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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이곳

등록일 2021-05-26 20:05 게재일 2021-05-2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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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순수필가
양태순수필가

바닷가를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사람들이 제법 있다. 물빛은 코발트로 반짝이고 밀려오는 물결은 다정한 속삭임처럼 정겹다. 모래밭 위에는 갈매기와 비둘기가 엇갈려 날고 있다. 가만히 지켜보니 갈매기가 비둘기에게 먹이를 빼앗기고 있다. 비둘기가 떼로 몰려서 먹을 것을 에워싸자 갈매기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뒷걸음을 한다. 제 터전을 내어준 갈매기의 눈빛에는 미련이 가득하다. 이곳도 세상의 흐름, 약한 자가 설 곳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장단을 맞추고 있나 싶어 심란하다.

내게는 고향의 품과 같은 곳이다. 열일곱 나이에 처음 만난 바다는 신선한 놀이터였다. 수업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집보다 여기가 좋았다. 친구들과 몰려와 파도에 발을 적시며 깔깔거렸던 시간이 셀 수도 없다. 바다란 이름으로 내주는 장소에서 실컷 걸으며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내 안에서 자라는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그 편안하고 따듯했던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물처럼 이어져 왔다.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친구가 살았던 단층 주택은 허물어져 새 건물이 솟았고, 자주 오르내렸던 야트막한 산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쪽저쪽 모두 높은 건물이 들어서 예전의 장소를 찾으려면 한참을 두리번거려야 한다. 그것도 확실히 여기였다가 아닌 이 어디쯤이란 추측만 가능하다. 걷는 내내 과거를 더듬었다. 아련하게 그때의 바다가 그립기는 하지만 시끌벅적하게 바뀐 지금도 나쁘지만은 않다.

이곳에서 철의 정원이란 주제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축제가 열렸다. 관람객이 십만여 명이 넘었다니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보다. 아직 전시되었던 작품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작품을 둘러보며 작가의 덧붙인 설명을 읽었다. 예술가들의 고뇌와 참신한 아이디어에 감동을 넘어 존경을 보냈다. 스틸은 딱딱하여 부드러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내 고정관념이 부끄러워졌다.

내 걸음을 오래 붙잡아둔 작품이 몇 있었다. 둥근 원 안에 꽃잎이 날아가는 듯,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듯이 표현한 ‘공(空)’이었다. 몸 안에 갇힌 욕심을 비운다는 의미였다. 숲의 정령을 연상시키는 ‘푸른 숲의 거인’ 앞에서는 숨을 멈췄다. 투명한 거인의 몸을 통과하는 햇살 때문에 더욱 신비감이 느껴졌다. 또 한자 나무목을 형상화하고 그 위에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담은 ‘식물적 사유’였다. 나는 ‘식물적 사유’ 앞에서 복잡한 감정으로 서성였다. 식물적이란 말이 마음을 툭 쳤기 때문이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구부리기 어려운 소재로 유연한 사고를 말한다는 자체가 놀라웠다.

식물적 사유란 자신만을 고집하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두루 듣고 마음을 열어 모나지 않는 생각, 나와 남을 아우르는 다양한 생각을 키우라는 의미가 녹아 있다. 지금의 내 마음을 채찍질하는 듯해서 찔끔했다. 나는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러 왔다. 말을 앞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앞뒤 돌아보며 각도를 달리하여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저 멀리 해안선을 끼고 둥그런 산이 보인다. 부지런히 달려온 파도가 해안에 입 맞추며 하얗게 부서진다. 좀 전에 본 ‘푸른 숲의 거인’이 성큼 걸어 나와 파란 바다를 몸 안에 들이는 듯하다. 담담한 몸짓에 햇살이 지나가며 투명한 꽃송이가 피었다 스러지는 찰나의 광경이 눈에 담긴다.

나만의 신화적인 이야기 하나쯤 품고 싶은 날이다. 푸른 바다가 어둠으로 물드는 밤이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서 금빛 머리칼을 휘날리는 미소년이 맑은 트럼펫을 불어준다. 차르륵 차르륵 고운 모래 쓸려가는 반주에 맞춰 갈매기 감춰둔 춤 솜씨 너울너울 펼치다가 웃으며 잠이 든다. 그리하여 이른 새벽에 바다를 찾는 부지런한 이들이 갈매기 낯선 모습을 보며 소소한 근심을 웃음으로 털어버리는 해변을 꿈꾼다. 생각만으로 가슴에 깃털이 자라는 것 같다.

바다는 바다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행사가 있어 더욱 좋다. 가벼운 산책을 나섰다가 타래진 마음을 물결에 풀어내었다. 삼십 년 전에 철없던 소녀를 위로해주었던 그 바다, 오늘은 중년이 된 나를 나무란다. 책망을 들으면서도 포근한 이곳은 언제나 내가 달려올 곳이다. 사소한 이유를 핑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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