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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詩

등록일 2023-02-15 19:27 게재일 2023-02-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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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문경수필가
배문경 수필가

입춘을 지나자 바람은 유순하게 변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탓일까. 봄기운을 느끼고자 온몸이 촉수를 곤두세운다. 나뭇가지에 몰아치던 매서운 바람이 산수유 꽃망울을 피우고 여기저기 매화를 깨운다.

눈부신 햇살과 따뜻한 바람에 고객의 표정도 밝아졌다.

코로나의 길고 어두운 터널은 노년을 향해 집중 포화되어 건강에 적신호를 보냈다. 노인병원으로 코로나가 돌고 돌아 삶과 죽음의 이중주 앞에 노인들을 줄 세웠다. 한풀 꺾인 겨울 찬바람과 코로나가 뒷걸음치는 것이 역력하게 보인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찬 기운 가득한 농가에서는 입춘 날에 보리뿌리를 캐어 하루 묵혔다가 그 생긴 것을 보고 한 해 점을 쳤다고 한다.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개면 중간이며, 단지 뿌리만 있고 가지가 없으면 흉년으로 여겼다. 제주도에서는 입춘 날에 굿을 열었다고 한다. 이제 농사를 기본으로 삼던 세상과는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지만 곡식만큼은 절기대로 움직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가 똑같이 삼 개월씩 나누는 것은 옛이야기다.

얼렁뚱땅 겨울과 여름의 그림자 시간이 길어지면서 봄과 가을이 짧아졌다. 한없이 뜨거워진 여름과 지독스레 추워진 겨울로 바뀌어가는 것일까. 간절기 옷을 입기도 전에 계절은 꼬리를 감춰버린다. 올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어디쯤에서 나이 한 살이 주는 무게가 한겨울 가장자리 같다.

종합건강검진실로 찾아오는 단골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눈다. 오랜만에 본다 싶으면 그 사이 세월의 흔적은 시간보다 빨리 몸이 말해준다. 시력 저하나 기억력 저하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부정해진 어깨는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굽은 허리는 그동안의 노동의 강도와 습관을 말해준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은 세월의 깊은 주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겨진 거리에서 반갑다며 손부터 잡는다. 안부의 말에는 염려와 격려가 포함되어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오랜 시간 사회봉사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치며 살아온 영순씨를 보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 언제 어디인지를 가리지 않고 몸과 마음으로 영혼을 데워주신다. 색종이를 접어 작은 통을 만들어 맛난 사탕을 담아 나눠 먹으라고 주신다.

위와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염증도 용종도 없이 깨끗하다. 봉사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 발생률이나 심장병도 적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뇌 속에서 기분을 좋게 해주고 통증을 가라앉혀 주는 엔돌핀과 세로토닌, 도파민 등 긍정적인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분비되기도 한다. 칠십을 바라보는 그녀가 고운 심지를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

요양기관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는 정수님은 일 년에 두 번은 꼭 본다.

간염보균자인 그는 국가에서 제공되는 간암검사를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 검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기자로 활동한다는 아들에 대한 상담을 내게 받은 적이 있다. 외국의 의료수가가 비싸서 국내 온 김에 몸 상태를 체크한다고 했다. 무료검진과 개인부담으로 다양한 검사를 마쳤다. 다행히 건강상태가 양호하다는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외국으로 떠났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 다양한 혜택을 받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건강지킴이라는 나의 직업이 감사하다.

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인생이란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며 뒤돌아보아도 겨울 모퉁이를 돌고 있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오세영의 ‘2월의 詩’중에서 )

짧은 二月, 사람들은 생중(生中)에 오늘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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