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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꽃

배문경수필가딸이 엄마에게 손가락으로 글자를 만들어 보인다. 오른쪽 검지가 똑바로 서면 1이 되고, 두 개를 세우면 2가 된다. 바닥을 향해 총을 쏘듯이 엄지를 수평으로 하고 검지를 수직으로 하면 ‘ㄱ’이 되고 반대로 하면 ‘ㄴ’이 된다. 수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낯선 수신호(手信號)에 불과하다.어느 날, 두 여성이 경찰서로 당황해하며 달려 들어왔다. 손짓 발짓을 하는데 경찰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자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고 그는 내게 전했다. 경찰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쩌다 보니 그 해엔 농아와 관계된 사건, 사고로 경찰서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경찰인 그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했다.이후 수화를 배우기로 마음먹었고 실행에 옮겼다. 쉰을 넘긴 그가 젊은 사람들 틈에서 열심히 배운 수화로 이선희의 노래에 맞춘 동영상을 만들어 보냈다.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최고였고, 나또한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 후에도 동계 패럴림픽에 참석한 선수들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지면을 통해 보았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사람들은 생각을 입이란 기관을 통해 세상에 전한다. 하지만 새어 나오지 못하는 언어는 갈무리되지 않았고 농아는 숙명처럼 묵언의 세계 속에 산다. 어머니가 농아면 태어나는 자녀의 상당수가 그러했다. 아이를 안고 말로 교육할 수 없는 어미는 다시 자신과 닮은 자식으로 연결되는 질긴 끈을 만들어갔다. 다시 삶의 연결고리에서 좌절했을 여인들의 그림자가 길었다.그의 삶도 녹록치는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 때문에 스스로 대학을 포기하고 뱃일을 택했다. 어느 날, 잠결에 찾아든 고향 후배인 동료는 새벽일을 자신이 하겠다며 교대를 부탁했다. 잠시 후 선상에서 사고가 났다. 그물을 바다에 투척하는 시간에 그물을 묶어 둔 밧줄에 발이 걸린 동료는 바다로 던져진 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둠 속으로 달리던 배는 항로를 다시 돌려 그 자리에 갔지만 거친 파도가 배를 맞을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암전이 되었다.그 날, 어쩌면 그는 신(神)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삶을 포기한 듯이 살던 그보다 더 가난했던 후배는 바다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귀에는 목선(木船)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파도 소리에서 환청을 듣곤 했다.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육지에 발을 디딘 후 그는 다시는 배를 타지 않았다. 죽은 동료의 몫까지 살기 위해 평범한 삶을 내려놓았다. 덤으로의 삶을 타인을 위해 살겠노라 마음먹었다.그는 농아교회에서 봉사했다. 어느 날 운전자의 빈자리로 인해 운전대를 잡았다. 교회에 오기위해 차를 기다리는 교인 네다섯 명을 먼 거리에서 가까운 거리까지 태웠다. 그들과 함께 할 소통에 대한 고민도 했지만 *비수지 신호를 익히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서로 신뢰가 생겼다. 나도 함께 탑승한 차에서 그들의 삶을 잠시 보았다.성가대에 두 여성이 나와 수화로 찬송가를 했다. 화면에 나오는 노래에 맞춰 손과 표정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손짓에 따라 피어나는 꽃이 공중에 피었다가 지곤 했다. 꽃은 장미였다가 수선화였다가 벚꽃처럼 번져나가자 사람들의 표정이 환했다. 그들이 걸친 보라색 성가복이 흔들리며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옆 사람을 걱정하는 눈빛과 함께 하는 공간에 대한 즐거움이 묻어났다. 나날이 조바심으로 살아가는 나와는 다른 느긋함을 그와 농인에게서 느꼈다.그들은 지상에 발을 내리며 다시 손 꽃을 내게 내밀었다. 마지막 한 사람을 내려주며 그와 농인이 함께 다시 무형의 꽃을 피웠다. 수화(手話)는 그들을 통해 수화(手花)로 피어났다.그러고 보니 오늘이 지체장애인의 날이다. 나와 타인의 거리가 조금 좁혀지는 날이 되길 기대해 본다.*비수지신호: nonmanual signals, 표정과 몸짓

2020-11-11

매흙질

정미영수필가지난 주말, 고향집을 찾아갔다. 바람벽을 보니 마른 논바닥처럼 여기저기 갈라져 틈이 많았다. 고르지 못한 벽을 손으로 훑으며, 찬바람이 불기 전에 매흙질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매흙질은 벽이나 부뚜막, 안마당에 매흙을 바르는 일을 말한다. 산비탈에서 퍼온 백토를 커다란 대야에 담고 물을 부어 흙탕물을 만든다. 그 물을 다른 그릇에 담고 하루를 재우면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데, 마치 흐트러진 상념이 가슴 밑바닥에 침잠하듯이 내려앉는다.오늘은 매흙을 미리 만들어 놓았기에, 귀얄로 바르면 된다. 일을 하는 틈틈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다른 집에 비해 자주 매흙질을 했다. 매흙질을 거치고 나면 흙벽은 매끄러웠다. 시커멓게 그을음 묻은 부뚜막도 화장을 한 새색시처럼 새 단장을 했다.아버지는 내 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맥질하는 법을 배웠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뒤였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였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친구들에게 크든 작든 보증서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로 인해 몇 번의 경제적 손실을 겪었지만, 누군가 부탁을 하면 쉽게 거절을 못했다.어느 해 칠월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친구를 위해 또 보증을 섰다. 신발 가게를 몇 군데나 크게 하던 소꿉친구였지만, 그는 끝내 부도를 내고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옷에 소금꽃이 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였다.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생긴 속상함이 아버지를 병들게 했다. 가장의 책임감으로 참아오고 지탱했던 삶의 무게가 한순간 무너졌던 것이리라. 아버지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며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슬픔의 무게가 묵중할수록 하루하루가 고단했기에 몸이 견디지 못했다.한참을 앓고 난 그 해 가을,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시골집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는 명절을 앞두고 매흙질하는 법을 익혔다. 처음에는 귀얄을 잡은 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차츰 손에 익었다.매흙질은 아버지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이었다. 일에 집중하는 동안 상념을 잊었다고 했다. 시커먼 부뚜막이 마치 아버지의 상처 난 마음인 듯 여러 겹 두껍게 덮었다. 허물어진 벽이 마치 아버지의 어지러운 생활을 닮은 듯 거침없이 덧칠했다. 어쩌면 가족의 건강과 새로운 삶의 희망을 덧입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성싶다. 빛바래고 한 쪽 귀퉁이 떨어진 삶이라도 매흙질하듯 정성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매끄러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겠지. 예전에 아버지의 손길이 지나다녔던 자리를 더듬어 찾듯 찬찬히 맥질한다. 갈라진 틈을 메우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내 생활의 고단함을 꼼꼼히 부려놓는다. 직장일과 집안일, 어린 삼 남매 키우는 것이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여러 해 동안 몸과 마음이 시달린 연유로 내 마음 벽에는 끊임없이 거칠고 뾰족한 선들이 돋아났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자를 대고 줄을 그어 매끄러운 선을 만들어 놓아도 수시로 삐뚤어지고 굽었다.고향집 구석구석을 매흙질한다. 튀어나온 직선과 끊어진 사선 같은 내 마음을 달래고 보듬으니 축 처져 있던 어깨가 곧게 펴진다. 기진맥진한 내 생활의 흔적에도 그늘이 걷히고 햇살이 드리워지는 것 같아 귀얄 잡은 손놀림이 가볍다. 덧칠을 반복하는 동안, 앞으로 펼쳐질 내 삶도 단장한 바람벽처럼 모난 데 없기를 기원한다.매흙질한 집은 아버지에게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처소였으리라. 흙마당 귀퉁이 장독대에 어깨를 겯고 있는 옹기들이 늘어서 있고, 처마 끝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대글대글한 감을 꼬챙이에 꿰어 늘어뜨린 풍경이 있어 더욱 정겨운 곳이었을 것이다.바람이 불어온다. 매흙질한 자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려주겠지. 아버지가 매흙질을 마친 뒤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운 추억들이 고향집 언저리를 맴돌다가, 서서히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2020-11-04

핑크빛 주유권

강길수수필가여직원이 불렀다. 친구의 사무실 문을 나서는 참이다. 뒤돌아서니 명함크기만한 봉투를 내밀었다. 뭐냐고 묻자, 사장님이 드리라고 한다는 말만 남기고 여직원은 총총 안으로 가버렸다. 조금 의아한 기분으로 봉투를 주머니에 넣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벌써 때 이른 가을 저녁노을이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차에 돌아와 봉투를 열었다. 핑크색 주유권 한 장이 들어있다. 보너스 카드 포인트로 주유권을 받은 적은 있지만, 손으로 내용을 적은 주유권을 받기는 처음이다. 사무실에서 직접 주면, 내가 곤란해 할까 봐 배려하는 친구의 마음이 느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편치만은 않았다. 만나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동정(同情)이라도 바라는 태도를 그에게 보이지는 않았나 하는 염려 때문이다.친구 사무실에서의 상황을 되돌아본다. 내 차림이 종전과 다른 것은 없다. 방문목적도 내가 활동하고 있는 문학단체의 동인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대화도 내 문학 활동에 관한 이야기와 친구의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 나누었을 뿐이다. 오가는 말 중에 경제적 어려움을 말하거나,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러니 친구는 내 태도를 보고 주유권을 선물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는 호의를 베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정리되니 고맙고 즐겁다.친구의 사무실엔 이런저런 일로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들르게 되었다. 갈 때마다 그는 비서를 시켜 주유권을 선물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교차하기도 했다. 그러나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마음이 두 갈래로 갈리는 현상을 자각해 갔다. 한마음은 ‘그래. 전에 내가 친구 회사와 거래할 때, 주유권에 비교되지 않을 이익을 안겨주었는데 뭐 대수이랴’하는 마음이다. 다른 마음은 ‘아니야. 그건 정당한 거래였으니, 주유권과는 무관한 거야. 그러니 주유권에 담은 친구의 따사한 마음은 참 고마운 일이지.’하는 마음이다.지난봄 코로나19 사태로, 소위 재난지원금이란 공짜 돈을 정부로부터 덥석 받았다. 우리 부부 두 사람 몫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나랏빚을 늘려서 국민에게 지급한 것 같다. 우리 집의 경우, 늦은 나이에도 일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빠듯하게 살아도 그 돈이 가계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았다. 공짜라 꼭 필요치도 않은 것 몇 가지 사니 금방 다 없어졌다. 그 때문에 우리 집은 공짜심리로 과소비가 되었지 싶다. 어쩌면 정부의 숨은 의도도, 돈을 돌리기 위한 과소비 조장이 아니었을까.주유권 선물을 받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시나브로 생각도 않던 바람(望)이 마음에 자리 잡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친구 사무실에 가려고 마음먹으면, ‘오늘도 주유권을 주려나’라고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는 자신을 만나곤 했다. 기실 그 무렵은, 조기퇴직 후 시작했던 1인 사업이 신통치 않아 휴업 상태였다. 자연히 차를 쓸 일도 줄어, 친구가 준 주유권이 거의 수요를 맞추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가계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친구에게 주유권을 받을 때마다, 고마우면서도 찝찝한 무언가가 마음 바닥에 하나씩 가라앉는 것 같은 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짐이 아닌데도, 짐같이 느껴지는 아이러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란 속담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짙어갔다.신통치 않던 사업수익마저 끊어졌다. 그때 기술 자격으로 취업하라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취업사이트에 한동안 부지런히 이력서를 냈다. 제법 시일이 흐른 후 다행히 취업하였다.친구 사무실에 갈 일이 생기자, 우선 생각나는 것이 핑크색 주유권이었다. 재취업하였으니 고마운 주유권은 그만 받겠다고 정중히 사양하여, 마음의 짐을 덜었다. 핑크색 주유권이 핑크빛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정부의 공짜 돈은, 국민의 세금으로 의타심도 얹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의 주유권은 자기 것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핑크빛 징표로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다.오늘 저녁에도 핑크빛 하늘이 열리겠지.

2020-10-28

와인 한잔 어때요?

배문경수필가칠레산 까시에로 리저브 쉬라를 샀다. 병뚜껑과 상표가 금색이라 눈에 띄었다. 이 와인의 후기를 보니 무게감이 있어 괜찮다는 평이다.간혹 와인의 향기와 빛깔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 딸아이를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자 바로 떠올랐다. 와인 한 잔 기울일 생각에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때론 화이트와인을 마시기도 하지만 오늘은 스테이크를 만들 요량으로 레드와인을 잡았다. 레드와인은 적포도의 껍질과 알맹이, 씨를 모두 으깬 후에 발효시킨 것이다. 내가 산 것은 2017년 생산된 것으로 알코올은 13.5%다.딸아이와 나는 와인의 유래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포도주의 기원은 그리스다. 포도주 원액을 손잡이가 두 개인 항아리 암포라에 담아 운반했다. 그리고 크라테르에 부어 물과 와인을 섞었다. 크라테르는 대형항아리로 주로 연회가 열릴 때 테이블에 올렸다. 암포라와 크라테르는 훌륭한 예술품으로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우리 집에는 와인셀러가 없어서 와인을 잠시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목살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도 접시에 담았다. 토마토가 반달이 되어 서로 겹치며 원을 만드니 보기에도 좋다. 레이스가 달린 테이블보를 깔고 식탁 중앙에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핑크빛 리시안셔스를 한 아름 사서 꽂았다. 겹겹이 하늘하늘한 꽃잎이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과 더불어 파티에 어울리는 장식이다. 레드와인에는 보르도 글라스를 준비했다. 튤립 모양의 잔은 타닌의 텁텁함을 줄이는 경사가 완만한 모양이 특징인 잔이다. 음식을 테이블에 올리자 고급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다.가족들이 함께 앉아 잔에 3부 정도 따르고 스템을 잡고 건배했다. 나는 그냥 삼키지 말고 색을 보고, 스월링(Swirling)하며 향을 느껴보라고 했다. 잔을 돌리면 와인의 맛이 깊어진다. 와인 속에 잠자고 있던 여러 성분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와인의 부케와 아로마가 발산되기 때문이다. 한 입 머금은 딸의 볼이 상기되면서 꽃보다 더 고와진다. 나도 덩달아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분위기를 돋우려고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리본이 달린 빨간 지갑이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대충 먹고 흩어지기 바쁜 식사시간이 오늘만큼은 안정적이다. 모두 오늘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비워두고 전체를 위해 배려했다. 식구들은 자신이 그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수다스럽다. 딸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서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다. 딸뿐만 아니라 부모로서 느끼는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주위의 축하 세례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짓고 어깨를 으쓱한다.이런 와인에는 음악이 필요하다며 유튜브를 켠 딸은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을 들려준다.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영화 ‘라비앙 로즈’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동기 셋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같이 기립박수를 보냈었다. 샹송과 와인이 이렇게 어울린다는 것이 놀랍다. 덕분에 와인의 맛은 무겁고 텁텁했지만 블랙체리의 과일 향을 그윽하게 느낀다.노래에 취해 있을 때, 10월 14일인 일주일 전이 와인데이였다고 딸이 말한다. 연인과 와인을 마시며 속삭이는 날이었다. 1월 14일은 다이어리데이, 2월은 발렌타인데이, 3월은 남자가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화이트데이다. 12월은 허그데이로 일 년 내내 이벤트다.와인데이는 그리스신화가 기원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신의 제례를 지냈던 날이다. 주류회사의 상술이긴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으로 볼 수 있고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다. 더러 와인 잔에 맥주나 막걸리를 부어 마시면 낯선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레드와인이나 화이트와인, 로제와인을 한잔하면 어떨까. 단풍든 가을, 마음은 온통 와인빛으로 찰랑거릴지도 모른다.

2020-10-21

한글, 문자향에 물들다

정미영수필가내 안의 수많은 느낌표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소멸해 버린다. 꽃잎이 떨어져 날리면 어느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런 연유로 촉촉한 안개 속살 더듬거리듯 마음에 고인 언어들을 가끔 탐닉하기도 한다.며칠 전, 여든아홉에 돌아가신 할머니 기일에 참석했다. 할머니께 전하고 싶은 가슴 속 활자들의 여리고 긴 여음을 쫓아가다 보면, 어떤 때는 꽃봉오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있던 낱말들이 내 손길을 느끼자마자 흐드러지게 문자꽃을 피운다.편지지에 문자향을 가득 담아 제사상에 올려놓았다. 할머니가 살아생전 애지중지했던 낱말인 큰아버지 이름과 할머니 이름을 넣어 편지를 썼으니, 아마도 제사상에 오른 음식을 맛보기 전에 먼저 읽으셨으리라. 등을 구부리고 절을 하고 있으면 이따금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할머니 영혼의 자상한 손길을 내 몸이 떠올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할머니는 예순의 나이를 넘기면서 한글을 배우셨다. 그 해, 국군의 날이 되기 몇 달 전이었다.“이제껏 청맹과니처럼 답답하게 글씨도 모르고 한 평생 살았다 아이가.”더 늦기 전에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 군대에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던 큰아버지의 이름 석 자가 적힌 종이를 들고 충혼탑에 참배 갈 때 가져가고 싶다고 하셨다. 가끔 아들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보면 멀리 달아날까봐 애가 탄다고 하셨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아들을 의지하며 살아오셨던 할머니는 평소에 자식을 앞세웠다고 말하시며 자책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할머니가 현충일과 국군의 날이 되면 나를 데리고 찾아간 곳이 앞산 충혼탑이었다.자식 이름이 적힌 종이를 충혼탑 앞에 놓고 싶다는, 할머니가 유언처럼 내뱉은 말씀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한 평생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열심히 사셨던 할머니가 아니던가. 글자를 모르는 것에 잔뜩 주눅이 든 할머니가 문득 안타까웠다. 나는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렸다.나는 할머니의 이름과 큰아버지의 이름을 도화지에 커다랗게 적고는 냉장고 앞에 붙였다. 글자를 그림처럼 눈에 익히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런 다음 기역, 니은, 디귿, 아주 기초적인 글자부터 가르쳐 드렸다. 내 나름대로 손 카드도 만들어서 자주 보여드렸다.드디어 국군의 날 아침이 찾아왔다. 모시적삼을 곱게 차려 입으신 할머니가 편지지에 삐뚤지만 큰아버지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나에게 종이를 내밀며 틀린 글씨가 있는지, 한 번 봐달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손끝이 가볍게 떨려왔다. 나 또한 종이를 받아든 손이 떨리면서 폐부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와, 울 할매 대단하데이.”내 입만 쳐다보고 계시던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셨다. 할머니는 충혼탑에 도착할 때까지 본인이 쓴 글자를 자꾸만 쓰다듬으셨다.쪽빛 닮은 시월 햇살이 앞산 충혼탑 아래에 충만하게 쏟아졌다. 바람결에 실려 다니던 국가 유공자와 유족들의 일만 마디 말들이 소나무 우듬지 위에 빼곡하게 걸려 있는 듯해, 행간을 놓칠세라 열심히 읽었다. 할머니와 나는 묵념을 끝내고 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는 큰아버지의 내력을 나에게 담담히 들려주시며, 마련해 간 과일과 편지를 꺼내 놓으셨다. 그러고는 큰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셨다. 버석 마른 피부 밑에 눈물이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눈물은 소맷자락을 적셨다.생각은 말로 내뱉는 순간 허공으로 흩어진다. 손으로 부여잡고 싶어도 이미 날아가 버린 문장들은 아스라이 사라지기 일쑤다. 할머니도 살면서 체득하셨나 보다. 자식에게 보고 싶다, 그립다, 라는 말을 소리 내어 들려주는 것도 좋지만, 문자로 남겨야 울림이 더 오래 간다는 것을. 할머니 기일 때 썼던 편지를 꺼내 문자향을 흠씬 들어 마신다. 할머니에 대한 먹먹한 기억과 다정한 추억 인자들이 내포되어 있다가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문자향은 쉼 없는 그리움으로 변주되어 잔잔한 포말을 일렁인다.

2020-10-14

조혼 페스티벌

강길수수필가이곳저곳에서 결혼식 팡파르가 울린다. 노란 예복을 차려입은 민들레 아가씨들의 결혼식이다. 새로 태어난 지 한 달 남짓한데 벌써 결혼을 한다. 조혼(早婚)이라도 너무 이른 혼인이다.어디 그뿐이랴. 민들레 아가씨들에 뒤질세라 벌써 돌잔치를 푸짐하게 벌이는 강아지풀들이 도처에서 싱글벙글한다. 함께 어우렁더우렁 사는 풀들의 축복을 받으며 풋열매를 단 강아지풀 꼬리들이 바람에 살랑댄다. 한족에서는 참새 떼가 작은 바랭이 열매로 아침밥을 먹는다. 가까이 다가가자 우르르 밥상을 물리고 날아오른다. 참새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바랭이들에게는 내가 고마운 과객이 아닐까.다른 곳은 외래종으로 보이는 풀들도 꽃을 피우고 있다. 한여름 천지개벽보다 더할, 몸이 댕강 잘려 나가는 고통을 당했던 풀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새봄의 작고 여린 자태를 여지없이 드러낸 풀들이다. 어떻게 저 어린 풀들이 그새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라면 아동기이지 않은가. 아동이 형편상 가장을 떠맡는 경우는 있어도 아동끼리 혼인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구월 중순. 아침저녁 지나다니는 한 학교의 녹지 이야기다. 가을 초입인데 녹지의 풀들은 봄날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팔월 초, 뜨거운 날씨 아래 녹지의 풀들은 벌초를 당했었다. 풀들은 그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한 달여 만에 연록 초지를 만들어 냈다. 귀뚜라미 소리 청아해지자 녹지는 느닷없이 조혼의 열기로 가득 찼다. 조혼 페스티벌이 벌어진 것이다. 가을이 가면 세상에 태어난 본분(本分)을 다할 수 없기에 절박한 것인가. 어린 나이에도 풀들은 시시각각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열흘 전쯤인가. 간밤에 비가 내린 아침 출근길이었다. 여린 풀잎들은 손에 손마다 빗물 이슬 머금고 오가는 이들에게 연록 생명의 빛을 선물하였다. 초가을에 초봄의 정서를 만끽하는 기쁨을 맛보고, 체험하는 귀한 복도 누렸다. 몸이 동강 난 끔찍한 상황에서도 매 순간 억척스레 살아내는 당찬 모습이, 내 기대를 채워주고도 남았다. 고통과 희생 뒤에 따라오는 삶이, 값지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또다시 일깨워주는 아침이기도 했다.생각해보면 나와 너, 지구촌 사람들이 이 녹지의 풀보다 더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심각한 기후변화 하나만 보더라도 많은 이들이 피부로 느끼듯 지구촌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각국 정부와 국민들은 당장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생존 문제 앞에 정치와 권력은 무엇이며, 국제 이해관계와 패권이 다 뭐란 말인가. 풀은 뿌리라도 있어 다시 살아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풀들은 씨앗을 만방에 퍼뜨려 기후변화에 대응한다. 본래 생명에게 주어진 본분이 삶의 최우선이며 결국 그 전부가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는가. 알면서도 외면하는가.여러 문화권에서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 위신, 체통, 권위, 권력 등을 얻기 위해 조혼을 해왔단다. 우리의 경우도 과거 ‘민며느리’나 ‘데릴사위’가 성행했었다. 자연히 조혼으로 인한 어린이들의 인권이 유린되거나 침해되고, 여러 비극도 불러왔었다. 반면, 풀들은 환경이나 상황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살아내고 있다. 벌초 당해 새로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시간 만에 혼인 하고, 열매를 맺으며, 조혼페스티벌을 벌이고 있는 이 녹지가 그 증거다.푸른 행성 지구촌에 생명은 왜 태어난 걸까. 자연은 예외 없는 인과법칙 안에 존재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어떤 과학자가 주장하듯, 생명이 바다에서 우연히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을 설계하여 만들고, 관리하는 지성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가 창조주든, 신(神)이든 생명에게 주는 본분이 있으리라. 본능을 뛰어넘는, 생명이 마땅히 해야 할 바 같은 것 말이다. 내 눈에는 이 녹지의 여린 풀들이 생명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만일 우리 인간이 저 풀들처럼 살아왔다면 오늘날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의 소용돌이는 생기지 않았으리라.풀들의 조혼 페스티벌이 성스럽다.

2020-10-07

오리 날다

배문경수필가보문호수는 윤슬로 춤춘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바람이 분다. 멀리 떠가는 오리 배, 수면 아스라이 앉은 오리와 뭇 새들이 풍경을 이룬다. 乙자 모양의 오리가 수면을 치며 날아오를 때, 순간 담담하던 풍경이 소스라치듯 놀란다.새들의 군무를 보았던 일이 떠오른다. 일몰 직후 노을 진 하늘 위로 떼 지어 날아오르던 새들은 가창오리였다. 그들의 비상과 선회는 한 폭의 점묘화를 이루며 나의 시선을 압도했다. 그 광경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단지 생존으로 다급한 힘겨운 몸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은 두 날개가 추위와 굶주림을 넘어서 함께 어울려 펼쳐 놓은 것이었기에 더욱 숨 막힐 듯 아름답게 느껴졌다.하늘 한 쪽에 펼쳐진 거대한 그림을 보며 어느 순간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올라 자신을 드러낼 구도자의 춤을 떠올렸다.아버지는 집에서 오리를 키웠다. 친정집 뒤에는 큰 도랑이 있어 오리를 키우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오리솟대가 있었는데 새들이 날아갈 때는 솟대의 오리도 날개 짓하는 것 같았다.오리들은 흰 깃털이 때가 묻어 늘 거무죽죽했다. 그 오리들 사이에 색깔부터 다른 청둥오리 몇 마리가 끼여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선가 청둥오리 알을 가져와 서너 개를 부화시켰다고 했다.어느 날, 약으로 쓴다며 오리를 사러온 사람에게 아버지는 두 날개를 끈으로 묶어 청둥오리를 넘겼다. 내 눈처럼 오리는 젖은 눈으로 퍼덕였다.청둥오리들은 가끔씩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기도 했지만 야생으로 영 날아가 버릴 생각은 애초에 없는 것 같았다. 가끔 비탈진 언덕을 오르거나 뒤뚱대며 내려올 뿐이었다. 이미 퇴화된 날개는 어깨의 일부처럼 붙어있었다.어느 날, 아버지는 높은 장대를 설치해서 그물을 치기 시작했다. 날개에 힘이 오른 청둥오리들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을까. 하지만 그 여름 태풍이 한번 휘몰아치자 냇가에 세워둔 아버지의 그물막도 장대가 넘어지면서 한쪽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그물막을 수리하는 동안 초막에 갇혀 지내던 오리들이 다시 냇가로 나왔다. 지저분한 날개를 씻어 깨끗해졌을 때, 아버지와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그 아주 짧은 순간, 내 기억은 눈부신 빛 속으로 흩어졌다. 청둥오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몸을 위로 띄웠다. 그리고는 머리와 몸채가 평형이 되게 하고는 날개를 쭉 펼치자 앞으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신호를 서로 보내고 있었을까. 한 무리의 오리들이 하늘에 낫 모양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청둥오리는 솟대를 지나 그 무리를 향해 더 높이 날았다. 지상에 있던 흰 오리들이 꿱꿱하며 날개를 퍼덕였다. 청둥오리는 날아오르다 잠시 공중에 멈춰 인사라도 하듯 고개를 젖혔으나 위로만 날아올라 무리들에 섞여버렸다.낮잠은 달았고 오리들은 자맥질 중이었다. 나는 청둥오리들이 푸른 하늘을 날아올라 자유롭기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오랫동안 나는 반복된 일상에 젖어있었다. 나 자신의 꿈은 내려놓은 채 가정에 모든 것을 붓는다고 자위했다.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러 나의 꿈을 돌이켜 본다. 한 때 영화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외국에서 영화감독이 되어 돌아오는 나를 그려보았다. 밥벌이가 중요하다고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나는 꿈을 접어 넣는 습관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러다 늙어죽는 것은 아닐까. 의문기호가 많아질 때, 나는 집에서 키웠던 청둥오리를 떠올린다. 그 많던 오리 중에 유일하게 울타리를 박차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던, 무리와 하나가 되어 훨훨 날아가던 오리.다시 보문호수에 바람이 불자 물결은 찰랑거린다. 언제 보아도 물 위의 오리는 수면 아래 물갈퀴 발을 열심히 움직인다. 오리 배는 여전히 묶여 있고, 에메랄드빛 하늘로 새들은 드높이 날아간다.

2020-09-23

품앗이

정미영수필가논두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고 푸르다. 새떼들이 구름 사이로 미끌어지듯 날아가고, 건너편 대숲은 바람 따라 초록 물결을 일으킨다. 논 가장자리에는 백로가 부리에 미꾸라지를 문 채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농촌이 빚어내는 정겨운 풍경을 정독하며 리듬감 있게 걷는 내 마음이 흐뭇하게 젖어든다.큰형님이 조카 결혼식을 앞두고 기별을 했다. 잔칫집에 미리 와서 음식 장만을 돕고, 하룻밤 자며 동서지간에 정도 나누자고 했다. 흔쾌히 가겠다고 했지만, 뒤돌아서니 걱정이 되었다. 동작이 굼뜨고 일머리를 모르는 내가 큰일 치르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되면 어쩌나 신경이 쓰였다.명절 때 큰집에 가면 차례 상에 음식 가짓수가 많다. 내가 시집와서 처음 추석을 맞이했을 때 제수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차례 지내고 동네 분들과 경로당에서 음식을 나눠먹는 인심이 온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결혼식을 앞두고 다양한 음식을 장만하리라.햇살이 투명하게 일렁이는 고샅에 들어선다. 고양이가 사뿐 걸음으로 걸어 다니고 닭이 홰치는 소리도 들린다. 담장마다 능소화가 웃음 짓고 호박이 줄기에 의지해 졸고 있다. 여유로운 정경이다.그런데 큰집 가까이 다가가니 마음이 바빠진다. 고소한 냄새가 내 얼굴에 훅 끼쳐든 까닭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왔건만, 혼자서 음식 만들기를 시작하셨는가 싶어 조바심이 인다. 안마당에 들어서니 몇몇 아주머니가 전을 부친다.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그 곳에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한쪽에서는 나물을 다듬고 다른 쪽에서는 생선을 손질한다. 그들 사이에서 형님을 찾아 인사드린다.“동서야,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데이.”형님 친구 분들이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음식 만들기를 시작했단다. 내 집에서부터 음식 장만할 걱정을 잔뜩 이고 왔는데, 살며시 웃음이 난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으로 비켜나 심부름거리를 찾았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 몫의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형님네 마을에서는 품앗이가 남아 있어 보기 좋다.시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주택이나 길이 여기저기 헐리고 새로 고쳐졌다. 젊은이들 또한 학교나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등속이 늘었다. 농사나 관혼상제에서도 노동을 노동으로 갚는 대신 돈을 지불하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이 마을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스스럼없이 품앗이를 한다. 서로 형님 동생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와준다.누구네 집에 경조사가 있거나 환자가 생기면 이웃사촌들이 더 잘 알아서 챙긴다. 옛정을 그대로 체득할 수 있는 품앗이 전통이 명맥을 이어가니 반갑다.한 편으로는 부럽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웃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 서로 소원하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 왕래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공지사항은 관리실에서 방송을 하거나, 게시판에 붙여놓는다. 이런 연유로 사람살이의 살가운 정을 품앗이에서 느낄 수 있어 고맙다.편의와 실리를 쫓아가는 세상이다. 나에게 손해가 되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이익이 되면 두 발자국 앞서려는 경향이 늘었다. 그러나 품앗이는 동네 대소사를 제 일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익을 바라거나 욕심을 부리면 불협화음만 이어질 뿐이다. 자칫 생산성은 줄어들고 이웃 간에 믿음마저 깨질 수 있는 것이 공동체에서 마음 맞추는 일이다. 오늘 형님네서 음식 준비에 손을 보탠 분들도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배추전이나 부추전을 서너 장씩 챙겨가는 것이 전부다.어우렁더우렁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들의 땀 흘린 얼굴이 힘들기는 해도 편안해 보인다. 도린곁에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웃과 어깨를 겯고 곰살궂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것도 삶의 재미이리라. 정신적으로 충만해 보이는 품앗이꾼들 앞에서 내 가슴이 푸근해진다. 마음에 환한 등불 하나 내걸린다.

2020-09-16

디어 위너

강길수수필가영문 이메일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나는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 정말 행운의 소식이면 좋겠다.이메일은 영문 ‘디어 위너(Dear Winner)’로 시작되었다. ‘친애하는 당첨자’라니, 우선 기분이 좋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내용을 대충 살폈다. 내 이메일 주소가, 올해 자사의 이 메일 프로모션에 당첨되어 축하한단다. 당첨금이 원화로 환산하니 무려 150억 원이나 되었다. 일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체 내용을 빨리 알기 위해, 인터넷의 영문번역기에서 전문을 우리말로 바꿔보았다. 따로 추첨에 참여하거나, 티켓을 끊을 필요는 없단다. 단지 이름, 주소, 나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만 답신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기분이 이상해졌다. 번역문을 읽으며 ‘스팸’, ‘피싱’ 같은 단어들이 함께 떠올라서다. 스팸문자, 스팸메일, 보이스피싱 등 사기(詐欺)나 범죄에 이용되는 통신수단에 당했다는 보도나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 우리 집도 보이스피싱을 몇 차례 겪은 적도 있다. 그러니 은연중에 스팸이나 피싱에 대한 대응력이 생겼으리라.스팸메일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이면 좋겠다는 바람(望)도 마음 한구석에서 명지바람으로 일었다. 달콤한 유혹이다. 이율배반이다. 햄릿 증후군이기도 하겠다. 머리로는 아닌 줄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끌리는 심리상태를 또 경험한다.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 조화롭다면, 스팸메일이란 판단이 들었을 때 지웠어야 했다. 내 속물근성이 이 이메일 앞에서 또 이빨을 드러내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속 갈등을 한다.“그래, 다른 이들도 같은 사례가 있나 찾아보자!”내부 갈등의 타협안이 제시되면서, 내 손가락은 저절로 웹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작년에도, 올해도 똑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는 사람의 글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작년 것은 금액이 올해보다 적었지만, 올해 것은 금액도 같았다. 전자는 상담을 받는 것이고, 후자는 어떤 카페에 올린 글이다. 후자의 경우, 끝에 독자들과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결국 답신 메일을 보내고 말았다는 게시자의 고백도 있었다.쓴웃음이 났다. 이성과 감성이 이런 상황에서도 싸운다.“이봐! 스팸메일이 맞잖아? 괜히 헛꿈을 꾸었어. 시간도 버리고….”“잠시 행복했잖아? 그러면 된 거지. 뭘 그리 따지고, 불평하는 거야?”처음 복권을 사던 날이 떠올랐다. 주택복권이다. 아마도 70년대 중반쯤이었을 거다. 확실한 날짜를 알려고 일기장을 한참 뒤졌으나, 못 찾았다. 아마 회식을 마치고, 얼큰한 기분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으리라. 회식 중 동료들과 복권에 대해 갑론을박하다가 ‘복권은 바로 행운 부르기’란 말에 이끌려, 난생처음 100원짜리 주택복권 두 장을 손에 쥔 날이다. 술기운에, ‘이 복권으로 내 집을 살 것이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발길을 뗐었다. 조금 걷다가 어느 순간, ‘나도 그만 사행성 탁류에 휩쓸리고 말았구나!’ 하고 깨달으며, 하룻저녁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기억이다. ‘근면, 자조, 협동’의 역동적 사회 구조 안에서, 그 시절 내 눈엔 복권은 사행성의 징표일 뿐이었다.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젠 복권을 사행성 징표나, 노름같이 보는 시각은 사라졌다. 어떤 지인은 투자라며, 봉급을 타면 내 기준엔 제법 많은 일정 금액의 복권을 샀다. 문제는 ‘디어 위너’처럼 공적 복권을 사칭한 스팸메일 등, 사기를 치기 위한 정보가 횡행한다는 사실이다. 4차 산업 시대니, 5지(G)시대니 하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회의 정보기술 환경에 따라가기도 힘든 현대인들이다. 그들이 스팸이나 피싱 같은 사기에 시달리는 상황에 놓인 것은 대체 무얼 말해주는 걸까.“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란 말이 있다. 인간과 생명은 아니, 만물은 이 말처럼 살고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우주 안 모든 존재의 존립 양상이 어찌 보면, ‘죽기를 각오하고, 모든 힘을 다하여 살고 또,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을 다잡아야, ‘친애하는 당첨자’처럼 달콤한 사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진정한 ‘디어 위너’만 있는 세상이 그립다.

2020-09-09

낭만에 대하여

배문경 수필가가을은 축제가 많은 계절이다. 축제기간 동안 경주는 능위에 늙은 느티나무가 멋진 봉황대에서 여러 행사가 있다. 금요일 저녁마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가수들을 초청해 콘서트를 연다.이번 초대 가수는 최백호다. 그가 온다는 광고는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달력에 큼직하게 표시하고 함께 갈 동생과 약속도 해두었다. 기다리는 며칠 동안 여고생이라도 된 듯 설렘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나를 누가 보았다면 발이 10센티는 붕 떠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리라.당일, 봉황대로 향하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갑작스런 비에 놀란 사람들이 제법 긴 줄을 서서 편의점에서 나처럼 우의를 샀다. 이런 큰 공연을 앞두고 비라니, 그만 힘이 쏙 빠졌다.도착했을 무렵 사람들이 천막 안과 빗속에서 우의를 입은 채 기다렸다. 멋진 공연을 기대해서인지 비를 핑계 삼아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가 나타날 무대를 응시했다. 무대에는 연주자들이 악기를 조율하고 개그맨이 싱겁게 시간을 메우느라 너스레를 떨었다.초록의 능, 비로 짙어진 봉황대에 조명이 들어왔다. 순간 환상이 펼쳐졌다. 굽은 나무와 어우러진 왕릉을 배경으로 나타난 반백의 사내, 그는 오랫동안 보아온 지인처럼 자연스런 모습으로 등장했다. 박수와 함성이 쏟아지고, 가을비도 쏟아지고, 이전의 음악에서보다 더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가 관객들의 머리 위로 축복같이 쏟아졌다.얼굴에 내리는 것이 빗물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깊은 노래의 울림을 통해 빚어진 눈물은 무수한 감정들의 찌꺼기들을 녹아내리게 했다. 날마다 차곡차곡 쌓여 무게를 가늠할 수 없던 스트레스와 인연이 만든 희로애락이 더 짙은 애수를 자아냈다. 이후 점점 가벼워지며 콧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뜨거운 빗물이 흘러내렸으니 노래의 힘은 대단했다. 삶의 부스러기들이 한꺼번에 잘게 부서져 공중분해 되는 느낌이었다.그는 트로트가 대세였던 시절에 포크 록발라드로 인기를 끌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발표하며 우리에게 다가왔고, ‘영일만 친구’로 가수상을 받았다. 싱어송라이터가 드물던 시절에 독특한 창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노래를 읊조렸다. 라디오 DJ로도 활동범위를 넓힌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시대를 넘어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다.그는 정규교육에서 썩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 잘한 친구들은 지금 퇴직해서 놀고 있다며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초로의 사내. 스스로 노래 속에서 새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워지는 그를 보았다. 무대가 끝나갈 즈음, 빗물이 그의 눈에도 흘러 들어간 모양이다. 그가 천막의 기둥에 슬쩍 기대서서 간주곡 사이사이에 먼 곳을 바라보았다. 우리 모두가 외로운 것처럼 그도 비 오는 날, 그림자조차 없이 하나로 서있었다.청바지가 아직도 잘 어울리는 일흔의 그가 아흔에도 노래를 부르겠단다. 박수가 쏟아졌다. 가수에 대한 응원이자 나의 내일에 대한 응원이다. 내 나이가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낭만적이다. 마지막 곡은 역시 ‘낭만에 대하여’였다. 그의 노래 위로 꽃가루가 흩뿌려졌다. 도라지 위스키의 알싸한 향기가 우리 주위를 감쌌다.낭만, 그것은 영화이거나 음악이거나 답답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줄 그 어떤 것이다. 다양한 악기가 내는 미묘한 울림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달콤함, 이 모든 것이 낭만이었다. 나이만큼 어쩌면 우린 잃어버린 과거, 잊혀 진 과거의 추억, 인생이 뭔지 알 나이가 된 사람들의 낭만이었다.오늘 낭만에 대한 그의 노래를 들었다. 짧은 단상과 그의 팔짱을 끼고 옆자리에서 한 컷 찍는 영광도 얻었다. 무르익은 가을밤의 축제에 감사했다. 궂은 비 내리던 날,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느껴보는 낭만이다.

2020-09-02

아버지가 낚은 사랑

정미영수필가이른 새벽, 흥해 용연지에 도착했다. 새벽바람의 기척으로 해가 물속에 풀어지자, 졸고 있던 물고기들이 햇귀와 타전을 시작했다. 물빛 그리움 하나 가슴에 구겨 넣고 찾아왔더니, 내 마음에 곰비임비 막혀 있던 응어리들이 무게를 덜어냈다.수풀 사이에서 한 아저씨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속을 응시한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어 조심스레 가까이 가보았다. 그물망에 작은 물고기 서너 마리가 파닥거렸다. 은빛 물고기를 바라보는데 문득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검게 탄 얼굴로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붕어를 낚던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 오롯이 겹쳐졌다.어느 해 여름, 어머니가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어린 남매를 건사하고 병수발은 물론 집안일까지 모두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즈음 아버지의 낚시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를 따라 간간히 절에 다녔던 아버지는 이전까지 낚시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술한 어머니에게 참붕어가 약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는 곧장 가느다란 낚싯대를 빌려왔다.나는 펄떡이는 노르스름한 붕어를 아버지가 직접 낚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버지가 달랑 낚싯대 하나만 챙겨들고 집을 나서는 날이었다. 나도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다. 위험해서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의 손을 얼른 잡았다.낚시터에 다다랐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두세 번 지나자 제법 넓은 저수지가 나타났다. 저수지는 한가로웠다. 산그늘에 물빛이 더욱 짙어 보이는 곳이 있었고, 햇살이 비쳐 물비늘이 반짝이는 곳도 있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 몇 장이 물살에 일렁거렸다.아버지는 나에게 낚시를 할 때는 조용히 있어야 된다고 했다. 하지만 신신당부의 말도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왜 떠들면 안 되느냐고, 물 위에 떠다니는 저 새 이름은 무엇이냐고…. 묻다가 지치면 동요를 불렀다.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노래는 끝없이 이어졌다. 알고 있는 노래를 다 부르고, 다른 노래가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불렀다.그때쯤이면 저수지는 다시 고요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날따라 아버지와 나뿐이었다. 나는 소금쟁이가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이따금 나에게 미소만 지어 보일 뿐 묵묵히 찌를 바라보며 낚시질만 했다.한참 지났다. 아버지는 작은 물고기는 물에 도로 놓아주고, 손바닥 크기의 붕어들만 집에 가져왔다. 붕어를 손질해서 찜통에 넣고 푹 고았다. 가스 불 옆에서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행여 넘칠세라 정성을 다했다. 비린내가 나면 어머니가 먹지 못할까 봐 참기름을 듬뿍 넣고 들깨가루도 넣었다.“참붕어 국물은 약이라고 하더라. 식기 전에 후딱 마셔라.”“부처님을 믿는데….”“내가 붕어 잡기 전에 부처님께 약속했다. 당신 약으로만 쓴다고.”핼쑥한 얼굴의 어머니는 뜨거운 국물을 쉬엄쉬엄 마셨다. 아버지의 낚시질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집안에는 붕어 고는 진한 냄새가 배다시피 했다. 그 덕분인지 어머니는 차츰 건강을 회복하였다.저 낚시꾼도 예전의 아버지처럼 누군가를 위해 고기를 잡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재미 삼아 낚시질을 하는가. 가까운 나무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간 저수지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그 때 아버지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흘러가는 구름에 근심을 실어 보내고, 불어오는 바람에 고단함을 딸려 보냈을까? 나는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며 아버지와 나만의 또 다른 추억 조각들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퇴적된 기억들이 한순간 튀어 올라 수평선 밖 허공을 맴돌았다. 순간 내 가슴 가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고였다.용연지의 바람이 내 마음을 눈치 챈 듯 잔잔하게 윤슬을 일으키며 흘렀다.

2020-08-26

살아내기

강길수수필가얼마나 아팠을까. 나 같으면 까무러쳐 깨어나지도 못했을 테다. 그런데도 다시 몸을 추스르고, 연녹색 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의젓해 보인다. 도대체 생명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억척스러운가.며칠 전 땀을 훔치며 이 곁을 지나갈 때다. 방금 풀을 베었는지 향긋한 풀냄새가 팔월 상순 대낮의 더위를 봄 나비 날개처럼 팔랑팔랑 날려버렸었다. 이 녹지 곁을 하루에 두서너 번은 지나다닌다. 출퇴근과 점심 먹으러 갈 때 다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엔 주로 자전거로 오가지만 그 외의 철엔 걸어서 지나간다.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을 초지로 만든 곳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과 푸른 녹지가 잘 어우러져 저절로 관심을 끌었다. 지금 팔월 초순인데, 내 기억엔 올해 벌써 두 번째 전체 풀베기를 하였다. 교장 선생님이 바뀌었는지 학교 관리가 아니라면 해당 행정기관의 배려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늦봄, 오월 하순께도 풀을 베어냈었다. ‘아직 가을은커녕 채 여름도 되지 않았는데, 웬 벌초인가. 이상하다.’고 그때 생각했었는데 두 달여 만에 또 베어냈다.풀베기를 시킨 이들은, 녹지를 더 깔끔하고 아름답게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 베었을 것이다. 하지만 잎과 줄기가 한해살이인 잔디, 쑥, 클로버, 민들레, 개보리 그리고 이름 모르는 외래종들로 어우러진 풀밭이다. 내 생각엔 베지 않고 그냥 한해를 다 살도록 놔두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기도 좋을 것이다.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 않은가. 어릴 때 산골에서 자라나며 겪은 삶은 그야말로 있는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것이었다.풀들은 영문도 모르고 한순간 땅 위 몸이 댕강 잘려 나갔다. 그 고통과 상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풀들은 몸을 여미고 재기(再起)를 시작한다. 잘린 경계면 아래 잔디 잎은 끝이 조금 마르며 그대로 자라나고, 곁엔 봄 새싹 같은 순이 다시 돋아난다. 지난 늦봄 벌초를 당했을 때도 풀들은 슬픔을 이겨내고 곧바로 녹지에 정갈한 연록 새봄을 연출하였었다. 오가는 이들과 운동을 하거나 쉬는 사람들, 나아가 날아드는 참새, 까치, 비둘기, 애완견까지 즐겁게 해 주고도 남았다. 특히, 아침 출근길에 새 고사리손마다 동녘햇빛 머금은 영롱한 이슬을 앙증스레 쥔 풀들의 영접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겐 생명의 본모습을 만나는 행운의 시간이다.한여름에 몸 잘린 풀들은 또 하나의 새봄을 이 녹지에 공연하려는 준비가 한창이다. 새싹이 여름의 더위를 잘 이겨낼지 모르지만, 몸을 여미는 모습을 보노라면 틀림없이 한여름의 새봄을 선물할 것이다. 그리되면 나는 한 해에 세 번의 봄 새 생명을 만나는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터다. 비록 날씨 탓에 이슬 머금은 모습은 못 만날 지라도 한여름에 새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한데, 왜 풀들의 고통 앞에서 내 마음이 달떴던 것일까. 호모사피엔스 이래, 조상 대대로 연연히 풀을 먹으며 살아온 사인인 까닭일까. 제 뜻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결정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예초기의 무서운 날에 몸이 반 토막 난 상황. 그 황망함은 보이지 않고, 보려고도 애쓰지 않지 않았는가. 내가 풀이라면, 두 번씩이나 몸이 잘려 나간 처절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고해의 세상에 무에 미련이 있어, 또다시 살아가려 한단 말인가.마음의 눈에 풀들이 다시 살기 위해 새마을사업이라도 하듯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땅속 물을 빨아들이고, 공기의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몸의 탄소동화작용 공장을 가동한다. 설비에서 연록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새잎은 모양을 갖추며 고사리손이 된다. 손은 땅을 솟아오르며 새봄을 부른다. 공장 가동 소리가 아카샤 기록(Akashic records) 동영상으로 이렇게 저장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들은 사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살아낸답니다.”라고…. 그랬구나! 풀들이 아름다운 것은, 삶을 살아가지 않고 살아내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몸이 몇 번을 잘리거나 훼손당해도 또 일어서고, 새로 태어나는 삶을 바지런히 살아내고 있었던 거야.올여름 녹지에 태어날 새봄 고사리손엔, 아마도 하늘 빗물이 송골송골하겠지….

2020-08-19

밤바다 산책

윤영대수필가요즈음 중부 지방에는 폭우로 내리붓는 장맛비에 온통 물난리인데 여기 포항은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열대야가 밤잠을 못 이루게 한다. 코로나19로 답답해진 마음에 밤바다를 거닐고 싶어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가본다. 바닷가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아파트를 나서면 벌써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와 닿고, 골목길 빠져 해변 도로를 걸어보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예년 같으면 방학에 피서철이라 발 디딜 틈도 없을 인파가 저 바닷가 파도처럼 일렁일 텐데…. 멀리 까만 바다 끝에 반짝이는 불빛은 호미곶인지 떠 있는 배들인지 정답게 다가오고, 수평선에 떠오른 보름달은 바다와 거리두기를 하는지 구름 마스크를 쓰고 하늘 높이 떠 있다.넓은 모래밭에는 젊은이들이 쏘아 올리는 불꽃 터지는 소리와 물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산책길에는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의 걸음들이 모두 가볍고 길가에 앉아 서로 속삭이거나 혼자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도 해변의 낭만이다.사람들과 섞여서 천천히 걷다가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마르고 푹신한 느낌이 좋다. 아예 신고 간 샌들을 벗고 맨발로 걸으니 사각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아스팔트 길에 잊어버린 발바닥의 촉감을 찾아준다. 내친김에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용히 밀려오는 밤바다의 물결 소리가 종일 TV 소리에 지친 나의 귀를 간지럽히고, 두 발에 전해오는 차가움은 가슴으로 올라와 온몸의 열기를 식혀준다.바닷물에 세족(洗足)을 하니 생각난다. 8월 4일은 음력 6월 15일, 유두절(流頭節·유둣날)이다.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라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나 폭포수에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친척들과 떡이나 전을 먹으며 유두잔치를 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병이 없다는 신라 때 명절인데 잊혀져가는 옛 풍습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영일만으로 흘러들어 오는 형산강이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라 ‘잘 됐구나’ 하며, 오늘 저녁 유둣날의 기분에 한껏 젖어보았다.바닷물에 발 담그고 돌아서서 해변 야경을 보니 알파벳과 외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어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요즘 해외여행이 발 묶여버린 마음에 언젠가 가봤던 기억의 어느 외국 해변 풍경을 그리며 그곳에 와있노라고 상상해보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모래밭에는 매년 만들어 놓는 모래 작품들도 볼거리다. 섬세하게 쌓아 올린 이름난 건축물 조각상 앞에서 흐르는 불빛 따라 즐겁게 사진을 찍는 모습 또한 행복해 보인다. 발의 모래를 털고 다시 길로 올라오면 즐비한 스틸아트 작품들이 포항의 얘기를 들려주는 듯 밤의 산책을 즐겁게 한다.해변 끝에서 높고 좁다란 방파제에 올라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의 씩씩한 발걸음을 따라 끝까지 걸어 가본다. 빨간 등대 불이 깜빡이는 어둠의 배경은 7, 80년대 형산강의 기적을 만든 포스코, 옛날 그 힘찬 용광로의 불꽃은 다 어디로 갔는지 옛 함성을 반추하듯 초대형 전광판의 글자가 길게 늘어져 지나간다. 나는 그 전광판에 새기고 싶다. ‘포항의 영광을 되찾자.’ 그리고 등대 벽에 낙서한 연인들의 마음을 읽으며 통통거리며 들어오는 고깃배의 만선을 빌어본다.돌아오는 길, 200여 그루의 곰솔 숲 앞을 걸으면 풀잎 지붕의 둥근 테이블마다 바닷바람을 쐬며 술이나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즐기고 있는 모습도 흥겹다. 그런데 모든 공연이 금지된 버스킹 무대에는 할머니 몇 분이 손주들 재롱을 즐길 뿐이다. 모래밭에 줄지은 천막은 비어있는 듯하지만 길가 술집과 커피숍은 그래도 젊은이들로 북적이는데 실내 금연이라 밖에 모여 피워대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그들이 버린 꽁초가 쓰레기 더미와 함께 하얀 애벌레처럼 밤길에 나뒹구는 광경은 하루의 마음을 정리하며 밤 산책하고 돌아오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영일대 누각에 올라 보석처럼 반짝이는 해변의 불빛을 가르며 내 달리는 제트보트의 날렵한 질주를 눈에 담고 집에 돌아와 폭포수처럼 틀어놓은 샤워기로 젖은 땀을 씻고 유둣날의 복을 빌어본다. 남은 말복에 더위 먹지 말기를…. 지난 7일이 입추(立秋), 벌써 가을이 오는가 보다.

2020-08-12

포항우체국, 추억을 갈무리하다

정미영수필가포항우체국 풍경이 역동적이다. 우편번호를 찾는 눈길과 주소를 쓰는 손길이 분주하다. 오고가는 발길이 끊어지지 않자 우편물은 자루 가득 담긴다. 분분한 사연들이 제비 떼처럼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문득, 며칠 전 읽었던 신문 기사가 떠오른다. 포항우체국은 1905년 6월 9일 연일임시우편소로 개소한 이래 올해 115년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포항우체국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오랜 세월동안 소식을 전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든든하게 수행하고 있다.사람들의 모습을 눈여겨본다. 상기된 얼굴로 편지를 들고 있는 그들에게서 달콤 쌉싸래한 표정이 느껴진다. 떨어져 지내는 가족에게 소식을 전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지금 이 시간, 그들 누구도 타인처럼 낯설지 않다.학창 시절, 집집마다 전화기가 놓여 사람들이 드문드문 편지를 쓸 때에도, 나는 편지 쓰는 일에 열심이었다. 친구가 바닷가 고향 마을로 되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편지는 전화가 없는 친구와 나를 이어주는 소통의 끈이었다.친구는 도시로 이사를 왔다. 배를 탔던 아버지가 풍랑에 휩싸여 돌아가셨기에 어머니가 포구에서 힘들게 일했다. 하지만 접힌 삶은 곧게 펴지지 않았다. 도시 공장에 나가면 수월하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먼 친척의 말을 믿고 옮겨왔다.전학 온 친구는 반 아이들과 서먹서먹했다. 나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두 살 많고 늘 무표정이었기 때문에,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새 학기가 되어 내가 부반장이 된 직후였다. 부반장에게 솔선수범을 기대했던 선생님은 친구와 짝이 되어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데면데면한 내 행동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았다.어느 날, 수업을 마친 뒤였다. 친구는 나에게 자신의 집에 가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레 물었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친구의 단칸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한쪽 구석에 놓인 앉은뱅이책상 위의 불가사리들을 보았다. 친구는 여러 조각으로 잘라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불가사리가 마음에 들어 모았다고 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는 불가사리를 닮은 것 같다. 불가사리는 단단한 석회질 속에 싸여 있지만 몸이 수분으로 되어 있다. 친구는 겉으로 강한 척했지만, 속으로 눈물을 가득 담고 있었는지 모른다. 빽빽한 가시를 지닌 불가사리처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표정이라는 딱딱한 가시를 달고 살았던 것이리라.친구의 어머니는 건강이 나빠졌다. 바다에서 나고 자랐던 어머니는 고향이 그리웠을 수도 있다. 결국 모녀는 바닷가 마을로 돌아갔다. 이제 겨우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는데…. 나는 그 후로 바닷가 소식 들려올 때면 친구를 생각하며 편지를 썼다.우정(郵政)은 우정(友情)을 이어주는 끈끈한 조력자였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에도 편지지 가득 낱말을 쏟아 부었다. 메마른 현실에 물꼬가 트이지 않을 때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 속이 후련했다. 삶의 목표가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내뱉고 나면, 옅어지는 의지가 다시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친구 또한 사연을 옹골지게 적어 나에게 보냈다. 마을버스를 타고 읍내 우체국에 나와 편지를 부치면, 젊은 가장으로서 짊어졌던 생활의 무게가 조금은 줄어든다고 했다.열려진 창문으로 노을빛이 찾아든다.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졌는데도 여전히 우체국 안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어쩌면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부치면서, 발신자와 수신자가 동일인이 아닌 사실에 감사할 수도 있다. 안부를 건네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 일인가.포항우체국에서 모처럼 추억을 갈무리한다. 흘러간 세월에 아랑곳없이 편지 행간에 스며있던 의미를 떠올리니 가슴 한 자락이 따스하다. 기억을 넘나드는 진실한 편지 하나 품고 있으니 살아가는 힘이 된다.나는 지금, 포항우체국 창가에 서서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띄운다.

2020-08-05

광복이의 3+1 뽀뽀

강길수수필가광복이의 첫 거울 뽀뽀가 삼삼하다. 동영상 안 거울에 비친 녀석의 얼굴 모습이 마음을 종잡을 수 없게 한다. 콕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온갖 느낌이 한순간에 파도로 몰려오니 말이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그 무엇이, 마음 밭에서 죽순처럼 돋아난다.동영상을 켜기 전 정지 화면은 이렇다. 녀석은 왼발을 쪼그리고 오른발은 주저앉은, 반 쪼그려 앉은 자세를 거울 앞에 취하고 있다. 얼굴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향하고 있다. 그 표정이 너무 자연스러워 천진하면서도 진지하다는 말밖에 더할 수 없다. 왼손은 손가락을 펴서 거울에 대고 있다. 오른손은 엄지를 반쯤, 검지는 다 폈다. 나머지 세 손가락은 오므리고 검지가 거울에 비친 얼굴을 가리키고 있다.동영상을 켰다. 녀석은 얼굴을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로 가져가 조심스러운 첫 뽀뽀를 한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 입맞춤이다. 첫 뽀뽀의 느낌이 어땠을까. 비주얼로는 자기 입술이었으나, 막상 입술에 닿은 것은 딱딱하고 찬 유리면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녀석. 그래선지 두 번째 뽀뽀는 다소 세게 거울에 다가간다. 이번에는 입술뿐만 아니라 코까지 거울 유리에 콕 부딪친다. 조금 놀랐는지, 일순 멈칫한다. 울지 않으니 안 아프나 보다. 의아한 듯 녀석이 두 눈을 한 번 껌뻑인다.곧이어 세 번째 뽀뽀를 ‘응.’ 소리와 함께한다. 마음 깊이 즐거운가 보다. 그리곤 오른손가락으로 무슨 표식을 하는 듯하며 거울 앞에 주저앉아, 거울의 자기를 향해 몸을 움직이며 옹알이를 한다. 다시 허리를 숙이며 오른손 검지를 펴 거울에 댄다. 중얼거리듯 낮은 소리를 내면서 두 이마를 마주 댄다. 이어 노래 부르듯 뭔가 속삭인다. 다시 주저앉아 허리를 들썩이며 노래 같은 옹알이를 한다. 거룩해 보인다. 녀석은 거울 속의 자기를 친구로 알까. 아니면 자신을 알아보는 걸까.녀석은 잠시 거울 속의 자기를 응시하며 무언가 중얼거리다가, 첫 뽀뽀 때와 같은 자세로 다시 예의 진중(珍重)한 뽀뽀를 한다. 뒤풀이 인가보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무슨 소리를 내며 엄마 앞으로 돌아선다. 동영상은 여기서 끝이다. 녀석은 이 거울 놀이에서, 어떤 비밀을 보여준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삼세번 뽀뽀하고, 잠시 즐거워하다가 다시 한 번 뽀뽀를 한 뒤 자리를 뜨는 행동 양식 곧, 3+1 방식의 자기 뽀뽀. 꼭, 무슨 메시지를 담아서 내게 보내는 것만 같다.녀석은 무슨 마음으로 거울에다 뽀뽀했을까. 그것도 3+1 뽀뽀를…. 제 엄마가 발달 단계상 거울 놀이의 시기이기에, 녀석 앞에 커다란 거울을 놓아주었단다. 한데, 거울 앞에 앉은 녀석의 얼굴 표정이나 몸, 손발의 행동, 동작이 어른인 내 눈에는 전혀 노는 것 같지 않다. 장난기도 안 보인다. 어느 신실(信實)한 구도자(求道者)가 거울을 대할 때의 모습이 저럴까. 내 상상과 언어 능력으로는 도저히 제대로 표현하거나 묘사할 수 없는 장면을 녀석은 연출하였다.태명이 광복이인 이 녀석은 둘째 손자다. 첫돌이 아직 한 달 반 정도 남았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발달단계로 보더라도 유아기다. 그러니 녀석의 표정이나 동작, 행동, 소리 등은 거의 본능 곧, 천부적인 것들을 나타내는 시기이리라. 그렇다면 사람이 자신을 오롯이 만나는 일은, 원래 저렇듯 진지하고, 즐거운 일이란 말인가. 다 큰사람이 거울 앞에서 하는 양태(樣態)는 천태만상일 터. 어떤 성인이 거울을 두고 광복이와 비슷한 행위를 한다면, 그는 아마 나르시시즘에 빠졌으리라.두 살 위인 녀석의 사촌 형 태극이도, 영아 시절 삼세번 반응을 통해 내게 겨레의 삼세번 문화 메시지를 주었었다. 천지인 삼태극사상이 녹아든 삶, 하늘을 섬기고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온 우리네의 모습 말이다. 뒤이은 광복이 녀석의 삼세번 더하기 한 번의 메시지는, 한 번 더 확인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계약서를 쓰고, 서명날인으로 확인하듯이…. 그리고 ‘우리 겨레의 삼세번 문화의 근원은, 영유아들의 본능적 교감 반응과 옹알이 같은 놀이에서 왔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뒤따른다.마음 하늘에, 북극성이 유난히 밝다.

2020-07-29

짜장면

윤순옥수필가한 끼 식사를 해결할 간단한 방법을 찾는다. 아무리 찾아봐도 배달음식만한 게 없다. 습관적으로 메뉴를 훑어보고 결국 짜장면을 주문한다. 짜장면은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문득 생각나는 음식이기도 하다.버스를 타고 싶던 때가 있었다. 하루 왕복 두 번, 집 앞 신작로를 지나는 버스에는 안내양이 있었다. 한손을 밖으로 내밀어 차 옆구리를 탁탁 치고 ‘오라이’ 하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출발했다. 차를 타고 읍내에 다녀온 친구들이 먹은 자랑, 본 자랑을 늘어놓으면 부러움에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을 기다리며 마음만 실어 보낼 뿐이었다.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어머니는 사촌언니에게 물려받은 옷 보자기를 풀어 그중 작은 옷을 골라주며 입기를 재촉했다. 갑자기 왜 옷을 갈아입어라하는 것인지 영문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더니, 외출 준비를 마친 아버지를 따라 나서라는 것이었다. 머뭇거리다 아버지 뒤를 따랐다. 우리는 내리막을 지나 정류장에서 멈췄다. 정류장 앞에는 구멍가게가 있었고 그곳에서 담배를 팔았는데 그것 때문인가 했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와 있는 시간이 불편해 멈춰 있기 보다는 차라리 걷는 게 나을 듯싶었다. 침묵의 시간이 한참 동안 흐르고 마을 어귀에 버스가 나타났다. 버스가 도착하자 아버지는 타라는 손짓을 했다. 얼떨결에 버스에 올랐다.아버지가 어렵고 무서웠다. 평소 말씀이 없으셨던 분이 예의에 어긋난 행동에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단을 맞지 않으려고 행동을 조심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존재가 느껴져 신경을 써야했다. 아버지 머문 자리도 돌아서 다닐 정도였다. 궁금했지만 도저히 어딜 가는지 여쭈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동네를 몇 개나 지났을까 색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친구들이 말했던 곳으로 짐작되는 말 탄 장군 동상이 보였다. 동상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 길이 나 있었다. 상주읍내를 처음 본 나는 사방으로 난 길도, 우리 동네 집들과 다른 건물도, 오고가는 사람도 신기할 뿐이었다. 버스가 데려다 놓은 곳은 내가 본 가장 큰 세상이었다.그토록 원하던 버스를 타고 읍내에 갔는데도 즐겁지가 않았다. 그즈음 가난한 집 아이들을 식모로 보낸다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친구 언니가 도시에 가서 식모살이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차를 타고 읍내까지 온 것을 보면 분명 큰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고 무서웠다.아버지 뒤에 바짝 붙었다. 아버지는 시장에 들러 몇 가지 물건을 샀다. 그리고 붉은 천이 바람에 너풀거리는 붉은 집으로 들어갔다. 벽지도 붉고 등도 붉은 집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버지는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켰다. ‘짜장면’ 이라는 말에 불안함도 잠시 잊고 친구들이 먹었다는 음식을 상상했다. 음식은 금방 나왔다. 까만 것이 번들거렸다. 까만 음식이라더니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그 사이 아버지는 짜장면을 비벼서 내 앞으로 밀면서 말씀하셨다.“오늘 네 생일이지 많이 먹어라.”아,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어디로 나를 보내려는 것 아닌가하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그날은 잊고 있던 내 생일이었다. 산골에서 생일은 덤덤하게 보내기 일쑤였고 운이 좋아 삶은 달걀이라도 먹는 날은 최고였다. 열한 살 생일은 특별했다. 처음으로 버스를 탔고 처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짜장면을 먹은 날이었다.짜장면 한 그릇을 비우던 날, 마주 앉은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때를 훌쩍 넘긴 시각이라 아버지 배도 쪼그라들었을 텐데, 배고픔도 잊고 자식만 먹이던 가난한 아버지를 헤아릴 수 없었다. 어른이라고 배고픔이 없었을까.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던 심정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배고팠을 아버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알끈한 것이 마음이 편치 않다.짜장면 한 그릇은 두고두고 펼쳐 볼 선물 보따리요, 아버지를 향한 내 눈물 보따리다.

2020-07-22

1년 후에 받은 엽서

윤영대수필가온종일 내리던 장맛비가 살짝 그치고 창 넘어 들어오는 바람이 왠지 시원해서 오랜만에 마을 뒷산을 산책하고 싶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려다가 우편함을 보니 엽서 같은 것이 있기에 뭘까? 하고 꺼내보니 색다른 엽서다. POST CARD 글자 옆에 전자우표가 붙어있고 보내는 사람은 ‘外洞휴게소에서 河78A4’(하영-나의 아호)이고 받는 사람도 우리집 주소에 내 이름으로 되어있다. 내 글씨, 내가 보낸 엽서다. 어! 내가 언제 경주 외동휴게소를 갔었지? 이상하여 뒷면을 보니 휴게소 사진 옆에 간단한 글이 있다. ‘비 내리는 남해여행, 고속도로 위 휴게소가 예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동행하는 친구들도 좋고, 모두 즐겁다. 2019년 7월18일’어! 작년이네. 그런데 왜 1년 후 이제야 오지? 아, 생각난다. 작년 이맘때 친구들과 남해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포항-울산 고속도로를 달려 남해 독일마을을 돌아보려는 여행이었지. 휴게소에 잠깐 들러 커피 한잔하며 둘러보니 마침 입구 쪽에 ‘1년 후에 받아보는 편지함’이 있기에 엽서 한 장을 얻어 간단히 적어 넣은 기억이 났다. 그리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이렇게 뜻밖의 엽서를 받고 보니 그날이 새롭다. 소인(消印)을 살펴보니 발송일이 2020.07.08.이고 470원의 요금도 찍혀있었다. 나는 그냥 지나는 마음으로 써넣었는데 그것을 모아두었다가 잊지 않고 돈 들여 1년 후에 보내 주다니 외동휴게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그러고 보니 이러한 1년 후 받은 엽서의 기억은 또 있다. 몇 해 전 거실 탁자 위에 제주도 풍경의 그림엽서가 한 장 있기에 익숙한 풍경이라 그냥 선전물이겠거니 하고 제쳐 두었는데 다음날 다시 정리하다가 언뜻 보니 나의 글씨였다. 그 해는 제주여행이 없었는데 의아했다. 세계자연 경관 7대 명소를 돌며 서귀포의 물결을 본다는 찬사에, 보내는 사람은 ‘제주올레길7번’이고 받는 사람은 ‘아내에게’로 적혀있었다. 그 당시도 1년 전에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서 한 바퀴 돌았었는데, 그때 보낸 엽서가 집안 구석 어디 돌아다니다가 이제 나타났구나 하고 대수롭잖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엽서를 정리하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쓴 날짜는 11월13일인데 소인은 11월6일로 되어있다. 우체국 소인은 틀림없을 텐데 내가 1주일을 잘못 알았나? 다시 뒷면을 보았더니 아래쪽에 다음과 같이 인쇄되어있었다. ‘1년 후에 보내는 편지-서귀포 대륜동 주민자치위원회’.그제야 또렷이 생각났었다. 서귀포 7번 올레길을 걸어 외돌개를 지나 내려오는 개울 옆에서 만난 빨간 우체통과 안내판, 그곳에 비치된 엽서에 사연을 써넣으면 1년 후에 보내 준다는 설명을 읽고서 설마 하면서 써넣었던 기억이 새로웠었던 적이 있다.1년 후 받아보는 느린 엽서가 아니어도 여행지에서 나에게 보낸 또 다른 엽서들도 내 기억 속의 여정을 되새기게 한다. 울산 간절곶에서 일출을 보고 해변 바위 위의 커다란 빨간 우체통에 넣었던 행복엽서도,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다가 지친 몸을 쉬며 장터목 산장에서 부친 단풍엽서도 받아보았고, ‘토지’의 숨결을 찾아 원주문학기행을 갔을 때 박경리문학공원 북카페에서 적어 보낸 감사엽서도 있다.이러한 엽신(葉信)을 보내는 취미는 해외여행 때도 만끽하고 있다. 관광하는 도시마다 거리의 기념품점이나 우체국이 보이면 그림엽서를 사서 그날의 여행에서 본 것 느낀 것들을 간단히 적어 부치고, 어떨 땐 호텔카운터에 부탁하거나 가이드에게 맡겨두면 고맙게도 잘 보내 주었다. 내가 즐기는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이러한 나의 취미를 잘 알고 있는 딸과 아들도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가끔 삽화까지 그려서 그곳의 관광엽서를 보내온다. 그러면 나의 마음도 따라서 그 여정을 훑어가곤 한다.‘1년 후에 받아보는 편지’를 보내 주는 느린우체통은 누가 어떻게 매일매일 써넣어지는 엽서를 모아두었다가 꼭 1년 후에, 그것도 우편요금을 부담하고 보내 주는 것인지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와서 기억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받아보는 한 장의 타임캡슐은 지난 흔적을 따라 두 번째의 여행을 하게 한다.해 질 무렵 조용한 산길을 내려오는 나의 손에는 1년 전에 찾은 남해 보리암의 석불이 조용히 미소짓고 있다.

2020-07-15

시대 징표 바라보기

강길수수필가등산길에 뭔가 이상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데도 땅거미가 내릴 것 같이 주위가 시나브로 어스름해지니 말이다. 오후 네 시가 지났지만 하지라는 날을 고려하면 있을 수 없는 징표(徵標)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알아볼 마음을 먹지 않고 덤덤하게 넘어갔다. 밤에 인터넷에서 오늘 오후 부분일식이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숲속에서의 징표가 그 의미를 찾으며 의문이 풀렸다.부분일식 징표였는데 내가 너무 무심히 지나치고 말았다는 자각이 뒤따랐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시골에는 라디오도 흔치 않았다. 날씨예측도 징표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늘, 구름, 바람, 공기의 습한 정도, 동물이나 곤충들의 행동, 몸의 반응 같은 것들을 이용했다. 방법도 어떤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 전승되는 도제제도(徒弟制度)인 풍습을 통해 저절로 습득되었다. 나아가 생활 전반에 징표와 관련되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이 스며있다. 해몽, 사주팔자 풀기, 택일, 작명, 점(占), 풍수지리 등 다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올해 내게 다가온 시대의 징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바라본다. 우선 봄꽃들이 예전과 비교해 더 화려하게 피어올랐었다. 진달래꽃, 개나리꽃으로부터 벚꽃, 라일락꽃, 이팝꽃, 조팝꽃, 장미꽃, 아카시아꽃, 찔레꽃, 인동초꽃에 이르기까지 내가 만난 꽃들은 겉모양은 확실히 화려했었다. 하지만 일부러 꽃들 근처에 가도, 가끔 꽃에 코를 대고 맡아 보아도 향기가 안 나거나, 전과 비교해 훨씬 줄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한 기후 탓인지 혹은 마음 탓인지, 봄꽃들이 무엇에 쫓기듯 허겁지겁 피어나고 지는 것만 같아 보였다.왜 그럴까. 결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말 꽃들이 향기를 잃어가든가, 아니면 내 후각이 나이 들면서 무디어져서 향내를 맡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후자의 영향도 없지 않겠으나, 아무래도 전자에 해당하는 것 같다. 양봉하는 친척이 올해엔 꿀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식물들이 사람에게 보내는 징표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리우협약 등 기후변화에 대한 지구촌의 인식은 제법 오래 된듯하나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이 시행된다는 소식은 별로 듣지 못했다.해로운 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일부 사람의 흡연, 과음, 마약 투여 같은 습관처럼 이 시대 지구촌은 물질문명의 편리성에 중독되고 만 것은 아닐까. 생명의 어머니 지구가 곳곳에서 이상기상 현상이나 지진, 동물, 식물, 곤충 나아가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등을 통해 신음의 징표를 내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책임을 져야 할 우리 인간은 외면하며 사는 현실이다. 물질문명에 유착한 정치적 경제적 패권, 자국 이기주의, 거대 자본의 횡포 같은 욕망에 최면 되어 있다. 현 인류문명은 과녁도 없이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화살이 우리를, 지구촌을 어느 과녁에다 맞출지 두렵기만 하다.우리나라의 산업화 이전 세대들만 하더라도, 농촌에서는 전 근대적 농사일을 하며 자연 친화적 또는 로하스(LOHAS)족 같은 삶을 경험했다. 보릿고개의 고단하고 힘든 시기였지만 자연을 알고 자연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기에, 비록 엥겔지수는 높아도 행복도(幸福度)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았었다 싶다. 어촌이나 산촌도 농촌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품앗이를 기반으로, 한 동네가 한 가정처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사는 공동체였기 때문이리라.손자가 둘이다. 맏이 가정의 세 돌을 앞둔 큰손자, 둘째 가정의 갓 돌 지난 작은 손자가 그들이다. 해맑게 자라나는 손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에서 또 하나 가장 행복한 기간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전에 느끼지 못하던 불안과 걱정이 앞선다. 자연과 국가사회의 시대 징표를 바라보면, 아이들의 미래가 어찌 될지 좌불안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구환경 변화에다 정권의 무모한 좌편향 정책, 북핵, 코로나19 등에 볼모잡힌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어서다. 만일 어버이들의 잘못으로 저 아이들이 불행해진다면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부디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주기를 정부와 정치권에 간절히 바란다.

2020-07-08

내일은

윤순옥수필가코로나19 감염증 재확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인지 확진환자가 늘고 있다. 며칠 잠잠하던 코로나 관련 뉴스를 보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려나 싶어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최초 환자 발생으로부터 4개월이 훌쩍 지나도록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평범한 일상은 더욱 기약이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이토록 간절한 일이 될 줄이야. 자유롭던 만남이 꿈결같이 아득하다.사람이 그리워 텔레비전을 켠다. 화면을 통해 만나는 사람이 반갑다.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을 즐기지 않는 내가 드라마를 챙겨보고 토크쇼를 보며 웃는다. 일면식도 없는 연예인들의 가정사도, 연애사도 마치 가족 일처럼 즐거워 웃고, 안타까워 눈물짓고, 억울해서 화가 난다. 쇼 호스트의 하이 톤에 이끌려 홈쇼핑을 시청한다. 마실 다니듯 쇼핑 채널 몇 개를 돌다보면 필요한 물건이다 싶은 걸 만나게 된다. 매진 임박에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는 도중에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서둘러 주문하기를 누르고, 결제를 끝내고, 확인 메시지를 받은 다음에야 안심이 된다.텔레비전을 보면서 충동구매가 늘었다. 입을거리, 먹을거리, 생활용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여러 번 고민하고 구입하던 습관이 변한 것인지 안사면 후회할 것 같은 상품도 정작 받아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하기 쉬운 음식은 어쩔 수 없지만 옷이나 생활용품은 교환이나 반품을 하게 된다. 우리 집 택배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딩동! 초인종 소리는 늘 반갑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택배기사가 최근 우리 집에 오는 일이 많아졌단다. 특히 이 번 주는 하루도 빠짐없이 들렀다며 오래 드나들면서도 필요 없는 말을 삼가던 그가 몇 마디의 말과 함께 땀 냄새를 남기고 사라진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세가 멈출 줄 모르면서 택배 물량이 급증했고 급기야 배송 날짜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었다. 이 시국에 나까지 한몫 했으니…. 제 발 저리 듯 뜨끔 한다.며칠 전, 이른 한여름 더위가 찾아왔다. 침구를 시원한 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설 명절 때 다녀가고 집에 오지 못 했던 큰아들이 기말시험 끝나고 내려온다는 소식을 들은 뒤라, 큰아들 방을 정리할 때는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방을 돌며 침대 커버와 요를 교체하고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칙칙한 요에 눈이 간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침대 요 두 장을 또 주문했다.주문할 때 들뜬 마음은 풍선 바람 빠지듯 하는 것인지 며칠을 깜빡 잊고 지냈다. 카카오톡 알림이 울린다. ‘안녕하세요. 윤순옥님 자연염색 60수 침구 업체 이브리다 입니다.’로 시작하는 택배 지연 안내문이다. 발송 처리된 건들이 현재 택배 사에서 이동 움직임이 없어 하루나 최대 삼 일 정도 지연된다는 사실을 알린다. 기다릴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일일이 연락하게 되었고, 꼭 상품으로 보답하겠다는 다짐을 보태고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까지 남긴 후 긴 글이 끝이 난다. 행동이나 말이 과하다 싶으면 불편한 순간을 넘기기 위한 제스처인 경우가 많은데 관계자의 글 곳곳에서 진심이 묻어난다.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은 가장 큰 위로이며 희망이다. 지금 우리는 끝도 모르는 긴 터널을 달리고 있다. 답답하고 불안한 상황을 이해와 인내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중이다. 바이러스와 가장 가까이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진, 방역관계자, 그리고 안전한 일상을 위해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국민들 모두 툭, 건드리기만 해도 참고 있던 것들이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택배 지연에 따른 침구업체에서 보내온 글을 고객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로 여길 수 있으나 내가 받은 문자에 담긴 것과 같은 작은 진심들은 유래 없는 위기 상황을 이기는 힘이 된다. 여린 빛을 내지만 결국 그 한줄기 빛이 모여 긴 터널을 뚫고 나가는 동력이 되리라. 내일은 밝은 태양 아래 말끔한 얼굴로 너와 내가 마주 서 있기를 소망한다.

2020-07-01

우리집 잡초

윤영대수필가6월 초에는 집안에 큰일이 있어서 시골집에 자주 가지 못했다. 시골이라지만 포항시 북구 기계면 외곽에 마음의 쉼터로 마련한 조용한 한옥이다. 마당은 잔디가 곱게 깔렸고 담을 따라 아름드리 돌로 아름답게 둘러싼 작은 화단에는 많은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어저께 비가 온 후, 단오날도 다가오는지라 마음도 정리하고 집도 살필 겸 갔었다. 더위가 성큼 온 듯한 날씨에 읍내를 지나 작고 조용한 마을의 골목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은 잡초들의 환영이 눈에 띈다. 좁은 골목 끝 내가 손수 만든 나지막한 대문 앞에 서니 빨간 줄장미와 분홍색 찔레꽃이 반긴다. 마당에 들어서면 앞뜰의 소나무 순은 쑥 자라있고 집 뒤의 뽕나무, 대나무들이 엄청난 잎새들을 자랑(?)하며 지붕을 덮고 있다. 차를 마당 한편에 세우고 제일 걱정이었던 채소밭부터 살피니 다행히 고추와 상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마당 한쪽에 취미 삼아 일군 서너 평 정도의 밭에 비료도 많이 주지 않았는데 잘 자라주어 고마웠다. 그런데 밭이랑에는 흙이 보이지 않고 무언가 풀들이 가득하다. 가까이 가보니 채소밭의 골칫거리 쇠비름과 바랭이가 신나게 번지고 있었다. 아! 이놈들부터 뽑아야겠다 싶어 서둘러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이제부터는 잡초와의 전투다.우선 고추밭 이랑부터 호미를 들고 들어가 낮게 기어 다니는 쇠비름을 뽑았다. 비 온 뒤라 쉽게 뽑혔다. 한 소쿠리 정도 뽑아버리려니 작고 두툼한 잎과 튼실한 줄기가 어렸을 때의 밥상이 생각난다. 돼지풀이라고 하는 쇠비름은 ‘밭에서 나는 생선’이라 할 만큼 오메가3가 풍부하여 많이 먹으면 생명이 길어진다고 장명초(長命草)라고 한단다. 옛날에는 봄여름 나물 무침으로 먹었지만 지금 우리 집에는 아직 못 먹는 잡초이려니…. 또 종기 치료에도 좋고 끓인 물을 바르면 습진과 무좀에도 좋다고 하여 약으로 보관하려 하다가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바로 옆에는 맑은 햇살을 받아서인지 상추가 풍성하게 잎을 펼치고 있어 아내가 즐겁게 한 잎 한 잎 따고 난 후, 나는 고랑 사이에서 줄기의 마디마다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랭이를 뽑았다. 마당 잔디 사이에 가끔 듬성듬성 나 있는 것은 잘 뽑히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푸석한 밭 흙에서는 쉽게 뽑혀 다행이다. 그야말로 잡초의 대명사인 바랭이는 한국 원산인 한해살이풀로 가축의 사료로 쓰이지만 눈과 귀를 밝게 하고(明耳目) 폐를 맑게 하는 약재로도 쓰인다고 한다.허리 굽혀 땀 흘려 다 뽑고 나서 좀 쉬려고 마루에 앉으니, 앞쪽 화단의 낮은 키 나무들 사이에 튼실한 줄기와 거친 잎 위에 핀 노란색과 보라색 꽃이 눈에 들어온다. 몸통은 닮고 얼굴은 다른 엉컹퀴와 방가지똥이다. 꽃은 둘 다 수수하게 예쁘고 잎에는 가시가 있다. 예쁜 자주색 꽃을 피운 엉컹퀴는 잎의 가시에 찔리고 고약한 느낌이 나는 이름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잎도 줄기도 비슷하고 가시가 있는 방가지똥은 민들레와 닮은 노란색 꽃을 야생화 사진을 찾아보고 이름을 알았다. 또 ‘피를 멈추고 엉기게 하는 풀’ 엉컹퀴는 줄기 속이 차 있고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관절염에 좋은 약용으로 쓰이며, 방가지똥의 줄기는 비어있고 어린잎은 역시 나물로 먹고 간에 좋은 약재로 쓴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맞은편 화단의 모과나무 앞쪽에는 뽑히지 않고 쭉쭉 자라고 있는 참나리 한 무리가 있다. 점박이 주황색 꽃잎을 뒤로 말아 재껴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이 백합 닮았고 뿌리는 약재로 쓰인다기에 야생화의 자격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이렇듯 텃밭에 성가신 잡초도 화단에 제멋대로 자리 잡는 야생화도 깨끗한 정원에는 필요 없는 식물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의 몸을 살리는 유용한 약재라고 하니 쓸모없는 풀과 꽃들에게도 각자의 존재 가치가 있으리라.골목 안쪽부터 집 안뜰까지 자라는 돌나물-내 어릴 때는 돈나물이라 했다- 은 봄에 뜯어 생나물로 무쳐 먹었고, 화단 귀퉁이에서 무릎까지 자란 인진쑥은 한 움큼 잘라서 묶어 황토방 벽에 걸어두었다. 향기도 있지만 벌레들이 싫어한단다. 뽑아내는 잡초들도 이름 모를 야생화들도 그들이 품고 있는 약용으로서의 가치로 보면 모두 소중하다. 나의 시골집 마당은 잡초들로 가득한 작은 한약재 텃밭이다.

2020-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