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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살아있는 모자이크

강길수수필가누가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살아있는 모자이크다. 한데, 만드는 이가 안 보인다. 나풀나풀 하늘에서 흰 나비 날개들이 내려올 뿐이다. 아마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업을 하나 보다. 삼월 말, 수난(受難)주간 마지막 날 성당 가는 보도(步道) 위다.다른 나무들은 벌써 신록을 연출하기 시작한다. 벽돌 담장 위에 얼굴을 빼꼼히 내민 장미 아가씨의 새순은, 어느새 길이가 한 뼘은 되어 보인다. 잎 사이에 꽃망울도 품었다. 꽃샘추위가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바야흐로 봄이다. 기후 변화로 많이 앞당겨진 봄…. 봄은 내게 언제나 불쑥 나타났었다. 올해도 그랬다. 무심히 걷던 보도 위에서, 갑자기 ‘살아있는 모자이크’로 다가온 것이다.새봄맞이 자연 모자이크대회가 열린 걸까. 보도에도, 잔디밭에도, 차 위에도, 아스팔트 노면에도 모자이크가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 재료는 엷은 분홍빛 살짝 머금은 흰 나비 날개뿐이다. 붙일 벽, 유리창, 천장, 그림판도 없이 어떤 거장(巨匠)이 바닥마다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탄성이 나온다. 보도블록에 갓 생긴 모자이크를 밟지 않으려 조심조심 걷는다. 모자이크는 무늬나 그림을 나타낼 텐데, 우둔한 나는 알아보지 못한다. 나스카의 지상 그림처럼 비행기라도 타고 높이 올라가야 볼 수 있을까.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한줄기 실바람이 만발한 벚꽃 가지를 간질인다. 웃음 참던 꽃잎이 못 참고, 꽃을 떠나 나비 날개가 되어 날아오른다. 팔랑팔랑 날던 날개가 살며시 내려온다. 묵주반지 낀 내 손등에 잠깐 내려앉았다가 바람에 다시 떠난다. 전할 말이라도 있을까. 그 순간 손등이 느낀 실낱처럼 서늘하고 아린 감촉이 그 봄, 어머님의 손 허물에서 느꼈던 촉감을 닮았다. ‘그랬어. 그해 봄 이 무렵, 어머니는 아프신 몸으로 우리 집에 오시어 몇 주 머무셨지. 나는 이틀에 한 번씩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녀오는 게 고작이었었을 뿐이었어.’“야야, 너희 아버지 가실 때 손이 벗겨지더니, 나도 그렇구나….”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신 갈 길을 미리 아신 듯, 고통 속에 담담하게 말씀하는 어머니 앞에서 할 말을 잊었었다. 우리 동기들을 낳아 기르느라 밥하고, 빨래하고, 길쌈하고, 밭매고, 땔나무까지 하신 어머니. 자식들과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소나무 껍데기같이 투박해지셨던 손. 그 손이 허물을 벗으며 아기 손처럼 해말갛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에 허물을 받아 가만히 감싸 쥘 뿐이었다. 떨리던 손바닥에 파고든, 말 못할 촉감이 아직도 손에 고스란히 남았다. 보이지 않는 모자이크로 손에 박힌 것일까. 어머니는 초파일 다음날, 아주 우리 곁을 떠나셨다.저 바닥 위에, 살아있는 벚꽃잎을 재료로 누가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을까. 보나 마나 푸른 별 지구 곧, 땅과 바람이리라. 실바람이 벚꽃을 간질이면 벚나무는 꽃잎을 내준다. 꽃잎이 나비처럼 난다. 땅은 꽃잎을 끌어안으며 무늬와 그림을 만든다. 땅과 바람의 의기투합이, 곧 명 다할 꽃잎에다 새 생명을 부여한다. 살아있는 모자이크가 탄생하는 것이다. 꽃잎이 말라 사라져도, 지구 중력이 만든 모자이크는 땅에 아로새겨져 있으리라. 마치 내 손에 남은 어머니의 손 허물 감촉이, 따사하고 아린 모자이크가 되어 머물고 있듯이.모자이크는 재료들이 간격을 두고 각각 머물게 만든다. 따로 있으면서도 함께 있는 존재가 모자이크다. 재료 각각은 뜻을 가질 수도, 안 가질 수도 있지만, 전체는 만든 이의 뜻을 드러낸다. 사람 삶도 모자이크다. 따로 태어났어도, 공동체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기 삶을 살면서 공동체 생활도 한다. 생각해보면 원자에서부터 태양계, 우주에 이르기까지 개체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다. 그러기에 나와 너, 우리, 나라, 지구촌, 우주도 하나의 모자이크다.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족히 오리(五里)는 될 성당 가는 보도와 그 주위엔, 기회를 놓칠세라 끊임없이 모자이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비록 ‘코로나 19’의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의 힘 드는 상황이지만 그 또한 모자이크이니, 모두가 잘 이겨내어 승리의 모자이크를 만들어야 하리…….

2021-04-14

민들레

정미영수필가민들레는 할머니와 나의 추억이 담긴 꽃이다. 사물은 사연이 담기는 순간 누군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된다. 그런 연유로 해마다 나의 봄은 민들레가 필 무렵 시작된다. 민들레를 보아야 마음에서 진정한 봄을 받아들인다.돌아가신 할머니는 봄날 입맛이 없을 때 뒷산을 찾았다. 민들레로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였다. 민들레를 캐고 난 뒤, 집에 돌아와 민들레밥과 민들레된장국을 상 위에 정성스럽게 올렸다. 된장국을 숟가락 가득 입안에 떠 넣으면 민들레 특유의 은은한 향이 온몸 가득 퍼졌다.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었다.봄비 그친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양지바른 산기슭과 밭둑 언저리에 피어난 민들레를 캐기 위해 어린 나를 앞장 세웠다. 할머니는 호미로, 나는 숟가락으로, 줄기를 조심스레 잡은 뒤 뿌리를 캐서 흙 털기를 반복했다. 칡 바구니 가득 민들레를 캐고 나면 민들레 내음이 손가락 사이에 뱄다.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뻐근해서 둥글게 말고 있던 등을 펴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는 붙박이처럼 제자리에서 민들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선을 느낀 할머니는 민들레처럼 살면 좋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생명력이 강한 민들레가 좋다면서. 민들레는 아무데서나 싹이 잘 트고 잘 자란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에도, 먼지가 겹겹이 쌓이는 길바닥에도, 무심한 사람들에게 밟혀도 죽지 않는다. 씨앗들은 멀리까지 날아가 부지런하고 야무지게 살아간다.할머니 역시 강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육 남매를 키웠다.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깊은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자식들을 위해 삭여야 할 때가 있었다. 삶이 주는 무게가 무거워 주저앉고 싶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했기에, 생활의 역경을 이겨나갔다.할머니는 생활에 대한 막막함의 농도가 짙어질 때면 가끔 나를 붙잡고 말했다.“영아, 할매는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고 싶데이.”민들레처럼 어디론가 날아가고자 꿈꾸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말투에는 삶의 고단한 염원이 담겨 있었다.민들레는 봄이 멀어질 무렵이면 바람에 몸을 싣고 멀리 여행을 떠난다. 바람에 자신을 맡기고는 낯선 땅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그곳에서 싹을 틔운다. 할머니는 살면서 문득문득 자신을 가두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남편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이 가슴 속에서 똬리를 틀고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때마다 민들레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진정한 삶은 남이 아닌 스스로가 만든 굴레에서 자유롭게 벗어나고자 노력할 때 주어지는 것이리라.세월은 할머니의 바람을 앗아갔다. 할머니 몸 군데군데 민들레 갓털처럼 버짐이 번졌다. 고달픈 생활 속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던 중에 치매 증상이 생겼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자유롭게 떠도는 여행이 아니라, 요양병원이라는 갇힌 공간에 모셨다.할머니가 하루빨리 호전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민들레의 재생력을 빌려서라도 할머니의 건강이 좋아져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기원했다. 민들레는 뿌리를 열 토막으로 잘라 땅바닥에 던져두면 열 포기의 민들레가 돋아난다. 잘라진 민들레 뿌리에서 다시 새싹이 돋아난다. 그러나 내 바람은 끝끝내 부질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민들레 씨앗처럼 훨훨 날아 저 멀리 하늘로 떠나셨다.나는 올해도 민들레꽃과 함께 봄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할머니의 품이 민들레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민들레는 할머니에 대한 내 슬픔의 인자를 내포하고 있다. 먹먹한 기억과 다정한 추억 또한 담고 있다.아파트 화단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민들레꽃이 나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민들레 향기를 닮은 추억들이 바람결에 실려 온다. 민들레가 할머니로 변신하여 자유가 되고 희망이 되어 바람결에 변주된다. 손을 뻗어 가만히 꽃잎을 쓰다듬으니, 봄과 이어진 연결 고리 하나가 내 손으로 건너온다.

2021-04-07

떡 만드는 여자

배문경수필가떡을 만든다. 쌀가루, 소금, 검은콩을 준비했다. 정확하게 그램을 맞춘다. 맵쌀가루를 채에 문질러 두 번을 내렸다. 쌀가루를 만지자 폭신폭신 카스텔라처럼 부드럽다. 오늘은 콩설기 떡을 만든다. 냄비에서는 서리태가 익는 중이다. 콩 색깔을 닮아서 물색도 검다. 다 익은 콩을 채에 한 번 내려 마른 수건으로 툭툭 쳐서 콩의 물기를 뺀다. 쌀가루에 소금을 적당히 뿌렸다.평생교육원에 떡 만드는 과정을 등록했다. 열두 명을 뽑는데 이곳에 들어오기는 하늘에 별 따기처럼 어렵지만 운이 좋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뜬 마음으로 떡을 만든다.찜기에 면포를 깔고 검은 콩을 촘촘히 깐다. 남은 콩과 쌀가루를 잘 버무려 가장자리부터 툭툭 치면서 빈틈없이 메운다. 다시 위를 평평하게 고른다. 그리고 대나무 찜기를 양손에 힘을 주어 안으로 민다. 그래야 떡이 익었을 때 찜기에 떡이 붙지 않는다. 그 사이 물이 끓으면 찜기를 올려두고 기다린다.보이지 않는 바닥에 콩을 예쁘게 까는 이유는 떡을 꺼내 뒤집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래가 위가 되고 위가 아래가 된다. 안 보인다 싶어도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쌀과 콩이 빈틈을 메우듯 속이 꽉 차 뒤집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상대를 감동 시킬 따뜻한 품성이면 좋겠다. 그리고 친하다고 너무 붙어 있으면 얼마나 피곤한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오래 가는 방법이다. 여유가 필요하다고 콩설기 떡이 오늘 나에게 설법한다.어릴 적, 동네 큰 잔치가 있으면 떡을 나눠먹었다. 떡을 얻어먹으려고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녔다.우연히 들은 떡 타령이 재밌다. 정월 대보름 달떡, 이월 한식 송병, 삼월 삼진 쑥떡, 사월 팔 일 느티떡, 오월단오 수리취떡, 유월 유두에 밀전병, 칠월 칠석에 수단, 팔월 한가위 송편, 구월 구일 국화떡, 시월상달 무시루떡, 동짓달 동짓날 새알시미, 섣달에는 골무떡이라 지역적 특징으로는 산중 사람은 칡뿌리떡, 해변 사람은 파래떡, 제주 사람은 감자떡, 황해도 사람은 서숙떡, 경상도 사람은 기정떡, 전라도 사람은 무지떡이다. 갑자기 떡 부자가 된 기분이다.익은 떡 위에 큰 접시를 대고 뒤집자 콩이 눌러앉은 자리가 갖가지다. 적당한 거리, 촘촘한 것, 드문드문 놓여 제멋대로다. 다음에 떡을 만들 때는 큰 하트 속에 작은 하트 그리고 더 작은 하트를 만들어 내놓으리라. 세상에 대고 사랑한다고 모두 사랑한다고 떠들 생각이다.난 오랫동안 떡을 좋아했고 만들고자 했다. 가까이에 떡 만드는 교육이 있는지 몰랐다. 떡을 찾아 헤맨 시간이 길었다.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떡 방앗간을 했다. 6살 되던 해, 온 가족이 모두 방앗간에 매달려 하루 종일 떡을 만들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떡가루를 갈던 기계에서 불이 났다. 그 불은 엄청난 속도로 방앗간을 모두 삼켰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에 불씨가 이곳저곳으로 튀었다. 방앗간 옆 살림집으로 번진 불은 삽시간에 지붕을 태우면서 너울너울 춤췄다.어린 내가 가족에게 끌려 나와 내의 바람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녀의 춤사위처럼 화려했다. 엄마는 자신의 모든 재산이 일순간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그 후 가족들이 겪은 고통은 오래도록 몸과 마음을 피폐화시켰다. 각자가 살아야 했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나 또한 그러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부터 떡을 만들고 싶어졌다. 떡을 만들면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떡이 가족이었다. 어린 내겐.떡을 만들어 흰 접시에 놓고 보니 첫 작품치곤 훌륭하다. 가슴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상징하던 방앗간, 불, 고통이란 단어들이 툭 하며 떨어졌다. 잘 했어. 내 마음이 나를 위로했다. 누군가의 가슴에도 이렇듯 위로가 되는 떡을 만들고 싶다. 떡은 사랑이니까.

2021-03-31

또다시 온 삼월

강길수수필가세레나.또다시 삼월이 왔습니다. 작년 삼월은 정월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에 정신이 홀려버렸었지요. 그 때문에 봄 편지 한 장 못 쓰고 지나갔었습니다. 세레나도 그랬다고요. 아마도 지구촌 모든 이가 그리 살았을 터입니다.올 삼월에도 자연은 솟아나는 연록 새싹들의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살구, 복숭아, 벚나무가 잇달아 사랑을 꽃피웁니다. 저 낮은 곳에는 하얀 별꽃과 파란 까치꽃들이 앙증스레 봄을 뽐내고 있고요. 한데 우리 사회와 지구촌은 아직도,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의 공포와 싸우고 있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마스크를 벗어 던질 수 있을까요.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병원체(病原體)…. 사람들이 어찌 피하며 살라고, 하늘은 이런 존재들의 생성을 허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지구란 행성은 생명에게 괴로움과 고통을 주는 도장(道場)으로 설계된 곳일까요. 생명체와 비 생명체의 특성을 다 가졌다는 묘한 존재 바이러스. 숙주의 생체 안에 들어가야만 증식하며 살 수 있는 이상한 병원체 바이러스. 21세기 과학 문명의 사회에서 왜 코로나바이러스 퇴치가 쉽지 않을까요.세레나.사람들은 코로나19가, 오고 있는 언택트(untact) 시대를 더 앞당겼다고 말합니다. 이 흐름은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한 ‘인간은 폴리스(polis)적인 동물이다’란 정의를 무산시키는 것일까요. 후에 세네카에 의해서 ‘사회적인 동물’로 번역되었다지만, 그 의미는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로 보아도 될 테지요. 얼핏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가 무너졌다 볼 수는 있겠으나, 우리가 누리는 컴퓨터, 휴대폰 등 정보 소통 도구들을 생각한다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소통 방법만 달라졌지, 공동체로 살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 달라진 것은 아닐 테니까요.바이러스가 생체에 기생하듯, 생명도 자연에 기대어 삽니다. 또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붙어살듯 인간은 자연에 기댈 뿐 아니라, 공동체에도 참가해야 삽니다. 올 삼월엔, ‘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표되는 ‘언택트 시대’란 명제가 제 앞에 턱 버티고 서 있습니다. 산골 농가에서 태어나 자라며, 사람에게는 친 생태계의 본능이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당시 농사는 완벽한 자연 순환형 농법이었으니까요. 한데 왜, 그 인간이 이룩한 물질문명 사회가 오늘날 기후변화, 생물 종의 감소, 사스나 코로나 19 바이러스 등의 병원체 발생, 전염과 같은 자연의 역습을 받는 처지가 되었을까요.컨택드(contact) 시대의 개인이 흙 입자라면, 언택트 시대의 개인은 모래 알갱이라 볼 수 있겠지요. 흙과 모래의 결속력을 따진다면 당연히 흙이 강합니다. 그러나 모래가 시멘트와 물을 만나면 콘크리트가 되어, 그 단단함은 구운 흙벽돌과도 견줄만할 것입니다. 어쩌면 언택트 시대의 가능성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언론 매체와 컴퓨터, 휴대폰 등 사회의 소통 도구와 방법들을 물과 시멘트의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인간이 지혜를 모은다면 말입니다.세레나.보도 가에 때 이른 작은 해님들이 삼월을 밝힙니다. 해님들은 머지않아 하얀 갓털 송이로 변신하여 봄바람을 기다릴 것입니다. 이윽고 명지바람 남실남실 불어오면 갓털은 씨방을 모시고 날아, 새 땅에 새 민들레로 태어날 테지요. 기후변화에 곧바로 대응하는 민들레가 거룩해 보입니다. 식물이 생태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살아내는 모습을 보노라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코로나 19로 얼룩진 두 번째 삼월을 하릴없이 삽니다. 웬일인지 올핸 새싹에 눈길이 더 갑니다. 철 이른 새싹은, 식물이 살기 위해 우리가 모르는 소통과 결정으로 변화하는 기후와 환경에 대처한 결과가 아닐까요. 정부가 강제한 ‘거리 두기’, ‘비대면’, ‘백신 접종’ 부작용 등이 사람을 우울하게 합니다. 하지만, 언택트 시대로 가는 훈련이라 여기며 새싹처럼 대처하려 합니다.또다시 온 삼월, 연록 새싹들의 생명 찬가가 온 누리에 메아리칩니다.

2021-03-24

징검다리

정미영수필가대학 2학년 때였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들뜨는 어느 봄날, 단짝과 교정을 걷다가 초등학교 남자 동창생을 만났다. 재수를 하여 나보다 일 년 뒤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다.살랑거리는 봄바람 탓이었다. 동창생과 인사말을 주고받는데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 한 올이 내 입술에 얹혔다. 그 순간 그가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치웠다. 허물없는 사이라 짜릿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단짝은 그 행동이 참 자상해 보였다고 했다.자상한 손길에서 애틋함을 느꼈을까. 단짝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꽃을 보면 선물하고 싶고, 차를 마시면 찻잔 너머로 미소를 건네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내 동창생은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사랑은 사치라고 했다. 그때 그는 갑작스럽게 불거진 부모님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워 했고, 군대 문제로도 고민하던 중이었다. 대학 새내기로서의 발랄함은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얼굴이었다.그래도 나는 단짝의 사랑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어느 새 스며든 사랑은 온몸을 적셔 친구는 힘든 가슴앓이를 했다. 슬픈 시만 골라 읽고 떨어지는 꽃잎에도 눈물을 흘리는, 그 아픔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친구가 밤새워 쓴 편지를 전해주기도 하고, 일부러 동창생과 자리를 마련해 함께 밥을 먹었다.대학축제 기간이었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휩쓸려 모두가 흥겨운 듯 보였는데 문득 친구가 바다 이야기를 했다. 밤바다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고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갈매기를 보면 가슴이 좀 트일 것 같다고 했다.무작정 부산행 열차를 타고 광안리로 갔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모래밭에 앉았다. 별 말 없이 앉아 있던 친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친구의 작은 몸집 어디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숨어 있었는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큰 눈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바다에 다녀온 뒤였다. 동창생을 만나면 때때로 모진 말들이 내 목까지 차올랐다. 네가 그렇게 잘 났냐는 둥 사람 마음 아프게 하면 벌 받는다는 둥…. 그러나 입 안에서 맴돌 뿐 내뱉지 못했다. 그도 소중한 내 친구였으므로.나는 둘 사이의 징검다리였다. 동창생은 친구인 내가 가운데 있어 단짝에게 매몰차게 거절 못했다. 단짝 또한 본심을 직접 전하지 않고 대부분 나를 통했다. 둘 사이의 연결이 쉽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마음의 강을 사이에 두고 쉽게 건너지 못했다.어렸을 때 강에 드문드문 놓인 징검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다. 반쯤 건넜는데 가운데 징검돌 두세 개가 없어서 난처했다. 무리를 해서 뛰기에는 돌 사이가 넓었다. 물에 빠질 것 같았다. 건너지 못하고 뒤돌아 나와 멀리 에둘러갔다. 길을 잇는 것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을 이어 주는 일임에랴. 그때 나는 징검다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양쪽을 연결하지 못하면 징검다리는 소용없다.얼마 전 어린 조카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었다. 북두칠성이 된 일곱 형제 이야기다. 홀어머니가 일곱 형제와 살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는 매일 밤 집을 나서 이웃집에 놀러갔다. 형제는 어머니가 차가운 강물을 건너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징검돌을 놓아 다리를 만들었다. 아들이 징검다리를 놓았다는 것을 모르는 어머니는 기도했다.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을 하늘의 별이 되게 해달라고. 일곱 아들은 나중에 별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북두칠성이라 했다.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연락이 뜸한 친구와 친구를 연결해 주고, 어쩌다 소원해진 가족과 가족을 손잡게 하고,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고 싶다. 물이 좀 깊어도 징검돌이 있으면 누구라도 건너볼만한 용기가 생긴다. 아쉬운 자리마다 든든하고 판판한 징검돌로 놓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 또한 밤하늘의 별빛을 닮을 수 있지 않을까.

2021-03-17

때로는 기적이

배문경수필가겨울 끄트머리에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번쩍하며 벼락이 떨어졌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세 마리의 개와 산책하던 남자가 벼락을 맞고 의식을 잃는 모습을 보았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소방관이 심폐소생술로 그를 살렸다는 기사와 현장상황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졸지에 벼락을 맞은 남자는 몇 달째 치료중이라니, 지독스럽게 운이 나빴지만 그 와중에도 목숨을 건졌으니 천운은 아니었을까.사람이 길을 가다 벼락을 맞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57만6천분의 1이다. 그리고 그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은 223만분의 1이다. 가까운 지인 중에 벼락을 맞았지만 멀쩡하게 살아있는 두 사람을 알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처음 바닷가로 떠난 MT에서 금속벨트를 착용한 친구가 벼락을 맞으면서 그 옆에 있다 변을 당했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굉음에 그대로 쿵하고 뒤로 넘어졌다는데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다른 한 명은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플라스틱 우산 꼭지가 벗겨지며 피뢰침이 되어버린 우산대로 전류가 흐른 모양이었다. 그때 평생들을 수 없을 만한 굉음으로 인해 한동안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플라스틱 손잡이였기에 전류가 몸으로 통과되지는 않았다. 역시 살 사람은 사는 모양이다.벼락을 맞는 것도 드물지만 벼락을 맞고 산 사람도 흔하지 않으리라. 그럼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얼마일까? 무려 814만5천60분의 1이다. 이것은 하루 동안 벼락을 세 번 맞은 사람이 다시 차에 치이고 뱀에 물리고도 죽지 않을 확률이다. 더욱이 로또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당첨될 확률은 1억7천522만3천510분의 1이다. 이 기막힌 숫자계산을 한 사람이 도리어 놀랍기도 하다.국내에서 발행한 최초의 복권은 1947년에 다음해 있을 런던 올림픽 참가비용을 모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때 액면가는 백 원이었고 일등 당첨금은 백만 원이었다. 이렇게 마련된 경비 팔만 달러로 선수단은 런던으로 떠날 수 있었다. 사소한 듯 낸 돈은 큰 목적에 사용되고, 다수가 낸 돈을 소수의 사람에게 행운으로 몰아주는 방식이다. 요행히 나도 5만 원에 당첨된 적이 있었다. 흥분되었던 나의 기억도 총 구입비용을 계산한다면 빙산의 일각이었다.복권에 인쇄된 것은 아니지만 당첨만 된다면 자신을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는 상사 눈치 안보고 작은 봉급에 연연해하지 않고 사표를 쓰리라. 날마다 치솟아 오르는 아파트에 나도 몸을 실어보리라.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인심을 내리라. 가난한 이웃을 도우리라. 무엇 무엇에 대한 수많은 기대와 포부가 복권 안에 담겨있다. 숫자 여섯 개를 맞추다 실망하여 ‘오늘도 안 되는구나’라는 한숨을 내쉬며 한두 개 일치하는 숫자나 세 개 정도 맞아 본전을 건지면 아쉬운 마음을 정리한다.그렇지만 오늘이 주는 힘듦을 잠시잠깐 상상력이 만들어낸 유토피아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힘이 하늘과 맞닿으면 일등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선택은 로또 자신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숫자의 배열 그 신비한 힘이야 말로 번개에 몇 번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처럼 기적이다. 때론 광고를 보며 ‘이거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야’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복권(福券)이 복권(福權)이 되길 바란다.그러고 보면 벼락을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과 복권 일등에 당첨된 사람은 행운을 거머쥔 사람이다. 어쩌면 유년에 연탄가스에 취해 죽다가 살아난 나의 삶도 벼락을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는가. 엄청난 경쟁을 뚫고 한 인간으로 살아남아 여기까지 온 것이 진정 기적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승리자다. 지금 이 순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행운이리라.연탄가스로 죽다 살아난 자의 운과 이십년 운전하며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행운에 산을 그렇게 올라도 뱀에 물리지 않고 내려온 운을 보태 이번 주말에도 복권을 샀다.문을 열자 천둥번개는 사라지고 새소리가 초록을 잉태한 봄을 깨우고 있다. 오늘도 기적의 하루를 열어젖힌다.

2021-03-10

우리 새싹들에게

강길수수필가우리 두 새싹, 태극이와 광복아!너희들 만난 지가 일주일도 안 되었는데, 또 보고 싶구나. 너희 아빠들 자랄 때 보다 우리 새싹들이 더 보고 싶으니,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할아비와 할미에겐, 너희들이 가장 소중하고 큰 행복이란다. 지금은 세상이 어찌 변할지 모를 혼돈시대다. 하여, 우리 새싹들에게 무언가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될 마음으로 이 편지를 쓰련다.일주일만 있으면 3월이 되는구나. 봄이 온다는 뜻이지. 입춘과 우수도 지났으니 지금도 봄일 테지만, 경험상 3월부터 봄이라 하고 싶다. 할아비 유년기의 봄은 아직도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다. 바로 새싹이란다. 고향 산골에 3월이 오면, 앞산 뒷산의 눈이 녹아 개울마다 도랑마다 맑은 물이 졸졸졸 흘렀지. 우리 집 앞 양지바른 밭둑 이곳저곳엔, 연둣빛 새싹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랐고…. 어린 할아비는 매일같이 새싹들을 만지기도 하며 노는 게 마냥 즐거웠단다.오늘, 할아비는 너희 할미와 텃밭에 갔었다, 지난 늦가을과 초겨울에 심은 양파와 마늘이 궁금해서였지. 전에 안 보이던 마늘 새싹이, 메말라 보이는 이랑에 다문다문 너희들 손가락처럼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니겠니. 할미는, “와! 마늘 새싹 났구나! 아이고, 귀여운 것들….” 하며 뛸 듯이 좋아하였다. 할아비는 연두색 마늘 새싹을 보는 순간, 손으로 만져보며 꼭 너희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옛날, 고향에서 좋아했던 봄 새싹의 기억이 덩달아 되살아나더구나. 텃밭 가꾸기를 처음 시작할 때, 비록 적게 거두더라도 할아비 유년 시절 보던 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단다. 즉, 비닐과 농약은 쓰지 말고 해롭지 않은 거름만 쓰자고 말이다. 심은 씨를 하늘이 길러주는 대로 받아먹어야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지. 사람들은 이런 할아비의 생각을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땅이 작을수록 농약과 비료, 비닐도 써서 수확량을 늘려야지 배부른 소리’라고 말이다. 하긴 텃밭이 크고 살림살이가 밭에 매여 있다면, 할아비도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우리 새싹들아!무엇보다, 너희들에게 유해물질 없는 먹을거리를 조금이라도 먹이자는 마음이 앞섰단다. 올여름 네 돌을 맞을 태극이와, 올봄 두 돌이 올 광복이가 할아비 할미가 노지재배로 거둔 푸성귀를 먹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지. 물론 잘 살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생태계를 희생하며 이룩한 지구촌의 현대 과학 문명이, 되레 생명이 살기 어려운 생태계를 만든다는 자각도 뒤따랐단다. 오늘날 점증하는 기후변화는, 푸른 별 지구가 사람들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경고하는 울부짖음이 아니겠니?서구(西歐)에서 부는 웰빙(well bing), 로하스(LOHAS), 슬로시티(slow city) 같은 운동은 지구의 경고에 대한 사람의 응답이라 여긴단다. 할아비가 어린 날 경험한 우리 농촌은 그야말로 친 생태적 삶을 살았지. 사람과 가축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기에, 하늘이 주는 자연 먹을거리를 얻어먹으며 소박하게 살았으니까 말이다. 유불선(儒佛仙) 사상이 어우러진 전통 우리 사회는 그 자체가 웰빙이요, 로하스며, 슬로시티였단다. 불행하게도, 지구촌 생태 운동은 아직 역부족으로 보이는구나.할아빈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 기후변화란 원죄’를 너희들에게 물려주게 된 기성세대로서, 그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구나. 지구촌이 작년 초부터 겪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전염병 대유행은 그 벌이 아닐까 싶어 겁이 난단다. 정치인들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은 안중에도 없이, 편 가르기만 일삼고 있다. 어찌 한 나라의 국민이 내 편만 있고, 내 편만 옳겠니? 나랏빚이 산더미처럼 늘어나도 퍼줄 생각만 하는구나, 나라 곳간을 제대로 챙기는 정치인과 관료는 안 보인단다. 불안한 나라 앞날을 생각하면, 할아비는 우리 두 새싹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우리 새싹들아!하지만 앞으로 세상이 더 암울해지더라도 너희들은 절망하지 말고, 희망으로 살아내기를 바라고 믿는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고 역사가 가르쳐 주기 때문이란다. 애국가에도 있듯이, 하느님은 우리 새싹들과 우리나라와 푸른 지구를 꼭 지켜주고 도와줄 테니까. 봄, 여름, 가을을 다 품은 새싹처럼….

2021-03-03

매화등(梅花凳)

정미영수필가매화 꽃바람 소리의 여리고 긴 여음을 쫓아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오늘 문득 이성부 시인의 ‘봄’ 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기다리지 않아도 오고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시인은 민주화에 대한 자유를 열망했는데, 나는 코로나19로 평범한 일상을 조심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시에 투영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혹독한 바이러스도 시간이 지나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희망의 ‘봄’을 마중하러 길을 나섰다.산책로에 홀로 서있는 매화나무가 나를 반겼다. 꽃봉오리가 터지는 그 절정의 순간을 돕기 위해 햇살과 바람이 연이어 두드렸다. 나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시간을 가만히 숨죽이며 지켜보았다.매화원으로 들어섰다. 퇴계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매화였다. 도산매는 지금도 뜰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매화의 매력은 맑고 그윽한 꽃향기다. 암향(暗香)으로 불리는 향기는 ‘귀로 듣는 향기’라고도 부른다. 어디선가 떨어지는 바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고요해야만 비로소 향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매화나무 앞에 섰을 때, 나는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퇴계의 매화 사랑은 유명했다.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라고 제자에게 말한 뒤, 임종하셨다는 일화는 세상에 많이 회자되고 있다. 방 안에서 매화를 마주보고 앉아 매형(梅兄)이라 부르며 밤새 잔을 주고받고, 취기에 젖어 많은 시를 읊기도 했다. 퇴계가 거닐었던 발자취를 가늠해 보며 나도 매화나무 언저리를 서성였다.전사청을 지나 선생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옥진각(玉振閣)에 들렀다. 유물관에서 매화를 투각한 청자 의자 ‘매화등’을 보았다. 청자로 빚은 의자의 둥근 몸체에 당초무늬와 연꽃무늬가 정교하고 화려하게 새겨져 있었다. 청자 의자가 뜻밖이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도산’이란 지명 유래가 떠올랐다. 옛날에 도산서원이 있던 이 곳에 옹기를 굽던 가마가 있었다. 옹기 굽는 산이라 해서 질그릇 도(陶)자, 뫼(山)자를 써서 도산이라 부르는데. 혹시 그 가마에서 매화등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해 보았다.매화등을 바라보다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의자들을 떠올려 보았다. 의자라는 이름으로 엮이지만 모양과 쓰임새가 다르다. 식탁 의자는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도록 식탁 아래에 넣을 수 있게 만들고, 피아노 의자는 몸을 움직이면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등받이나 팔걸이가 없다.우리네 사람과 닮았다. 의자마다 색깔이나 폭신한 정도가 다른 것처럼 사람 또한 생김새나 개성이 저마다 다르다. 의자가 제 몫의 맞춤자리에 놓여 쓰임새에 알맞게 지내는 것처럼, 우리도 자기 역량에 알맞은 자리를 찾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즘 청년 실업자가 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갖지 못해 지치고 힘들어 한다. 젊은이들이 자기 몫의 인생을 살고 싶어도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해 번민과 고뇌로 하얗게 밤을 지새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분명 저마다 쓰임새가 있다. 시간이 더디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자신의 적성에 맞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맞춤자리를 찾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저마다 각자 자리에서 빛나 보이고, 나와 다른 삶의 존재 방식을 존중받을 수 있으리라.매화등은 퇴계가 거처했던 방인 완락재(玩樂齋)에서 제 몫을 다했다. 선생이 매화를 감상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해 만든 것으로 날씨가 추울 때에는 의자 밑에 불을 피웠다. 매화등이 따뜻해지면 그 위에 앉아 매화를 바라봤단다. 매화등이 빛나 보이는 것은 매화를 사랑했던 퇴계 선생의 내력을 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매화등처럼 나도 내 몫의 자리에서 빛나고 싶다.

2021-02-24

자리

배문경수필가복수초(福壽草)가 피었다.노란꽃잎이 하늘을 향해 ‘영원한 행복’의 꽃말처럼 빛난다. 오래전 설악산 겨울 등반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꽃잎 위의 눈을 녹이던 복수초를 인터넷으로 다시 보니 반갑다. 겨울 눈 속에서 추위를 이기고 봄을 알리기 위해 피어난 강한 꽃이다.노란색을 유난히 좋아하던 딸이 집을 떠난 지 달포가 되었다. 딸은 학교를 졸업한 후 공무원시험을 치겠다며 가족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첫해 석 달 동안의 공부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시험을 치고 나오며 그동안의 공부와 시험에서 나름의 노하우를 얻은 것 같았다.책상 앞이 딸의 자리였다.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딸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다. 그리고 내가 잠든 동안, 내가 깨어있는 시간에도 아이는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사이 눈비가 내렸고 바람도 불었지만 안중에 없었다. 합격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시험에 사활을 거는 것이 사는 길임을 일찍이 깨달은 것 같았다. 딸은 책과 문제집, 인터넷 강의에 몰입했다. 지독한 각오가 보였다.인내의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나는 딸을 위해 기도했다. 어머니의 염원처럼 아니 모든 어머니가 나와 비슷한 선택을 하겠지만 두 손을 모았고 엎디어 절을 했다. 매일 새벽기도가 끝나고서야 출근했다. 눈비가 내리고 천둥이 쳐도 상관없이 그 길을 걸으며 한 해를 보냈다. 답이 그 끝에 있었다. 합격이란 말에 모든 시름을 내려놓았다. 요즘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데, 모지락스러워야 취업에 성공할 수 있는 듯 했다.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창틀에 화분들이 오종종 놓여있다. 햇빛을 받는 화분은 잘 자라고 그늘에 둔 화분에는 꽃이 잘 피지 않거나 색이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한 번 씩 자리를 바꾸어주고 기름진 흙을 사와서 기존의 흙과 섞어 화초들을 정리한다. 작은 화분에 있던 식물의 뿌리는 둥글게 엉켜진 채 화분 크기만큼 자라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이러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옹골차게 만들어 나갈 힘이 있다.집에는 빈자리가 생겼다. 딸이 스물 중반까지 제 방을 오가며 울고 웃던 모습을 늘 지켜봤다. 떠난 뒤 자리는 적막하다. 벽에 남아있던 포스트잇도 다 사라지고 쓸모가 없어진 시험문제집이 밖으로 나갔다. 웬만한 짐은 꾸려서 새로운 자리로 옮겼다. 이제는 남은 가족들이 조금씩 당겨 앉으며 벌어진 자리를 메운다.책상과 의자를 옮겼다. 바깥풍경이 보고 싶어 창문을 맞은편에 두었다. 나는 이제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원하던 책을 읽고, 인생의 본질과 가치를 더듬어 보리라 맘먹고 있다. 추억 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나를 찾아보려한다. 또 그것을 기록하며 깨알 같은 의미들을 찾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고자한다. 지금 이 자리는 나만의 꽃을 피우는 자리가 될 것이다.법구경에는 득생인도란(得生人道難) 말이 있다. 만물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정말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힘들게 태어난 사람의 삶이 녹록치 않다. 사는 일이 막막할 때, 나는 제우스의 노여움으로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하는 시시포스를 떠올리곤 한다. 알베르 카뮈는 이 형벌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했다.지금 이 자리를 가장 좋은 자리로 만드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다. 수많은 인생성공을 거론한 자기 개발서도 대신해 줄 수 없다.삶의 자리를 꽃자리로 만드는 일은 오직 최선을 다할 때이며 자기 자신만이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구상 시인의 ‘꽃자리’란 시가 떠오른다.‘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

2021-02-17

커피 가루 딱지 치료

강길수수필가눈 깜짝할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자전거가 황급히 멈추면서 몸이 고꾸라지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살기(殺氣) 등등한 괴물로 달려들던 청백색 승용차가 아슬아슬 코앞을 스치며 달아났다.본능적으로 일어나 엎어진 자전거를 세웠다. 아무 느낌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절로 바라본 문제의 차는 벌써 저만치 뺑소니치고 있다. 아스팔트 노면에 부딪힌 왼쪽 무릎이 아파졌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황당했다. 일방통행 이면도로의 작은 교차로에서 당한 아차 사고…. 기겁하여 자전거와 함께 자빠지며, 급발진 차량처럼 돌진해오던 차를 속수무책 쳐다만 보던 순간이 되살아나 머리를 아찔하게 하였다. 운전자가 미웠다. 그는 멈춰서야 했다. 멍한 상태의 내 눈엔 저 멀리 사라지던 차량의 뒷모습만 아련했다. 그 차가 일방통행로를 역주행으로 달려왔던 사실도 비로소 알아챘다.욱신거리는 무릎의 아픔을 참으며, 가까운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대로 파출소에 가서 뺑소니 신고하고, 폐쇄회로 텔레비전이라도 보아 달아난 자를 찾아볼까’하는 마음이 끓어올랐다. 사무실에 와서 아픈 왼쪽 무릎을 살폈다. 초겨울이라 두꺼운 바지를 입었는데도, 팥을 간 듯 벗겨진 피부에 피멍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작은 핏방울도 몇 개 송골송골 맺힌다.사무실엔 있는 줄 알았던 구급약도 없다. 화가 부글거렸다. 만일 곁에 누가 있었다면, ‘무슨 놈의 사무실에 구급약도 없냐?’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이리저리 상처에 쓸 만한 것을 찾아봐도 책상 서랍에 있는 오래된 일회용 밴드 한 개가 전부였다. 황야에 혼자 남은 기분이 들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떡할지 생각했다. ‘약방에 갈 정도는 아니니, 다른 방도를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어릴 때 무릎이나 손바닥, 팔꿈치 같은 곳에 가끔 팥을 갈았다. 그 비방(秘方)이 찰흙이었다. 마른 찰흙 가루를 상처에 뿌리면 딱지가 앉아 잘 나았다. 찰흙 대체품 찾기를 궁리했다. 머릿속에 커피가 떠올랐다. 얼른 커피 통을 열어 알갱이 몇 개를 백지 위에 부었다. 알갱이를 손톱으로 눌러 가루로 만들어 상처에 뿌렸다. 흩뿌려진 커피 가루를 손가락으로 상처에 고루 폈다. 분 바른 듯, 상처는 커피 가루로 곱게 코팅되었다. 입자가 더 작으니 산소접촉면적은 더 커졌을 것이다.무릎 상처에 생긴 커피 가루 보호막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상처 나면서까지 몸을 지탱한 덕분에, 돌진하는 차와 부딪치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이다. 무릎아, 고맙다!’ 의문이 꼬리 물었다. 달려드는 차가 처음 눈에 보일 때, ‘앗! 큰일 났다’하는 놀람뿐이었다. 한데 어떻게 그 찰나에, 자전거가 멈추고 몸이 고꾸라졌을까. 내가 모르는 순간, 손가락이 자전거 브레이크를 꽉 잡은 것이다. 왜 그럴까. 학자들이 말하는 자기보호를 위한 무조건반사(無條件反射)작용 때문인가. 그렇다면 눈이 포착한 차량 급습의 긴박한 정보는, 대뇌를 거치지 않는 척수반사(脊髓反射)로 우선 작동하여 큰 사고를 면하게 하였으리라.커피 가루 코팅 막을 비집고 진물 몇 방울이 송골송골 올라왔다. 휴지로 훔쳐내자 멎었다, 바지를 걷어 올린 무릎과 장딴지가 싸늘해지자, 부글거리던 홧김도 진정되었다. 경찰을 찾아가도 아차 사고로 끝난 이상, 어찌 할 방도는 없다는 현실 인식도 돌아왔다. 곧 딱지가 앉으리라 믿으며 바지를 내렸다. 바지 천 무릎 부위에 마찰 흠이 제법 크게 생겼다. 헛웃음이 나왔다. 두세 주 후, 갈색 커피 가루 딱지가 떨어지며 상처도 말끔히 나았다. 커피 가루 딱지 치료 성공이다. 운전자에 대한 미움도 거두었다.악착스럽지도 민첩하지도 못해, 늘 어눌하게 세상을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커피 가루 딱지를 통해 또 만났다. 군대 생활 3년, 오랜 직장생활에서의 업무와 교육 훈련, 언론매체와 온라인을 통한 재난대비 훈련 등이 실제상황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날, 봄바람 같은 겨울바람이 등 뒤에서 귓볼 사이를 간질이며 유혹하더라도 조심했더라면, 아차 사고는 당하지 않았을 터. 살랑대는 바람에 업 된 기분으로 발걸음도 가벼운 자전거 페달을 밟다가 변을 당할 뻔했다. 호된 대가를 치른 안전훈련 한번 잘 받았다.

2021-02-03

넛지

정미영수필가찬바람머리에 수변공원을 거닐었다. 지난여름 운암지를 충만하게 덮고 있던 아리연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물가는 텅 비어 쓸쓸했다.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차가운 물 아래에는 혹독한 겨울을 길게 견디며 봄물 번지기를 기다리는 연꽃 씨앗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물이 시리다고 불평하지 않는다.절정을 꿈꾸며 인내하는 씨앗들을 생각하다 보니, 요 며칠 번잡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독서를 해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사색을 깊이 하지 않으면서도 창의적인 사유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나날이 늘었다. 연꽃 씨앗의 인내를 닮아 내 행동을 바로 잡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넛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넛지는 ‘팔꿈치로 살짝 찌르다’라는 의미를 지녔다. 타인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변화하도록 하는 부드러운 설득을 말한다. 팔을 잡아끄는 것처럼 강제와 명령 없이, 팔꿈치로 툭 치는 것 같은 유연한 개입으로 자발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연꽃 씨앗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정자가 나왔다. 정자 한 쪽 귀퉁이에 빛바랜 책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구청이나 공원 관리소에서 마련했는지 살펴보아도 그런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호기심이 생겨 책장 문을 열었더니 제법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가장자리에는 조그만 글씨로 ‘책을 깨끗이 본 다음, 꼭 제자리에 두고 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마음 넉넉한 이가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훈훈한 바람이 일었다. 누구든지 공원을 찾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게 책을 보라는 뜻이리라. 뭇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눠주는 책장 주인의 사려 깊은 행동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남들과 공유하기 위해 멋진 생각을 한 선한 사람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나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깊은 울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에는 나에게는 이제 필요 없지만, 타인에게는 아직 보탬이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때로는 작은 나눔이 큰 선행이 되어 남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름다운 가게’에 보낼 기증물품을 오랜만에 정리해야겠다. 나는 책장 주인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나도 잡지 한 권을 꺼내들고 자리를 잡았다. 리우올림픽 경기에 출전했던 네덜란드의 승마선수 코르넬리슨에 관한 기사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경기 중에 자신의 말 파지발이 아프다는 걸 눈치 채고 기권을 해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19년을 함께한 파지발의 건강을 위한 결정이었다. 코르넬리슨은 경기 전 아픈 파지발을 옆에서 보살피고 잠도 마굿간에서 함께 잤다.다행히 시합 날에는 파지발의 열이 많이 내려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파지발이 뭔가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경기를 포기했다. 그것은 바로 파지발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동료 선수, 인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나는 어떤가? 몇 년 전 겨울, 초등학생인 딸아이가 애지중지 키우던 정글리안 햄스터를 죽게 만들었다. 요즘처럼 매섭게 춥던 날이었다. 음식 냄새를 없애려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 깜빡 잊고 외출했다. 볼일을 보던 중에 펑펑 우는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엄마, 해미가 움직이지 않아. 어떡해.”학교 갔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햄스터를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집이 추워서 동면에 든 것 같았다. 야생 동물이 겨울잠을 자는 것과는 달리 애완용 햄스터는 동면에 들면 죽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햄스터에게 미안했다. 코르넬리슨처럼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려면, 동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잡지 글 한 대목에게 부드럽게 설득 당했다.오늘은 산책을 하는 동안 부드럽게 넛지를 거듭 당했다. 내 마음에 벌써 봄꽃이 피었는가. 은은한 향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2021-01-27

타인의 방

배문경수필가문을 닫자 사면에 갇혔다. 생일을 맞아 카페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잠시 보냈다. 뒷날 함께 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일 전날 코로나양성인 사람과 함께 있었다고 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기겁을 한 친구는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전해왔다.말로만 듣던 두려운 상황이 내게도 일어났다. 코로나가 나와는 상관없으리란 생각이 여지없이 깨졌다. 잠시 침착하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나마 일요일이라 다행이었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사방이 숨조차 쉴 수 없이 옥죄는 감옥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도 시원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양성일 수 있다는 불안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코로나에 걸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병원이 직장인 나는 입원환자와 의료진들, 직원들, 진료를 볼 환자들,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게 된다. 가족들은 또 어찌해야 할지 답이 없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던 코로나 환자가 입원한 병원과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자꾸만 떠올랐다.그 순간 목이 아프고 가슴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증세가 나타나는 걸까. 두려웠다. 사실이라면…, 종일 마음속 지옥에서 온갖 상상을 하며 보낸 시간이었다. 늦은 시간에 친구로부터 음성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온통 세상이 깃털처럼 가볍게 와 닿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그 후에도 나는 세 번의 독방을 더 경험했다. 그러는 사이 현관문을 열면 삽시간에 가족들이 사라졌다. 집으로 들어서면 거실은 좀 전까지 텔레비전을 봤는지 요즘 유행하는 미스트 트롯의 멤버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트로트를 열심히 불렀다. 급하게 방으로 모두 들어간 흔적이다. 입에 착 달라붙는 노래가 어서 오라고 인사한다. 나를 반기던 가족은 모두 타인이 되었다.노크를 하면 곧 첫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될 딸의 예민해진 외마디가 들린다. 방마다 사람은 있지만 벽처럼 단단한 문은 걸쇠를 건 채 여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나의 “퇴근했다”는 인사소리만 메아리처럼 울리다 바닥에 툭 떨어진다.방문을 닫으면 외롭다.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을 보든 음식을 먹든 함께 하던 시간이 아주 오래전처럼 아득하다. 최인호의 타인의 방처럼 인정받지 못한 내가 웅크리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타인에게 힘든 상황을 만드는 것도 내가 타인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안전하기를 바라지만 고립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버겁다.상황이 코로나 검사를 받게 했고 그때마다 음성이었다. 음성이라는 문자가 올 때까지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겁다. 음성이 지금 괜찮다는 뜻이지만 ‘다행’이 언제 ‘불행’이 될지 모른다. 그만큼 역병은 내 주변까지 깊게 파고들었다.이러다 어느 순간 나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의 주인공인 그레고리처럼 가족들로부터 잊히는 것은 아닐까. 죽음이라는 단어가 현실을 움직이는 괴물이 되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미 코로나로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그 속도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이다.오늘도 현관문을 무겁게 열었다. 식탁 위에 어머니가 금세 끓인 된장찌개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그 옆에는 딸아이가 쓴 예쁜 카드에 며칠 후 출근한다며 엄마의 건강을 걱정했다. 남편이 낮에 직장으로 전화를 했었다. “별일 없제?” 무뚝뚝한 한 마디를 하고 끊었다.긴 시간 적과 싸우며 지친 나를 가족들이 위로한다. 내 곁에는 각각 타인의 방처럼 보이는 곳에 자신을 가둔 가족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마스크를 끼고 거리를 두고 손을 자주 씻는 일이 예방이다. 그것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적을 무찌르는 것은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체온을 올리면서 면역을 키워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방마다 고립된 가족 모두가 서로를 염려하는 텔레파시를 열심히 타전하고 있다.

2021-01-20

부활한 성탄 트리

강길수수필가몇 해를 망설였다. 일을 미루는 버릇이, 삶에 큰 마이너스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불치병처럼 고치지 못했다. 이번에는 자신뿐 아니라, 한 생명에게 큰 잘못을 하고 말았다.접이식 작은 톱을 들고, 몇 년 동안 미루던 일을 하러 간다. 그 생명 앞이다. 낮은 밭둑에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던 터라, 제법 늠름하다. 행사 때 묵념하듯 속말로 사전 고해성사를 한다. “소나무야, 미안하다. 이제 더는 너를 여기에 둘 수 없구나. 어릴 때 옮겨 주지 못해 더 미안하다. 부디, 다음 생은 좋은 곳에 자리 잡으렴….”사람이라면 아동기에 해당할 소나무다. 밑동 둘레가 두 손으로 움켜잡으면 굵기가 조금 남을 정도로 컸다. 밑동에서 허리춤 정도 올라가면 원줄기가 두 개로 갈라졌다. 톱날을 소나무 밑동에 들이민다. “쓱싹쓱싹….” 톱날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소나무의 몸을 자르기 시작한다. 아는지 모르는지 소나무는 반응이 없다. 순한 양같이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 싶기도 하다. 아니, 소나무는 비명 지르며 절규하는데, 사람인 나는 알아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 소나무가 내는 비명소리와 내가 알아듣는 소리의 주파수가 달라서 말이다. 톱날이 톱밥을 밖으로 뱉어내자, 소나무가 속에 간직한 비밀의 향내가 번져 나왔다. 실로 오랜만에 맡아보는 냄새다. 군 제대 후, 고향에서 한 해 가량 취업 준비 겸 농사일을 도우며 지냈다. 그때 산에 나무하러 가는 길에, 방해되는 가지를 톱으로 자르며 맡아 본 뒤 처음이다.두 팔은 열심히 톱질하는데, 마음속은 복잡하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들기 때문이다. 네가 예전 시골서 자랐더라면 멋진 디딜방아의 방아채와 다리로 쓰였을 텐데 아깝다든가, 베어낸 너를 텃밭 어디에 쓸데는 없을까 하는 궁리, 하필 좋은 산 다 두고 밭두렁에 나서 무지막지하게 요절을 당하니, 너도 참 박복하다는 둥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부모 소나무들이 사는 산까지는 직선거리로 200m는 될 터다. 한데, 솔방울 안 씨앗의 작은 날개로 예까지 날아왔다고 생각하니 믿기지 않는다.밑동을 다 베자, 소나무는 밑 밭이랑으로 속수무책 쓰러졌다. 앞길이 창창한 소년 소나무의 생이, 인간인 내 욕구에 따라 마감되는 모습이다. 이 소나무의 씨앗은 무슨 뜻으로, 바람 타고 이 먼 곳에 정착했을까. 자연은 하늘의 뜻을 따를 터. 그렇다면 하늘이 경영하는 자연 질서란 뭐란 말인가. 뒷정리를 위해 가지들을 쳐내고, 둥치도 들어 치울 수 있을 정도로 잘랐다. 떨어진 솔방울들을 모아 건너편 언덕으로 던졌다. 그냥 두어 이곳에 또 나면, 다시 뽑아내거나 옮기거나 베어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두 주 만에 텃밭에 다시 왔다. 자른 소나무 밑동이 궁금해 그곳에 갔다. 덮어 두었던 작은 솔가지를 들어냈다. 잘린 단면이 보기 미안해 나도 모르게 덮었었다. 나이테를 살펴보았다.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오륙 년은 되어 보였다. 잘린 껍질과 줄기 사이에선 송진이 눈물로 배어 나오고 있다. 가슴이 짠했다. 낮은 곳에 쌓아둔 가지들에게 눈이 갔다. 역시 푸르다. 잘린 둥치는 푸른 가지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이 슬픈 나무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방법 곧, 다른 쓰임새로 부활시키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번쩍 났다. 머릿속의 알고리즘이 빨리 회전한다.‘그래.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구나. 예쁜 가지를 가져다가 살아있는 성탄 트리를 만들자. 트리에 꽃과 눈, 별을 장식하여 손자들에게 보여주자.’ 하는 아이디어가 뒤이어 떠올랐다. 쉬는 화분에 어울릴 가지 두 개를 골랐다. 아이들 성장하고 나서부터 집에 거의 성탄 트리를 마련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올해, 오랜만에 플라스틱 나무가 아닌, 산 소나무 가지로 트리를 세우고 솜과 조화 등으로 아담하게 꾸몄다.비록 작은 가지 둘이지만, 소나무는 새 생명으로 우리 집 거실에 되살아났다. 땅속 물과 공기와 햇빛으로 사는 생명은 끝났다. 하지만, 소나무는 사람들에게, 성탄과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는 살아있는 성탄 트리로 부활하였다.크리스마스 날, 부활한 성탄 트리 위로 푸른 별빛 한줄기 찾아오겠지….

2021-01-13

지금은, 기원할 시간

정미영수필가한 해의 끝자락과 한 해의 첫자락을 알리는 접점에 있다. 12월 31일. 새해 달력을 넘기자 1월이 맑은 얼굴로 나를 반긴다. 매년 이맘때가 되어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면 분분히 떠나가 버린 시간과 만리장천을 건너가 버린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교차한다.신년 목표를 성실하게 세우리라 마음먹고 책상에 앉는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맞이’란 낱말이 달려오면서 내 몸과 마음을 들쑤성거린다. 첫 다짐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새해 첫날 해돋이를 바라봤을 때의 마음가짐을 품고 생활하는 것은 아닐 런지.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처음 마음먹었던 때를 되새기듯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새해 소망을 빌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마음이 추슬러지고 힘차게 분발하게 된다.새해 아침을 호미곶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기에 소원을 빌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해맞이 명소 중의 하나다. 나는 새벽 동이 트면서 빛줄기가 비출 때 제일 먼저 바닷가에 자리 잡고 경건한 마음으로 해돋이를 기다리려고 했다. 상생의 손 위로 물새들이 힘차게 날갯짓하며 비상하는 그 순간, 해오름에 흩뿌려지는 금빛가루를 맞으며 소망을 비는 내 모습이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호미곶에서의 해맞이 기원은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올해 새해 소원은 친정어머니처럼 정화수를 떠놓고 빌어야겠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이면 대접에 정화수를 받아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그 모습이 늘 한결같다. 주택에 살 때는 이른 새벽 장독대 위에 물을 놓고 식구들을 위해 기원했다. 지금은 아파트 생활을 하니 싱크대가 장독대 역할을 한다. 그 옛날 우물에서 길어온 물은 정수기물이 대신한다.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이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몸살이 나서 누워 있다가도, 모처럼 여행길에 올랐어도, 생수 한 사발을 떠놓았다.“엄마, 어쩜 그리 부지런해.”“물 한 그릇 떠놓는 게 뭐가 어렵노!”어머니는 나에게도 권한다. 내가 보기에 기도할 경건한 장소를 찾아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니 번거롭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손을 하지 못하고 있다.작년 여름, 어머니와 함께 휴가를 보냈다. 어느 바닷가 근처에 하늘을 지붕 삼아 텐트를 쳤다. 그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어머니는 코펠 그릇에 물을 떠놓고 여행지에서의 안전을 빌었다.나는 조그마한 그릇 안을 들여다보았다. 손바닥만한 그곳에 파란 하늘이 들어 있고 흘러가는 구름이 잠시 머물러 있었다. 바람과 새가 드나들기를 되풀이하기도 했다. 내가 무심코 보았던 어머니의 정화수는 생명을 담고 우주를 담고 있었다. 그냥 물이 아니라 어머니의 믿음과 정성이 들어 있었다.어머니는 소원성취를 빈 물로 쌀을 안친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밥이라 친정에 들렀을 때 가끔 식사를 거르고 싶다가도 억지로 한 술 뜬다. 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면 역시 먹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내 평범한 행동 하나에도 어머니는 행복해 하고 특별한 의미를 둔다.어머니의 삶은 항상 식구들 위주다. 어머니의 촉각 더듬이 또한 항상 자식을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내 몸이 아플 때면 남편보다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뜨거운 것을 만질 때에도 ‘엄마’하고 소리 내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럴 것이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기도하는 어머니의 손’이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자식을 위해 먼저 기도하시고,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기 전에 자식을 위해 먼저 눈물 흘리시는 어머니의 손. 나이가 들면서 여성은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서툴지만 비손을 하련다.신축년 새해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기원할 시간이다.

2020-12-30

다시 봄을 추억하다

배문경수필가1954년 오늘 조지프 머레이와 하트웰 해리슨이 환자에게 쌍둥이의 콩팥을 이식했다. 인간의 장기이식에 성공했다. 신장이식이라는 획기적인 일을 통해 인간의 수명은 더욱 연장되었다. 더 나아가 생명은 선순환의 신기원을 이루었다.오래전 만난 할머니는 흰 머리를 곱게 빗어 늘 비녀를 꽂았다. 참빗이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통과하는 사이에 몇 올은 버려지고 매끄러워진 머리는 정수리에서부터 쓸어내려 뒤로 쪽을 지었다. 여든을 넘긴 몸 어디에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단호함이 서렸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죽음으로 가면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똑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호스피스병동이 없는 병원의 일 인실에서 통증을 어떻게 참으며 자신을 다독였을까.노인들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암이 천천히 전이되거나 죽음으로 천천히 간다. 그래서 가족들은 환자 당사자에게 쉬쉬하며 돌아가실 때까지도 숨기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식들이 힘들까 봐 도리어 침묵한다. 그 마음속에는 묵직한 바위 하나가 들어 있었으리라.할머니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아들과 며느리, 딸들이 그들의 자식들을 데리고 자주 왔다. 먼 곳의 자식들은 주말에 들러 계절과일을 깎아 두거나 정성들인 음식을 갖고 왔다. 할머니는 큰소리로 말하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다.간혹 할머니가 창가를 서성이거나 밖을 바라볼 때 슬픔의 무늬가 어른거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담아둔 살아온 삶의 회한이 왜 없었을까. 살고 싶다고 발버둥을 치고 싶지는 않았을까. 아무도 할머니께 그 죽음으로 가는 길을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끝이 결국 마지막을 향해 열려있는 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듯했다. 찬찬히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해가는 단단하고 정갈한 마음가짐을 엿볼 수가 있었다. 자신을 잘 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한쪽은 늘 무거웠다.누구나 자신의 죽음을 직감할 때가 있다. 어린 날 추억 속을 더듬어보면 집에서 키우던 송아지가 암소가 되었다. 부모님께는 큰 재산이었고 나에게는 누렁소가 가족처럼 정다웠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소를 팔았다고 했다. 그 소리에 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소를 실은 트럭이 덜컹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그 트럭 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집에서 가족처럼 함께 하던 소를 보았다. 소는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도살장으로 가는 길이란 것을 알고 있는 듯이.밤새 안녕이었다. 누웠던 침대 시트는 새로 깔아져 있었다. 자신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임을 알고 얼마나 절망했을까. 자식들이 힘들어할까 봐 혹은 타인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면벽 승처럼 단단히 자신을 옭아맨 채 버텼을 노인을 생각하니 마음은 나사가 빠진 듯이 덜컹거렸다. 창밖에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된 할머니의 몸은 대학교에 기증되었다. 의대생들의 해부학 시간에 실습용으로 제공되리라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몸이 의학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속내를 밝혔다고 했다. 여든이 넘은 노인이 어떻게 기증을 생각했을까. 그토록 대단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정신력의 산물은 아니었을까.결코, 쉬운 결정이 아닌 사체 기증을 승낙한 할머니는 온 도시를 불붙이던 벚꽃이 채 다 떨어지기도 전에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맺혔을 눈물 한 방울은 금강석처럼 반짝이지 않았을까. 고요의 시간 속으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를 본 것 같았다.오늘 그 할머니를 다시 생각한 것은 누군가의 생명이 누군가에 의해 살아나고 있으리란 희망 때문이다. 겨울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만 봄엔 환하게 꽃이 필 것이고 냉골 같은 고통에서 벗어난 환자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웃을 것이다. 선순환을 몸소 실천한 할머니가 봄꽃처럼 환하게 웃으실 모습을 떠올려본다.

2020-12-23

세모로 가는 장미

강길수수필가지지 않는 꽃이라도 된 걸까. 세모(歲暮)로 가는 12월 중순. 밤에 서리가 내릴 기온인데, 붉은 장미가 제법 많이 피었다. 높은 적색 벽돌 담장 위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 잎 스카프 두르고, 앳된 볼을 붉히며 일제히 해를 바라본다.오뉴월의 화려한 얼굴의 장미는 아니지만, 사춘기 소녀같이 수줍다. 봄, 여름, 가을 다 겪은 장미가 어찌 저리도 풋풋한 얼굴을 피워낼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라면 저승 문턱을 넘었을지도 모를 때인데, 아직도 이팔청춘을 구가하고 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마치 금단의 집이라도 되는 양, 옛 성채(城砦)같이 높은 담장 위로 피어난 수줍음에 신비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오랜 세월, 숱한 곳에서 많은 장미를 보았다. 하지만 젊은 날, 부푼 꿈속에 시작한 첫 직장의 철망 울타리에 일제히 피어났던 장미의 장관(壯觀)을 잊을 수가 없다. 계절의 여왕 오월이 되면, 철 울타리는 온데간데없고 장미 울타리가 근 십리 길을 밝혔다. 차를 타고 지나가도 사람들은 감동했다. 하물며 장미 울타리 곁 보도를 걷거나 자전거 타고 지나가노라면, 그 모습과 향기가 사람을 홀리고도 남았다. 마치, 하늘나라 울타리를 보고 있는 듯도 하였다.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시인이 되고, 작가도 되며, 음악가가 되고, 화가도 되게 만들었다.어링불 아름답던 해변에 세워진 거대한 제철소. 그 앞으로 연오랑 세오녀의 고장 도기야로 가는 길이 옮겨졌다. 길옆 보도와 공장지대를 구분하는 철망 울타리도 세워졌다. 자칫 딱딱해 보일지도 모르는 제철소의 철망 울타리에 장미를 심은 것은, 지금 되돌아보아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학교를 갓 졸업하였거나, 군에 바로 다녀온 젊은 사원들이 대부분이었던 그때의 제철소. 봄날이면 출퇴근 때마다 만나는 장미 소녀의 예쁜 얼굴과 온몸을 감싸는 그녀의 향기에 저절로 즐거운 일터가 되었다.직장을 바꾸고, 일에 매달리며 장미의 기억은 멀어져 갔다. 사는 게 무엇인지 중, 장년으로 가는 동안 마음도 시나브로 메말라 갔다. 시간의 강물이 흐르는 동안 장미 나무는 늙고, 회사의 경영진도 바뀌었다. 아름다웠던 장미도 어느 날 자취를 감추었다. 장미가 있던 자리엔 낯선 나무가 들어서고, 그 뒤로 녹지가 조성되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서, 제철소의 장미도 내 마음에서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 가라앉아 버렸다.긴 세월이 흘렀다. 다른 곳에서 해마다 장미는 피고 지고를 반복했건만, 젊은 날의 장미는 내 마음에 좀처럼 다시 피어나지 않았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들의 삶은 많이도 변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를 거쳐 지식정보화사회에 와 있다. 오프라인의 현실 정보가 온라인 곧, 정보통신의 가상세계 안에서 처리되고, 가공되며, 조정되는 시대다. 영화 ‘매트릭스’가 말해 주듯, 가상세계가 현실 세계를 좌우하는 상황들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다.설상가상으로 지구촌의 기후변화가 미증유의 사태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일반 시민도 느끼는 시대가 되었다.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생존환경의 변화가 사람은 물론 동, 식물계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보도를 통해 익히 아는 바다. 내 눈에는 사람보다 식물이 그 변화에 더 빨리 대응하고 있어 보인다. 장미도 그 중의 하나다. 장미 생육 정보를 찾아보았다. 보통 장미는 기온 25℃ 전후가 적정 생육온도이며, 밤에도 16℃ 전후가 좋단다. 또, 5℃ 정도에 생육이 멈추고, 0℃ 이하가 되면 낙엽이 지고 휴면에 들어간다고 한다.이 정보대로라면, 저 높은 담장 위의 장미는 벌써 휴면에 들어갔어야 한다. 요즈음의 밤낮 기온은 적정 생육온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앳된 소녀 얼굴을 내민 저 장미들은, 무언가 절박함이 틀림없으리라. 하여 세모로 가는 장미는, 저 높은 성채 담장 위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부르짖고 있는 게 아닐까.“사는 환경이 이리도 빨리 변하니, 우린 겨울까지 꽃피우고 열매 맺으렵니다!”

2020-12-16

수지침, 정(情)을 건네다

정미영수필가남편의 모습에 모처럼 활기가 넘친다. 봉사 가는 주말 아침이면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떤다. 그를 보며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부부에게도 이제 주변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걸 느낀다.몇 년 전, 남편은 수지침을 배워 자격증을 땄다. 그러더니 회사 자매마을에 가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람된 일을 하는 남편이 듬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못마땅했다. 나는 바깥일, 집안일, 어린 삼남매 키우느라 힘이 든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처음에는 입 안에서만 얌전하게 맴돌던 말들이었다. 나중에는 가시가 섞인 채 입 밖으로 튀어나와 남편의 가슴에 사정없이 꽂혔다.서로 얼굴 붉히기를 몇 차례 주고받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나에게 자신이 봉사하는 곳에 가보자며 조심스레 권했다. 나는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에 파고들어 자꾸만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아침이라 그런지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찾아간 마을 회관 역시 썰렁했다.시간이 흐르자 할머니 한 분이 남편을 마주하고 앉았다. 할머니는 온 몸이 다 쑤신다고 했다. 남편은 할머니의 거뭇하고 투박한 손 여기저기에 침을 꽂았다.뻗은 손이 힘들었던지 할머니가 팔꿈치를 허벅지에 대자,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가 저절로 굽어졌다. 할머니의 허리는 꼬부라진 자세가 더 편하다고 부추기는 듯했다. 한참을 절하듯 그렇게 있었다.남편이 할머니의 손을 뒤집어 새끼손가락의 상처를 가리켰다. 곪아 탱탱해진 것을 보고 가족과 함께 병원에 서둘러 가보라고 권했다. “가족은 무슨….”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속속들이 사정을 알지 못하니 코끝이 찡해지며 마음 한 켠이 아렸다. 잠시나마 따뜻한 시선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면 할머니의 꼭꼭 숨겨진 사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보따리 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나는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동무를 자청했다. 할머니는 조금 전의 침울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이내 함박꽃 같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마의 주름살이 펴질 듯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오랜 만에 이웃집으로 마실 나온 아낙네처럼 이야기를 쏟아 놓았다.할머니는 침을 빼자마자 내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져 속에 든 것을 꺼냈다. 종이 부스러기에 섞여 사탕 한 알이 나왔다. 그 사탕을 손에 꼭 쥐어주고는 말했다.“고맙데이. 복 받을 끼다.”할머니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한 겨울 선착장에 묶여 있는 배처럼 사람이 그리우셨던 것이다. 모처럼 당신 걱정을 하는 이들과 얼굴을 맞댄 시간이 어쩌면 메마른 마음에 훈훈한 단비를 적셔가는 일이 되었을 터이다.우리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리라. 나부터 마음의 문을 열어야 상대도 내 손잡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할머니에게 바투 다가앉으니, 모자란 것이 많은 나에게 정을 내셨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가족이 아니면 어떤가, 내 마음자리에 누군가를 들여놓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았다.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자신은 행복하다고 했다. 요즈음 가족 아닌 남에게 ‘복 받을 것이다. 고맙다’라는 말을 어디 가서 들을 수 있겠냐며 웃었다. 온기 머금은 웃음 때문에 그 동안 응어리졌던 내 시린 마음이 봄눈 녹듯 흘러내렸다. 나는 예민했던 내 몸의 신경들이 느긋해지는 것을 느끼며 사탕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수지침을 꽂으며 사람에 대한 정(情)을 덤으로 건넨 남편의 마음이 내 마음밭으로 또르르 굴러 들어왔다.오늘 아침도 돋을볕을 맞으며 남편이 재바르게 움직인다. 봉사 활동을 나가기 위해 수지침 가방을 꼼꼼히 살피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남편을 뒤따르기 위해 부지런을 떤다. 그런 나를 남편이 자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따스한 돋을볕이 천천히 나에게로 옮겨오는 중이다.

2020-12-09

배문경수필가1894년 음력 12월 2일, 이날은 갑오농민전쟁 지도자였던 전봉준이 관군에 체포된 날이다. 얼마 전 전주 동학혁명관에 들렀다. 어두운 조명 아래 동학의 역사가 사건별로 붙어있었고 녹두장군 전봉준의 유일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가 부러진 그가 관원의 들것에 실려 사형장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의 혁혁한 눈빛이 금방이라도 세상을 향해 포효할 기세였다.앞선 그림 속에서는 짚신을 끌며 동학농민군이 죽창을 들고 세상을 바꾸겠노라 고함지르는 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조총 앞에서 전진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쌓이는 모습들은 처참했다. 많은 사람이 하늘을 향해 고통에 찬 소리로 울부짖었다.그들을 이끌던 그의 발도 밤새 부르트도록 산하를 헤매고 다니며 살만한 세상을 만들겠노라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풀도 밟고 흙도 딛고 물길도 건너며 세상의 온갖 것을 모두 지났을 그의 발은 누구보다 먼저 앞으로 나아갔으리라.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자신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인도해 주었는지 알 길은 없다. 그의 나이 41세에 손화중, 김덕명과 같이 효수를 당한 후 몸은 가족들에게 인도되지 않았고 가솔들은 뿔뿔이 흩어져 몸을 숨겼다. 체포과정에서 동지의 배신으로 다리와 발을 다친 후 그는 걷지 못했다. 부은 발이 그의 사상을 향해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는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나는 바른길을 걷고 죽는 사람이다. 그런데 반역죄를 적용한다면 천고에 유감이다” 죽음에 다다라 지그시 눈을 감고 절명시를 남겼다. “때를 만나서는 천지도 내 편이더니 운이 다하니 영웅도 할 수가 없구나.”그는 많은 유혹 앞에서도 자신의 결정을 보이기 위해 당당하게 무소의 뿔처럼 죽음 앞으로 향했다.그의 발 앞에서 내 발을 내려다본다.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이리저리 치이기만 했다. 스무 살, 교대근무를 하던 내 발은 신발 안에 갇혀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다시 오후 출근을 하는 삼 교대근무로 나의 발은 잠자는 시간보다 깨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제대로 씻지 못하고 자던 발은 곰팡이가 잠식하면서 자는 시간에도 가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종일 무게에 짓눌려 지상에 그 바닥을 댄 채 머슴처럼 견뎌주던 발의 저항이었다. 가려움과 물집은 약을 먹어도 쉬 낫지 않았다.쭈뼛쭈뼛하며 제자리를 지킬 때 저항에 앞장선 것도 발이었다. 발과 발이 앞과 뒤를 혹은 옆으로 대열을 갖추었을 때, 무리가 되고 하나의 큰 힘으로 뭉쳐졌다. 태극기의 모서리를 잡고 도로로 나설 때도 나의 발은 정당했다. 손과 머리가 보이는 것에 집중할 때, 나의 발은 좀 더 성숙했다. 거리의 행렬은 독재 타도를 외치고 발은 정의를 향해 그 보폭을 넓혀나갔다. 나의 스무 살은 거리에서 진실을 규명하는 일로 보내는 날이 많았다.전봉준의 발, 그의 고뇌와 삶의 그림자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지나고 보면 악행은 악행으로 선행은 선행으로 각자의 갈림길로 나뉜다. 역사란 거대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를 만난다. 보부상처럼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녔을 그의 발은 뻗은 산맥과 깊은 계곡처럼 갈라 터졌을 것이다.죽음 앞에서조차 퉁퉁 부은 발은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의 땅을 딛지 못했다.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그의 절규 앞으로 나아가 슬픔에 가닿는다.그의 큰 발걸음을 생각한다. 어둡고 눅눅한 세상을 개벽시키려 했던 그의 기개가 느껴진다. 두 발이 만들어냈던 좁은 영토의 큰 발자국. 아직도 끝내지 못한 숙제를 담고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그와 함께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여전히 혼란 속에서 몸부림친다.전시관 문을 열고 나서자 겨울 한풍이 매섭게 불었다. 칼바람에 맨몸으로 나섰을 그가 내 앞을 지나 저벅저벅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다시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2020-12-02

떠나보내기

강길수수필가늦가을….보도의 벚나무가 벌거숭이가 되어간다. 어떤 나무는 아직 절반 정도의 옷을 입고 있으나, 어느 나무는 팔 할 이상을 벗었다. 전체적으로 대강 삼분지 이 정도는 옷을 벗어 보인다.가슴이 움찔움찔하는 것만 같다. 사제나 주송자(主誦者)가 고인의 세례명을 넣어 기도하거나, 말할 때마다 그랬다. 꼭, 내가 저 관 안에 누워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강론 시간에 사제는 친절하게도, 고인의 세례명을 뜻풀이까지 하면서 여러 번 부르며 애도하였다. ‘이 미사에서, 입관 체험교육 이상으로 삶과 죽음을 체험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젊은 날부터 장례미사에 많이 참례(參禮)해 왔다. 하지만, 오늘 같은 느낌은 처음이다. 고인의 세례명이 나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같은 세례명의 고인을 위한 장례미사는 오늘이 처음이다. 다른 장례미사에서도 고인의 세례명이 호명되었는데, 왜 오늘만 다를까. 고유명사 하나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다.올 가을, 오랜 지인(知人) 두 사람을 졸지에 잃었다. 아니, 갑자기 떠나갔다. 한 사람은 초가을에, 또 한 사람은 늦가을에 아주 떠났다. 떠난 의학적 이유도 둘이 같다. 심장 쪽 잘못이다. 출신 지역도 같다. 나라가 철강업을 주력산업으로 새로 힘차게 일으키는 시기에, 두 사람 다 총각으로 이곳에 왔다. 바닷가 모래밭에 세워진 철강 제조 현장에서, 각자의 일생을 오롯이 바친 이들이다. 나는 그들과 직장은 같았지만, 부서가 달라 성당에서 만났다. 함께 활동하며, 깊은 신앙공동체 체험을 나눈 이들이다.하늘의 섭리는 내가, 두 사람을 떠나보내라고 강요하고 있다. 젊은 날 상가에 가면, 압도되며 느끼던 진한 감정들도 많이 사라졌다. 죽음이란 현실에 대한 슬픔, 고통, 거부감 같은 느낌들과 삶에 대한 부조리, 연민, 허무감 등등의 감정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의 회한인지, 넋두리인지 모를 감정의 너울이 가슴을 움찔거리게 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래서 세상은 살아보아야 아는 것인가 보다.장례미사 마치고,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보도에 벚나무낙엽이 흩날렸다. 한 줄기 갈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이리저리 구석으로 내몰렸다. 세상 떠난 그들은 어떤 낙엽을 닮았을까. 또, 어느 낙엽처럼 떨어져 갔을까. 미사에서 두 고인이 같이 생각났었다. 그들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파노라마 되며 지나갔다. 저 낙엽들은 나무가 밀어낸 것일까. 스스로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인가. 생은, 시간이란 외줄을 타고 가는 여정이다. 죽음은, 어느 순간 외줄에서 힘에 부쳐 떨어지는 걸까, 놓아버리는 걸까.마음 한쪽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이젠….’하고 말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건 아니지….’라고 한다. 지난주일, 세례명이 같아 친밀감으로 지내던 고인을 만났었다. 고향 친구 잃은 슬픔을 위로한다고, “상실감이 크지요?”라고 했었다. 내 말을 듣던 그의 차분한 표정이 떠오른다. 또 코로나로 반년 동안 얼굴한 번 못 본체, 초가을에 먼저 떠난 고인도 생각난다. 갑자기 가장을 잃은 두 가정의 가족들 얼굴도 아른거린다.자기도 언젠가 이승을 떠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가 경고한 대로 ‘깨어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세례명이 같은 지인의 장례미사가, 가슴 움찔거리게 한 이 가을의 화두는 ‘떠나보내기’다. 부조리하고 억울하더라도, 떠나는 이는 떠나가고야 마는 법이 자연이 마련한 불변의 길이므로…. 하여, 깨어있는 사람이 늘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은 ‘떠나보내기’가 아닐까.문제는 떠나보내야 하는 방법론이다. 떠나보내지 않아도, 떠나고야 마는 하늘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신해야 할까. 답이 낙엽에 있다 싶다. 낙엽은 나무에 밀려나 덜어졌든, 스스로 떨어졌든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떠나가는 낙엽이나, 떠나보내는 나무나 담담하다. 낙엽은 바람과 중력에 자신을 맡기고 매 순간 유유자적(悠悠自適)한다. 가을 낙엽이 아름다운 것은 하늘 섭리를 말없이 받아들이는 데 있으리라.이 가을, 황망히 떠난 두 고인을 고운 낙엽처럼 떠나보내련다.

2020-11-25

흥정

정미영수필가이사를 가기 위해 살던 집을 내놓았다. 마땅한 임자가 나서기를 바라며 아파트 게시판에 올렸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왔다. 잠시 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집을 보러 왔다.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고 있다는 아주머니였다. 맞벌이 하는 딸의 양육을 돕고 싶어, 본인 집 가까이에 딸네가 살 집을 구한다고 했다. 꼼꼼히 둘러보면서 집이 마음에 든다고 매매 가격을 조금 더 깎자고 말했다. 하지만 곤란했다. 집을 빨리 팔기 위해 시세보다 싸게 내놓았기 때문이다.아주머니는 흥정에 능숙했다. 조금 더 받겠다고 기다리다가 사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내 손을 잡고 자분자분 말했다. 두 달 남은 이삿날도 딸네 전세 기한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니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다며 나를 설득했다.슬슬 조바심이 났다. 아주머니 말대로 지금 기회를 놓치면 늦도록 임자가 나서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결국 상대방이 원하는 가격에 집을 팔았다.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면서 친정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딸자식을 친정 가까이 살게 하려는 아주머니의 마음이 결정적이었다. 집을 팔았다고 했더니 너무 싸게 팔았다며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아쉬워했다. 손해를 보긴 했어도 집이 안 팔렸을 때 생기는 마음고생은 면하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내가 아는 사람 중에 흥정을 잘하는 이가 있다. 그에게 흥정은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라고 한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값을 깎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기도 한단다.언젠가 포항에 놀러온 그를 데리고 죽도시장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떠밀리듯 오가며 어시장을 둘러보니 그날따라 물 좋은 생선이 많았다. 횟감을 뜨려고 함지박에 담긴 생선을 구경했다. 돔 한 마리에 만팔천 원 한다는 아주머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흥정에 들어갔다.“아지매, 보소, 내가 이태 전까지 배 타던 사람 아이가. 만 오천 원에 주소.”“그라믄 더 잘 알 텐데 값을 깎노. 주위를 둘러봐도 이 정도 좋은 놈은 없다.”돔을 건져 보이며 아주머니는 목청껏 말했다.하지만 나는 옆에서 말 한 마디 거들지 못했다. 정작 값을 깎는 당사자는 태연한데 내가 왜 그리도 미안한 마음이 들던지. 귀로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눈은 벌름거리는 생선의 아가미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손사래 치는 아주머니에게 그는 기어이 값을 깎았다. 내가 너무 했다는 듯 쳐다보자 씨익 웃을 뿐이었다. 횟감 봉지를 손에 든 그의 발걸음이 비거스렁이에 나들이하는 것처럼 가벼웠다.그는 흥정을 위해 아주 천연덕스럽게 말을 지어냈다. 옷을 사러 가면 예전에 옷가게 사장이었다고 하고, 가구점에 가면 가구 공장을 한다고 했다. 그 순간 너무나 진지해서 나조차도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꼭 그랬을 것만 같다. 가게 주인들은 믿는 척 속아주는 척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은 가자미처럼 눈을 흘기면서도 값은 깎아 준다. 그럴 때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한다.오늘 모처럼 가을 준치가 생각나 죽도시장에 들렀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먼저 달려와 반기더니, 곧바로 비릿한 생선 냄새가 온몸을 덮쳤다. 싱싱한 준치와 큼직한 전복 등을 실컷 구경하고도 건어물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신명나게 구경했다. 그랬더니 요 며칠 지쳐있던 내 몸에 시장의 활기찬 역동성이 재빠르게 스며들며 기운이 솟았다.집에 돌아오려고 다시 어시장에 들러 준치를 사려고 했다. 젊은 상인들을 제쳐두고 한쪽 귀퉁이에서 준치를 팔고 있는 할머니께 다가갔다. 사면서 값을 깎으려니 주인은 지청구를 늘어놓았다.“젊은 사람이 늙은이 고생한 걸 생각해야지….”얼른 셈을 치르고 왔지만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는 아직도 흥정에 익숙하지 않나 보다.

2020-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