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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산책은 산 책이다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산책을 하려고 날마다 들로 나간다. 마을 주변에 너른 들이 있어 발길 가는 데로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 오는 산책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양 팔을 크게 흔들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효과가 크다고 하지만, 별다른 목적이 없이 이것저것 해찰을 하며 느릿느릿 걷는 게 나의 산책이다.산책은 말마따나 살아있는 책이다. 달마다 철마다 새로이 출간되는 계간지나 월간지다. 하루하루 촘촘히 들어있는 건 월간지이고 가끔씩 듬성듬성 읽는 사람에겐 계간지이다. 나는 거의 매일 빼먹지 않는 월간지 구독자다.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허기가 지는 것처럼 어쩌다 산책을 하지 못한 날은 마음이 헛헛하다. 하루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중근 의사의 경구를 실감하게 된다.산책은 어렵지 않다. 삼척동자도 까막눈도 읽을 수 있고 백세 노인도 걸을 수만 있으면 읽을 수 있다. 걸을 수 없는 사람은 휠체어로도 읽기도 한다. 요즘은 전동 휠체어까지 나와서 더 편리해졌다. 산책은 난해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똑 같이 읽히는 건 아니다. 아무것도 감추거나 속이지 않지만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 내용이 다르다. 주마간산 건성으로 읽는 사람도 있고 자세히 정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바쁘고 급한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눈과 마음을 열어놓은 사람에게는 무궁무진 읽을거리가 많다.산책은 어느 경전보다도 생생한 생명의 말씀이다. 과장이나 왜곡이나 허위가 없는 진리의 말씀이다. 병이 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말씀이고, 지치고 좌절하는 사람에겐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말씀이다. 악성(樂聖)이라 불리는 베토벤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거르지 않은 산책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절망을 이겨내었고, 철학자 칸트도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산책을 하는 것으로 위대한 사유체계를 이루었다.지난 겨울에는 겨울마다 새로 연재하는 청둥오리와 겨울보리를 감명 깊게 읽었다. 해마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산책이다. 오로지 맨몸 하나로 먼 하늘을 날아와 얼어붙은 들판에서 겨울을 나는 청둥오리는 걸핏하면 죽네 사네 엄살을 부리는 인간들에 비해 얼마나 씩씩하고 꿋꿋한가. 겨울보리의 어처구니없는 막무가내는 또 어떤가. 남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하는 늦가을에 막무가내로 싹을 틔우고, 발가벗은 어린아이 같은 여린 싹으로 겨울을 견디는 모습은 오소소 소름이 돋는 전율이요 충격이었다.새로 나온 3월호 오늘의 페이지에는 연못가 버드나무가 눈길을 끈다. 앙상한 가지에 언제부턴가 보일 듯 말 듯 봄빛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연둣빛이 짙어졌다. 누군가가 날마다 묽은 연두색 물감을 조금씩 덧칠하는 모양이다. 마치 한 폭의 담채색 동양화를 보는 듯 가슴 설레는 이른 봄의 정경이다.봄까치꽃과 광대나물도 한층 생기를 띠었다. 보통은 한해살이풀로 알려져 있지만 상당수는 죽지 않고 월동을 한다. 그 냥 죽은 듯이 동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명주실 같은 겨울 햇살을 붙잡고 꽃을 피우기도 하는 걸 보면 그 맹목의 생명력에 아연하고 숙연해진다. 한갓 보잘것없는 풀꽃까지도 사는 데까지 살아있는 일에 도무지 핑계나 엄살이 없다는 걸 시리게 읽는다.거대한 딱정벌레 같은 트랙터가 봄갈이를 하고 있다. 겨우내 묵혔던 벼논을 갈아서 햇볕과 공기를 쐬어 주면 굳어 있던 땅이 부드럽고 싱싱해진다. 완고하고 거칠어진 사람의 마음밭도 수시로 반성과 성찰의 쟁기로 갈아주어야 이해와 포용의 토양이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제가 경칩이었다. 옛날에 소가 끌던 쟁기와는 달리 트랙터의 쟁기질은 사납기 그지없다. 땅속에서 동면하던 개구리들이 저 무지막지한 횡포에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들판의 살아있는 읽을거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마음이다.

2019-03-14

나는 숲(林)으로 간다

김순희수필가영양군은 선비들이 숨어살던 곳이다. 태백산맥에 둘러싸여 해발 고도가 경상북도에서 가장 높은 분지이며 일월산을 품고 있어 산이 높고 물이 맑다. 감천, 석보 등 고인돌과 고분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신라에 흡수된 뒤에는 읍호를 고은(古隱)이라 하였다가 말기에 영양(英陽)이라 하였다.일월산 자락 한쪽 끝에 자리한 두들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굽은 길이다. 들고나기 힘든 곳이라 육지의 섬이라고도 부른다. 굽은 길을 조금 펴기 위해 뚫은 청기터널을 지나자 골뱅이골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골뱅이처럼 구불거려서일까 골뱅이가 많이 나서일까 마음으로 짚다보니 두둘길에 접어들었다.두들이란 언덕 위라는 뜻으로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진 영양의 마을 이름답다. 가로등마다 붉은 고추와 귀여운 벌이 심벌로 매달려 여기가 그 유명한 ‘영양고추’의 고장이라고 외치고 있다.겨울 매서운 바람 때문인지 동네에 인적이 드물었다. 우편집배원이 작은 차에 택배상자를 싣고 고택의 주인을 부른다. 두런거리는 소리를 따라 근처 비닐하우스로 오른다. 우리도 따라 가니 배달을 끝내고 내려오며 비닐하우스에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있으니 가보라 했다. 그 곳에는 대여섯 명의 어르신들이 고추 꼭지를 따고 있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모두 낼모레 80이라며 웃는다. 이 마을에서 젊은 축이라며 아직 일을 해서 용돈 버는 것을 자랑하셨다. 혼자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했다.林(숲)이란 글자 속에는 나무 두 그루가 손을 잡고 서 있다. 어깨도 서로 맞대고 있어서 바람이 불면 한 방향으로 몸을 뉘었다 일어서길 반복한다. 흔들릴 줄도 모르는 빌딩숲에서 넘어지기만 하던 나는 푸른 기운을 받으러 영양의 林으로 갔다.장계향이 이시명과 함께 영양에 터를 잡으면서 제일 먼저 한 일도 마을 둘레에 도토리나무를 심은 일이었다. 영양은 깊은 골짜기라 논보다는 두들이 대부분이다. 도토리나무는 영험한 기운이 있어 두들에서 들을 내려다보며 풍년이면 열매를 적게 열고 흉년이 들면 많이 열린다고 한다. 아마도 곤궁한 이들의 생계를 걱정하여 그 부족한 것을 채워주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장계향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한 해에는 마을 앞에 큰 솥을 걸어두고 도토리 죽을 쒀서 굶는 사람들을 살렸다고 한다.오늘날에도 영양이라는 숲의 중심에는 장계향이라는 큰 나무가 중심을 잡고 있다. 그는 83세까지 장수하며 73세에 ‘음식디미방’이라는 최초 한글 조리서를 완성했다. 그가 심은 나무는 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서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다 기억하고 있다. 도토리가 익어서 떨어지는 가을이면 동네 노인들에게 도토리 수확을 맡겨 수매를 해 음식디미방 프로그램에 사용한다. 다른 곳의 음식 차림과 큰 차이점이 소부상과 정부인상의 전채 요리로 도토리죽이 먼저 나온다는 점이다. 장계향의 뜻과 향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어 보기 좋았다.소소음(蕭蕭吟)- 창 밖에서 소록소록 비내리는 소리(窓外雨蕭蕭), 소록소록 그 소리는 자연의 소리러라(蕭蕭聲自然,) 내 지금 자연의 소리 듣고 있으니(我聞自然聲), 내 마음도 또한 자연으로 가는구나(我心亦自然). 장계향이 13살에 썼다는 시처럼 영양을 찾아간 날에도 소록소록 비가 내렸다.비를 머금은 도토리나무 아래에 섰다. 나무 아래에 드는 것이 쉴 휴(休)이다. 천상병 시인은 삶을 소풍이라 했다. 김밥과 킨 사이다 한 병만 들고 큰 나무 아래로 간 소풍날은 어찌나 즐거운지 날이 빨리 저물었다. 골 깊은 두들마을의 저녁도 빨리 찾아왔다.아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은 이웃과 함께 가는 소풍이라는 것을 영양의 숲이 알려주었다.

2019-03-07

삼세번 째 이주

강길수수필가입춘 지나고 세 번째 날이다. 산 너머 남촌의 꽃바람이 그리운 마음을 하늘도 아는 지, 따사한 날이다. 삼년 째 벼르던 주인공을 이주를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어제 설날, 고향에 다녀온 노곤(路困)이 다 가시지는 않았으나, 오전까지 쉬었으니 됐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주인공을 치우자는 아내의 주장에, 날씨를 구실삼아 미적거리며 내심 이주시키지 않으려 했었다. 그만한 연유가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필요한 도구를 챙겨들고 나서며, 아내에게 함께 가지고 했다. 피곤한지 내키지 않아 한다. 힘들어도, 마음먹은 김에 해야 한다고 말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아파트 뒤 자그마한 텃밭이다. 지난 여름 강풍에 비스듬히 쓰러진 주인공을 바로 세우려, 아내가 담장너머 큰 향나무에 매단 끈을 풀었다. 가지 끝엔 아직도 주인공의 분신 몇 개가, 빨간 자태를 뽐내며 까치밥으로 제 몸을 내놓고 있다.주인공을 마주한다. 자신을 이주시키려는 내 속을 알 텐데도, 반갑게 맞는 것만 같다. 수십 년 된 옆 향나무만큼이나 키가 커지고, 밑동은 내 팔뚝만하다. 지난해는 앙증스런 토종대추가 많이도 열렸었다. 속말로 인사한다.“우리 주인공아, 잘 있었니? 미안하다! 나와 연 맺어 숱한 고생만 하고, 생사기로도 세 번씩이나 넘긴 너다. 오늘, 네 몸을 동강내어 세 번째로 이주시키려 한단다. 슬프고 아프더라도, 이해하고 참으며 받아주기 바란다. 그래야 네가 살고 또, 우리 차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톱으로 주인공의 몸, 첫가지 위를 자른다. 단단한 나무라 톱질이 더디다. 젊은 향내가 퍼진다. 한참 후, 줄기는 두 동강이 났다. 윗부분의 잔가지와 줄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묶는다. 설거지를 마친 아내도 나왔다. 나머지 잔가지 정리를 그녀에게 맡기고,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한다. 뿌리가 드러나자, 깜짝 놀랐다. 두 번째 이주 때 보다 훨씬 큰 똬리를 틀고 있어서다. ‘내가 잊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핑 돌았다. 자태가 가부좌 한 사람의 아랫도리 같기도 하다.처음 만나던 모습이 떠올랐다. 세 번째 직장의 어느 여름날, 화단 가장자리 콘크리트의 틈새에서 방긋방긋 웃는 연록아가를 만났다. 갓 돋아난 주인공, 토종대추나무새싹이다. 이태쯤 지났을까. 연록아가는 몸이 제법 굵어지고, 무릎위로 오를 만큼 자라나 새싹어린이가 되었다. 그냥 둘 수 없어, 집에 데려다 관상용으로 키우자고 결정했다. 그해 늦가을, 큰 플라스틱 화분에 새싹어린이를 첫 이주시켰다. 거처는 집 베란다다. 주인공에게는 고생 끝, 내게는 즐거움 시작이라 믿었다.다른 대추나무보다 일찍 잎 나고, 꽃 피고, 열매 맺었다. 줄기 수도 늘었다. 몇 해 지나자, 베란다에서 감당할 수 없이 커져 새싹소년이 되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내 반대를 무릅쓰고, 틈을 타 화분을 베란다 밑 코크리트 바닥으로 옮겼다. 나는 물주기 담당을 자청했다. 하지만 다음 두 여름동안 물주는 일을 게을리 해, 새싹소년은 세 번씩이나 생잎이 말라죽는 변을 당하고 말았다. 마음이 억새 잎에 베인 듯 아팠다. 물을 주자, 죽은 줄 알았던 새싹소년은 그때마다 눈부시게 되살아나 짜릿한 기쁨을 선물했다. 몸을 살리려 제 생명을 바친 푸른 잎들은,‘내가 죽어야 다른 이를 살린다!’는 근본메시지를 가슴에 아로새겨주었다. 언제부턴가, 몸이 튼튼해지며 청년이 되어갔다. 살펴보니 뿌리가 화분의 물 빠지는 구멍을 빠져나와, 콘크리트 틈새를 파고들어 땅에 깊이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일로, 주인공을 아파트 뒤 작은 밭으로 두 번째 이주를 시켰다. 그때 드러난 뿌리는, 화분을 몇 바퀴씩 휘돌아 똬리가 되어있었다. 삶의 처절함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 있나보다.춘분 뒤 삼세번 째 날, 주인공 이주를 근교 양지바른 우리 밭두렁에 잘 마쳤다. 따져보니, 주인공의 삶이 공교롭게도 겨레를 닮아 삼세번과 연이 깊다. 부디 삼세번 째 이주로, 우리 주인공, 대추나무새싹청년이 영주(永住)하고 번성하기 빈다. 우리 집이 삼세번 째 이사로, 내 집을 마련했던 것처럼….

2019-02-21

봄소식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입춘 날 들에 나가/ 봄까치꽃 핀 걸 본다// 몸 낮추고 눈 맑아야/ 겨우 찾아 보이는 꽃// 그 곁에 쪼그려 앉아/ 봄소식을 듣는다” - 拙詩 ‘봄소식’입춘이 지났지만 들녘은 아직 겨울입니다. 지난 여름의 무성한 초록과 가을의 황금물결은 다 어디로 갔는지 메마르고 삭막한 무채색의 풍경입니다. 그 풍경 속으로 자주 산책을 나갑니다. 산책하기에는 산속 오솔길도 좋지만 사방이 탁 트인 들길이 더 좋습니다. 경정리로 곧게 뻗은 들길은 걸음걸이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걷다보면 누워있거나 앉아 있는 것보다도 몸과 마음이 더 편안하고 자유롭습니다. 아마도 흐르는 물에 몸을 맞기고 떠내려가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논둑길 양지쪽에는 혹한에도 얼어 죽지 않고 월동하는 풀빛이 있습니다. 풀들은 대개 씨앗을 남기고 죽거나 뿌리만 살아서 월동을 하지만, 최소한의 조건만 되어도 산 채로 겨울을 나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일견 황량한 겨울 들판에도 귀 기울이면 인동하는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둑길 밑 검불 사이로 적갈색이 된 풀잎이 보입니다.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다가 오소소 소름이 돋습니다. 놀랍게도 봄까치꽃이 피어 있습니다. 아직은 한파가 더 닥칠지도 모르고, 벌 나비가 날기에도 한참이나 이른 계절인데 왜 하마 꽃을 피운 걸까요. 세상에 무의미한 존재나 현상이란 없을진대, 얼핏 보아서는 무모하고 부질없어 보이는 이 봄까치꽃도 분명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 테지요.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경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갈수록 실업자가 늘어나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넘어 증오와 적개심이 팽배한 사회입니다.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나돌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은 상당히 풍족한 나라입니다. 시래기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가깝지요. 세계 십위권의 경제대국답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염려는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행복지수는 낮고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합니다. 과분한 욕심을 분모로 놓는 한 물질적 소득이 행복지수를 높이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사람들이 비관하거나 좌절하는 이유 중 대부분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처지가 남들에 비해서 열악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생존의 문제가 걸린 절대적인 조건은 아닙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극복이 가능한 열등감이기 때문이지요. 나보다 잘나고 많이 가진 사람들과 구태여 비교를 하지 말고 부러워하지도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겨울 들판에 피어있는 봄까치꽃이 매화나 동백에 비교하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의식주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지는 않는 나라에 산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자 축복입니다. 지금도 세상에는 최소한의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의식주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생태계의 법칙이니까요. 백수의 왕이라는 사자나 호랑이도 쉽사리 먹잇감을 얻을 수 없는 것이 자연의 공평한 섭리입니다. 남보다 가진 것이 적다는 것은 결코 기죽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요 이상의 탐욕이 자신과 지구생태계를 해치는 일이라는 각성이 필요한 시대입니다.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좌절하거나 자괴감을 갖는다는 건 한갓 어리석은 엄살에 불과합니다. 생명은 사는 데까지 살아있는 것으로 완성이고 희열이기 때문에, 생명현상 그 자체를 우선하는 명분이나 목적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몸을 낮추고 눈이 맑아야 찾을 수 있는 곳에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기쁨이 있습니다. 저 겨울 들판의 봄까치꽃이 전하는, 어떤 경전의 말씀보다도 더 생생한 전율로 다가오는 메시지입니다.

2019-02-14

물루와 시지프

송귀연 수필가물루의 걸음걸이는 도도하고 아름답다. 턱을 약간 쳐들고 ‘S‘ 라인의 몸매를 유지하는 폼은 거의 환상적이다.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시키며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는 영락없는 ‘백조의 호수’의 발레리나다. 식사할 때도 고급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귀부인처럼 우아하다. 아무리 맛좋은 음식이라도 금방 달려드는 일이 없다. 천천히 다가와선 혀로 조금 맛을 본 후 잠시 뜸을 들였다 느긋하게 먹는다.반면 남편이 좋아하는 시지프는 수컷이다. 정확한 혈통을 알 수 없는 호랑이 무늬 빛으로 치장한 녀석이다. 시지프는 우둔하다 못해 미련스럽다. 물루와 시지프가 어떻게 동일한 고양이 과(科)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에게나 애교를 떨며 시도 때도 없이 내 곁으로 와서 교태를 부린다. 교양 없이 함부로 날뛰고 걷는 모습은 꼭 오리가 뒤뚱거리는 것 같다. 음식을 주면 게걸스럽게 다먹어치우곤 배탈이 나서 병원신세를 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암컷인 물루는 청회색 빛 털이고운 미모의 러시안 블루이다. 물루의 도도함은 훌륭한 혈통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이 싫은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주인인 내가 가까이 가려해도 언제나 거리를 둔다. 마치 속만 태우는 짝사랑 같다. 새침데기이고 깐깐해서 여간해선 정을 주지 않는다. 물루는 조금만 수가 틀려도 발톱을 세우고 나를 할퀸다. 요즘의 내 몸에 난 상처는 모두 물루의 짓이다. 물루는 야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결코 인간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아니 인간 따위는 아예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물루의 그런 교만이 좋다.물루와 시지프는 작년 여름, 우리 집으로 입양되었다. 외국으로 나가게 된 딸이 같이 데리고 있던 녀석들을 강제로 떠맡긴 것이다. 그때까지 짐승을 키워보지 않았던 터라 거절했지만 키워보면 정이 들 거라며 막무가내로 두고 간 것이었다. 처음엔 먹이를 챙겨주랴 목욕시키랴 병원에 데려가랴 성가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했다.물루와 나는 많이 닮았다. 나는 성격이 깔끔하여 매사가 반듯하고 내성적이라 쉽게 다른 사람과 친화하지 못한다. 그런 탓에 친구도 별로 없고 바깥나들이도 자주가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은 두루뭉술하다. 대인관계가 원만해서 친구도 많을 뿐 아니라 매사가 낙천적이다. 도대체 남편은 고민이 없는 사람 같이 보인다. 부부싸움을 하려고해도 남편이 먼저 웃고 말아서 싸움이 되지 않는다. 한번은 두 녀석이 장난치다 문갑위에 놓인 어항을 건드려 깨뜨린 적이 있었다. 방안에 물이 넘쳤고 어항속의 금붕어가 방바닥에 파닥거렸다. 내가 달려갔을 때 물루는 사건 현장으로부터 두어 발짝 물러나 예의 그 도도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시지프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내 종아리를 파고들었다. 물루는 어항을 깨뜨린 것에 대해 반성도 하지 않고 또, 제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었다. 화가 나서 던진 걸레를 슬쩍 피하기까지 하면서.심한 독감을 앓은 적이 있었다. 계속해서 약을 복용하다보니 비몽사몽,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제법 헛소리까지 했던 모양이었다. 문득 깨어나니 발치에 물루가 앉아 있었다. 시지프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제 속내를 드러낸 적이 없는 물루가 제 주인이 아프니까 측은지심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녀석을 껴안아 주려고 가만히 다가갔다. 그러나 물루는 한 발짝 물러서며 포옹을 허용하지 않았다. 얄미운 녀석! 못이기는 척 한번 안겨주면 어때서.오늘도 두 녀석은 방 안을 뛰어다니며 저희들끼리 재미있게 논다. 어쩌면 세상은 한 가지 색깔로만 살아지진 않을 것이다. 교향악처럼 여러 다양한 것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배려할 때 아름다운 공동체는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그러나 물루는 여전히 도도하고 시지프는 우직하다.

2019-01-31

오비

강길수수필가그 많던 낙엽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초겨울까지만 하더라도 보도(步道)를 메우던 낙엽들이 자취를 감췄다. 보도 옆 학교 운동장 가에 플라타너스나무가 하늘 높이 서 있다. 가지에는 마른 잎과 열매가 간간이 붙어있다. 무슨 미련이라도 남은 건가. 초겨울까지 푸른 잎을 놓지 않고 버티던 플라타너스나무다. 대한(大寒) 무렵의 한겨울인데도, 가지와 마른 잎은 서로 부둥켜안고 아직도 긴 이별연습을 하고 있다니.반면, 간선도로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는 완벽한 나신(裸身)으로 변모해 있다. 마른 잎을 한 개라도 달고 있나 싶어, 여러 나무를 유심히 살펴도 단 하나도 없다. 은행나무와 잎 사이의 맺고, 끊음이 저리도 분명한 걸 이제야 알았다. 나무밑동 곁 마른 잔디를, 마른 은행낙엽 몇 잎이 부여잡고 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도 나누는 걸까. 지난봄의 약동과 여름의 성숙과 가을의 화려함은 찾아 볼 수 없어도, 마른 낙엽과 잔디가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고도 애달프다.가을이 되자 나뭇잎들은 스스로 고운 색옷 갈아입고 가지를 떠나 은퇴했을 터다. 북녘 된바람에 우수수 쓸려 낮은 곳에 모였을 낙엽들. 미화원이 큰 비닐봉지에 쓸어 담아, 매립지나 소각시설로 보냈을 것이다. 매립지에 간 낙엽들은 땅 속 깊이 묻혀 시나브로 부패되며 가스와 물, 흙으로 되돌아 갈 길을 걷겠지. 소각시설로 간 낙엽들은 커다란 소각로에 들어가 몸을 불태워 열과 가스와 증기로 변하고, 얼마간의 재를 남기는 길을 갔을 테고. 도시 가로수에서 태어난 나뭇잎들의 한 생은 이런 여정들을 겪어내며 마칠 것이다.직장생활을 하면서 중년기에 접어들자, 주위에서 ‘오비(OB)’란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직장 떠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도 별 생각 없이 그 말을 따라 썼다. 그때 글쓰기라도 했었더라면, 오비의 원어를 따져 보았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남 따라 막연히 그냥 썼다. 훗날, 원어도 모르고 따라 쓰는 자신이 부끄러워 온라인 사전을 찾아보았다. 영어로 ‘올드 보이(Old Boy)’였다. 직역하면 ‘늙은 소년’이 된다. 하지만, 이 말이 ‘졸업생’이나 ‘퇴직자’를 뜻하는 표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두 번째 직장에서 설립한 작은 회사에, 사측의 권유로 기술진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무렵, 두 번째 직장의 ‘오비모임’이 결성되었다. 나도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새 직장에서는 현직이었지만, 전 직장기준으로 보면 오비였다. 매월 한 번씩 열리는 오비모임을 회원들은 좋아했다. 타 모임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이루어져서다. 이를테면 경쟁심리가 없어 흉허물이 없다든가, 젊음을 함께 바친 직장이었다는 공감대가 펼쳐졌다. 따져 보니 내가 참여하는 오비모임도 퇴직자모임, 동문회, 성당의 봉사직출신모임 등 여러 개다.생각해보면, 활엽수 나뭇잎들은 가을에 모두 오비가 되었지 싶다. 어떤 잎은 붉은 오비, 어느 잎은 노란 오비, 다른 잎은 보랏빛 오비, 여느 잎은 갈색 오비가 되어 직장인 나무를 떠난 것이다.한겨울에 나뭇잎이 하나도 없는 은행나무는, 나무와 잎 사이가 사리 분명하나 정 없어 보인다. 아직도 마른 잎과 열매를 더러 매달고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와 잎, 열매 사이는 끈끈하고 긴 이별을 나누어 애석하나 아둔해 보이기도 한다.사람들이 오비가 되는 여정도 활엽수 나뭇잎들과 같지 않을까. 어떤 직장은 퇴직 문제가 은행나무낙엽처럼 말끔히 처리된다. 직장도, 근로자도 합법적 퇴직문제를 이견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리라. 다른 직장은 퇴직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고 플라타너스나무 잎처럼 끈끈하게 끌어, 법정싸움까지 비화되기도 한다. 양측의 욕심 때문인가.지금 오비이면서 현직이기도 한 나는, 장차 어느 나무를 닮아가야 할까. 또, 지구촌 생이 끝나는 날엔 어떤 오비가 기다릴까.

2019-01-24

여생의 첫날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오늘은 특별하고 중요한 날이다. 무슨 특별한 행사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가 아니다. 집안의 경조사가 있거나 가족의 기념일도 아니고 건강검진의 결과나 복권 추첨을 기다리는 날도 아니다. 하다못해 국경일이나 공휴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오늘이 특별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여생(餘生)의 첫날이기 때문이다.죽을병이라도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면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남은 생의 첫날보다 더 소중하고 절실한 날도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게 남은 사람들일수록 그 첫날인 오늘이 어찌 사소하거나 예사로울 수 있겠는가.오늘이 내 남은 삶의 첫날이라고 일상을 전혀 다르게 바꾸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여전히 땀 흘려 일해야 하는 하루임에는 변함이 없을지라도 그 일에 임하는 마음과 자세는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헛된 꿈이나 악하고 추한 마음을 먹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내 여생의 첫날부터 사악한 일이나 나태와 방종으로 허송할 수는 없지 않는가. 오늘이 첫날인 만큼 모든 것이 새로운 일인 것이고, 비록 힘겹고 초라한 육체노동이라 할지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행하고 보람 있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널리 알려진 금언 중에 ‘메멘토 모리’란 말이 있다.‘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이다.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임을 생각한다면 보다 겸허하고 진실한 삶이 될 거란 교훈이다. 오늘이 자기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는 말도 있다. 그러면 그 하루를 결코 허투루 살지는 못할 거라는 얘기다.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남은 하루라면 어떻게 함부로 허송을 할 수가 있겠는가.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도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불의의 사고로 졸지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생을 마감해야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매일 속옷을 갈아입는다는 사람도 있다지만 죽음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도 삶을 보다 의미 있게 할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지만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는 남은 생의 첫날이라는 생각이 훨씬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달력에 있는 어느 날이든 남은 생의 첫날이 아닌 날이 없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에 별로 괘념치 않고 사는 것 같다. 특별한 의미가 없이 주어지는 수많은 날 중의 하나로만 치부하기 일쑤다. 그래서 타성에 젖어 따분하고 무의미하게 보내거나 심지어는 탐욕에 몸을 맡겨 자신과 남을 해치는 일을 자행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마지막 날이라는 것보다는 첫날이라는 게 얼마나 희망적이고 가슴 설레는 일인가. 이미 지난 것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보다 바람직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서 아, 오늘이 내 남은 생의 첫날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하루가 더없이 종요로워지고 뭔가 새로운 다짐으로 의미 있고 보람 있게 하루를 살고 싶어진다. 첫사랑, 첫 만남, 첫날밤처럼 ‘첫’이란 글자가 들어가는 말은 뭔가 신선하고 소중하고 설레고 떨리는 느낌을 준다.하루를 맞이하는 처지와 기분은 사람마다 천차만별 다를 것이다. 그야말로 꿈인지 생신지 꼬집어볼 정도로 행복과 환희에 벅찬 사람도 있을 것이고, 차마 눈을 뜨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과 절망에 처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날마다 개미 쳇바퀴 돌 듯 지겹고 따분하게 반복되는 삶도 있을 것이고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깝고 소중한 시한부 인생도 있을 것이다. 그 모두에게 행복하고 희망찬 하루가 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 누구든 여생의 첫날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보다 더 바람직한 생각은 없지 않을까. 내 인생의 모든 하루가 다 개벽의 첫날이다.

2019-01-17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김순희수필가신년회를 했다. 이십여 년 동안 친구로 지낸 사람들과의 만남은 늘 기다려진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보자고 하지만 바쁘다 보면 건너뛰기도 하고 서너 달 못 나온 친구도 있어서 한 번 시작한 수다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으로 바빴는지 나누다 보니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나를 포함한 네 명 모두 쓴 감투가 여러 개였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세 명은 통로 반장을 몇 년째 맡고 있었고 주택에 사는 친구는 다들 맡기 싫어하는 돈 관리와 서기까지 도맡아 고생했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새해에는 절대로 아무 감투도 쓰지 않을 거라고 하며 나처럼 열심히 살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내가? 하고 되물으니 우리 중에 제일 열심히 살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열심히 살지 않기로 마음먹고 살았는데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인가.몇 해 전까지 나는 계획표 짜는 것을 즐겼다. 12월이면 다이어리를 사서 새해에 하고 싶은 일 10가지, 해야 할 일 10가지를 적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세부적인 방법도 써가며 세워둔 계획을 하나씩 클리어 하는 재미로 살았다.일 년에 책 30권 읽기, 한 달에 영화 3편 이상 보기, 한 달에 한 번 이상 여행하기, 매일 5매 이상의 일기 쓰기 등등. 되도록 세세하게 짜야 지키기 쉽다며 12월 한 달 동안 생각날 때마다 추가해서 1년을 계획했다.서른 권의 책 목록을 만들고 독서회 세 개는 기본으로 참여한다. 영화관에 가기 힘들 때는 다운받아서 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세 편은 거뜬히 넘겼다. 여행하는 일만 마음처럼 쉬운 게 아니어서 늘 계획과 어긋나기 일쑤였다. 5매 이상 일기 쓰기도 처음에 힘들어서 그렇지 한 달 쯤 지속하니 30분 만에 한 편 완성하게 속도감이 붙었다.계획은 늘 타이트하게 목표치보다 높게 세웠다. 화살을 과녁에 정확하게 맞히려면 과녁 그 너머를 겨냥해서 힘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내 능력 이상을 채우려 애썼다. 가다가 아니 가면 간만큼 이익이라는 말도 있기에, 작심삼일은 개나 줘버리라고 외치며 늘 나를 다그쳤다.열심히 사는 게 옳다고 믿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옳게 사는 삶이, 계획표에 나를 맞춰 사는 삶이 곧 행복한 인생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낮아진 자존감에 기운도 딸리고 눈도 침침해져와 하루하루가 버거워지던 참이었다. 잦은 몸살에 어쩔 수 없이 속도를 늦추어 서니 체력이 떨어졌는데도 간신히 버티며 살고 있는 내가 보였다.인생은 단거리 뛰기가 아닌 마라톤이다. 멀리 가려면 체력이 필수이다. 나에게 맞는 운동이 무얼까 찾다가 계단 오르기를 하기로 했다. 전국노래자랑의 명MC 송해님도 한다는 운동이다. 체육관에 오가는 시간도 필요없고 별다른 도구도 필요없다. 그러니 비용도 0원이다. 잘 하겠다는 욕심은 접어두고 일주일에 서너 계단을 추가하며 오르다보니 두 달이 지난 지금은 36층을 오르는데 15분이면 가능하다. 물론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숨고르기를 한다. 덕분에 허벅지가 살짝 얇아진 것을 느낀다.일 년 만에 성경 일독 하려고 하루 30분 이상 읽던 것도 마음을 바꿨다. 왜 일 년이어야 하나 평생 일 독이면 어떠랴 하니 마음이 가벼워져서 하루 한 장만 읽기로 했다. 1~2분이면 충분했다. 부담스럽지 않은 시간이라 3년 넘게 지속할 수 있었다. 평생 한 번 읽자고 한 것이 다음 달이면 완독가능하다.매일 쓰던 일기도 신명나면 쓰고, 영화도 땡길 때 보기로 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을 읽을 때는 독서회도 건너뛰고 보드게임을 배웠다. 반장도 새로 이사 온 집에 슬쩍 넘겼고 지각하면 큰일 날 것처럼 서두르던 모임도 한두 번 빼먹으니 학창시절 엄마 몰래 오락실 갈 때처럼 짜릿했다. 무슨 일이든 내 방식대로 내 리듬에 맞춰 즐거울 만큼만 하기로 했다. 멀리 오래가기 위한 방법이다.

2019-01-10

내부왕국

강길수수필가가로수들이 자신의 내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서 있다. 매서운 북극 높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도 윙윙 소리만 낼뿐, 끄떡도 않는다. 사람들은 방한복에다 귀마개와 마스크까지 끼고 종종걸음인데, 훌훌 벗은 저 나무들은 매서운 칼바람에 어찌 저리도 의연할까. 그 모습이, 조그만 변화에도 안달인 나를 부끄럽게 한다.지난 늦가을, 이 거리는 나무들이 벗기 경쟁이라도 벌이듯 낙엽이 그득했었다. 붉은 옷, 노랑 옷, 갈색 옷, 모두 벗으며 시나브로 속을 드러내는 나무들의 모습이 마치 성스런 의식이라도 치르는 것만 같았었다. 한줄기 하늬바람에 팔랑팔랑 나비되어 나르던 낙엽들부터, 막 시작되는 북풍에 우두둑 떨어지며 시야를 가리던 낙엽까지 거리는 온통 나무들이 옷 벗는 의식으로 분주했었다.봄에 가지에서 싹터 생명을 뽐내며 자라나, 나무마다 하나의 왕국을 이루어냈던 나뭇잎들. 살아있음의 기쁨을 삭막한 도시에 한껏 선물하며 봄, 여름, 가을 한생을 살았다고 미련없이 가지를 떠나던 낙엽들. 보이는 외부 왕국을 해체하고, 보이지 않던 내부왕국을 보여주는 의식처럼 그 모습이 마음에 다가왔었다.젊은 날, ‘실바 마인드컨트롤’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구체적 내용은 별로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 마음에 남은 것도 있다, ‘사람의 사고(思考)는 두 세계를 바라보는 커다란 눈[目]과 같다’는 말이었다. 즉, 내부세계와 외부세계 또는, 객관적 세계와 주관적 세계 혹은, 물질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그것이다. 한주간의 강의를 마친 후 수강자들이 수련모임을 만들어 강의 내용을 복습하고 연습하기도 했었지만, 지도자가 없어선지 얼마 후 모임은 흐지부지됐었다.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아마도 지천명 중반기쯤에 강의시간에 들었던 말이 불쑥 마음속에서 되살아 나왔다. ‘사람은 내부왕국을 보며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그때부터 내부왕국 곧, 자기 마음속을 전 보다 더 잘 살펴보고, 귀를 기울이며, 헤아리고, 행하며 살려고 하였다. 여행을 좋아하던 마음이, 내부왕국의 여행에도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바뀌었다. 관광지에서 대부분 피상적으로 보거나 느끼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도 생각하게 되었다.나아가 역지사지(易地思之)도 더 잘 하며 지내자고 마음먹기도 하였다. 남의 말을 더 잘 들으려 마음 쓰고, 상대방의 입장을 한번이라도 더 고려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등산이나 산보 땐 길옆 풀과 나무들을 더 유심히 살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기도 하였다. 주위의 작은 것들 이를테면, 보도블록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 공원에 사는 도시의 새들, 도로나 담 틈바구니에 사는 풀과 꽃들같은 존재들에 관심을 두는 일 등이었다.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이 송구영신의 시기에, 왜 앙상한 가지들이 마음에 파고들어오고 있을까. 그 것은 필시 내 내부왕국이 저 나무들처럼 튼실하지 못한 때문일 게다. 생의 가을 기를 접하며 내부왕국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모습을 잘 살펴보자던 마음이 풀어진 때문일 터다. 활엽수들은 해마다 한 번씩 내부왕국을 활짝 드러내어놓고 칼바람 단련을 받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느슨하게 올 한해도 살아온 것이리라. 좋은 게 좋다는 적당주의에 매몰된 채, 시간만 축내왔기에 앙상한 가지가 세모에 내 마음을 혼내주려는 게 아니겠는가.비록 세월이 하 수상하더라도, 저 거리의 앙상한 나무처럼 외부왕국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북쪽 칼바람을 의연히 대처하고 이겨내야 하지 않겠는가. 내부왕국의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그 길을 걸어가는 일이 될 것이므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더라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는 우리네 속담은 바로, 사람은 자기 내부왕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내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2019-01-03

빈부의 양극화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형태가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의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일 것이다. 인간사회에는 강자와 약자가 있게 마련인데, 자유경쟁을 시켜놓으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맨손으로 경쟁을 해도 그럴진대, 잘나고 강한 자들은 최상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는데 약하고 못난 자들은 맨손으로 경쟁해야 한다면 그것은 애당초 경쟁이랄 것도 없는 일이다. 백 개를 가진 자에게 단 하나 가진 것까지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주의 자유경쟁의 속성인 것이다.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공산주의였다. 모든 재산을 공동의 소유로 하면 서로 많이 갖겠다고 경쟁하고 다투는 일이 없어지고 빈부의 차가 없이 평등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왕에 많이 가진 자들이 순순히 자기 것을 내놓을 리가 없으니 노동자와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자본가나 지주들을 처단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요구된다는 거였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엄청난 피의 숙청이 따랐다. 소련에서만도 공산주의혁명을 거치면서 무려 이천만 명의 숙청이 있었다고 한다.공산주의를 표방했던 대부분의 나라들이 한 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선택했다. 공산주의이념은 하나의 이상이었을 뿐, 공산주의국가란 실재로 인간들이 실현해 낼 수 있는 바람직한 체제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 판명된 것이다. 북한의 경우는 공산주의체제라기보다는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독재군주체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을 통해서 역동적인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질서인 것처럼, 공산주의의 몰락은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자유경쟁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가 될 것이다.이미 자연의 질서를 벗어나버린 인간들은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할 수밖에 없다. 강자들이 가진 과도한 욕망과 약자들의 결핍과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중재하고 해결할 것인가가 자본주의 국가의 우선과제이다. 그것은 분명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지주와 자본가를 농민과 노동자의 적이요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한 공산주의 혁명은 끔찍한 피바람을 일으키고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강하고 잘난 자들만 날뛰고 설치는 세상이 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강하고 잘난 자는 악하고 약하고 못난 자는 선하다는 이분법적 발상도 백해무익한 억지일 뿐이다.비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연의 법칙은 어디까지나 강한 자의 편이다. 그것이 적자생존의 법칙이요 약육강식의 질서다. 그래서 생태계는 건강성을 유지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다만 문명화된 인간사회에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사회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인위적인 규범과 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생태계에서는 아무리 강한 자라 하더라도 절대로 필요이상을 소유하는 법이 없는데 비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조절과 제재가 요구되는 것이고 제도와 법규가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법과 제도 이전에 인간의 양식이 건전해야한다. 강하고 잘난 사람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저 혼자만 잘 살겠다는 욕심이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남보다 우수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되 저도 잘 살고 남에게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동시에 자신의 안위도 보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약하고 못난 사람은 제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가진 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무조건 불평불만과 적개심을 가지는 것은 사회를 해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일 뿐이다. 인간이란 반드시 많이 가졌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며,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소박하고 청빈한 가운데 오히려 보다 많은 자유와 평안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18-12-27

고구마

김순희수필가어릴 적 내 고향 할아버지 집엔 방이 많았다. 잠자는 방 이외에 고방도 있고, 쌀이 되기 전의 나락만 보관하는 방, 외양간 옆에 농기구만 보관하는 창고도 있었다. 마루 밑엔 사과궤짝을 넣어두었다. 밖에서 보면 안이 훤히 보이는 형태가 아니라 지하실처럼 사방이 막혀있고 작은 공기창만 뚫어 두고, 마루한쪽을 뚜껑을 만들어서 열고 닫았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사랑채 마루 밑에 넣어 둔 사과 때문에 늦가을부터 겨울동안 그 방 언저리에 가면 국광향기가 번졌다.안방 건너편에 자리한 갓방에 군불을 지피면 그 뒷방까지 구들장이 연결되어 사람이 잠자기엔 서늘하지만 따뜻한 걸 좋아하는 물건들이 들어앉기에 좋았다. 뒷방엔 고구마나 호박같은 추위에 약한 것들을 보관했다. 고구마는 뒷방 윗목에 칸을 질러서 벽과 칸막이 사이에 고구마를 그대로 채워 놓았다. 친구네는 방 아랫목에 수숫대를 엮어 둥글게 세워놓고 거기에 고구마를 채웠다.손을 여러 번 탈수록 상하기 쉬운 게 고구마이다. 그래서 처음 자리를 잡은 곳에 쭈욱 놔두고 필요한만큼 꺼내서 먹어야 한다. 겨우내 고구마를 꺼내 삶아서 점심 한 끼로, 군불 지피고 난 뒤에 남은 불로 구워낸 달달한 군고구마는 손자들의 군입꺼리였다. 부족한 쌀에 보태기 위해 밥 위에 얹어 먹다보면 그 양이 줄어들어 수숫대나 칸막이 안으로 집안의 아이들이 들어가야 고구마가 손에 잡히는 시기가 온다. 겨울이 깊었다는 걸 고구마 꽝이 알려주었다.어느 날인가 언니와 내 친구 순연이와 미정이랑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했다. 우리 집은 건물이 여러 채라 숨을 곳이 많았다. 언니와 나는 아이들이 못 찾도록 뒷방 고구마위로 숨어 들어갔다. 뒷방 문만 열어서는 보이지 않아서 오래도록 술래가 우리를 찾지 못했다.한참을 숨어서 킬킬 거리며 낮은 소리로 소근대는데, 언니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했다. 그럼 먼저 나가라니까 들키기 싫었던 언니는 술래가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칠 때까지 참다 참다가 그만 고구마 더미에 고구마를 닮은 것을 누고 말았다. 고구마 더미에 변을 본 언니가 어른들께 혼이 났는지. 우리가 거길 어찌 빠져 나왔는지 가물거리지만 냄새나는 고구마 더미에서 낄낄거렸던 장면은 선명하다.우리 집 고구마는 물고구마였다. 물 빠짐이 좋은 터에 과수원 농사를 하며 몇 고랑 곁다리로 심은 고구마이니 더 했다. 색깔도 빛바랜 보라색이어서 보라색이라 하기에 듣는 보라색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물이 많은 곳이라 어찌나 잘 자라 크기는 또 어찌나 큰지 토막을 내서 솥에 넣어야 했다. 삶아 놓으면 물컹해서 타박고구마를 좋아하던 나는 영 입맛에 차지 않았다.옆집 순연이네는 고구마도 유난히 붉었다. 가장골(어릴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가장 깊은 골짜기라서 붙여진 이름이었다)에 밭이 있었다. 그곳은 흙빛도 붉었다. 그래서인지 고구마 순을 심어 놓으면 물이 베어서인지 진한 자색의 타박 고구마가 열렸다. 우리 할아버지는 왜 고구마를 모래밭인 과수원에 심어서 희멀건 고구마만 만들어 내냐고 철없는 나는 투덜거렸었다.내 투정을 들어줄 할아버지도 우리 밭도 지금은 사라져버렸다. 그러니 해마다 가을이면 고구마를 사서 먹는다. 양면팬에 대여섯 개 넣고 약한 가스 불에 올려놓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집안에 할아버지가 아궁이에서 군불 지피며 구워주시던 군고구마의 녹진한 단내가 번진다. 얼른 가스 불을 끄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낸다. 고구마와 가장 잘 맞는 음식이 약간 신 김치니까 말이다.겨울이면 가끔 고구마로 한 끼를 채운다. 잘 익은 고구마를 집으면 옛 기억이 손으로 전해져 온다. 노란 김이 몰캉하니 입안에 퍼지며 뜨듯한 기운이 온 몸으로 번져간다. 배꼽 밑이 따뜻하게 데워진다.

2018-12-20

텅 빈 들녘

▲ 강길수수필가텅 빈 들녘이 사람을 오라 한다. 북극에서 내려오는 된바람 기꺼이 품으며 사람을 오라 손짓한다. 아직 회수되지 못한 볏짚두루마리들만이 하얗게 혹은, 푸르게 동그마니 서서 들녘을 지켜보고 있다. 된바람의 냉기가 두루마리를 에워싼다. 저 두루마리마저 떠나고 나면, 들녘은 망망대해보다 더 절박하게 텅 비리라. 두루마리에 갇힌 볏짚은 어떤 생각을 할까. 지난 한 생 푸지게 살아 풍년을 이루어 냈으니, 이제 어디로 가 무엇이 된들 대수이랴 할까. 내 분신 쌀이 사람과 동물을 먹여 살리니, 그것으로 족하다 할까. 알곡 벼 다 털리고 몸뚱이마저 사료로 쓰이려 이리 둘둘 말려 세워졌으니, 사람은 참 욕심쟁이라고 원망하며 욕할까. 어차피 사람이 씨 뿌리고 가꾸고 거둬들였는데, 케 세라 세라나 부르지 무슨 상관이야라고 할까.하늬바람이 된바람에 밀리어 떠나며, 초겨울 이별의 노래를 부른다.“지난 한가을, 푸진 오곡백과 다 멀리하고 하늬바람 떠나간다네.흩날리는 낙엽 지르밟고, 앙상한 가지사이 비집고 떠나간다네….”하늬바람은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저 남산 골짜기에 숨을까. 남산너머 양지바른 언덕에 쉴까. 언덕아래 넓은 들판에 퍼질까. 거긴들 된바람이 안 따라 갈까. 그래. 남으로, 남으로 더 가야해. 따사한 마파람이 맞아줄 남쪽나라로 가야 돼. 그 곳까지 설마 된바람이 따라오지 못할 테니까.하늬바람마저 떠나고 나면, 들녘은 바야흐로 자신을 온전히 비우리라. 일찍 벤 벼 포기에 파릇파릇 돋아나, 늦가을 들녘을 생기(生氣)로 비추던 벼 싹도 칼바람의 서슬에 산화(散華)되리라. 월동하는 생물들도 땅 속에서 혹은, 제 집에서 겨울잠에 빠지리라. 들녘은 자신을 텅 비웠기에, 그 비움이 가득 찬 모습으로 화(化)할 것이다. 그리고 하얀 눈을 기다리리라. 이윽고 밤새 눈이 소록소록 들녘을 채우고 나면, 비로소 비움이 가득 찬 새하얀 새아침 들녘을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사람이 자연에서 텅 비었기에 오히려, 가득 찬 기막힌 모습을 찾을 수 있음은 행복이다. 사람이 바다가 그리워 찾는다든가, 하늘을 동경하여 쳐다보고, 산봉우리에 즐겨 오르는 모습은 무엇을 말해줄까. 바로 텅 빈 세상을 보기 위함이 아닐까.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마음을 원래 가지고 태어난 존재가 사람이리라.온 나라가 욕심으로 가득 차 보인다. 나와 너, 내편과 네 편, 내 고장과 네 고장, 젊은이와 늙은이, 근로자와 사용자, 남자와 여자, 또 무엇, 무엇으로 나뉘어 자기편의 욕심만 부리고 있다싶다. 국가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 곧, 경제성장과 국가안보를 통해 나라를 통합해야할 책무가 집권정부에게 주어졌다고 본다. 그런데 침묵해온 서민인 내 눈에 보인 정부여당이 해온 일은, 그들만의 편향된 시각으로 서민이 보는 사회저변의 진짜적폐는 그냥 두었다. 반면, 정치적 반대세력 제거로 보이는 적폐청산과, 안보상 매우 우려스런 남북관계 수립이란 욕심으로 가득 차 보인다. 생활고와 안보불안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절규를 받아들일 마음공간이 없다싶다. 대통령이 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는지 몰라, 국민들은 어리둥절하고 불안하다. 서민들은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다.아무리 정치가 다수승리원리로 작동된다 해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에겐 천부적 지각능력 곧, 직관적 느낌이 있다. 권력층의 행태를 국민들은 알게모르게 느끼게 마련이다. 침묵하는 국민들이 어떻게, 무슨 마음으로 사는지 살피고 돌보는 게 바른 정치 즉, 경세제민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여 사람은 특히, 정치인은 겸손할 필요가 있다. 겸손은 바로 텅 빈 들녘과 같은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는 텅 빈 들녘이다. 텅 빈 들녘엔 무엇이든 심을 수 있듯, 모든 것을 올려놓고 의논하고, 타협하고, 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닐까. 텅 빈 초겨울 들녘은 우리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모두가 마음을 비우라고.

2018-12-14

12월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다시 12월이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게 한다. 무술년 벽두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을 실감한다. 총이 없던 시절에는 시위를 떠난 화살보다 빠른 것은 없었을 터이니 옛 사람들이 최상급의 속도감을 표현한 말인 셈이다. 삶이 덧없고 산 날보다 살 날이 적은 사람일수록 세월에 대한 감회는 더 절실하게 마련이다.올해 스크랩 해둔 신문을 대강 훑어본다. 매년 이맘때면 한 해를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의미로 해오는 연례행사다. 중앙지와 지방지와 지방지를 같이 보다보니 사설과 칼럼 등 필요한 기사들만 모아도 한 달이면 적지 않게 쌓인다. 하루 한 편씩 감상평과 함께 실리는 시(詩)를 모아둔 것만도 시집으로 백여 권이 넘는 분량이다. 이사를 할 때도 사과박스로 몇 박스나 되는 신문 스크랩을 신주단지처럼 가지고 왔다. 아마도 다시는 뒤적여 볼 일이 없을텐데 차마 버리지를 못하는 이유가 뭘까.사회적 활동이 별로 없었던 세월 동안 나는 주로 신문을 통해 세상을 내다봤다. 시골구석에 묻혀 살면서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온갖 현상들을 날마다 전해들을 수가 있는 게 신문이었다. 한 가지 사안이나 사건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과 논리가 있다는 것, 세상을 보는 안목과 균형감각을 기르는 데 신문만큼 유용한 것이 없었다. 자연과 책에서 습득한 정보와 더불어 내 사유와 식견의 바탕이 되어준 것이 신문의 기사였다.인간 사회에서 시시각각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사건들에서 우주 삼라만상의 현상에 이르기까지, 왜곡이나 편견이 없는 인식의 체계를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세상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고 어떤 사건과 현상의 진행과 결말까지를 지켜보는 것으로는 신문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 균형감각이다. 어떤 사안이나 사태에 대해서든 편파적이거나 충동적이고 감상적인 대응보다는 원인과 전말을 미루어 헤아려보는 객관성과 합리성을 가질 수가 있게 된 것이다.부문별로 철해놓은 신문 스크랩을 뒤적이며 한 해를 돌아본다. 올해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슈는 남북문제였다. 지난 2월에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면서 급물살을 타게 된 남북 화해 분위기는 두 정상의 판문점 회담에 이어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그러나 그 후 몇 달이 지나도록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북한의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의 트럼프와 유엔은 대북제재를 풀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오로지 김정은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가 왜 그토록 굴욕과 원성까지를 불사하고 김정은에게 ‘올인’하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김정은이 과연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 단계에 와서는 당연히 가져야할 의문이다. 트럼프와 유엔의 경제제재에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김정은이 왜 핵은 포기를 못하는 걸까? 핵을 포기하면 모든 제재가 풀리고 경제적 지원이 쏟아져 들어갈 텐데 왜 그걸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친북좌파들은 왜 그런 의문을 가지지 않는 걸까?요즘 확증편향이란 말이 자주 오르내린다. 자기의 주장이나 이념을 관철하려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을 말한다. 지금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는 좌파 이념의 정권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노정하고 있는 실상이다. 균형감각을 상실한 정권에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순 없는 일이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 앎의 근본이라 했거늘 확증편향 무리들은 자신의 무지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파탄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좌로 한껏 기울어졌던 민심이 무게중심을 바로잡아가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2018-12-07

사랑하면 보이나니

▲ 김순희 수필가사진을 찍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다. 지금 내가 무엇에 꽂혀있는지 최근의 사진들이 말해준다. 지난 일 년 동안 찍은 것을 보니 오래된 것들이다. 단청이 벗겨진 대웅전의 꽃문살, 오백 년은 거뜬히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의 늦가을, 사진 속에 피사체는 그 곳을 지나간 시간들을 곱씹고 있다. 나를 지나간 시간들이 담긴 사진첩이 책꽂이에 몇 권 끼어 있다. 결혼 전에 찍힌 내 모습이 담긴 앨범은 한 권 뿐이다. 삼촌이 군대에서 휴가 나온 기념으로 찍은 사진 속에 다섯 살의 내가 흑백으로 웃고 있는 것이 처음이다. 초등학교 소풍 간 날 단체 사진 몇 장이 보이다가 바로 졸업식 날로 건너뛴다. 그 사이 칼라가 입혀졌다. 중고등학교도 몇 장뿐이다. 앨범엔 스무 살 넘어서 사진이 대부분이다.휴대폰이 생기면서 사진이 넘쳐난다. 필름 한 롤을 카메라에 넣고 찍을 때는 필름 가격 때문에 한 번 망설이고 인화할 때 또 돈이 드니 셔터를 누르기가 늘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갑게도 디카가 나오면서 그 고민을 필름카메라와 함께 장롱 속에 넣어버렸다.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면서 올해만 해도 몇 개의 앨범을 만들었다. 여행을 할 때마다 찍은 많은 사진 중에 골라서 편집을 했다. 며칠 동안 컴퓨터 화면에 매달려서 수백 장의 사진을 추리는 일이 고되지만 한 권의 책으로 인쇄되어 내게 오는 기분이 남달랐다. 아직은 화면보다는 종이가 더 익숙한 세대인지라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있어야 이게 진짜인가 싶다.가만히 보다보니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처음 앨범과 다른 점이 있었다. 예전엔 사진마다 내 경직된 얼굴이 중앙에 떡하니 있었다면 며칠 전 만든 앨범의 절반은 내 모습이 없다. 나머지는 유명한 유적지의 노을과 엽서에 나왔던 경치, 내가 지나온 여정들이 담겨있었다.요즘은 내 모습을 좀처럼 찍지 않는다. 마흔이 넘으면서 내 모습 찍히는 것이 싫다. 살이 쪄서인지 나이 먹은 티가 확 나는 게 사진 속에 여자가 누구인가 싶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얼굴이 찍혔더라도 선글라스와 챙 넓은 모자로 많은 부분을 가려놓았다.사진 찍는 걸 즐기는 나는 소풍을 가면 눈보다 스마트폰에 열심히 담는다. 나무, 길, 바람. 그 속에 있는 내가 가장 부자연스럽다. 그래도 내가 거기 있었다는 티는 내야겠기에 그림자로, 때론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오늘은 반사경의 나를 사진에 담았다. 그것도 얼굴이 개미만해서 웬만해서는 알아보기 힘들다. 그 것이 나란 것을 나는 안다. 또 같이 간 친구도 알아볼 것이다. 내가 궁금하고 보고 싶은 사람 눈에도 뜨일 것이다.남편과 여행을 하면 나는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찍는 일에 열을 올리는 남편이 있기에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즐기면 된다. 그러다 가끔 “거기 서봐.” 할 때 남편을 향해 웃어주면 된다. 여행에서 돌아와 남편의 카메라에 담긴 나를 보면 대부분 마음에 든다. 다른 누군가가 찍어준 내 모습보다 예쁘다.며칠 전, 도서관에 갔다가 시립도서관의 위치와 건물을 알려주는 안내 팸플릿이 있기에 집에 가져왔다. 그것을 넘겨보던 남편이 “당신 여기 나왔네.” 한다. 자세히 보니 대잠도서관 카운터에서 책을 빌리는 사람의 옆모습이 찍혀 있었다. 나였다. 언제 찍힌 것인지 기억에도 없지만 분명 나였다.그 팸플릿을 도서관 사서에게 보여주니 긴가민가 한다. 그 사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빽빽이 꽂힌 채로 줄 서 있는 책들이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몇 만 권의 책보다 내게 관심 있는 남편 눈에만 보인 것이다. 초등학교 단체 사진에서도 나를 찾아내는 초능력자이니까 말이다.지인들이 SNS에 올린 내 사진을 마음에 들어해주어서 엽서전을 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사진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도 전시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의의를 두었다. 친구들아 놀러와.

2018-11-30

가을노랑나비

▲ 강길수 수필가마르첼리노!늦가을 아침 길. 인도(人道)가 낙엽들의 만남으로 넘쳐난다. 노란 만남, 빨간 만남, 갈색 만남, 보랏빛 만남, 푸르스름한 만남도 있다. 도로 가에 줄지어 사는 가로수들에서 태어나 살던 나뭇잎들. 때가 차자, 홀연히 나무를 떠나 이리저리 흩날리며 가을의 만남 길을 시작하고 있다. 낙엽들을 바라보고 밟기도 하며 걸어가는 내 마음 거울에 수많은 만남이 아롱져 비친다.올 늦가을, 이 거리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낙엽이 압권이다. 예전에 비해 색깔이 너무나 샛노랗고, 수량도 많다. 남쪽하늘에 낮게 뜬 아침 해가 가로수 가지 사이로 비집고 나와 웃고 있다. 따사롭게 볼을 쓰다듬는 햇살이 꼭 어린 날 엄마의 약손이다. 은행나무 가지와 작별한 잎이 가을노랑나비로 보인다. 팔랑팔랑 날아 새로운 곳 찾아 나선다. 어떤 나비는 잔디밭에, 어떤 나비는 보도블록위에, 어떤 나비는 운동장에, 또 어떤 나비는 차들 쌩쌩 다니는 차도에 내려앉는다.마르첼리노.은행나무 가족으로 한생을 마친 가을노랑나비들. 그들은 새 만남의식을 치르려 길을 떠난 게 아닐까. 지난 삶 내력 따라 연노랑, 짙은 노랑, 황록색 등으로 몸 단장한 나비들. 높하늬바람 타고 날아와 새 만남의식을 준비한다. 이제, 나비들은 모든 것을 타자(他者)에 의지할 운명이다. 생명을 반납했기 때문이다. 바람이나 중력 혹은, 사람 손이나 다른 힘에 제 몸을 기꺼이 맡겨야 하는 것이다. 잔디밭에 내려앉은 샛노란 가을나비 하나. 명을 다하고 말라가는 잔디들과 인사하고 어우러지며 지난 한 생을 지워낼 의식을 시작한다. 건물사이를 비집고 여전히 웃고 있는 늦가을 아침 해님이 머리에 손 얹어 축복한다.저 가을노랑나비는 머지않아,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비를 온 몸으로 받아들일 터. 촉촉하게 젖은 날개는 토양 미생물에게 제 몸을 먹이로 바칠 것이다. 미생물은 나비의 몸을 탐하듯 분해하며 먹이와 퇴비 곧, 나무와 잔디의 영양소로 만들 것이다. 봄에 새 잎으로 태어나 여름과 가을을 살면서 열심히 일했던 가을노랑나비. 소임을 마치고 스스로 가지를 떠나 한 생을 마감한다. 가을노랑나비의 새 만남의식은 이렇게 시나브로 완성되는 것이다.마르첼리노.우리에게, 인간에게 아니, 만물에게 만남은 왜 있는 것일까. 헤어졌으므로 만난다는 말인가. 만물이 저마다 존재하고 자연 질서와 우주 법칙에 따라 운행하는 이상,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피할 수도, 따져볼 필요도 없는 사실이라고 너는 말할 테지. 또, 답도 없을 무익한 생각을 왜 하느냐고 따질 것이고…. 맞아. 네 생각이 현실적이지. 하지만 말이야. 인간은 ‘이성(理性)을 가지고 사는 존재인데, 경험적 자연 질서라고 아무 생각이나 느낌도 없이 받아들이며 산다면, 그게 과연 인간일까’ 하는 마음이 떠날 줄을 모르니 어떡하겠나.괜한 감상주의에 빠지지 말라던 네 말이, 이 늦가을 아침 흩날리는 가을노랑나비들의 날개짓 따라 함께 피어오른다. 가을바람이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든 가을노랑나비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새로운 만남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다. 제 몸이 분해되어 미생물 몸으로, 원소로, 퇴비로, 혹은 새 나무나 잎, 잔디가 되어도 개의치 않는다. 저 굳셈은 무엇을 말해줄까.마르첼리노!한줄기 센 높하늬바람이 노란 은행나무를 훑고 지나간다. 우수수 가을노랑나비들이 날아오른다. 곁에서 난데없이 ‘우두둑’ 소리가 난다. 고개를 돌려본다. 날아오르다 힘 빠진 가을노랑나비들이 세워둔 승용차의 등에 착륙하는 소리다. 저 차는 떠나리라. 하면, 차 등에 올라탄 가을노랑나비들의 운명은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까.다시 분다. 싸늘한 늦가을 높하늬바람이….

2018-11-23

가을단상(斷想)

▲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감나무는 다른 과실나무에 비해 해거리가 심한 편입니다. 과실을 너무 많이 단 다음 해에는 힘이 부치는지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영 적게 열리는 걸 해거리라 하지요. 그러니까 나무들도 사람처럼 조절이 잘 안 되는 욕심 같은 게 있나 봅니다. 유난히도 감이 많이 열린 해였지요. 어느 하늘 맑은 공일, 산골 우리 집에 학교 선생님 몇 분이 들렀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놀러왔다가 감나무에 감이 하도나 탐스럽고 고와서 와본 거라 했지요. 어머니는 찢어지게 휘늘어진 감나무 가지를 뚝뚝 분질러 선생님들에게 선사했습니다. 선생님들은 감나무 가지를 하나씩 받아들고 아이들처럼 좋아했지요.나는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린 것을 보고 어른들이 그렇게 감탄하고 좋아하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았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를 보고 감탄하지 않는 것처럼, 산골소년인 나에게는 해거리 다음 해에 감이 많이 열리는 게 하나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지요.반백년이 지난 지금 나는 모든 자연이 신기하고 감격스럽습니다. 감나무에 해마다 감이, 밤나무에 밤이 열리는 것이 어찌나 신기하고 감격스러운지요. 지난 가을에 떨어진 씨앗에서 어떻게 코스모스가 다시 싹을 틔우고 자라서 저토록 꽃물결 장관을 이루는 것인지 눈물겹도록 신비롭고 황홀합니다.두메산골 소년시절보다 감성이 더 여리고 풍성해졌다는 얘기가 물론 아니지요. 그때는 그냥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었지요. 그야말로 신토불이(身土不二)로 한몸이었으니 따로 감탄하고 말고가 없었던 거지요. 인생이란 자연에서 부지런히 멀어져 갔다가 나이 들면 수구초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요.# 젊어서는 사람들이 쓴 책을 많이 읽었지만 지천명 이후로는 주로 하느님의 책을 읽습니다. 자연은 왜곡이나 오류가 없는 교과서요 경전이지요.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를 읽고 신록의 함성을 읽습니다. 밤에는 개구리소리를 읽고 낮에는 뻐꾸기소리를 읽지요. 여름날엔 천둥번개와 매미소리, 녹음 우거진 산과 들, 넓고 푸른 바다를 읽습니다. 장마가 장편소설이라면 반짝 지나가는 소나기는 한 편의 콩트지요.이번 가을에도 잠자리와 코스모스를 읽고 억새도 읽습니다. 억새가 얼마나 억세게 사는지, 억새의 노후가 얼마나 허허로운지 다시 한 번 감명 깊게 정독을 합니다. 새로 나온 가을호에도 읽을 거리가 참 많습니다.#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높이 납니다. 아주 까마득한 높이는 아니고 바지랑대 쳐들면 닿을 만큼의 높이입니다. 저만큼의 높이에서 잠자리들이 내려다보는 세상은 이제 늦가을입니다.잠자리가 곱고 투명한 날개를 갖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가 않습니다. 학배기란 이름의 유충으로 일 년이나 여러 해 동안 물속에 살면서 열 번 이상 탈피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껍질을 찢는 아픔을 여러 번 겪고서야 우화(羽化)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맘때쯤 잠자리들이 나는 것은 먹이활동이나 번식을 위한 비행(飛行)은 아닙니다. 나뭇잎들이 마지막을 단풍으로 불태우듯, 생의 마지막 한 때를 저렇게 유유한 비상(飛翔)으로 장식하는 잠자리들의 군무(群舞)에 눈이 부십니다.# 가을에 취(醉)합니다. 풀꽃에 취하고 단풍에 취합니다. 세상을 이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취하려 왔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은 취하는 계절입니다. 가을 산은 한바탕 풍악(風樂)입니다. 만산홍엽 자진모리로 타오릅니다. 독한 주정(酒精)의 가을볕에 취하지 않은 것은 죽은 것들뿐입니다. “가을볕에 불콰하게 산자락이 취했다// 석양 하늘 지나가던 구름도 취했다// 그 취기 따라가려고 거푸 술잔 기울인다.” -졸시 ‘단풍’

2018-11-16

불국사의 밤

▲ 김순희수필가이 비밀을 비밀로 남겨둘까 망설였다. 좋은 것은 좋은 이에게만은 알려주는 게 맞지 싶어 밤마실을 나갔다. 동행하자고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갈 곳이 어딘지 묻지도 않고 얼른 따라 나선다. 밤기운이 쌀쌀하니 두툼한 외투 하나 더 준비하라는 내 말에 친구는 곰돌이가 되어 차에 올라탄다.그 곳에 문 닫기 전 도착해야 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유강터널을 지나 천북으로 들어서니 그제야 목적지가 어디냐 묻는다. 불국사! 가 본 곳이지만 나와 함께 간다니 더 좋다고 웃는다. 기분을 맞출 줄 아는 친구다. 동절기라 다섯 시 반이 지나면 입장불가이지만 나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얼마든지 오래 구경해도 된다. 불국사 밤나들이는 처음이라 설렌다는 친구, 하지만 몇 번째인 나도 설레긴 마찬가지였다.이 시간에 들어가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왁자하던 무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썰물이 되어 빠져나갔다. 그나마 먼저 와 있던 외국인 단체 관람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느라 눈과 귀가 바쁘다.우리가 경내에 들어서니 범영루 처마 끝에 해가 걸렸다. 노을빛에 친구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었다. 환할 때만 오는 곳인 줄 알았는데 늦은 시간에 오니 자기가 알던 그 불국사와 또 다른 모습이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을 찰칵. 다보탑과 석가탑은 매일 보는 해거름일 텐데도 길게 그림자를 늘이며 뒷걸음치는 해를 아쉬워했다.해가 산을 넘어가도 아직 어둠이 내려앉으려면 좀 더 있어야 한다. 그동안 극락전과 무설전을 돌아본다. 구경꾼들이 사라진 절에는 우리 발자국 소리 뿐이다. 마사토가 내 신발에 사박사박 밀려나는 소리가 듣기에 좋다. 고요할 때나 들을 수 있어서 더 그렇다.무설전 뒤 언덕에 위치한 관음전으로 오르는 계단은 보폭이 높아서 기다시피 올라야 한다. 신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라는 가르침이다. 계단 중간쯤 오르는 친구를 불러 세워 또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 밑에서 올려다 보는 풍경은 극락전 마당에 달린 오색등이 문 사이로 살짝만 드러나서 색의 조화가 남다르다. 비로전에 비로자나불까지 찾아보니 어스름이 내렸다.돌아와 대웅전 앞 돌계단에 앉아 준비해 온 따뜻한 차를 나눠 마셨다. 회랑에 매달린 등의 이름표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수런거린다. 고양이 한 마리 발소리도 없이 마당을 가로지른다. 콩새도 겁 없이 마당에 내려와 먹이를 쪼아 댄다. 토함산을 지나는 바람이 소나무를 비벼 가지에 쏴아~파도를 일으킨다. 때 맞춰 보살님이 기다란 막대를 들고서 건물 모서리마다 등을 켠다. 연꽃모양의 등이 어둠을 재촉했다. 꽃문살 사이로 불빛이 붉게 또 노랗게 새어 나오는 대웅전을 바라보며 우리는 기다렸다. 하늘의 색이 기와와 같아 질 때를.이제부터 소리를 볼 시간이다. 스님들이 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은다. 한 분이 먼저 회랑 난간에 손목시계를 매놓고 시간을 보고 한 분이 북채를 잡은 채 준비 중이다. 두둥~오늘은 6시 20분에 연주를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7시였는데 해가 많이 짧아졌다. 다섯 분의 스님이 1분씩 돌아가며 북을 친다. 10분 동안 어둠속을 달려가는 북소리를 보았다. 그 뒤를 이어 종이 울렸다. 서른세 번 불국의 밤을 가른다. 종소리가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목어가 단아하게 몸을 떤다. 때 맞춰 운판이 쨍한 소리로 화답한다. 하루 세 번 열리는 불국사의 음악회다.넋을 놓고 보던 친구의 손을 끌어 다시 대웅전 앞에 섰다. 불상 앞에 놓인 작은 종이 울리고 저녁 예불이 시작됐다. 목탁소리와 스님의 불경소리가 마당을 나와 토함산을 기어오른다. 어둠이 짙을수록 대웅전의 꽃문살이 가을단풍보다 곱게 물들었다.친구와 나도 붉게 물들었다. 친구야, 불국사의 밤이 낮보다 아름답다는 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대이.

2018-11-09

또 하나의 집

▲ 강길수 수필가손주 녀석의 행동이 갑자기 이상하다. 태어난 지 열다섯 달 된 유아다. 큰방에서 한잠 자고나서 이것저것 분탕 치며 잘 놀았다. 이를테면, 할머니의 묵주를 두 개씩이나 목에 스스로 걸었다 벗었다 하며 논다든가, 제 용품이 들어있어 제법 무거운 작은 아기배낭을 등에 메고 안방, 마루, 건넌방, 주방을 종횡무진 오가며 신난다든가,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다 집어 난장판을 만들며 잘도 놀았다.한데 해질 무렵이 되자 별안간 한손에 차키를 들고, 다른 손으로 제 아빠 가방을 끌며 “아빠, 아빠 ~~” 라고 말하며 아빠에게 가져가는 게 아닌가. 또, 벗어놓은 아빠의 옷도 끌어다 주며 역시 급한 목소리로 “아빠, 아빠 ~~” 하며 무언가 보챈다. 나는 휴대폰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녀석이 아빠 옷을 가져다 아빠 손에 쥐어 주었는데 아빠가 바닥에 놓자, 기어코 녀석은 다시 끌어다 아빠 손에 쥐어주었다. 아빠는 의아한 웃음을 지었다. 나도 웃으며 “현민이가 집에 가잔다!….”하고 저절로 말했다. 그리고 ‘저 어린 것이 어찌 제 집에 가자할까?’라고 의문이 들었다. 저녁에 집에 다니러 온 둘째아들 부부에게 낮에 찍은 조카 동영상을 보여주었더니, 둘 다 웃으며 의아해하긴 마찬가지였다.생후 일곱 달 되었을 무렵에도 이모 집에서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집에 가자고 심하게 우는 바람에 제 아빠가 세 시에 데리러 간 적도 있다했다. 그렇다면 손주 녀석은 이번에도 집에 가자고 아빠를 종용한 거라는 내 느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아인 손주 녀석이 어찌하여 자기 집에 돌아가자는 의사를 표시할까. 제 할머니와 나는, 한 주간에 한번정도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내선지 낯가림 하지 않는다. 또, 모르는 이들에 대해서도 심한 낯가림이 없는 아이다. 그런데 해가 기우는 시간이 되자 스스로 집에 가자고 아빠에게 보챈 것이다.사람에겐 원래 ‘귀소(歸巢)본능’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손주는 난지 칠팔 개월 때부터 제 집에 가자고 울었고, 오늘은 자기 아빠의 소지품들을 챙기며 집에 돌아가자고 조른단 말인가. 아직 어리기에 대부분 본능이나 본성에 따라 반응할 손주 녀석이 이런 행동들을 보인 것은 사람의 본성에 귀소본능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게 아닐까. 사람뿐 아니라 비둘기, 연어 등 다른 생명체들도 귀소성이 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아메바도 몸에 생체자석(生體磁石)을 가지고, 남극과 북극을 오간다는 사실을 연구자들이 알아냈다한다.타향살이 하는 사람들은 향수(鄕愁)를 가지고 산다. 나도 그렇다. 중학교 이학년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오랜 타향살이를 하고 있어도 여전히 향수를 간직하고 산다. 한 해 대여섯 차례 고향에 간다. 그래도 떠나면 또 고향이 그리운 게 향수 때문이리라. 오래 전에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다. 하지만 고향이 있다는 사실이 그냥 좋다. 향수를 다룬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작품들도 많다. 향수는 사람의 귀소성향(歸巢性向) 곧, 귀소본능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닐까.사람의 귀소본능은 왜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고, 그 끝은 무엇일까. 시인 천상병은 ‘소풍’ 같은 세상 삶을 마치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고 노래했다. 사람의 귀소본능은 단순히 세상 집에 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자각을 노래한 것이리라. 맞다. 인생길은 보이는 집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집으로 가는 여로인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집에 살면서도 종교에 귀의하고, 학문에 매진하며, 예술에 심취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사람과 생명체들이 타고난 귀소본능은, 결국 단순히 둥지나 집에서 사는 것만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그 삶을 통해 본래의 삶 곧, 유전자에 각인된 참 삶의 집을 찾아 가는 눈으로 주어진 것이라 믿어진다.다시 휴대폰 동영상을 켠다. 손주 녀석은 등에 제 작은 푸른 배낭을 메고, 아빠의 옷이랑 가방을 끌어다 주며 “아빠, 아빠~~”하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보챈다. 녀석의 귀여운 모습 뒤로, 아름다운 또 하나의 집이 오버랩 된다.

2018-11-02

정보의 홍수

▲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바닷가에 나가 보고 눈을 의심했다. 지난여름 피서객들이 북적대던 해수욕장은 어디 가고 거대한 쓰레기하치장이 생겨나 있는 게 아닌가. 태풍과 홍수가 바다로 휩쓸어간 쓰레기들을 풍랑이 다시 바닷가로 밀어내어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거였다. 태풍이 불고 홍수가 나면 땅위의 온갖 쓰레기들이 휩쓸려 바다로 들어간다. 하지만 바다는 끊임없는 자정력(自淨力)으로 그것들을 다시 해변으로 밀어낸다. 일부 유기물은 바다생물의 영양소가 되기도 하지만 자정의 한계를 벗어난 부유물들은 거대한 쓰레기섬을 만들어 대양을 떠다니기도 한다.인류는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동물이다. 다른 동물의 경우 살아있는 동안에는 때때로 배설물을 남기고 죽어서는 시체를 남기는 게 고작이다. 그 배설물이나 시체는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거나 썩어서 식물의 거름이 되는 것으로 완전한 순환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든 쓰레기는 자연계의 순환을 거스르고 저해한다. 특히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같은 합성수지 쓰레기는 수백 년 동안이나 썩지를 않아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되고 있다. 갈수록 적체되는 생활쓰레기는 산업폐기물과 매연, 오폐수와 함께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인터넷의 상용화로 각종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다.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편리함이 있는 반면 정보의 과잉에 따른 폐해도 적지 않다는 우려가 있다. 갈수록 범람하는 불필요한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올 거라는 예상이다. 단순히 정보의 양이 많다는 문제가 아니라 온갖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거짓 정보들과 선정적이고 왜곡된 정보들이 쓰나미가 되어 인류를 덮칠 거라는 경종이 아닐 수 없다.원시시대에는 인위적인 정보가 많지를 않았다. 자연에서 먹잇감을 구하기 위한 정보와 맹수나 재해의 위험을 피하는 방법 정도가 고작이었다. 사냥을 하는 기술이나 먹을 수 있는 풀과 열매를 구별하는 법, 재해나 맹수를 피하기 위한 수단을 부모로부터 익히는 것이 생존을 위한 정보의 전부였다. 미개하고 단순한 정보이긴 하지만 생태계의 측면에선 가장도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한 것들이었다.불과 오륙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에서는 가정에서 부모형제로부터 배우는 상식과 학교에서 친구들과 나누고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 말고는 별다른 정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자연에 대한 정보는 풍성했다.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 거의가 자연이었다. 거기에는 거짓이나 왜곡이나 과장이 없는 불변의 섭리가 있었다.정부에서는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법을 만든다고 한다. 범람하는 쓰레기 정보의 홍수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한다는 측면에서는 수긍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국가 권력의 개입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없지 않아서 언론이나 인권의 제한이나 탄압으로 비화 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 더 크다. 권력이 정보를 통제하겠다고 대놓고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을뿐더러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 일이다. 기왕의 법규에 따라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마다 적절하게 대응하는 편이 반감과 반발에 부딪치지 않는 일이다.다만 자라는 아이들이 무방비로 정보의 홍수에 노출되는 것에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자아와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폭력과 선정과 거짓과 왜곡으로 점철된 쓰레기 정보에 휩쓸린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차단하고 금지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가급적이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대안이고 교육이 될 것이다. 예체능 교육을 보다 활성화 하고 자연을 접할 기회를 최대한 늘리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아무튼 아이들이 정보의 홍수에 침몰하지 않을 건강한 정서와 분별력을 갖도록 각별한 경각심과 노력이 있어야겠다.

2018-10-26

물장사 하세요

▲ 김순희수필가동네 찻집에 갔다. 친구가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주말이라 부스스한 몰골로 멀리 나가기는 좀 그랬다. 걸어서 가도 되는 길 건너 다방이 떠올랐다. 그곳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지만 그 앞을 지나 다기만 했지 처음 가 보았다.친구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막 반가운 인사를 할 즈음 주인장 남자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달콤한 카푸치노 커피로 메뉴를 통일하자 주인장은 철학을 몇 년 공부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서비스로 사주를 봐준다고 내 생년월일까지 주문 받았다. 잠시 후 커피가 먼저 나왔다. 뜨거운 커피가 적당히 식을 때까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만나지 못한 시간들의 퍼즐을 맞추었다.그러는 사이 사주풀이를 끝냈다며 우리자리로 남자가 왔다. 나는 나무의 사주를 타고 태어났다고 했다. 결혼을 하면 아들을 둘 낳을 것이란 말에 그런 것도 나오느냐고 되묻자 아들들이 그냥 내버려두기만 해도 잘 자라 효도할 거란 말도 보탰다. 두 아들의 엄마인 나는 깜짝 놀라 결혼은 이미 했고 아이가 둘이라고 말해버렸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서 우리 집의 균형을 맞추어서 화목해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하나였으면 자주 다툼이 생기는 형국이란다. 올 한 해 외국으로 세 번의 여행을 한다고 했다. 이미 북해도와 다낭으로 여행을 다녀온 상태였고, 나머지 한 번도 계획에 있었다. 철학 공부를 하다가 용한 점쟁이가 된 것인가. 사소한 것까지 착착 들어맞는 것에 놀란 나는 어디 잘하나 보자하며 뒤로 물러나있던 몸을 세워 그 남자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남편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물었다. 곧 진급을 할 거라고 장담했다. 내가 가진 복으로 친정 부모가 살았는데 결혼하며 그 복을 남편이 받는다고 했다. 어머나, 내가 결혼한 다음해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 그 말이 맞는 듯도 했다. 큰아들의 미래도 궁금해서 어떤 공부를 시키면 좋겠냐 했더니 기자나 공무원이 좋다고 일러주었다. 둘째는 한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이나 재물복이 넘쳐서 큰 부자가 될 거라는 말로 내 기분을 한껏 띄웠다. 몇 십 년 뒤 아들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행복해 질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런 걸 물을지 이미 알았다는 듯 그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무의 사주이니 물장사를 하라고 했다. 물장사? 뜻밖의 대답에 뜨악해 하는 내 표정을 보고 찻집이나 술집을 하면 크게 돈을 번다고 덧붙였다. 기분이 나빴지만 장사에는 자신이 없다며 에둘러 말하자 그냥 얼굴마담으로 카운터에 앉아만 있어도 대박이 날 거란다.남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간 후에도 나는 영 언짢았다. 내 외모가 잘 노는 사람으로 보였나, 나도 모르는 내 몸 어디엔가 숨어있던 술장사의 끼가 튕겨져 나오기라도 했나? 기분이 나쁜 것을 본 친구는 주인장이 돌팔이 같다며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마음이 나아지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혼하면 아이 둘쯤 낳는다는 걸 때려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은 여행을 많이 하는 추세이니 세 번의 여행 또한 특별한 능력이 아니더라도 추리가 가능한 이야기였다. 용한 점쟁이 같던 그 남자가 내게 멋진 커리어우먼이 아닌 물장사 하란 말을 한 이후에는 파리만 날리는 자신의 찻집을 내게 넘기려는 사기꾼으로 보였다.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카운터의 그 남자에게 갔다. 커피값을 계산하면서도 나는 뚱한 얼굴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잔돈을 건네주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한마디를 더 던졌다.“술집이 싫으면 정수기 대리점이라도 하소. 거, 생수 배달도 물장사구만.”집에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물장사이야기만 쏙 빼고 오늘 귀인을 만났다고 떠벌리기 시작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18-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