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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실패한 일회성 실험

강길수수필가잿빛 구름에 물방울이 송송 숨었다. 물방울들이 언제 구름을 모아 땅에 장맛비로 내릴지 알 수 없다. 비는 논밭을 일깨우고, 산을 더듬고, 강도 만지고, 바다를 간질일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오염된 공기와 집, 도로와 공원을 씻어 내리리라. 사람들은 비 안 맞을 준비를 하고 나들이를 한다.자전거 뒤에 우산을 싣고 출퇴근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장마철이어서 그렇다. 오늘 출근길도 자전거 페달이 가볍다.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매일 두던 곳에 세우고, 우산을 내려 사무실에 가지고 올라갔다. 점심때가 가까워져 창가로 가 하늘을 살폈다. 구름 상태가 점심 먹고 오는 동안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을 가지고 내려가 자전거 뒤 짐받이에 실었다.다른 일이 없는 한, 집에서 점심을 한지 꽤 오래되었다. 돈이 절약될 뿐 아니라, 운동도 되기 때문에 일석이조다. 점심 후 다시 사무실에 갔다. 자전거를 제자리에 두고, 우산을 내리려 끈에 손이 갔다. 그 순간, 장난스러운 생각이 튀어나왔다. ‘누가 가져가지 않을 것이란 사회에 대한 내 믿음을 우산으로 실험해 보자!’는 마음이 불쑥 든 것이다. ‘우산도 새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뒤따랐다.기실, 우산은 손잡이를 세게 당기면 아랫부분의 대가 쑥 빠져나오는 헌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새것이나 진배없는 아니, 새 우산보다 더 귀한 것이다. 전에 아내가 ‘대가 고장이 나서 못 쓰게 되었는데, 천이 좋고 살이 튼튼해 버리기가 아깝다’고 했던 우산이다.어느 날, 펜치와 드라이버로 고장 난 곳을 누르고 조정하여 당겨도 잘 빠지지 않게 고쳤다. 그 후 우산은 내 전용이 되다시피 했다. 아랫대를 적당한 부위까지 당겨서 쓰면 아무 지장이 없었다. 바람이 세게 불며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갈 때가 백미다. 대가 빠져 우산이 날아갈 수 있다는 긴장감 속에, 신경 모아 걷는 남모르는 스릴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우산을 자전거에 두고 사무실에 올라온 지 두 시간 정도 지났다. 물이 마시고 싶어, 잔에 물을 따라 창가로 가 마시며 자전거를 내려다보았다. 저만치 서 있는 자전거 짐받이에 있던 우산이 없어진 것 같이 보였다. 어찌 보면 있는 것도 같았다. 시력 탓이다. 당장 내려가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일었다. 하지만, ‘삼만 불 국민소득의 우리 사회인데, 퇴근 때까지 믿고 두고 보자’란 마음이 그 생각을 주저앉혔다.퇴근 시간이다. 얼른 컴퓨터를 끄고, 문단속한 뒤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나서며 눈이 저절로 길 건너 자전거를 보았다. 우산이 없었다. 실망한 마음으로 자전거에 갔다. 앞뒤 두 끈을 풀지도 않고 그대로 우산만 쑥 빼 가버렸다. 마른 물티슈 끈이다. 우산 빠진 구멍이 일그러지지도 않고 텅 빈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다. 우산이 따라가기 싫었던 것일까. 아직도 못 떠난 우산의 잔해가 끈을 받치고 있단 말인가. 시나브로 끈을 풀어 다시 조여 매는 내 손가락은,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정든 우산이 아까운 것도 사실이었지만, 사회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지금껏, 자전거나 차량에 싣고 온 물건은 언제나 필요한 곳에 갖다 두면서 살았다. 쓰기 위함이었지만, ‘작은 불찰로 남을 도둑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마음도 있었다.오늘 즉흥 코미디 같이 해버린 이 실험은, 첫 도전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늘 물건을 챙기던 습관과 생각이 옳았다’는 마음도 들었다.하지만 단 한 번의 일회성(一回性) 실험으로 사회를 판단한다는 것은 도리에도, 이치에도 합당치 않을 뿐만 아니라, 통계학적으로도 옳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우산 없어진 빈 자전거 짐받이를 처음 보았을 때, 가져간 이가 미운 마음이 든 것도 맞다. 그러나 우산 하나로 사회를 시험해 보려 했던 어설픈 실험자 곧, 원인제공을 했던 내가 더 문제였다는 생각에 이르자 미움도 금방 사라졌다. 정말 우산이 필요한데 살 수 없어서, 남의 것을 뽑아 갔으리라고 이해하는 마음도 뒤따랐다. 나아가, 우산이 그 사람에게 요긴하게 쓰이기를 바라는 바람도 생겼다.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이다. 낮의 우산 사건을 되돌아본다. 왜 그 순간 충동적인 우산실험이 떠올랐을까. 아마 나도,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가 변해가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지 싶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상식과 이성(理性)이 마비되어가는 어지러운 사회다. 이리저리 공동체가 부서져 흩어지는 소리도 들린다.가면 쓴 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서 무언가 나를 주무르며 시험하는 느낌도 드는 요즈음이다. 그러니 내 무의식도, 우산실험이란 돌연변이를 투사(投射)한 것이리라.우리 사회는 지금, 한 번도 겪지 않은 일회성 실험을 당하며 사는 게 아닐까.

2019-08-04

모고헌에서 물소리를 듣다

김순희 수필가비는 물의 다른 이름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리를 바꾸며, 이동할 때마다 독특한 소리를 낸다는 것이 같은 족속임을 증명한다. 그 소리로 사람들을 부르는 것도 물이나 비나 매 한가지이다.여름에 들면서 장마가 시작되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가 발걸음을 횡계서원으로 이끌었다. 서원은 옛 모습을 지키고 섰으나 마당의 쑥부쟁이의 큰 키로 보아 사람이 지나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성큼 댓돌을 딛고 마루에 앉았다. 그사이 비는 더욱 거세어졌다. 거친 소리를 만들며 비는 물로 모습을 바꾸었다.영천 횡계서원은 숙종 때 정규양이 지은 곳이다. 마당 한가운데 향나무가 외로이 비를 맞고 섰다. 300년은 족히 넘었을 나무다. 저 나무가 이곳의 역사다. 이제는 힘에 겨운 듯 목발에 팔을 의지하고 있다. 나무 앞에 학처럼 날렵한 정자가 앉아 있다. 집처럼 아늑한 학교이길 바랐던 정규양의 마음이 느껴진다.숙종 때 지어진 것을 영조 때 문인들이 수리한 후 ‘모고헌’이라 고쳐 불렀다. 높은 벼슬길로 오르려하지 않고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며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뜻을 존경하여 ‘옛사람을 흠모하는 집’이라 고쳐 부른 듯하다.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비탈에 서 있어서 물 가까이 선 누각의 다리가 더 길다. 까치발로 담장에 기대서 서당을 넘겨다보며 글 읽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하다.그래서인지 물가에서 보면 이층 같고, 마당에서 보이는 건물은 단층이라 두 가지 모습을 한 모고헌이다. 앞면 두칸, 옆면 두 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팔작지붕이다. 지붕의 휘어진 곡선이 학이 날개를 펴서 막 날아오르려는 폼새다.신발을 벗고 모고헌 마루에 올랐다. 툇간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집이다. 계곡으로 향해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경치에 눈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물소리가 가까이 들려와 듣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놓게 한다. 그 소리를 만드는 것은 계곡의 모난 돌들과 빗물이다. 자기만의 공법으로 기막힌 음악회를 만든다. 그 소리를 모아서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툇간이 있어서 모고헌의 가치가 높아지는 듯했다.방의 주인은 가끔 문을 닫고, 제자들의 글 외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수를 즐기기도 했을 것이다.그러다 한 제자의 느닷없는 질문에 선생이 일어선다. 방 윗부분 벽장형식의 책장에 손을 뻗어 눈으로 훑는다. 어느 건물에서도 보지 못한 특별한 공간, 이곳이 학문을 논하던 곳이란 것을 보여주는 책장이다. 조그만 방에 한 사람의 제자라도 더 들여 놓기 위해 머리 위로 책장을 올렸던 것 같다. 나도 깨달음을 얻을까하고 손을 내밀어 책장을 쓸어본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여기 서있던 그들이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오랫동안 마루에 앉아 계곡의 음악회를 듣는다. 방밖은 사방이 툇간으로 둘러져 있어서 방안에서는 물소리가 잘 들리지 않겠지 했다. 자세히 보니 이런 내 짧은 소견에 일침을 가하듯, 삼면에는 문을 달아 놓아 계곡을 향해 열면 방에서도 물이 연결되는 구조이다. 그날 기분에 따라 계곡에 쓸리며 내려오는 물소리를, 글 읽는 소리 들으려 잠시 소에 머무르는 물소리를, 모고헌을 뒤로 하고 내달리는 물소리를 골라 들을 수 있다.물소리는 휘모리장단으로 계곡을 쓸고 오다가 모고헌 앞에서는 잠시 걸음을 늦춰 진양조 장단으로 서성이며 맴을 돈다.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에 취할까 싶을 때 자진모리 걸음으로 소를 빠져나간다. 명인이 연주하는 가야금산조가 계곡에 그득하다.옛 장인이 들려주는 물소리에 내 마음을 꺼내 씻고 싶다. 몸이 힘겹다고 마음에게 신호를 보내도 나는 무시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찾은 곳이 모고헌이다. 남편과 다툼이 있던 날에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나는 이 곳을 찾았다. 모고헌은 학문만 가르친 곳이 아니었다. 삶에서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주는 공간이었다.휴(休)는 나무 옆에 사람 인자를 붙여 만들었다. 사람이 나무 그늘에 들어가는 것이 쉬는 것이다. 모고헌은 향나무 그늘에 앉아 나도 그늘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쉬는 것이 더 오래 걸을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모고헌을 좇아 내 삶에도 휴식을 주어야겠다. 오늘 같이 비가 내려 계곡 가득 물이 들어찰 때, 이곳으로 와 물소리를 길어 올려야겠다. 찾아오는 이의 발걸음에 화답하듯 모고헌의 물소리는 쉼 없이 여름을 실어 나르며 가슴 깊은 곳까지 푸르름을 새겨 넣는다.시원한 음각의 물소리가 내 마음을 거풍시켜 준다. 저 계곡이 있어서 모고헌이다.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물소리가 있어, 학문이 있어 모고헌이다. 글 읽는 소리와 물소리가 맥놀이 되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림 속에 내가 있다.

2019-07-28

오일장

송귀연 수필가“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엿장수가위소리와 함께 각설이가 빙 둘러선 인파속에서 몸을 흔들고 있다. 발가락이 삐져나온 양말에 빨갛게 볼연지 바른 여장남자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만물장수, 포목전, 옹기전이 저마다의 보따리를 풀고 전을 펼쳐놓았다. 솥뚜껑을 뒤집어놓고 파전을 부치는 아주머니, 말린 고사리와 취나물, 각종 채소며 과일들을 좌판에 놓고 쪼그려 앉은 아낙들로 장터는 시끌벅적하다. 그 사이로 흥정하는 사람들과 물건을 실어 나르는 차량들이 뒤섞여 그야말로 난장판이다.장터골목엔 소머리국밥냄새가 구수하게 피어났다. 술집에선 육자배기 젓가락 장단에 막걸리 잔이 돌고 주모의 노래가 구성졌다. 약장수는 북을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마술도 보여줬다. 야바위꾼들이 주사위놀이와 화투 패를 재빠르게 섞어 팔광, 똥광 찾기 하는 놀이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유랑극단에선 회충약이며 오줌발이 세어진다는 약을 팔았다.엄마를 졸라 장 구경을 갔다. 특히 호박엿은 군침이 돌았다. 붙박이처럼 들여다보다 그만 엄마를 놓쳐버렸다. 엄마와 비슷한 사람을 보면 달려갔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해는 금세 서산으로 떨어져 어둑해졌다. 두려움이 엄습해 무작정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아랫마을 상여집 앞을 지날 때는 머리가 쭈뼛 섰다. 시커먼 손아귀가 뒷덜미를 덥석 잡아챌 것만 같았다.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뛰어 사립문을 밀치자 “아이구! 아가 용케 왔데이.” 하는 엄마 목소리를 꿈결처럼 들으며 자지러지듯 품에 안겼다.장날이면 농사일을 접고 엄마는 우아한 여인으로 둔갑했다. 옥색 한복을 차려 입고 나서면 지나던 이가 곱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북적이는 골목을 비집고 찬찬하 둘러보며 익숙한 솜씨로 흥정을 하였다. 허드레 작업복을 벗고 변신을 한 엄마는 딴 세상 사람이 되었다. 한손으로 치맛자락을 살짝 치켜 올리고 사뿐사뿐 걷는 자태는 마치 한 마리 학 같았다.삼바우라 불리는 떠돌이거지가 있었다. 아저씨는 비오는 날 짚으로 엮은 도롱이를 걸치고 다녔다. 한여름에도 얼룩무늬 국방색야상을 입었다. 마을의 잔치나 상가 집이 생기면 어김없이 출몰하였다. 사람들은 그가 나타나면 으레 맛난 음식들을 내주었다. 걸쭉한 노래며 춤사위로 사람을 불러 모았던 그는 각설이 못지않게 인기가 있었다. 식당은 덩달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고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삼바우가 등장함으로써 장날은 비로소 흥이 돋워졌고 장날다워졌다. 엄마는 아버지 걱정으로 안절부절 하였다. 남동생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중송아지 한 마리를 몰고 장에 간 아버지는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아버진 평소 술버릇이 좀 과한 이력이 있었다. 엄마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어디를 헤맸는지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아버지는 날이 희끄무레 밝아서야 돌아왔다. 다그치는 엄마를 향해 횡설수설하며 나동그라졌다. 엄마는 아버지 생채기를 살피는 대신 주머니를 뒤지고 몸을 더듬었다. “어딨노? 어딨능교 말이다!” 몸부림에 가까운 절규였다. “아이구, 이일을 우짜노!” 풀썩 주저앉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메밀꽃 필 무렵’의 주인공 허생원은 떠돌이 장돌뱅이다. 어느 날, 다른 장으로 옮겨가던 중 동이를 만나 함께 가게 된다. 동이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 되는 것도 장날을 통해서이다. 신경림의 ‘파장’도 장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장날엔 못난 사람들이 서로 얼굴만 봐도 정겨운 장소인 것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도 시장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다.사람들의 체온이 물씬 느껴지던 장터는 산업화로 사라지거나 쇠퇴했다. 요즘은 대형마트에 마저 밀려나 그 존재감을 상실하고 있다. 잘 포장되고 획일화된 상품, 편리함 때문에 자꾸만 시장을 외면한다. 오일장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잡다한 물건들과 땀 냄새와 악다구니와 신명들을 날것으로 만날 수 있는 오일장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각설이는 엿 판돈을 허리에 꽂고 연신 몸을 좌우로 흔들며 구경꾼들을 즐겁게 한다. 답례처럼 둘러선 사람들은 주머니에서 흔쾌히 지폐를 꺼낸다. 시래기 한 단과 무, 배추 등을 담은 장바구니가 꽤 무겁다. 각설이타령을 뒤로 하며 오일장을 나선다. 언뜻 골목길 모퉁이를 도롱이 걸친 삼바우 아저씨가 돌아나가고 있다.

2019-07-21

클로버, 다모작 도전장 내밀다

강길수 수필가회색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온 햇살이 나무와 풀들을 스캔하고 있다. 한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만든 녹지(綠地)다. 따가울 여름 햇볕을 향해 풀, 나무들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그 중에도 가장 열렬히 환호하는 주인공은, 하얀 꽃을 내민 클로버다. 해님에게 잘 보이려 함인가. 한 톨의 햇빛이라도 더 받으려는 몸부림일까.장마철인데도 클로버는 올해 들어 두 번째 꽃피우기를 하고 있다. 아니, 사실을 말하면 벌써 네댓 번째인지도 모른다. 지난 겨울 소나무 아래서 월동한 클로버들은, 이월부터 한두 송이씩 줄곧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지난 봄엔 이상할 정도로 알차고, 다부지고, 통통한 꽃들을 촘촘히 많이도 피워냈었다. 그 모습이 결전을 앞둔 선수들처럼 결연해 보였고, 무명의 선수가 도전장을 내미는 초조함도 깃들어 보였다.지금 피우는 꽃은, 지난봄보다는 약하고 순하여 예전에 보아왔던 그 모습이다. 마음이 찜찜하여 백과사전에 ‘클로버’를 찾아보았다. 개화기가 육, 칠월이란다. 그러니 지금 피는 꽃이 정상(正常)이고, 이월부터 봄까지 피웠던 꽃은 비정상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기후 변화가 불러온 자연현상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클로버의 도전장 안에 서려 있을 것이란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이 클로버들과 이웃하며 출퇴근한 지가 벌써 네 번째 여름을 맞았다. 그간, 클로버가 녹지에서 차지한 영역이 어림잡아 열 배도 더 커져 보인다. 처음엔 보도 옆에 보도블록 네댓 장 정도의 넓이로 두세 군데 있었는데, 지금은 녹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장미꽃이 계절을 잊고 피어난다든가, 다른 꽃들도 꽃피는 시기를 모르고 피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클로버는 왜 한해에 저토록 여러 번 꽃을 피울까. 자기가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라도 느끼는가. 유럽이 원산지인 풀 클로버는 씨앗 번식 외에, 마디에서 뿌리가 내리며 개체를 늘리며 살기에 적응력이 강하다. 그런 풀이 꽃을 여러 번 피우는 이유가 뭘까. 다모작(多毛作)에 목숨이라도 걸었단 말인가. 하긴 동물처럼 움직일 수 없어,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다모작인지도 모른다. 씨앗을 많이 퍼뜨려 놓아야, 그중 일부라도 변화된 세상에 살아남을 게 아닌가.외유내강으로 사는 저 하얀 클로버꽃은, 이 시대를 사는 나에게 클로버가 내미는 ‘다모작 도전장’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살아야 다른 그 무엇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체제와 이념, 국가와 민족, 종교와 신념 같은 것들이 뭘까. 그것들이 무슨 대수라고 거기에 매달려 아웅다웅하며, 지구촌 모든 생명의 목숨이 걸린 문제를 등한시하고 외면할까. ‘사람이 온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예수그리스도는 이미 이천 년 전에 설파했다.어찌 보면, 생명체 중에 인간이 가장 무디고 멍청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지구촌의 유일한 이성적 존재라고 자화자찬하면서, 목숨 걸린 기후변화에는 발 벗고 나서지 않고 사니 말이다. 욕망에 사로잡혀 끊임없는 패권과 금력 쟁탈에 빠져, 이성을 마비시킨 존재가 현대인이란 말인가. 스톡홀름에서 ‘유엔 인간환경선언’이 채택된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이후, ‘리우선언’이나 ‘교도의정서’같은 기후변화를 다룬 국제 협약이 있었으나. 피부에 와닿는 실천 현장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최근 미국 국토 넓이의 땅에 일조(一兆)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보도를 보았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크라우더연구소 프랑스와 바스탱 박사팀이 주인공이다. 기존 도시나 농경지를 그대로 두고, 어디에 얼마의 숲을 새로 조성 가능한지에 대한 계량화 연구다. 결과, 숲 가꾸기를 통해 지구촌에 삼분의 일 가량의 숲을 늘릴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리되면, 산업화 등 인간에 의해 대기에 오염된 삼천억톤에 달하는 탄산가스 중, 이천오십억톤을 늘어난 나무가 흡수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나무나 풀이 탄소동화작용을 통해, 공기 중 탄산가스를 흡수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환경의 위험을 인지한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지구촌은 발 벗고 나서지를 않았다. 이런 여건 하에 숲이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을 과학적으로 계량화하여, 달성 가능한 목표로 제시한 연구가 발표된 일은 고무적이다. 지구온난화와 생태환경의 황폐화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 모든 생명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다.지구온난화로 머지않아 북극 얼음이 다 녹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온난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물증이다. 풀 클로버는 기후변화에 곧바로 도전하여 저렇게 다모작으로 대응하고 있지 않은가. 겨울 끝자락부터 시작된 클로버의 하얀 꽃 다모작 도전장은 어쩌면 인간에게 내민 경고장인지도 모른다. 이 미증유의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만든 자업자득이니 꼭 결자해지하라고. 그리고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2019-07-14

새참

송귀연 수필가다시마를 씻고 멸치를 다듬는다. 부추나물무침, 애호박볶음, 계란지단, 오이채, 김치, 이렇게 다섯 가지로 고명을 정했다. 맛있게 차려내야지 다짐을 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이다. 에어컨을 켜놓은 부엌이 한증막처럼 더워 연신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친다. 혼자서 허둥대다보니 벌써 오전 새참시간이 코앞이다.장마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부랴부랴 감자수확을 하게 되었다. 과수(果樹) 사이 노는 땅에 심은 감자는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막상 급하게 수확을 하려들다 보니 손이 모자랐다. 겨우 세 명 정도 일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귀농한 우린 둘 다 농사일이 서툴렀다. 체계적 일의 순서를 몰라 우왕좌왕이다. 하늘은 곧 비라도 뿌릴 것처럼 먹장구름을 안고 있다. 밖에서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며 일꾼들이 주인을 부리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옛날 엄마는 일찌감치 아침 설거지를 끝내면서 미리 국수물을 우려내놓고 일터로 향했다. 그러고는 새참 때가 됐다 싶으면 어느새 장만했는지 정갈하게 만든 국수를 차려 내놨다. 호박볶음과 부추나물무침 정도의 고명을 얹어 내놓았지만 맛은 일품이었다. 여남은 명도 넘는 사람들의 새참을 준비하는 엄마의 몸놀림은 민첩했지만 부산하지 않았다. 내가 만든 국수는 코를 빠트리며 요란하기만 했지 결코 그 맛을 비교할 바 못된다.내가 살던 고향에는 들녘을 가로질러 기찻길이 있었다. 대체로 새참 먹을 시간쯤에 기차가 지나갔다. 시계의 알람처럼 산모퉁이 너머에서 기차소리가 들리면 아버지는 “어, 배가 출출하네. 새참 먹고 하세”라며 일꾼들을 불렀다. 품앗이 온 사람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미루나무 아래 논둑에 걸터앉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마을 쪽에서 엄마가 새참을 이고 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도 새참을 생각할라치면 빠-앙! 하고 기적소리가 들려온다.김홍도의 그림 중에 ‘새참’이라는 풍속화가 있다. 가히 더운 여름이었는지 열 명의 사람들이 윗도리를 벗다시피 하고 모여 있다. 앞섶을 풀어헤치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아낙이며, 큰 밥그릇을 든 아이, 삿부채와 술병을 든 사람, 사람들이 밥 먹는 모양을 저만치 떨어져 쳐다보고 있는 개까지 등장한다. 아마도 농사일을 하고 어데 논둑에 앉아 새참을 먹는 모습을 그렸지 않나 싶다. 어릴 적 농번기에 만날 수 있었던 정겹고 낯익은 풍경이다. 새참을 먹기 전엔 항상 고수레를 했다. 제일 나이 많은 어른이 올해농사 풍년들게 해달라고 기원을 했다. 고수레는 음식을 먹기 전 첫 숟가락의 음식을 떠서 지신이나 수신, 또는 산신에게 바치던 제의(祭儀)의 습속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고수레를 한 음식은 근처의 새와 벌레가 먹게 될 것이다. 비록 가난했지만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도 인정을 나누었던 그때가 지금보다 풍요로웠다. 새참 땐 모두 논두렁으로 모여 들었다. 푸짐하게 여분을 마련한 새참은 넉넉한 인심을 나누었다. 거나하게 막걸리 한잔 들어가면 광배엄마는 육자배기를 한가락 구성지게 뽑곤 했다. 막걸리가 과해진 만석이 아저씨는 가슴을 풀어헤치고 한나절 단잠에 빠졌다. 헤벌쭉한 입가에 파리들이 앉았지만 개의치 않았다.요즘은 거의 집에서 새참을 만들지 않는다. 아낙들이 양푼을 이고 걸어가는 대신 철가방을 매단 오토바이들이 쌩쌩 들길을 내달리는 광경을 자주 접하게 된다. 품앗이를 하며 서로 일손을 도우고 둘러앉아 농사정보도 함께 나누는 광경들은 이제 보기 힘들어졌다. 새참이 주는 고유의 정서가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어느새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두 번의 새참을 장만하랴, 감자를 캐랴, 정신없이 하다 보니 감자들은 크고 작은 박스에 잘 갈무리되었다. 제대로 씻지도 않고 누우니 팔다리며 허리가 욱신거리고 고단함이 온 몸으로 밀려든다. 다행히 장마는 조금 늦게 온다는 예보다. 마당에선 쓰르라미가 울고 고라니들 짝 찾는 소리가 이 산 저 산에서 들려온다. 낮에 장만했던 형형색색의 고명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스르르 감자이랑같은 눈꺼풀이 닫힌다.

2019-07-10

수국, 변심하다

김순희 수필가이윽고 노란색이다. 베란다로 나가니 아침 햇살이 수국의 뺨을 어루만진다. 꽃은 평생 동안 한 색깔을 고집하는데, 필 때부터 지기까지 수국은 햇살과 숱한 밀어를 주고받으며 색깔을 바꾸었다.삼촌은 수국을 즐겨 그렸다. 거실 벽은 늘 삼촌의 화랑이었고 요즘에는 수국이 한가득 피어 있다. 내가 감탄하자 삼촌은 일 년 전에 그렸지만, 아쉽게도 실패한 작품이라고 했다. 아니 화사하게 벙싯거리는 수국이 화면 가득 피어있어서 보는 내가 다 환해지는데 왜 실패작이냐고 물었다. 말 수가 많지 않은 삼촌은 작품의 제목은 ‘변심’이라며 그동안 그림 속에서 일어난 일을 조곤조곤 들려주었다.수국이 한창인 여름에 그리기 시작했다. 수채화를 그릴 때, 먼저 꽃송이를 그릴 부분에 마스킹 고무액을 칠하는데, 그래야 물감색이 종이에 곱게 먹는다. 그 해 여름이 어찌나 뜨겁던지 잠시 그림을 손에서 놓은 사이에 마스킹 액이 굳었다. 늦어도 한 달 안에 벗겨내야 하는데,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채 수국의 꽃 색을 입혀 그림을 완성했다. 벽에 걸린 지 6개월이 지나자 수국은 살아있는 것처럼 절정의 보랏빛에서 꽃이 질 때처럼 노랗게 변해가더란다. 마치 그림 제목에 맞추려는 듯.쪽지를 수십 개 접어 소복이 뭉쳐놓은듯한 봉오리, 나는 쪽지에 곱게 접힌 비밀을 하나씩 펴 보고 싶어졌다. 거기에는 ‘풀’이 아니라 ‘나무’라고 불리는 이유와 수국의 내력이 꽃들의 알파벳으로 적혀있는 것 같다.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그래서 더 궁금한 꽃들만의 정서가 ‘내 속마음을 읽어보라’며 나를 애타게 할지 모른다. 그런 이끌림에 나는 시장에 나가 참하게 보이는 수국 한 그루를 데려왔다.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보다 먼저 베란다로 나가 안부를 살피게 되고, 밤새 오종종 붙어 자다가 햇빛을 향해 기지개를 켜는 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한 치씩 커갈 때마다 그동안 보지 못한 식물의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땅의 소리에 오래 귀 기울이느라 수국은 아직 풀에 가깝다. 흙의 양분을 한 모금이라도 더 찾으려고 뿌리를 잘게 뻗는다. 발끝에서부터 색을 흠뻑 빨아올려 연둣빛 꽃을 부풀린다. 좁쌀 알갱이 같은 모습으로 입을 앙다문 채 한 달을 버틴다. 연륜을 쌓고 생각이 깊어지면 풀도 나이테를 품을 수 있다고 믿기에 수국은 피어나기를 거듭하는지도 모른다.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우리도 무르익는 것처럼 말이다.창밖에 여름 기운이 완연해지자 수국이 속내를 토해냈다. 연두 알갱이에서 어린 고양이의 귀 같은 꽃잎을 내밀었다. 수줍은듯 하나를 펴는가 싶더니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 ‘퐁퐁’ 소리가 났다. 네 귀를 다 열었나싶던 날부터 연둣빛 꽃잎 끝이 파리해졌다. 끝에서부터 시작한 푸름이 서서히 스며들어 봉오리 전체에 번졌다. 곧 푸른 꽃불이 인다. 꽃불을 진화하려는 듯 보슬비가 더해지자, 이 때 비로소 수국은 촉촉해지며 진정한 수국이 된다.한 계절 마주하며 수국을 알았다. 수국은 빛깔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토양이 중성이면 백색 꽃이 피고, 산성이면 청색 꽃이 피고, 알칼리성이면 분홍색이 핀다. 흰 꽃의 수국에 백반을 녹인 물을 뿌려주면 청색으로 변하고, 잿물이나 석회를 뿌려주면 분홍색으로 변한다. 이는 식물학자의 말이지만, 오래도록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수국의 표정과 내면을 이해한다면 실험 결과만으로 그 이유를 단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빛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어느새 나도 나이테가 겹겹이다. 연둣빛 나이 십대에는 비 오는 날이 싫었다. 하지만 갈맷빛 더욱 짙어가는 요즘에는 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러 수목원을 찾아가기까지 한다. 설익은 나이에는 변심이 부끄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 되자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나타내고 싶은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변심은 사물을 보는 마음의 눈이 무르익는 과정이다.

2019-07-03

혼밥

강길수 수필가“응.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잠자리에서 비몽사몽간에 아내에게 대답한 말이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미안하다. ‘일찍 일어나 함께 아침을 먹고, 현관에서 잘 다녀오라고 손짓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오늘부터 한 주에 두세 번 아침에 혼밥을 해야 된다는 것이 싫은 마음도 인다. 아내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경쾌하다.지난달, 웬일인지 아내가 처음으로 시니어클럽에 아침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신청자가 많아 선발될지 모르겠다고 걱정도 했다. 다행히, 걸어서 반시간 정도 걸리는 초등학교의 등교시간 횡단보도 안전도우미로 선발되었다. 오랜만에 얼마간의 용돈이라도 스스로 번다는 사실에, 그녀는 속으로 신이 난 모습이다. 좋은 기운이 향기처럼 퍼져 오는 것만 같아, 나도 덩달아 기분 좋았다.올봄 작은며느리가 오랜 기간 애쓰고, 기도하고, 기다린 끝에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낳았다. 온 가족에게 내려온 하늘의 은총이기에,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되었다. 이로써 우리 부부는, 곧 두 돌을 앞둔 큰며느리가 낳은 개구쟁이 손자까지 두 손주를 두게 되었다. 그러니 아내는 요즈음 더 기뻐 보인다. 자기가 번 돈으로, 손자들에게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런가 보다. 아내는 아침형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단다. 반면 나는 학교나 군대, 직장의 사정에 따라 아침형, 저녁형 사람으로 변모하며 살아왔다. 요즈음은 출근이 늦어 저녁형 사람으로 산다. 인터넷 서핑이나 글 관련 자료들을 찾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다. 늦는 날은 심야 두세 시경에 잘 때도 있다. 그러니 아내처럼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아침밥상을 식탁에 차려놓고 나서며, 아내는 내게 이것저것 어떻게 챙겨 먹으라고 당부한다. 주방 소리에 새벽마다 선잠을 자므로, 건성으로 대답한다. 습관이 되어 일어나는 시각은 거의 같다. 밥을 푸고, 국을 떠 혼밥을 시작한다. 아내가 추가로 챙겨 먹으라는 내용은 잊거나, 기억나도 개의치 않는다. 혼밥을 마치면 가능한 한 설거지를 하지만, 시간이 늦는 날은 싱크대에 그냥 둔다. 한 주간에 두세 번 혼밥을 하기에, 혼밥족(族)이나 혼밥러(er)라고 말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것도 차려놓은 밥상을 먹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돌아보면, 내 혼밥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오른다. 농번기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떤 날은 어른들이 다 들에 가고 없다. 할 수 없이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혼자 먹었다. 바로 혼밥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타향살이는 자주 혼밥을 하게 했다. 더구나 고등학교 때는 자취를 했으니, 친구와 함께 한 기간을 빼면 모두가 혼밥을 한 기간이 된다. 이때는 혼밥뿐 아니라 혼국수, 혼수제비도 한 적이 있다.‘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먹는 밥’을 줄인 말이 ‘혼밥’이다. 인간의 혼밥 역사는 원시시대부터라 싶다. 공동체 생활 속에도, 혼자 밥을 먹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이후 모든 세대에 혼밥은 있었을 테니,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데, 왜 근년에 와서 우리 사회는 혼밥, 혼밥족, 혼밥러(er), 프로혼밥러(professional혼밥er) 등 그 파생어들이 유행, 이슈화되며 새 문화 트렌드라고 법석을 떨까. 물론, 혼자 사는 세대가 늘어난 탓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언론 특히, 티브이 ‘먹방’의 영향이 커 보인다.약삭빠른 상혼(商魂)은 일본을 벤치마킹하여, 혼밥족을 모으고 나아가 더 양산하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사회적인 동물임은 오랜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일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란 뜻이다. 따라서 혼밥 문화가 남에 대한 무관심을 키워, 자칫 국가사회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치, 경제, 교육, 언론 등 우리 사회 지도층은 이런 관점에서 혼밥 문화를 주시하고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내일 아침도 아내가 차려 놓은 밥상이, 내 혼밥을 기다릴 것이다.

2019-06-26

홑눈과 겹눈

송귀연수필가대낮인데도 다람쥐쳇바퀴 돌듯 몇 번씩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매번 딸네 집을 찾을 때마다 길눈도장 확실히 찍어둬야지 하지만 생각은 그때 뿐, 또 이 모양새다. 홑눈의 길치가 가진 치명적 약점이다.잠자리는 겹눈에 육각형처럼 생긴 수만 개의 낱눈이 붙어 있다. 이 낱눈들이 렌즈 역할을 하여 360도 시야 확보가 가능하다. 어릴 적, 울타리 끝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려고 숨죽이며 다가갔지만 매번 놓치고 만 것도 그 때문이다. 나비의 겹눈은 넓은 범위를 보기 때문에 예쁜 꽃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색깔구분이 가능한 겹눈은 어떤 사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데 유효하다 하겠다.어릴 적 엄마는 사물에 대한 시계가 단순했던 것 같다. 슈퍼우먼 같은 엄마였지만 한 가지 못마땅한 게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원하는 일이라 해도 당신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끝까지 반대했다. 특히 남존여비로 굳어진 교육관은 딸들의 진학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나와는 심한 갈등을 빚었다. 그 여파로 아들 셋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딸들은 평생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안고 살아야 했다.집안의 큰일이나 제사 때면 꼼꼼하게 처리하느라 일이 끝날 즈음이면 아예 파김치가 돼 버린다. 쇼핑을 할 때도 찬찬히 살피지 못하고 대체로 한 가지 디자인에 꽂히기 일쑤이다. 성질이 급한 탓도 있겠지만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옷장엔 판박이처럼 비슷한 옷들로 채워져 있다. 나는 어느새 단편적인 엄마를 대물림하고 있었다.원시시대엔 남자는 사냥을, 여자는 집안에서 요리를 했다.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면서 가족의 식량을 구해야 하는 남자는 당연히 시야가 넓어야 했고 고도의 종합적 판단을 필요로 했다. 반면 여자는 집안에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시계가 좁아졌다. 자연스럽게 사고가 단편적으로 굳어졌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성적이기보다 오래된 생활환경의 영향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젊은 날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했다. 남편과 자식이 남보다 앞서길 바랐으며 부와 명예마저 거머쥐고 싶어 했다. 수천수만 개의 낱눈을 만족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의 것들은 가지려하면 저만치 달아났고 나는 또 그걸 허겁지겁 좇아갔다. 욕망의 겹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조선시대 화가인 최북은 사물에 대한 경도(傾倒)를 경계하여 자신의 한쪽 눈을 송곳으로 찔러버렸다. 시류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그림 한가지만으로 일생을 살고자 했던 때문이었다. 샤갈의 그림은 노후로 갈수록 유아적이 되었고 사물을 단순화시켰다. ‘크게 교묘(巧妙)한 것은 서툰 것과 같다’는 말로 졸미(拙美)를 추구한 추사 역시 한 가지 정신세계에 집중한 인물이다. 이들이 세상의 권력이나 부를 지향하였다면 이와 같은 시대적인물의 탄생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복잡했던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에 들어와 소욕지족(所欲知足)의 삶을 산지도 어언 수년째이다. 식료품을 구하는 일부터 사람을 만나는 일까지 모든 것이 불편한 시골생활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불편함에 익숙해졌다. 복잡하기만 했던 수많은 낱눈 같은 것들을 하나 둘 버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별을 관측하는 허블망원경은 천체를 정밀하게 보여준다. 초점을 단순화 또는 집중하는 원리로 먼 곳을 볼 수 있게 만들어졌다. 홑눈을 가진 거미는 동물처럼 정확한 상을 맺지는 않지만 세밀한 움직임을 감지하는 능력은 훨씬 뛰어나다. 모든 것을 다 보리라는 욕망을 버리고 단 하나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어쩔 수 없이 딸에게 전화를 했다. “엄만 매번 왜 그러우?” 핀잔의 목소리가 휴대폰 저쪽에서 들려온다. 어쩌랴! 홑눈의 유전자를 가졌는데. 아파트 단지 위로 키클롭스의 눈 같은 해가 선명하게 떠 있다.

2019-06-19

은혼식

김순희 수필가남편은 길치다. 포항 토박이면서 육거리에서 50년 넘게 자리를 지킨 한일냉면도 못 찾는다. 갈 때마다 헷갈려한다. 그 골목이 그 골목 같다며 내게 되묻는다. 그런 사람이 술에 만취한 상태로 집을 찾아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길치들이 한 번 갔던 길을 기억하는 방식이 따로 있단다. 골목을 가다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게 보이면 모퉁이를 돌고 또 한참 가다가 쓰레기통이 보이면 좌회전한다, 이런 식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비게이션을 보면 되지 하겠지만 길치들은 보고도 해독을 못 해 길을 잘 못 접어들기 일쑤다.반면에 나는 길을 잘 찾는다. 아니 첨부터 잘 찾는 사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길치 남편 옆에서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어지간한 길은 혼자서 잘도 다닌다. 새 차를 살 때에 꼭 필요한 사양에 내비게이션은 넣지 않자 세일즈맨도 의아해했다.25년 전, 동네 어귀의 용다방에서 맞선을 봤다. 억지춘향처럼 엄마의 권유에 못 이겨 나간 자리에 남편이 있었다. 차 한 잔만 마시고 와야지 하며 갔다가 말이 잘 통해 저녁까지 먹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후식으로 칵테일을 마시며, 내 손에 낀 세 개의 링 반지가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만나던 남자들이 헤어질 때 하나씩 해 준거라며 웃어주었다. 이 정도면 놀라 자빠졌겠지 했지만 며칠 뒤 애프터 신청이 왔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과 나는 한 가지 일을 두고도 다른 생각을 했었다. 선 보기 싫어 30분 늦게 나갔지만 여자는 원래 조금씩 늦게 오는 것이라 여겼단다.두 번째 만남에 친구를 네 명이나 데리고 나가 바가지를 씌웠다. 정 떨어져 도망가라고 한 일인데 남편은 자신이 맘에 들어 친구까지 소개시켜 준다며 좋았단다. 신명나서 노래방까지 따라와 취한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집까지 데려다 줬다.다음 날 더 만날까말까 하는 내게 친구들은 사람 괜찮다며 더 만나라고 부추겼다. 그렇게 우린 부부가 되었다.영화 ‘그린북’에 글에 대해 문외한이던 운전기사가 시인이 되는 방법이 나온다. 공연 여행을 하며 흑인 피아니스트가 이탈리아 출신 백인 운전자에게 편지를 불러줬다. 그러다 두 달쯤 되니 기사가 혼자 편지를 쓰는 걸 보고, 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느냐고 하니, 감 잡았다고 했다. 감 잡은 첫 문장은 이랬다. “디어, 여보. 당신은 가끔 집 같아. 노란 불이 켜져 있고 행복한 가족들이 웃고 있는 그런 집말이야.”피아니스트는 감 잡은 거 맞다며 웃었다. 두 달 만에 주먹 쓰는 건달이 시인이 되었다.시인이 되는 방법과 행복한 결혼생활 하는 방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부부가 닮아 가는 것은 서로 다른 공간에 살다가 같은 공간에 살면서 습관도 식성도 얼굴도 닮아 가는 것이다. 25년 동안 안 맞는 부분은 서로 맞춰가며 익숙해졌다. 살면서 느낀 거지만 모든 게 꼭 맞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달라서 더 편한 것도 있다. 둘 다 카레이서인 것보다 길치남편에 길눈 밝은 아내가 더 궁합이 맞다. 남편은 물김치가 풋내가 나는 걸 좋아해 맛있게 익기 시작하면 손을 대지 않는다. 신김치는 내 몫이다. 난 적당히 익어서 채소에 힘이 빠진 김치가 입에 달다.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나는 목과 날개를 고르고 남은 모든 부위는 남편 차지다. 술을 좋아해 늘 즐기는 남편에게 술 한 잔 못하는 나는 재미없는 술 상대이기 보다 술값이 덜 들어 좋단다. 음식 끝에 마음 상할 일은 없다.은혼식에는 25년 동안의 무사한 결혼을 기념하며 은으로 된 물건을 주고받는다. 만사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남편은 올 해가 25주년인 줄 모르고 있다. 좋은 남편으로 가는 길을 거의 다 와서 입구를 못 찾고 헤매는 것 같다. 받고 싶은 선물 목록을 주며 엎드려 절을 받을까 말까 며칠 고민해야겠다.

2019-06-12

오매, 보고 싶어요

강길수 수필가오매!*죄송해요. 오매 하늘나라 가신 지가 올해로 두 번째 강산이 변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습니다. 어쩌다 오매 생각이 나면 내년이거니 하며 지냈는데, 어떤 일로 조문록을 보다가 올 오월 열 이튿날이 스무 번째 오매 기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얼마나 무심히 살았으면 열 주기는 물론, 스무 주기도 기억하지 못하고 지나쳤을까요. 매년 기제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도리 다했다고 여겼지요. 뒤돌아보니 결혼 후 오매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신 뒤에도 제 살기에 매몰되어서 ‘오매!’라고 이름 한번 정답게 불러드리지 않은 걸요. 올봄은 유달리 꽃들이 앞 다투어 핍니다. 예전보다 훨씬 많고, 아름다운 봄꽃들입니다. 오월엔 이팝꽃, 아카시아꽃, 장미꽃, 찔레꽃, 딸기꽃, 금계국이 흐드러집니다. 더디어 인동덩굴에도 꽃이 핍니다. 금은화(金銀花) 말입니다. 오매 만난 듯 반갑습니다. 가슴에 스며드는 그 향기가 바로, 오매 내음이기 때문이지요. 동네 어귀 둔덕이나 거랑 가 돌 더미에 산딸기나무, 복분자나무, 찔레나무 같은 벗들과 잘도 어우러져 살면서 봄, 여름 내내 꽃향기 온 세상에 선물했었지요. 오매가 물자배기 이고 오시거나, 저녁 찬거리 다래끼에 메고 들어서실 때 나던 땀내가 곧, 금은화 향기였음을 세월 흐른 후에야 저는 알았습니다.오매와 인동은 닮았습니다. 아니, 하나입니다. 겨울철 휘몰아치는 높바람에 얼굴 퍼렇게 얼면서, 추위를 이겨내고야 마는 인동의 모습이 바로 오매의 삶이었으니까요. 낳으신 일곱 분신들 중 셋을 어릴 때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사실만으로도, 오매 가슴은 퍼렇게 얼다 못해 검게 굳어버렸을 테지요. 시부모 일찍 여윈 뒤, 큰동서 먼저 떠나보내고 시동생 셋을 건사하여 분가시켰지요. 남편은 동장 등 바깥일 하느라, 집안일에 겉돌다시피 했잖아요. 그런데도 어려움을 내색한다든가, 동서나 시동생들과 말다툼 한 번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매의 한 해가 오롯이 한겨울이었으리라는 걸, 오랜 시간이 제게 가르치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오매는 우리 집 숨은 보호자셨습니다.오매!….실로 얼마 만에 불러보는 어머님의 이름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날 우리 동기들은 어머님을 이렇게 불렀었지요. 그땐, 오매가 진짜 이름이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온 동네 아이들이 자기 어머님을 그렇게 불렀으니, 어머님들은 이름이 다 같은 줄만 알았습니다. 지금 불러 봐도, ‘오매!’가 이름보다 더 정겨운 것은 그 때문일까요. ‘그래, 고맙다. 나도 오매가 좋다!’고요. 그러실 줄 알았어요. 역시 오매이십니다. 오매 살아계실 때는, 타향살이 핑계로 한 번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않았습니다.사과나무 적과작업 때 떨어지며 생긴 지병악화로, 저희 집에서 삼주 가량 계셨지요. 그때 당신 뒤처리는 끝까지 스스로 하시려 했습니다. 기력이 핍진하여 그 일을 며느리에게 처음 맡길 때에, 변모하시던 오매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절망과 부끄러움, 고마움과 안도감, 회한 등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복합 미묘한 마음이 그려진 초상화였었지요. ‘자괴감’이란 단어가 뼈 속까지 스미는 순간이었습니다. ‘너희들 탈 없이 살면 된다’는 오매 말씀을 도피처로 삼아, 늘 도망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명색이 글을 쓴다며, 오매에 대해 쓴 것은 몇 편이 고작인걸요. 다른 집은 증손까지 본 이들도 많은데, 오매는 두 손주 장가가는 것도 못 보고 떠나셨습니다.이 불효와 무례를 어찌해야 할까요. 한 가지 위안 삼는 것은, 수녀님을 집에 모셔와 ‘마리아’란 이름으로 비상세례를 받게 해 드린 일입니다. 한 달도 못되어 돌아가실 때, ‘오매! 마리아, 부디 밝은 곳으로 가요. 어쨌든지 밝은 나라로 가세요!…’ 라고 제가 귀에다 속삭여 드렸듯이, 오매는 밝은 빛 가득한 하늘나라에 계신 거지요. 오매 가신 오월의 땅에 봄꽃들이 저리도 아름답고, 금은화 향기 짙으니 말입니다. 앞으론 자주 ‘오매!’ 하고 부를게요. 오매!, 보고 싶어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오매=‘어머니’의 방언(경상)

2019-05-29

미주구리를 쓰다

송귀연수필가남편이 좋아하는 밥식혜를 담으려고 미주구리를 사왔다. 미주구리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말로 물가자미의 경상도사투리이다. 미주구리라는 말이 더 친근감이 드는 것은 그 말이 주는 날 것의 어감 때문일 것이다. 밥식혜는 주로 경북 동해안지방에서 접할 수 있다. 생선과 밥을 적당히 섞어 삭혀서 만드는데 가자미와 오징어, 고둥을 사용하며 그중 최고로 치는 게 미주구리 밥식혜이다.미주구리 밥식혜를 만난 건 어느 식당에서였다. 사실 접시에 담긴 밥식혜의 형태는 먹다 남은 밥처럼 이지러진 밥알이 다른 찬들과 섞여 있는 모습에 영 비위가 상했다. 게다가 고춧가루 범벅이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속이 매워 진땀까지 흘렀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도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조심스럽게 한 점 먹어보았다. 그 순간 최초의 선입견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새콤달콤하면서 알싸한 맛, 적당히 발효되어 쫄깃해진 생선과 아삭거리는 무의 식감은 담백하고 신선했다.어릴 적 아버지는 미주구리 생선회를 즐겨먹었다. 아버지는 미주구리회가 먹고 싶을 때면 유난히 장날을 손꼽았다. 시장가거든 잊지 말고 꼭 사오라며 집을 나서는 엄마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버지는 미주구리 회를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을 맛있게 들이키곤 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캬! 하며 미역과 함께 버무린 회를 한 입 가득 먹는 모습은 어린 내가 봐도 군침이 돌았다. 가자미는 한자로 비목어(比目魚)라 하며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서는 첩류라고 했다. 미주구리는 수심 이백 미터 깊이의 모래나 펄로 된 해저에 서식한다. 우리나라 연안전역에서 잡히지만 동해의 것을 으뜸으로 친다. 차가운 바다에서 자란 것일수록 살이 단단하고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 가자미는 맛이 달고 독이 없어 허약함을 보강하고 기력을 북돋아주는 생선이라고 한다.미주구리 밥식혜는 가을에 담으면 그 맛이 한결 더 난다. 가을엔 육질이 쫀득할 뿐 아니라 제 철인 가을무를 넣으면 단단해서 식혜가 무르지 않고 찰지기 때문이다. 깨끗이 손질한 미주구리를 소금과 엿기름을 뿌려 하루정도 발효시켜 둔다. 잘 발효되었으면 고슬고슬한 밥과 소금에 절인 무, 고춧가루, 생강, 마늘, 엿기름가루를 넣어 골고루 섞은 다음 사나흘 더 묵히면 맛있는 밥 식혜가 된다.미주구리는 가자미보다 기실 품위가 떨어지고 가격도 싸다. 외모로만 천한 취급을 당한다. 저라고 뭐 자존심이 없겠는가? 한번쯤 성골이나 진골인 광어, 도다리, 서대를 꿈꿔 본적은 없겠는가? 그러나 결코 헛된 욕망에 이끌려 자신의 자리를 일탈한 적이 없다.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문장(文)이 내용(質)보다 승하면 사치스럽고 질이 문보다 승하면 거칠다는 뜻이다. 미주구리는 질이 문보다 승한 생선이다. 사치스러운 형식보다 내면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친서민적이다.물이라는 접두사는 기준치보다 모자라거나 얕잡아보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물박달나무, 물봉숭아, 물양지꽃처럼 사물과 비교하여 비슷하지만 정통이 아닌 것을 일컫는다. 물질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에서는 성공한 사람만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한다. 이른바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지고, 사람들은 주류가 되기 위해서 경쟁하고 이기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은 소수의 주류가 아니고 다수의 비주류이다. 보통이라는 단어는 일견 힘이 없고 나약해보이지만 그것들이 뭉쳤을 때는 특별함을 뛰어넘는다. 물가자미야말로 갑남을녀이고 장삼이사이며 필부필부가 아닐까. 며칠이 지나자 밥식혜가 먹음직스럽게 익었다. 새하얀 쟁반에 정성스레 퍼 담는다. 식탁주변을 오락가락 하던 남편이 얼른 의자를 당겨 앉는다. 입안으로 한술 밀어 넣기 바쁘게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리고는 “임금의 수라상이 이만할까?”라며 괜한 너스레를 떤다. 곰삭힌 미주구리 한 점을 집어 들자 동해의 깊고 푸른 파도소리가 쏴아! 하고 밀려온다.

2019-05-22

길에서 숨다

김순희 수필가아버지는 길에서 가셨다. 일하던 곳이 길이었고, 쉬는 곳 또한 길이었다. 그래서인가. 그 곳에서 또 다른 길로 가버렸다. 아버지는 청소부였다. 이른 새벽 청소차를 뒤따르며 길을 쓸었다. 손톱과 손가락의 경계가 선명해서, 길 위에 선 아버지와 보행도로를 걷는 사람들을 구분지었다.‘아버지’ 하고 몇 번이나 불렀던가? 지금 생각해보아도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집에서도 멀찍이 앉았고, 눈 한 번 제대로 맞춰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늘 혼자였다. 아버지와 얘기하는 사람은 막내동생 뿐이었다. 아버지는 나이가 어린 막내에게는 무동과 말이 되는 놀이터였다. 점방에 갈 수 있게 해주는 돈주머니였고, 흙투성이로 집에 돌아와 엄마의 꾸중, 잔소리로부터 숨을 곳이었다. 그것도 막내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였다.다음으로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두 분의 대화는 독특했다.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눈만 마주치면 다투었다. 귓바퀴에 먼지가 가득하니 씻어라, 남들이 내 욕한다며 엄마가 내뱉으면 아침부터 잔소리라며 눈을 부라렸다. 밥 먹을 때 쩝쩝거리지 말라하면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며 더 소리를 냈다. 싸울 때만 쿵짝이 맞을 뿐 사이가 좋은 적은 없었다. 방에 누워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다짐을 했다. 결혼하지 말아야지, 만약에 하더라도 부부싸움은 하지 않아야지,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절대로.길에서 아버지를 마주칠 때면 나는 얼른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아버지도 못된 딸이 피하는 걸 아는지 불러 세운 적이 없었다. 친구들이 알아볼까 두려웠다. 내가 하던 거짓말이 들통날까 겁이 났다. 멀리 아버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꼭꼭 숨어있었다.그날은 숨을 수가 없었다. 집이 싫었던 나는 교회에서 늦게까지 청년부 일을 도맡곤 했다. 늦은 밤 같은 부서 후배가 나를 집까지 바래준다고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우리 집이 가까워진다는 걸 밤공기에 묻어나는 아카시아 향기로 알 수 있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로도 느껴졌다.저만치에 짐자전거 한 대가 휘청거리며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빈자전거를 끌고 가기에도 숨이 턱에 차는 오르막이었다. 자전거 뒤에 종이상자며 고철덩이가 잔뜩 실려 있어서 헉헉 소리만 들려 올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옆에 걷던 후배가 뛰어 가더니 뒤에서 힘껏 밀었다. 나에게도 손짓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췄다. 멀리서도 한 눈에 자전거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산에서 울어대는 소쩍새울음에 내 심장소리가 묻히길 바라며, 어둠이 나를 숨겨주길 바랐다.아버지는 날 좋은 봄에 가셨다. 뺑소니 사고였다.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쫓아온 할머니의 통곡소리가 밤새 끊이지 않았다. 방바닥을 내리치며 우시다가 자식을 잡아먹었다며 며느리에게 욕을 해댔다. 할아버지는 마른 헛기침으로 시끄럽다며 역정을 내는 걸로 아들의 죽음을 슬퍼했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났다. 초상을 치러야 하니 아픈 아이를 시어머님께 맡겼다. 모유를 먹이던 터라 삼우까지 지내려면 젖을 뗄 수밖에 없었다. 약국에 가서 젖 삭히는 약을 샀다. 하지만 한 번도 먹지 않았다. 매일 줄줄 흐르던 젖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모들이 옆에서 아기가 입을 대지 않으면 젖이 잘 마른다고 거들었다. 그런 줄 알았다.둘째를 낳아 기르며 두 돌이 다 될 때까지 젖을 물렸다. 젖을 떼려고 삭히는 약을 지어먹었다. 엄마가 일러주는 대로 엿질금을 앉혀 먹어도 보았다. 가슴이 아파 얼린 양배추로 열을 식히며 선잠을 잤다. 보름 정도가 지날 때까지 젖이 자꾸만 불어서 물 한모금도 아껴 마셨다. 아버지 가실 때가 생각났다. 그 때는 아무런 통증도 없이 삭아진 젖멍울이었다. 멍울이 사그라질 때까지 실컷 울었다. 아버지 생각을 하면 길이 떠오른다. 기우뚱거리는 자전거가 보인다. 한 번도 아버지 곁에 선 적이 없었던 소녀가 가로등 그림자 뒤에 숨어있는 것이 보인다.

2019-05-15

벗, 스카프에게 바치는 예

강길수 수필가생이별을 당했다. 세상에, 바람에게 생이별을 당하다니 어처구니 없다. 사월 말에 불어닥친 살바람이 기습적 일격을 가할 줄이야. 흐드러지게 핀 이팝꽃을 시샘하는 심보인지, 꽃샘추위 몰고 온 살바람은 정든 벗을 낚아채 가버렸다. 있는 듯, 없는 듯 목을 감싸 안아 언제나 따사하게 하던 벗이었다. 벗을 만난 뒤로는 덕분에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았다. 흠뻑 든 정에 가슴이 먹먹하다. 세상의 어떤 헤어짐도 서운하지 않은 게 없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생이별이기에 더욱 마음이 싸하다.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목이 허전했다. 저절로 목에 손이 올라갔다. 있어야 할 벗이 없어졌다. 오랫동안 한 몸으로 잘도 지냈는데, 이런 일이 닥치다니! 간혹 목에서 이탈하려 할 때는, 곧 알아채고 다시 바르게 하거나 주머니에 넣곤 했었다. 한데, 오늘은 느슨해지는 목과 벗의 틈을 왜 감촉하지 못했을까. 피부의 촉감 세포가 무뎌졌었나. 맞다. 그놈의 센 꽃샘 살바람 때문이다. 퇴근길 내내 거의 태풍처럼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몸 웅크리고 옷깃여며, 종종걸음에 바빴었다. 그러니 태풍 같던 살바람의 위력이, 목의 감촉 안테나도 앗아가 버린 거다.이튿날 아침. 추적추적 부슬비 오는 날씨가 꼭 마음 같다. 잃었던 벗을 찾아 나선다. 마음 한쪽에 ‘어차피 떠났는데, 뭐 하러 빗속에 나가느냐’는 만류의 여울이 일었다. 곧바로 오래 길들여진 정의 너울이, 여울을 삼키고 온 마음에 파문(波紋)되어 밀려왔다. 우산을 쓴다. 어제 퇴근길을 역순으로, 벗이 떨어지거나 걸릴만한 이곳저곳 살피며 걷는다. 봄비 속에 자태 뽐내는 이팝꽃은 벗이 간 곳을 알까. 바람 모일만한 구석진 곳, 가로 가 화단의 화초나무 사이나 가지, 자동차 밑, 축대의 외진 곳 등 바람 방향을 고려해 다 찾는다. 사무실까지 가도 벗은 안 보였다. 책상과 근무복 주머니에도 없다. 실망이다. 아깝다. 아내에게도 미안하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나이 들면서 언제부턴가 아내가 겨울에 목도리를 하면, 감기도 덜 걸리고 좋다면서 권했다. 나는 그때마다, 거추장스럽고 찝찝해서 못한다고 버텼다. 어느 날, 얇은 화학섬유로 만든 스카프를 내밀며, 일단 한 번 목에 해 보라고 강권 하다시피했다. 보니까 정말 얇고, 큰 손수건 만하며, 색깔도 엷은 남색계통에다 둥근 무늬를 기반으로 도안한 것이어서 싫지 않았다. 목에 두르니 착용감도 좋았다. 아내의 성의를 보아서 며칠 해보기로 했다. 아내는 전에 성당 행사 때 받은 귀한 것이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하고 다니란 말도 잊지 않았다.겨울은 물론 다른 계절에도 쌀쌀하거나, 감기기가 드는 날이면 어김없이 목에 스카프를 하고 다녔다. 다만, 풀리지 않게 묶지는 않았다. 매듭이 이물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카프 대각선 모서리를 양손가락으로 잡고 당기면, 접어져 긴 삼각형 꼴이 된다. 가운데 넓은 부분을 목 앞으로 하고, 양손 쥔 부분을 목 뒤로 하여 위, 아래를 한번 뒤집어 당겨 목과 밀착 정도를 맞추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스카프는 절친한 벗이 되어갔다. 없는 듯 있어 부담 없고, 필요할 때 꼭 거기에 있는 존재, 바로 둘도 없는 벗으로 변한 것이다. 섭섭한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이런 생각이 났다. ‘오늘 봄비 속에 잃은 벗을 찾는 일을 벗, 스카프에게 바치는 예(禮)로 삼자!’고…. 사람이나 절대자에게만 예를 바치라는 법은 없으니까. 또 정든 벗 잃었으니, 예를 갖추는 것이 옳다는 마음 추임새도 생겼다. 큰 나무나 바위 같은 자연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했던 선인들의 토테미즘도, 미신으로만 터부시할 일은 아니리라. 어떤 존재가 뜻을 갖기 위해서는, 뜻을 부여할 수 있는 의식(意識)의 소유자가 그 존재에게 뜻을 부여할 때만 생겨나는 법일 테니까 말이다. 돌아올 때 벗을 한 번 더 찾아보는 행동이, 마치 예에서 올리는 행위기도로 여겨졌다. 결국 벗, 스카프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기도가 우러났다.“벗, 스카프야! 부디 어느 아리따운 소녀의 새 벗으로 부활하여, 더 아름다운 또 한생을 살려무나!”

2019-05-08

꽃눈 솎기

송귀연수필가봄의 잉여를 솎아낸다. 도톰한 입술을 내밀며 새순들이 해바라기하듯 가지 끝에 앉아 있다. 장갑 낀 손에 지긋이 힘을 준다. 겨우내 혹한을 견뎌낸 여린 생명들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위로 향한 꽃눈들은 햇볕에 과다 노출되어 제대로 된 결실이 어렵기 때문에 솎아내기를 해야 한다. 채 피어나지 못한 생명들이 내지르는 단말마가 애처롭다. 하지만 가을의 알찬 수확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하는 통과의례다.귀농은 퇴직 후 소일거리가 없어진 남편을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처음엔 작은 텃밭을 꿈꾸었지만 뜻하지 않게 지인으로부터 과수원을 소개받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과수원 모퉁이에 작은 컨테이너를 앉히고 집에서 자동차로 사십 여분의 거리를 오가길 몇 달간 반복하였다. 결국 일손이 자주가야 하는 과수의 특성상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서둘러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를 했다. 편리한 도시생활에 익숙해있던 몸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몸살이 나는가 하면 갑자기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투기도 했다. 도회생활에 대한 일종의 금단현상이었다.꽃눈솎기는 꽃이 필 때 영양분 소모를 줄이는 한편, 초기생육을 좋게 하여 결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욕심을 내어 필요이상의 꽃눈을 놔두면 전체적으로 나무는 충분한 결실을 맺지 못한다. 꽃눈 한 개 솎아낼 때마다 “미안해”라고 말하며 대신 아파했다. 그러면서 내 안의 욕심을 버리는 연습도 하게 된다. 법정스님은 버리지 않으면 새것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제대로 버릴 수 있어야 제대로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꽃눈솎기를 통해 배우게 된다.금을 추출할 때 연금술사들은 여러 차례 불순물을 버리고 걸러내는 제련과정을 거쳐 빛나는 보석을 만들어낸다. 불순물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그 가치가 낮아져버린다. 도자기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채취한 흙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더러운 물질은 걸러서 버리고 가라앉은 깨끗한 흙을 분리 숙성시킨다. 숙성된 흙을 물과 반죽하는데 꼬막밀기로 흙속의 공기를 제거한다. 이처럼 제대로 된 여과과정을 거쳐야 아름다운 도자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소나무 한그루, 잣나무 세 그루, 집 한 채가 전부인 쓸쓸하고 황량한 그림을 그렸다. 여백이 더 많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꽉 차있다는 충만한 느낌을 받는다.남편과 나의 관계도 일련의 제련과정을 거쳤다. 성격이 급한 남편과 소심하고 조심성 많은 내가 흰머리 희끗한 세월을 함께 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린 서로 자신의 것은 내려놓지 않고 상대가 변하기를 고집했었다. 멀리 한곳을 보지 못한 채 마주보며 서로의 단점을 먼저 헤집었다. 싸우고 화해하고 다시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편안한 관계로 변화하게 되었다. 서로의 단점을 이해하고 자신을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생각해보면 움켜쥐려고 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남편의 출세며 아이들의 성공이며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은 올가미처럼 나를 옭아맸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부르고 나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 이제 그런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이었는지 깨닫는 하루하루다. 창가에 날아와 아침을 깨우는 새 소리며 뒤란을 지나가는 바람의 발자국소리며 맞은 편 산 너머로 지는 노을의 뒷모습은 도회생활을 버리지 않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행복이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았고 눈이 오면 눈이 와서 좋았다.다시 꽃눈솎기를 계속한다. 도톰한 꽃눈들이 발아래 눕는다. 남아있는 것들은 버려지는 것들로 인하여 소중하고 버려지는 것들은 남아있는 것들로 인하여 아름답다. 꽃눈 하나씩 솎을 때마다 내 안의 부질없는 것들도 함께 솎아낸다. 욕심과 집착과 원망과 두려움들. 삶을 완성하는 건 소유가 아니라 무소유일 것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봄이다. 내 몸의 가지에도 푸른 수액이 듣는다.

2019-05-01

꽃나무에 이름표를 달며

김순희 수필가벚꽃이 진 영일대둘레길에 또 다른 분홍빛이 꽃불을 켰다. 아, 이 꽃 이름이 뭐였지? 누가 알려줬는데 지난해 휴대폰으로 검색도 했었는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무와 꽃 이름을 잘 아는 태명씨에게 전화를 걸어 둘레길에 터널을 이루고 피어있는 꽃나무의 이름을 다시 물었다. ‘꽃아그배나무’라고 금방 알려주었다.왜 이렇게 안 외워질까? 뇌세포가 쪼그라들었나, 만날 듣고도 자꾸 까먹는다. 이름이 생소하기도 하지만 관심 부족이란 걸 느낀다. 꽃아그배나무가 내게 많이 사랑스럽지 않았나보다.나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보는 그렇게 삼사 년 된 지인이 있다. 서로 친구란 말을 하는 사이다. 이번 봄이 시작 될 무렵, 그 분이 내 이름을 쓸 일이 있었다. ‘김순이’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슴에 다는 이름표에 써서 주는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 모르게 살며시 네임펜을 들고 글자 ‘이’에 ㅗ을 씌우고 ㅡ를 받쳐 ‘희’로 만들어 주었다. 자세히 안보면 덧칠이 안 보인다. 몇 주가 지나도 이름표에 대해 물어보지 않는 것을 보니 그분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눈치다.내가 그 사람에게 꽃아그배나무인 것이다. 꽃의 색깔을 알고 어디서 많이 피는지도 알지만 정작 이름은 모른다. 친구라는 이름표가 무색해져버렸다. 슬며시 그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친구에서 그냥 아는 사람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시댁에 다니러 갔다. 아버님이 홀로 가꾸어 놓은 뜰로 나가 두릅순과 엄나무순을 따와 전을 부쳤다. 나물 반찬으로 남편과 셋이 둘러 앉아 점심을 먹었다. 두릅순이 한창이라 따고 돌아서면 금세 다른 가지에 새순이 돋는다고 하셨다. 어머님이 계실 때는 장에 내다 팔아 돈을 샀는데 그 돈 써 보지도 못하고 갔다며 쓸데없는 일만 했다며 농을 하셨다.두릅이 가득한 바구니를 보니 두릅에 대해 몰랐던 그날이 떠올랐다. 나무백일홍이 붉게 피는 걸 구경하러 ‘초곡리 칠인정’에 가다가 둑방에 노랗게 키를 세운 꽃이 눈에 띄었다. 같이 간 일행에게 이름을 물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며칠 뒤 시댁에 갔더니 텃밭 울타리에 온통 노란 어제 그 꽃이 둘러 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 자리는 봄마다 내가 두릅을 땄던 그 자리였다.먹고 싶은 순을 달고 있을 때만 가까이 할 뿐 두릅의 여름과 가을의 모습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잎이 크고 꽃이 벙싯벙싯해서 겨울과 봄의 뼈대만 세운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노란꽃술 가득 꿀이 가득해 꿀벌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늦가을이 되면 까만 씨를 맺기 위해 여름내 벌을 불러들였다.두릅의 사계절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풀도 생각이 깊어지면 나이테를 품을 수 있을까, 두릅은 풀에서 진화해 나무가 된 것 같다. 나무는 쳐다보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아버님 뜰에 두릅은 그러기엔 키가 자그마해서 나무의 특징인 듬직한 둥치가 없다. 땅에서 바로 가지가 솟아나와 끝에 연두빛 불을 켠다. 그 모습은 아직 풀의 특징과 더 닮았다.치커리는 잎만 따다 싫증이 나서 두었더니 꽃대를 쑤욱 올렸다. 맑은 하늘빛 꽃이 어찌나 고운지 사진을 찍어 만나는 이마다 보여줘도 치커리꽃을 처음 본다고 했다. 텃밭에서 몸을 낮추면 생강꽃, 당근꽃, 완두콩꽃, 꽃이 목적이 아닌 풀들의 전성기가 보였다.사람에게 부대껴 사람멀미를 할 때마다 꽃구경을 다녔다. 자주 꽃을 보다보니 멀미가 없을 때에도 꽃을 찾아나서 꽃에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관심을 갖다보니 꽃이 남긴 이야기와 사람이 남긴 이야기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들꽃이라고 부르던 아이들이 주름꽃, 개구리자리, 좁쌀냉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이름을 알고 나니 더 어여뻐 보였다. 꽃들의 이름표를 가슴에 새기고, 사진으로 일기로 기록하다보니 사계절이 지났다. 멀미도 사라졌다. 꽃의 다른 이름은 위로였다.

2019-04-24

사월의 기도

강길수 수필가마음이 옴찔해졌다. 걷는 도로가 콘크리트 틈새에 시선이 저절로 머문 때문이다. 부슬부슬 단비 오는 사월 초순 한낮이다. 어제 이맘때는 저곳에서 황금빛 해님 셋이 활짝 웃으며 오가는 이를 반겼는데, 오늘은 웬일로 그 해님들이 기도 손으로 변신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큰길 가로수 밑 잔디 새싹 사이에도, 같은 종의 쪼그만 기도 손이 여럿이다. 잔디 잎에 숨어있어, 잘 살펴야 보인다.‘황금빛 해님들이 사월의 기도를 바치다니! 사람 몸 둘 바를 모르게 하는구나.’그랬다. 도시에 살면서도 여기저기서 숱하게 보는 꽃이기에 늘 무심히 다녔었다. 한데, 그 꽃이 긴 밤 동안 올린 기도도 모자라 비 내리는 낮에 기도 손이 되어, 간절한 기도를 바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이월부터 십이월까지 끊이지 않고, 이 도시에서 저 꽃들은 만났었다. 물론 사월에 가장 많이 피었지만, 때도 장소도 가리지 않고 피고 지며, 씨앗 맺는 모습이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도 많았다.기도는 사람만이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알고 보면 그게 아니었다. 바닷가나 강둑, 시냇가 방천이나 논밭 둑, 산자락이나 산 오솔길 옆, 도시 가로수 밑이나 심지어 콘크리트 틈에서까지 억세게 살아내는 여러해살이 풀 민들레…. 그 민들레가 언제, 어디에, 어떻게 살든 일구월심 기도를 올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대체 민들레꽃은 무슨 기도를 바치기에, 하늘 향한 기도 손이 저리도 애절할까. 빗물 스며들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옹골차게 오므린 기도 손이, 다부지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민들레는 일생을 기도하며 산다. 새싹 틀 때부터 잎은 하늘 향해 손 벌리고 기도한다. 꽃이 피면 낮엔 고개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 벌린 기도를 한다. 밤엔 아예 꽃이 기도 손으로 변한다. 꽃 지고 씨앗 여무는 기간은 밤낮없이 손 모아 기도한다. 지난 이월, 놀라며 만났던 민들레꽃 한 송이와 관모(冠毛) 송이 하나. 그땐 기후변화란 시대 징표만 보았지, 민들레의 삶 전체에 스민 기도는 느끼지 못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저지른 환경오염 카르마도 못 본체 살고 있으니, 저 민들레가 대신하여 기도하며 사는구나 싶다. 다가올 미증유의 시대를 대비하여, 철 가리지 않고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자손을 퍼뜨리는 메시지가 오늘에야 마음에 와 닿았다. 학창 시절 제 발로 친구와 성당에 찾아가 영세하고, 기도생활을 한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내 기도는 거의 형식적이거나 이기적, 의무적으로 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성(理性) 있는 인간이라면, 민들레처럼 시대 징표를 읽고 대처하는 진정한 기도와, 그에 걸맞게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마땅할 터다. 이를테면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물 한 방울, 휴지 한 장 아껴 쓰며, 세제 한 방울이라도 덜 쓰고, 밥알 하나 소중하게 남김없이 먹는 그런 삶을 꾸려왔어야 했다. 그런데도 늘 타성에 젖어, 기도와 무관하게 적당히 세상살이에 타협하면서 살아왔다. 오늘, 삶이 곧 기도인 민들레 앞에서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누가 감히, 식물을 하찮게 여기고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지구 생태계 생명들 중에 어느 종이 가장 이타적으로 살고 있는가. 바로 식물이다. 미생물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그 삶의 기반을 식물에 두고 살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진실이다. 민들레만 하더라도 뿌리에서 잎, 꽃까지 식용이나 약용, 술과 마시는 차의 재료로 쓰이며 자기를 온전히 사람에게 바치고 있지 않은가. 혹자는 독초도 있고,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 고등생물들에 해로운 식물도 있다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식물들도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다만 인간이 아직 모를 뿐일 테니까.비록 늦었더라도, 민들레 따라 사월의 기도를 올리자. 기도가 삶으로 이어져,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와 열정을 닦자. 민들레꽃 관모가 바람 타고 높이 날아 번성하듯, 나도 희망의 관모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내자.

2019-04-17

보라고 봄이구나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봄이 쳐들어오는구나 혁명처럼 목련이 피고 목련이 후두둑 지고 동백과 개나리 진달래 잇달아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수수꽃다리…. 차례를 기다리고 눈부신 봄볕에 부드럽고 은밀한 봄바람에 천지가 꿈틀대며 기지개를 켜는구나 아아, 봄이 불가항력으로 진주해 와서 구악과 폐습을 무찌르는구나 천지는 시시각각 혁명이로구나 그래서 언제까지 늙지를 않는구나. 모든 감았던 눈까풀이 열리고 눈부시게 눈부시게 보는구나 나무 줄기마다 수액이 흐르는 소리 보리밭 푸른 갈기를 흔들며 달려가는 바람 높이 떠 지저귀는 종달새 밭 어귀 샛노란 배추꽃 유채꽃 노랑나비 흰나비… 이십 년 전 삼십 년 전 사십 년 전 봄이 온갖 그리움과 설렘과 아픔과 회한으로 물밀어 오는구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한 줌 잿가루가 되기 전에 밝게 눈부시게 보라고 봄이구나 인생이여 천지여 무얼 감추고 숨기겠느냐 명명백백 백일하에 드러나는구나 껍질을 벗고 알을 깨고 나오는구나 생명의 신비의 비밀들이 낱낱이 열리는구나 부화하는 길이여 보라고, 봄이구나” - 拙詩 ‘보라고 봄이구나’다시 4월입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인도 있었지만 잔인한 것은 4월이 아니라 사람일 뿐입니다. 눈부시게 꽃들이 피고 연초록 광휘의 새잎이 돋는 4월은 가장 찬란한 달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누구나 보라고 다투어 꽃들이 피고 가지마다 새 움이 돋습니다.보라고 민들레가 핍니다. 세상에 낮고 천한 것이 어디 있느냐고, 골목길 담장 밑에도 피고, 오폐수가 흐르는 시궁창 가에도 피고,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의 틈에서도 핍니다. 자신의 처지가 바닥이라고, 사는 일이 고달프고 치욕이라고, 비관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보라고 민들레가 핍니다. 그래도 생명이란 은총이라고 민들레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거창한 것만이 행복은 아니라고 양지꽃이 핍니다. 크고 화려한 것들에 기죽고 초라해질 필요가 없는 거라고, 상대적 박탈감 따위로 의기소침해서 어둡고 우울한 사람들은 보라고 봄볕에 반짝이며 양지꽃이 핍니다. 작다고 사소한 것이 아니며 흔하다고 천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봄볕 하나면 족하다고 무덤가나 봄 언덕에 양지꽃이 피어서 세상 한 귀퉁이를 환하게 밝힙니다. 양지꽃 이웃에 제비꽃도 핍니다. 오랑캐꽃, 앉은뱅이꽃, 병아리꽃, 장수꽃, 반지꽃, 여러 이름으로 불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생긴 모습대로 핍니다. 키가 작다고 비관하지 않고 누구를 닮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보라색이면 보라색인 대로 하얀색이면 또 그런대로 염색을 하거나 성형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이웃인 양지꽃과 많이 달라도 서로 다투거나 배타적인 감정 따위 가지지를 않습니다.봄꽃 중에 상당수는 장다리꽃이지요. 무 배추로 담근 김치는 날마다 먹으면서도 무와 배추의 장다리꽃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봄에 심은 무 배추를 그대로 두면 장다리가 나와서 꽃이 피지요. 그 씨를 받아서 다시 심으면 가을의 김장거리 무와 배추가 되고요, 사람들은 무 배추를 채소로만 생각하지만 정작은 장다리꽃이이야말로 본연의 모습입니다.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봄날 밭머리에 노랗게 핀 장다리꽃이 가장 배추다운 모습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명성이나 감투에 가려진 것이 사람의 참모습이 아니란 것도 잊고 살지요. 부와 권세와 명예를 쫓다가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보라고 장다리꽃이 핍니다.모든 나쁘고 아픈 기억과 상처들을 지우고 다시 시작하라고, 겨우내 삭막하고 앙상했던 산과 들을 온통 신록이 뒤덮고 있습니다.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일제히 폭죽처럼 터져 나오는 신생의 함성에 귀막고 눈 감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온갖 꽃과 신록이 형형색색 광휘를 내뿜는 생명의 축제를 한사코 외면하고 비탄과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눈 있는 자들은 보라고 다시 봄입니다.

2019-04-10

당달봉사

김순희수필가‘진달래는 바빠서 꽃부터 대뜸 피운다. 재거나 뜸들이지 않고 결론부터 말한다. 가지 끝에 여러 송이 분홍빛을 켜고 봄은 이래요 한다.’ 친구가 보내준 문자메시지다. 어느 사진작가가 한 말이라며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고 했다. 봄꽃은 꽃을 먼저 피운다.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목련, 벚꽃, 개나리까지 회색빛 가지에 푸른 물이 들기도 전에 꽃잎을 장식한다. 성질 급한 나와 닮았다.그런데 며칠 전 아침신문에서 개나리나 진달래도 잎이 난 다음에 꽃을 피운다는 기사를 보았다. 새로 가지가 자라서 잎이 난 뒤에 꽃눈이 맺힌다. 그런데 막상 꽃을 피울 때가 되면 겨울이 닥친다. 꽃눈은 눈 속에서 겨울을 나고 따뜻한 봄이 되면 비로소 꽃이 된다. 그 꽃이 지고나면 나무는 겨울을 나려고 떨구었던 푸른 잎을 다시 만들어 입는다.성질이 급해서가 아니고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서 미리미리 준비한 것이란다. 식물은 동물처럼 좋은 환경을 찾아 옮겨 다니지 못한다. 할 수 없이 꽃피는 시간이라도 달리해야 다른 식물과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오랜 경험에서 꽃을 먼저 피웠건만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본다.결혼을 코앞에 둔 봄이었다. 남편이 나를 내려 주려고 우리 집 앞에 주차를 했다. 하루 종일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시간인데도 헤어지기 아쉬워 차에서 두런거렸다. 그러다 앞에 세워진 차를 보며 내가 물었다. “우리 집 근처에 인천시장님이 사나봐.”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며 남편이 자세히 말해보라기에 앞 차를 가리키며 얼마 전부터 근처에 세워져 있는데 ‘인천시장 1234’라고 써 있지않냐며 얼굴에 물음표를 그려보였다.남편은 한참을 웃고 나서야 설명해주었다. 그건 임시번호판이었다. 차가 출고된 공장이 인천에 있어서 인천시장이라 적는다고 했다. 울산시장과 창원시장 차는 못 봤냐며 껄껄댔다. 그때까지 우리 집엔 자가용이 없었다. 그래서 임시번호판이 뭔지 알지 못했다. 그런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본다.초등학교 시절 O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읽었다. 그림을 공부하는 존시는 유명한 화가가 되겠다는 꿈도 이루지 못한 채 폐렴으로 죽어 간다. 창밖에 보이는 담쟁이 잎을 세면서 그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고 말한다. 마지막 잎이 떨어지던 날 밤, 이웃에 사는 베어만이 비바람을 견디며 인생의 역작을 벽에 남겼다. 그 그림을 담쟁이 잎으로 본 존시는 용기를 얻고 살아난다. 사람의 목숨과 담쟁이가 잎을 떨구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병에 못 이겨 약해질 대로 약해진 존시는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의미를 부여했다.글을 읽고 궁금한 것이 있었다. 비가 오면 벽에 그린 그림이 지워질 텐데 어떻게 담쟁이 잎이 밤새 그대로 있었을까? 시골 초등학생이던 나는 그때까지 물감이라고는 수채화 물감 밖에 몰랐다. 물을 타서 쓰는 수채화물감으로는 비바람을 견디는 잎을 그려 낼 수 없었다. 글쓴이가 뭔가 착각을 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눈을 뜨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니 장님이나 다름없다.지금 나는 당달봉사를 면해보려고 신문을 본다. 더 깊이 알고자 책을 읽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여러 강의를 찾아다닌다. 고전문학읽기를 몇 년째 참여하고, 지난해부터는 보드게임 동아리에 들었다. 그 흔한 블루마블 게임조차 구경도 못해 본 내가 한참 어린 회원들 사이에서 게임의 룰을 익히느라 머리에 쥐가 난다. 도형으로 심리 알아보기는 올 봄에 새로 시작한 공부이다. 동그라미, 세모, 네모, S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타고난 기질을 알게 된다. 봄 내내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할 것이다.문제는 오늘 하나를 머리에 저장하면 어제 배운 두 가지가 빠져 나간다는 사실이다. 뭐가 그리 바쁜지 금세 저버리는 봄꽃처럼.

2019-04-03

율산리 別曲-감자심기

송귀연 수필가바야흐로 봄이다. 이맘때면, 언 땅이 녹고 동면 들었던 벌레가 기어 나오며, 물고기들이 얼음장 밑을 돌아다닌다. 남편은 묵혀두었던 관리기를 꺼내 엔진이 부식되었거나 고장 난 곳이 있는지부터 점검했다.우수가 지나면 밭갈이가 시작된다. 울퉁불퉁 했던 땅이 순식간에 갈아엎어지면서 부드러운 평면이 펼쳐진다. 기계가 해내는 작업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유박비료와 퇴비를 듬뿍 뿌리고 다시 한 번 갈아엎은 뒤 고랑을 만든다. 땅이 가르마처럼 정갈하게 양쪽으로 갈라진다. 다음은 비닐 씌우기이다. 작업순서가 바뀔 때마다 부속품을 교체하기만 하면 관리기가 척척 알아서 해준다.감자심기는 대체로 3월 중하순경 시작하지만 우린 3월초에 심기로 했다. 대신 냉해를 대비해 이중 비닐멀칭을 할 예정이다. 이 방법은 처음 시도해 보는 것이지만 북쪽지방에서 고추재배 때 하는 방법을 응용해보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확이 앞당겨진다. 감자를 일찍 캔 뒤 곧바로 고구마를 심을 계획이다. 늦어지면 심이 생겨 맛이 떨어지게 된다.올해는 수미감자, 홍감자, 자주감자 등으로 골고루 섞었다. 웰빙, 다이어트 등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요즘엔 사람들이 다양한 색깔의 감자를 찾기 때문이다. 사과농사 뿐 아니라 밭작물도 재배하기에 잠시도 한눈팔 겨를이 없다. 때때로 고달프다 푸념도 늘어놓지만 이는 잠시 뿐이다.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일에 매진하다보면 그 가치가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온다. 고진감래의 의미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농사이다.일 년 농사의 계획은 영농일지를 기록한 후 이를 활용한다. 지난해 이맘 땐 뭘 했는지, 어떤 병충해엔 무슨 방제로 효과가 있었는지를 일일이 정리해놓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정약용은 가난을 딛고 성실하게 일하는 농민의 모습을 노래한 ‘보리타작’이라는 농부가를 지었다. 그의 둘째아들 정학유는 ‘농가월령가’를 지어 농가에서 각 달마다 해야 할 농사일과 세시풍속, 예의범절 등을 꼼꼼하게 적었다. 이는 새롭고 가치 있는 삶을 평민들의 현실에서 찾고자 한 당시 지식인들의 경향을 엿보게 하는 자료들이다.도연명의 ‘도화원’ 같은 이상향을 이곳 전원에서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마음이 멀리 있으면 사람 많은 곳에 있어도 그 곳은 산중과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나는 사람에 섞여서도 외로움을 느꼈다. 지난날 사소한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한 것이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이곳에선 다툴 사람이 없어 마음이 편안하다. 전원생활은 늘 자연과 함께 하기 때문에 고요하고 평화롭다. 과수나 채소들은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자연을 거스르거나 시간을 역행하지 않는다.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고 욕심을 버리게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해하며 유유자적하게 된다. 차가운 시멘트로 둘러싸인 아파트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이다. 젊은 나이에 일찍 선택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아이들은 들어서자마자 소파에서 쿵쿵 뛰기도 하고 두 팔 벌리고 비행기놀이도 한다. 번개파워맨 옷을 걸친 손자가 이얍! 소리를 내지르는 모습에 모두가 폭소를 터뜨린다. 남편 역시 산기슭에 쓰러진 잡나무들을 끙끙거리며 실어 나르면서도 즐거운 표정이다. 전기톱으로 길이를 알맞게 자르고, 다시 정과 도끼로 쪼개어 장작을 만든다. 도끼질 하는 자세가 익숙한 자연인 같다.남편이 모종삽으로 구덩이를 파면 감자의 씨눈이 위로 향하도록 해 얼른 집어넣었다. 그리곤 흙을 이랑보다 도탑게 덮었다. 그런 후, 이중멀칭을 위해 비닐을 덧씌웠다. 잡초와 햇볕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편으로 가장자리는 검정, 가운데는 흰색인 비닐을 사용했다. 양쪽 끝에 둥근 모양의 철사를 40㎝ 정도의 간격으로 박은 다음, 바람에 잘 견디도록 흙으로 덮고 나자 작업이 끝났다. 포근한 바람이 볼을 어루만진다. 잘 발아하여 제대로 싹이 트기를 빌면서 뻐근해진 허릴 편다.

2019-03-28

다시 온 삼월

강길수 수필가다시 삼월이 왔습니다. 삼월은 설렘입니다. 유년시절 삼월이 연록새싹으로 찾아왔었기 때문입니다. 산골 우리 둥지 앞 양지바른 밭두렁입니다. 얼어 죽은 풀잎뿐인 두렁을 삼월 명지바람이 간지럽히면, 해님이 질세라 따사한 손길로 어루만집니다. 어느새 새싹이 옹기종기 땅을 비집거나, 마른 풀잎을 들추거나 혹은, 돌 틈새로 솟아오르지 뭡니까. 올망졸망 해님을 찬미하는 연록새싹들에, 어린 마음은 무턱대고 설렜습니다. 새싹들의 그 무엇이, 그토록 유년의 내 마음을 설레게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새 생명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풀들의 새싹이기 때문일까요. 갓 부화된 병아리라든가 갓 낳은 강아지와 송아지 같은 가축들과 함께 자랐지만, 그들은 귀엽거나 놀랍기는 해도 마음 설레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풀, 나무 등 녹색식물이 동물이나 미생물, 무생물보다 더 밀접한 무엇이 숨은 걸까요. 다른 아이들은 안 그런데, 나만 그랬을까요. 올 삼월도 어김없이 내게 찾아왔습니다. 한데, 올 삼월은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아니 언제부턴가 삼월은, 내게 시나브로 멀어지듯 다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해마다 조금씩 변하며 오는 삼월이, 무슨 메시지를 건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유년의 설렘이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있는데, 피부에 다가오는 삼월은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어쩌면 삼월이 이월에게 자리를 내주거나,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세레나. 지난 이월 말일 이틀전날, 퇴근길이었습니다. 양지바른 블록담장아래 민들레꽃 한 송이가 피어있었지요. 그 옆엔 민들레관모송이 하나가 솜털과자로 한껏 부풀어 올라 봄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월동했을까요. 근처에 월동한 장미나뭇잎도 보였습니다. 지난 겨우내 살아 버티는 쑥, 씀바귀, 냉이, 클로버, 그리고 이름 모르는 풀들을 학교운동장 한편에 조성한 녹지 곁을 오가며 지켜보았습니다.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유년의 삼월은 긴 겨울잠을 막 깬 자연의 징표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달이었다는 것입니다. 갓 돋아나는 새싹이나, 눈 녹은 물이 졸졸 흐르는 개울가 버들강아지, 따사한 산비탈의 참꽃봉오리와 같은 존재들 말입니다. 그들과 친하다 보니, 저절로 가슴속에 설렘도 싹튼 게 아닐까요. 자연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은 어린 마음이, 주어지는 자연의 징표들과 나름대로 소통하게 된 듯합니다. 산골동네에 대대로 이어지는 삶의 현장은, 필연적으로 식물을 주로 쓰며 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테지요. 식물을 의, 식, 주에 이용하며 사는 방식들은 자연히 도제제도(徒弟制度)가 되어 대물림하고, 내 유년도 그 마당의 구성원으로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여, 중학교 때부터 도시에 살면서도 주위의 식물들을 자주 바라보며 살았지요.세레나. 올 삼월 한반도는, 미세먼지에 시달리며 시작했습니다. 불쑥불쑥 미세먼지 없는 곳으로 이사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중국의 공업화 전까지는 미세먼지로 휘달려 본 기억이 없습니다. 황사를 가끔 겪은 일은 있어도, 이렇게 심각한 미세먼지대기오염에 당하지는 않았어요. 과학적으로 충분한 검정 없이 전자파, 하천수질, 광우병 같은 사안들로 온 나라를 어지럽히던 시민단체들은 대체, 어디서 뭘 하기에 미세먼지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을까요. 중국에 미세먼지문제를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는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 침묵하는 다수의 국민은 분통 터집니다.삼월에 새싹을 내던 식물들이 월동하거나 이월에 싹틔우는 기후변화와, 삼월의 심각한 미세먼지대기오염이란 시대징표들 앞에서 우리는 당하고만 살아야 할까요. 아직도 가슴에 생생히 살아있는 삼월의 설렘은, 정녕 부활할 수 없는 걸까요. 조국을, 겨레를, 삼천리금수강산을 마다하고 이민이라도 가야 하나요. 따지고 보면 기후변화징표도, 미세먼지징표도 인간이 저지른 카르마이지 싶습니다. 지구어머니의 건강을 조금도 배려않고, 물욕에만 눈 먼 인간의 자업자득 말입니다. 제발 푸른 지구행성을 함께 지켜내어 삼월의 설렘을 간절히 되찾고 싶은, 다시 온 올 삼월입니다.

2019-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