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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에

등록일 2021-05-23 20:00 게재일 2021-05-2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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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순수필가
양태순수필가

자리돔은 대방어를 잡기 위한 미끼로 쓰인다. 방어가 특히 좋아하는 먹이이기 때문이다. 바늘을 살아 있는 자리돔의 배에 꽂아 물속에 넣으면 자리돔은 해류를 타고 활발히 움직인다. 방어를 잡기 위한 눈속임이다. 어부들은 그것으로 방어를 불러들이지 못하면 유인책으로 잡아놓은 자리돔을 양동이에 담아 바다에 흩뿌린다. 그러면 식탐이 많은 방어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자리돔을 쫓아 죽을 자리로 들어온다.

물고기는 작을수록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종을 보존하기 위한 계책인 듯싶다. 바다에는 덩치가 크거나 사납게 생겨서 먹는 양이 무시무시한 물고기들이 많다. 일대일로 만나면 백전백패니 여럿이 힘을 합하면 생존율이 높아질 것을 알고 있는 행동이다. 이동하면서 죽임을 당한 물고기는 미끼가 된 상황이다. 누구라고 정해져 있지 않지만 선택되어졌고 동료를 살린 셈이다. 내 몸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몸을 살찌운 행동이다. 사람살이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발버둥칠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려 누군가는 자신의 결을 지운다. 누구보다 여리지만 따스한 마음을 품은 이가 그리해야 할 것 같은 환경을 받아들였다. 부지런히 일해서 모은 대가를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용했다. 자신을 둘러싼 껍데기가 투명해질 때까지 계속한다.

우리 집에도 그런 사람 있었다. 스스로 미끼같은 존재가 되어 외풍을 막아내고자 안간힘을 썼다. 십대에 가정 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고 그보다 어린 나이에 부엌살림을 도맡았다. 위아래로 두 살 터울의 형제들이 있었지만 혼자 동분서주하며 묵묵히 불어오고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덕분에 다른 형제들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크게 고생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이 나였다.

전래동화에 ‘은혜 갚은 까마귀’가 있다. 그 동화를 읽을 적에는 은혜를 갚는 것이 당연하지 싶었다. 이 이야기가 구전되어 오는 진정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경제적인 것이든, 마음적인 것이든 받은 것을 갚음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는다. 또한 갚음은 받은 사람에게 직접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삶의 깊은 이치가 숨어있는 듯하다. 나는 받은 만큼 갚음을 하지 못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미끼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해야할 무게인 미끼, 내가 속한 가정의 구성원을 잘 먹이기 위해 나름의 물살을 가르며 위험 요소를 요리조리 피하느라 겨를이 없었다. 더러는 황금을 건 미끼를 덜컥 물어서 곤두박질 끝에 벗어나느라 눈을 부릅뜨고 앞만 보고 달린 탓도 있다.

삶은 계산기를 두드려 답이 나오는 숫자놀음이 아니다. 상황에 따른 미지수가 등장하고 미지수를 풀이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직선으로 답을 구하다 지쳐서 포기하는 사람, 많은 변수를 만나 돌고 돌아가느라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아서 행복이라는 글자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란 여정에서 누구를 위해 내가 살았다는 말만큼 허무한 것이 없다. 처음부터 방어의 미끼가 될 운명이라 생각지 않은 자리돔이다. 살아내기 위해 열심히 먹이 사냥을 하고 해류에 휩쓸리지 않으려 비늘을 세웠다 눕혔다 해가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다. 그런 중에 미끼가 되어 방어를 살찌게 하고 살찐 방어는 사람이 먹는 것이다. 자리돔이 생명의 위험을 느껴서 내가 동료 대신 방어의 입 속으로 들어가리라 다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런 흐름에 의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잡아먹힌다. 우리는 누구에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까. 아마 방어를 먹으며 덕분에 잘 먹었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도 사람을 만날 때면 번드레한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그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감사한 마음을 잘 전하고 있는지는 먼 후일에나 들이대보는 소소한 잣대일 뿐이다.

모든 생물들의 삶은 종을 넘어 연결되어 있다. 미끼가 되기도 하고 미끼를 먹기도 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둥글게 순환한다. 그 속에서 받아든 날들을 낱장으로 깁는 치열한 작업의 중심에 내가 있다. /양태순(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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