내려온다는 속설 때문이다. 해안지방에는 이월을 `영등할미달`, `바람달`이라고도 부른다. 음력 이월 첫째 날을 부르는 이름은 실로 다양하다. `이월 초하루, 머슴날, 농군(農軍)의 날, 바람님 오는날과 가는 날(풍신날), 바람이 불면 안 되는 날, 영동할머니 날, 영등할머니 제삿날, 이월 밥 해 먹는 날, 이월 할매 먹는 날` 등 농사와 바람에 관련된 이름이 주를 이룬다. 농사와 어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자연의 현상이기에 자연스레 이월을 바람달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바람을 관장하는 신을 할머니로 호칭했으니 초하루에 쑥떡을 해먹는 것은 할머니에게도 좋은 떡이라고 생각한 마음이 담겼는지도 모르겠다. 단군신화에도 곰은 쑥과 마늘을 먹고 여자가 됐다하니 쑥은 분명 여자에게 좋은 음식인 것 같다.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피를 맑게 하고 자궁을 따뜻하게 하여 여자에게 좋은 효능이 있다 한다.이월에 떡을 할 때 쓰는 쑥은 말린 쑥이다. 쑥은 날씨가 더워지면 독성이 생기기에 이른 봄부터 단오까지만 채취한다. 쑥은 응달에서 자란 햇잎이 부드럽고 향도 좋다. 채취한 쑥들은 데쳐서 바람이 서늘한 곳에서 말려야 한다. 곰팡이가 피지 않게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 좋다. 잎이 여린 쑥은 살짝 데쳐서 냉동시켰다가 필요에 따라 음식에 넣어 먹어도 된다. 얼린 쑥은 향이나 식감이 크게 변하지 않으니 제철일 때 넉넉하게 갈무리해두면 좋다. 꽃샘추위 속에 조금씩 봄기운이 퍼지면 마른 잔디 밑이나 양지쪽 가시덤불 아래에서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쑥이다. 겨우내 혹한을 이기고 초봄의 햇살 아래 막 연한 촉을 내미는 쑥. 참으로 귀한 풀이다.창에 스미는 햇살에 봄 내음이 난다. 밭에는 곧 애쑥이 올라올 것이다. 음식은 제철에 먹는 것이 더없이 좋다. 쑥은 약으로서의 효능도 뛰어나니 자연이 주는 보약이다. 해쑥을 넣어 끓인 쑥 된장국의 쌉쓰레한 맛은 겨울 동안 잃어버린 입맛도 찾아 줄 것이다. 올 봄에는 쑥을 캐서 떡을 해먹어야겠다. 가까이 살아도 이제는 어릴 적 사소한 일로 마음껏 웃던 추억들이 별로 생기지 않는 듯하다. 봄 햇살이 좀 따스해지면 동생과 쑥을 캐러 가야겠다. 등이 따뜻해지도록 쑥을 캐다보면 바구니 가득 또 새로운 추억이 담기겠지. 겨울 찬바람처럼 움츠러들었던 마음에도 자주 만나고 부대끼다보면 해쑥 같이 파릇한 정이 돋을 것만 같다. 애쑥에 쌀가루를 살짝 버무려 된장을 넣고 보글보글 된장국을 끓이고 쫀득하고 찰진 쑥떡을 내어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어느새 마음이 쑥밭에 나가 연한 쑥을 뜯는다.

2017-02-17

참소유

▲ 김병래 시조시인 몇 년 전에 입적하신 법정스님을 흔히들 무소유로 살다 가신 분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분처럼 `많은 것`을 가졌던 사람도 드물 거라는 생각이다. 부동산으로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손수 지은 암자가 있었고, 자신의 명의로 등기를 하거나 주지의 자리에 앉지는 많았지만 길상사란 절을 창건하기도 하였다. 그보다 더 부러운 것은 강원도 산골의 오두막인데 집이야 작고 초라했지만 인근 일대의 임야는 그 가치를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재산이었다. 그 산과 계곡이 누구의 명의로 되었건 철따라 피고 지는 초목이며 온갖 벌레와 짐승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햇빛 달빛 별빛에다 고요와 어둠까지, 그 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져 사는 동안은 스님의 소유나 다름이 없었다.스님의 동산 또한 그에 못지않았다. 많은 저서의 판권이나 인세가 문제가 아니라 수백만 독자와 스님을 따르고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 역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재산이었다. 법정스님이 보여주신 것은 그러므로 `무소유`가 아니라 `참소유`였다는 생각이다. 참소유란 올바른 소유요 진정한 소유라는 뜻으로 내가 만들어본 말이다.무엇을 잘 소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의 진가(眞價)를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알아야 소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진가란 왜곡된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그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말한다. 산과 들을 단순히 토지나 임야의 개념으로만 따지는 것은 본질적인 가치평가가 아니다. 그것에서 일어나는 온갖 자연현상이야말로 진정한 가치인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물품도 그렇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작품도 그것의 진가를 모르는 사람에겐 한갓 쓸모없는 물건에 불과할 뿐이다.참소유란 진정한 가치를 소유하는 것인즉 진가를 모르는 사람이 참소유에 이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비록 그 진가를 안다고 해도 꽁꽁 숨겨두기만 해서는 온전한 소유가 아니다. 금고 속에 넣고 이중삼중 자물쇠를 채워두는 것은 보관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진가를 알았으면 그것을 용도에 맞게 활용하는 것이 제대로 된 소유다. 돈을 주고 사서 자기 이름으로 등기를 해 놓았다고 산과 들을 소유한 것이 아니며 금고나 은행에 쌓아만 둔 돈은 종잇장과 다를 게 없다. 참소유란 진가의 발견이자 활용이며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기도 한 것이다.무엇에건 연연하거나 집착하는 것은 참소유가 아니다. 그것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유 당하는 것이며, 재물이나 권세나 명예에 집착하고 연연하는 것은 그것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는 것이다.가장 완전한 소유는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물아일체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유라 할 것인데, 그것은 이미 종속의 관계를 벗어난 것이니 소유라는 개념자체가 소멸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주만상은 종속이 아닌 유기적인 관계로 형성되어 있고 사람도 그 일부일진대, 사람이 무얼 소유한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요 망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무소유란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새길 수도 있겠다.요즘 우리나라를 온통 뒤끓게 하는 국정농단 사건도 부당한 방법으로 필요이상의 것을 소유하려는 헛된 욕망이 빚어낸 사건에 다름 아니다. 우주만상은 내가 태어나가 전에도 있었고 죽은 후에도 영원할 것인데 잠시 맺혔다 사라지는 이슬 같은 인생이 무얼 소유하겠다고 아등바등 하는 게 얼마나 가소롭고 어리석은 노릇인가.

2017-02-10

나무의 안부

▲ 김주영 수필가주공아파트 재개발 현수막이 걸렸다. `이주가 늦어지면 사업이 지연되므로, 이주 기간 내에 이주할 수 있도록 적극 협조` 라는, 이사를 권유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걱정이 앞섰다. 모두가 이사를 하고 나면 나무들은 어떻게 될까? 나무들은 심어지면 그때부터 온갖 힘을 다해 살아낸다. 뿌리를 내리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폭풍우와 눈보라를 이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아파트가 지어지고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나무들도 모두 옮겨 심어지겠지? 몇 해 전 사무실 마당가에 서 있던 이십여 그루 향나무를 옮겨 심을 일이 있었다. 생긴 모양이나 수령으로 보아 비싼 가격에 팔릴 거라 생각했지만 몇 군데 농원주가 와서 보고는 그냥 가버렸다. 나무를 옮겨 심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비싼 값은커녕 공짜로 준다 해도 가져가지 않았다. 베어버리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당을 사용해야하기에 비용을 부담하고 나무를 옮겨 심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향나무의 터전은 그 땅을 이용하려는 나 때문에 바뀌게 된 것이다. 나무가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곳의 시공간은 나무의 것이다. 나무 목(木) 한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팔을 벌리고 모든 것을 품고 서 있는 모양이다. 나무를 옮겨 심는 날, 나는 막걸리를 넉넉히 준비했다. 일하는 분들의 새참으로도 준비했지만 나무들의 안녕과 헤어짐을 위해 술을 붓고 싶었었다. 나무에게 강제 이주되는 상황을 잘 받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는지도. 그렇게 나무가 내어준 자리에 터를 잡고 살았었다.개발은 나무의 터전을 바꾸기도 하지만 시공간의 풍경도 바꾸어버린다. 휑하다. 창포사거리의 풍경이 바뀌었다. 아파트 주변의 나무들이 모두 사라졌다. 울타리로 이용된 나무들과 화단에 정원수로 심어졌던 나무들이 한 그루도 남지 않고 베어졌다.옮겨 심을 시간도 충분히 있었는데 베어버리는 것만이 능사였나. 시공간의 주인은 나무의 것인가? 아파트 재개발 업자의 것인가? 이주 기간 내에 이주할 수 있도록 적극협조 하지 않았다는 이유의 형벌치곤 너무 가혹하다. 나무를 옮겨 심는 것보다 베어 버린 선택. 인간의 이기심으로 합리화된 손익계산 방법이다. 예부터 이 터에서 살았던 나무들의 시간들을 경제 논리로 계산했다니. 재개발이 시작되면 가난한 누군가는 또다시 변두리 전셋집을 전전할 것이고 딱지꾼들은 웃돈을 얹어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지만 이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왔던 나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건축법에는 대지의 조경에 대한 법령이 있다. 건축물을 신축하고 사용승인을 허가받는 절차에 조경에 대한 법령을 정해 놓은 것이다. 건물 사용승인 절차에 나무를 심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면 건물을 철거할 때도 나무를 옮겨야하지 않는가? 준공 후 조경에 대한 관리는 이뤄지지 않는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내는 것은 나무의 몫이라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우리가 나무에게 주는 보답치곤 너무나 잔인하다. 아파트를 짓고 자연과 친화적인 삶을 추구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는데 재개발을 할 때는 누구의 이익을 생각한 것인가? 베어내어진 나무들이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 하겠지만 옮겨 심는 것이 법으로 정해졌다면 이렇게 무참하게 베어냈었을까?나무들이 사라진 건물들이 흉물스럽다. 철거된 자리에 다시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베어낸 자리에 나무를 다시 심는 우리들이다.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명목으로 나무를 옮겨 심고 그 나무들을 통해서 다시 위안을 받고 살아갈 것이다.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들의 안부를 듣는다. 도심 속 자연친화적 아파트의 광고 현수막이 곧 걸린다고.

2017-02-03

나이를 먹자

▲ 김병래시조시인 다시 해가 바뀌어서 누구도 예외 없이 한 살씩 더 나이를 먹었다. 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야 한 살을 더 먹는 것이 좋은 일이겠지만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적은 사람일수록 나이를 먹는 일이 결코 달가울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싫어하고 외면을 해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고 사람의 나이일진대, 기왕에 먹는 나이를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잘 먹는 것인지 한번쯤은 생각을 해 볼 일이다.젖먹이 아이들은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다. 가족은 물론 이 세상 모든 것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이건 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하고, 그게 안 되면 울고 떼를 쓴다. 그야말로 인격적으로 가장 유치(幼稚)한 단계인 것이다.한 살씩 나이가 들면서 세상 모든 것이 자기 맘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고, 자기 말고도 자기와 비슷한 남이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그때쯤 유치원에도 다니게 되면서 자기가 아닌 남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말하자면 처음으로 사회성(社會性)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성숙한 인격체를 길러내자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의 목표다. 그래서 초, 중등 교육과정은 기술이나 기능의 습득보다는 전인적인 인성함양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교육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교육현실은 이미 그런 목표를 많이 벗어나 있다. 입시위주, 학과성적과 경쟁위주의 교육에서는 결코 인성의 함양을 기대할 수가 없는 일이다. 교육이 그러한 것은, 인격이나 품성보다는 학벌이나 기능을 중시하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서다. 오늘과 같은 경쟁사회에서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 무질서와 부조화, 권모술수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가 되었다. 정의니 인격이니 품성이니 하는 말조차가 어딘가 비현실적이고 무기력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는 실정이다.인간(人間)이란, 말 그대로 혼자서는 될 수가 없다. 사람(人)과 사람의 사이(間),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만 `인간(人間)`이라는 개념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인간, 인간다운 인간이란 그 사람이 갖춘 사회성의 정도에 따라서 평가될 수밖에 없다. 남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느냐,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정신연령과 인격의 정도를 재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흔히들 학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곧 훌륭한 인물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장관이나 총리의 인준을 위한 청문회 같은 데서도 거듭 확인을 했듯이, 우리 사회의 최상위 지도층 인사들 중에서도 제대로 인격을 갖춘 사람을 찾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소위 출세와 성공으로 일컬어지는 상당한 부와 권세와 명예를 성취한 사람들 중에서도 그 인격과 정신연령에 있어서는 유치원 아이들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경우를 얼마든지 본다. 나이를 먹는 만큼 성숙해 지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치졸해지는 퇴행현상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가 않은 것이다.정신적 성숙의 과정을,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관계중심적 사고로,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개인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이기적인 것에서 이타적인 것으로 이행해 가는 과정으로 본다면, 오늘 내 인격의 키는 과연 얼마이고 정신의 연령은 몇 살이나 되는지, 또 한 해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2017-01-20

겨울, 이팝나무에게 말을 걸다

▲ 김주영 수필가이팝나무에 꽃이 피는 오월이면, 흥해 향교산은 마치 폭설이 내린 듯 온산이 환해진다. 파르스름한 빛을 살짝 띤 꽃숭어리를 달고 군락지를 이룬 모양새가 함박눈이 쌓인 듯하다. 꽃이름은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에 꽃이 피기에 입하목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꽃이 핀 모양이 이밥(쌀밥)을 담아놓은 듯하다`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입하는 양력으로 오월 초순이고 음력으로는 사월에 들어가는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이다. 바람은 서늘하고 햇살은 보리 익기에 좋을 만큼 따뜻한 시기이다. 곡식들을 저장해놓은 뒤주가 바닥을 드러내는 보릿고개 무렵, 그 시기에 피는 꽃이 이팝이다. 꽃잎이 마치 이밥(쌀밥)처럼 보인다. 이팝이라는 이름에는 절망 끝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것 같다. 보리가 익을 무렵 논농사가 시작된다. 허기진 배를 달래가며 모를 심다가 아픈 허리를 펴면, 하얗게 핀 이팝꽃에 허기짐이 더해졌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면 하얀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서러운 꿈. “올해는 농사가 대풍이 들것네” 꽃을 보며 한해 농사를 점치곤 했으리라.내가 이팝나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열한 살쯤 가을이다. 삼척에서 떠나와 흥해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도 헤어졌다.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슬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대문 밖에 떡하니 서있는 키 큰 나무였다. 엄마는 마당이 있는 집이라 꽃이며 채소를 키울 수 있다고 좋아하셨지만 나는 마당에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산 아래 집이 있으니 큰 나무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 방문을 나가는 것도 두려웠다. 야단을 맞아가며 다닌 등하교 길, 나무 근처를 오갈 때는 땅만 보고 다녔다. 그렇게 그 해 겨울방학이 될 때까지 나는 제대로 하늘을 올려다보지 못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셨을까? 아버지는 산에 놀러가자고 하셨다. 무서워서 싫다했지만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계단이 있다. 이사하고 처음으로 아버지 손을 잡고 함께 계단을 올라가보았다. 마음속으로 계단을 헤아리며 따라 오르다보니 무서움을 잊을 수 있었다. 어렵게 내딛은 걸음이었지만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우리 집 마당도 보이고 나무들도 보였다. 아버지는 나무와 친해지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쭈뼛쭈뼛 손을 내밀어 나무와 수인사를 나누던 그날, 처음으로 나무의 이름이 이팝이라는 걸 알았다. 그 후 몇 번을 더 아버지가 나를 산에 데려가 주셨고 그렇게 나는 나무와 친해질 수 있었다. 그때부터 희망의 나무였다. 친구가 없었던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고, 속상한 일로 찾아가면 등을 내어주곤 했다.겨울 이팝나무에 하얗게 함박눈꽃이 핀 것을 처음 본 것은 아버지가 산에 가신 후 영원히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해였다. 눈 구경이 힘든 이곳에 그해는 몇 번의 폭설이 내렸다. 그 후, 눈도, 꽃도 나무도 다 보기 싫어졌다. 꽃이 피는 봄날도, 눈 내리는 겨울 숲도 모두모두 잊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팝나무 아래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그 후로 나는 이팝나무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았다.다시 찾아간 겨울 숲, 이팝나무 아래에 서니 꼬마아이가 그곳에 있다. 나무 밑동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다. 어릴 적 그때도 아버지 손을 잡고 나무에 기대어 지는 해를 본 적이 있다. 칼바람이 부는 날이었지만 손을 잡고 나무에 기대었을 때 등이 따뜻했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등을 기대고 나즈막이 나무에게 말을 걸어본다. 이팝나무 삭정이처럼 떨어져 나가는 기억들. 기억들을 고봉밥처럼 담아 허기를 채우고 싶다고.

2017-01-13

시간 남기는 법

▲ 강길수 수필가칠년 전 사월 어느 날, 한 평생교육문화센터의 서실(書室) 문을 처음 들어섰었다.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그 중 하나로 붓글씨 쓰기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우연히 보게 된 광고지를 보고 그리하였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두 시간씩이 연습시간이었다.첫날은 `가로 직선 긋기 연습`을 했다. 선생님이 습자지(習字紙)에 쓴 붉은 색 체본(體本)을 본 삼아 그었다. 다음 날은 `세로 직선 긋기`를 하였다. 이어 `한 일`자와, 한글 `ㅣ`와 같은 형식의 선 긋기를 선생님이 인정할 때 까지 이었다.드디어 숫자 등 쉬운 글자부터 쓰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해서체(楷書體)다. 중학교 땐가 잠시 `습자연습`을 해 본 게 전부인 나였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잘도 갔다. 약 다섯 달이 흐른 후에야, 나는 체본에 날짜와 글자의 뜻과 소리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훗날 혼자 연습 할 때,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시작한 첫날의 연습지에는, 그날 쓴 것인지, 후에 쓴 것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2009. 4. 16(木) 시작, 유네스코 포항 평생교육문화센터`라고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었다.직장 일을 할 때는 육하원칙에 따라 일을 빈틈없이 기록하고 처리한다고 평 받던 내가, 정작 자기 일에는 왜 그렇게 어눌했던지 모르겠다. `다락 루(樓)`자가 있는 것은 `2009. 9. 29`로 날짜가 쓰여 있다. 또 `잠잠할 묵(默)`자가 있는 것이 그 해 10월 15일 쓴 것이다.`이을 속(續)`자를 쓴 것이 같은 해 10월 27일의 연습지다. 글씨가 제법 늘었던지 선생님은 이 무렵부터 의례적 격려이겠지만, 내게 `잘 쓴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동료들도 `명필 나오겠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 집에서 복습으로 써 본 것은 딱 한 번에 지나지 않았던 나다. 일주일에 두 번 쓰는 것으로 잘 쓴다는 소리를 들으니, 미안하기도 했으나 내심 기분도 좋았다. 보통, 한 체본에 서너 장씩 쓰고 넘어갔다. 선생님의 글자를 닮아 가는지 나로서는 잘 몰랐다.같은 무렵, 한 어린이집에서 한자를 한 학기 가르친 일이 있다.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서 받은 학모양의 편지가 정겹고 재미있었다. 고마워 기념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내친김에 내 붓글씨 사진도 남기기로 하고, 장롱에다 쓴 습자지들을 세로로 붙이고 사진을 찍었다. 쓴 일자별로 습자지를 찾아 펴고 붙여, 사진 찍는 작업은 시간이 꽤나 걸리는 성가신 작업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나간 삶의 모습을 남긴다는 기쁨도 있었다. 한 사진을 찍는 순간, 이런 깨달음이 문득 들었다.`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에겐 흘러가지만, 무엇이건 하는 사람에겐 남는 법이다!` 하고.세월이 제법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의 일 중 대부분은 시간을 남기는 활동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활동의 전 분야에서 기록과 제작, 창작, 보관 등 시간을 남기는 일은 유사 이래 계속되어 온다. 가정, 직장, 공공기관, 박물관, 도서관, 전시장, 공연장, 연구소 등 사람이 살고 일하며 쓰는 공간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가 시간을 남기는 것들이다. 시간은 보이거나 들리지 않게 예외 없이 흐르지만, 지성(知性)으로 사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이거나 들리는 대상물로 변화시켜 남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 아닐까. 그리고 역사는 무엇이건 하는 사람 곧, 시간 남기는 법을 실천하는 이들에 의해 이루어져 간다고 믿어진다.나는 생각했다. 사람은 시간을 남기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2017-01-06

겨울나무처럼

▲ 김병래시조시인 잎을 다 떨군 나무들이 겨울바람 속에 묵묵히 서 있다. 나무들에게도 어떤 느낌 같은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서운 삭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앙상하게 서 있는 모습은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사람들도 좀 적막해져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아야 할 것 같다. 망년회니 해맞이니 부산을 떨고 몰려다니는 것은 겨울의 분위기에 어울리지가 않는다. 한 해가 기울고 새해가 시작된다는 것은 대자연의 섭리에 따른 일월성신의 운행에서 비롯된 시간개념이다. 초목과 금수(禽獸)가 그 법칙에 따라 생육과 소멸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도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삶의 모습과 태도를 바꾸어 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적절한 일이 될 것이다.올해는 여느 해보다 어둡고 어수선한 연말이다. 가뜩이나 불황의 늪에 빠진 경제사정으로 다들 아우성인데,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국정농단 사실이 드러나면서 백만 군중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몰려나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우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대통령의 자질에 대해서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국가원수의 자리에는 적어도 건강하고 정상적인 식견과 품성을 가진 사람이 앉아야 하는 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피를 나눈 형제들과는 담을 쌓고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최태민과 그 가족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서 살아온 것도 그렇고, 막중한 국정의 운영에까지 상당 부분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여서 국민들의 크나큰 실망과 분노를 샀다.다음으로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대통령 측근이란 자들의 호가호위와 국정농단이 먹혀들어가는 사회라는 것이다. 정계와 재계는 물론 법조계, 학계, 문화계, 스포츠계 할 것 없이 권력의 위세에는 맥을 못 추고 한통속으로 놀아났다는 것이다. 소위 강남아줌마 하나가 국정전반을 농단할 수 있을 만큼 허술하고 부패한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민낯이고 실상이란 점도 솔직하게 인정을 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촛불을 든 백만 군중의 평화적 준법 시위였다. 최루탄과 무력진압이 없어지고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사라진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이고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롱과 비하를 일삼던 외국 언론들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정치적 혁명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것은 과도기의 후진국에나 필요한 격변인 것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명보다는 내실과 성숙이기 때문이다. 내실을 다지고 보다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법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정국의 혼란도 법과 제도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엄정하고 정의롭게 시행하지 않은 데서 야기된 것이다.아무튼 국내외적으로 산적해 있는 당면문제들은 우리를 기대와 희망으로 새해를 맞을 수 없게 한다.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북핵의 위협과 오리무중인 경제의 불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류독감까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정치꾼들은 하나같이 당리당략이나 개인의 잇속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열망도 좋고 혁신도 좋지만 그 바탕에는 가장도 냉철하고 신중한 분별력과 진정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정을 농단한 자들과 동조를 한 자들은 이제 엄정한 법의 심판에 맞기고 이 세밑에는 저 겨울나무들처럼 저마다 쓸쓸하고 적막해져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아야겠다.

2016-12-30

시간 남기는 법

▲ 강길수 수필가칠년 전 사월 어느 날, 한 평생교육문화센터의 서실(書室) 문을 처음 들어섰었다.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그 중 하나로 붓글씨 쓰기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우연히 보게 된 광고지를 보고 그리하였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두 시간씩이 연습시간이었다.첫날은 `가로 직선 긋기 연습`을 했다. 선생님이 습자지(習字紙)에 쓴 붉은색 체본(體本)을 본 삼아 그었다. 다음 날은 `세로 직선 긋기`를 하였다. 이어 `한 일`자와 한글 `ㅣ`와 같은 형식의 선 긋기를 선생님이 인정할 때까지 이었다.더디어 숫자 등 쉬운 글자부터 쓰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해서체(楷書體)다. 중학교 땐가 잠시 `습자연습`을 해 본 게 전부인 나였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잘도 갔다. 약 다섯 달이 흐른 후에야, 나는 체본에 날짜와 글자의 뜻과 소리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훗날 혼자 연습할 때,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다행히 시작한 첫날의 연습지에는 그날 쓴 것인지, 후에 쓴 것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2009. 4. 16(木) 시작, 유네스코 포항 평생교육문화센터`라고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었다.직장 일을 할 때는 육하원칙에 따라 일을 빈틈없이 기록하고 처리한다고 평 받던 내가 정작 자기 일에는 왜 그렇게 어눌했던지 모르겠다. `다락 루(樓)`자가 있는 것은 `2009. 9. 29`로 날짜가 쓰여 있다. 또 `잠잠할 묵(默)` 자가 있는 것이 그 해 10월 15일 쓴 것이다. `이을 속(續)`자를 쓴 것이 같은 해 10월 27일의 연습지다. 글씨가 제법 늘었던지 선생님은 이 무렵부터 의례적 격려이겠지만, 내게 `잘 쓴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동료들도 `명필 나오겠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 집에서 복습으로 써 본 것은 딱 한 번에 지나지 않았던 나다. 일주일에 두 번 쓰는 것으로 잘 쓴다는 소리를 들으니, 미안하기도 했으나 내심 기분도 좋았다. 보통, 한 체본에 서너 장씩 쓰고 넘어갔다. 선생님의 글자를 닮아 가는지 나로서는 잘 몰랐다.같은 무렵, 한 어린이집에서 한자를 한 학기 가르친 일이 있다.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서 받은 학 모양의 편지가 정겹고 재미있었다. 고마워 기념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내친김에 내 붓글씨 사진도 남기기로 하고, 장롱에다 쓴 습자지들을 세로로 붙이고 사진을 찍었다. 쓴 일자별로 습자지를 찾아 펴고 붙여, 사진 찍는 작업은 시간이 꽤나 걸리는 성가신 작업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나간 삶의 모습을 남긴다는 기쁨도 있었다. 한 사진을 찍는 순간, 이런 깨달음이 문득 들었다.`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에겐 흘러가지만 무엇이건 하는 사람에겐 남는 법이다!` 하고.세월이 제법 흐른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의 일 중 대부분은 시간을 남기는 활동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활동의 전 분야에서 기록과 제작, 창작, 보관 등 시간 남기는 일은 유사 이래 계속되어 온다. 가정, 직장, 공공기관, 박물관, 도서관, 전시장, 공연장, 연구소 등 사람이 살고 일하며 쓰는 공간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가 시간 남기는 것들이다. 시간은 보이거나 들리지 않게 예외 없이 흐르지만, 지성(知性)으로 사는 인간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이거나 들리는 대상물로 변화시켜 남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 아닐까. 그리고 역사는 무엇이건 하는 사람 곧, 시간 남기는 법을 실천하는 이들에 의해 이루어져 간다고 믿어진다.나는 생각했다. 사람은 시간을 남기며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2016-12-23

마음의 별을 찾아

▲ 김주영 수필가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서쪽하늘에 초승달과 함께 개밥바라기는 유난히 반짝인다. 겨울 밤하늘은 맑고 청명하여 별빛은 고혹적으로 빛난다. 도심의 불빛을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황홀경이다. 나무들 사이를 돌아온 바람들이 산자락에 머문다. 코끝이 시리도록 심호흡을 하니 답답했던 생각들이 청아해진다. 쏟아져 내리는 별과 별빛사이를 걸으니 시가 읊조려진다. 시를 읊조리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도심의 화려한 불빛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들을 바라본다. 별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늘 그곳에서 반짝이고 있다. 별빛들을 보고 있으니 시를 낭송하던 벗들의 눈빛이 생각난다. 꿈들로 반짝이는 별빛 같은 눈빛. 시낭송으로 마음을 나누고 정을 쌓은 인연들이다. 시는 혼자서 읽어도 좋으나 소리 내어 함께 나눠 읽으면 낭송을 통한 새로운 공감이 생긴다. 시를 소리 내어 읊으면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다. 시낭송은 시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시에 낭송자의 감정을 실어서 전달하는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소리의 강약, 고저에 따라 그 감흥은 다르다.시를 읽는 행위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시낭송은 일상적이고 보편화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틀에 메인 낭송법 때문일까? 시낭송의 가장 중요한 것은 격식화된 낭송법보다 감정전달과 교감이다. 하지만 여러 시낭송문학회나 시낭송대회를 참가해보면 교감보다는 기교가 앞서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전국에서 많은 시낭송대회가 열린다. 대회를 통해서 시낭송가증이라는 것을 주기도 한다. 주최 측에서 발급하는 시낭송가증을 받기 위해 시낭송 애호가들이 참여한다. 나 또한 벗들과 함께 몇 차례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평가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 대회 참가자들도 공감하지 못하는 주관적인 진행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시낭송은 청각으로 전해지는 예술이다. 시낭송은 청자에게 감흥을 전달하는 것이다. 시적화자의 마음을 헤아려서 정확하게 전달해야한다. 다른 사람의 기교만 흉내 내면 호소력이 약하다. 시낭송은 낭독과 다르다. 시를 외워서 전달해야 한다. 나름대로 분석하고 자기만의 감정을 실어서 낭송을 하면 전해지는 감동은 크다. 시낭송에는 여러 가지 낭송기법이 있다. 다양한 기법을 잘 활용하고 개성을 살려야 한다.시낭송은 치유의 힘도 있다. 한 편의 시를 읊으면 감정이 더해지고 공감이 형성된다. 낭송을 통해서 심적 위안을 받기도 하고 자신감을 찾기도 한다. 나또한 시낭송을 통해서 감정의 정화를 느낄 때가 많았다. 읊조리는 시의 배경에서 응어리졌던 기억들도 만나고 황홀한 순간도 만난다.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 시모니데스는 `그림은 말 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 이라고 했다.벗들과 함께 `마음의 별을 찾아`라는 시낭송 알리기를 하고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시낭송으로 소통하고 행복을 나누고자 시작한 일이다. 시 읊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밤하늘 수놓은 별들을 보듯 마음속에 속삭이는 별들이 보인다. 마음의 창이 열리고 무한히 펼쳐지는 별빛에서 잊어버렸던 생각과 꿈들을 찾기도 한다. 시낭송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의 눈동자에 별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항상 웃는 모습들이다. 밝은 표정과 맑은 마음들이 얼굴에 빛난다.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마음의 별을 만날 수 있는 일이 어디 흔하랴. 시를 읊조리면 마음의 별이 반짝인다. 책장에 꽂혀 있는 시집을 꺼내서 시 한편을 외워보자. 은하수의 수천 억 개의 별들보다 더 반짝이는 별들을 만들 수 있으리라.

2016-12-16

▲ 이순영수필가 푸르스름한 새벽이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다가 마당에 세워 둔 자동차에 눈길이 멎었다. 운전석의 문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앞치마를 두른 채 마당으로 나가 자동차를 들여다보았다. 누군가의 손을 탄 흔적이 뚜렷하다. 차안에 두었던 물건들을 죄다 뒤져 놓았다. 서랍에 있던 장갑, 서너 알 담겨있는 껌 통, 시장바구니와 메모지, 자동차등록증과 그 속에 접어서 넣어둔 영수증 몇 장 따위가 의자 위에 널려져 있었다. 자동차 털이범이 설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내가 직접 피해를 입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있으려니 몇 해 전 집을 다녀간 손이 생각난다.집이 비어있는 시간은 불과 이십 분정도 될까 말까한 순간이었다. 내가 도서관으로 간 후 잠시 집에 들른 남편은 현관문의 열쇠가 가볍게 돌아가서 이상하게 느꼈지만 거실과 주방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에 내가 문을 잠그지 않고 나간 줄 알았다고 한다. 집안에서 서성이다가 안방 문을 열자 보석함이 서랍장 위에 올려진 것을 보고서야 현관문을 열 때의 미심쩍었던 느낌이 번쩍 떠올랐단다. 얼른 뚜껑을 열어 보았지만 이미 손이 지나간 뒤였다. 혼수품으로 장만한 보석들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가 불편하기도 하고 거추장스러워서 함에 넣어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날렵한 검은 손이 대낮에 아파트의 문을 따고 방안에 있던 귀금속을 몽땅 털어가 버리고 말았다. 며칠 동안 검은 손이 또 올까봐 무서움이 고개를 삐죽삐죽 내밀었다.뿐만 아니다. 어느 여름날, 화분에 심어 베란다에 둔 백합이 꽃을 피우지 못하기에 햇볕과 바람이 잘 통하는 꽃밭에다 심어두고 오며가며 들여다보았다. 비가 아주 부드럽게 내린 다음날 백합을 만나러 꽃밭으로 갔다가 뻥 뚫린 작은 웅덩이를 발견했다. 그 새하얀 연꽃모양의 뿌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혼수품으로 받은 목걸이와 팔찌, 반지들이 몽땅 손을 탔을 때와는 또 다르게 가슴이 아렸다. 책과 꽃을 몰래 가져가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아찔한 현기증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텔레비전에서 손가락 두 개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발가락으로 시계를 수리하는 사람의 `발손`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손은 내 가슴을 뜨겁게 흔들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전환시킨 그들의 손은 뼈를 깎는 듯 고통을 이겨낸 결과였다. 그들의 도전정신과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 낸 피아노연주와 시계수리 기술은 감동 그 자체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고개를 숙여 내 손을 보았다. 열 손가락 멀쩡한 내 손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쓰였던가.세상에는 온전하지 못한 손으로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도 하고, 온전한 손으로 타인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기도 한다. 굼뜬 손과 재빠른 손, 따뜻한 손과 차가운 손, 어떤 손을 가진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일까.간밤 몰래 자동차에 다녀간 손의 손놀림 또한 매우 날렵하고 민첩할 것이다. 사람들이 곤히 잠을 잘 때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재빠르게 작업을 했을 터이다. 그 소행이야 배울 바가 아니지만 근본은 선한 사람 일게다. 자동차 안을 뒤지기만 하고 자동차에는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하여 출근길에 발을 동동 구르게 할 수도 있었으련만 바람처럼 왔다갔으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밤새 낯선 손길에 정신이 혼미했을 물건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있던 자리에 앉혀두고 자동차문을 닫는다. 신문배달부가 던진 신문이 마당에 툭, 떨어진다. 아침밥 준비를 서둘러야겠다.

2016-12-09

늙어 간다는 것

▲ 김병래 수필가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우람하고 기품이 있다. 오래된 시골마을에는 으레 그 마을과 유래를 함께한 나무가 한두 그루씩은 있다.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나 당집 옆에 선 노거수들은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갖은 풍상을 이겨내며 꿋꿋이 살아온 내력이 공경과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무뿐만이 아니라, 오래된 건축물이나 유물들도 그 담아온 세월에 값하는 대접을 받는다. 대단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물건이 아닌 단순한 생활용품도 오랜 세월의 무게가 실리면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세월이란 한갓 덧없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성소멸하는 삼라만상의 내력인 것이다.사람도 한때는 노인을 공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농경사회가 그렇듯이 노인이 가진 노하우야말로 그대로 삶의 지혜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축적된 삶의 내용이 그만큼의 의미와 가치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눈부신 과학의 발달을 가져온 산업화시대를 거쳐 동서고금을 하나로 잇는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노인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세상에선 노인은 그저 구닥다리에 불과한 존재가 되었다. 지혜보다는 지식이 우선인 현실, 경륜보다는 첨단이 우위인 사회에서 노인들이 설 자리란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런데도 경제사정과 의술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은 늘어나서 바야흐로 노령인구가 사회적 골칫거리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년퇴직을 하고도 수십 년이나 남은 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자식들까지 외면을 해서 경제적 노후대책조차 막연한 지경에 이르면 실로 처량하고 우울한 말년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우선은, 청장년기에 못지않게 노년기도 인생의 한 중요한 시기라는 인식이 있어야겠다.나는 노인들도 젊게 살아야 한다는 말에 별로 동의하고 싶지가 않다. 화사한 옷차림에 염색을 하고 주름을 없애고 젊은 아이들 흉내를 내는 것이 노인들이 할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청년은 청년다워야 하듯이 노인은 노인다워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봄날의 신록이 싱그럽듯이 가을의 단풍도 찬란하고, 잎을 다 지운 겨울나무 역시도 그 나름의 품격과 아름다움이 있다. 늙어가는 것도 엄연하고 종요로운 인생의 한 과정인 것이고, 성장기의 풋풋함과 청년기의 무성함 못지않게 노년기의 쇠락과 허허로움도 아름다운 모습이고 절실한 정서일 수 있는 것이다.갈수록 머리카락은 성글어지고 치아는 부실해져서 생의 일차적인 쾌락인 맛과 멋은 거의 포기를 하게 된다. 폭삭 늙어버린 외모로 남의 시선을 끌 일도 없어지고 제대로 씹을 수가 없으니 먹는 것도 즐거움이 되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무슨 낙으로 살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대신 외모보다는 내면으로, 사람보다는 자연에 가까워지는 거라고나 할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편안함이 있고, 거칠고 소박함에서 오는 불편함이 오히려 삶의 절실함에 닿게 한다.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던 꽃을 내려올 때 보았다는 시구처럼, 인생의 내리막길에도 풀꽃이 있고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들이 보이는 것이다. 늙음을 특별히 예찬하고 싶은 심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청춘을 돌려달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인생이 아름다운 거라면 자연스럽게 늙어가서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일 것이다.

2016-12-02

안대를 떼어내고

▲ 강길수 수필가약국 문을 나선다. 기분이 참 좋다! 밝은 햇살이 망막을 파고들어도, 덴바람이 수술한 눈동자를 덮치며 지나가도 개의치 않는다. 이틀 만에, 그리도 지루하게 느껴지던 안대를 발걸음도 가벼이 떼어 버렸기 때문이다. `군날개` 제거 수술을 한 오른쪽 눈동자가 붉게 충혈 되어 있어도 날아갈 듯이 마음은 가볍다. 사오년 전 여름, 집에 보관하고 있던 쌀에 바구미가 생겼다. 아내와 상의 끝에 옥상에서 말리면서 바구미를 쫓아내기로 하였다. 쌀의 양이 제법 되어, 야외용 돗자리 3개에다 쌀을 고루 펴 널었다. 마르며 쌀이 갈라지는 것을 줄이려 그늘에서 말렸다. 또 날아드는 참새 떼와 비둘기 떼 때문에 쌀을 지켜야 했다.바구미가 많이 먹은 쌀은 보기에 거의 삼분지일은 쌀가루로 변해보였다. 해질녘 쌀을 거둬들이기 전,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플라스틱 바가지로 쌀가루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러던 중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달라지며, 쌀가루가 내 눈에 수 차레 날아 들어갔다. 이태를 이렇게 여름에 옥상에 쌀을 널어 말리며 지냈다.재작년 가을에 오른쪽 눈동자 결막에 흰 얇은 막 같은 것이 보여 안과에 갔더니 `군날개`란 진단이 나왔다. 시력에는 영향이 없으나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겁이 났다. 의사에게 발병 원인을 물어 보았다. 몇 가지가 있는데, 눈에 균이 오염되어 일어날 수 있는 등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뇌리에 바구미 쌀가루 생각이 떠올랐으나, 그게 원인인지 단정할 수는 없었다. 수술 마치면 일주일간 안대를 끼고 살아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미련스레 일 년 반 이상을 미루었다. 거울을 보니 얇은 막이 눈동자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그저께 수술을 했다.약물 마취 등 준비를 마치고, 군날개의 막을 제거하는 수술이 시작되었다. 마른 손바닥을 재빨리 비빌 때 나는 소리 같은 가벼운 기계음이 잠시 귀를 거스른다 했는데, 벌써 수술이 끝났단다. 물약을 넣고, 고정식 안대를 설치했다. 적어도 이틀은 왼쪽 한눈으로 지내야 했다. 사물의 초점이 잘 맞지 않아 불편했다. 한눈만 안보여도 이렇게 불편한데, 두 눈 다 보이지 않는 분들은 얼마나 어렵게 지낼까.안대를 제거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틀 동안 한 줄 치기도 몇 배로 힘들던 자판을 이전처럼 두드리며 생각해본다.우선, 친절하고 성의껏 내 눈을 수술해 주고, 보살펴 준 의사와 간호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다음으로, 한쪽 눈이 안 보인다고 혼자서 많이 불편해 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스스로에게 책망하는 마음이 앞선다. 앞을 못 보는 많은 분들과, 몸이 불편한 수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내 이 작은 불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비록 남들에게 표는 내지 않았지만, 이틀을 묵묵히 참지 못한 자신의 감추고 싶은 모습이 부끄럽다. 그 다음으로, 건강을 포함한 많은 일들을 자꾸 미루어 왔던 지난날의 내 삶의 모습이 또 확인되어 스스로에게 미안한 생각이 또다시 든다. 하여, 어느 영성운동에서 배웠던 `삶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우친다.끝으로, 정신치료를 포함한 의료기술이 더 빨리 완벽하게 발전하여, 인간은 물론, 나아가 모든 생명체의 `생로병사` 중에서 `병`만이라도 완벽하게 해결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제발 이 푸른 아름다운 지구별에서 `군대`와 `전쟁`을 없애고, 그 자원과 기술로써 `생명체의 병마`를 극복하는 길로, 우리 인류가 하루빨리 나아가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그 길이야 말로, 인간이 진정 `만물의 영장`이 되는 길이 될 것이므로….

2016-11-25

연극을 보고 난 후

▲ 김주영 수필가 여름을 건너온 은행잎들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마로니에 공원도 가을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벤치에 앉아 코끝에 닿는 바람의 상큼함을 느낀다. 젊은 청년들이 다가와 연극표를 건넨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과 한바탕 웃을 수 있다는 기대에 표를 샀다.`죽여주는….` 극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연극이 기대된다. 기다리는 사람들 옆에 줄을 섰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젊은 부모들도 몇몇 보인다. 자녀와 함께 연극을 보며 주말을 보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부모와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도 좋은 교육이다.여섯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내 옆에 앉았다. 연극은 관객 참여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아이와 부모들은 즐겁게 공연을 관람하는데 공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무대 위에는 TV에서도 모자이크 처리되어 보여지는 장면과 죽음에 대한 소재가 이야기되어지고 있다. 배우들의 과감한 표현들로 관객들은 모두 웃고 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반전을 준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폭력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같이 웃고 있는 부모들은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인가? 연극내용을 극화시키고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서 선택된 소재로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객석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유독 나 혼자만인가? 아이들은 이 연극을 보고나서 죽음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면 어쩌나?연극을 마치고 배우들에게 어떤 의도로 표현을 했는지, 폭력적인 장면의 심각성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았느냐고 질문을 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어느 누구도 기획의도를 모르고 있었고 단순히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고 돈벌이로 연극을 하고 있었다.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TV를 사지 않는 경우와 거실을 서재로 꾸민 지인들도 있다. 거실을 서재로 꾸며 놓고 자녀와 함께 책 읽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 TV를 생활환경에서 배제 시키는 것은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화면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TV 프로나 대중매체에서 폭력적인 장면을 표현할 때 박진감 넘치면서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TV 시청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습득해지는 영향은 심각할 수 있다. 폭력적인 화면을 바라보면서 공포감에 대해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으로 폭력을 인식할 수도 있다. 시청한 내용을 습득하여 흉내 내거나 주인공 등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어린이와 10대 청소년들은 그런 무의식적 습득에 의한 심각성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 시기에 습득한 것들이 가치관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함께 나들이 나온 부모들도 나처럼 제목에 호기심이 자극했거나 출연하는 배우 몇 사람 때문에 이 연극을 선택했을 것이다. 아이들과의 함께 웃는 시간이 좋아서 그냥 있었을까? 연극을 보면서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인격형성 발달의 중요한 시기가 유아기이기 때문이다. 유아기에는 호기심도 많고 자기중심적 관점으로 사물과 상황을 판단 한다. 그렇기에 작품에 등급심의가 있다. 하지만 연극작품에서는 너무도 관대한 것 같다. 영상물들은 등급심의가 있어서 나이제한이 있다. 나이별로 관람 가능한 등급을 정하는 것은 부적절한 표현이나 내용으로부터 아동이나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대학로 연극에는 그런 규제가 없는 듯하다. 창작의 자유가 있다지만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은 제도적으로 관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2016-11-18

겨우 살기

▲ 김병래 수필가 인류의 역사는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지배하는 역사였다. 의식주를 위해 땀 흘려 수고하는 것은 언제나 약자의 몫이었지만 그 대가는 대부분 강자들의 차지였다. 이 땅위에 세워진 찬란한 인류 문명의 유산이란 것 치고 강자의 위세와 영화와 안락을 위해 약자들의 눈물과 피땀과 희생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어디 있는가. 그것이 인류가 구가해 마지않는 문명의 본질이고 인간 세상의 실상이다. 인간사회도 일견해서는 약육강식하는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지만, 동물들은 생존에 적당한 양 이상은 결코 탐하는 법이 없는데 비해 인간의 욕망은 블랙홀처럼 밑도 끝도 없다는 점에서 천양지차다. 말하자면 탐욕이 있고 없음에 인간과 동물이 구분지어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문명이란 결국 탐욕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문명이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생물학적 조건이나 지구 생태계는 유한하다는 것에 파국적 비극성을 내포한다. 그리고 그 파국적 징후들이 지금 도처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갈수록 심각성을 더해 가는 환경의 오염과 생태계의 파괴, 자원의 고갈이 그것이다. 각계의 뜻 있는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인류의 삶의 방식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귀담아 듣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걷잡을 수 없게 가속도를 더해 가는 문명을 추락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보다 높은 강도의 편익과 쾌락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온갖 재화(財貨)가 또다시 더 큰 욕구를 확대재생산하고, 그 악순환의 소용돌이가 자연의 질서에 대해 인류를 무정부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문명의 급류에, 무정부상태의 소용돌이에 함몰되고 휩쓸려가는 인간들에게는 추락에 대한 예감이나 속도에 대한 자각증상이 별로 없다는 것이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텔레비전의 `동물의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인류가 오늘날 무엇을 향해 어떤 모습으로 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인류가 편익과 쾌락과 변화의 속도감에 탐닉해 있는 동안 지구 생태계의 질서로부터 얼마나 멀리 이탈해 버렸는지, 그리고 그 일탈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자연은 극히 적은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자연이 그러하므로 나도 그렇게 하리라`남의 집 다락방에서 렌즈를 갈아 호구하며 살다간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이다. 하지만 그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킨 오늘의 인간들로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도 오히려 죄스러워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인간의 덕목은 `겨우 살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겨우 살기란, 쉽고 편하게 살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간신히, 어렵게 살자는 것이다. 전력투구로 땀 흘리며 절실하게 산다는 것이고, 최한의 것으로 자족하며 산다는 것이며, 훼손하고 오염시킨 자연에 대해 부끄럽고 죄스럽게 산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무분별한 쾌락의 중독에서 치유되는 길이며, 탐욕의 노예에서 스스로 해방되는 길이며, 파괴된 생태계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류가 진정한 생명의 자리를 찾는 일이고, 지속가능한 삶의 길이며, 동서고금의 성인현철들이 한결같이 모범을 보여준 안빈낙도에 이르는 길이다.

2016-11-11

입장 바뀐 날

▲ 강길수 수필가수능시험이 있는 달, 11월 첫날이다. 마침 날씨도 수험생들의 마음이라도 닮았는지 갑자기 초겨울같이 추워졌다. 종교단체들에선 수험생을 위한 기도 같은 신앙 행사들이 벌써 진행되고 있다. 수년 전, 난생처음 시험 감독을 했던 날이 떠오른다. 그것도 국가기술자격 시험 감독을 했다. 참여하는 한 단체에서 시험 감독을 해보겠느냐고 제의하기에 동의하고 나가게 된 것이다. 그 몇 년 전만해도 늦깎이 공부로 학점을 따겠다고 열심히 시험을 보았던 나다. 김건모의 노래 중에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는 가사의 노래도 있었지만, 아침에 집을 나서며 수험자에서 감독으로 바뀐 입장을 경험해 본다고 생각하니, 걱정도 되고 또 야릇한 호기심도 발동하였다.간단한 사전 교육을 받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한 시험장에 두 명의 감독이 배정되었다. 수험자들은 1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했다. 다른 시험장에는 60대도 있다 했다. 나는 감독이 처음이기에, 경험 있는 아들 같은 또래의 공무원과 한 조가 되었다. 시험이 잘못되지 아니하도록 살피어 단속하는 감독으로서의 기본업무 외에, 여러 부수적 일이 주어졌다. 신분증으로 수험자의 신원을 확인한다든가, 시험지와 답안지카드의 배부, 회수 출석자와 결석자의 파악, 통계 질문에 대한 대답, 공지사항 판서 및 공지, 시험 시작과 종료의 알림과 같은 것들이다.함께 배정된 젊은이는 아마도, 내가 초보감독이고 나이도 자기보다 많다고 보아 스스로 알아서 잘 해주는 바람에, 나는 눈치껏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했다. 그리하여, 내 첫 시험 감독 일은 생각보다 쉽게 잘 끝났다. 아침 8시 20분에 도착, 오후 네 시경에 마쳤더니 다리가 좀 아팠다. 하지만, 하루 감독하고 받은 일당은 거금 일십 만원이었다. 아내는 오만원 짜리 두 장이 든 봉투를 받아들자, 무척이나 좋아했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았다.첫 직장에 취업하면서부터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병행한 나는, 아마도 다른 이들보다 더 오랜 기간 시험을 쳐야 하는 삶을 살았으리라. 시험을 치를 때도 이따금씩 생각한 일이지만, 시험 감독을 하고 보니 더 명료해진 생각이 있다. 바로 `인간은 왜 두 가지의 존재론적 시험을 치러내야 할까?`하는 생각이다. 하나는 모든 생명체, 나아가 모든 존재가 치러야하는 생존시험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만이 치르는 시험이다. 바로, 인간이 만들어 사람의 우열을 가리는 시험이 그것이다.우주 안에서 은하나 태양계, 행성, 위성들과 그 안에 존재하는 분자나 원자, 그보다 더 작은 입자나 파동, 그리고 힘(에너지)들이 치르는 시험도 분명 있을 텐데, 나는 그에 대한 지식과 감각은 사실 무디다. 그러나 우리 지구별 생태계의 생명들이 치르는 시험은 조금은 알고 또, 느낄 수 있다 싶다. 바로, 모든 생명체는 `적자생존의 시험`을 치러내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 내가 시험 감독을 한 시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위적인 시험을 치러내며 살아야 하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면 할 이야기가 많고 가슴이 답답해진다.나는 생각했다. 인간이 진정 영혼과 이성을 가진 지성의 존재라면, 시험과 관련해 그에게 걸맞은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를. 그때, 분명히 내 이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인간이 진정 인간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스스로 만든 시험만이라도 치르지 않고, 지구별의 모든 사람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지구촌 건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그리될 때, 인간은 그전까지 모르던 새로운 세상, 다른 차원에 올라선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아울러 믿어졌다. 시험을 치르지 않고도, 모두가 인격적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내 마음이 그려낸 하나의 꿈,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았을까.

2016-11-04

어떤 솔거

▲ 이순영수필가 성주(城主)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신하들에게 성안에 쓸 만한 환쟁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한 신하가 있는 대로 보는 대로 그려내는 귀신같은 솜씨를 지닌 환쟁이가 있다고 아뢰었다. 성주 앞에 불리어 온 그는 한 치의 감정도 동요됨 없이 열흘 정도 성안에 머물게 해 준다면 성주의 영정을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성주는 흡족해했고, 화가는 그날부터 성안에서 성주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오른쪽에서, 왼쪽에서, 어떤 때는 나무그늘에 숨어서, 성주가 잠을 깨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성주는 그림은 그리지 않고 자기만 따라다니는 환쟁이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화가는 담담하기만 했다. 어느 날 화가가 명상에 잠겨 있을 때 우두머리 신하가 불쑥 찾아와서 심문을 하듯 훈계를 해도 화가는 흔들리지 않았다.관찰을 한 지 이레 째 되는 날, 그의 머릿속에는 성주의 모습을 수 천 조각으로 나눌 수도 있고, 다시 결합할 수도 있고, 어느 한 부분을 확대할 수도 있고, 축소 할 수도 있을 정도로 훤하게 조각 되어 있었다. 붓을 들기 시작하자 숙식을 잊은 채 몰입하여 그림을 그렸다.화가는 두루마리에 완성된 영정을 성주 앞에서 펼쳤다. 그림이 서서히 나타나자 성주는 노발대발하여 당장 치우라고 고함을 질렀다. 끝까지 펼쳐진 그림 속에는 터질듯 한 볼, 뚱뚱한 몸집, 두껍고도 큰 입, 어느 부분이든 실물과 똑 같았다. 더구나 그림에서 풍기는 분위기까지도 성주 그 자체였다. 심술과 탐욕덩어리가 그대로 그림 속에 녹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하들은 완벽한 성주의 모습임을 알면서도 성주님을 모독했다고 야단을 치고, 화가를 감옥에 가두었다.다음 날, 성주는 다른 사람을 불러와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는 닷새 만에 아주 인자하고 후덕해 보이는, 흡사 부처님의 온화한 모습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성주는 기뻐서 신하들과 잔치를 베풀었고, 갇혀 있던 화가는 형장으로 끌려 갔다. 혼신을 다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그 사람의 체취까지 그림으로 표현한, 진정한 화가는 형장의 이슬이 되고 말았다. 조정래의 `어떤 솔거의 죽음` 줄거리이다.화가를 그렇게 만든 사람은 오만한 성주 뿐 아니다. 그 성주에게 비굴했던 신하들과 또 다른 화가였다. 양심을 속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 신하들이 성주의 눈을 멀게 했다. 진실 된 신하가 위대한 성주를 탄생시키기도 하고, 훌륭한 성주가 참된 신하를 만들기도 하여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덕을 베풀어 만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성주와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는 지혜로운 신하는 없었다. 권력 앞에 굽실거리는 비굴한 신하들만 가득했다.요즈음 신문 펼치기가 두렵다.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기 힘든 정보들이 난무한다. 이런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치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 같다. 혼란스럽고 답답하기 짝이 없다. 국내외적인 정치, 경제, 문화, 교육…어느 분야에도 서광이 밝지 못하다. 항간에는 대한민국의 국운이 오래 남지 않았다는 말도 떠돈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으며, 또한 권력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는 사회, 진실과 정당함이 인정되는 사회, 국가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고 지켜주는 사회, 그리하여 국민이 국가를 믿고 행복하게 사는 사회가 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할까. 묵묵히 진리와 진실만을 추구하다가 억울한 죽임을 당하는 또 다른 `어떤 솔거`가 없는 세상이기를 소망해본다.

2016-10-28

청포도

▲ 김주영 수필가 청포도를 산다. 입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맛, 단맛과 신맛의 조화로움이 미각을 자극한다. 새콤달콤한 맛이 좋아 청포도를 사게 된다. 내가 처음 청포도를 먹었던 것은 열 살쯤 여름방학 때였다. 아버지께서 마당에 열린 포도를 한 알을 따서 입어 넣어주셨던 그 맛. 달달하고 새콤한 맛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렸을 때 먹었던 그 맛이 아닌 줄 알면서도 샀다.상큼하고 싱그러운 맛이 입 안 가득 번지고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알알이 맺힌다.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노래들이 그리워진다. 흘러간 옛 노래를 들으면 어린 시절 아버지 곁에서 조잘거리는 어린아이가 되는 듯하다. 그 작은 꼬마아이가 이제는 술을 한 잔 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의 첫사랑은 아버지이다. 새콤하고 풋풋한 날의 기억.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고 은방울자매의 노래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포도가 나오는 계절이 되면 꼭 포도주를 담그셨다. 어릴 적 술에 절여진 포도를 먹고 취했던 기억이 떠올라 빙긋이 웃어본다. 마루 끝에 누워서 아버지가 듣고 계시던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그날 나는 기분 좋게 취했다.노랫가락에 취하고 그리움에 취한다. 은방울 자매의 `첫사랑에 취한 맛`을 듣는다. `사랑이 많다해도 첫사랑만 못해요 첫사랑에 취한 맛 달콤한 포항포도주` 노랫가락에 흘러나오는 포도주는 어떤 맛이었을까? 수입와인을 마시며 지금은 사라져버린 술맛이 궁금해진다. 화이트와인의 주재료는 청포도이다. 씨나 껍질을 넣지 않고 포도즙만을 숙성해서 만들어 상큼하고 향긋하다.청포도 향 그윽한 술과 그리움에 취하니 `청포도`시가 읊조려진다. `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시인은 고향에 함께 지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청포도에 담았다. 시인의 고향은 안동이다. 하지만 시인은 결핵요양차 포항의 송도원에 머물렀다. 그때 일월동에 있는 포도밭을 구경하고 시상을 떠올려 시를 썼다고 한다. 일제의 암울한 시대에 밝은 내일의 기다림과 염원을 담아 쓴 시(詩). 민족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청포도에 상징하여 개인의 서정으로 잘 표현한 시이다. `청포도`의 시에 나오는 바다는 포항 바다이다. 하지만 시의 배경이 포항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애국정신의 숭고함을 기억하고자 포항에는 청포도 시비가 세군데 있다. 푸른 바다가 보이는 동해면 일월동 옛 포도밭에서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을 호미곶에 있는 시비 앞에서 시를 읊조리며 상상해보기도 했다.노랫가락과 문학작품에는 있는 포도밭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도시가 개발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포도밭도 그 중 하나 일 것이다. 해방이후 포항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국내외에 알려졌고 국내 최초 해외수출 기념 음반까지 내었다고 한다. 와인을 좋아하다보니 국내에서 생산되는 와인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 한 적이 있다. 그 때 처음으로 국내와인을 마셔보았다. 한국적인 독특한 맛이 있었다. 같은 품종의 포도로 만들어도 술맛은 지역마다 다르다. 술마다 독특한 향과 맛이 그 지역의 대표음식과 잘 어울렸다.생선요리와 잘 어울리는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은 수천 년 전 바다였던 토양도 있다. 술맛은 포도가 생산되는 토양,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포항에서 생산된 청포도로 만든 술맛은 어땠을까? 바다 향이 담긴 청포도로 만든 와인은 생선회와 잘 어울릴 것 같다. 아버지는 생선회를 무척 좋아하셨다. 회를 드실 때는 어머니가 담근 포도주와 함께 드셨다. 아버지와 술을 한 잔 마시며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함께 했던 바닷가의 추억들이 푸르게 일렁인다. 어린 시절 청포도 같은 새콤달콤한 날이 그립다.

2016-10-21

구월에 핀 아카시아꽃

▲ 강길수 수필가한가위 연휴 하루 전. 마침 쉬는 날이라 양학산에 올랐다. 저 아래 보이는 7번 국도엔 차량들이 한가위 꿈을 싣고 꼬리 물고 달린다. 하늘엔 아직 철 이른 메밀잠자리들이 한가위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가하다. 멀리 형산강 너머 보이는 제철소. 내 눈부신 계절이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곳. 발걸음도 가볍게 늘 가던 코스를 걸어 반환점 부근에 갔을 때다. 십년 전쯤, 새 길을 내기 위해 산자락을 절개한 비탈에 당국에서 소나무 묘목을 심었었다. 남향을 향해 있어 햇빛을 많이 받는 절개지여서,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심은 어린소나무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걱정했었다. 한데, 그 소나무들이 이젠 많이 커 사람 팔뚝 굵기만큼 자란 것이 대부분이다. 내 걱정은 기우였다.서쪽 가장자리 쪽엔, 심지도 않은 아카시아나무가 솟아 나 함께 자라고 있다. 인근에서 뿌리로 뻗어왔는지, 씨앗이 떨어져 움텄는지 모르겠다. 아카시아나무는 소나무보다 훨씬 더 크다. 능선위에서 시가지 모습과 한창 자라나는 소나무와 아카시아나무 등을 살피다가, 얼핏 눈에 익은 것이 스쳐 지난 것 같아 다시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활짝 핀 아카시아 꽃 일곱 개를 단 꽃송이 하나가 보이는 게 아닌가. 장미라든가 진달래, 개나리 등이 다른 계절에 핀 경우는 많이 보았어도, 구월에 핀 아카시아 꽃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어린 시절 봄날, 들에서 소꼴을 망태에 뜯어 담고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서던 우리 집 대문간. 그 옆에 함께 사는 커다란 아카시아나무 꽃이 온 사방으로 내뿜던 진한 향기. 지금도 눈만 감으면, 코 속 후각세포에 고스란히 간직된 향. 우리나라 벌꿀의 7할을 차지한다는 아카시아 꽃 꿀. 목재는 고급가구 재료로 없어서 못 쓴다는 아카시아나무. 북미가 원산지이지만, 구한말 일본무역회사 사람이 처음 심어, 일제가 우리 산을 망치려고 심었다는 오해도 받은 아카시아나무. 옛적에 군불나무로 많이 때며 손을 찔려 미워도 했던 무서운 가시 달린 아카시아나무….제철 아닌 구월 열사흘에 만난 아카시아꽃. 꽃을 보는 순간, 지구 온난화로 알래스카의 만년설이 한해 수십 미터씩 산 아래부터 위로 녹아내린다는 얼마 전 뉴스가 뇌리를 스쳤다. 시베리아 영구 동토가 녹아, 땅 속 메탄가스가 방출되며 온난화를 가속한단다. 이 산에도 전에 보이던 이름 모르는 산꽃들이 안 보이는 것이 적지 않다. 기후 변화가, 시대의 변동이 확 피부에 와 닿는다.휴대폰을 꺼내 아카시아꽃 사진 세 장을 찍었다. 사진을 확대해보니, 한 송이에 꽃 일곱 개가 피었다. 봄에 피는 것은 한 송이에 꽃 이삼십 개가 달린다. 구월에 만난 꽃 일곱 개 핀 하얀 아카시아꽃송이라니. 이 아카시아나무는 왜 가을에 꽃 한 송이를 피워냈을까. 변해가는 환경에 나처럼 헷갈리는 걸까.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대의 징표와 메시지로 피어난 것일까.자연도, 지구 어머니도 변해가는 현장을 구월에 핀 아카시아 꽃을 통해 또다시 생생하게 만났다. 사람도 자연 속의 일원인 이상, 내가 모르는 변화를 하고 있을게 틀림없다. 지난 밤, 이웃 경주에서 우리나라 관측사상 가장 강한 진도 5.8의 지진이 일어났다. 내가 느끼기엔 70년대 중반인가, 총각시절 해도동 하숙집에서 저녁을 먹고 동료들과 잠시 담소하던 중 발생했던 지진과 비슷했다. 기후변화와 늘어나는 천재지변. 생물들의 변화와 멸종. 갈수록 폭력성의 가속페달을 더 세게 밟아대는 어리석은 인간 공동운명체….나는, 우리가족과 우리나라, 또 우리지구촌은 어떻게 이 변화의 물결을 헤쳐나아가야 할까. 그래도 오늘,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나부터 심어야 하는가.일곱 아카시아꽃아, 너는 대답을 알고 있니…?

2016-10-14

갑질과 공감능력

▲ 김병래 시조시인 돈이든 권세든 가진 자들의 횡포가 거의 엽기적이다. 기내식 땅콩을 봉지째 주었다고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한 항공사 부사장의`갑질` 사건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더니, 얼마 전에는 3년 동안 운전기사를 열두 번이나 갈아치운 재벌 3세 사장의 갑질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A4용지 140장 분량의 매뉴얼을 만들어 운전기사가 지키지 못했을 경우 폭언과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니 그 치밀하고 집요함이 가학증과 편집증을 의심하게 한다. 제자와 조교에게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좌절감을 느끼도록 갑질을 하는 교수, 부하 검사를 자살에 이르게 한 부장검사, 백화점 여직원의 뺨을 때리고 주차장 아르바이트생 무릎을 꿇리는 고객, 아파트 경비원을 `종놈` 취급하는 입주민…. 가히 갑질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처에 널린 것이 갑질의 행태다.하기야 쥐꼬리만 한 권력만 있어도 휘두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갑질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정해진 것만은 아닐 터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갑질의 피해자 역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진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나중에 모진 시어머니가 되고, 폭력을 대물림하는 가정이나 집단이 그러하듯 갑질은 또 다른 갑질을 낳고 조장하는 풍토를 만들기도 한다.갑질을 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공감능력의 부족이다.남의 사정과 고통, 감정 등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남을 괴롭히는 짓을 예사로 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그 정도가 심해지면 가학증(Sadistics)이나 사이코패스(psycho-path)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요즘 들어 그런 현상이 부쩍 늘어나는 것은 어려서부터 여러 형제들과 부대끼고 동무들과 어울리는 대신 혼자서 전자오락에나 몰두하는 습관 때문일 것이다.재계나 학계, 법조계의 소위 지도급 인사들이 오히려 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경쟁과 성취에만 골몰하느라 공감능력을 함양할 기회를 갖지 못한 까닭일 것이고..전에는 사람의 능력을 재는 척도가 주로 지능지수(IQ)였지만, 요즘에 들어서는 감성지수(EQ)와 도덕지수(MQ)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머리만 좋은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부와 권세와 명예의 공든 탑이 공감능력과 도덕성의 부족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패가망신 하는 예를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시대에 공감능력의 함양이 아이들 교육에 제대로 반영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공감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남의 아픔을 이해할 것이며 굶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알겠는가. 자기 이부자리도 정돈하지 않는 아이가 자식을 위해 힘들게 일하는 부모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경험에는 직접경험만 있는 게 아니다.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도 있고 봉사활동을 등을 통해서 어렵고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문학작품에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이 들어있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국민소득이 올라간다고 선진국이 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갈수록 범죄와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경제력이나 국방력에 못지않게 국민들 각자의 공감능력 향상이 살기 좋은 나라의 기반이 된다는 자각이 절실한 현실이다.

2016-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