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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커피향기처럼

배문경 수필가 커피를 마신다. 봄볕아래서 후배와 점심 후의 나른함을 섞고 수다를 한 스푼 첨가해서 홀짝거린다.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더러 뜨거운 커피에 녹아내렸고 긴 장마에 우산을 털며 들어서는 커피숍의 커피향기는 눅눅함마저도 잊게 했다. 지금은 그저 편안한 휴식의 단맛을 느끼고 있다.오빠는 “인생도 쓴데 커피까지 쓰게 마시겠냐”라면서 두 스푼의 설탕을 넣어 휘휘 저어마셨다.그러고 보니 쓴맛, 단맛, 짠맛, 매운맛, 단맛까지 달달하거나 모든 맛이 커피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223이라는 말이 한 때 유행했다. 커피 두 스푼에 프리마 두 스푼 설탕 세 스푼으로 탄 커피는 인기 짱이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사로 자주 인용되기도 했다.얼마 전 문인협회에서 큰 행사를 진행했다. 식사는 늘 제공했지만 커피를 제공한 경우는 없었다. 추가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씩을 제공했다. 그 자리에서 백일장 작품을 심사하는 일까지 하게 되니 일석이조였다. 음식의 텁텁한 맛을 깨끗하게 정화시켜주는 커피에 모두 기분 좋아하셨다.커피를 한때는 검은 악마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깊게 빠져들 매력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이 검은 악마가 인간에 의해 음료수가 되기까지는 한 목동의 조금은 충동적인 얘기가 밑받침된다. 염소를 치던 에디오피아의 칼디라는 소년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소년은 어느 날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날뛰는 것을 보고 자신도 먹었다. 그러자 기분이 상쾌해지고 활력이 솟구치는 기분을 느낀다. 이후 인근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알리게 되고 그들은 악마의 것이라며 두려움에 불속에 던졌지만 커피열매가 불에 타면서 향긋한 냄새를 내고 잠을 쫓는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커피음료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한다.어쨌든 우리는 깊게 들여다봐도 검기만 한 음료를 이제는 다양하게 만들어 즐거운 식감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까페라떼, 바닐라라떼, 달고나라떼, 까페모카, 아인수페너라떼, 아이스아메리카노 등 다양한 메뉴를 앞에 두고 고르는 재미와 뭘 먹지하며 들여다보는 메뉴판엔 다양한 음료가 손짓한다.기분이 언짢다면 조금 달달한 메뉴인 아인슈페너라떼를 선택해 보면 어떨까. 아메리카노 위에 얹은 묵직한 크림은 탱탱하고 쫀쫀해서 크림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같다.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놀란다. 덥고 답답하다면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최고다. 작은 즐거움으로 기분을 업(UP) 시킬 수 있다.펼쳐진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파란색 지붕이 신선했던 지중해를 배경으로 선전하던 음료가 있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그곳에서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이 번져나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유럽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도 노천카페의 풍경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후배 순희와 여행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상태다.커피는 인생의 맛 중에서도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명약이다. 왜냐하면 슬프거나 화나거나 힘들 때 혹은 내 곁에 아무도 없어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위로를 받는다. 많은 사람들과 수다를 떨 때도 커피향기가 배어 나오는 카페가 있다. 그들과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수다를 떨다 일어날 때도 먼지 같은 일상사가 살만한 세상으로 바꿔져 있기 일쑤다. ‘무엇으로부터 삶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다소 위안이 된다.지금 나는 푸른 바다의 파도가 넘실대는 구룡포 바닷가에 앉아 커피 마실 생각을 한다. 까만 커피위에 부드러운 우유가 얹혀 진 채 커피 하트를 보며 여유를 부릴 생각만으로 즐겁다. 인생 뭐 별 것 있냐며. 그러고 보니 예전 싸이월드의 아이디가 ‘커피향기처럼’이었던가.그 사이 봄바람 나겠다며 마음은 길을 나서고 있다.

2023-03-15

사이에 빠진 날

양태순 수필가 신선이 쉬는 별장에 갔다. 도심을 벗어나 점점 좁아지는 도로를 지나 굽이지는 시골길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들길을 지나 산자락을 올라 가파르다 느낄 때쯤 이정표가 멈췄다. ‘사람과 산 사이에 선유산장’ 간판이 걸려 있다.입구가 예사롭지 않았다. 간판 아래 제주도의 정낭을 옮겨놓았다. 누구든 들어와도 좋으나 예의를 지키라는 무언의 안내처럼 보였다. 주위에는 나무를 이용한 귀여운 다람쥐인지 도깨비인지 모를 조각이 혓바닥을 살짝 내밀고 있다. 주인의 유머스런 감각이 느껴졌다. 산장은 길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어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건물 지붕이 산 앞에 살짝 엎드린 듯 안긴 듯 헷갈린다. 초록 지붕과 너와 지붕, 길옆에 피어 있는 청하국이 어울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호빗마을을 연상시켰다. 높이 솟은 솟대에 앉은 오리가 사람의 이야기를 하늘에 전하려는 듯 한껏 고아한 모습이다.이름만 산장이지 실상은 브런치카페에 가깝다. 차를 마시며 풍경을 음미했다. 통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피어날 것이었다. 찾아오는 이를 붙잡기 충분했다. 가을이 산을 떠나고 있는데 창밖에서 단맛을 키우는 곶감과 잎을 떨군 나무가 빚어내는 정취는 마음을 촉촉하게 했다. 멍때리기 좋은 장소였다.사람과 산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먼저 시간의 거리와 공간의 거리가 있을 듯하다. 산은 우리의 일상생활 반경에서 좀 멀리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만나러 가야 한다. 그런 탓인지 산을 찾으려면 계획이 필요하고 준비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동행인이 있어야 안심이 되기도 한다.또 사람과 산 사이에 길이 있다. 사람이 산을 만나러 가는 일방통행이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사람이 산이 보일 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거나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산을 오르며 다양한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바로 코앞에 펼쳐진 야생화나 나무 열매, 새 소리 정도다. 더듬는 발밑을 보거나 힘이 들어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다. 쉼터에 다다르거나 앞서 걸어간 이들이 와! 감탄사를 쏟을 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정상에 선 순간 올라오는 길의 험난했던 과정이 잊혀질 만큼 멋진 풍경을 맞이한다. 산이 우리에게 곁을 내주는 것은 정상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살면서 던지는 질문에서 답을 찾을 수 없는 것 중의 하나다.마지막으로 상상의 공간이 존재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큰바위얼굴’ 같은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산 깊은 곳에는 눈 맑은 이에게만 보이는 신성한 바위 혹은 그 산에만 있는 특별한 식물이 있을 것 같다. 눈앞에 있는 산이든 멀리 있는 산이든 가보지 않았을 때는 산길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상상한다. 봄이면 산비탈에서 화사하게 인사하는 진달래와 푸드득 날아오르는 꿩의 날갯짓 소리, 여름이면 쑥쑥 자라난 나뭇잎들의 재잘거림과 무성한 숲에 빛살을 뿌리는 태양의 넓은 씀씀이. 철마다 다른 모습을 마음에 그려 본다. 그리고 그 산을 찾아 묵힌 속을 토해내고 살아갈 이유를 찾은 이들의 이야기가 메아리로 숨어 있음직하다.선유산장의 주인은 무슨 뜻으로 이름을 붙였을까. 산장은 깊은 산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이제 본격적인 산에 오를까 신발끈을 점검하는 지점에 있다. 마당 끝에 서면 아래로 절벽이 있고 계곡이 있어 귀를 기울이면 바람을 타고 물소리가 안겨 온다. 슬그머니 시름을 내려놓으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다. 통창을 통해 보이는 계절이 그리는 무늬도 한몫했지 싶다.무엇과 무엇 사이에는 서로의 삶이 얽혀 있다. 골목과 골목 사이에는 발 없는 소식에 놀이판이 더해지고, 도시와 시골 사이에는 사람이 오가고 문화가 따라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해와 관심과 애정을 주고받는다. 이처럼 사이와 사이를 이어주는 줄은 일방적이지 않다. 노력 정도에 따라 약해지기도 하고 튼튼해지기도 한다. 갖가지 사연과 시간이 베틀 위의 씨실 날실처럼 차곡차곡 쌓일수록 고와진다. 사이에는 보이는 것에 더해 보이지 않는 삶이 섞여 물살처럼 굽이치며 흘러간다.사이는 정서영역인 동시에 탐독영역이다.

2023-03-08

버려진 사진

윤명희 수필가 친구가 운영하는 고물상에 들렀다. 부탁해 둔 주물난로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은 그 날은 겨울 추위가 막 들어서고 있었다. 친구는 화물차에서 묵은 짐들을 내렸다. 요양원에 간 이웃 할머니의 살림을 정리 중이라 했다. 냉장고에서 나온 계란 몇 알이 소쿠리에 담겨 있고 그 옆에는 미숫가루가 반쯤 담긴 통과 고춧가루 통이 발치에 차였다. 냉동실에서 나온 고등어와 얼어붙은 시루떡 몇 뭉치에 지난 가을에 넣어 둔 홍시까지 혼자 살아 온 할머니의 생활이 다 보이는 듯했다.바닥에 떨어진 수주(數珠)를 줍는데 발밑에 사진이 있었다. 남의 얼굴을 밟고 있는 것 같아 발이 화들짝 놀라 뛰었다. 고물상의 흙먼지를 덮어쓴 여러 장의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에는 할머니와 단발머리의 소녀가 있었고 친구인지 형제인지 모를 동년배의 모습도 있었다.짐을 내리던 고물상 친구는 할머니의 자식들이 이런 걸 왜 챙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넘어진 박스를 세웠다. 박스에는 효자손을 비롯한 잡동사니와 많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여러 짐들이 분류되어 고철더미 위로 던져지고 잡동사니들은 대형 쓰레기봉투로 들어갔다. 친구는 안이 훤히 보이는 쓰레기봉투에 사진을 넣기가 뭣한지 한쪽으로 모았다. 할머니는 자기 얼굴이 고물상 바닥에서 남의 발에 밟히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 봤을까.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다. 손때 묻은 살림들을 정리하고 남은 것이 앨범이었다. 동생들과 둘러앉아 앨범을 펼쳤다. 엄마가 살아 온 흔적들이 고스란히 모여 있었다. 대청마루에 앉은 외할머니 흑백사진부터 자식들의 결혼사진, 손자의 돌 사진까지 찰나의 순간들이 영원으로 남았다. 사모관대를 한 아버지와 족두리를 쓴 엄마의 흑백사진은 손이 빠른 첫째 동생이 챙겼다. 자기가 주인공이었던 결혼사진은 제 각각 가방에 넣었다. 손자들과 함께 웃는 사진을 보며 그때의 이야기로 눈물을 찍어냈다.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엄마만의 사람들이었다. 연분홍 저고리가 진달래 꽃밭에 숨어있는 친구들은 내 나이보다 더 젊었다. 장구 장단이 흥에 겨운 동네 분들의 사진에서는 내 어릴 적 친구들의 부모들도 있었다.동시대를 살아온 그들의 행적은 아무도 챙기지 않았다. 그 인연들은 우리에게 그리 소중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기억하고 싶어 찍어 둔 관광지의 사진들은 길바닥에 버려지는 광고 전단지나 별다르지 않았다. 남은 사진들을 모으니 앨범 한 권이 되었다. 맏이인 내가 보자기에 싸서 집에 가져왔다. 그 후로 나는 카메라 앵글에서 멀어져갔다.기회만 되면 태우겠다는 약속은 빈말이 되어갔다. 그 앨범은 이사할 때마다 창고에서 창고로 옮겨졌고, 이삿짐 속에 묻혀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할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아스라한데, 한 번도 뵌 적 없는 동네할머니의 사진 앞에서 뒤늦게 그 앨범을 떠올리고 있다.고물상 마당에 있는 주물난로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의 자식들을 대신 해 사진을 한 장 한 장 집어넣었다. 삶의 조각들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멍청히 듣고 있다. 할머니의 모습이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창고를 뒤졌다. 먼지 앉은 보자기를 푸는 손이 바빠졌다. 앨범은 서로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자 오랫동안 잠을 잤던 사진의 한 귀퉁이가 찢겨나갔다. 한 장 한 장 빼며 사람들 속에 묻힌 엄마와 마주했다.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당신의 지난 시간들이 누구도 보지 않는 사진으로 남았다.당신의 소중했던 순간들을 가져가시라고 불을 붙였다. 사라지는 불꽃을 보며 휴대폰에 저장된 내 사진들을 넘겨보았다.메모처럼 넣어둔 오래된 것부터 하나하나 삭제했다. 폰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일어서는데 SNS에 올려놓은 흔적들이 딴죽을 걸었다. 만인이 보는 앨범에 내 생활을 펼쳐 놓고는 열쇠마저 감춘 나도 그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 인터넷 계정의 비밀번호는 oooo이라고.

2023-03-01

봄이 오는 길목

정미영 수필가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비가 오다 긋다. 빗물에 젖어 있는 고즈넉한 산책로에서 나래비 서 있는 나무를 만난다. 언 땅 아래에 새봄을 알리는 새싹들이 숨죽이고 있듯이 나무들의 몸피 속에서도 새순들이 나붓이 엎드려 있는 것 같다.입춘이 지나고 나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커진다. 봄 마중을 하러 모처럼 집을 나서니 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다음으로 형산강 가장자리에 있던 새떼들이 눈에 띈다.새들도 봄을 기다리는가. 손님맞이 단장을 하듯 깃털을 손질하고 물 가운데로 미끄러져 들어가 세수를 한다. 첨벙거리는 새의 움직임에 바람도 일렁인다. 봄을 재촉하는 내 마음에 조급함이 더욱 짙어진다.강변 의자에 앉아 윤슬을 바라본다. 그 반짝거리는 햇살에 잇닿아 오래된 추억 속의 영화 한 편이 바람에 실려 온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1992년 작)’이다. 자녀 교육에는 엄격하지만 아이들과 강으로 낚시를 하러 가는 자상한 면모도 갖춘 아버지 맥클레인과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모범생이었던 형 노먼, 형과는 달리 자유분방한 성격의 동생 폴이 주인공이다.어느 날, 거리에서 폴이 사망했다. 폴은 세상을 떠났지만 가족들은 그를 잊지 못했다. 맥클레인은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는 말로 아들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표현했다. 가족은 가장 소중한 관계이지만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존재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는 말인 것 같아,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감동을 받는다.내 기억에 남아 있는 또 하나의 명문장이 있다.‘인생은 예술품이 아니고, 순간은 영원할 수 없다.’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떠나보낸 노년의 노먼이 강을 찾아 했던 말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간 순간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으니,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뜻으로 나는 해석하고 있다.며칠 전, 보람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방 수북에 다녀왔다. ‘작가와 함께 수북수북’ 강연회에 문태준 시인이 초빙되어, 기억과 서정을 주제로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인은 아내의 고향인 제주 애월읍에 터를 잡은 지 3년이 되었다. 제주도에서 육지로 왔을 때 만산이 보고 싶었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의 소박한 일상을 전하면서도 기억 저편에 머물고 있던 고향과 가족과 사물에 대해 편안하게 들려주었다.그리고 시 작법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적인 사건이 있어야 하고, 여지를 내어 보이는 것이 시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자분자분 서정을 풀어내는 작가에게 나는 따뜻함을 느꼈다.문득,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치관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시인의 눈으로 봤을 때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이냐는 내 물음에 문태준 시인은 생태적인 삶을 언급했다. 작가의 시집 ‘아침은 생각한다(2022년 작)’에 실린 몇 편의 시를 예로 들며 부연했다.“나는 새와 벌레가 쪼아 먹고 갉아 먹고 남긴꾸지뽕 열매 반쪽을 얻어먹으며 별미를 길게 즐겨요”-‘별미(別味)’ 중에서 발췌“우리는 울고 웃으며 풀지 않겠다는 듯 서로를 옮겨 감았다”-‘뿌리’ 중에서 발췌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공존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나눔과 교섭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시인에게 나는 깊은 공감을 가졌다.지금, 봄이 오는 길목에서도 강물처럼 시간은 흐르고 있다. 모든 순간은 영원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을 만났던 추억을 비롯해 나만의 소중했던 찰나를 기록으로 남긴다면 오래도록 나의 인생은 곰곰 반추에 반추를 거듭하며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으리라.

2023-02-22

2월의 詩

배문경 수필가 입춘을 지나자 바람은 유순하게 변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탓일까. 봄기운을 느끼고자 온몸이 촉수를 곤두세운다. 나뭇가지에 몰아치던 매서운 바람이 산수유 꽃망울을 피우고 여기저기 매화를 깨운다.눈부신 햇살과 따뜻한 바람에 고객의 표정도 밝아졌다.코로나의 길고 어두운 터널은 노년을 향해 집중 포화되어 건강에 적신호를 보냈다. 노인병원으로 코로나가 돌고 돌아 삶과 죽음의 이중주 앞에 노인들을 줄 세웠다. 한풀 꺾인 겨울 찬바람과 코로나가 뒷걸음치는 것이 역력하게 보인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찬 기운 가득한 농가에서는 입춘 날에 보리뿌리를 캐어 하루 묵혔다가 그 생긴 것을 보고 한 해 점을 쳤다고 한다.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개면 중간이며, 단지 뿌리만 있고 가지가 없으면 흉년으로 여겼다. 제주도에서는 입춘 날에 굿을 열었다고 한다. 이제 농사를 기본으로 삼던 세상과는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지만 곡식만큼은 절기대로 움직이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가 똑같이 삼 개월씩 나누는 것은 옛이야기다.얼렁뚱땅 겨울과 여름의 그림자 시간이 길어지면서 봄과 가을이 짧아졌다. 한없이 뜨거워진 여름과 지독스레 추워진 겨울로 바뀌어가는 것일까. 간절기 옷을 입기도 전에 계절은 꼬리를 감춰버린다. 올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어디쯤에서 나이 한 살이 주는 무게가 한겨울 가장자리 같다.종합건강검진실로 찾아오는 단골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눈다. 오랜만에 본다 싶으면 그 사이 세월의 흔적은 시간보다 빨리 몸이 말해준다. 시력 저하나 기억력 저하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부정해진 어깨는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굽은 허리는 그동안의 노동의 강도와 습관을 말해준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은 세월의 깊은 주름을 그대로 보여준다. 당겨진 거리에서 반갑다며 손부터 잡는다. 안부의 말에는 염려와 격려가 포함되어 서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오랜 시간 사회봉사에 혼신의 힘을 다 바치며 살아온 영순씨를 보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 언제 어디인지를 가리지 않고 몸과 마음으로 영혼을 데워주신다. 색종이를 접어 작은 통을 만들어 맛난 사탕을 담아 나눠 먹으라고 주신다.위와 대장내시경을 했는데 염증도 용종도 없이 깨끗하다. 봉사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 발생률이나 심장병도 적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뇌 속에서 기분을 좋게 해주고 통증을 가라앉혀 주는 엔돌핀과 세로토닌, 도파민 등 긍정적인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분비되기도 한다. 칠십을 바라보는 그녀가 고운 심지를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요양기관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는 정수님은 일 년에 두 번은 꼭 본다.간염보균자인 그는 국가에서 제공되는 간암검사를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 검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기자로 활동한다는 아들에 대한 상담을 내게 받은 적이 있다. 외국의 의료수가가 비싸서 국내 온 김에 몸 상태를 체크한다고 했다. 무료검진과 개인부담으로 다양한 검사를 마쳤다. 다행히 건강상태가 양호하다는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외국으로 떠났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 다양한 혜택을 받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건강지킴이라는 나의 직업이 감사하다.우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인생이란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며 뒤돌아보아도 겨울 모퉁이를 돌고 있다.“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오세영의 ‘2월의 詩’중에서 )짧은 二月, 사람들은 생중(生中)에 오늘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2023-02-15

점복이

윤명희 수필가 점복이가 또 집을 나갔다. 언덕바지에 자리한 과수원에 눈바람이 일렁인다. 과수원 초입에 있는 점복이 집에 온기가 없다. 기숙씨는 목줄을 걷어 집 앞에 두고, 건너에 있는 야옹이집 방문을 열어 묻는다. 눈도 오구만 점복이 어디 갔어? 그들은 게으른 표정으로 힐끔 올려다 볼뿐 꿈쩍도 하지 않는다. 먹이 한 국자를 부어주고는, 닭장으로 들어가 계란을 주워 나온다.기숙씨는 딸이 안고 온 강아지를 내치지 못했다. 녀석의 얼굴은 갓 만들어 둔 노릿한 메주를 살짝 쥐었다 놓은 것 같고, 다리는 과식이라도 하면 배가 땅에 닿을락 말락할 길이다. 눈가에 검은 점이 있어 점복이가 된 녀석은 주인이 밭에 있을 때는 밭에 있었고, 비닐하우스에 있을 때면 그 곳에 있었다.기숙씨가 집밖으로 나갈 때면 눈물 그렁한 표정으로 쳐다봐 할 수 없이 차에 태워 다니곤 했다. 그녀가 자주 가는 친구네 고물상에 점복이 혼자 가기 시작한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외출할 때 집에 혼자 두고 가면 점복이는 마치 그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먼저 고물상에 와서 주인을 기다리곤 했다. 점복이 거기 와있다는 전화를 받은 그녀는 별 볼일이 없으면서도 녀석을 데리러 고물상에 가야 했다.꼭 다문 입 사이로 덧니까지 튀어나온 녀석은 기숙씨와 함께 있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다 기억한다. 점복이 공원에 있더라. 하이고 녀석 거기까지 와 갔노. 점복이 향교에 왔네. 조금 전까지 여기 있더만, 거는 또 언제 갔노. 그녀는 사흘이 멀다 하고 걸려오는 전화에도 몸빼바지에 장화 차림으로 녀석을 데리러 갔다. 혹여 차에 치일세라 걱정이라는 말에 지인은 언젠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녀석을 봤다고 했다. 파란불로 바뀌자 사람들 따라 건너는 폼이 주인보다 낫더라며 웃었다. 기숙씨는 발 달린 짐승이 어디를 못 가겠냐며 더 이상 데리러 가지 않았다. 짧은 다리로 녀석은 동네 곳곳을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았다.세상이 궁금한 점복이 목에 줄이 매인 것은 경찰아저씨의 호통 때문이었다. 점복이 지금 첨성대에 왔습니데이. 그 집의 개가 지금 월영교에 있습니다이 이래가 되겠습니까. 보소, 지금 시장에 왔다 아입니까 진짜 이럴랑교? 벌금 매기까요?기숙씨는 하늘도 보고 날아가는 새도 보라고 밭에 길게 와이어 줄을 설치하고는 목줄을 매달았다. 건너편에 대여섯 마리나 되는 야옹이의 집을 지어주고 그 옆에는 닭장까지 마련했다. 그들끼리 서로 쳐다보며 살라는 그녀의 뜻과는 달리 녀석은 가끔 목줄을 벗어놓고 집을 나간다. 어떤 날은 새 연인의 집에서 몇 날을 보내고 오곤 했다. 산책길에서 만났다는 지인의 말에 기숙씨는 녀석의 여행이 빨리 끝나고 돌아오기를 기다린다.점복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산으로 들로 얼마나 헤집고 다녔는지 온 몸에 도깨비 풀이 범벅이다. 기숙씨는 털에 엉겨 붙은 것들을 떼어내느라 식겁을 한다.10여 년 전 그날 아들의 모습이 그랬다. 비바람이 치던 겨울 늦은 밤, 제 키만 한 가방을 앞뒤로 맨 아들이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현관문을 들어섰다. 워킹홀리데이에서 번 돈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다던 녀석이 온다는 소식도 없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남편과 나는 거지꼴을 한 아들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돈만큼 샀다며 술과 안주가 든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이야기가 담긴 소주잔으로 가라앉혔다.어둠이 겹겹이 쌓인 시간, 전화벨이 울린다. 다음 달에 미국 간다는 아들의 전화다. 코로나로 몇 년 동안 갇혀 있느라 발바닥이 가려웠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왜’라고 물었다. 산티아고 길에서 사귄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10주년 기념이라는 말에 나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기념해야 할 여행이 어디 그것뿐이던가.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벌써 사막을 걷고 강을 건너고 있다.

2023-02-08

인생탑 쌓기

양태순 수필가 화엄사를 찾았다. 엄청난 크기에 감탄사가 먼저 나왔다. 불이문과 절 마당에 앉은 석탑과 석등을 비롯하여 각황전과 대웅전이 주는 웅장함과 엄숙함에 저절로 손이 모아졌다. 두루 돌아보며 흔적 남기기를 열심히 하고 보제루에 앉아 땀을 식혔다. 부처의 사랑을 품은 세계, 이곳은 고결한 향내가 나는 것 같았다. 열린 문을 통해 보이는 보리수와 단풍나무, 탑과 전각들, 절 뒤로 보이는 산이 그려내는 풍경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마당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살폈다. 모두가 편안한 얼굴이다. 경내를 휘젓는 바람과 말소리가 어우러져 경전이 되고 깨달음이 되는 공간이었다.대웅전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구층암으로 향했다. 오른쪽으로 대숲이 빽빽하다. 호젓한 오르막길을 맑은 기운에 젖어 조금 걸으니 구층암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앞서 본 화엄사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모든 건물이 산에 안기듯이 나지막하고 수수했다. 절마당을 지나는데 삼층 석탑이 시선을 끌었다. 잘 다듬어져 예술품으로 탄생한 탑이 아니었다. 조각난 돌이 얼기설기 얹어져 손을 대면 무너질 듯 어설픈 탑이었다. 한 바퀴 돌아보니 정면은 멀쩡한데 보는 방향에 따라 누군가 소원을 얹은 산길의 돌탑 같았다.돌탑은 간절함이 쌓아올린 축적물이다. 이름 있는 산사나 신성함이 깃들었다고 소문난 산을 찾아온 이들이 자신의 애달픈 정성을 얹은 탑이다. 그것은 멋과 예술의 경지가 아닌 지극한 마음이 빚어낸 성물이며 보이지 않는 간절한 기원이 해를 거듭하며 쌓여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나도 산을 찾을 때면 만나는 돌탑 앞에서 슬쩍 돌 하나를 얹는다.옛날부터 탑돌이 풍습이 있었다. 탑은 부처님을 모신 곳이라 정성껏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불교가 융성하던 시절에는 연례행사와 상관없이 자식 얻기, 부모님의 건강, 굶주림 벗어나기, 맺을 수 없는 사랑을 위한 탑돌이가 있었다. 아마도 소원이 이루어지는 이가 있었기에 김대성의 이야기도 나왔을 확률이 높다.구층암 석탑은 온몸으로 장구한 세월을 맞았다. 무너져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돌들을 정성껏 쌓아서 다시 탑의 형태로 돌아왔다. 차곡차곡 각을 재듯 정제된 미는 없으나 돌탑의 구원을 고스란히 느꼈다. 어설픈 단장이지만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은 것은 돌에 깃든 비손의 힘이 아닐까.이름난 산길에서 만나는 돌탑의 매력은 자연스러움이다. 오랜 세월 간절한 이의 소원을 머금은 채 형식 없이 쌓이고 쌓인다. 누구도 제것을 위해 다른 돌을 옮기거나 무너뜨리지 않는다. 돌에 깃든 마음의 깊이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로의 기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스며들어 서로를 붙드는 힘이 생긴다. 그 탑은 잘나고 못나고의 시각이 아닌 진정성으로 평가받는다. 삐죽빼죽 못난이지만 아픔의 결과 사랑의 결이 돌 사이를 메꾸어 부족함 없는 탑이 되었다. 장인의 탑과는 다른 매력으로 마음을 움직인다.무엇이든 쌓는 것은 노력이 필요하다. 덕을 쌓거나 복을 짓거나 인연을 만들고 사랑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는 것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선함을 쌓는 일이고 분노나 화를 쌓거나 미움과 시기에 휘둘리고 상대에게서 권력이나 재물을 뺏어오는 것은 악을 쌓는 일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일생을 공들인 탑의 결과가 어떨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나이가 들면서 좋아진 점이 있다면 생명을 좌지우지하지 않는 것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슬프면 슬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흘려보낸다. 견뎌내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속에 감정 찌꺼기를 쌓지 않는다. 오늘 같은 내일이면 감사하며 살자는 마음이 크고, 주위에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으면 싶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좋은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남을 돕는 것에 앞장서 손을 보태는 사람들과 자신의 것이라 고집하기보다 남을 채워주려고 퍼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닮으려 애쓰는 것이다.인생탑을 쌓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긴 길을 걸으며 만난 크고 작은 일을 겪은 뾰족하고 불퉁한 모양으로 쌓았다. 지금부터 마음을 다듬어 볼수록 매력이 있는 탑을 쌓아야겠다. 창작의 고통을 즐기면서.

2023-02-01

공존이라는 두 글자

정미영 수필가 새벽바람의 기척으로 돋을볕이 숲속에 스며드는 시간이다. 자연과 사람을 잇는 노거수 숲을 걷기 위해 연일 중명 원골숲으로 들어선다.노거수 우듬지를 비추는 햇살 한 점에 눈이 부시다. 고요히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한 마리 새처럼 삶의 아포리즘을 받아쓰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마을 숲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된 회화나무 7본과 말채나무를 비롯해 팽나무, 느티나무 등속의 노거수가 많이 있다. 아름드리나무 숲길 위에 잠시 멈춰 서 있으니 한줄기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노거수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면 수많은 잎들이 사연을 매달고 있는 듯하다. 나는 나뭇잎 속에 담겨 있는 씨줄날줄 설피창이로 엮였던 이야기들을 정독한다.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며 소중한 자식을 기다리던 늙으신 부모님의 그리움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누군가의 아픔까지, 나무는 화석처럼 온전히 기억하며 나뭇잎으로 피워내는 것 같다.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공존의 이유가 있을 터이다. 자연의 윤회 속에서 나무와 사람이 서로 이웃하여 안부를 묻고 있는 곳이 원골숲이다. 노거수의 몸피가 야위면 사람이 막걸리 몇 사발을 부어 주며 원기를 북돋우고, 사람의 몸과 마음이 허기지면 나무가 치유의 기운을 내뿜어 주는 곳이 여기다. 가끔은 나무가 사람에게, 가끔은 사람이 나무에게, 서로 의지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바람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노거수 사이를 걸으며 생각의 깃을 세운다. 나직이 두런거리는 나무의 문장들을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마을 정자 앞이다. 어르신들이 담소를 한가로이 나누고 있다. 수령이 많은 나무와 연세가 지긋한 노인의 모습에서 닮은 듯, 연륜이 묻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주름진 나이테에서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가늠해 본다.나무의 내력을 알고 있는 그 분들 곁에서 600년 된 회화나무가 쉬나무를 의지해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한국 전쟁 이후 어느 해, 개구쟁이 아이들이 나무의 동공(洞空) 속에 들어가 놀면서 불장난을 했다고 한다. 이 나무 옆에 쌓아두었던 콩더미에 불이 옮겨 붙는 바람에 화력이 더해져 상당 부분 소실되었다. 회화나무는 몸통이 불에 데여 흉터가 남고 나뭇가지가 일그러졌단다.쉬나무를 의지해 고난의 시간을 견뎠던 것일까.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안 되고 근처 나무와 어깨를 겯고 있어야 된다는 공존의 이치를 터득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거센 폭풍우를 견딜 수 있고 눈보라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을 것 같다.쉬나무는 해마다 수북하게 꽃을 피운다. 어쩌면 쉬나무는 회화나무가 상처를 딛고 봄마다 여린 잎을 피어내는 모습에 더욱 분발했을 수 있다. 그 덕분에 꽃 무더기 사이로 꿀벌들이 날아다닌다. 쉬나무는 여름에 향기롭게 꽃을 피워 꿀을 듬뿍 담고 있는 밀원수종이다. 다른 수종의 나무뿐만 아니라 자신을 찾는 생명들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니 소중하다.저마다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가 다르다. 하지만 나와 인연을 맺는 이들에게 쉬나무처럼 도움을 주는 의미 깊은 삶을 살아도 좋을 성싶다. 노거수의 너그러운 성품이 내게 옮겨와 내 마음을 가득 물들이면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세상이 훨씬 곱게 보일 거라며, 나보다 생을 오래 건너온 나무가 나를 위해 덕담 한 마디 따스하게 건네준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회화나무 줄기를 쓰다듬어 본다. 노거수의 숨결이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음률로 내 마음을 품어 주는 것 같다.나는 메마른 일상이 반복되어 간신히 버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지금처럼 노거수 앞에 두 팔 벌려 우두커니 서 있을 것이다. 소멸되지 않는 나무 영혼을 끊임없이 소환하여 치유라는 이름으로 불러주면 아마 내 마음은 편안해지겠지.나는 지금,노거수 아래에서 공존이라는 두 글자를 내 마음에 돋을새김 하는 중이다.

2023-01-25

나목(裸木)을 읽다

배문경수필가 팔다리가 앙상하다. 바람 한 점 붙들 힘조차 없다. 겨울바람이 팔과 다리 사이로 쌩쌩 지나간다.남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양옆으로 서있는 나무들이 한결같다. 하나같이 헐벗은 노인의 몸피 그 자체다. 예수나 석가모니가 저런 모습이었을까. 탁발승의 모습이다. 아! 모두 다 내려놓고 서있는 나무가 고행하는 성자 같다.나무가 서 있는 길가를 벗어나면 들판은 바람소리로 가득하다. 날아온 까마귀 떼들이 낟알을 주워 먹는지 전선위에 앉았다가 떼로 몰려와 논을 새까맣게 수놓는다. 저들도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해 가벼운 몸피로 수십 킬로를 날아다닌다. 겨울의 풍경이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다.다 버리지 않고 어찌 가벼워 질까. 허공을 날아야하는 새들의 숙명이다. 저 가벼움을 위해 부리로 씨앗을 쪼아 먹고 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더 빨리 나는 생존을 몸속 깊이 유전(遺傳) 받았을 새. 새들도 나목처럼 뼛속을 비워 겨울을 난다. 지나가는 구름 한 조각은 새 위에 얹힌 그림자로 상상의 새처럼 크다. 그것 또한 가볍기만 하다.새는 자유를 찾아 난다지만 서있는 겨울나무는 제 뿌리로 단 한 보를 옮기지 못한다. 그래도 살아남아 내일로의 순환으로 이어져 갈 것이다. 바람이 사지를 흔들며 멱살을 잡고 비가 온몸을 적셔도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다. 그 무엇이 자신을 훑고 지나가도 변함없는 것으로는 나무만 한 것이 있을까.장기유배지를 다녀왔다.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포항 장기 유배지인 장기숲(장기임수)을 보았다. 한양에서 천리나 떨어진 외진 곳이다. 그 곳에는 송시열이 심은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다산이 머물던 곳에는 유림(儒林)인 느릅나무 숲이 있었다. 우암은 가정과 향당과 조정에서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실천한 참 선비였다. 큰 눈으로 보면 그가 추구한 세상은 의리가 존중되고 예의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문명의 세상이었다.“…. 아득하여라, 정말 아득하여라 처음도 끝도 찾을 수 없는 미명의 저편은 나의 눈물인가 무덤인가 등잔불 밝혀도 등뼈 자옥이 깎고 가는 바람소리 머리 풀어 온 강진 벌판이 우는 것 같구나.” 는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의 부분이다. 두 거장이 내 몰린 곳에서 나무는 귀향 살이 하던 그들의 마음처럼 세상의 고뇌로 메말라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메마른 삶을 산다는 것은 힘들다. 정년을 앞둔 직장생활은 편치 않다. 활기차고 진취적인 젊은 날과는 달리 경기의 후반을 뛰는 선수처럼 승부에 마지막 온 힘을 부어 스스로를 태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수강했던 인생 재설계 과정이 생각난다. 백세시대, 즐거움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삶의 욕망과 집착을 접어 몸과 정신을 가볍게 비워내야 오늘과 내일을 살 수 있다.내일을 채울 또 다른 준비는 젊은 날과는 다른 생각과 대책이다. 좀 더 깊어진 인생의 연륜을 이용해서 지혜롭게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 주위에 서서히 정년을 맞아 자신의 의자를 뒷사람에게 물려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늘어나는 노인의 숫자와 더불어 실버가 실버를 간호하는 세상이 왔다. 젊은 노인세대가 세상의 빈 곳을 채울지도 모른다.어느 날부터 꽃과 잎을 다 털어낸 겨울나무가 좋아졌다. 자신을 향해 깊게 파고들어 기도하는 저 나무가 나의 저변에 깔린 손톱크기 밖에 안 되는 자존심과 깜냥을 비웃는 듯하다. 단단함과 고요함으로 나를 일깨운다. 수묵화처럼 배경과 나무색만으로도 그 깊이를 짐작할 명작(名作)이다.추사의 세한도는 귀양길에서 만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낸 그림이다. 그 당시 제주도에 유배를 간 그에게 제주도라고 덜 추웠으랴.이번 겨울은 조금 더 춥다. 나이가 주는 사회적 한계를 체감한다. 나이만큼 무거워지는 여건은 저 겨울나무가 묵언처럼 제시하는 침묵(沈黙)과 구도(求道)만이 답이 아닐까.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나무가 오늘 아침, 안부를 묻는다.“그대, 오늘도 안녕하신가?”

2023-01-18

대숲 바람

윤명희 수필가 장구채 끝에서 노랫가락이 춤을 춘다. 그 춤은 휘어졌다가 슬금슬금 바닥을 기다 요동치듯 솟구치기를 반복한다. 대숲 바람이 몰아치는 어두운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촌락의 따뜻한 작은 방은 흥으로 그득하다. 두레밥상 위에는 반쯤 남은 막걸리의 잔이 가늘게 떨리고 나는 숨죽여 손가락 장단을 맞추고 있다.퇴근 후, 차를 몰고 밤길을 달렸다. 산 중에 대숲으로 둘러쳐진 친구의 친정집은 우리의 놀이터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그 집은 늘 비어 있어, 이른 봄이면 막 연초록의 키를 키우기 시작하는 앞산을 보며 수다를 떨기에 그만이다.여름 낮에는 다슬기를 잡고, 밤이면 마당에 나와 별을 센다. 가을이면 뒷담을 기대선 늙은 감나무가 궁금하고 오늘 같은 겨울에는 따뜻한 방바닥이 그리워 찾아가는 곳이다. 출발할 때부터 눈발이 흩날리더니 저수지를 지날 무렵에는 안개까지 자욱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당산나무를 지나 마을길로 들어서자 멀리서 대숲 바람이 먼저 맞이한다. 경로당 앞에 차를 세우고 언덕에 누워계시는 친구의 부모님께 눈으로 인사를 했다. 얼마 전까지 장구 장단에 어깨춤을 추시던 구순의 동네 할아버지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한 친구가 미주구리가 제철이라고 하는 말에 급조된 만남이다. 오늘은 집주인인 친구가 소리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는 소식에 걸음이 바쁘다. 어떤 분이실까 궁금증이 먼저 마당을 들어섰다. 방문을 와락 열고 들어서자 매번 만났던 냥 전혀 낯설지가 않다.작은 두레밥상에는 미주구리 무침에, 익어가는 김장김치가 막걸리를 유혹하고 있다. 두어 잔이 오르내리자 우리는 소리가 담긴 술을 마시고 싶다는 말을 조심스레 건넸다. 선생님이 방 한 귀퉁이에 있는 장구를 끌어당겨 따 닥 장구를 두드렸다. 제자인 친구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자 우리는 매번 듣는 소리가 아닌 명창의 가락을 듣고 싶다며 졸라댔다. 따다닥 딱딱 쿵 딱. 소리가 장구를 껴안듯이 착 달라붙었다. 장구 장단에 맞춰 노래가 흘러나왔다.눈을 깔고 두레밥상에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에 젖어들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노래가 친구에게로 넘어가고 노랫가락은 끝없이 이어졌다.매끄럽게 넘어가는 친구의 음률 따라 은근슬쩍 우리의 거친 목소리도 끼워 넣었다. 얼쑤! 선생님의 추임새에 신명이 올라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차르르’ 뒷곁에 대숲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집을 한 바퀴 돌아가고, 박자를 맞추듯이 그 사이로 ‘따그락따 딱딱’ 다른 소리가 들린다. 친구는 댓잎 바람의 마지막에 따라가는 것은 죽은 대나무가 내는 소리라고 했다. 그들도 따라 장단을 보태어 흥겨운 노래판이 되었다. 막걸리 몇 잔에 우리의 흥은 어깨까지 오르고, 장구 장단에 눈발은 허공에서 춤을 춘다. 산골의 동짓날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다.장구 장단을 멈춘 선생님이 우리를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아이고 얄구재라, 가만히 보면 전혀 다른 사람들이구마는 어째, 하나 같이 똑 같을고. 앞으로 나도 이 모임에 끼워 줄거라?”우리는 손바닥을 쫙 펴고 독수리 오형제가 된 것을 선포했다.권주가를 부르며 다시 또 막걸리 잔을 부딪쳤다. 허공에 그려지는 장구채의 그림과 맺고 끊는 장구 장단에 따라 우리의 가락도 달라져 갔다. 역시 고수였다. 나는 장구 장단에 노래가 따라간다고 생각했는데 부르면 부를수록 그게 아니었다. 장구가 노래를 받쳐주고 있었다. 노래를 잘하는 친구와는 달리 우리의 노래는 원곡과는 상관없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가 튕겨 올라붙었지만, ‘촤르르’ ‘따그락따 딱딱’ 댓숲 바람이 사이사이를 채워주었다.밤은 깊어가고 마을은 어둠에 잠긴다. 작은 방에 언니 동생 옹기종기 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웠던 어린 시절처럼 따끈한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내일 아침이면 잰걸음으로 출근을 해야 하지만, 만날 때마다 그랬듯이 누구 하나 쉬 잠들지 못한다. 흥얼흥얼 다하지 못한 노래가 나지막이 깔리더니 방안은 조용해지고, 대숲도 잠이 든다.

2023-01-11

조청과 꿀단지

양태순 수필가 이십 년 전의 일이다. 시장 모퉁이에 있는 가판대에서 조청을 보았다. 가판대를 채우고 있는 잡다한 물건들 중에서 수숫빛 유리병에 먼저 눈길이 갔다. 조청! 참말 그 조청이란 말인가? 왠지 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는 반가운 이를 대하듯 유리병을 어루만졌다. 딱히 쓸 곳은 없지만 사고 싶었다.어린 시절에 집에서 조청을 고는 날이면 어쩐지 설렜다. 그날은 어머니가 제일 바빴다. 수시로 솥뚜껑을 열고 손가락을 넣어 따끈한 정도를 확인했다. 온도가 적당치 않다 싶으면 불을 조금 때서 온도를 맞추었다. 해 질 무렵이면 베자루에 담아 건더기를 걸러내고 뭉근한 장작불로 엿물을 고기 시작했다. 동네 개 짖는 소리가 잦아들고 기다리던 아이들도 앉은 채 꾸벅거릴 때, 그제야 엿물은 눅진한 조청이 되었다. 어머니는 그걸 대접에 조금씩 담아 식구들에게 맛을 보였다. 그 맛은 내가 생각하는 쫀득하고 달큼한 맛이 아니었다. 조청은 뜨거울 때 먹으면 제맛을 모르고 오히려 속만 아리다는 걸 알았다.조청은 귀한 것이었다. 그 시절 시골 형편이 다 어려웠기에 명절에나 겨우 맛볼 수 있었다. 대개는 설을 앞두고 조청을 고아 강정도 만들고 엿도 만들었다. 식구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손님 접대용이었다.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명절이면 손님이 많이 왔다. 고모부가 오시기라도 하면 꽁꽁 숨겨 두었던 맛난 것들이 상 위에 올랐다. 나는 그중 조청 종지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친구 숙이가 선생님께 꿀을 가져다드린다고 들고 왔다. 조청과 꿀이 같은 줄 알았던 나는 친구가 엄청 부러웠다. 그 귀한 꿀을 갖다주면 숙이는 틀림없이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할 것 같았다. 나는 샘이 나서 소문을 내기로 했다. 몇몇 친구에게 그 얘기를 했다. 삽시간에 반 전체에 말이 퍼지고 아이들이 수군거렸다.쉬는 시간이었다. 숙이가 없을 때 친구들이 꿀단지를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꿀단지는 보자기에 싸인 채 책상 서랍에 들어 있었다. 겁도 없이 누군가 그걸 덥석 꺼내 들었다. 뚜껑을 열어보다가 그만 단지를 떨어뜨렸다. ‘우짜노 우짜노’ 하는데 수업 종이 울렸다. 친구들과 나는 깨진 조각을 허둥지둥 보자기에 쌌다. 꿀범벅이 된 바닥을 걸레로 닦고 창문도 열었다. 교실로 돌아온 숙이는 너무 놀랐는지 아무 말도 못 했다.그날은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학교가 파했다. 다른 날과 달리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숙이도 나도 발끝만 보고 걸었다. 길가 묘지 옆 빈터에 꿀단지 조각들을 묻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비밀이란 걸 눈빛으로 알았다. 꿀단지가 깨어진 게 순전히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숙이가 선생님께 꿀을 드린다고 소문낸 것도 나고, 그러면 선생님은 숙이만 예뻐할 거라고 흉을 본 것도 나였다.나는 겁이 났다. 친구들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내 심장은 시시각각 쪼그라들고 있었다. 친구 엄마한테 야단맞을까 두려움에 떨었고 식구들이 알까 봐 조마조마했다. 누가 내 이름만 불러도 깜짝깜짝 놀랐고 숙이 얼굴 보기가 멋쩍어 피해 다녔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친구가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던가 보다.숙이가 선생님께 드리려던 것이 꿀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토록 샘내지 않았을 것이다. 참기름이나 계란, 그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해도 심통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꿀이 정말 조청과 같은 줄 알았었다. 꿀은 먼 나라 것처럼 익숙하지 않았고 꿀이 더 비싸다는 것도 몰랐다. 어머니는 먹고 싶은 조청 대신 엿밥을 주었다. 엿밥이 달콤하긴 했지만 조청에 대한 허기를 채워주진 못했다. 어머니 몰래 먹었던 조청의 맛은 오래 잊히지 않았다.이십 년 전에 간혹 보였던 조청이 요즘은 수시로 구할 수 있다. 지금도 조청만 보면 와락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막상 집에 있어도 쉽게 먹을 수가 없다. 꺼내서 병만 만지작거리다 도로 넣어 놓기 일쑤다. 가난하던 시절에 조청을 귀히 간수하던 어머니의 마음이 겹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조청 앞에서 흔들리는 걸음이 먹먹히 멈출 것이다, 나는.

2023-01-04

시를 읽다

정미영 수필가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기형도 작가의 ‘엄마 생각’시를 낭독해 본다. 시인의 어머니는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 열무를 팔러 다니면서 가족들을 건사했다고 한다. 시인은 어른이 된 훗날, 고단했던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며 작품을 썼다. 어머니와의 야윈 추억들로 그는 가슴이 자주 먹먹했을 것이다.나 또한 친정어머니의 지난했던 생활을 생각하며 집필할 때가 많았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구멍가게를 운영했다. 그 즈음 할머니의 병환이 깊어 어머니는 가만히 있어도 긴 한숨이 새어나오는 답답한 나날 속에 파묻혀 지냈다.어머니는 명치가 뻐근할 정도로 숨이 막힐 때면 가게에서 팔아야 되는 껌 한 통을 뜯어 껌 종이들을 펼쳤다. 껌 종이에는 시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어머니가 즐겨 읽던 시는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로 시작되는 시를 마음에 담으며, 껌의 단물처럼 달착지근한 희망을 계획했는지도 모른다.어머니의 시 읽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랐다. 나에게는 하이네의 ‘그대는 꽃인 양’이란 시를 읽어주었다. ‘그대는 한 송이 꽃처럼 귀여이 맑고 아름다워라’로 시작되는 시를 들려주며 딸에 대한 소망을 간절히 기도했다.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이 시를 들으면 마음이 한없이 편안했다.어느 덧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처음 참고서를 사기 위해 서점을 찾았던 곳에서 ‘세계 명시 선집’을 발견하고는 페이지를 넘겼다. 순간 가슴이 찌르르 했다. 선집 안에는 내가 오래도록 껌 종이에서 보았던 낯익은 시들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서슴지 않고 참고서를 제치고 시집을 사버렸다. 시 속의 단어들은 여전히 내 감수성을 일깨우고 채워주었다. 가슴 저미는 시행을 접하면 저절로 눈물이 흘렀고, 맑고 순수함이 느껴지는 시를 읽으면 내 마음 한 자락이 따스하게 덥혀졌다.햇살 눈부신 날이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제삿날인데도 가게 일 때문에 집을 나설 수 없었다. 나는 언뜻 어머니의 눈망울이 젖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 나는 슬픈 현실이 주는 암담함의 크기가 얼마나 깊은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다만 파란 하늘을 초점 없는 눈으로 하염없이 올려다보는 어머니의 그늘진 얼굴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날 밤, 어머니의 웅크리고 자는 모습이 내 눈에는 달팽이처럼 보였다. 몸을 자신의 껍데기 속에 집어넣고 있는 달팽이처럼, 어머니도 자신의 감정과 언어들을 마음속으로 둘둘 말아 넣고 잠을 청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다음 날, 나는 책가방 속에 들어 있던 시집을 꺼내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가 껌 종이를 내게 주었듯이 나는 시집을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는 나와 눈을 맞추고 난 뒤 시집을 넘겼다. 조용히 몇 편의 시를 읽고는 어떤 시가 마음에 들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익숙한 시도 좋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시 가운데 한 편을 말했다.우리는 시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눴다.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한다고 분주했던 나였다. 그런 나를 앉혀 놓고 껌 종이에 적힌 시를 읽어주지 못했던 어머니는 오래간만에 나에게 시를 읽어주었다. 주어진 생활이 고단해 어머니의 마음이 시리고 건조해졌을 것이라 나는 여겼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나를 마주대하는 어머니의 가슴은 다행스럽게도 따뜻했다. 어머니는 조용히 일어나 가게 선반 위에 두었던, 시를 품고 있는 껌 종이를 들고는 시집 속에 책갈피처럼 끼웠다.시집은 시심을 울리게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딸을 이해하고 딸 역시 어머니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때 자습서 대신 시선집을 샀던 일을 비롯해 그동안 품었던 생각을 속속들이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어머니가 있어 고마웠다.기형도 작가의 시집을 다시 펼친다. 향긋한 껌 향기가 퍼지는 것 같아 내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나는 달콤한 시를 곰비임비 읽는다. 단물이 입안에 고이듯 시를 내 가슴에 담는다.

2022-12-28

담장을 허물다

배문경 수필가 바람이 분다. 건물과 담벼락 사이로 세찬 바람이 지나간다. 담장아래서 병아리처럼 아이들이 모여 햇빛바라기를 했다. 흙담은 따뜻했고 바람을 피해 앉아서 종알종알 어린 우리의 일상은 바람을 맞지 않아 좋았다.형제가 떠난 자리는 허전했다. 언니 둘이 결혼해서 어린 나를 놔두고 자신의 둥지로 떠났다. 애지중지 머리를 닿아주고 서캐를 옮겨왔을 때 참빗을 들고 머리를 쉴 새 없이 빗어 내리던 언니들의 빈자리는 가을 추수한 들녘처럼 쓸쓸했다. 어린 막내라고 목마를 태워주던 오빠들이 그리워 담벼락에 붙어 서서 자주 훌쩍였다. 해가 뉘엿해지면 덩달아 그늘진 담은 더 차갑게 나를 밀어냈다.어둠살이 내리던 골목길 담벼락은 나처럼 혼자일 때가 많았다. 인적이 끊긴 겨울 늦은 시간이면 졸고 있는 전봇대가 불을 밝히고 긴 그림자를 끌고 피곤한 진수네 아버지가 지나갔다. 자주 술을 마신 채 비틀거렸다. 동네 까까머리 중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우당탕탕 시끄럽게 귀가했다. 서로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동네가 떠들썩하게 사랑했던 순자언니의 사랑은 담 그늘에서 사랑의 꽃으로 결실을 맺었다. 담장 너머로 서로를 향한 뜨거운 눈빛이 마주쳤던 모양이다.요즘은 담장에 스토리를 그려 넣거나 문화재나 시(詩)를 보기 좋게 써두지만 그때는 무서운 가위가 그려지거나 귀신같은 것이 자국을 남겨두곤 했다. 싸리를 꽂아 담장을 쳐둔 창식이네 집은 멀리서도 뭐하는지 다 보였다. 하지만 뒷집 기와집 할배네 집은 담장이 높았다. 철대 문이 한 번씩 삐거덕 거리며 열렸지만 간혹 사람보다 가래 뱉는 소리가 더 잦았다. 새벽이면 그 집에서는 요강을 들고 나와 밤새 볼일 봐둔 것을 개울물에 부어 버리곤 했다. 혼자만 대단한 듯이 담장을 높인 집이라 사람들도 얼씬 하지 않았다.최근 한양도성 탐방이 인기라는데 서울을 두른 성문과 성곽이 과히 높지 않다고 한다. 소실된 성곽이 상당 부분 복원되면서 한양도성(성문과 성곽)을 돌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순성(巡城)놀이다. 한양을 둘러싼 도성에는 8개의 성문이 있고 성곽의 길이는 40리(18.6km)다. 하루에 한양 성곽을 다 돌면 과거시험에서 장원 급제한다는 속설이 생겨나면서 순성놀이는 더욱 유행했었다고 한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도성, 궁궐, 성곽 짓기였단다. 울창한 소나무 숲도 곳곳에 보이고 공간을 아늑하게 만드는 조선식 조경기법인 취병(翠屛)이 있다고 하니 나도 언젠가 낮은 성을 돌며 서울구경을 제대로 해볼 참이다.지금은 살만큼 살아서 일까. 어디에 가더라도 주위를 파악하고 행동하지만 어릴 때는 주눅이 잘 들었다. 보리자루처럼 서있었다. 그렇지만 몸이 가벼워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는 혼자 타잔처럼 담장을 타고 놀고 집 뒤란에 서있는 감나무에 올라 노을을 혼자 보곤 했다. 담장은 계단처럼 느껴졌다. 차곡차곡 올려둔 블록 위에 올라서면 세상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도 그때 간곡히 기도한 때문이지 싶다.오래되어 낡은 것들이 정감 있게 살아나던 부산 감천마을을 떠올려보면 집의 담장 들이 서로를 연결시키고 있었다. 옆집이 무엇을 하는지 쉬이 알 수 있었으리라. 담은 가리개가 되고 혹은 적당한 소통의 간격으로 보였다. 곳곳에 그려진 그림은 삶이 묻어나 있고 벽을 스치며 그림과 조우하는 나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이제 높은 담장을 쌓아 경계를 두는 일들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낮은 꽃 화단이 겨우 이곳과 저곳을 나눌 뿐이다. 내 것이 허물어지고 타인이 들어올 때 소통은 훨씬 편해진다. 곳곳에서 공사하는 현장들도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배려한다. 내 것이 열리고 타인을 받아들여야 공감의 장은 넓어진다.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공광규의 ‘담장을 허물다’)나또한 생(生)의 담장을 낮추어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으로 맞고 인연을 맞고 기쁨을 맞을 생각이다.

2022-12-21

목수

윤명희 수필가 조카뻘 나이의 그는 가끔 우리 사무실에 와서 얘기를 나누는 이들 중 한 사람이다. 말이 별로 없고 덩치도 크지 않아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대화 분위기에 맞춰 가끔 옅은 미소를 짓는 그가 내 눈을 끈 이유는 닉네임이 목수기 때문이다.목수라면 어릴 적 동네 아저씨를 떠올리게 되어 젊은 그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취미가 목공예일 거라 여기며 요즘 만들고 있을 소품들이 어떤 게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다.얼마 전, 친구가 오래된 작은 아파트를 샀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살다 간 그 집은 누렇게 뜬 꽃무늬 벽지에 창문이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거렸고, 보일러는 녹물에 얼룩져 있었다. 친구는 타일이 깨진 욕실을 보자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했다.계단을 내려가다 1층에 리모델링하는 집이 눈에 띄었다. 저 집은 어떻게 수리하고 있는지 구경이나 하자며 가는데 아는 얼굴이 보였다. 목수? 내가 아는 그 목수? 그가 손을 흔들었다. 복도를 따라 공사 현장으로 갔다.그의 먼지 묻은 작업복이 먼저 눈에 들었다. 자초지종 내 얘기를 들은 그는 들어와 보라고 했다. 싱크대는 물론 문짝에 문틀까지 떼어낸 집 안은 살점이 뜯어져 나간 생선 가시처럼 앙상했다. 머릿속으로 그려보아도 이 집이 어떤 집으로 되살아날지 감이 오지 않았다.3층 친구의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우리를 따라온 그는 바깥으로 된 욕실 문을 여닫으며, 욕실 문은 안으로 달아야 물방울이 바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단순한 이치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는 우리 집 문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보며 신경 써서 챙겨야 할 부분들을 체크해 주었다. 눈에 띄지 않은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에 친구는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그가 해 준다면 아무런 걱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헌집을 주고 새집을 받고 싶은 두꺼비처럼 나는 맡아서 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약속해 놓은 일만도 줄을 서, 도저히 날짜 맞춰서 해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일을 마다할 수 있다는 게 의아했다. 맵짠 그의 손재주가 젊음과 어우러져 공사 현장을 잡고 있었다. 그는 취미로 하는 목수가 아니라 젊은 나이에 이미 선수가 되어 있었다.몇 번의 들락거림과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끝났다. 새로 칠해진 현관문을 열고 스위치를 올리자, 은은한 조명 아래 신혼집 같은 분위기가 펼쳐졌다.집 안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스치고 지나간 손길의 위대함을 느꼈다. 목수가 수리한 1층 집이 그려졌다. 그 집은 새로 도배한 벽의 풀냄새와 새로 칠한 하얀 페인트 냄새에 분명 목수의 나무 향이 날 것 같았다.요즘 들어 가끔 그가 사는 집 창을 올려다볼 때가 있다. 창에 그의 아내와 어린 딸의 웃음이 담긴 불빛이 비친다.그 불빛을 만들어 낸 작업복과 눌러쓴 모자의 힘을 바라본다. 새집을 그려 낼 몽당연필을 오늘도 귀에 꽂고 다니는 그에게 지긋한 마음의 눈길이 가는 것은, 어젯밤에 받은 전화로 더 한 것인지 모른다.친구는 몇 해 동안 취직 시험을 준비하던 아들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책을 집어 던져 속상하다고 했다.두어 해 전에, 공부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보겠다는 아들에게 지금까지 한 게 아까우니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사정했던 그녀다.아들이 번듯한 곳에 취직만 되면 장가부터 보낼 생각에 아파트까지 장만해 뒀는데 왜 이리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의 의지로 책상 앞에 앉아있을 친구의 아들이 떠올랐다. 그녀가 움켜잡은 손만 놓아준다면 아들은 목수처럼 자기만의 집을 스스로 짓지 않을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2022-12-14

구부러진 길을 보다

양태순 수필가 댓잎이 사그락거린다. 대나무가 여린 바람에 구불구불 몸을 흔들며 고요를 털어낸다. 적막에 들었던 시간을 깨워 일제히 허리를 구부려 나를 끌어당긴다. 발보다 귀가 먼저 닿는다. 대와 대 사이를 지나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서 있으면 맑은 기운이 마음을 차지한 무거운 기운을 조금씩 밀어내는 것이 느껴진다. 내쉬는 숨이 텁텁하지 않다.대숲을 뒤로하고 걸음을 뗀다. 사박사박 소리를 달고 흙길을 걸으며 옛 생각에 젖는다. 몇백 년 전 유배지에서 우암과 다산이 걸었을 길, 그 길에서 복잡했을 마음을 짐작해보는 ‘사색의 길’에서 잠시 그들의 생각을 엿보려 한다. 걸음마다 발뒤축에서 분가루 같은 먼지가 날린다. 마치 뿌옇게 산란하는 안개처럼 자신들의 앞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을 보는 듯하다. 길을 걸으며 갑갑하고 답답한 날에 한숨을 얹기도 하고 새로 깨달은 학문을 정리하기도 했으리라. 길이란 때로 어디로 향하는 목적보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과 자유롭게 드나드는 생각을 펼치고 나름의 이론으로 정립하기 좋은 장소기도 하다.‘사색의 길’을 내려와 다리를 건너 장기 유배문화 체험촌에 들렀다. 먼저 105인 기록 이야기 벽으로 갔다. 다산과 우암이야 워낙 유명인이고 알려진 것들이 많으니 뒤로 미루고 어떤 인물들이 왔는지 기록을 읽어 나갔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 사이로 몇몇 아는 이름이 보인다. 박팽년과 관련 인물, 이시애의 난 관련 가족, 남이 역모 사건 관련, 이인좌의 난 관련 인물들이다. 조선시대는 역모가 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았음을 다시 확인한다.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여인들도 왔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연좌제가 있어 부인과 며느리도 당연히 있었을 터인데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방송에서 유배 생활을 보여줄 때 주로 남자만 나왔기 때문이지 싶다.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인 사고를 확립하는지 경계해야 할 일임을 새긴다.이름 석 자도 없는 그녀들이 눈에 밟혔다. 누구의 처, 누구의 첩, 누구의 며느리로 기록된 그들의 삶이 어땠을지 나는 짐작조차 어렵다. 주로 여자는 관노로 일한다고 들었는데 곱게 자라 양반가에 시집을 가서 궂은일 하지 않고 아랫것들 단속하고 부리는 일에 익숙했던 이들이 어떻게 견뎠을까. 관청의 관리나 포졸들, 마을 양반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희롱하거나 인간의 선을 넘었으면 그들은 자신을 포기했을 것이다. 참담한 심정이 오롯이 전해진다.되돌아보는 지난날은 누구나 아쉬움의 연속이다. 그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부질없는 후회와 되새기는 시간은 비애와 고뇌를 번갈아 버무려선 매콤하게 심장을 찔렀다. 다시 되돌린들 상황과 사람과 이념이 서로 아귀를 맞추어 돌아가는데 뾰족한 수가 없을 것이다.인생은 직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요 분기점마다 찍힌 점들이 오르락내리락 곡선을 그리다 바닥을 찍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바닥이 있어 배우는 것들이 있다. 진정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고 자신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삶과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서 딱딱한 잣대가 아니라 알파라는 미지수를 더할 줄 아는 품이 커진다. 걸어오면서 겪은 온갖 감정을 꿰매 우툴두툴한 곡선으로 만들어진 무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가치를 드러내기 마련이다.유배지의 밤은 파랗다. 밤은 사색의 문을 열어두어 사념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달려가고 달려온다. 지푸라기에 불을 붙이듯 작은 꼬투리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입히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고, 과거의 어느 날을 당겨오고 밀어내느라 생각의 방에는 밤새 불이 켜져 있다. 나무들이 모조리 깨어나 방을 둘러싸고 뭇별들이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서 각자의 서사는 덧대어졌다. 그들의 삶에서 유배 생활은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마냥 억울하고 화나는 시간만은 아니었지 싶다. 조용히 사색하면서 학문을 탐구하고 인간사 근본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을 터다. 이 땅의 선비이자 학자의 신분으로 해야 할 일을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햇살이 바다를 건너고 들을 건너와 발밑에 눕는다. 세상이 갖가지 사건들로 떠들썩하더라도 내 중심은 언제나 사람이 먼저이기를. 따스함에 물든다.

2022-12-07

태고의 공원을 만나다

정미영 수필가 포항에 있는 다섯 곳의 국가지질공원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먼저, 천연기념물 모감주나무 군락지가 있는 발산리를 찾았다. 예전부터 모감주나무 열매는 알알이 꿰어 염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나무 앞에서 기도했던 수많은 이들의 절실한 말이 열매 속에 응집되어 있다가 염주가 되는 것이리라.대동배 해변을 따라 걸었다. 땅과 바다의 경계선 중간에 바다계단이 거대하게 존재했다. 해안가에서 육지 쪽을 바라보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계단모양의 해안단구를 명확히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바다계단을 수호하는 독수리 바위와 악어 바위를 찾았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궁궐과 사찰에는 돌계단을 수호하는 사자, 해태, 해치가 있었다. 그들처럼 바다계단을 독수리와 악어가 지키는 것 같아 정겨웠다.구룡소에 도착했다. 용이 살았던 연못은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오늘날에는 해안형 돌개구멍이라고 부른다. 해안형 돌개구멍은 파도를 따라 자갈이 움직이면서 집괴암을 깎아 만든 접시 모양의 구조이며, 이곳에 바닷물이 채워지면서 연못처럼 보인다는 것이다.구룡소 9개의 굴 중에는 5리가량의 깊은 굴이 있다. 파도가 칠 때 굴 입구로 흰 거품과 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마치 용이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는 듯하다. 파도에 의해 육지가 깎여 평평하게 만들어진 파식대지와 타포니 옆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작은 돌탑이 드문드문 보였다. 설령 너울에 휩쓸려간다고 해도 절박한 염원의 편린들은 바다를 떠돌면서 영속성을 유지할 것 같았기에 나도 한 켠에 돌을 포개어 탑을 쌓아보았다.바다에서의 오전 일정을 마치고, 내연산 12폭포에 도착했다. 약 14km에 이르는 계곡을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가진 폭포가 발달한 곳으로 하나의 계곡에 이처럼 여러 개의 폭포가 발달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무풍, 관음, 연산폭포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곳에 웅장하게 발달하고 있으며, 겸재 정선이 그린 ‘내연삼용추도(內延三龍湫圖)’의 배경이 되었다.정선의 그림은 내연산 세 군데 폭포를 그렸다. 맨 위에 연산폭포, 가운데가 관음폭포, 가장 아래는 잠룡폭포다. 선열대 아래 깊은 계곡에 잠겨 있어서 잠룡이다. 공자는 잠룡의 의미를 ‘용의 덕성을 지니면서도 숨어있는 자, 세상을 은둔하고 살아도 마음에 언짢음이 없으며, 옳음을 인정받지 못해도 억울해 함이 없이 확고하게 자신의 의지가 흔들리지 아니 하는 자’라고 했다.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이겨야만 안심이 되는 곳으로 변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은 세상을 떠도는 약한 바람에도 자존감이 뿌리 채 흔들려 휘청대기 일쑤다. 자기 스스로를 격려하는 이가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부터 잠룡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연일읍 달전리 주상절리로 향했다.달전리 주상절리에 도착했다. 육각기둥 척추를 우뚝 세우고 오늘도 산허리에서 중심을 옴팡지게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직한 골격 안에는 포항의 오랜 내력이 담겨 있으리라. 주상절리의 미학은 삶의 여유를 갖게 한다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풍광을 마음속에 옮겨 놓고 걷다 보면 누구나 위대한 대자연의 형상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일상에서 가졌던 날선 방어 기제들이 한결 누그러지고 편안해졌다.마지막 행선지인 두호동 화석산지는 환호공원 해안도로 옆의 이암사면에 분포한다. 고래부터 메타세쿼이아 잎, 게, 소라 등 다양한 육지와 바다 생물화석이 산출되는 곳이다. 화석을 바라본다는 것은 과거를 등에 업고 현재를 인식한다는 것임에랴. 생물학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내 기억의 퇴적층에는 어떤 흔적들이 쌓여 있는지, 자분자분 회상해 보았다.박물관에서 만나는 자연사(自然史)는 깊은 울림을 준다. 그 보다 태고의 신비가 곰비임비 쌓여 있고, 오래된 전설과 설화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국가지질공원을 나만의 보폭으로 걸어보는 것은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나는 오늘 태고의 공원을 만났다.

2022-11-30

소설(小雪)즈음에

배문경 수필가 차창 밖으로 풍경이 지나간다. 단풍을 보려고 창문을 열자 찬바람이 먼저 들어앉는다. 가을인가 했더니 십일월이 벌써 겨울이다. 바람에 내려앉은 낙엽이 차바퀴 바람에 춤을 춘다. 따라나서는 은행잎이며 가로수 잎이 버석하다.김동길은 나이만큼 세월은 가속도가 붙는다고 했던가. 흔하고 흔한 이야기로 모를 사람이 없지만 세월이 내달리는 속도에 현기증이 난다. 하루하루가 활시위를 떠난 화살촉처럼 저 끝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다.그 화살은 계속 날아가지만 불혹을 넘기고서야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진다. 집착과 안달하던 시간이 조금씩 미풍처럼 부드러워진다. 사람도 사랑도 그리움도 한 발씩만 벗어나면 편안해지는 것을 놓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늘 앵앵거렸다. 그 마음이 엉덩이를 깔고 앉으니 그 만큼 편해진다.친구들과 함께 한겨울 대관령을 갔었다. 언덕을 오르자 때 묻은 양떼들이 마른 짚을 먹으려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림에만 보던 양들이었다. 중년의 여자들이 양털이 정말 옷에 사용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얼굴에 와 닿던 찬 기운 때문에 웃음꽃이 피었다.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하는 여고 친구들은 쟁여놓은 이야기보따리로 2박3일이 늘 모자란다. 더 늙기 전에 제주도로 일본이든 중국이든 외국여행을 떠나자며 호들갑을 떨었다.오래전, 한여름 바닷가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밀려오던 파도와 달리고 모래성을 쌓으며 시간을 보내고 와서는 배가 고프다했다. 수다삼매경에 빠져 있다가 아이들을 건사하고 푸른 바다 앞에서 마시던 한 잔의 커피는 어쩌면 힘들게 낳은 아이들로부터 잠시잠깐의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이제는 현관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것을 보면 대견하다. 조바심 내던 시간들이 안정적이고 등두드릴만큼 커줘서 고맙기까지 하다.나이 들고 나이를 먹고 나이가 차는 일이 늘고 지치고 힘들지 만은 않다. 먹고 사는 일로 바쁜 일상을 살다 문인협회 일을 보조하다보니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행사를 한다. 눈부신 햇살 아래 넉넉한 날, 백일장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노고가 절로 녹는다. 뿌듯하고 감사하다. 넉넉해진 마음자리를 느낄 때가 많다.혼자 토함산 등산을 하고 내려왔다. 주말이라 제법 사람들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강장이 붐볐다. 버스를 기다리는 또래의 여자에게 다가가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대구에서 왔단다. 남산 산행 후 토함산을 다시 오르고 내려온 상황이었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것과 또래라는 것에 버스손잡이를 붙잡고 흔들리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쉬 나를 털어놓고 타인의 삶에 공감할 나이란 얼마나 편안한가.소설가 박경리는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했고 노년의 박완서 또한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데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라고 했다.수레가 달려봐야 얼마나 달릴 수 있었을까. 기차가 생기고 나서 인상파 화가가 생겼다는 일설이 있다. 기차가 속도를 내며 달리자 들판의 나무며 꽃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속도감은 낱낱이 상세히 보이던 정밀을 놓치는 대신 커다란 시각적 변화를 가져왔다. 흐리게 그러나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시야와 마음의 부피도 커진 만큼 풍요롭고 편안해질 수 있다. 시야가 넉넉해지는 것이 화풍(畵風)의 변화만은 아닐 것이다. 바삐 내달리는 인생 후반전이 더 많은 것으로 마음을 채우는 일이 된다. 살아온 만큼 쌓아둔 곳간의 곡식처럼 이제 마음의 양식으로 넉넉해지면 좋겠다.따뜻한 겨울 준비로 소설(小雪)에 김장을 챙긴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씻고 물을 빼고 양념에 버무려 통에 담으며 늘 해 오던 일이 주는 감사를 손으로 느낀다. 익어 식탁에 오르는 김치처럼 일상이 잘 버무려져 풍미를 더해갈 일이다. 익어감에 감사하며.

2022-11-23

미술관 나들이

양태순 수필가 허기,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늘 있는 것. 배고픔이야 지난 일이 되었지만 또 다른 허기가 찾아왔다.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고,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가 있다면 비켜 가기 어려운 자질 적인 문제에 목이 마르다. 내 그릇의 크기를 못내 아쉬워하며 자책하는 허허로움이 정신을 파먹는다. 그럴 때면 가슴이 텅 비어있는 듯한 허기를 느낀다.비어 있는 자리를 채우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책을 읽어 무릎을 치는 문장 안에서 위로를 얻는 이도 있고,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 작은 깨우침을 얻기도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덮어서 미뤄둔다. 예술에 소양이 모자라는 나는 그림으로 채워보려 마음 먹었다.미술관 나들이에 나섰다. 마침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 전시회가 있었다. 88 서울 올림픽 기간에 펼쳐진 세계현대미술제의 작품 중 일부가 전시되는 기간이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려 했지만 교육 기간이라 들을 수 없었다. 입구에 눈길을 사로잡는 붉은 새가 보였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을 가르며 날개로 균형을 잡은 채 위도 아래도 아닌 멈추어서 사방을 주시하는 듯했다. 참으로 멋진 새라 여겨 다가가서 제목을 보고는 웃고 말았다. 스위스 작가 피터 크나프의 ‘동풍IVA+동풍IVB’이었다. QR코드로 설명을 들으니 스위스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표현한 것이란다. 역시 내 안목은 수준 미달인 것이 분명했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그저 즐기자는 마음으로 감상을 시작했다.제목 맞추기 게임을 시작했다. 맞추는 게 없었다. 그림에서 인간이 느끼는 어떤 아픔이나 슬픔이 느껴져서 제목이 이런 것을 포함하지 않을까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미술가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신세계는 높기만 했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것이라지만 그림에 녹아 있는 숨결이 따뜻하다와 어둡다 정도가 한계였다. 발길을 멈추게 했던 몇 작품은 사진으로 남겼다.사진을 남기는 이유에 대하여 생각한다.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뭉클한 감동이나 색채가 주는 신비로운 힘이 경이롭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에스앤에스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앨범에 수록되고 나면 먼지와 함께 잠들어버릴 줄 알면서도 진행형인 행동이다. 가는 곳마다 남기는 사진들은 그날의 즐거움과 감동, 동행한 이들과의 사교적인 친목에 힘입어 얼마간은 살아있다. 그리고 바쁜 일상에 밀려 추억의 서랍에서 낡아간다. 그 며칠을 위해 끊임없이 누르는 셔터의 의미가 다일까. 언젠가 뒤돌아보는 날이 많아질 때 이름의 뒤에 따라붙는 내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은 아닐까.미술가가 작품을 남기는 이유는 다를 것이다. 능력이나 재능을 갈고닦은 실력은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표현의 자유에 힘입어 빛을 발한다. 사물을 보는 데 있어서나 사람을 관찰하는 행위를 통해 세상의 온갖 감정이나 감동이 마음속에서 끓어오를 때면 표출해야만 할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을까 싶다. 보이는 대로의 모습이기보다는 생각이라는 회로를 거쳐 작품이 형상화된다. 그 속에는 작가가 의도하는 대로 혼을 쏟아부은 정신적인 부분이 있어 예술적인 가치를 지닌다. 자신을 위한 것이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세계를 향한 눈을 비틀어 주어 정확하게 인지하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추측해본다.미술이란 내게는 늘 어려운 분야다. 그림, 조각, 건축, 공예, 서예 등. 오늘 제목 맞추기 게임에서 하나도 맞추지 못한 실력이니 알만하리라. 그래서 하지 못한 숙제에 걱정이 달라붙듯 전시회 일정을 알아도 선선히 관람하기가 쉽지 않다. 어렵다고 뒤로 미룰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기에 조금씩 다가가려 한다.알지 못하는 분야에 관심을 주는 일은 열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관람하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정보를 모으고 정리하여 내 것으로 만들려면 편리와 빨리 글자를 멀리해야 할 것이다. 묵묵히 눈으로 마음으로 보고 또 보는 것만이 이해의 길로 들어선다고 믿으며 애정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풍경화를 시작으로 한 발짝 내디딘다.무엇인가를 채우는 일은 부푸는 만월이다. 지적인 허기와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과정에서 만나는 깨달음은 빗방울 같은 두드림으로 가슴을 넓혀준다. 만월의 그득함이 내게로 옮겨 앉는 일이다.

2022-11-16

단풍잎 손

정미영 수필가 쌀쌀한 가을비가 쏟아졌다. 한 차례 내린 비로 아파트 화단에 단풍잎이 떨어져 소복이 쌓였다. 비 그친 뒤에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아이들이 단풍잎을 두 손 가득 머리 위로 던지고는 환하게 웃었다. 흩어지는 웃음 방울을 따라 옛 추억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아들이 어렸을 때, 집 근처 해맞이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옆에는 키 큰 은행나무가 빼곡하게 서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에 달라붙던 은행잎, 그 한 잎을 손에 들고 신이 난 아들을 보니 내 기분마저 상쾌했다.멀리 인공폭포 물이 세차게 흘러 내렸다. 쏴아 큰 소리로 울려 퍼지는 물소리를 듣자, 아들은 단숨에 달음박질하여 폭포수 앞에 다다랐다. 거친 숨을 고를 틈 없이 아들이 돌에 엎드려 물속에 손을 담갔다. 손가락에 물을 묻혀 연못가 돌 위에 그림을 그렸다.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을 그려 놓고 ‘엄마 얼굴’이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 얼굴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엄마를 그렸다니 기뻤다.정자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폭포를 뒤로하고 난간에 걸터앉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노래하듯 소리치며 이리저리 뛰어 놀던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참을 찾았는데, 어느 순간 저만치 나무 뒤에서 아들이 활짝 웃으며 나타났다.“엄마, 선물.”불쑥 내민 손에 이름 모를 풀이랑, 단풍잎이랑, 나뭇가지가 한 움큼 들려 있었다. 예쁜 그 손!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아들이 선물한 아기단풍 잎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쫙 펼친 아들의 조그만 손을 닮았다. 갈바람과 뒹굴며 놀았던 탓에 잘 마른 단풍잎은 조금 까칠까칠했다. 문득 내 아이의 손을 만져 보았다. 부드러웠다. 엄마 손의 감촉을 느꼈는지 아이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법 세게 잡으며 ‘엄마’하고 불렀다.그 날 우리는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큰방에서 이불을 개키며 정리하고 있었는데, 아들의 외마디소리가 들렸다.“앗, 뜨거워.”부엌으로 달려가니 아들이 싱크대 앞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었다.“주전자가 뜨겁다는 것 몰랐어? 괜찮아? 큰일 날 뻔했잖아.”“소리가 나서….”엄마의 걱정 반 다그침 반 외침에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고사리 같은 왼손으로 오른 손의 둘째, 셋째 손가락을 가리키며 아프다고 했다.아들의 손을 얼음물에 재빨리 담갔다. 주전자를 짚었던 탓에 발갛게 부풀었던 손가락 끝이 다행히 가라앉았다. 조금 전에 불을 끈 가스레인지 위의 주전자에서 보리를 담은 망이 ‘딸그락딸그락’ 소리를 낸 것이 원인이었다. 과연 호기심 왕성한 네 살이었다. 소리가 궁금해 뜨거운 주전자를 만졌다니….시계를 보니 밤 아홉 시였다. 안아달라고 칭얼대며 품에 안겼다. 저도 놀랐을 터이고, 하루 종일 공원에서 뛰어다니며 논다고 피곤했을 터라, 안자마자 곧바로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눕히고 난 뒤 새삼스레 아들의 손을 만져 보았다. 가슴이 찡했다. 이렇게 작을 수가!아들이 처음 세상에 얼굴을 내밀 때였다. 빛을 만난 순간에 두려워할까 봐, 안심하라고, 건강하게 태어나서 기쁘다고, 태어나자마자 손을 잡고 인사했었다. 그 사랑스럽고 귀엽던 아기 손이 해를 거듭할수록 장난이 심해졌다. 때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궁금증에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끔 미울 때도 있었다.해마다 이맘때쯤이다. 찬바람이 불어와 단풍잎들이 흩날릴 때면 지나온 일들이 떠올라 그립다. 아들이 엄마의 손길을 믿고 잘 자라주었듯이, 앞으로도 나는 아들이 살아가면서 삶의 고비를 겪을 때면 그의 손을 꼭 잡아 줄 것이다. 초록에서 빨강, 노랑으로 곱게 변하는 잎사귀처럼 때론 고맙기도, 때론 밉기도 했던 아들의 손을 기억하며, 나는 지금, 단풍잎 한 잎을 내 손바닥에 올려본다. 가을이 담겨 있다.

2022-11-09

솜사탕과 풍선

배문경 수필가 하늘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있다. 그 아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십여 미터씩 줄지어 서 있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나는 표정이다. 어른들도 옛 생각에 젖어 있다.신라문화제의 일환으로 각 기관이 행사를 진행했다. 경주문인협회에서는 향가 시 낭송대회와 독서삼품과 백일장을 개최했다. 가을이라 여기저기 놀이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보니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할 행사로 성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솜사탕과 풍선아트였다. 무료라는 배너를 설치하고 두 사람이 열심히 솜사탕 부스에서 분홍 설탕, 노랑 설탕, 보라 설탕을 넣고 동그란 솜사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엄마 손을 이끌고 와서는 하나씩 손에 쥐고는 달콤한 세상을 맛본다. 연인들의 표정도 달짝지근하다.하늘은 푸르고 아이들의 싱싱한 웃음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여기저기 장난치며 뛰노는 아이들이 있으니 대회는 사람들로 붐볐다. 긴 풍선에 기계로 바람을 넣자 길게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귀여운 푸들이 되고 해맑은 해바라기가 되었다. 천막 곳곳에 붙어있는 여러 모양의 풍선 모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선물을 받으려고 긴 줄이다.어릴 적 운동회가 생각난다.나는 달리기 선수였다. 파란색 체육복을 입고 만국기가 휘날리는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면 축제 분위기였다. 학교 입구 쪽은 커다란 가마솥에서 벌건 기름기가 도는 육개장이 김을 내며 끓고 있었다. 그 옆에는 낮술에 찌든 동네 아저씨 서넛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만국기가 운동장의 담장과 건물 기둥에 대각선으로 연결되어 펄럭였다. 나는 공책 서너 권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에 들떠 있었다. 단거리 육상과 멀리뛰기 선수였기에 운동회 날은 휘파람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특히 바통을 이어받아 운동장을 반 바퀴 도는 릴레이 경기에서 운동회의 승부가 결정되곤 했다. 지고 있을 때 그것을 승리로 이끄는 사람이 결국 그날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슬아슬하게 상대방을 이기고 바통을 넘겨줄 때 숨은 턱에 차고 응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울렸다. 여자아이들보다는 남자아이들이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 때가 많았다.그때도 운동장 한쪽에는 솜사탕을 만들어 팔던 아저씨가 있었다. 설탕을 한 숟가락 넣으면 빙빙 돌아가던 기계는 거미줄 같은 설탕 줄을 대신 내놓았다. 그러면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나무젓가락 끝에 감기 시작했다. 그러면 하얀 솜사탕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서로 기계 옆에 붙어 서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나 사서 베어 물던 아이는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한쪽을 떼서 입에 넣으며 약을 올렸다.내가 솜사탕을 먹었을 때는 달라붙던 설탕의 눅진함이 입과 손가락에 쩍쩍 붙었다. 설탕의 달달함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다.지나간 시간은 늘 기억에 풍선처럼 부풀려져 있다. 갖가지 색깔의 풍선에는 상상의 바람이 가득했다. 작게 불면 볼품이 없고 크게 아주 크게 불다 보면 제 부피를 넘어서서 ‘펑’하며 터져 조각나 버리던 풍선, 각각의 인생처럼 다양한 색으로 하늘을 수놓듯이 다양한 삶이 인생길을 만든다.부풀어 터질듯했던 유년의 기억 속 편린들이다. 다양한 색의 솜사탕처럼 갖가지 꿈들이 세상에 무지개를 만들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지금의 저 아이들처럼 한껏 아름다운 꿈을 지니고 내달릴 힘들이 넘쳤었다. 달콤하고 향긋한 나이가 있다면 초등학교 때가 아니었을까.그러고 보니 어느 사이 풍선은 힘이 빠져 탄력 없이 손아귀에 쉽게 잡힌다. 솜사탕은 부풀었던 설탕의 꿈들이 녹아 혓바닥과 손가락에서 달짝지근한 맛으로 스며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점차 부피가 줄어드는 것인지 모른다.한때 부풀고 달아올라 뭔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슴 벅차던 시절을 지나오니 이젠 바람이 빠져 말랑하다. 편안한 중년의 오후다.

2022-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