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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금은, 기원할 시간

정미영수필가한 해의 끝자락과 한 해의 첫자락을 알리는 접점에 있다. 12월 31일. 새해 달력을 넘기자 1월이 맑은 얼굴로 나를 반긴다. 매년 이맘때가 되어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면 분분히 떠나가 버린 시간과 만리장천을 건너가 버린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교차한다.신년 목표를 성실하게 세우리라 마음먹고 책상에 앉는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맞이’란 낱말이 달려오면서 내 몸과 마음을 들쑤성거린다. 첫 다짐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새해 첫날 해돋이를 바라봤을 때의 마음가짐을 품고 생활하는 것은 아닐 런지.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처음 마음먹었던 때를 되새기듯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새해 소망을 빌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마음이 추슬러지고 힘차게 분발하게 된다.새해 아침을 호미곶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기에 소원을 빌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해맞이 명소 중의 하나다. 나는 새벽 동이 트면서 빛줄기가 비출 때 제일 먼저 바닷가에 자리 잡고 경건한 마음으로 해돋이를 기다리려고 했다. 상생의 손 위로 물새들이 힘차게 날갯짓하며 비상하는 그 순간, 해오름에 흩뿌려지는 금빛가루를 맞으며 소망을 비는 내 모습이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호미곶에서의 해맞이 기원은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올해 새해 소원은 친정어머니처럼 정화수를 떠놓고 빌어야겠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이면 대접에 정화수를 받아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그 모습이 늘 한결같다. 주택에 살 때는 이른 새벽 장독대 위에 물을 놓고 식구들을 위해 기원했다. 지금은 아파트 생활을 하니 싱크대가 장독대 역할을 한다. 그 옛날 우물에서 길어온 물은 정수기물이 대신한다.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이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몸살이 나서 누워 있다가도, 모처럼 여행길에 올랐어도, 생수 한 사발을 떠놓았다.“엄마, 어쩜 그리 부지런해.”“물 한 그릇 떠놓는 게 뭐가 어렵노!”어머니는 나에게도 권한다. 내가 보기에 기도할 경건한 장소를 찾아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니 번거롭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손을 하지 못하고 있다.작년 여름, 어머니와 함께 휴가를 보냈다. 어느 바닷가 근처에 하늘을 지붕 삼아 텐트를 쳤다. 그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어머니는 코펠 그릇에 물을 떠놓고 여행지에서의 안전을 빌었다.나는 조그마한 그릇 안을 들여다보았다. 손바닥만한 그곳에 파란 하늘이 들어 있고 흘러가는 구름이 잠시 머물러 있었다. 바람과 새가 드나들기를 되풀이하기도 했다. 내가 무심코 보았던 어머니의 정화수는 생명을 담고 우주를 담고 있었다. 그냥 물이 아니라 어머니의 믿음과 정성이 들어 있었다.어머니는 소원성취를 빈 물로 쌀을 안친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밥이라 친정에 들렀을 때 가끔 식사를 거르고 싶다가도 억지로 한 술 뜬다. 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면 역시 먹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내 평범한 행동 하나에도 어머니는 행복해 하고 특별한 의미를 둔다.어머니의 삶은 항상 식구들 위주다. 어머니의 촉각 더듬이 또한 항상 자식을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내 몸이 아플 때면 남편보다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뜨거운 것을 만질 때에도 ‘엄마’하고 소리 내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럴 것이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기도하는 어머니의 손’이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자식을 위해 먼저 기도하시고,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기 전에 자식을 위해 먼저 눈물 흘리시는 어머니의 손. 나이가 들면서 여성은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서툴지만 비손을 하련다.신축년 새해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기원할 시간이다.

2020-12-30

다시 봄을 추억하다

배문경수필가1954년 오늘 조지프 머레이와 하트웰 해리슨이 환자에게 쌍둥이의 콩팥을 이식했다. 인간의 장기이식에 성공했다. 신장이식이라는 획기적인 일을 통해 인간의 수명은 더욱 연장되었다. 더 나아가 생명은 선순환의 신기원을 이루었다.오래전 만난 할머니는 흰 머리를 곱게 빗어 늘 비녀를 꽂았다. 참빗이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통과하는 사이에 몇 올은 버려지고 매끄러워진 머리는 정수리에서부터 쓸어내려 뒤로 쪽을 지었다. 여든을 넘긴 몸 어디에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단호함이 서렸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죽음으로 가면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호스피스병동이 없는 병원의 일 인실에서 통증을 어떻게 참으며 자신을 다독였을까.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암이 천천히 전이되거나 죽음으로 천천히 간다. 그래서 가족들은 환자 당사자에게 쉬쉬하며 돌아가실 때까지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식들이 힘들까 봐 도리어 침묵한다. 그 마음속에는 묵직한 바위 하나가 들어 있었으리라.할머니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아들과 며느리, 딸들이 그들의 자식들을 데리고 자주 왔다. 먼 곳의 자식들은 주말에 들러 계절과일을 깎아 두거나 정성들인 음식을 갖고 왔다. 할머니는 큰소리로 말하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다.간혹 할머니가 창가를 서성이거나 밖을 바라볼 때 슬픔의 무늬가 어른거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담아둔 살아온 삶의 회한이 왜 없었을까. 살고 싶다고 발버둥을 치고 싶지는 않았을까. 아무도 할머니께 그 죽음으로 가는 길을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이 결국 마지막을 향해 열려있는 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했다. 찬찬히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단단하고 정갈한 마음가짐을 엿볼 수가 있었다. 자신을 잘 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쪽은 늘 무거웠다.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직감할 때가 있다. 어린 날 추억 속을 더듬어보면 집에서 키우던 송아지가 암소가 되었다. 부모님께는 큰 재산이었고 나에게는 누렁소가 가족처럼 정다웠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소를 팔았다고 했다. 그 소리에 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소를 실은 트럭이 덜컹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그 트럭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집에서 가족처럼 함께 하던 소를 보았다. 소는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도살장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알고 있는 듯이.밤새 안녕이었다. 누웠던 침대 시트는 새로 깔아져 있었다. 자신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임을 알고 얼마나 절망했을까. 자식들이 힘들어할까 봐 혹은 타인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면벽 승처럼 단단히 자신을 옭아맨 채 버텼을 노인을 생각하니 마음은 나사가 빠진 듯이 덜컹거렸다. 창밖에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할머니의 몸은 대학교에 기증되었다. 의대생들의 해부학 시간에 실습용으로 제공되리라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몸이 의학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속내를 밝혔다고 했다. 여든이 넘은 노인이 어떻게 기증을 생각했을까. 그토록 대단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정신력의 산물은 아니었을까.결코, 쉬운 결정이 아닌 사체 기증을 승낙한 할머니는 온 도시를 불붙이던 벚꽃이 채 다 떨어지기도 전에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맺혔을 눈물 한 방울은 금강석처럼 반짝이지 않았을까. 고요의 시간 속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를 본 것 같았다.오늘 그 할머니를 다시 생각한 것은 누군가의 생명이 누군가에 의해 살아나고 있으리란 희망 때문이다. 겨울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만 봄엔 환하게 꽃이 필 것이고 냉골 같은 고통에서 벗어난 환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웃을 것이다. 선순환을 몸소 실천한 할머니가 봄꽃처럼 환하게 웃으실 모습을 떠올려본다.

2020-12-23

세모로 가는 장미

강길수수필가지지 않는 꽃이라도 된 걸까. 세모(歲暮)로 가는 12월 중순. 밤에 서리가 내릴 기온인데, 붉은 장미가 제법 많이 피었다. 높은 적색 벽돌 담장 위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 잎 스카프 두르고, 앳된 볼을 붉히며 일제히 해를 바라본다.오뉴월의 화려한 얼굴의 장미는 아니지만, 사춘기 소녀같이 수줍다. 봄, 여름, 가을 다 겪은 장미가 어찌 저리도 풋풋한 얼굴을 피워낼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라면 저승 문턱을 넘었을지도 모를 때인데, 아직도 이팔청춘을 구가하고 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마치 금단의 집이라도 되는 양, 옛 성채(城砦)같이 높은 담장 위로 피어난 수줍음에 신비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오랜 세월, 숱한 곳에서 많은 장미를 보았다. 하지만 젊은 날, 부푼 꿈속에 시작한 첫 직장의 철망 울타리에 일제히 피어났던 장미의 장관(壯觀)을 잊을 수가 없다. 계절의 여왕 오월이 되면, 철 울타리는 온데간데없고 장미 울타리가 근 십리 길을 밝혔다. 차를 타고 지나가도 사람들은 감동했다. 하물며 장미 울타리 곁 보도를 걷거나 자전거 타고 지나가노라면, 그 모습과 향기가 사람을 홀리고도 남았다. 마치, 하늘나라 울타리를 보고 있는 듯도 하였다.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시인이 되고, 작가도 되며, 음악가가 되고, 화가도 되게 만들었다.어링불 아름답던 해변에 세워진 거대한 제철소. 그 앞으로 연오랑 세오녀의 고장 도기야로 가는 길이 옮겨졌다. 길옆 보도와 공장지대를 구분하는 철망 울타리도 세워졌다. 자칫 딱딱해 보일지도 모르는 제철소의 철망 울타리에 장미를 심은 것은, 지금 되돌아보아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학교를 갓 졸업하였거나, 군에 바로 다녀온 젊은 사원들이 대부분이었던 그때의 제철소. 봄날이면 출퇴근 때마다 만나는 장미 소녀의 예쁜 얼굴과 온몸을 감싸는 그녀의 향기에 저절로 즐거운 일터가 되었다.직장을 바꾸고, 일에 매달리며 장미의 기억은 멀어져 갔다. 사는 게 무엇인지 중, 장년으로 가는 동안 마음도 시나브로 메말라 갔다. 시간의 강물이 흐르는 동안 장미 나무는 늙고, 회사의 경영진도 바뀌었다. 아름다웠던 장미도 어느 날 자취를 감추었다. 장미가 있던 자리엔 낯선 나무가 들어서고, 그 뒤로 녹지가 조성되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서, 제철소의 장미도 내 마음에서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가라앉아 버렸다.긴 세월이 흘렀다. 다른 곳에서 해마다 장미는 피고 지고를 반복했건만, 젊은 날의 장미는 내 마음에 좀처럼 다시 피어나지 않았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삶은 많이도 변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를 거쳐 지식정보화사회에 와 있다. 오프라인의 현실 정보가 온라인 곧, 정보통신의 가상세계 안에서 처리되고, 가공되며, 조정되는 시대다. 영화 ‘매트릭스’가 말해 주듯, 가상세계가 현실 세계를 좌우하는 상황들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설상가상으로 지구촌의 기후변화가 미증유의 사태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일반 시민도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생존환경의 변화가 사람은 물론 동, 식물계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보도를 통해 익히 아는 바다. 내 눈에는 사람보다 식물이 그 변화에 더 빨리 대응하고 있어 보인다. 장미도 그 중의 하나다. 장미 생육 정보를 찾아보았다. 보통 장미는 기온 25℃ 전후가 적정 생육온도이며, 밤에도 16℃ 전후가 좋단다. 또, 5℃ 정도에 생육이 멈추고, 0℃ 이하가 되면 낙엽이 지고 휴면에 들어간다고 한다.이 정보대로라면, 저 높은 담장 위의 장미는 벌써 휴면에 들어갔어야 한다. 요즈음의 밤낮 기온은 적정 생육온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앳된 소녀 얼굴을 내민 저 장미들은, 무언가 절박함이 틀림없으리라. 하여 세모로 가는 장미는, 저 높은 성채 담장 위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부르짖고 있는 게 아닐까.“사는 환경이 이리도 빨리 변하니, 우린 겨울까지 꽃피우고 열매 맺으렵니다!”

2020-12-16

수지침, 정(情)을 건네다

정미영수필가남편의 모습에 모처럼 활기가 넘친다. 봉사 가는 주말 아침이면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떤다. 그를 보며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부부에게도 이제 주변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걸 느낀다.몇 년 전, 남편은 수지침을 배워 자격증을 땄다. 그러더니 회사 자매마을에 가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람된 일을 하는 남편이 듬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못마땅했다. 나는 바깥일, 집안일, 어린 삼남매 키우느라 힘이 든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처음에는 입 안에서만 얌전하게 맴돌던 말들이었다. 나중에는 가시가 섞인 채 입 밖으로 튀어나와 남편의 가슴에 사정없이 꽂혔다.서로 얼굴 붉히기를 몇 차례 주고받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자신이 봉사하는 곳에 가보자며 조심스레 권했다. 나는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에 파고들어 자꾸만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아침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찾아간 마을 회관 역시 썰렁했다.시간이 흐르자 할머니 한 분이 남편을 마주하고 앉았다. 할머니는 온 몸이 다 쑤신다고 했다. 남편은 할머니의 거뭇하고 투박한 손 여기저기에 침을 꽂았다.뻗은 손이 힘들었던지 할머니가 팔꿈치를 허벅지에 대자,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가 저절로 굽어졌다. 할머니의 허리는 꼬부라진 자세가 더 편하다고 부추기는 듯했다. 한참을 절하듯 그렇게 있었다.남편이 할머니의 손을 뒤집어 새끼손가락의 상처를 가리켰다. 곪아 탱탱해진 것을 보고 가족과 함께 병원에 서둘러 가보라고 권했다. “가족은 무슨….”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속속들이 사정을 알지 못하니 코끝이 찡해지며 마음 한 켠이 아렸다. 잠시나마 따뜻한 시선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면 할머니의 꼭꼭 숨겨진 사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보따리 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나는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동무를 자청했다. 할머니는 조금 전의 침울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이내 함박꽃 같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마의 주름살이 펴질 듯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오랜 만에 이웃집으로 마실 나온 아낙네처럼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할머니는 침을 빼자마자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져 속에 든 것을 꺼냈다. 종이 부스러기에 섞여 사탕 한 알이 나왔다. 그 사탕을 손에 꼭 쥐어주고는 말했다.“고맙데이. 복 받을 끼다.”할머니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한 겨울 선착장에 묶여 있는 배처럼 사람이 그리우셨던 것이다. 모처럼 당신 걱정을 하는 이들과 얼굴을 맞댄 시간이 어쩌면 메마른 마음에 훈훈한 단비를 적셔가는 일이 되었을 터이다.우리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리라. 나부터 마음의 문을 열어야 상대도 내 손잡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할머니에게 바투 다가앉으니, 모자란 것이 많은 나에게 정을 내셨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가족이 아니면 어떤가, 내 마음자리에 누군가를 들여놓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자신은 행복하다고 했다. 요즈음 가족 아닌 남에게 ‘복 받을 것이다. 고맙다’라는 말을 어디 가서 들을 수 있겠냐며 웃었다. 온기 머금은 웃음 때문에 그 동안 응어리졌던 내 시린 마음이 봄눈 녹듯 흘러내렸다. 나는 예민했던 내 몸의 신경들이 느긋해지는 것을 느끼며 사탕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수지침을 꽂으며 사람에 대한 정(情)을 덤으로 건넨 남편의 마음이 내 마음밭으로 또르르 굴러 들어왔다.오늘 아침도 돋을볕을 맞으며 남편이 재바르게 움직인다. 봉사 활동을 나가기 위해 수지침 가방을 꼼꼼히 살피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남편을 뒤따르기 위해 부지런을 떤다. 그런 나를 남편이 자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따스한 돋을볕이 천천히 나에게로 옮겨오는 중이다.

2020-12-09

배문경수필가1894년 음력 12월 2일, 이날은 갑오농민전쟁 지도자였던 전봉준이 관군에 체포된 날이다. 얼마 전 전주 동학혁명관에 들렀다. 어두운 조명 아래 동학의 역사가 사건별로 붙어있었고 녹두장군 전봉준의 유일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가 부러진 그가 관원의 들것에 실려 사형장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의 혁혁한 눈빛이 금방이라도 세상을 향해 포효할 기세였다.앞선 그림 속에서는 짚신을 끌며 동학농민군이 죽창을 들고 세상을 바꾸겠노라 고함지르는 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조총 앞에서 전진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쌓이는 모습들은 처참했다. 많은 사람이 하늘을 향해 고통에 찬 소리로 울부짖었다.그들을 이끌던 그의 발도 밤새 부르트도록 산하를 헤매고 다니며 살만한 세상을 만들겠노라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풀도 밟고 흙도 딛고 물길도 건너며 세상의 온갖 것을 모두 지났을 그의 발은 누구보다 먼저 앞으로 나아갔으리라.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자신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해 주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의 나이 41세에 손화중, 김덕명과 같이 효수를 당한 후 몸은 가족들에게 인도되지 않았고 가솔들은 뿔뿔이 흩어져 몸을 숨겼다. 체포과정에서 동지의 배신으로 다리와 발을 다친 후 그는 걷지 못했다. 부은 발이 그의 사상을 향해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는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나는 바른길을 걷고 죽는 사람이다. 그런데 반역죄를 적용한다면 천고에 유감이다” 죽음에 다다라 지그시 눈을 감고 절명시를 남겼다. “때를 만나서는 천지도 내 편이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할 수가 없구나.”그는 많은 유혹 앞에서도 자신의 결정을 보이기 위해 당당하게 무소의 뿔처럼 죽음 앞으로 향했다.그의 발 앞에서 내 발을 내려다본다.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이리저리 치이기만 했다. 스무 살, 교대근무를 하던 내 발은 신발 안에 갇혀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오후 출근을 하는 삼 교대근무로 나의 발은 잠자는 시간보다 깨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제대로 씻지 못하고 자던 발은 곰팡이가 잠식하면서 자는 시간에도 가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종일 무게에 짓눌려 지상에 그 바닥을 댄 채 머슴처럼 견뎌주던 발의 저항이었다. 가려움과 물집은 약을 먹어도 쉬 낫지 않았다.쭈뼛쭈뼛하며 제자리를 지킬 때 저항에 앞장선 것도 발이었다. 발과 발이 앞과 뒤를 혹은 옆으로 대열을 갖추었을 때, 무리가 되고 하나의 큰 힘으로 뭉쳐졌다. 태극기의 모서리를 잡고 도로로 나설 때도 나의 발은 정당했다. 손과 머리가 보이는 것에 집중할 때, 나의 발은 좀 더 성숙했다. 거리의 행렬은 독재 타도를 외치고 발은 정의를 향해 그 보폭을 넓혀나갔다. 나의 스무 살은 거리에서 진실을 규명하는 일로 보내는 날이 많았다.전봉준의 발, 그의 고뇌와 삶의 그림자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지나고 보면 악행은 악행으로 선행은 선행으로 각자의 갈림길로 나뉜다. 역사란 거대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를 만난다. 보부상처럼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녔을 그의 발은 뻗은 산맥과 깊은 계곡처럼 갈라 터졌을 것이다.죽음 앞에서조차 퉁퉁 부은 발은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의 땅을 딛지 못했다.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그의 절규 앞으로 나아가 슬픔에 가닿는다.그의 큰 발걸음을 생각한다. 어둡고 눅눅한 세상을 개벽시키려 했던 그의 기개가 느껴진다. 두 발이 만들어냈던 좁은 영토의 큰 발자국. 아직도 끝내지 못한 숙제를 담고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그와 함께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여전히 혼란 속에서 몸부림친다.전시관 문을 열고 나서자 겨울 한풍이 매섭게 불었다. 칼바람에 맨몸으로 나섰을 그가 내 앞을 지나 저벅저벅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다시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2020-12-02

떠나보내기

강길수수필가늦가을….보도의 벚나무가 벌거숭이가 되어간다. 어떤 나무는 아직 절반 정도의 옷을 입고 있으나, 어느 나무는 팔 할 이상을 벗었다. 전체적으로 대강 삼분지 이 정도는 옷을 벗어 보인다.가슴이 움찔움찔하는 것만 같다. 사제나 주송자(主誦者)가 고인의 세례명을 넣어 기도하거나, 말할 때마다 그랬다. 꼭, 내가 저 관 안에 누워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강론 시간에 사제는 친절하게도, 고인의 세례명을 뜻풀이까지 하면서 여러 번 부르며 애도하였다. ‘이 미사에서, 입관 체험교육 이상으로 삶과 죽음을 체험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젊은 날부터 장례미사에 많이 참례(參禮)해 왔다. 하지만, 오늘 같은 느낌은 처음이다. 고인의 세례명이 나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같은 세례명의 고인을 위한 장례미사는 오늘이 처음이다. 다른 장례미사에서도 고인의 세례명이 호명되었는데, 왜 오늘만 다를까. 고유명사 하나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다.올 가을, 오랜 지인(知人) 두 사람을 졸지에 잃었다. 아니, 갑자기 떠나갔다. 한 사람은 초가을에, 또 한 사람은 늦가을에 아주 떠났다. 떠난 의학적 이유도 둘이 같다. 심장 쪽 잘못이다. 출신 지역도 같다. 나라가 철강업을 주력산업으로 새로 힘차게 일으키는 시기에, 두 사람 다 총각으로 이곳에 왔다. 바닷가 모래밭에 세워진 철강 제조 현장에서, 각자의 일생을 오롯이 바친 이들이다. 나는 그들과 직장은 같았지만, 부서가 달라 성당에서 만났다. 함께 활동하며, 깊은 신앙공동체 체험을 나눈 이들이다.하늘의 섭리는 내가, 두 사람을 떠나보내라고 강요하고 있다. 젊은 날 상가에 가면, 압도되며 느끼던 진한 감정들도 많이 사라졌다. 죽음이란 현실에 대한 슬픔, 고통, 거부감 같은 느낌들과 삶에 대한 부조리, 연민, 허무감 등등의 감정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의 회한인지, 넋두리인지 모를 감정의 너울이 가슴을 움찔거리게 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래서 세상은 살아보아야 아는 것인가 보다.장례미사 마치고,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보도에 벚나무낙엽이 흩날렸다. 한 줄기 갈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이리저리 구석으로 내몰렸다. 세상 떠난 그들은 어떤 낙엽을 닮았을까. 또, 어느 낙엽처럼 떨어져 갔을까. 미사에서 두 고인이 같이 생각났었다. 그들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파노라마 되며 지나갔다. 저 낙엽들은 나무가 밀어낸 것일까.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인가. 생은, 시간이란 외줄을 타고 가는 여정이다. 죽음은, 어느 순간 외줄에서 힘에 부쳐 떨어지는 걸까, 놓아버리는 걸까.마음 한쪽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이젠….’하고 말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건 아니지….’라고 한다. 지난주일, 세례명이 같아 친밀감으로 지내던 고인을 만났었다. 고향 친구 잃은 슬픔을 위로한다고, “상실감이 크지요?”라고 했었다. 내 말을 듣던 그의 차분한 표정이 떠오른다. 또 코로나로 반년 동안 얼굴한 번 못 본체, 초가을에 먼저 떠난 고인도 생각난다. 갑자기 가장을 잃은 두 가정의 가족들 얼굴도 아른거린다.자기도 언젠가 이승을 떠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가 경고한 대로 ‘깨어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세례명이 같은 지인의 장례미사가, 가슴 움찔거리게 한 이 가을의 화두는 ‘떠나보내기’다. 부조리하고 억울하더라도, 떠나는 이는 떠나가고야 마는 법이 자연이 마련한 불변의 길이므로…. 하여, 깨어있는 사람이 늘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은 ‘떠나보내기’가 아닐까.문제는 떠나보내야 하는 방법론이다. 떠나보내지 않아도, 떠나고야 마는 하늘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신해야 할까. 답이 낙엽에 있다 싶다. 낙엽은 나무에 밀려나 덜어졌든, 스스로 떨어졌든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떠나가는 낙엽이나, 떠나보내는 나무나 담담하다. 낙엽은 바람과 중력에 자신을 맡기고 매 순간 유유자적(悠悠自適)한다. 가을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하늘 섭리를 말없이 받아들이는 데 있으리라.이 가을, 황망히 떠난 두 고인을 고운 낙엽처럼 떠나보내련다.

2020-11-25

흥정

정미영수필가이사를 가기 위해 살던 집을 내놓았다. 마땅한 임자가 나서기를 바라며 아파트 게시판에 올렸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왔다. 잠시 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집을 보러 왔다.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다는 아주머니였다. 맞벌이 하는 딸의 양육을 돕고 싶어, 본인 집 가까이에 딸네가 살 집을 구한다고 했다. 꼼꼼히 둘러보면서 집이 마음에 든다고 매매 가격을 조금 더 깎자고 말했다. 하지만 곤란했다. 집을 빨리 팔기 위해 시세보다 싸게 내놓았기 때문이다.아주머니는 흥정에 능숙했다. 조금 더 받겠다고 기다리다가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내 손을 잡고 자분자분 말했다. 두 달 남은 이삿날도 딸네 전세 기한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니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다며 나를 설득했다.슬슬 조바심이 났다. 아주머니 말대로 지금 기회를 놓치면 늦도록 임자가 나서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결국 상대방이 원하는 가격에 집을 팔았다.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면서 친정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딸자식을 친정 가까이 살게 하려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결정적이었다. 집을 팔았다고 했더니 너무 싸게 팔았다며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아쉬워했다. 손해를 보긴 했어도 집이 안 팔렸을 때 생기는 마음고생은 면하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내가 아는 사람 중에 흥정을 잘하는 이가 있다. 그에게 흥정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라고 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값을 깎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기도 한단다.언젠가 포항에 놀러온 그를 데리고 죽도시장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떠밀리듯 오가며 어시장을 둘러보니 그날따라 물 좋은 생선이 많았다. 횟감을 뜨려고 함지박에 담긴 생선을 구경했다. 돔 한 마리에 만팔천 원 한다는 아주머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흥정에 들어갔다.“아지매, 보소, 내가 이태 전까지 배 타던 사람 아이가. 만 오천 원에 주소.”“그라믄 더 잘 알 텐데 값을 깎노. 주위를 둘러봐도 이 정도 좋은 놈은 없다.”돔을 건져 보이며 아주머니는 목청껏 말했다.하지만 나는 옆에서 말 한 마디 거들지 못했다. 정작 값을 깎는 당사자는 태연한데 내가 왜 그리도 미안한 마음이 들던지. 귀로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눈은 벌름거리는 생선의 아가미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손사래 치는 아주머니에게 그는 기어이 값을 깎았다. 내가 너무 했다는 듯 쳐다보자 씨익 웃을 뿐이었다. 횟감 봉지를 손에 든 그의 발걸음이 비거스렁이에 나들이하는 것처럼 가벼웠다.그는 흥정을 위해 아주 천연덕스럽게 말을 지어냈다. 옷을 사러 가면 예전에 옷가게 사장이었다고 하고, 가구점에 가면 가구 공장을 한다고 했다. 그 순간 너무나 진지해서 나조차도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꼭 그랬을 것만 같다. 가게 주인들은 믿는 척 속아주는 척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은 가자미처럼 눈을 흘기면서도 값은 깎아 준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한다.오늘 모처럼 가을 준치가 생각나 죽도시장에 들렀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먼저 달려와 반기더니, 곧바로 비릿한 생선 냄새가 온몸을 덮쳤다. 싱싱한 준치와 큼직한 전복 등을 실컷 구경하고도 건어물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신명나게 구경했다. 그랬더니 요 며칠 지쳐있던 내 몸에 시장의 활기찬 역동성이 재빠르게 스며들며 기운이 솟았다.집에 돌아오려고 다시 어시장에 들러 준치를 사려고 했다. 젊은 상인들을 제쳐두고 한쪽 귀퉁이에서 준치를 팔고 있는 할머니께 다가갔다. 사면서 값을 깎으려니 주인은 지청구를 늘어놓았다.“젊은 사람이 늙은이 고생한 걸 생각해야지….”얼른 셈을 치르고 왔지만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는 아직도 흥정에 익숙하지 않나 보다.

2020-11-18

손꽃

배문경수필가딸이 엄마에게 손가락으로 글자를 만들어 보인다. 오른쪽 검지가 똑바로 서면 1이 되고, 두 개를 세우면 2가 된다. 바닥을 향해 총을 쏘듯이 엄지를 수평으로 하고 검지를 수직으로 하면 ‘ㄱ’이 되고 반대로 하면 ‘ㄴ’이 된다. 수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낯선 수신호(手信號)에 불과하다.어느 날, 두 여성이 경찰서로 당황해하며 달려 들어왔다. 손짓 발짓을 하는데 경찰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자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고 그는 내게 전했다. 경찰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어쩌다 보니 그 해엔 농아와 관계된 사건, 사고로 경찰서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경찰인 그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했다.이후 수화를 배우기로 마음먹었고 실행에 옮겼다. 쉰을 넘긴 그가 젊은 사람들 틈에서 열심히 배운 수화로 이선희의 노래에 맞춘 동영상을 만들어 보냈다.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최고였고, 나또한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 후에도 동계 패럴림픽에 참석한 선수들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지면을 통해 보았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사람들은 생각을 입이란 기관을 통해 세상에 전한다. 하지만 새어 나오지 못하는 언어는 갈무리되지 않았고 농아는 숙명처럼 묵언의 세계 속에 산다. 어머니가 농아면 태어나는 자녀의 상당수가 그러했다. 아이를 안고 말로 교육할 수 없는 어미는 다시 자신과 닮은 자식으로 연결되는 질긴 끈을 만들어갔다. 다시 삶의 연결고리에서 좌절했을 여인들의 그림자가 길었다.그의 삶도 녹록치는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 때문에 스스로 대학을 포기하고 뱃일을 택했다. 어느 날, 잠결에 찾아든 고향 후배인 동료는 새벽일을 자신이 하겠다며 교대를 부탁했다. 잠시 후 선상에서 사고가 났다. 그물을 바다에 투척하는 시간에 그물을 묶어 둔 밧줄에 발이 걸린 동료는 바다로 던져진 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어둠 속으로 달리던 배는 항로를 다시 돌려 그 자리에 갔지만 거친 파도가 배를 맞을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은 암전이 되었다.그 날, 어쩌면 그는 신(神)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삶을 포기한 듯이 살던 그보다 더 가난했던 후배는 바다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귀에는 목선(木船)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파도 소리에서 환청을 듣곤 했다.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육지에 발을 디딘 후 그는 다시는 배를 타지 않았다. 죽은 동료의 몫까지 살기 위해 평범한 삶을 내려놓았다. 덤으로의 삶을 타인을 위해 살겠노라 마음먹었다.그는 농아교회에서 봉사했다. 어느 날 운전자의 빈자리로 인해 운전대를 잡았다. 교회에 오기위해 차를 기다리는 교인 네다섯 명을 먼 거리에서 가까운 거리까지 태웠다. 그들과 함께 할 소통에 대한 고민도 했지만 *비수지 신호를 익히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서로 신뢰가 생겼다. 나도 함께 탑승한 차에서 그들의 삶을 잠시 보았다.성가대에 두 여성이 나와 수화로 찬송가를 했다. 화면에 나오는 노래에 맞춰 손과 표정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손짓에 따라 피어나는 꽃이 공중에 피었다가 지곤 했다. 꽃은 장미였다가 수선화였다가 벚꽃처럼 번져나가자 사람들의 표정이 환했다. 그들이 걸친 보라색 성가복이 흔들리며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옆 사람을 걱정하는 눈빛과 함께 하는 공간에 대한 즐거움이 묻어났다. 나날이 조바심으로 살아가는 나와는 다른 느긋함을 그와 농인에게서 느꼈다.그들은 지상에 발을 내리며 다시 손 꽃을 내게 내밀었다. 마지막 한 사람을 내려주며 그와 농인이 함께 다시 무형의 꽃을 피웠다. 수화(手話)는 그들을 통해 수화(手花)로 피어났다.그러고 보니 오늘이 지체장애인의 날이다. 나와 타인의 거리가 조금 좁혀지는 날이 되길 기대해 본다.*비수지신호: nonmanual signals, 표정과 몸짓

2020-11-11

매흙질

정미영수필가지난 주말, 고향집을 찾아갔다. 바람벽을 보니 마른 논바닥처럼 여기저기 갈라져 틈이 많았다. 고르지 못한 벽을 손으로 훑으며, 찬바람이 불기 전에 매흙질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매흙질은 벽이나 부뚜막, 안마당에 매흙을 바르는 일을 말한다. 산비탈에서 퍼온 백토를 커다란 대야에 담고 물을 부어 흙탕물을 만든다. 그 물을 다른 그릇에 담고 하루를 재우면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데, 마치 흐트러진 상념이 가슴 밑바닥에 침잠하듯이 내려앉는다.오늘은 매흙을 미리 만들어 놓았기에, 귀얄로 바르면 된다. 일을 하는 틈틈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다른 집에 비해 자주 매흙질을 했다. 매흙질을 거치고 나면 흙벽은 매끄러웠다. 시커멓게 그을음 묻은 부뚜막도 화장을 한 새색시처럼 새 단장을 했다.아버지는 내 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맥질하는 법을 배웠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뒤였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였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친구들에게 크든 작든 보증서는 일을 도맡아 했다. 그로 인해 몇 번의 경제적 손실을 겪었지만, 누군가 부탁을 하면 쉽게 거절을 못했다.어느 해 칠월이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친구를 위해 또 보증을 섰다. 신발 가게를 몇 군데나 크게 하던 소꿉친구였지만, 그는 끝내 부도를 내고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옷에 소금꽃이 필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아버지였다.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생긴 속상함이 아버지를 병들게 했다. 가장의 책임감으로 참아오고 지탱했던 삶의 무게가 한순간 무너졌던 것이리라. 아버지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자책하며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슬픔의 무게가 묵중할수록 하루하루가 고단했기에 몸이 견디지 못했다.한참을 앓고 난 그 해 가을,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시골집으로 부르셨다. 아버지는 명절을 앞두고 매흙질하는 법을 익혔다. 처음에는 귀얄을 잡은 손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차츰 손에 익었다.매흙질은 아버지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작업이었다. 일에 집중하는 동안 상념을 잊었다고 했다. 시커먼 부뚜막이 마치 아버지의 상처 난 마음인 듯 여러 겹 두껍게 덮었다. 허물어진 벽이 마치 아버지의 어지러운 생활을 닮은 듯 거침없이 덧칠했다. 어쩌면 가족의 건강과 새로운 삶의 희망을 덧입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성싶다. 빛바래고 한 쪽 귀퉁이 떨어진 삶이라도 매흙질하듯 정성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매끄러운 모습으로 되돌아오겠지. 예전에 아버지의 손길이 지나다녔던 자리를 더듬어 찾듯 찬찬히 맥질한다. 갈라진 틈을 메우면서 나도 아버지처럼 내 생활의 고단함을 꼼꼼히 부려놓는다. 직장일과 집안일, 어린 삼 남매 키우는 것이 힘에 부칠 때가 많았다. 여러 해 동안 몸과 마음이 시달린 연유로 내 마음 벽에는 끊임없이 거칠고 뾰족한 선들이 돋아났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자를 대고 줄을 그어 매끄러운 선을 만들어 놓아도 수시로 삐뚤어지고 굽었다.고향집 구석구석을 매흙질한다. 튀어나온 직선과 끊어진 사선 같은 내 마음을 달래고 보듬으니 축 처져 있던 어깨가 곧게 펴진다. 기진맥진한 내 생활의 흔적에도 그늘이 걷히고 햇살이 드리워지는 것 같아 귀얄 잡은 손놀림이 가볍다. 덧칠을 반복하는 동안, 앞으로 펼쳐질 내 삶도 단장한 바람벽처럼 모난 데 없기를 기원한다.매흙질한 집은 아버지에게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처소였으리라. 흙마당 귀퉁이 장독대에 어깨를 겯고 있는 옹기들이 늘어서 있고, 처마 끝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대글대글한 감을 꼬챙이에 꿰어 늘어뜨린 풍경이 있어 더욱 정겨운 곳이었을 것이다.바람이 불어온다. 매흙질한 자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려주겠지. 아버지가 매흙질을 마친 뒤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운 추억들이 고향집 언저리를 맴돌다가, 서서히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2020-11-04

핑크빛 주유권

강길수수필가여직원이 불렀다. 친구의 사무실 문을 나서는 참이다. 뒤돌아서니 명함크기만한 봉투를 내밀었다. 뭐냐고 묻자, 사장님이 드리라고 한다는 말만 남기고 여직원은 총총 안으로 가버렸다. 조금 의아한 기분으로 봉투를 주머니에 넣으며 하늘을 바라본다. 벌써 때 이른 가을 저녁노을이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차에 돌아와 봉투를 열었다. 핑크색 주유권 한 장이 들어있다. 보너스 카드 포인트로 주유권을 받은 적은 있지만, 손으로 내용을 적은 주유권을 받기는 처음이다. 사무실에서 직접 주면, 내가 곤란해 할까 봐 배려하는 친구의 마음이 느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이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편치만은 않았다. 만나는 동안 부지불식간에, 동정(同情)이라도 바라는 태도를 그에게 보이지는 않았나 하는 염려 때문이다.친구 사무실에서의 상황을 되돌아본다. 내 차림이 종전과 다른 것은 없다. 방문목적도 내가 활동하고 있는 문학단체의 동인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대화도 내 문학 활동에 관한 이야기와 친구의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짧은 시간 나누었을 뿐이다. 오가는 말 중에 경제적 어려움을 말하거나,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러니 친구는 내 태도를 보고 주유권을 선물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는 호의를 베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정리되니 고맙고 즐겁다.친구의 사무실엔 이런저런 일로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들르게 되었다. 갈 때마다 그는 비서를 시켜 주유권을 선물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이 교차하기도 했다. 그러나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마음이 두 갈래로 갈리는 현상을 자각해 갔다. 한마음은 ‘그래. 전에 내가 친구 회사와 거래할 때, 주유권에 비교되지 않을 이익을 안겨주었는데 뭐 대수이랴’하는 마음이다. 다른 마음은 ‘아니야. 그건 정당한 거래였으니, 주유권과는 무관한 거야. 그러니 주유권에 담은 친구의 따사한 마음은 참 고마운 일이지.’하는 마음이다.지난봄 코로나19 사태로, 소위 재난지원금이란 공짜 돈을 정부로부터 덥석 받았다. 우리 부부 두 사람 몫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나랏빚을 늘려서 국민에게 지급한 것 같다. 우리 집의 경우, 늦은 나이에도 일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빠듯하게 살아도 그 돈이 가계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았다. 공짜라 꼭 필요치도 않은 것 몇 가지 사니 금방 다 없어졌다. 그 때문에 우리 집은 공짜심리로 과소비가 되었지 싶다. 어쩌면 정부의 숨은 의도도, 돈을 돌리기 위한 과소비 조장이 아니었을까.주유권 선물을 받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시나브로 생각도 않던 바람(望)이 마음에 자리 잡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친구 사무실에 가려고 마음먹으면, ‘오늘도 주유권을 주려나’라고 속으로 은근히 바라고 있는 자신을 만나곤 했다. 기실 그 무렵은, 조기퇴직 후 시작했던 1인 사업이 신통치 않아 휴업 상태였다. 자연히 차를 쓸 일도 줄어, 친구가 준 주유권이 거의 수요를 맞추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가계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친구에게 주유권을 받을 때마다, 고마우면서도 찝찝한 무언가가 마음 바닥에 하나씩 가라앉는 것 같은 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짐이 아닌데도, 짐같이 느껴지는 아이러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란 속담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무언가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짙어갔다.신통치 않던 사업수익마저 끊어졌다. 그때 기술 자격으로 취업하라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취업사이트에 한동안 부지런히 이력서를 냈다. 제법 시일이 흐른 후 다행히 취업하였다.친구 사무실에 갈 일이 생기자, 우선 생각나는 것이 핑크색 주유권이었다. 재취업하였으니 고마운 주유권은 그만 받겠다고 정중히 사양하여, 마음의 짐을 덜었다. 핑크색 주유권이 핑크빛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정부의 공짜 돈은, 국민의 세금으로 의타심도 얹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의 주유권은 자기 것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핑크빛 징표로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다.오늘 저녁에도 핑크빛 하늘이 열리겠지.

2020-10-28

와인 한잔 어때요?

배문경수필가칠레산 까시에로 리저브 쉬라를 샀다. 병뚜껑과 상표가 금색이라 눈에 띄었다. 이 와인의 후기를 보니 무게감이 있어 괜찮다는 평이다.간혹 와인의 향기와 빛깔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 딸아이를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자 바로 떠올랐다. 와인 한 잔 기울일 생각에 약간의 흥분을 느꼈다. 때론 화이트와인을 마시기도 하지만 오늘은 스테이크를 만들 요량으로 레드와인을 잡았다. 레드와인은 적포도의 껍질과 알맹이, 씨를 모두 으깬 후에 발효시킨 것이다. 내가 산 것은 2017년 생산된 것으로 알코올은 13.5%다.딸아이와 나는 와인의 유래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포도주의 기원은 그리스다. 포도주 원액을 손잡이가 두 개인 항아리 암포라에 담아 운반했다. 그리고 크라테르에 부어 물과 와인을 섞었다. 크라테르는 대형항아리로 주로 연회가 열릴 때 테이블에 올렸다. 암포라와 크라테르는 훌륭한 예술품으로 유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우리 집에는 와인셀러가 없어서 와인을 잠시 냉장고에 시원하게 보관했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목살 스테이크를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 카프레제 샐러드도 접시에 담았다. 토마토가 반달이 되어 서로 겹치며 원을 만드니 보기에도 좋다. 레이스가 달린 테이블보를 깔고 식탁 중앙에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핑크빛 리시안셔스를 한 아름 사서 꽂았다. 겹겹이 하늘하늘한 꽃잎이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과 더불어 파티에 어울리는 장식이다. 레드와인에는 보르도 글라스를 준비했다. 튤립 모양의 잔은 타닌의 텁텁함을 줄이는 경사가 완만한 모양이 특징인 잔이다. 음식을 테이블에 올리자 고급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다.가족들이 함께 앉아 잔에 3부 정도 따르고 스템을 잡고 건배했다. 나는 그냥 삼키지 말고 색을 보고, 스월링(Swirling)하며 향을 느껴보라고 했다. 잔을 돌리면 와인의 맛이 깊어진다. 와인 속에 잠자고 있던 여러 성분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와인의 부케와 아로마가 발산되기 때문이다. 한 입 머금은 딸의 볼이 상기되면서 꽃보다 더 고와진다. 나도 덩달아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분위기를 돋우려고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리본이 달린 빨간 지갑이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대충 먹고 흩어지기 바쁜 식사시간이 오늘만큼은 안정적이다. 모두 오늘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비워두고 전체를 위해 배려했다. 식구들은 자신이 그동안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수다스럽다. 딸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서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다. 딸뿐만 아니라 부모로서 느끼는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주위의 축하 세례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짓고 어깨를 으쓱한다.이런 와인에는 음악이 필요하다며 유튜브를 켠 딸은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을 들려준다.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룬 영화 ‘라비앙 로즈’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동기 셋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에서 같이 기립박수를 보냈었다. 샹송과 와인이 이렇게 어울린다는 것이 놀랍다. 덕분에 와인의 맛은 무겁고 텁텁했지만 블랙체리의 과일 향을 그윽하게 느낀다.노래에 취해 있을 때, 10월 14일인 일주일 전이 와인데이였다고 딸이 말한다. 연인과 와인을 마시며 속삭이는 날이었다. 1월 14일은 다이어리데이, 2월은 발렌타인데이, 3월은 남자가 여성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화이트데이다. 12월은 허그데이로 일 년 내내 이벤트다.와인데이는 그리스신화가 기원이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신의 제례를 지냈던 날이다. 주류회사의 상술이긴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으로 볼 수 있고 개인의 취향이기도 하다. 더러 와인 잔에 맥주나 막걸리를 부어 마시면 낯선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레드와인이나 화이트와인, 로제와인을 한잔하면 어떨까. 단풍든 가을, 마음은 온통 와인빛으로 찰랑거릴지도 모른다.

2020-10-21

한글, 문자향에 물들다

정미영수필가내 안의 수많은 느낌표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소멸해 버린다. 꽃잎이 떨어져 날리면 어느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런 연유로 촉촉한 안개 속살 더듬거리듯 마음에 고인 언어들을 가끔 탐닉하기도 한다.며칠 전, 여든아홉에 돌아가신 할머니 기일에 참석했다. 할머니께 전하고 싶은 가슴 속 활자들의 여리고 긴 여음을 쫓아가다 보면, 어떤 때는 꽃봉오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있던 낱말들이 내 손길을 느끼자마자 흐드러지게 문자꽃을 피운다.편지지에 문자향을 가득 담아 제사상에 올려놓았다. 할머니가 살아생전 애지중지했던 낱말인 큰아버지 이름과 할머니 이름을 넣어 편지를 썼으니, 아마도 제사상에 오른 음식을 맛보기 전에 먼저 읽으셨으리라. 등을 구부리고 절을 하고 있으면 이따금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할머니 영혼의 자상한 손길을 내 몸이 떠올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할머니는 예순의 나이를 넘기면서 한글을 배우셨다. 그 해, 국군의 날이 되기 몇 달 전이었다.“이제껏 청맹과니처럼 답답하게 글씨도 모르고 한 평생 살았다 아이가.”더 늦기 전에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 군대에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던 큰아버지의 이름 석 자가 적힌 종이를 들고 충혼탑에 참배 갈 때 가져가고 싶다고 하셨다. 가끔 아들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 보면 멀리 달아날까봐 애가 탄다고 하셨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아들을 의지하며 살아오셨던 할머니는 평소에 자식을 앞세웠다고 말하시며 자책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할머니가 현충일과 국군의 날이 되면 나를 데리고 찾아간 곳이 앞산 충혼탑이었다.자식 이름이 적힌 종이를 충혼탑 앞에 놓고 싶다는, 할머니가 유언처럼 내뱉은 말씀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한 평생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열심히 사셨던 할머니가 아니던가. 글자를 모르는 것에 잔뜩 주눅이 든 할머니가 문득 안타까웠다. 나는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렸다.나는 할머니의 이름과 큰아버지의 이름을 도화지에 커다랗게 적고는 냉장고 앞에 붙였다. 글자를 그림처럼 눈에 익히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런 다음 기역, 니은, 디귿, 아주 기초적인 글자부터 가르쳐 드렸다. 내 나름대로 손 카드도 만들어서 자주 보여드렸다.드디어 국군의 날 아침이 찾아왔다. 모시적삼을 곱게 차려 입으신 할머니가 편지지에 삐뚤지만 큰아버지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나에게 종이를 내밀며 틀린 글씨가 있는지, 한 번 봐달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손끝이 가볍게 떨려왔다. 나 또한 종이를 받아든 손이 떨리면서 폐부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와, 울 할매 대단하데이.”내 입만 쳐다보고 계시던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셨다. 할머니는 충혼탑에 도착할 때까지 본인이 쓴 글자를 자꾸만 쓰다듬으셨다.쪽빛 닮은 시월 햇살이 앞산 충혼탑 아래에 충만하게 쏟아졌다. 바람결에 실려 다니던 국가 유공자와 유족들의 일만 마디 말들이 소나무 우듬지 위에 빼곡하게 걸려 있는 듯해, 행간을 놓칠세라 열심히 읽었다. 할머니와 나는 묵념을 끝내고 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할머니는 큰아버지의 내력을 나에게 담담히 들려주시며, 마련해 간 과일과 편지를 꺼내 놓으셨다. 그러고는 큰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셨다. 버석 마른 피부 밑에 눈물이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눈물은 소맷자락을 적셨다.생각은 말로 내뱉는 순간 허공으로 흩어진다. 손으로 부여잡고 싶어도 이미 날아가 버린 문장들은 아스라이 사라지기 일쑤다. 할머니도 살면서 체득하셨나 보다. 자식에게 보고 싶다, 그립다, 라는 말을 소리 내어 들려주는 것도 좋지만, 문자로 남겨야 울림이 더 오래 간다는 것을. 할머니 기일 때 썼던 편지를 꺼내 문자향을 흠씬 들어 마신다. 할머니에 대한 먹먹한 기억과 다정한 추억 인자들이 내포되어 있다가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문자향은 쉼 없는 그리움으로 변주되어 잔잔한 포말을 일렁인다.

2020-10-14

조혼 페스티벌

강길수수필가이곳저곳에서 결혼식 팡파르가 울린다. 노란 예복을 차려입은 민들레 아가씨들의 결혼식이다. 새로 태어난 지 한 달 남짓한데 벌써 결혼을 한다. 조혼(早婚)이라도 너무 이른 혼인이다.어디 그뿐이랴. 민들레 아가씨들에 뒤질세라 벌써 돌잔치를 푸짐하게 벌이는 강아지풀들이 도처에서 싱글벙글한다. 함께 어우렁더우렁 사는 풀들의 축복을 받으며 풋열매를 단 강아지풀 꼬리들이 바람에 살랑댄다. 한족에서는 참새 떼가 작은 바랭이 열매로 아침밥을 먹는다. 가까이 다가가자 우르르 밥상을 물리고 날아오른다. 참새들에게 미안하다. 하지만 바랭이들에게는 내가 고마운 과객이 아닐까.다른 곳은 외래종으로 보이는 풀들도 꽃을 피우고 있다. 한여름 천지개벽보다 더할, 몸이 댕강 잘려 나가는 고통을 당했던 풀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새봄의 작고 여린 자태를 여지없이 드러낸 풀들이다. 어떻게 저 어린 풀들이 그새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라면 아동기이지 않은가. 아동이 형편상 가장을 떠맡는 경우는 있어도 아동끼리 혼인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구월 중순. 아침저녁 지나다니는 한 학교의 녹지 이야기다. 가을 초입인데 녹지의 풀들은 봄날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팔월 초, 뜨거운 날씨 아래 녹지의 풀들은 벌초를 당했었다. 풀들은 그 고통과 역경 속에서도 한 달여 만에 연록 초지를 만들어 냈다. 귀뚜라미 소리 청아해지자 녹지는 느닷없이 조혼의 열기로 가득 찼다. 조혼 페스티벌이 벌어진 것이다. 가을이 가면 세상에 태어난 본분(本分)을 다할 수 없기에 절박한 것인가. 어린 나이에도 풀들은 시시각각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열흘 전쯤인가. 간밤에 비가 내린 아침 출근길이었다. 여린 풀잎들은 손에 손마다 빗물 이슬 머금고 오가는 이들에게 연록 생명의 빛을 선물하였다. 초가을에 초봄의 정서를 만끽하는 기쁨을 맛보고, 체험하는 귀한 복도 누렸다. 몸이 동강 난 끔찍한 상황에서도 매 순간 억척스레 살아내는 당찬 모습이, 내 기대를 채워주고도 남았다. 고통과 희생 뒤에 따라오는 삶이, 값지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또다시 일깨워주는 아침이기도 했다.생각해보면 나와 너, 지구촌 사람들이 이 녹지의 풀보다 더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심각한 기후변화 하나만 보더라도 많은 이들이 피부로 느끼듯 지구촌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각국 정부와 국민들은 당장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생존 문제 앞에 정치와 권력은 무엇이며, 국제 이해관계와 패권이 다 뭐란 말인가. 풀은 뿌리라도 있어 다시 살아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풀들은 씨앗을 만방에 퍼뜨려 기후변화에 대응한다. 본래 생명에게 주어진 본분이 삶의 최우선이며 결국 그 전부가 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는가. 알면서도 외면하는가.여러 문화권에서 인간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 위신, 체통, 권위, 권력 등을 얻기 위해 조혼을 해왔단다. 우리의 경우도 과거 ‘민며느리’나 ‘데릴사위’가 성행했었다. 자연히 조혼으로 인한 어린이들의 인권이 유린되거나 침해되고, 여러 비극도 불러왔었다. 반면, 풀들은 환경이나 상황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살아내고 있다. 벌초 당해 새로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시간 만에 혼인 하고, 열매를 맺으며, 조혼페스티벌을 벌이고 있는 이 녹지가 그 증거다.푸른 행성 지구촌에 생명은 왜 태어난 걸까. 자연은 예외 없는 인과법칙 안에 존재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어떤 과학자가 주장하듯, 생명이 바다에서 우연히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을 설계하여 만들고, 관리하는 지성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가 창조주든, 신(神)이든 생명에게 주는 본분이 있으리라. 본능을 뛰어넘는, 생명이 마땅히 해야 할 바 같은 것 말이다. 내 눈에는 이 녹지의 여린 풀들이 생명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 만일 우리 인간이 저 풀들처럼 살아왔다면 오늘날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의 소용돌이는 생기지 않았으리라.풀들의 조혼 페스티벌이 성스럽다.

2020-10-07

오리 날다

배문경수필가보문호수는 윤슬로 춤춘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바람이 분다. 멀리 떠가는 오리 배, 수면 아스라이 앉은 오리와 뭇 새들이 풍경을 이룬다. 乙자 모양의 오리가 수면을 치며 날아오를 때, 순간 담담하던 풍경이 소스라치듯 놀란다.새들의 군무를 보았던 일이 떠오른다. 일몰 직후 노을 진 하늘 위로 떼 지어 날아오르던 새들은 가창오리였다. 그들의 비상과 선회는 한 폭의 점묘화를 이루며 나의 시선을 압도했다. 그 광경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단지 생존으로 다급한 힘겨운 몸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은 두 날개가 추위와 굶주림을 넘어서 함께 어울려 펼쳐 놓은 것이었기에 더욱 숨 막힐 듯 아름답게 느껴졌다.하늘 한 쪽에 펼쳐진 거대한 그림을 보며 어느 순간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올라 자신을 드러낼 구도자의 춤을 떠올렸다.아버지는 집에서 오리를 키웠다. 친정집 뒤에는 큰 도랑이 있어 오리를 키우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우리 집 앞에는 오리솟대가 있었는데 새들이 날아갈 때는 솟대의 오리도 날개 짓하는 것 같았다.오리들은 흰 깃털이 때가 묻어 늘 거무죽죽했다. 그 오리들 사이에 색깔부터 다른 청둥오리 몇 마리가 끼여 있었다. 아버지는 어디선가 청둥오리 알을 가져와 서너 개를 부화시켰다고 했다.어느 날, 약으로 쓴다며 오리를 사러온 사람에게 아버지는 두 날개를 끈으로 묶어 청둥오리를 넘겼다. 내 눈처럼 오리는 젖은 눈으로 퍼덕였다.청둥오리들은 가끔씩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기도 했지만 야생으로 영 날아가 버릴 생각은 애초에 없는 것 같았다. 가끔 비탈진 언덕을 오르거나 뒤뚱대며 내려올 뿐이었다. 이미 퇴화된 날개는 어깨의 일부처럼 붙어있었다.어느 날, 아버지는 높은 장대를 설치해서 그물을 치기 시작했다. 날개에 힘이 오른 청둥오리들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을까. 하지만 그 여름 태풍이 한번 휘몰아치자 냇가에 세워둔 아버지의 그물막도 장대가 넘어지면서 한쪽귀퉁이가 무너져 내렸다. 그물막을 수리하는 동안 초막에 갇혀 지내던 오리들이 다시 냇가로 나왔다. 지저분한 날개를 씻어 깨끗해졌을 때, 아버지와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그 아주 짧은 순간, 내 기억은 눈부신 빛 속으로 흩어졌다. 청둥오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몸을 위로 띄웠다. 그리고는 머리와 몸채가 평형이 되게 하고는 날개를 쭉 펼치자 앞으로 날아올랐다. 그때였다. 신호를 서로 보내고 있었을까. 한 무리의 오리들이 하늘에 낫 모양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청둥오리는 솟대를 지나 그 무리를 향해 더 높이 날았다. 지상에 있던 흰 오리들이 꿱꿱하며 날개를 퍼덕였다. 청둥오리는 날아오르다 잠시 공중에 멈춰 인사라도 하듯 고개를 젖혔으나 위로만 날아올라 무리들에 섞여버렸다.낮잠은 달았고 오리들은 자맥질 중이었다. 나는 청둥오리들이 푸른 하늘을 날아올라 자유롭기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오랫동안 나는 반복된 일상에 젖어있었다. 나 자신의 꿈은 내려놓은 채 가정에 모든 것을 붓는다고 자위했다.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더러 나의 꿈을 돌이켜 본다. 한 때 영화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외국에서 영화감독이 되어 돌아오는 나를 그려보았다. 밥벌이가 중요하다고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나는 꿈을 접어 넣는 습관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이러다 늙어죽는 것은 아닐까. 의문기호가 많아질 때, 나는 집에서 키웠던 청둥오리를 떠올린다. 그 많던 오리 중에 유일하게 울타리를 박차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던, 무리와 하나가 되어 훨훨 날아가던 오리.다시 보문호수에 바람이 불자 물결은 찰랑거린다. 언제 보아도 물 위의 오리는 수면 아래 물갈퀴 발을 열심히 움직인다. 오리 배는 여전히 묶여 있고, 에메랄드빛 하늘로 새들은 드높이 날아간다.

2020-09-23

품앗이

정미영수필가논두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높고 푸르다. 새떼들이 구름 사이로 미끌어지듯 날아가고, 건너편 대숲은 바람 따라 초록 물결을 일으킨다. 논 가장자리에는 백로가 부리에 미꾸라지를 문 채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농촌이 빚어내는 정겨운 풍경을 정독하며 리듬감 있게 걷는 내 마음이 흐뭇하게 젖어든다.큰형님이 조카 결혼식을 앞두고 기별을 했다. 잔칫집에 미리 와서 음식 장만을 돕고, 하룻밤 자며 동서지간에 정도 나누자고 했다. 흔쾌히 가겠다고 했지만, 뒤돌아서니 걱정이 되었다. 동작이 굼뜨고 일머리를 모르는 내가 큰일 치르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이 되면 어쩌나 신경이 쓰였다.명절 때 큰집에 가면 차례 상에 음식 가짓수가 많다. 내가 시집와서 처음 추석을 맞이했을 때 제수거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차례 지내고 동네 분들과 경로당에서 음식을 나눠먹는 인심이 온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결혼식을 앞두고 다양한 음식을 장만하리라.햇살이 투명하게 일렁이는 고샅에 들어선다. 고양이가 사뿐 걸음으로 걸어 다니고 닭이 홰치는 소리도 들린다. 담장마다 능소화가 웃음 짓고 호박이 줄기에 의지해 졸고 있다. 여유로운 정경이다.그런데 큰집 가까이 다가가니 마음이 바빠진다. 고소한 냄새가 내 얼굴에 훅 끼쳐든 까닭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왔건만, 혼자서 음식 만들기를 시작하셨는가 싶어 조바심이 인다. 안마당에 들어서니 몇몇 아주머니가 전을 부친다.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서니, 그 곳에도 재빠른 손놀림으로 한쪽에서는 나물을 다듬고 다른 쪽에서는 생선을 손질한다. 그들 사이에서 형님을 찾아 인사드린다.“동서야,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데이.”형님 친구 분들이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음식 만들기를 시작했단다. 내 집에서부터 음식 장만할 걱정을 잔뜩 이고 왔는데, 살며시 웃음이 난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으로 비켜나 심부름거리를 찾았으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 몫의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형님네 마을에서는 품앗이가 남아 있어 보기 좋다.시골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주택이나 길이 여기저기 헐리고 새로 고쳐졌다. 젊은이들 또한 학교나 직장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등속이 늘었다. 농사나 관혼상제에서도 노동을 노동으로 갚는 대신 돈을 지불하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이 마을에서는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스스럼없이 품앗이를 한다. 서로 형님 동생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와준다.누구네 집에 경조사가 있거나 환자가 생기면 이웃사촌들이 더 잘 알아서 챙긴다. 옛정을 그대로 체득할 수 있는 품앗이 전통이 명맥을 이어가니 반갑다.한 편으로는 부럽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이웃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아 서로 소원하다.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 왕래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공지사항은 관리실에서 방송을 하거나, 게시판에 붙여놓는다. 이런 연유로 사람살이의 살가운 정을 품앗이에서 느낄 수 있어 고맙다.편의와 실리를 쫓아가는 세상이다. 나에게 손해가 되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이익이 되면 두 발자국 앞서려는 경향이 늘었다. 그러나 품앗이는 동네 대소사를 제 일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익을 바라거나 욕심을 부리면 불협화음만 이어질 뿐이다. 자칫 생산성은 줄어들고 이웃 간에 믿음마저 깨질 수 있는 것이 공동체에서 마음 맞추는 일이다. 오늘 형님네서 음식 준비에 손을 보탠 분들도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배추전이나 부추전을 서너 장씩 챙겨가는 것이 전부다.어우렁더우렁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들의 땀 흘린 얼굴이 힘들기는 해도 편안해 보인다. 도린곁에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웃과 어깨를 겯고 곰살궂게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것도 삶의 재미이리라. 정신적으로 충만해 보이는 품앗이꾼들 앞에서 내 가슴이 푸근해진다. 마음에 환한 등불 하나 내걸린다.

2020-09-16

디어 위너

강길수수필가영문 이메일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내용이다. 만일 사실이라면, 나는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다. 정말 행운의 소식이면 좋겠다.이메일은 영문 ‘디어 위너(Dear Winner)’로 시작되었다. ‘친애하는 당첨자’라니, 우선 기분이 좋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내용을 대충 살폈다. 내 이메일 주소가, 올해 자사의 이 메일 프로모션에 당첨되어 축하한단다. 당첨금이 원화로 환산하니 무려 150억 원이나 되었다. 일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체 내용을 빨리 알기 위해, 인터넷의 영문번역기에서 전문을 우리말로 바꿔보았다. 따로 추첨에 참여하거나, 티켓을 끊을 필요는 없단다. 단지 이름, 주소, 나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만 답신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기분이 이상해졌다. 번역문을 읽으며 ‘스팸’, ‘피싱’ 같은 단어들이 함께 떠올라서다. 스팸문자, 스팸메일, 보이스피싱 등 사기(詐欺)나 범죄에 이용되는 통신수단에 당했다는 보도나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 우리 집도 보이스피싱을 몇 차례 겪은 적도 있다. 그러니 은연중에 스팸이나 피싱에 대한 대응력이 생겼으리라.스팸메일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이면 좋겠다는 바람(望)도 마음 한구석에서 명지바람으로 일었다. 달콤한 유혹이다. 이율배반이다. 햄릿 증후군이기도 하겠다. 머리로는 아닌 줄 알면서도, 가슴으로는 끌리는 심리상태를 또 경험한다.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 조화롭다면, 스팸메일이란 판단이 들었을 때 지웠어야 했다. 내 속물근성이 이 이메일 앞에서 또 이빨을 드러내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속 갈등을 한다.“그래, 다른 이들도 같은 사례가 있나 찾아보자!”내부 갈등의 타협안이 제시되면서, 내 손가락은 저절로 웹사이트를 뒤지고 있었다. 작년에도, 올해도 똑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는 사람의 글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작년 것은 금액이 올해보다 적었지만, 올해 것은 금액도 같았다. 전자는 상담을 받는 것이고, 후자는 어떤 카페에 올린 글이다. 후자의 경우, 끝에 독자들과 댓글을 주고받으면서 결국 답신 메일을 보내고 말았다는 게시자의 고백도 있었다.쓴웃음이 났다. 이성과 감성이 이런 상황에서도 싸운다.“이봐! 스팸메일이 맞잖아? 괜히 헛꿈을 꾸었어. 시간도 버리고….”“잠시 행복했잖아? 그러면 된 거지. 뭘 그리 따지고, 불평하는 거야?”처음 복권을 사던 날이 떠올랐다. 주택복권이다. 아마도 70년대 중반쯤이었을 거다. 확실한 날짜를 알려고 일기장을 한참 뒤졌으나, 못 찾았다. 아마 회식을 마치고, 얼큰한 기분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으리라. 회식 중 동료들과 복권에 대해 갑론을박하다가 ‘복권은 바로 행운 부르기’란 말에 이끌려, 난생처음 100원짜리 주택복권 두 장을 손에 쥔 날이다. 술기운에, ‘이 복권으로 내 집을 살 것이다!’라며 의기양양하게 발길을 뗐었다. 조금 걷다가 어느 순간, ‘나도 그만 사행성 탁류에 휩쓸리고 말았구나!’ 하고 깨달으며, 하룻저녁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던 기억이다. ‘근면, 자조, 협동’의 역동적 사회 구조 안에서, 그 시절 내 눈엔 복권은 사행성의 징표일 뿐이었다.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젠 복권을 사행성 징표나, 노름같이 보는 시각은 사라졌다. 어떤 지인은 투자라며, 봉급을 타면 내 기준엔 제법 많은 일정 금액의 복권을 샀다. 문제는 ‘디어 위너’처럼 공적 복권을 사칭한 스팸메일 등, 사기를 치기 위한 정보가 횡행한다는 사실이다. 4차 산업 시대니, 5지(G)시대니 하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회의 정보기술 환경에 따라가기도 힘든 현대인들이다. 그들이 스팸이나 피싱 같은 사기에 시달리는 상황에 놓인 것은 대체 무얼 말해주는 걸까.“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란 말이 있다. 인간과 생명은 아니, 만물은 이 말처럼 살고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우주 안 모든 존재의 존립 양상이 어찌 보면, ‘죽기를 각오하고, 모든 힘을 다하여 살고 또,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음을 다잡아야, ‘친애하는 당첨자’처럼 달콤한 사기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진정한 ‘디어 위너’만 있는 세상이 그립다.

2020-09-09

낭만에 대하여

배문경 수필가가을은 축제가 많은 계절이다. 축제기간 동안 경주는 능위에 늙은 느티나무가 멋진 봉황대에서 여러 행사가 있다. 금요일 저녁마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가수들을 초청해 콘서트를 연다.이번 초대 가수는 최백호다. 그가 온다는 광고는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달력에 큼직하게 표시하고 함께 갈 동생과 약속도 해두었다. 기다리는 며칠 동안 여고생이라도 된 듯 설렘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나를 누가 보았다면 발이 10센티는 붕 떠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리라.당일, 봉황대로 향하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갑작스런 비에 놀란 사람들이 제법 긴 줄을 서서 편의점에서 나처럼 우의를 샀다. 이런 큰 공연을 앞두고 비라니, 그만 힘이 쏙 빠졌다.도착했을 무렵 사람들이 천막 안과 빗속에서 우의를 입은 채 기다렸다. 멋진 공연을 기대해서인지 비를 핑계 삼아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가 나타날 무대를 응시했다. 무대에는 연주자들이 악기를 조율하고 개그맨이 싱겁게 시간을 메우느라 너스레를 떨었다.초록의 능, 비로 짙어진 봉황대에 조명이 들어왔다. 순간 환상이 펼쳐졌다. 굽은 나무와 어우러진 왕릉을 배경으로 나타난 반백의 사내, 그는 오랫동안 보아온 지인처럼 자연스런 모습으로 등장했다. 박수와 함성이 쏟아지고, 가을비도 쏟아지고, 이전의 음악에서보다 더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가 관객들의 머리 위로 축복같이 쏟아졌다.얼굴에 내리는 것이 빗물만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깊은 노래의 울림을 통해 빚어진 눈물은 무수한 감정들의 찌꺼기들을 녹아내리게 했다. 날마다 차곡차곡 쌓여 무게를 가늠할 수 없던 스트레스와 인연이 만든 희로애락이 더 짙은 애수를 자아냈다. 이후 점점 가벼워지며 콧노래를 부르다가 다시 뜨거운 빗물이 흘러내렸으니 노래의 힘은 대단했다. 삶의 부스러기들이 한꺼번에 잘게 부서져 공중분해 되는 느낌이었다.그는 트로트가 대세였던 시절에 포크 록발라드로 인기를 끌었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발표하며 우리에게 다가왔고, ‘영일만 친구’로 가수상을 받았다. 싱어송라이터가 드물던 시절에 독특한 창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노래를 읊조렸다. 라디오 DJ로도 활동범위를 넓힌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시대를 넘어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다.그는 정규교육에서 썩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 잘한 친구들은 지금 퇴직해서 놀고 있다며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초로의 사내. 스스로 노래 속에서 새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워지는 그를 보았다. 무대가 끝나갈 즈음, 빗물이 그의 눈에도 흘러 들어간 모양이다. 그가 천막의 기둥에 슬쩍 기대서서 간주곡 사이사이에 먼 곳을 바라보았다. 우리 모두가 외로운 것처럼 그도 비 오는 날, 그림자조차 없이 하나로 서있었다.청바지가 아직도 잘 어울리는 일흔의 그가 아흔에도 노래를 부르겠단다. 박수가 쏟아졌다. 가수에 대한 응원이자 나의 내일에 대한 응원이다. 내 나이가 그의 나이가 되었을 때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낭만적이다. 마지막 곡은 역시 ‘낭만에 대하여’였다. 그의 노래 위로 꽃가루가 흩뿌려졌다. 도라지 위스키의 알싸한 향기가 우리 주위를 감쌌다.낭만, 그것은 영화이거나 음악이거나 답답한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줄 그 어떤 것이다. 다양한 악기가 내는 미묘한 울림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달콤함, 이 모든 것이 낭만이었다. 나이만큼 어쩌면 우린 잃어버린 과거, 잊혀 진 과거의 추억, 인생이 뭔지 알 나이가 된 사람들의 낭만이었다.오늘 낭만에 대한 그의 노래를 들었다. 짧은 단상과 그의 팔짱을 끼고 옆자리에서 한 컷 찍는 영광도 얻었다. 무르익은 가을밤의 축제에 감사했다. 궂은 비 내리던 날,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느껴보는 낭만이다.

2020-09-02

아버지가 낚은 사랑

정미영수필가이른 새벽, 흥해 용연지에 도착했다. 새벽바람의 기척으로 해가 물속에 풀어지자, 졸고 있던 물고기들이 햇귀와 타전을 시작했다. 물빛 그리움 하나 가슴에 구겨 넣고 찾아왔더니, 내 마음에 곰비임비 막혀 있던 응어리들이 무게를 덜어냈다.수풀 사이에서 한 아저씨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속을 응시한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어 조심스레 가까이 가보았다. 그물망에 작은 물고기 서너 마리가 파닥거렸다. 은빛 물고기를 바라보는데 문득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검게 탄 얼굴로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붕어를 낚던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 오롯이 겹쳐졌다.어느 해 여름, 어머니가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어린 남매를 건사하고 병수발은 물론 집안일까지 모두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즈음 아버지의 낚시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를 따라 간간히 절에 다녔던 아버지는 이전까지 낚시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술한 어머니에게 참붕어가 약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는 곧장 가느다란 낚싯대를 빌려왔다.나는 펄떡이는 노르스름한 붕어를 아버지가 직접 낚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버지가 달랑 낚싯대 하나만 챙겨들고 집을 나서는 날이었다. 나도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다. 위험해서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버지의 손을 얼른 잡았다.낚시터에 다다랐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두세 번 지나자 제법 넓은 저수지가 나타났다. 저수지는 한가로웠다. 산그늘에 물빛이 더욱 짙어 보이는 곳이 있었고, 햇살이 비쳐 물비늘이 반짝이는 곳도 있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 몇 장이 물살에 일렁거렸다.아버지는 나에게 낚시를 할 때는 조용히 있어야 된다고 했다. 하지만 신신당부의 말도 내게는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왜 떠들면 안 되느냐고, 물 위에 떠다니는 저 새 이름은 무엇이냐고…. 묻다가 지치면 동요를 불렀다.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 노래는 끝없이 이어졌다. 알고 있는 노래를 다 부르고, 다른 노래가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불렀다.그때쯤이면 저수지는 다시 고요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날따라 아버지와 나뿐이었다. 나는 소금쟁이가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을 열심히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이따금 나에게 미소만 지어 보일 뿐 묵묵히 찌를 바라보며 낚시질만 했다.한참 지났다. 아버지는 작은 물고기는 물에 도로 놓아주고, 손바닥 크기의 붕어들만 집에 가져왔다. 붕어를 손질해서 찜통에 넣고 푹 고았다. 가스 불 옆에서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행여 넘칠세라 정성을 다했다. 비린내가 나면 어머니가 먹지 못할까 봐 참기름을 듬뿍 넣고 들깨가루도 넣었다.“참붕어 국물은 약이라고 하더라. 식기 전에 후딱 마셔라.”“부처님을 믿는데….”“내가 붕어 잡기 전에 부처님께 약속했다. 당신 약으로만 쓴다고.”핼쑥한 얼굴의 어머니는 뜨거운 국물을 쉬엄쉬엄 마셨다. 아버지의 낚시질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집안에는 붕어 고는 진한 냄새가 배다시피 했다. 그 덕분인지 어머니는 차츰 건강을 회복하였다.저 낚시꾼도 예전의 아버지처럼 누군가를 위해 고기를 잡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재미 삼아 낚시질을 하는가. 가까운 나무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버지와 함께 간 저수지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그 때 아버지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흘러가는 구름에 근심을 실어 보내고, 불어오는 바람에 고단함을 딸려 보냈을까? 나는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며 아버지와 나만의 또 다른 추억 조각들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퇴적된 기억들이 한순간 튀어 올라 수평선 밖 허공을 맴돌았다. 순간 내 가슴 가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고였다.용연지의 바람이 내 마음을 눈치 챈 듯 잔잔하게 윤슬을 일으키며 흘렀다.

2020-08-26

살아내기

강길수수필가얼마나 아팠을까. 나 같으면 까무러쳐 깨어나지도 못했을 테다. 그런데도 다시 몸을 추스르고, 연녹색 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의젓해 보인다. 도대체 생명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억척스러운가.며칠 전 땀을 훔치며 이 곁을 지나갈 때다. 방금 풀을 베었는지 향긋한 풀냄새가 팔월 상순 대낮의 더위를 봄 나비 날개처럼 팔랑팔랑 날려버렸었다. 이 녹지 곁을 하루에 두서너 번은 지나다닌다. 출퇴근과 점심 먹으러 갈 때 다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엔 주로 자전거로 오가지만 그 외의 철엔 걸어서 지나간다.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을 초지로 만든 곳이기에, 자라나는 아이들과 푸른 녹지가 잘 어우러져 저절로 관심을 끌었다. 지금 팔월 초순인데, 내 기억엔 올해 벌써 두 번째 전체 풀베기를 하였다. 교장 선생님이 바뀌었는지 학교 관리가 아니라면 해당 행정기관의 배려가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늦봄, 오월 하순께도 풀을 베어냈었다. ‘아직 가을은커녕 채 여름도 되지 않았는데, 웬 벌초인가. 이상하다.’고 그때 생각했었는데 두 달여 만에 또 베어냈다.풀베기를 시킨 이들은, 녹지를 더 깔끔하고 아름답게 유지 관리하기 위해서 베었을 것이다. 하지만 잎과 줄기가 한해살이인 잔디, 쑥, 클로버, 민들레, 개보리 그리고 이름 모르는 외래종들로 어우러진 풀밭이다. 내 생각엔 베지 않고 그냥 한해를 다 살도록 놔두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기도 좋을 것이다. 자연은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 않은가. 어릴 때 산골에서 자라나며 겪은 삶은 그야말로 있는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것이었다.풀들은 영문도 모르고 한순간 땅 위 몸이 댕강 잘려 나갔다. 그 고통과 상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풀들은 몸을 여미고 재기(再起)를 시작한다. 잘린 경계면 아래 잔디 잎은 끝이 조금 마르며 그대로 자라나고, 곁엔 봄 새싹 같은 순이 다시 돋아난다. 지난 늦봄 벌초를 당했을 때도 풀들은 슬픔을 이겨내고 곧바로 녹지에 정갈한 연록 새봄을 연출하였었다. 오가는 이들과 운동을 하거나 쉬는 사람들, 나아가 날아드는 참새, 까치, 비둘기, 애완견까지 즐겁게 해 주고도 남았다. 특히, 아침 출근길에 새 고사리손마다 동녘햇빛 머금은 영롱한 이슬을 앙증스레 쥔 풀들의 영접을 받는다는 것은, 나에겐 생명의 본모습을 만나는 행운의 시간이다.한여름에 몸 잘린 풀들은 또 하나의 새봄을 이 녹지에 공연하려는 준비가 한창이다. 새싹이 여름의 더위를 잘 이겨낼지 모르지만, 몸을 여미는 모습을 보노라면 틀림없이 한여름의 새봄을 선물할 것이다. 그리되면 나는 한 해에 세 번의 봄 새 생명을 만나는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될 터다. 비록 날씨 탓에 이슬 머금은 모습은 못 만날 지라도 한여름에 새싹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한데, 왜 풀들의 고통 앞에서 내 마음이 달떴던 것일까. 호모사피엔스 이래, 조상 대대로 연연히 풀을 먹으며 살아온 사인인 까닭일까. 제 뜻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결정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예초기의 무서운 날에 몸이 반 토막 난 상황. 그 황망함은 보이지 않고, 보려고도 애쓰지 않지 않았는가. 내가 풀이라면, 두 번씩이나 몸이 잘려 나간 처절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 고해의 세상에 무에 미련이 있어, 또다시 살아가려 한단 말인가.마음의 눈에 풀들이 다시 살기 위해 새마을사업이라도 하듯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땅속 물을 빨아들이고, 공기의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몸의 탄소동화작용 공장을 가동한다. 설비에서 연록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새잎은 모양을 갖추며 고사리손이 된다. 손은 땅을 솟아오르며 새봄을 부른다. 공장 가동 소리가 아카샤 기록(Akashic records) 동영상으로 이렇게 저장되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들은 사는 게 아니라 매 순간 살아낸답니다.”라고…. 그랬구나! 풀들이 아름다운 것은, 삶을 살아가지 않고 살아내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몸이 몇 번을 잘리거나 훼손당해도 또 일어서고, 새로 태어나는 삶을 바지런히 살아내고 있었던 거야.올여름 녹지에 태어날 새봄 고사리손엔, 아마도 하늘 빗물이 송골송골하겠지….

2020-08-19

밤바다 산책

윤영대수필가요즈음 중부 지방에는 폭우로 내리붓는 장맛비에 온통 물난리인데 여기 포항은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고 열대야가 밤잠을 못 이루게 한다. 코로나19로 답답해진 마음에 밤바다를 거닐고 싶어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나가본다. 바닷가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반바지에 샌들을 신고 아파트를 나서면 벌써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에 와 닿고, 골목길 빠져 해변 도로를 걸어보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예년 같으면 방학에 피서철이라 발 디딜 틈도 없을 인파가 저 바닷가 파도처럼 일렁일 텐데…. 멀리 까만 바다 끝에 반짝이는 불빛은 호미곶인지 떠 있는 배들인지 정답게 다가오고, 수평선에 떠오른 보름달은 바다와 거리두기를 하는지 구름 마스크를 쓰고 하늘 높이 떠 있다.넓은 모래밭에는 젊은이들이 쏘아 올리는 불꽃 터지는 소리와 물가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산책길에는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의 걸음들이 모두 가볍고 길가에 앉아 서로 속삭이거나 혼자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도 해변의 낭만이다.사람들과 섞여서 천천히 걷다가 모래밭으로 내려서면 마르고 푹신한 느낌이 좋다. 아예 신고 간 샌들을 벗고 맨발로 걸으니 사각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아스팔트 길에 잊어버린 발바닥의 촉감을 찾아준다. 내친김에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용히 밀려오는 밤바다의 물결 소리가 종일 TV 소리에 지친 나의 귀를 간지럽히고, 두 발에 전해오는 차가움은 가슴으로 올라와 온몸의 열기를 식혀준다.바닷물에 세족(洗足)을 하니 생각난다. 8월 4일은 음력 6월 15일, 유두절(流頭節·유둣날)이다.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라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나 폭포수에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친척들과 떡이나 전을 먹으며 유두잔치를 하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병이 없다는 신라 때 명절인데 잊혀져가는 옛 풍습이 아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영일만으로 흘러들어 오는 형산강이 동쪽으로 흐르는 물이라 ‘잘 됐구나’ 하며, 오늘 저녁 유둣날의 기분에 한껏 젖어보았다.바닷물에 발 담그고 돌아서서 해변 야경을 보니 알파벳과 외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어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요즘 해외여행이 발 묶여버린 마음에 언젠가 가봤던 기억의 어느 외국 해변 풍경을 그리며 그곳에 와있노라고 상상해보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모래밭에는 매년 만들어 놓는 모래 작품들도 볼거리다. 섬세하게 쌓아 올린 이름난 건축물 조각상 앞에서 흐르는 불빛 따라 즐겁게 사진을 찍는 모습 또한 행복해 보인다. 발의 모래를 털고 다시 길로 올라오면 즐비한 스틸아트 작품들이 포항의 얘기를 들려주는 듯 밤의 산책을 즐겁게 한다.해변 끝에서 높고 좁다란 방파제에 올라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의 씩씩한 발걸음을 따라 끝까지 걸어 가본다. 빨간 등대 불이 깜빡이는 어둠의 배경은 7, 80년대 형산강의 기적을 만든 포스코, 옛날 그 힘찬 용광로의 불꽃은 다 어디로 갔는지 옛 함성을 반추하듯 초대형 전광판의 글자가 길게 늘어져 지나간다. 나는 그 전광판에 새기고 싶다. ‘포항의 영광을 되찾자.’ 그리고 등대 벽에 낙서한 연인들의 마음을 읽으며 통통거리며 들어오는 고깃배의 만선을 빌어본다.돌아오는 길, 200여 그루의 곰솔 숲 앞을 걸으면 풀잎 지붕의 둥근 테이블마다 바닷바람을 쐬며 술이나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즐기고 있는 모습도 흥겹다. 그런데 모든 공연이 금지된 버스킹 무대에는 할머니 몇 분이 손주들 재롱을 즐길 뿐이다. 모래밭에 줄지은 천막은 비어있는 듯하지만 길가 술집과 커피숍은 그래도 젊은이들로 북적이는데 실내 금연이라 밖에 모여 피워대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그들이 버린 꽁초가 쓰레기 더미와 함께 하얀 애벌레처럼 밤길에 나뒹구는 광경은 하루의 마음을 정리하며 밤 산책하고 돌아오는 마음을 무겁게 한다.영일대 누각에 올라 보석처럼 반짝이는 해변의 불빛을 가르며 내 달리는 제트보트의 날렵한 질주를 눈에 담고 집에 돌아와 폭포수처럼 틀어놓은 샤워기로 젖은 땀을 씻고 유둣날의 복을 빌어본다. 남은 말복에 더위 먹지 말기를…. 지난 7일이 입추(立秋), 벌써 가을이 오는가 보다.

202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