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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눈(目)

등록일 2023-06-21 18:14 게재일 2023-06-2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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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희 수필가
윤명희 수필가

모처럼만에 들린 당숙 댁이다.

골목에 들어서자 지붕 밑에 빨간 불빛이 깜빡거린다. 마당에도 낯선 불빛이 여기저기서 노려보고 있다.

두 노인네가 사는 시골 농가주택에 CCTV를? 요즘은 멀리 있는 자식들이 부모의 상황을 살피려 설치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 댁에 아직은 그런 게 필요할 리가 없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다과상 앞에 앉았던 당숙과 집안 시동생들이 반색을 한다. 종조모의 제사를 핑계로 모였다.

늦게 도착한 나는 싱크대 앞으로 먼저 갔다. 반백이신 당숙모가 제사 준비 다 됐으니 그냥 앉아서 떡이라도 먹으라며 등을 민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며 밖에 왠 CCTV냐고 물었다.

아이고, 말도 마라. 우리 동네에 잡범이 있데이. 비닐하우스 안에 고추 말리는 것도 가져가고, 감 말린다고 걸어 둔 것도 한 줄 없어지고, 연장은 물론이고 뭐가 자꾸 없어지는 거라. 가져가면 한 자루를 가져가지 한 됫박씩, 몇 개씩 없어지는 거 보이 동네 사람 같어. 잃어버리고 남 의심하는 내가 죄인이지 누구를 탓하겠나 싶어서 갈무리를 잘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

제 딴에는 표시 안 나게 하느라고 조금씩 훔쳐가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매일 보고 만지는 건데 그걸 모르겠나. 촌 살림살이가 아파트처럼 자물쇠를 채울 수가 있나 말이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데 뭐라 하겠노. 한 번은 노인정에 가서 들으라는 듯이 우리 동네에 도둑년 있다고 소리를 질러댔지. 그랬더니만 여기저기서 잃어버린 얘기를 하더라고. 우리 집만 그런 게 아이라. 누구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까지 없어졌다고 하는데 기가 막히재.

더 어이가 없는 건 된장 담아 놓은 장 단지까지 손을 대네. 매 해마다 농사지은 콩으로 내 손으로 메주 만들어서 장담아 놨는데 메주 몇 장인지 모르겠나. 장 뜨려고 단지 뚜껑 열어보이 쑥 들어간 기라.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싶어 꺼내보이 딱 2장이 비더라고. 가져간 메주야 어쩌겠나 만서도 손을 깨끗하게 씻고 물기 없이 잘 닦고 건져갔겠나 싶은 게 찝찝해서 장을 못 먹겠더라고.

속이 상해서 친구한테 하소연을 했더만 CCTV 달아라하데. 가짜 달면 안 된다, 누굴 바보로 아나. 빨간 불 봤재? CCTV가 낮에는 가짠지 진짠지 모르는데 밤에 보마 다 안다 아이가. 하나는 장독대 비추고 하나는 비닐하우스, 현관, 마당, 창고 집 구석구석 다 보이라고 달아 놨디라. 밭일 끝내고 들어오면 먼저 누가 왔다 갔는지 확인하는기 일이라. 이상하재 우째 알고 그 다음부터는 한 번도 안 없어지더라고. 심증 가는 그 사람이 한 번은 올 줄 알았거든.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당숙모가 박장대소를 한다.

아이고, 그게 말이다. 도둑을 잡는 게 아이라 나를 잡는다 잡아. 밭에 일하고 오다보마 소변이 급할 때가 있재. 요실금기도 있는데 언제 장화 벗고 수돗가에서 발 씻고 잠가 놓은 현관문 열고 화장실까지 가노 말이다. 마당에 호미 던져놓고 퍼뜩 저기 텃밭 옆에 궁디 까고 앉았재. 오줌 누다 돌아보이 저 눈이 내를 보고 있는 기라. 엄머야 싶어 엉거주춤 바지 끌어올리고 일어서기는 했는데 어디로 가야 될지를 모르겠더라. 아무리 돌아봐도 숨을 데라고는 현관문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더라고. 뻘건 눈이 내를 따라 들어오는 것 같아 얼른 문을 닫았지. 그 다음부터는 우리 집 마당이 자유롭지가 않네.

사촌동서가 CCTV 확인은 아재와 아지매가 하는데 뭔 상관이냐고 물었다.

그게 두 아들 휴대폰에 연결되어 있으이 문제 아이라. 우리가 몇 시에 밭에 나가서 언제 집에 오는지 다 보고 있다는 걸 아는데.

우리는 육촌시동생들의 옆구리를 찌르며 엄마 궁디 봤냐고 개구지게 물었다. 확인을 매일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당숙모의 작은 아들이 폰을 귀에 대고 바깥으로 나가고, 큰 아들은 TV 볼륨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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