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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언제나 이곳

양태순수필가바닷가를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제법 있다. 물빛은 코발트로 반짝이고 밀려오는 물결은 다정한 속삭임처럼 정겹다. 모래밭 위에는 갈매기와 비둘기가 엇갈려 날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니 갈매기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빼앗기고 있다. 비둘기가 떼로 몰려서 먹을 것을 에워싸자 갈매기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뒷걸음을 한다. 제 터전을 내어준 갈매기의 눈빛에는 미련이 가득하다. 이곳도 세상의 흐름, 약한 자가 설 곳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장단을 맞추고 있나 싶어 심란하다.내게는 고향의 품과 같은 곳이다. 열일곱 나이에 처음 만난 바다는 신선한 놀이터였다. 수업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집보다 여기가 좋았다. 친구들과 몰려와 파도에 발을 적시며 깔깔거렸던 시간이 셀 수도 없다. 바다란 이름으로 내주는 장소에서 실컷 걸으며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내 안에서 자라는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그 편안하고 따듯했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물처럼 이어져 왔다.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친구가 살았던 단층 주택은 허물어져 새 건물이 솟았고, 자주 오르내렸던 야트막한 산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쪽저쪽 모두 높은 건물이 들어서 예전의 장소를 찾으려면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한다. 그것도 확실히 여기였다가 아닌 이 어디쯤이란 추측만 가능하다. 걷는 내내 과거를 더듬었다. 아련하게 그때의 바다가 그립기는 하지만 시끌벅적하게 바뀐 지금도 나쁘지만은 않다.이곳에서 철의 정원이란 주제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축제가 열렸다. 관람객이 십만여 명이 넘었다니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보다. 아직 전시되었던 작품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작품을 둘러보며 작가의 덧붙인 설명을 읽었다. 예술가들의 고뇌와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동을 넘어 존경을 보냈다. 스틸은 딱딱하여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내 고정관념이 부끄러워졌다.내 걸음을 오래 붙잡아둔 작품이 몇 있었다. 둥근 원 안에 꽃잎이 날아가는 듯,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듯이 표현한 ‘공(空)’이었다. 몸 안에 갇힌 욕심을 비운다는 의미였다. 숲의 정령을 연상시키는 ‘푸른 숲의 거인’ 앞에서는 숨을 멈췄다. 투명한 거인의 몸을 통과하는 햇살 때문에 더욱 신비감이 느껴졌다. 또 한자 나무목을 형상화하고 그 위에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담은 ‘식물적 사유’였다. 나는 ‘식물적 사유’ 앞에서 복잡한 감정으로 서성였다. 식물적이란 말이 마음을 툭 쳤기 때문이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구부리기 어려운 소재로 유연한 사고를 말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식물적 사유란 자신만을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두루 듣고 마음을 열어 모나지 않는 생각, 나와 남을 아우르는 다양한 생각을 키우라는 의미가 녹아 있다. 지금의 내 마음을 채찍질하는 듯해서 찔끔했다. 나는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러 왔다. 말을 앞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앞뒤 돌아보며 각도를 달리하여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저 멀리 해안선을 끼고 둥그런 산이 보인다. 부지런히 달려온 파도가 해안에 입 맞추며 하얗게 부서진다. 좀 전에 본 ‘푸른 숲의 거인’이 성큼 걸어 나와 파란 바다를 몸 안에 들이는 듯하다. 담담한 몸짓에 햇살이 지나가며 투명한 꽃송이가 피었다 스러지는 찰나의 광경이 눈에 담긴다.나만의 신화적인 이야기 하나쯤 품고 싶은 날이다. 푸른 바다가 어둠으로 물드는 밤이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는 미소년이 맑은 트럼펫을 불어준다. 차르륵 차르륵 고운 모래 쓸려가는 반주에 맞춰 갈매기 감춰둔 춤 솜씨 너울너울 펼치다가 웃으며 잠이 든다. 그리하여 이른 새벽에 바다를 찾는 부지런한 이들이 갈매기 낯선 모습을 보며 소소한 근심을 웃음으로 털어버리는 해변을 꿈꾼다. 생각만으로 가슴에 깃털이 자라는 것 같다.바다는 바다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행사가 있어 더욱 좋다.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가 타래진 마음을 물결에 풀어내었다. 삼십 년 전에 철없던 소녀를 위로해주었던 그 바다, 오늘은 중년이 된 나를 나무란다. 책망을 들으면서도 포근한 이곳은 언제나 내가 달려올 곳이다. 사소한 이유를 핑계로.

2021-05-26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양태순수필가자리돔은 대방어를 잡기 위한 미끼로 쓰인다. 방어가 특히 좋아하는 먹이이기 때문이다. 바늘을 살아 있는 자리돔의 배에 꽂아 물속에 넣으면 자리돔은 해류를 타고 활발히 움직인다. 방어를 잡기 위한 눈속임이다. 어부들은 그것으로 방어를 불러들이지 못하면 유인책으로 잡아놓은 자리돔을 양동이에 담아 바다에 흩뿌린다. 그러면 식탐이 많은 방어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자리돔을 쫓아 죽을 자리로 들어온다.물고기는 작을수록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종을 보존하기 위한 계책인 듯싶다. 바다에는 덩치가 크거나 사납게 생겨서 먹는 양이 무시무시한 물고기들이 많다. 일대일로 만나면 백전백패니 여럿이 힘을 합하면 생존율이 높아질 것을 알고 있는 행동이다. 이동하면서 죽임을 당한 물고기는 미끼가 된 상황이다. 누구라고 정해져 있지 않지만 선택되어졌고 동료를 살린 셈이다. 내 몸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몸을 살찌운 행동이다. 사람살이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발버둥칠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려 누군가는 자신의 결을 지운다. 누구보다 여리지만 따스한 마음을 품은 이가 그리해야 할 것 같은 환경을 받아들였다. 부지런히 일해서 모은 대가를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용했다. 자신을 둘러싼 껍데기가 투명해질 때까지 계속한다.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 있었다. 스스로 미끼같은 존재가 되어 외풍을 막아내고자 안간힘을 썼다. 십대에 가정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고 그보다 어린 나이에 부엌살림을 도맡았다. 위아래로 두 살 터울의 형제들이 있었지만 혼자 동분서주하며 묵묵히 불어오고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덕분에 다른 형제들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크게 고생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이 나였다.전래동화에 ‘은혜 갚은 까마귀’가 있다. 그 동화를 읽을 적에는 은혜를 갚는 것이 당연하지 싶었다. 이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 진정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경제적인 것이든, 마음적인 것이든 받은 것을 갚음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는다. 또한 갚음은 받은 사람에게 직접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삶의 깊은 이치가 숨어있는 듯하다. 나는 받은 만큼 갚음을 하지 못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미끼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해야할 무게인 미끼, 내가 속한 가정의 구성원을 잘 먹이기 위해 나름의 물살을 가르며 위험 요소를 요리조리 피하느라 겨를이 없었다. 더러는 황금을 건 미끼를 덜컥 물어서 곤두박질 끝에 벗어나느라 눈을 부릅뜨고 앞만 보고 달린 탓도 있다.삶은 계산기를 두드려 답이 나오는 숫자놀음이 아니다. 상황에 따른 미지수가 등장하고 미지수를 풀이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직선으로 답을 구하다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 많은 변수를 만나 돌고 돌아가느라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아서 행복이라는 글자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누구를 위해 내가 살았다는 말만큼 허무한 것이 없다. 처음부터 방어의 미끼가 될 운명이라 생각지 않은 자리돔이다. 살아내기 위해 열심히 먹이 사냥을 하고 해류에 휩쓸리지 않으려 비늘을 세웠다 눕혔다 해가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다. 그런 중에 미끼가 되어 방어를 살찌게 하고 살찐 방어는 사람이 먹는 것이다. 자리돔이 생명의 위험을 느껴서 내가 동료 대신 방어의 입 속으로 들어가리라 다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런 흐름에 의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잡아먹힌다. 우리는 누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까. 아마 방어를 먹으며 덕분에 잘 먹었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도 사람을 만날 때면 번드레한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그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감사한 마음을 잘 전하고 있는지는 먼 후일에나 들이대보는 소소한 잣대일 뿐이다.모든 생물들의 삶은 종을 넘어 연결되어 있다. 미끼가 되기도 하고 미끼를 먹기도 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둥글게 순환한다. 그 속에서 받아든 날들을 낱장으로 깁는 치열한 작업의 중심에 내가 있다. /양태순(수필가)

2021-05-23

윤장대

정미영수필가예천 용문사는 소백산의 깊은 품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단풍나무 사이를 걸으며 생각의 깃을 세운다. 나직이 속살거리는 나무의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회전문 앞이다.용문사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곧장 대장전을 찾았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전각으로 그 자체가 보물이다. 대장전 안에는 4개의 보물이 모셔져 있다. 손 회전식 경장인 윤장대 2좌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용문사에만 남아 있고, 목각후불탱,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목각탱화다.법당에서 만나는 할머니의 얼굴은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서렸다. 다소곳이 걷는 모습은 근엄했다. 향을 피우고 꾸밈도 어색함도 없이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고 거듭 절을 했다. 할머니의 작은 체구 어디에서 저런 기운이 솟는 것일까? 오직 부처와 일체가 되려는 몸짓이었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듯이 절을 했다.길고 정성스런 절이 끝나면, 불단 양 옆에 놓인 윤장대를 돌렸다. 불교에서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을 윤장대라고 한다. 고려 명종 때 자엄스님이 글을 읽지 못하는 중생들에게도 깨달음의 길에 이르고 소원성취 하도록 안치했다. 경전을 몰라도 책장을 한 번 돌리면 일만 번의 다라니경을 읽은 공덕을 쌓게 된다. 귀중한 문화재이기에 훼손을 우려하여 요즘은 음력 3월 3일과 음력 9월 9일에만 돌릴 수 있다.할머니가 용문사를 찾아온 이유는 윤장대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할머니였다. 경전을 읽지 않고도 부처님께 공덕을 쌓고, 죄와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 하니, 각별하게 와 닿았다.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자식을 의지해 살았다. 그런데 육남매 중 세 명의 자식을 앞세웠다. 할머니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자식들이 단명했다며 통곡했다. 자식들의 죽음은 숨기고, 가리고 싶어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원망할 대상이라도 존재한다면 후회하더라도 속 시원하게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을 텐데. 할머니는 슬픔을 받아들이고 현실을 마주대할 용기를 잃어갔다. 그래서인지 점점 타인 만나기를 꺼려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입지 않으면 좋으련만. 할머니에게 이어지는 모든 관계의 줄 위에서 허둥대며 바투 다가서지 못했다.상실감이 가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자식들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을 가슴으로 삭이니 몸져눕는 날이 늘었다. 할머니의 조그만 등에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업고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더욱 윤장대를 의지해 돌렸다.그러면 어느새 가슴 속에 서린 응어리가 풀렸다고 하셨다. 원망하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생활의 모든 번뇌와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단다.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을 받으니 의심하는 마음 없이 온몸으로 윤장대를 믿고 받아들였다.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벗겨지고 마모된 손잡이에는 할머니의 애절한 손길이 스며있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서 할머니는 정성을 다해 빌었다. 할아버지와 세 아들이 극락에 가서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원했다.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했다.대장전 가득 향내가 자욱하다. 소신공양하는 향을 보니 숙연해지며, 자손을 위해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신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경내를 떠돌던 기원의 말들이 내 두 눈에 닿아 눈물방울로 맺혀 흘렀다. 할머니를 보고 싶어 하는 웅숭깊은 마음 탓에 내 가슴마저 촉촉하게 젖어든다.할머니의 손길을 느끼고 싶어 윤장대를 돌린다. 할머니에 대한 먹먹한 기억과 다정한 추억 인자들이 손잡이에 옹이처럼 내포되어 있는 것만 같다. 품새를 찬찬히 훑어보며 눈에 담고 있는데, 바람결에 목탁 소리가 달려와 내 가슴에 안긴다. 부처님의 설법인 해조음이 들리는 듯해 두 눈 감고 합장한다.

2021-05-19

압화를 풀다

배문경수필가얼마전, 유튜브로 수건춤을 보았다. 백년욱은 진분홍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춤을 추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춤은 거미가 집을 짓듯이 조용했다. 다시 무겁게, 큰 획을 긋듯이 춤추며 수건과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하얀 수건을 들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보여주는 춤사위에 삶의 희로애락이 묻어났다.도심의 골목 공사현장 구석에 일꾼이 쓰다 만 수건이 땀으로 찌든 채 버려졌다. 수건 가장자리에는 모 초등학교 동기회, 모년 모월 모일이라고 새겨져 있다. 올은 낡아 납작해지고 새겨진 글자도 흐릿해진 채 바닥에 나뒹군다.공사현장 옆, 식당 주변에는 만개한 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고운 빛깔 그대로 꽃은 두 번 산다. 꽃은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으므로 더욱 가벼워진 무게로 연옥을 지난 것일까. 나비의 날개마냥 납작해진 꽃잎이 책갈피에서 잠잔다. 두툼한 주인아저씨의 손에서는 핀셋이 가볍게 춤을 추듯 움직인다.압화, 저 무게 없는 꽃이며 잎들이 사람이 되고 해와 달이 되어 소슬한 바람을 맞고 서 있는 나무가 되었다. 압화에는 숱한 사연이 깃들어 있고 한 생을 살아온 이야기꽃이 술술 풀린다.나무에 핀 꽃이 누르미가 되어 빚어낸 장면, 장면은 이야기다.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있고 한가위 보름달 아래 강강술래를 하는 처녀들의 고운 치맛자락이 휘날린다. 꽃잎이 사람의 얼굴이 되고 줄기는 나무가 되어 꽃은 꽃으로 다시 환생한다. 꽃이 만개했을 때, 따온 꽃들은 티슈페이퍼를 깔고 덮고 두꺼운 책 속에서 한동안 잠을 잔다. 아저씨의 젖은 수건에서도 꽃향기가 묻어났다.향기 나는 동백기름을 바르고 쪽진 머리를 하신 어머니는 여름 긴 장마를 걱정스러워했다. 가족들이 쓰고 내놓는 수건을 빨지 못하면 쉰내가 났다. 하루 이틀 비가 쉴 새 없이 내리면 세탁기도 없던 시절 각자가 수건을 쓰고 빨아서 간수해도 냄새는 떠나지 않았다. 잠시 잠깐 말간 하늘이 보이면 장대를 세워 시원스레 수건을 말렸다. 바람에 수건은 춤을 추었다.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가 마당 가득 들어차는 계절, 밭일 논일에 치쳐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목은 땟물에 젖어있었다. 아버지는 등목을 시원하게 하시곤 흘러내리는 물을 닦으셨다. 머릿수건을 벗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던 어머니는 수건으로 온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어스름한 저녁에 밥상을 물리면 곧이어 밤이 깊었다. 일을 끝낸 깊은 밤에서야 진주 빛이 담겼던 당목수건을 풀었다. 어머니는 더워도 추워도 먼지가 많은 일을 할 때도 집안일을 할 때도 항시 쪽진 머리를 감쌌다. 오랫동안 쪽머리에 비녀를 꼽고 사신 분이었다. 기름을 묻혀 참빗으로 곱게 빗으면 윤기가 났다. 수건은 농사지을 때나 집안일이거나 어린 나의 콧물을 닦아주거나 잔칫집 떡도 담겼다. 어머니의 머릿내와 눈물이 섞여 원숙한 모란꽃 향기가 났다.어머니와 첫 세상을 만난 순간부터 수건과 나는 하나가 되었다. 세수하면서 나의 임무는 사회와의 깊은 호흡을 맞추었다. 씻고 나서야 시작이 되는 사회와 인간관계. 그것이 엇박자가 되면 밀려서 저만치에서 홀로 훌쩍이면 패자의 수건처럼 구겨졌다. 다시 힘을 얻어 세상과 맞장 뜰 때는 바람에 펄럭이는 힘찬 수건 같았다. 수건의 가장자리에 새겨진 인쇄처럼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추억으로 남았다.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행사, 축하할 일들은 또한 지켜야할 사회덕목 중에 하나다. 두툼하거나 얇은 수건에 따라 경제사정을 읽기도 하고 수를 놓았는지 쿡 찍은 인쇄물인지에 따라 성향을 파악한다. 한 가족이 된 수건에서는 일상이 담겨있다. 일상이란 꽃 한 송이가 핀 수건을 세탁한다.수건에는 삶의 모양을 닮은 꽃이 박혔다. 피어나지 못하고 바로 압화가 된 꽃송이 서너 개가 보인다. 어머니의 탄식이나 아버지의 땀 냄새, 막 학교를 들어가 뛰어다니던 나의 눈물과 콧물, 그리고 사회 속에서 이어지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추억의 장면들이 수건 속에 있다.수건을 씻어 장대를 세운 빨랫줄에 넌다. 눌려있던 꽃들이 바람결에 선명해지며 돋아난다. 마지막 한 방울의 꽃향기 폴폴 콧등을 간질인다.

2021-05-12

봄편지

양태순수필가공원에 운동을 갔다. 어느새 철쭉이 활짝 봄을 맞이하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잎들의 부지런함이 어여쁘다. 봄물을 길어 올린 싱그러움에 취해 걸음에 봄바람이 실렸다.맞은편에서 오는 부녀와 스쳐 지났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해서 걷는 방향을 바꾸어 두어 걸음 뒤에서 걸었다. 귀를 쫑긋 앞으로 모았다. 드문드문 들리는 내용은 딸이 생각나는 대로 주저리 읊으면 아빠는 적당한 추임새를 넣었다. 별거 없구나 싶어 앞질러 가면서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부러웠다. 부러움이 커질수록 아픔으로 피어나는 얼굴, 내 아버지였다.철이 들기 전, 아버지는 다른 세계로 떠났다.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는 고리는 핏줄 말고는 너무 미미했다. 그래서 떠나보낸 슬픔이 깊은 줄도 몰랐다. 늘 보던 얼굴이 보이지 않는 허전함에 문득문득 앉았던 자리, 누웠던 자리에 눈이 갔다. 그것이 다였다.기억 속 아버지는 남 같은 아버지였다. 한 방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었지만 직접 소통이 없었다. 어머니를 사이에 두고 말이 전달되고 답이 돌아왔다. 내 잘못을 나무라는 일조차 어머니의 입을 빌렸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밖에서 놀다 집에 왔을 때 방에 아버지만 있으면 들어가기 어색해 도로 골목으로 발을 돌렸다. 어렵기만 한 아버지에게 내가 한 말은 밥 잡수세요와 다녀오셨어요, 정도였다.딱 하루, 그날은 예외였다. 내가 중학생이었고 추석을 앞둔 어느 밤이었다. 식구들은 다른 방에 있었고 나만 아버지와 한방에 있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중개인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짐작컨대 마음속을 다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묻고 나는 대답을 했던 듯싶다. 소재가 바닥 날 때쯤 윗방에서 어머니가 장에서 사온 추석빔을 입어 보라고 불렀다. 얼마나 반갑던지 냉큼 일어섰다.중학생이었던 그날 밤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아무리 기억하려 애를 써도 안 된다. 아버지와 나는 무릎걸음 세 번만큼 떨어져 앉았고, 나를 향해 맘껏 드러내지 않은 잔잔한 표정이며 내가 일어섰을 때 차마 잡지 못하는 아쉬운 눈빛은 생생하다. 그 장면을 수십 번 그려보았으나 제법 길었던 시간에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깜깜할 뿐이다. 잿더미를 헤집듯이 아버지의 갈피를 뒤적이고 뒤적여도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살면서 아버지를 돌아보는 날은 기일이나 어버이날이었다. 나와 아버지가 만났던 시간에는 추억할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다 작은 에피소드를 건지겠다고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고 희미해진 여줄가리를 촘촘히 엮었다. 가장 큰 소득은 서로를 오롯이 보았던 그 밤이었다. 처음에는 특별히 기쁠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조각이었다. 그러나 되살려놓은 장면은 해를 거듭할수록 아버지란 이름으로 뜨거워졌다.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아는 나이가 되었다. 살아낸다는 것은 때로는 한 모금 물이 간절한 식물처럼 애가 타기도 하지만 내일이라는 새날이 있어서 힘을 내 하루하루를 이어 일생을 이룬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길 위에서 나름대로 부딪히고 견뎌오면서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왔다. 그것은 내세울 것도 없고 빛나지도 않지만 내 노력의 결과이니 소중하게 여긴다.지나온 굽이의 어느 날에는 아버지를 돌아보기도 했다. 아버지의 생은 오십을 넘기면서 종착역에 닿아 멈추었다. 나는 어렸고 사는 동안 살가운 정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만 키웠던 애정의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헤어진 수십 년을 곱씹는 동안 아버지의 삶을 어머니와 형제로부터 전해 들었다. 너무나 작은 추억의 부스러기로 아버지를 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차지한 내 마음자리는 늘 축축하고 아리다.철쭉이 한창인 공원에서 낯선 부녀로 인해 아버지를 만난 날이다. 언젠가 마주하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본다.“많은 날을 기억하지 못해 죄송해요” 숨을 삼켰다.“그날 밤의 눈빛을 이제는 놓을래요. 그러나 내 아버지였음은 잊지 않을게요” 소리맴이 길다. 내 안에 갇혀있던 울새를 날려 보낸다.

2021-05-05

인연을 짓다

정미영수필가벚나무 꽃자리마다 초록빛이 시(詩)처럼 흩날리는 봄날이다. 나는 도서관을 향해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강의실로 들어가기 전에 책과 먼저 눈인사를 나눈다. 정갈하게 정리된 서가 사이를 오가며 서너 권의 책을 꺼내 들면, 작가의 소중한 글을 제각각의 공법으로 알차게 꾸민 출판사의 노력이 표지부터 물씬 전해진다.책을 펼치면 주옥같은 언어의 황홀경이 펼쳐진다. 인생의 세밀한 구석들을 명증하게 들추어내는 책을 들여다볼 때면, 수필을 쓰는 나로서는 자극을 받을 때가 많다. 나도 우리네 인생사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체를 사용해 진솔한 작품을 창작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내 수필 속 청신한 문장들이 독자들의 마음속으로 날아가 선명하게 돋을새김 되어 빛나면 좋으련만.독서는 삶을 변화시키는 임계점이다.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자분자분 문장을 음미하다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책에 몰입하게 된다.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순간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창조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책을 통해 치유받기도 하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다.책에서 얻은 순도 높은 깨달음을 공유하는 데에는 독서 모임이 제격이다. 나는 포항시립도서관에서 인문학 독서회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덕분에 회원 분들과 어우렁더우렁 ‘책수다’를 떨고 있다.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행복해질 거야.’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 문장을 빌려 독서회를 기다리는 내 설레는 마음을 표현해 본다. 우리는 책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나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문장과 생각들을 펼쳐 보인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며 등장인물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작가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고자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책 향기를 맡으며 우리들 내면이 성숙해지기를 바랄 때도 있다.책은 타인과 소통하는 문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내 생활을 잠시 멈추고, 문을 활짝 열어 내 주위를 따뜻한 마음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그런 뜻에서 독서회에 참여하는 분들은 이미 타인과 소통하고 있다. 회원들은 서로의 고민과 아픔을 말하며 고단한 등을 토닥여 주고는 함께 눈물 흘릴 때가 있다. 삶의 깔딱고개를 넘어오느라 숨이 찬 것을 잠시 내려놓기도 하고, 자녀와의 부대낌 속에서 겪는 속상함을 이야기하면서 치유 받기도 한다. 시나브로 우리는 책을 통해 기꺼이 동반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나는 독서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얼마 전, 회원 한 분이 내게 책을 선물해 주셨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받은 속상함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심리 책을 섭렵하고 있는 중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옭아매고 있는 상처를 보듬기 위해 이 책을 골랐다고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위로를 받았다며 내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단다.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 내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독서회는 꿈 씨앗이 영글어 가는 곳이다. 좋은 책은 꿈을 잃고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꿈을 되돌려 주거나, 혹은 꿈을 잃어버린 채 절망의 늪에 빠져 있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넓힘으로써 세상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책의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 자신만의 꿈 씨앗을 싹 틔우고 튼실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는다.회원 분들은 품이 넉넉한 탓에 누구라도 환영한다. 책을 읽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 찾아왔든, 사람이 그리워 찾아왔든, 항상 밝게 ‘손 내밈’을 한다. 독서회는 왜 질리지도 않고, 계속 참여하고 싶고, 옆에 영원토록 붙잡고 싶은 것일까. 우리 회원 분들이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희망의 언어를 책 속에서 찾아내어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지기를 곡진하게 기원해본다.나는 지금, 독서회 분들과 소중한 인연을 짓고 있다.

2021-04-28

상상의 절을 짓다

배문경수필가창밖으로 황룡사지(皇龍寺址)가 보인다. 드넓은 터에 청보리가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커피를 한잔 들고 밖으로 나오니 가슴이 탁 트인다. 너른 들판과 나지막한 산자락으로 하늘이 높게 보인다. 그 아래 80여m 높이의 탑과 불국사의 여덟 배 크기의 절이 있었다니 그 크기를 상상하기 힘들다.들어서는 길은 보도블록을 깔아두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라고 네 개를 깔고 중간은 비워두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간격이 필요한 것인지, 바람이 지나가는 길인지, 자전거라도 지나다니라는 길인지 길게 뻗어있다.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만들어진 구층 목탑과 사대(四代)의 왕을 거치며 완공된 황룡사는 지금 주춧돌과 초석만이 남아 그 규모를 떠올리게 할 뿐이다. 보리밭 중간쯤에 있는 당간지주가 긴 세월을 덩그러니 지킨다.살살 불어오는 바람이 당간지주 구멍을 지나 세월에 닳은 풍탁소리 들려주는 듯 아련하다. 둔덕으로 오르자 금동 장륙존상이 있던 돌 좌대가 남아있다. 부처님의 실제 크기인 5m 정도로 만든 부처상이 세워졌던 곳이다. 화성 솔거(率居)의 금당벽화가 이곳 어디쯤 있었을 것이다. 먼 이야기 속, 그가 그린 노송에 새들이 날아와 앉다가 부딪혀 어질어질했다지. 자장과 원효가 강설했을 강당도 이 어디쯤 있었을 것이다. 자장이 보살계본을 강설하자 일주일간 감로운무(甘露雲霧)가 내렸다고 전한다.몇 년 전, 이 자리에서 환한 세상을 본 적이 있다. 한창 자란 풀에 발길이 얽히고 사위는 어둑했다.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달빛은 교교했다. 친구는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이곳에 한 번씩 온다며 나를 꼬드겼다. 보름달 보며 울부짖는 여우냐며 놀렸지만 걸어 들어서는 길이 달빛을 받아 온통 하얗게 빛났다.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 찬란한 역사의 신라 사람이 된 묘한 느낌이었다. 탑돌이를 하던 선덕과 지귀를 떠올리고 여러 왕을 모신 미실이 떠올랐다. 큰 돌에 앉아 달빛을 받으며 삶의 고달픔이며 모래알 같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었다. 점점이 피어오르던 시간의 무게가 어둠살을 키웠고 둥근 달만 두고 그림자를 지우며 우리도 일어섰다.황룡사 9층 목탑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문화사학자 유홍준은 우리의 기술과 나무로는 황룡사 9층탑을 재현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지금 십분의 일로 축소한 탑조차 몇 년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홀로그램 같은 기술로 허공에 빛을 쏘아 탑을 만들면 어떨지 제안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한 고증으로 원래의 모습을 재현했으면 좋겠다.빈터를 걷는다. 신라의 궁궐을 지으려다 황룡이 나와 절이 된 황룡사를 생각한다. 신라의 중심이었을 이곳에서 빛났던 탑을 고려의 김극기가 노래했다. “층층다리는 빙빙 둘러 허공에 나는 듯하고 수많은 산과 물이 한 눈에 트이네. 돌아보니 동쪽 도읍의 많은 집들이 벌집과 개미구멍처럼 아련히 보이네” 아쉬운 마음이 절로 든다. 27층 건물 크기의 탑 꼭대기에 올라 손을 뻗으면 별과 달에 닿지 않았을까. 왕이 살던 반월성과 왕자가 살던 동궁과 월지에서 바라보면 탑은 십자성처럼 빛나며 신라를 지켜준다고 흐뭇했으리라. 성덕대왕신종보다 네 배나 무거웠다는 종소리가 신라를 덮고 더 넓게 중국에까지 울려 퍼지지는 않았을까.우리에겐 상상의 힘이 있다. 기도라는 것도 상상으로 무한한 것을 유한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힘이다. 그리고 여백은 무한한 가능성이다. 한 마리 새가 날개를 편다면 그 공간은 새가 날아가리라는 무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황룡사지를 거닐며 저마다의 상상으로 자신만의 절을 짓는다면 그 또한 허물어진 내 마음 속의 절을 복원하는 일이 아니겠는가.탑곡 마애불상군의 구층탑이 음각으로 새겨진 것을 보고 나는 ‘절없는 절’이라는 글을 썼다. 바위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탑과 절이지만 상상의 탑과 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은 마음속의 그리움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마음속의 것을 정을 두드려 새기면 석가탑이나 다보탑처럼 탑이 되고 남산의 마애불상이 된다. 붓을 들고 채색을 한다면 그것은 탱화가 되고 단청이 된다.황룡사지는 어느 때보다 무한한 상상이 빚어낸 탑으로 빛나고 있다.

2021-04-21

살아있는 모자이크

강길수수필가누가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살아있는 모자이크다. 한데, 만드는 이가 안 보인다. 나풀나풀 하늘에서 흰 나비 날개들이 내려올 뿐이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업을 하나 보다. 삼월 말, 수난(受難)주간 마지막 날 성당 가는 보도(步道) 위다.다른 나무들은 벌써 신록을 연출하기 시작한다. 벽돌 담장 위에 얼굴을 빼꼼히 내민 장미 아가씨의 새순은, 어느새 길이가 한 뼘은 되어 보인다. 잎 사이에 꽃망울도 품었다. 꽃샘추위가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바야흐로 봄이다. 기후 변화로 많이 앞당겨진 봄…. 봄은 내게 언제나 불쑥 나타났었다. 올해도 그랬다. 무심히 걷던 보도 위에서, 갑자기 ‘살아있는 모자이크’로 다가온 것이다.새봄맞이 자연 모자이크대회가 열린 걸까. 보도에도, 잔디밭에도, 차 위에도, 아스팔트 노면에도 모자이크가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 재료는 엷은 분홍빛 살짝 머금은 흰 나비 날개뿐이다. 붙일 벽, 유리창, 천장, 그림판도 없이 어떤 거장(巨匠)이 바닥마다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탄성이 나온다. 보도블록에 갓 생긴 모자이크를 밟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는다. 모자이크는 무늬나 그림을 나타낼 텐데, 우둔한 나는 알아보지 못한다. 나스카의 지상 그림처럼 비행기라도 타고 높이 올라가야 볼 수 있을까.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줄기 실바람이 만발한 벚꽃 가지를 간질인다. 웃음 참던 꽃잎이 못 참고, 꽃을 떠나 나비 날개가 되어 날아오른다. 팔랑팔랑 날던 날개가 살며시 내려온다. 묵주반지 낀 내 손등에 잠깐 내려앉았다가 바람에 다시 떠난다. 전할 말이라도 있을까. 그 순간 손등이 느낀 실낱처럼 서늘하고 아린 감촉이 그 봄, 어머님의 손 허물에서 느꼈던 촉감을 닮았다. ‘그랬어. 그해 봄 이 무렵, 어머니는 아프신 몸으로 우리 집에 오시어 몇 주 머무셨지. 나는 이틀에 한 번씩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녀오는 게 고작이었었을 뿐이었어.’“야야, 너희 아버지 가실 때 손이 벗겨지더니, 나도 그렇구나….”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신 갈 길을 미리 아신 듯, 고통 속에 담담하게 말씀하는 어머니 앞에서 할 말을 잊었었다. 우리 동기들을 낳아 기르느라 밥하고, 빨래하고, 길쌈하고, 밭매고, 땔나무까지 하신 어머니. 자식들과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소나무 껍데기같이 투박해지셨던 손. 그 손이 허물을 벗으며 아기 손처럼 해말갛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에 허물을 받아 가만히 감싸 쥘 뿐이었다. 떨리던 손바닥에 파고든, 말 못할 촉감이 아직도 손에 고스란히 남았다.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로 손에 박힌 것일까. 어머니는 초파일 다음날, 아주 우리 곁을 떠나셨다.저 바닥 위에, 살아있는 벚꽃잎을 재료로 누가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을까. 보나 마나 푸른 별 지구 곧, 땅과 바람이리라. 실바람이 벚꽃을 간질이면 벚나무는 꽃잎을 내준다. 꽃잎이 나비처럼 난다. 땅은 꽃잎을 끌어안으며 무늬와 그림을 만든다. 땅과 바람의 의기투합이, 곧 명 다할 꽃잎에다 새 생명을 부여한다. 살아있는 모자이크가 탄생하는 것이다. 꽃잎이 말라 사라져도, 지구 중력이 만든 모자이크는 땅에 아로새겨져 있으리라. 마치 내 손에 남은 어머니의 손 허물 감촉이, 따사하고 아린 모자이크가 되어 머물고 있듯이.모자이크는 재료들이 간격을 두고 각각 머물게 만든다. 따로 있으면서도 함께 있는 존재가 모자이크다. 재료 각각은 뜻을 가질 수도, 안 가질 수도 있지만, 전체는 만든 이의 뜻을 드러낸다. 사람 삶도 모자이크다. 따로 태어났어도, 공동체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기 삶을 살면서 공동체 생활도 한다. 생각해보면 원자에서부터 태양계, 우주에 이르기까지 개체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다. 그러기에 나와 너, 우리, 나라, 지구촌, 우주도 하나의 모자이크다.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족히 오리(五里)는 될 성당 가는 보도와 그 주위엔, 기회를 놓칠세라 끊임없이 모자이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비록 ‘코로나 19’의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의 힘 드는 상황이지만 그 또한 모자이크이니, 모두가 잘 이겨내어 승리의 모자이크를 만들어야 하리…….

2021-04-14

민들레

정미영수필가민들레는 할머니와 나의 추억이 담긴 꽃이다. 사물은 사연이 담기는 순간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그런 연유로 해마다 나의 봄은 민들레가 필 무렵 시작된다. 민들레를 보아야 마음에서 진정한 봄을 받아들인다.돌아가신 할머니는 봄날 입맛이 없을 때 뒷산을 찾았다. 민들레로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민들레를 캐고 난 뒤, 집에 돌아와 민들레밥과 민들레된장국을 상 위에 정성스럽게 올렸다. 된장국을 숟가락 가득 입안에 떠 넣으면 민들레 특유의 은은한 향이 온몸 가득 퍼졌다.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었다.봄비 그친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양지바른 산기슭과 밭둑 언저리에 피어난 민들레를 캐기 위해 어린 나를 앞장 세웠다. 할머니는 호미로, 나는 숟가락으로, 줄기를 조심스레 잡은 뒤 뿌리를 캐서 흙 털기를 반복했다. 칡 바구니 가득 민들레를 캐고 나면 민들레 내음이 손가락 사이에 뱄다.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뻐근해서 둥글게 말고 있던 등을 펴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는 붙박이처럼 제자리에서 민들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할머니는 민들레처럼 살면 좋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생명력이 강한 민들레가 좋다면서. 민들레는 아무데서나 싹이 잘 트고 잘 자란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에도, 먼지가 겹겹이 쌓이는 길바닥에도, 무심한 사람들에게 밟혀도 죽지 않는다. 씨앗들은 멀리까지 날아가 부지런하고 야무지게 살아간다.할머니 역시 강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육 남매를 키웠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깊은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자식들을 위해 삭여야 할 때가 있었다. 삶이 주는 무게가 무거워 주저앉고 싶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했기에, 생활의 역경을 이겨나갔다.할머니는 생활에 대한 막막함의 농도가 짙어질 때면 가끔 나를 붙잡고 말했다.“영아, 할매는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고 싶데이.”민들레처럼 어디론가 날아가고자 꿈꾸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말투에는 삶의 고단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민들레는 봄이 멀어질 무렵이면 바람에 몸을 싣고 멀리 여행을 떠난다.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는 낯선 땅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그곳에서 싹을 틔운다. 할머니는 살면서 문득문득 자신을 가두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남편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이 가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때마다 민들레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진정한 삶은 남이 아닌 스스로가 만든 굴레에서 자유롭게 벗어나고자 노력할 때 주어지는 것이리라.세월은 할머니의 바람을 앗아갔다. 할머니 몸 군데군데 민들레 갓털처럼 버짐이 번졌다. 고달픈 생활 속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던 중에 치매 증상이 생겼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자유롭게 떠도는 여행이 아니라, 요양병원이라는 갇힌 공간에 모셨다.할머니가 하루빨리 호전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민들레의 재생력을 빌려서라도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져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기원했다. 민들레는 뿌리를 열 토막으로 잘라 땅바닥에 던져두면 열 포기의 민들레가 돋아난다. 잘라진 민들레 뿌리에서 다시 새싹이 돋아난다. 그러나 내 바람은 끝끝내 부질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아 저 멀리 하늘로 떠나셨다.나는 올해도 민들레꽃과 함께 봄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할머니의 품이 민들레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민들레는 할머니에 대한 내 슬픔의 인자를 내포하고 있다. 먹먹한 기억과 다정한 추억 또한 담고 있다.아파트 화단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민들레꽃이 나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민들레 향기를 닮은 추억들이 바람결에 실려 온다. 민들레가 할머니로 변신하여 자유가 되고 희망이 되어 바람결에 변주된다. 손을 뻗어 가만히 꽃잎을 쓰다듬으니, 봄과 이어진 연결 고리 하나가 내 손으로 건너온다.

2021-04-07

떡 만드는 여자

배문경수필가떡을 만든다. 쌀가루, 소금, 검은콩을 준비했다. 정확하게 그램을 맞춘다. 맵쌀가루를 채에 문질러 두 번을 내렸다. 쌀가루를 만지자 폭신폭신 카스텔라처럼 부드럽다. 오늘은 콩설기 떡을 만든다. 냄비에서는 서리태가 익는 중이다. 콩 색깔을 닮아서 물색도 검다. 다 익은 콩을 채에 한 번 내려 마른 수건으로 툭툭 쳐서 콩의 물기를 뺀다. 쌀가루에 소금을 적당히 뿌렸다.평생교육원에 떡 만드는 과정을 등록했다. 열두 명을 뽑는데 이곳에 들어오기는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지만 운이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뜬 마음으로 떡을 만든다.찜기에 면포를 깔고 검은 콩을 촘촘히 깐다. 남은 콩과 쌀가루를 잘 버무려 가장자리부터 툭툭 치면서 빈틈없이 메운다. 다시 위를 평평하게 고른다. 그리고 대나무 찜기를 양손에 힘을 주어 안으로 민다. 그래야 떡이 익었을 때 찜기에 떡이 붙지 않는다. 그 사이 물이 끓으면 찜기를 올려두고 기다린다.보이지 않는 바닥에 콩을 예쁘게 까는 이유는 떡을 꺼내 뒤집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된다. 안 보인다 싶어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쌀과 콩이 빈틈을 메우듯 속이 꽉 차 뒤집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상대를 감동 시킬 따뜻한 품성이면 좋겠다. 그리고 친하다고 너무 붙어 있으면 얼마나 피곤한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오래 가는 방법이다. 여유가 필요하다고 콩설기 떡이 오늘 나에게 설법한다.어릴 적, 동네 큰 잔치가 있으면 떡을 나눠먹었다. 떡을 얻어먹으려고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녔다.우연히 들은 떡 타령이 재밌다. 정월 대보름 달떡, 이월 한식 송병, 삼월 삼진 쑥떡, 사월 팔 일 느티떡, 오월단오 수리취떡, 유월 유두에 밀전병, 칠월 칠석에 수단, 팔월 한가위 송편, 구월 구일 국화떡,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시미, 섣달에는 골무떡이라 지역적 특징으로는 산중 사람은 칡뿌리떡, 해변 사람은 파래떡, 제주 사람은 감자떡, 황해도 사람은 서숙떡, 경상도 사람은 기정떡, 전라도 사람은 무지떡이다. 갑자기 떡 부자가 된 기분이다.익은 떡 위에 큰 접시를 대고 뒤집자 콩이 눌러앉은 자리가 갖가지다. 적당한 거리, 촘촘한 것, 드문드문 놓여 제멋대로다. 다음에 떡을 만들 때는 큰 하트 속에 작은 하트 그리고 더 작은 하트를 만들어 내놓으리라. 세상에 대고 사랑한다고 모두 사랑한다고 떠들 생각이다.난 오랫동안 떡을 좋아했고 만들고자 했다. 가까이에 떡 만드는 교육이 있는지 몰랐다. 떡을 찾아 헤맨 시간이 길었다.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떡 방앗간을 했다. 6살 되던 해, 온 가족이 모두 방앗간에 매달려 하루 종일 떡을 만들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떡가루를 갈던 기계에서 불이 났다. 그 불은 엄청난 속도로 방앗간을 모두 삼켰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 불씨가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방앗간 옆 살림집으로 번진 불은 삽시간에 지붕을 태우면서 너울너울 춤췄다.어린 내가 가족에게 끌려 나와 내의 바람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녀의 춤사위처럼 화려했다. 엄마는 자신의 모든 재산이 일순간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그 후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오래도록 몸과 마음을 피폐화시켰다. 각자가 살아야 했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 떡을 만들고 싶어졌다. 떡을 만들면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떡이 가족이었다. 어린 내겐.떡을 만들어 흰 접시에 놓고 보니 첫 작품치곤 훌륭하다. 가슴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상징하던 방앗간, 불, 고통이란 단어들이 툭 하며 떨어졌다. 잘 했어. 내 마음이 나를 위로했다. 누군가의 가슴에도 이렇듯 위로가 되는 떡을 만들고 싶다. 떡은 사랑이니까.

2021-03-31

또다시 온 삼월

강길수수필가세레나.또다시 삼월이 왔습니다. 작년 삼월은 정월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에 정신이 홀려버렸었지요. 그 때문에 봄 편지 한 장 못 쓰고 지나갔었습니다. 세레나도 그랬다고요. 아마도 지구촌 모든 이가 그리 살았을 터입니다.올 삼월에도 자연은 솟아나는 연록 새싹들의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살구, 복숭아, 벚나무가 잇달아 사랑을 꽃피웁니다. 저 낮은 곳에는 하얀 별꽃과 파란 까치꽃들이 앙증스레 봄을 뽐내고 있고요. 한데 우리 사회와 지구촌은 아직도,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의 공포와 싸우고 있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마스크를 벗어 던질 수 있을까요.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병원체(病原體)…. 사람들이 어찌 피하며 살라고, 하늘은 이런 존재들의 생성을 허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지구란 행성은 생명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주는 도장(道場)으로 설계된 곳일까요. 생명체와 비 생명체의 특성을 다 가졌다는 묘한 존재 바이러스. 숙주의 생체 안에 들어가야만 증식하며 살 수 있는 이상한 병원체 바이러스. 21세기 과학 문명의 사회에서 왜 코로나바이러스 퇴치가 쉽지 않을까요.세레나.사람들은 코로나19가, 오고 있는 언택트(untact) 시대를 더 앞당겼다고 말합니다. 이 흐름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인간은 폴리스(polis)적인 동물이다’란 정의를 무산시키는 것일까요. 후에 세네카에 의해서 ‘사회적인 동물’로 번역되었다지만, 그 의미는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로 보아도 될 테지요. 얼핏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가 무너졌다 볼 수는 있겠으나, 우리가 누리는 컴퓨터, 휴대폰 등 정보 소통 도구들을 생각한다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소통 방법만 달라졌지, 공동체로 살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 달라진 것은 아닐 테니까요.바이러스가 생체에 기생하듯, 생명도 자연에 기대어 삽니다. 또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붙어살듯 인간은 자연에 기댈 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참가해야 삽니다. 올 삼월엔, ‘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표되는 ‘언택트 시대’란 명제가 제 앞에 턱 버티고 서 있습니다. 산골 농가에서 태어나 자라며, 사람에게는 친 생태계의 본능이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당시 농사는 완벽한 자연 순환형 농법이었으니까요. 한데 왜, 그 인간이 이룩한 물질문명 사회가 오늘날 기후변화, 생물 종의 감소, 사스나 코로나 19 바이러스 등의 병원체 발생, 전염과 같은 자연의 역습을 받는 처지가 되었을까요.컨택드(contact) 시대의 개인이 흙 입자라면, 언택트 시대의 개인은 모래 알갱이라 볼 수 있겠지요. 흙과 모래의 결속력을 따진다면 당연히 흙이 강합니다. 그러나 모래가 시멘트와 물을 만나면 콘크리트가 되어, 그 단단함은 구운 흙벽돌과도 견줄만할 것입니다. 어쩌면 언택트 시대의 가능성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언론 매체와 컴퓨터, 휴대폰 등 사회의 소통 도구와 방법들을 물과 시멘트의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인간이 지혜를 모은다면 말입니다.세레나.보도 가에 때 이른 작은 해님들이 삼월을 밝힙니다. 해님들은 머지않아 하얀 갓털 송이로 변신하여 봄바람을 기다릴 것입니다. 이윽고 명지바람 남실남실 불어오면 갓털은 씨방을 모시고 날아, 새 땅에 새 민들레로 태어날 테지요. 기후변화에 곧바로 대응하는 민들레가 거룩해 보입니다. 식물이 생태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살아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코로나 19로 얼룩진 두 번째 삼월을 하릴없이 삽니다. 웬일인지 올핸 새싹에 눈길이 더 갑니다. 철 이른 새싹은, 식물이 살기 위해 우리가 모르는 소통과 결정으로 변화하는 기후와 환경에 대처한 결과가 아닐까요. 정부가 강제한 ‘거리 두기’, ‘비대면’, ‘백신 접종’ 부작용 등이 사람을 우울하게 합니다. 하지만, 언택트 시대로 가는 훈련이라 여기며 새싹처럼 대처하려 합니다.또다시 온 삼월, 연록 새싹들의 생명 찬가가 온 누리에 메아리칩니다.

2021-03-24

징검다리

정미영수필가대학 2학년 때였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들뜨는 어느 봄날, 단짝과 교정을 걷다가 초등학교 남자 동창생을 만났다. 재수를 하여 나보다 일 년 뒤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다.살랑거리는 봄바람 탓이었다. 동창생과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 한 올이 내 입술에 얹혔다. 그 순간 그가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치웠다. 허물없는 사이라 짜릿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단짝은 그 행동이 참 자상해 보였다고 했다.자상한 손길에서 애틋함을 느꼈을까. 단짝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꽃을 보면 선물하고 싶고, 차를 마시면 찻잔 너머로 미소를 건네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내 동창생은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사랑은 사치라고 했다. 그때 그는 갑작스럽게 불거진 부모님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워 했고, 군대 문제로도 고민하던 중이었다. 대학 새내기로서의 발랄함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얼굴이었다.그래도 나는 단짝의 사랑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어느 새 스며든 사랑은 온몸을 적셔 친구는 힘든 가슴앓이를 했다. 슬픈 시만 골라 읽고 떨어지는 꽃잎에도 눈물을 흘리는, 그 아픔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친구가 밤새워 쓴 편지를 전해주기도 하고, 일부러 동창생과 자리를 마련해 함께 밥을 먹었다.대학축제 기간이었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휩쓸려 모두가 흥겨운 듯 보였는데 문득 친구가 바다 이야기를 했다. 밤바다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고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갈매기를 보면 가슴이 좀 트일 것 같다고 했다.무작정 부산행 열차를 타고 광안리로 갔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모래밭에 앉았다. 별 말 없이 앉아 있던 친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친구의 작은 몸집 어디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숨어 있었는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큰 눈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바다에 다녀온 뒤였다. 동창생을 만나면 때때로 모진 말들이 내 목까지 차올랐다. 네가 그렇게 잘 났냐는 둥 사람 마음 아프게 하면 벌 받는다는 둥…. 그러나 입 안에서 맴돌 뿐 내뱉지 못했다. 그도 소중한 내 친구였으므로.나는 둘 사이의 징검다리였다. 동창생은 친구인 내가 가운데 있어 단짝에게 매몰차게 거절 못했다. 단짝 또한 본심을 직접 전하지 않고 대부분 나를 통했다. 둘 사이의 연결이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음의 강을 사이에 두고 쉽게 건너지 못했다.어렸을 때 강에 드문드문 놓인 징검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다. 반쯤 건넜는데 가운데 징검돌 두세 개가 없어서 난처했다. 무리를 해서 뛰기에는 돌 사이가 넓었다. 물에 빠질 것 같았다. 건너지 못하고 뒤돌아 나와 멀리 에둘러갔다. 길을 잇는 것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을 이어 주는 일임에랴. 그때 나는 징검다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양쪽을 연결하지 못하면 징검다리는 소용없다.얼마 전 어린 조카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었다. 북두칠성이 된 일곱 형제 이야기다. 홀어머니가 일곱 형제와 살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는 매일 밤 집을 나서 이웃집에 놀러갔다. 형제는 어머니가 차가운 강물을 건너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징검돌을 놓아 다리를 만들었다. 아들이 징검다리를 놓았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는 기도했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을 하늘의 별이 되게 해달라고. 일곱 아들은 나중에 별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북두칠성이라 했다.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연락이 뜸한 친구와 친구를 연결해 주고, 어쩌다 소원해진 가족과 가족을 손잡게 하고,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싶다. 물이 좀 깊어도 징검돌이 있으면 누구라도 건너볼만한 용기가 생긴다. 아쉬운 자리마다 든든하고 판판한 징검돌로 놓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 또한 밤하늘의 별빛을 닮을 수 있지 않을까.

2021-03-17

때로는 기적이

배문경수필가겨울 끄트머리에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번쩍하며 벼락이 떨어졌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세 마리의 개와 산책하던 남자가 벼락을 맞고 의식을 잃는 모습을 보았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소방관이 심폐소생술로 그를 살렸다는 기사와 현장상황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졸지에 벼락을 맞은 남자는 몇 달째 치료중이라니, 지독스럽게 운이 나빴지만 그 와중에도 목숨을 건졌으니 천운은 아니었을까.사람이 길을 가다 벼락을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57만6천분의 1이다. 그리고 그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은 223만분의 1이다. 가까운 지인 중에 벼락을 맞았지만 멀쩡하게 살아있는 두 사람을 알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처음 바닷가로 떠난 MT에서 금속벨트를 착용한 친구가 벼락을 맞으면서 그 옆에 있다 변을 당했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굉음에 그대로 쿵하고 뒤로 넘어졌다는데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다른 한 명은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플라스틱 우산 꼭지가 벗겨지며 피뢰침이 되어버린 우산대로 전류가 흐른 모양이었다. 그때 평생들을 수 없을 만한 굉음으로 인해 한동안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플라스틱 손잡이였기에 전류가 몸으로 통과되지는 않았다. 역시 살 사람은 사는 모양이다.벼락을 맞는 것도 드물지만 벼락을 맞고 산 사람도 흔하지 않으리라. 그럼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얼마일까? 무려 814만5천60분의 1이다. 이것은 하루 동안 벼락을 세 번 맞은 사람이 다시 차에 치이고 뱀에 물리고도 죽지 않을 확률이다. 더욱이 로또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당첨될 확률은 1억7천522만3천510분의 1이다. 이 기막힌 숫자계산을 한 사람이 도리어 놀랍기도 하다.국내에서 발행한 최초의 복권은 1947년에 다음해 있을 런던 올림픽 참가비용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때 액면가는 백 원이었고 일등 당첨금은 백만 원이었다. 이렇게 마련된 경비 팔만 달러로 선수단은 런던으로 떠날 수 있었다. 사소한 듯 낸 돈은 큰 목적에 사용되고, 다수가 낸 돈을 소수의 사람에게 행운으로 몰아주는 방식이다. 요행히 나도 5만 원에 당첨된 적이 있었다. 흥분되었던 나의 기억도 총 구입비용을 계산한다면 빙산의 일각이었다.복권에 인쇄된 것은 아니지만 당첨만 된다면 자신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상사 눈치 안보고 작은 봉급에 연연해하지 않고 사표를 쓰리라. 날마다 치솟아 오르는 아파트에 나도 몸을 실어보리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인심을 내리라. 가난한 이웃을 도우리라. 무엇 무엇에 대한 수많은 기대와 포부가 복권 안에 담겨있다. 숫자 여섯 개를 맞추다 실망하여 ‘오늘도 안 되는구나’라는 한숨을 내쉬며 한두 개 일치하는 숫자나 세 개 정도 맞아 본전을 건지면 아쉬운 마음을 정리한다.그렇지만 오늘이 주는 힘듦을 잠시잠깐 상상력이 만들어낸 유토피아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힘이 하늘과 맞닿으면 일등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선택은 로또 자신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숫자의 배열 그 신비한 힘이야 말로 번개에 몇 번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기적이다. 때론 광고를 보며 ‘이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야’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복권(福券)이 복권(福權)이 되길 바란다.그러고 보면 벼락을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과 복권 일등에 당첨된 사람은 행운을 거머쥔 사람이다. 어쩌면 유년에 연탄가스에 취해 죽다가 살아난 나의 삶도 벼락을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는가. 엄청난 경쟁을 뚫고 한 인간으로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것이 진정 기적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승리자다. 지금 이 순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행운이리라.연탄가스로 죽다 살아난 자의 운과 이십년 운전하며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행운에 산을 그렇게 올라도 뱀에 물리지 않고 내려온 운을 보태 이번 주말에도 복권을 샀다.문을 열자 천둥번개는 사라지고 새소리가 초록을 잉태한 봄을 깨우고 있다. 오늘도 기적의 하루를 열어젖힌다.

2021-03-10

우리 새싹들에게

강길수수필가우리 두 새싹, 태극이와 광복아!너희들 만난 지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또 보고 싶구나. 너희 아빠들 자랄 때 보다 우리 새싹들이 더 보고 싶으니,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할아비와 할미에겐, 너희들이 가장 소중하고 큰 행복이란다. 지금은 세상이 어찌 변할지 모를 혼돈시대다. 하여, 우리 새싹들에게 무언가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될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련다.일주일만 있으면 3월이 되는구나. 봄이 온다는 뜻이지. 입춘과 우수도 지났으니 지금도 봄일 테지만, 경험상 3월부터 봄이라 하고 싶다. 할아비 유년기의 봄은 아직도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다. 바로 새싹이란다. 고향 산골에 3월이 오면, 앞산 뒷산의 눈이 녹아 개울마다 도랑마다 맑은 물이 졸졸졸 흘렀지. 우리 집 앞 양지바른 밭둑 이곳저곳엔, 연둣빛 새싹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랐고…. 어린 할아비는 매일같이 새싹들을 만지기도 하며 노는 게 마냥 즐거웠단다.오늘, 할아비는 너희 할미와 텃밭에 갔었다, 지난 늦가을과 초겨울에 심은 양파와 마늘이 궁금해서였지. 전에 안 보이던 마늘 새싹이, 메말라 보이는 이랑에 다문다문 너희들 손가락처럼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니겠니. 할미는, “와! 마늘 새싹 났구나! 아이고, 귀여운 것들….” 하며 뛸 듯이 좋아하였다. 할아비는 연두색 마늘 새싹을 보는 순간, 손으로 만져보며 꼭 너희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옛날, 고향에서 좋아했던 봄 새싹의 기억이 덩달아 되살아나더구나. 텃밭 가꾸기를 처음 시작할 때, 비록 적게 거두더라도 할아비 유년 시절 보던 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단다. 즉, 비닐과 농약은 쓰지 말고 해롭지 않은 거름만 쓰자고 말이다. 심은 씨를 하늘이 길러주는 대로 받아먹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지. 사람들은 이런 할아비의 생각을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땅이 작을수록 농약과 비료, 비닐도 써서 수확량을 늘려야지 배부른 소리’라고 말이다. 하긴 텃밭이 크고 살림살이가 밭에 매여 있다면, 할아비도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우리 새싹들아!무엇보다, 너희들에게 유해물질 없는 먹을거리를 조금이라도 먹이자는 마음이 앞섰단다. 올여름 네 돌을 맞을 태극이와, 올봄 두 돌이 올 광복이가 할아비 할미가 노지재배로 거둔 푸성귀를 먹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 물론 잘 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생태계를 희생하며 이룩한 지구촌의 현대 과학 문명이, 되레 생명이 살기 어려운 생태계를 만든다는 자각도 뒤따랐단다. 오늘날 점증하는 기후변화는, 푸른 별 지구가 사람들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경고하는 울부짖음이 아니겠니?서구(西歐)에서 부는 웰빙(well bing), 로하스(LOHAS), 슬로시티(slow city) 같은 운동은 지구의 경고에 대한 사람의 응답이라 여긴단다. 할아비가 어린 날 경험한 우리 농촌은 그야말로 친 생태적 삶을 살았지. 사람과 가축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기에, 하늘이 주는 자연 먹을거리를 얻어먹으며 소박하게 살았으니까 말이다. 유불선(儒佛仙) 사상이 어우러진 전통 우리 사회는 그 자체가 웰빙이요, 로하스며, 슬로시티였단다. 불행하게도, 지구촌 생태 운동은 아직 역부족으로 보이는구나.할아빈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기후변화란 원죄’를 너희들에게 물려주게 된 기성세대로서, 그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구나. 지구촌이 작년 초부터 겪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병 대유행은 그 벌이 아닐까 싶어 겁이 난단다. 정치인들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은 안중에도 없이, 편 가르기만 일삼고 있다. 어찌 한 나라의 국민이 내 편만 있고, 내 편만 옳겠니? 나랏빚이 산더미처럼 늘어나도 퍼줄 생각만 하는구나, 나라 곳간을 제대로 챙기는 정치인과 관료는 안 보인단다. 불안한 나라 앞날을 생각하면, 할아비는 우리 두 새싹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우리 새싹들아!하지만 앞으로 세상이 더 암울해지더라도 너희들은 절망하지 말고, 희망으로 살아내기를 바라고 믿는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고 역사가 가르쳐 주기 때문이란다. 애국가에도 있듯이, 하느님은 우리 새싹들과 우리나라와 푸른 지구를 꼭 지켜주고 도와줄 테니까. 봄, 여름, 가을을 다 품은 새싹처럼….

2021-03-03

매화등(梅花凳)

정미영수필가매화 꽃바람 소리의 여리고 긴 여음을 쫓아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오늘 문득 이성부 시인의 ‘봄’ 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시인은 민주화에 대한 자유를 열망했는데, 나는 코로나19로 평범한 일상을 조심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시에 투영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혹독한 바이러스도 시간이 지나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희망의 ‘봄’을 마중하러 길을 나섰다.산책로에 홀로 서있는 매화나무가 나를 반겼다. 꽃봉오리가 터지는 그 절정의 순간을 돕기 위해 햇살과 바람이 연이어 두드렸다. 나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시간을 가만히 숨죽이며 지켜보았다.매화원으로 들어섰다. 퇴계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매화였다. 도산매는 지금도 뜰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매화의 매력은 맑고 그윽한 꽃향기다. 암향(暗香)으로 불리는 향기는 ‘귀로 듣는 향기’라고도 부른다. 어디선가 떨어지는 바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고요해야만 비로소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매화나무 앞에 섰을 때, 나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퇴계의 매화 사랑은 유명했다.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라고 제자에게 말한 뒤, 임종하셨다는 일화는 세상에 많이 회자되고 있다. 방 안에서 매화를 마주보고 앉아 매형(梅兄)이라 부르며 밤새 잔을 주고받고, 취기에 젖어 많은 시를 읊기도 했다. 퇴계가 거닐었던 발자취를 가늠해 보며 나도 매화나무 언저리를 서성였다.전사청을 지나 선생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옥진각(玉振閣)에 들렀다. 유물관에서 매화를 투각한 청자 의자 ‘매화등’을 보았다. 청자로 빚은 의자의 둥근 몸체에 당초무늬와 연꽃무늬가 정교하고 화려하게 새겨져 있었다. 청자 의자가 뜻밖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도산’이란 지명 유래가 떠올랐다. 옛날에 도산서원이 있던 이 곳에 옹기를 굽던 가마가 있었다. 옹기 굽는 산이라 해서 질그릇 도(陶)자, 뫼(山)자를 써서 도산이라 부르는데. 혹시 그 가마에서 매화등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해 보았다.매화등을 바라보다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자들을 떠올려 보았다. 의자라는 이름으로 엮이지만 모양과 쓰임새가 다르다. 식탁 의자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도록 식탁 아래에 넣을 수 있게 만들고, 피아노 의자는 몸을 움직이면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등받이나 팔걸이가 없다.우리네 사람과 닮았다. 의자마다 색깔이나 폭신한 정도가 다른 것처럼 사람 또한 생김새나 개성이 저마다 다르다. 의자가 제 몫의 맞춤자리에 놓여 쓰임새에 알맞게 지내는 것처럼, 우리도 자기 역량에 알맞은 자리를 찾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즘 청년 실업자가 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갖지 못해 지치고 힘들어 한다. 젊은이들이 자기 몫의 인생을 살고 싶어도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해 번민과 고뇌로 하얗게 밤을 지새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분명 저마다 쓰임새가 있다. 시간이 더디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자신의 적성에 맞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맞춤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저마다 각자 자리에서 빛나 보이고, 나와 다른 삶의 존재 방식을 존중받을 수 있으리라.매화등은 퇴계가 거처했던 방인 완락재(玩樂齋)에서 제 몫을 다했다. 선생이 매화를 감상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해 만든 것으로 날씨가 추울 때에는 의자 밑에 불을 피웠다. 매화등이 따뜻해지면 그 위에 앉아 매화를 바라봤단다. 매화등이 빛나 보이는 것은 매화를 사랑했던 퇴계 선생의 내력을 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매화등처럼 나도 내 몫의 자리에서 빛나고 싶다.

2021-02-24

자리

배문경수필가복수초(福壽草)가 피었다.노란꽃잎이 하늘을 향해 ‘영원한 행복’의 꽃말처럼 빛난다. 오래전 설악산 겨울 등반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꽃잎 위의 눈을 녹이던 복수초를 인터넷으로 다시 보니 반갑다. 겨울 눈 속에서 추위를 이기고 봄을 알리기 위해 피어난 강한 꽃이다.노란색을 유난히 좋아하던 딸이 집을 떠난 지 달포가 되었다. 딸은 학교를 졸업한 후 공무원시험을 치겠다며 가족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첫해 석 달 동안의 공부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시험을 치고 나오며 그동안의 공부와 시험에서 나름의 노하우를 얻은 것 같았다.책상 앞이 딸의 자리였다.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딸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 내가 잠든 동안, 내가 깨어있는 시간에도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사이 눈비가 내렸고 바람도 불었지만 안중에 없었다. 합격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시험에 사활을 거는 것이 사는 길임을 일찍이 깨달은 것 같았다. 딸은 책과 문제집, 인터넷 강의에 몰입했다. 지독한 각오가 보였다.인내의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나는 딸을 위해 기도했다. 어머니의 염원처럼 아니 모든 어머니가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하겠지만 두 손을 모았고 엎디어 절을 했다. 매일 새벽기도가 끝나고서야 출근했다. 눈비가 내리고 천둥이 쳐도 상관없이 그 길을 걸으며 한 해를 보냈다. 답이 그 끝에 있었다. 합격이란 말에 모든 시름을 내려놓았다. 요즘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데, 모지락스러워야 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듯 했다.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창틀에 화분들이 오종종 놓여있다. 햇빛을 받는 화분은 잘 자라고 그늘에 둔 화분에는 꽃이 잘 피지 않거나 색이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한 번 씩 자리를 바꾸어주고 기름진 흙을 사와서 기존의 흙과 섞어 화초들을 정리한다. 작은 화분에 있던 식물의 뿌리는 둥글게 엉켜진 채 화분 크기만큼 자라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이러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옹골차게 만들어 나갈 힘이 있다.집에는 빈자리가 생겼다. 딸이 스물 중반까지 제 방을 오가며 울고 웃던 모습을 늘 지켜봤다. 떠난 뒤 자리는 적막하다. 벽에 남아있던 포스트잇도 다 사라지고 쓸모가 없어진 시험문제집이 밖으로 나갔다. 웬만한 짐은 꾸려서 새로운 자리로 옮겼다. 이제는 남은 가족들이 조금씩 당겨 앉으며 벌어진 자리를 메운다.책상과 의자를 옮겼다. 바깥풍경이 보고 싶어 창문을 맞은편에 두었다. 나는 이제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원하던 책을 읽고, 인생의 본질과 가치를 더듬어 보리라 맘먹고 있다. 추억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나를 찾아보려한다. 또 그것을 기록하며 깨알 같은 의미들을 찾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고자한다. 지금 이 자리는 나만의 꽃을 피우는 자리가 될 것이다.법구경에는 득생인도란(得生人道難) 말이 있다. 만물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정말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태어난 사람의 삶이 녹록치 않다. 사는 일이 막막할 때, 나는 제우스의 노여움으로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하는 시시포스를 떠올리곤 한다. 알베르 카뮈는 이 형벌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했다.지금 이 자리를 가장 좋은 자리로 만드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다. 수많은 인생성공을 거론한 자기 개발서도 대신해 줄 수 없다.삶의 자리를 꽃자리로 만드는 일은 오직 최선을 다할 때이며 자기 자신만이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구상 시인의 ‘꽃자리’란 시가 떠오른다.‘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2021-02-17

커피 가루 딱지 치료

강길수수필가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자전거가 황급히 멈추면서 몸이 고꾸라지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살기(殺氣) 등등한 괴물로 달려들던 청백색 승용차가 아슬아슬 코앞을 스치며 달아났다.본능적으로 일어나 엎어진 자전거를 세웠다. 아무 느낌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절로 바라본 문제의 차는 벌써 저만치 뺑소니치고 있다. 아스팔트 노면에 부딪힌 왼쪽 무릎이 아파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황당했다. 일방통행 이면도로의 작은 교차로에서 당한 아차 사고…. 기겁하여 자전거와 함께 자빠지며, 급발진 차량처럼 돌진해오던 차를 속수무책 쳐다만 보던 순간이 되살아나 머리를 아찔하게 하였다. 운전자가 미웠다. 그는 멈춰서야 했다. 멍한 상태의 내 눈엔 저 멀리 사라지던 차량의 뒷모습만 아련했다. 그 차가 일방통행로를 역주행으로 달려왔던 사실도 비로소 알아챘다.욱신거리는 무릎의 아픔을 참으며, 가까운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대로 파출소에 가서 뺑소니 신고하고, 폐쇄회로 텔레비전이라도 보아 달아난 자를 찾아볼까’하는 마음이 끓어올랐다. 사무실에 와서 아픈 왼쪽 무릎을 살폈다. 초겨울이라 두꺼운 바지를 입었는데도, 팥을 간 듯 벗겨진 피부에 피멍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작은 핏방울도 몇 개 송골송골 맺힌다.사무실엔 있는 줄 알았던 구급약도 없다. 화가 부글거렸다. 만일 곁에 누가 있었다면, ‘무슨 놈의 사무실에 구급약도 없냐?’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이리저리 상처에 쓸 만한 것을 찾아봐도 책상 서랍에 있는 오래된 일회용 밴드 한 개가 전부였다. 황야에 혼자 남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떡할지 생각했다. ‘약방에 갈 정도는 아니니, 다른 방도를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어릴 때 무릎이나 손바닥, 팔꿈치 같은 곳에 가끔 팥을 갈았다. 그 비방(秘方)이 찰흙이었다. 마른 찰흙 가루를 상처에 뿌리면 딱지가 앉아 잘 나았다. 찰흙 대체품 찾기를 궁리했다. 머릿속에 커피가 떠올랐다. 얼른 커피 통을 열어 알갱이 몇 개를 백지 위에 부었다. 알갱이를 손톱으로 눌러 가루로 만들어 상처에 뿌렸다. 흩뿌려진 커피 가루를 손가락으로 상처에 고루 폈다. 분 바른 듯, 상처는 커피 가루로 곱게 코팅되었다. 입자가 더 작으니 산소접촉면적은 더 커졌을 것이다.무릎 상처에 생긴 커피 가루 보호막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상처 나면서까지 몸을 지탱한 덕분에, 돌진하는 차와 부딪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다. 무릎아, 고맙다!’ 의문이 꼬리 물었다. 달려드는 차가 처음 눈에 보일 때, ‘앗! 큰일 났다’하는 놀람뿐이었다. 한데 어떻게 그 찰나에, 자전거가 멈추고 몸이 고꾸라졌을까. 내가 모르는 순간, 손가락이 자전거 브레이크를 꽉 잡은 것이다. 왜 그럴까. 학자들이 말하는 자기보호를 위한 무조건반사(無條件反射)작용 때문인가. 그렇다면 눈이 포착한 차량 급습의 긴박한 정보는, 대뇌를 거치지 않는 척수반사(脊髓反射)로 우선 작동하여 큰 사고를 면하게 하였으리라.커피 가루 코팅 막을 비집고 진물 몇 방울이 송골송골 올라왔다. 휴지로 훔쳐내자 멎었다, 바지를 걷어 올린 무릎과 장딴지가 싸늘해지자, 부글거리던 홧김도 진정되었다. 경찰을 찾아가도 아차 사고로 끝난 이상, 어찌 할 방도는 없다는 현실 인식도 돌아왔다. 곧 딱지가 앉으리라 믿으며 바지를 내렸다. 바지 천 무릎 부위에 마찰 흠이 제법 크게 생겼다. 헛웃음이 나왔다. 두세 주 후, 갈색 커피 가루 딱지가 떨어지며 상처도 말끔히 나았다. 커피 가루 딱지 치료 성공이다. 운전자에 대한 미움도 거두었다.악착스럽지도 민첩하지도 못해, 늘 어눌하게 세상을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커피 가루 딱지를 통해 또 만났다. 군대 생활 3년, 오랜 직장생활에서의 업무와 교육 훈련, 언론매체와 온라인을 통한 재난대비 훈련 등이 실제상황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날, 봄바람 같은 겨울바람이 등 뒤에서 귓볼 사이를 간질이며 유혹하더라도 조심했더라면, 아차 사고는 당하지 않았을 터. 살랑대는 바람에 업 된 기분으로 발걸음도 가벼운 자전거 페달을 밟다가 변을 당할 뻔했다. 호된 대가를 치른 안전훈련 한번 잘 받았다.

2021-02-03

넛지

정미영수필가찬바람머리에 수변공원을 거닐었다. 지난여름 운암지를 충만하게 덮고 있던 아리연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물가는 텅 비어 쓸쓸했다.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차가운 물 아래에는 혹독한 겨울을 길게 견디며 봄물 번지기를 기다리는 연꽃 씨앗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물이 시리다고 불평하지 않는다.절정을 꿈꾸며 인내하는 씨앗들을 생각하다 보니, 요 며칠 번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독서를 해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색을 깊이 하지 않으면서도 창의적인 사유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나날이 늘었다. 연꽃 씨앗의 인내를 닮아 내 행동을 바로 잡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넛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넛지는 ‘팔꿈치로 살짝 찌르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타인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변화하도록 하는 부드러운 설득을 말한다. 팔을 잡아끄는 것처럼 강제와 명령 없이, 팔꿈치로 툭 치는 것 같은 유연한 개입으로 자발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연꽃 씨앗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정자가 나왔다. 정자 한 쪽 귀퉁이에 빛바랜 책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청이나 공원 관리소에서 마련했는지 살펴보아도 그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호기심이 생겨 책장 문을 열었더니 제법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가장자리에는 조그만 글씨로 ‘책을 깨끗이 본 다음, 꼭 제자리에 두고 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마음 넉넉한 이가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훈훈한 바람이 일었다. 누구든지 공원을 찾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게 책을 보라는 뜻이리라. 뭇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책장 주인의 사려 깊은 행동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멋진 생각을 한 선한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나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깊은 울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는 나에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타인에게는 아직 보탬이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때로는 작은 나눔이 큰 선행이 되어 남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기증물품을 오랜만에 정리해야겠다. 나는 책장 주인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나도 잡지 한 권을 꺼내들고 자리를 잡았다. 리우올림픽 경기에 출전했던 네덜란드의 승마선수 코르넬리슨에 관한 기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경기 중에 자신의 말 파지발이 아프다는 걸 눈치 채고 기권을 해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19년을 함께한 파지발의 건강을 위한 결정이었다. 코르넬리슨은 경기 전 아픈 파지발을 옆에서 보살피고 잠도 마굿간에서 함께 잤다.다행히 시합 날에는 파지발의 열이 많이 내려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파지발이 뭔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경기를 포기했다. 그것은 바로 파지발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동료 선수,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나는 어떤가? 몇 년 전 겨울,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애지중지 키우던 정글리안 햄스터를 죽게 만들었다. 요즘처럼 매섭게 춥던 날이었다. 음식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 깜빡 잊고 외출했다. 볼일을 보던 중에 펑펑 우는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엄마, 해미가 움직이지 않아. 어떡해.”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햄스터를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집이 추워서 동면에 든 것 같았다. 야생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는 달리 애완용 햄스터는 동면에 들면 죽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햄스터에게 미안했다. 코르넬리슨처럼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려면, 동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잡지 글 한 대목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오늘은 산책을 하는 동안 부드럽게 넛지를 거듭 당했다. 내 마음에 벌써 봄꽃이 피었는가. 은은한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2021-01-27

타인의 방

배문경수필가문을 닫자 사면에 갇혔다. 생일을 맞아 카페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잠시 보냈다. 뒷날 함께 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일 전날 코로나양성인 사람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기겁을 한 친구는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해왔다.말로만 듣던 두려운 상황이 내게도 일어났다. 코로나가 나와는 상관없으리란 생각이 여지없이 깨졌다. 잠시 침착하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나마 일요일이라 다행이었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사방이 숨조차 쉴 수 없이 옥죄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도 시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양성일 수 있다는 불안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코로나에 걸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이 직장인 나는 입원환자와 의료진들, 직원들, 진료를 볼 환자들,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게 된다. 가족들은 또 어찌해야 할지 답이 없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던 코로나 환자가 입원한 병원과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자꾸만 떠올랐다.그 순간 목이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증세가 나타나는 걸까. 두려웠다. 사실이라면…, 종일 마음속 지옥에서 온갖 상상을 하며 보낸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에 친구로부터 음성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온통 세상이 깃털처럼 가볍게 와 닿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그 후에도 나는 세 번의 독방을 더 경험했다. 그러는 사이 현관문을 열면 삽시간에 가족들이 사라졌다. 집으로 들어서면 거실은 좀 전까지 텔레비전을 봤는지 요즘 유행하는 미스트 트롯의 멤버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트로트를 열심히 불렀다. 급하게 방으로 모두 들어간 흔적이다. 입에 착 달라붙는 노래가 어서 오라고 인사한다. 나를 반기던 가족은 모두 타인이 되었다.노크를 하면 곧 첫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될 딸의 예민해진 외마디가 들린다. 방마다 사람은 있지만 벽처럼 단단한 문은 걸쇠를 건 채 여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나의 “퇴근했다”는 인사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리다 바닥에 툭 떨어진다.방문을 닫으면 외롭다.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든 음식을 먹든 함께 하던 시간이 아주 오래전처럼 아득하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처럼 인정받지 못한 내가 웅크리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타인에게 힘든 상황을 만드는 것도 내가 타인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안전하기를 바라지만 고립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버겁다.상황이 코로나 검사를 받게 했고 그때마다 음성이었다. 음성이라는 문자가 올 때까지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음성이 지금 괜찮다는 뜻이지만 ‘다행’이 언제 ‘불행’이 될지 모른다. 그만큼 역병은 내 주변까지 깊게 파고들었다.이러다 어느 순간 나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의 주인공인 그레고리처럼 가족들로부터 잊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이라는 단어가 현실을 움직이는 괴물이 되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미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그 속도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다.오늘도 현관문을 무겁게 열었다. 식탁 위에 어머니가 금세 끓인 된장찌개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그 옆에는 딸아이가 쓴 예쁜 카드에 며칠 후 출근한다며 엄마의 건강을 걱정했다. 남편이 낮에 직장으로 전화를 했었다. “별일 없제?” 무뚝뚝한 한 마디를 하고 끊었다.긴 시간 적과 싸우며 지친 나를 가족들이 위로한다. 내 곁에는 각각 타인의 방처럼 보이는 곳에 자신을 가둔 가족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마스크를 끼고 거리를 두고 손을 자주 씻는 일이 예방이다. 그것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적을 무찌르는 것은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체온을 올리면서 면역을 키워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방마다 고립된 가족 모두가 서로를 염려하는 텔레파시를 열심히 타전하고 있다.

2021-01-20

부활한 성탄 트리

강길수수필가몇 해를 망설였다. 일을 미루는 버릇이, 삶에 큰 마이너스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불치병처럼 고치지 못했다. 이번에는 자신뿐 아니라, 한 생명에게 큰 잘못을 하고 말았다.접이식 작은 톱을 들고, 몇 년 동안 미루던 일을 하러 간다. 그 생명 앞이다. 낮은 밭둑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던 터라, 제법 늠름하다. 행사 때 묵념하듯 속말로 사전 고해성사를 한다. “소나무야, 미안하다. 이제 더는 너를 여기에 둘 수 없구나. 어릴 때 옮겨 주지 못해 더 미안하다. 부디, 다음 생은 좋은 곳에 자리 잡으렴….”사람이라면 아동기에 해당할 소나무다. 밑동 둘레가 두 손으로 움켜잡으면 굵기가 조금 남을 정도로 컸다. 밑동에서 허리춤 정도 올라가면 원줄기가 두 개로 갈라졌다. 톱날을 소나무 밑동에 들이민다. “쓱싹쓱싹….” 톱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소나무의 몸을 자르기 시작한다. 아는지 모르는지 소나무는 반응이 없다. 순한 양같이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 싶기도 하다. 아니, 소나무는 비명 지르며 절규하는데, 사람인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소나무가 내는 비명소리와 내가 알아듣는 소리의 주파수가 달라서 말이다. 톱날이 톱밥을 밖으로 뱉어내자, 소나무가 속에 간직한 비밀의 향내가 번져 나왔다. 실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다. 군 제대 후, 고향에서 한 해 가량 취업 준비 겸 농사일을 도우며 지냈다. 그때 산에 나무하러 가는 길에, 방해되는 가지를 톱으로 자르며 맡아 본 뒤 처음이다.두 팔은 열심히 톱질하는데, 마음속은 복잡하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들기 때문이다. 네가 예전 시골서 자랐더라면 멋진 디딜방아의 방아채와 다리로 쓰였을 텐데 아깝다든가, 베어낸 너를 텃밭 어디에 쓸데는 없을까 하는 궁리, 하필 좋은 산 다 두고 밭두렁에 나서 무지막지하게 요절을 당하니, 너도 참 박복하다는 둥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부모 소나무들이 사는 산까지는 직선거리로 200m는 될 터다. 한데, 솔방울 안 씨앗의 작은 날개로 예까지 날아왔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는다.밑동을 다 베자, 소나무는 밑 밭이랑으로 속수무책 쓰러졌다. 앞길이 창창한 소년 소나무의 생이, 인간인 내 욕구에 따라 마감되는 모습이다. 이 소나무의 씨앗은 무슨 뜻으로, 바람 타고 이 먼 곳에 정착했을까. 자연은 하늘의 뜻을 따를 터. 그렇다면 하늘이 경영하는 자연 질서란 뭐란 말인가. 뒷정리를 위해 가지들을 쳐내고, 둥치도 들어 치울 수 있을 정도로 잘랐다. 떨어진 솔방울들을 모아 건너편 언덕으로 던졌다. 그냥 두어 이곳에 또 나면, 다시 뽑아내거나 옮기거나 베어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두 주 만에 텃밭에 다시 왔다. 자른 소나무 밑동이 궁금해 그곳에 갔다. 덮어 두었던 작은 솔가지를 들어냈다. 잘린 단면이 보기 미안해 나도 모르게 덮었었다. 나이테를 살펴보았다.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오륙 년은 되어 보였다. 잘린 껍질과 줄기 사이에선 송진이 눈물로 배어 나오고 있다. 가슴이 짠했다. 낮은 곳에 쌓아둔 가지들에게 눈이 갔다. 역시 푸르다. 잘린 둥치는 푸른 가지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이 슬픈 나무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방법 곧, 다른 쓰임새로 부활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번쩍 났다. 머릿속의 알고리즘이 빨리 회전한다.‘그래.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구나. 예쁜 가지를 가져다가 살아있는 성탄 트리를 만들자. 트리에 꽃과 눈, 별을 장식하여 손자들에게 보여주자.’ 하는 아이디어가 뒤이어 떠올랐다. 쉬는 화분에 어울릴 가지 두 개를 골랐다. 아이들 성장하고 나서부터 집에 거의 성탄 트리를 마련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올해, 오랜만에 플라스틱 나무가 아닌, 산 소나무 가지로 트리를 세우고 솜과 조화 등으로 아담하게 꾸몄다.비록 작은 가지 둘이지만, 소나무는 새 생명으로 우리 집 거실에 되살아났다. 땅속 물과 공기와 햇빛으로 사는 생명은 끝났다. 하지만, 소나무는 사람들에게, 성탄과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는 살아있는 성탄 트리로 부활하였다.크리스마스 날, 부활한 성탄 트리 위로 푸른 별빛 한줄기 찾아오겠지….

2021-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