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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땡시

등록일 2018-07-06 20:42 게재일 2018-07-0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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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희<bR>수필가
▲ 김순희 수필가

꽃과 행복은 동의어다. 며칠 전, 남편 차를 타려고 조수석 문을 여니 장미꽃다발이 떡하니 앉아 있다. 향긋한 행복의 냄새가 차 안 가득하다. 먹지도 못 하는 데 왜 좋아하느냐고 투덜거리지만 기념일마다 꽃을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을 준다. 차를 타고 국도를 달린다. 차창으로 내다뵈는 푸른 능선이 곱다. 잎이 나기 전까지 산에 서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어설픈 내 눈은 분간을 못 한다. 볼 줄 모르는 수묵화처럼 검은 것은 그냥 나무로 보일 뿐이다. 잎이 무성해진 여름에도 구분 못 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멀리서도 나무 이름이 단번에 튀어 나오는 시기가 있다. 꽃이 필 때이다. 조물주가 계절이란 마이크로 신호를 주면 산은 일제히 멋진 카드섹션을 벌인다. 멀리서도 달콤한 향기가 풍기면 아카시아 꽃이 핀 게 분명하다. 아마 저 하얀 골짜기마다 벌들이 붕붕 대는 소리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 바톤을 이팝꽃이 이어받아 고슬고슬한 고봉밥을 지어올린 다음, 먼 산엔 비릿한 냄새의 밤꽃이 한자리 차지한다. 그럴 때야 저 밤골에 늦가을 즈음 밤 주우러 가면 대박이겠구나 싶어 마음이 설레지만 꽃이 지고나면 어디쯤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는 푸른 숲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꽃은 사람을 당기는 힘이 있다. 그래서 봄부터 겨울까지 전국에서 꽃 축제를 연다. 튤립 축제에 가면 정원 가득 향기가 난다. 튤립은 별달리 향기가 없는데 말이다. 꽃밭 디자이너가 아름다운 꽃을 보면 당연히 향기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관람객을 위해 튤립 사이에 향내 진한 히아신스를 심어 두었다. 그것이 어느 꽃의 향인지 따지는 사람은 없다. 그저 기념사진을 남길 뿐이다. 소확행을 주는 꽃 지도를 그려보았다. 식물도감이나 인터넷에 나와 있겠지만 나만의 방법이 더 있다. ‘꽃땡시’, 꽃이 땡기는 시간에 찾아가려고 매년 기록을 추가하며 즐긴다. 올 해 새로 발견한 꽃길이 있다. 5월 중순경에 도음산 산책로를 오르면 오솔길에 별이 가득 떨어져있다. 때죽나무 군락지이다. 정상까지 오르는 내내 하얀 별꽃이 길안내를 담당한다. 산바람이 불면 꽃잎에서 샤라랑 소리가 나는 듯하다. 찔레꽃이 옆에서 향기를 더해 걷는 이의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

6월엔 접시꽃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때 보슬비가 오면 금상첨화이다. 경주 첨성대를 원경으로 넣어 찍으면 무조건 인생사진을 얻게 된다. 접시꽃을 접수 했다면 이젠 수국이다. 6월 말부터 7월 초순까지가 수국의 시간이다. 태종대에 자리 잡은 태종사는 절 부근에 온통 수국을 심어 비 오는 날 가면 물빛 머금은 우아한 자태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여름은 배롱나무의 계절이기도 하다. 석 달 열흘 동안 붉게 핀다고 나무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떠도는 이야기로는 선비들이 ‘백일홍 나무’를 아껴 뜰에 심어 놓고 즐겨 보았고, 그 걸 지켜본 머슴들의 귀에 백일홍이 ‘배롱배롱’으로 들려 그리 불렀다고 한다. 나무 백일홍도 멋진 이름이지만 배롱나무라는 이름이 더 정겹다.

구룡포 해봉사, 죽장 입암서원, 초곡 칠인정, 덕동마을 용계정이 포항에서 배롱나무꽃을 가장 예쁘게 피우는 곳들이다. 멀리 갈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여름방학을 이용해 안동 병산서원으로 달려가 봐도 좋다. 장판각 앞에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백일홍이 책처럼 펼쳐진다. 대청에서 내다뵈는 풍경 한 폭을 읽노라면 선인들이 즐겼던 여유라는 명제가 나를 깨우친다. 더 멀리 눈을 돌리자. 담양에 자리한 명옥헌은 배롱나무가 정자를 둘러싸고 있어 두 개의 연못에 비친 그림자도 온통 배롱나무뿐이다. 물에 떨어진 꽃잎은 빨간 양탄자가 되어 일렁거린다. 스마트폰을 들고 탄성을 지르며 몇 시간씩 셀카 삼매경에 빠지고 만다. 담양은 가로수도 백일홍이라 한여름에 가면 몸도 마음도 붉게 물들어 돌아오게 된다.

비의 계절이다. 여름 꽃이 땡기는 시간이다.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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