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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내 마음이 보이니

등록일 2021-09-15 20:15 게재일 2021-09-1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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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순수필가
양태순수필가

추석이 코앞이다. 차례상에 올릴 제수용품을 메모지에 적은 후 식탁 구석으로 던져둔다. 모레쯤 시장을 한 바퀴 돌아야지, 혼잣말을 해본다.

한때는 설레는 추석이었다. 선물을 들고 오는 언니 오빠들 기다리느라 꼬맹이들은 골목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해가 진 후에도 누군가의 집에 멀리 떠났던 식구가 돌아왔다. 저녁 늦도록 발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마을을 둥그런 달님이 반겨주었다.

집집마다 고된 손에서 기쁨이 피어났다. 안팎으로 나뉘어 그릇 닦고 전을 부치고 청소하느라 마당을 도리뱅뱅이질 했다. 밤에는 멍석을 펴고 두레상에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다. 누가 예쁘게 빚는지, 누구 개수가 많은지 내기도 하면서 서로 놀리고 깔깔대느라 팔월의 밤은 깊어 갔다. 그렇게 날이 이울도록 어린 마음에는 분홍 물이 남실댔다. 우리 집은 인절미도 했다. 안반에 찰밥을 올리고 꿍떡꿍떡 떡메를 쳤다. 아버지와 오빠는 떡메를 치고 엄마는 밥을 욱여넣었다, 세 사람의 손이 장단에 맞춰 엽렵했다. 밥알이 떡이 되기까지 흥겨운 리듬은 귀로 듣는 춤사위였다. 초록 고물을 입은 인절미는 색이 고와서 자태가 우아했다. 씹으면 말랑하고 고소해서 입맛이 당겼다. 맛이 절미라고 인절미가 되었다는 말이 딱 맞았다.

추석을 맞이하는 마음은 처지에 따라 변했다. 어릴 적에는 선물꾸러미와 인절미 생각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무슨 선물을 사야 할까 고민했다. 결혼해서는 어떤 음식을 차릴지에 신경 쓰였고, 종일 지지고 볶을 일거리에 괜히 명절이 있다고 투덜대는 마음이 컸다.

올 추석 마중은 마음이 무겁다. 유례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모임의 자유가 없어졌다. 또한 지역 간의 왕래가 조심스러워 동기간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대신 목소리로 안부를 전하고 건강해야 다음을 기약한다며 아쉬움 꾹꾹 담아 길게 늘여 보낸다. 추신으로 몸은 멀어도 마음만은 가까이 하자 덧붙인다. 더욱이 어머님의 갑작스런 투병으로 경황이 없다.

어머님은 집안의 중심축이다. 결정권을 가져서가 아니고 경제적인 물주여서도 아니다. 형제들 사이에 기름칠을 하여 어머님을 중심으로 관람차처럼 적당한 거리를 벗어나지 않게 하는 축이었다. 추어탕 끓였다 불러모으고, 곰국 끓였다 나눠 주고, 오곡밥 먹으러 오라 기별을 했다. 명절을 비롯하여 기념일은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정을 쌓고 마음을 나눌 기회를 만들었다. 덕분에 시댁이 낯설던 내가 얼굴을 못 보면 궁금하고 보고 싶은 사이가 되었다. 어머님과 명절을 같이 보낸 지 삼십여 년이 되었다.

어머님은 손이 컸다. 무엇이든 많이 해서 조상님께 올리고 자식들 먹이려고 일을 크게 벌였다. 그래서 음식 장만할 때 불퉁거릴 때가 있었다. 돌아보니 어머님을 돕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속 좁게 꿍얼거렸다는 후회가 든다. 아이들이 품을 떠난 지금은 투덜댔던 그 추석이 삼삼하다. 기름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어른과 아이들 서로 무탈하게 웃고 떠들었던 날들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수시로 설거지통에 손 담그며 앞치마 마를 새 없이 부산했던 옛 추석이 좋았다 싶다.

사라져가는 추석 풍경이 아쉽다. 가족을 웃고 울리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예전과 달라졌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인사차 들고나는 손님들로 들썩거렸던 분위기와 정겨운 말들도 건조해졌다. 아예 추석 인사말이라는 글귀가 정해져서 나온다. 그 시절 학교에는 운동회를 열었고 운동회는 학생들만의 놀이가 아니었다. 마을마다 어른들이 학교로 모였다. 줄다리기와 손님찾기 게임, 계주 달리기에 참여할 선수를 뽑아 열심히 응원하고 막걸리잔 기울이며 마음껏 즐기는 날이었다. 더이상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아련하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일하기 싫어 꾀병을 부리고 싶었던 명절이었다. 요즘은 가족끼리 송편을 빚었으면 싶고, 전도 푸짐하게 지져서 이웃과의 정을 수북하게 쌓았으면 싶다. 주고받는 인사에도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은근하게 마음을 전했던 옛 추석이 되기를 꿈꾼다. 지나간 것을 손으로 당겨 와 마당귀에 붙박아 놓을 수 없는 법인데 알면서도 꿈을 꾸는 내 마음을 모르겠다.

달아, 내 마음이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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