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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단상(斷想)

등록일 2017-06-30 02:01 게재일 2017-06-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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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래<br /><br />수필가·시인
▲ 김병래 수필가·시인

# 누가 역사를 예단하는가. 독재자 하나가 함부로 휘두를 수도 있는 것이 한 나라의 역사다. 김일성 일족이 장악한 한반도 북녘의 70년 역사가 바로 그 좋은 예다. 철저한 압제와 세뇌로 이천수백 만 주민을 모조리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 기막힌 실상을 보노라면 인간의 역사란 것에 회의와 절망감을 금할 수 없다. 절대권력을 세습한 귀때기 새파란 독재자가 틀어쥐고 있는 북녘 땅의 역사는 그야말로 예측을 불허한다.

# 6·25 전쟁은 김일성의 야욕이 저지른 민족 최대의 비극이다. 강대국들의 대리전쟁 운운하는 논리가 있지만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가령 김일성이 아닌 조만식 같은 이가 북한의 지도자였더라도 남침을 자행했을까? 전쟁의 원흉이 김일성이라는 증거로 남침을 허락해 달라고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수차례 간청을 한 기록도 있다지 않는가.

# 김대중 정권의 소위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간의 화해무드가 조성된 시기였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김정일의 교활한 술수에 철저히 농락당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김정일로서는 하등 손해 볼 게 없는 위장된 화해 제스처에 속아서 저들이 체제를 공고히 하고 핵무기를 만들 수 있도록 막대한 자금을 갖다 바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핵미사일 위협에 전전긍긍하는 꼴이 되었고.

햇볕정책의 가장 큰 성과로 6·15선언을 꼽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선언대로 이행이 된다면야 희망찬 성과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이 언제든지 뭐라도 트집을 잡아 폐기해 버릴 수 있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다. 어차피 지킬 생각이 없을진대 막대한 이권을 챙길 수 있다면 무슨 선언인들 왜 못하겠는가? 속단할 수는 없지만 그때 만약 햇볕정책 대신 김정일의 목을 죄는데 박차를 가했더라면 오늘의 핵미사일이나 김정은 정권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 만에 하나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선다면 북한은 급속도로 경제와 산업이 발전할 것이다. 남북이 협력하고 공조하는 가운데 통일도 물론 조속히 추진될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건재하는 한 그건 한낱 헛된 꿈일 수밖에 없다. 북한 주민을 모조리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제 목숨은 부지하겠다는 것이 김정은의 궁극적인 목적이고 속셈인데,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짓을 할 리가 있겠는가.

군부를 대표하는 아버지뻘 장성도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아첨을 하는 판국에 누가 언감생심 그에 반하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인류의 역사에 절대권력의 사악한 독재자가 개과천선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남북의 통일도 북한의 개혁개방도 김정은이 없어져야 기대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다. 한 가지 희망은 북한 인민들이 차츰 눈을 뜨기 시작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김일성 일족 독재의 철옹성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 문재인 정권이 시작되면서 남북화해의 기대가 되살아나고 있다. 햇볕정책에 관여했거나 옹호하는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기용되고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에 어긋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화해든 협상이든 한 쪽에서만 원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선은 북쪽 김정은의 처지와 의중을 파악하는 일인데, 절대로 핵을 포기하거나 개방을 할 수는 없는 것이 김정은의 한계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일시적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수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 핵미사일의 완성과 체제의 유지를 위한 돈과 시간을 벌기 위한 속임수일 뿐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또다시 천추의 한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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