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서 보는 일몰은 황홀경이다. 포항 호미곶은 해맞이 장소로 유명하지만 해넘이 명소로도 손색이 없다. 해가 질 무렵 호미곶 서쪽 해안 길을 가다보면 동해바다의 낙조를 볼 수 있다. 호미곶 `상생의 손` 광장에서 호미곶길을 지나 해안가 구만길로 3km정도 가다 만나는 작은 포구, 구만 2리에 있는 구포(鉤浦)다. 사람들은 이곳을 `까꾸리개`라 부른다. 까꾸리는 갈퀴의 경상도 방언이다. 끝이 뾰족하고 ㄱ 자로 구부러진 모양도 `까꾸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해안의 여느 포구와 달리 바닷물이 얕고 갯바위가 많다. 물이 얕아서 바위 주변으로 갈매기들이 많다. 예전에는 갯바위 언저리까지 청어 떼가 밀려와 까꾸리로 긁어 담았다하여 `까꾸리개`라 불렀다.
포구 옆에는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자세히 보면 바위에 앉아 바다를 굽어보는 독수리 형상이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매일 매일 꿈을 꾸는 바위. 해넘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다보면 독수리의 꿈을 보는 듯하다. 미동도 없이 웅크려 앉아 바람소리며 파도소리를 꾹꾹 눌러 자신의 몸속에 시간을 축적시키며 날아오르기 위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풍화의 힘을 빌어 날개의 근육을 키우고 있는 바위의 시간이 느껴진다. 새의 꿈을 꾸는 독수리바위는 파도와 바람에 날개를 매만지고 있다. 저 바위에 앉아 바라본 해넘이는 얼마나 될까? 몇 번의 노을을 더 보내야 날아오를까?
1월의 매서운 겨울바다에서 새해 소망을 담아 호미곶 일출을 보았다면 이글거리는 여름바다에서는 꿈을 담아 독수리바위의 일몰을 본다. 호미곶의 양력 8월은 일몰풍경이 절정이다. 해가 지는 방향과 각도가 독수리의 부리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붉은 해가 독수리 입안에 잠시 머무를 때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것 같다. 순간, 독수리가 하늘로 날 것만 같고 실제로 바위가 꿈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독수리바위에서 보는 일몰은 또 다른 설렘이 있다. 포구를 중심으로, 월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호미바다에 달이 뜨면 멀리 배경으로 보이는 포스코쪽 하늘에는 해가 진다. 바다를 풍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해와 달이 푸른 바다위에서 떠있는 장면은 자연이 그려내는 한 폭의 일월도이다. 비록 반달이지만 경이로운 풍경이다. 물때와 보름날을 잘 맞추면 멋진 일월도를 볼 수 있기에 구름이 없는 날은 늘 이곳을 그리워한다. 어떤 날은 월출과 일몰의 시간 간격이 넓고, 바닷가 날씨가 그렇듯 어떤 날은 갑자기 구름이 끼어서 볼 수 없지만 올 8월에는 그 풍경을 꼭 보고 싶다. 호미곶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이곳을 호미바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이곳을 일월바다라고 부른다. 해가 독수리의 품안에 머무는 순간은 아주 잠깐이다. 바다의 생명력과 해와 달의 기운을 모두 담은 사진을 찍고 싶은데 눈으로 보는 감동을 사진으로 고스란히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내 솜씨의 부족함을 새삼 느낀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바람에 조각되는 독수리 날개를 보며 바위가 축적하는 시간을 호흡해본다. 어느 날 아침 이곳을 찾아오면 무한천공 어딘가로 날아가고 바위의 흔적만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구포포구의 일몰을 좋아하는 것은 독수리가 꾸는 꿈을 볼 수 있어서다. 그 꿈을 보면서 나도 접었던 꿈을 다시 꾼다. 반복되는 일상과 계획한 일들의 실패에서 마음이 허약해질 때 자연은 늘 치유의 새 힘을 준다.
서해안에서 낙조를 보면서 혼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비움`을 배웠다면 동해의 독수리바위에서는 다시 솟아오르는 `비상`을 배운다. 꿈이든 일이든 열정만 가지고는 다 이룰 수 없다.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꿈을 이루기 위해 인내와 고독을 견디는 일이다. 바로 자신에게 내재된 시간의 힘이다. 삶에서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내심임을 비상을 준비하는 독수리에게서 배운다. 나도 언젠가 푸른 하늘을 비행하는 한 마리 독수리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