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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등록일 2017-08-11 20:46 게재일 2017-08-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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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래 수필가·시인
▲ 김병래 수필가·시인

인류가 개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 말부터라 한다. 늑대 새끼를 데려다 길들인 것이 개의 시초일 거라는 추측이다. 가축으로 길러진 개는 사냥을 돕거나 침입자를 막고 썰매를 끄는 등 지역과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인류에게 도움을 주었다. 지금도 인명을 구조하거나 마약을 탐색하고 맹인을 인도하는 등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들이 많다.

옛날 우리나라 시골의 개나 고양이는 소나 닭처럼 그냥 가축이었다. 곡식을 축내는 쥐를 잡으라고 고양이를 길렀고, 집을 지키고 새끼를 많이 낳아 살림에 보탬을 주는 것이 개의 역할이었다. 먹이로는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나 보릿겨 따위가 고작이었고, 어린 아이가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똥을 누면 기다렸다가 냉큼 먹어치우기도 했다.

개나 고양이가 애완동물로 불린 것은 사람들의 주거환경이 도시화 되어 실내에서 함께 살면서부터였다. 마을 전체가 이웃사촌이고 한 집에 너댓 명 이상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대가족 집안에서는 애완동물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어른들은 일에 바쁘고 아이들은 어울려 놀기에 바빠서 주변에 얼씬거리는 개들은 걸리적거린다고 걷어차이기 일쑤였다. 핵가족과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치열한 경쟁사회가 도래하면서 삭막하고 소원해진 인간관계가 애완동물에 집착하고 의존하는 성향을 만든 것 같다. 걸핏하면 속이고 배신하는 이기적인 인간들과는 달리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언제나 반겨주고 오로지 제 편이 되어주는 동물들에게 애착이 가는 건 일견 당연한 일로 보인다.

애완동물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주인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체내에 옥시토신의 분비를 활발하게 하는가 하면 심장병 발병 위험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반면 2009년 8월 스칸디나비안 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애완동물이 행복감을 높이거나 우울증상을 낮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인간관계의 회복에 대한 노력이나 문제의식이 없이 단지 애완동물을 통해 소외감을 해소한다는 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애완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천만을 넘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개인적 취향을 넘어 사회 문화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애완동물 관련 산업도 성장일로에 있어 연간 시장의 규모도 2조원을 넘었다는 통계다. 애완동물에 드는 비용과 정성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못지않다고 하니 명실상부 가축이 아닌 가족인 셈이다. 그래서 애완동물 문제는 이제 정치적 이슈가 되기도 하고 공공장소에서의 관리 등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애완동물이란 명칭도 반려동물로 격상이 되었다.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인간과 애완동물 관계를 주제로 하는 국제 심포지엄에서 그 가치성을 재인식 한다는 취지로 제안된 `companion animal`이란 명칭을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들인 거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 일방적으로 선택해서 제멋대로 꾸미고 길들이는 대상을 마치 동등한 관계인 것처럼, 반려라고 하는 것은 가당찮다는 것이다. 더구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하는 경우는 고작 12%에 불과하고, 싫증이 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내다 버리는 유기견이 하루에도 250여 마리나 된다고 하니 반려동물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수 없다.

명칭이야 어떻든 애완동물을 병적으로 애착하고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소음과 냄새에다 털을 날리고 위협을 가하기도 하는 동물로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사람도 적지가 않아서 가족 간, 이웃 간의 불화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 분쟁의 소지가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동시에 애완동물에 대한 보다 성숙한 문화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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