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에는 열대야라는 말도 몰랐다. 여름이 더운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날씨에 따라 더 덥거나 덜 더울 수도 있지만 일일이 온도를 재고 이름을 붙일 생각 따위를 하지 않았다.
종일 땡볕 아래 들일을 하고 돌아와서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감자와 애호박을 썰어 넣은 칼국수나 수제비가 주로 먹는 석식이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우선 모깃불을 피워서 여름밤의 무법자들을 막을 일차 방어선을 친다. 그 방어선을 통과한 적들은 부채질로 쫓는다. 기름 먹인 종이를 붙인 태극선 하나면 여름밤의 더위와 모기를 물리치는데 그다지 아쉬움이 없었다.
옛날의 여름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계절이었다. 밤마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쳐다보는 밤하늘은 쏟아질 듯 별들이 많고 가까웠다. 세상의 반은 하늘이고 하늘의 별과 달과 은하수는 땅 위의 산과 들과 바다처럼 가까운 것이었다. 달 밝은 밤의 풍경도 그윽하지만 그믐밤에는 반딧불이 불빛이 더 영롱하고 초가지붕 위의 박꽃도 더 새하얗게 보였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요즘은 밤마다 들판으로 나간다. 들판 한가운데로 나가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앉거나 누워서 부채질을 하며 두어 시간 여름밤을 보낸다. 후텁지근한 열대야에도 들판으로 나오면 그다지 더운 줄을 모른다. 사방이 탁 틔어 어디선가는 산들바람이 불어오거나 낮의 열기가 식으면서 차츰 선선한 기운이 돌기 마련이다. 들판 가운데로 나가는 또 다른 이유는 벼논에 수시로 치는 농약 때문에 모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들판에 누워 밤하늘의 별과 달을 쳐다보면 나는 우주인이 된다. 그까짓 장난감 같은 우주선을 타고 고작 달에나 가는 우주인이 아니라 지구라는 행성을 타고 무한천공을 떠가는 우주적 존재가 된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산다. 눈앞의 세상사에만 코를 박고 온갖 번뇌와 망상에 사로잡혀 무궁무진한 우주의 일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세상 어느 하나 우주 아닌 것이 없고 내가 바로 무궁무진하고 불가사의한 우주의 일부임을 안다면, 그까짓 덧없는 세상사로 쉽사리 절망하고 포기하거나 헐뜯고 싸울 일이 없지 않겠는가. 갈수록 끔찍해지는 온갖 사건사고, 세계 최상위라는 자살률, 난무하는 비방과 적개심과 분쟁과 시위의 현상들, 갑질이라 일컫는 가진 자들의 가히 엽기적인 횡포…. 우주적 존재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군상의 모습들이다.
우리의 태양계가 속해있는 은하계에만도 천억 개의 항성이 있고, 그 은하계와 같은 우주가 다시 수천억 개가 있고…. 그 밖에는 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게 우주다. 그런 우주의 일부고 본질인 내가 지금 잠시 인간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뿐이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말아야 군자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내가 우주적 존재라는 사실에 추호의 의혹이나 망설임이 없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말든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고 엄연한 사실이니까.
오늘 밤에는 아예 텐트와 막걸리 병을 들고 들판으로 나왔다. 옛날에는 밤새워 물꼬를 지키거나 미꾸라지 통발을 놓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요즘은 밤중에 들판에 나오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다. 수백만 평 너른 들판을 독차지한 기분을 누가 또 알란가. 오이와 풋고추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거나해진 기분에 수천만 벼 포기들을 관중삼아 리사이틀을 벌인다. 동요메들리에서 가곡을 거쳐 뽕짝으로…. 그야말로 독무대다.
박수갈채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유하는 소리도 없으니, 이 들판의 벼들이 내 노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고 간주한다. 그런즉 내 노래의 흥겨운 기를 받은 이 들판의 쌀은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기능성 식품으로 특허를 내도 좋으리라. 후텁지근한 열대야를 흥겨움 열(十) 대야로 바꾸는 이 노하우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