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경수필가 툭, 겨울을 뚫고 매화가 가지에 꽃잎을 열었다. 제주도부터 꽃소식을 들고 달려오는 봄바람의 발걸음 소리가 분분하다. 꽃소식에 점심시간에 황성공원을 걷다가 칼바람에 겉옷을 목까지 당겨 잰걸음으로 돌아왔다. 겨울 끝이라고 방심한 탓이다. 입춘이라고 봄에 들어서려다 문지방에서 넘어질 뻔했다. 겨울은 조금 더 기다리라고 아직 방을 뺄 생각이 없다.나는 매화를 좋아한다. 유유상종이라고 얼마 전 매화만 그리는 친구의 전시회에 갔었다. 매화 가지가 작은 종지에 꽃물이라도 떨어뜨릴 듯이 어사화처럼 둥글게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바탕색이 파랑일 때와 붉을 때 매화의 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림을 그린 친구도 한복을 곱게 여밀 때와 원피스로 정장을 차려입었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달라 화들짝 나를 놀라게 한 적이 있다.파란 바탕의 매화를 보니 고흐의 ‘아몬드 꽃이 피는 나무’가 오버랩 된다. 일본 에도시대 서민층 사이에 유행하던 목판화 우키요에가 도자기를 감싸고 바다를 건너 고흐에게까지 당도했다. 새로운 화풍에 놀란 화가들이 앞 다투어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고흐는 자신의 그림 곳곳에 일본을 담았다. 고흐의 ‘꽃피는 매화나무’는 히로시게의 ‘가메이도 매화정원’을 유화로 모사한 작품으로 용이 누워 있는 것과 같은 판화인데 고흐가 유화로 모사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일본 땅에서 피어난 매화가 바다 건너 저 멀리에서 다시 피어난 것 같다.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 김홍도는 매화를 무척 사랑했다. 하루는 매화나무를 팔 사람이 왔지만, 김홍도는 살 형편이 아니었다. 때마침 그림의뢰를 하는 사람이 사례비로 3천냥을 주자, 김홍도는 2천냥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함께 술을 마셨다. 그 술자리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했다. 남은 200냥으로 겨우 쌀과 나무를 들였다고 하니 단원의 고결한 성품과 의연함을 느낀다.매화만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꽃이 있을까.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는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 한다. 중국 양쯔강 이남 지역에서는 매화를 음력 2월에 볼 수 있기에 매화를 볼 수 있는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부른다. 가족들과 즐겨 치는 화투의 두 번째가 2월 매화인 것이 우연은 아닌 듯하다.대학 다닐 때 차편이 불편했던 나는 정원에 매화가 구름처럼 피어나던 친구 집에서 얹혀살다시피 했다. 아침이면 한 상 차린 밥상에 허겁지겁 내가 밥숟가락을 옮기면 친구는 늘 서너 숟가락 뜨고는 가자고 재촉했다. 어머니는 늘 좀 더 먹으라며 친구에게 애원하다시피 했지만 깨작거리곤 했다. “야야, 더 먹어라, 이렇게 잘 먹으니 얼마나 좋아”라며 잘 먹는 나의 식성을 칭찬하셨다. 열여덟의 허기지던 나는 어느새 쉰 고개를 넘은 지 오래다. 그 사이 친구 어머니는 치매로 인해 자녀들의 보살핌을 받는 형편이다.어떤 이는 치매의 한자를 어리석다는 뜻의 ‘치매(癡呆)’가 아닌 ‘치매(致梅·매화에 이르는 길)’라고 한다. 치매(致梅)는 무념무상의 세계에 이른다는 뜻으로, 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라고 낭만적으로 표현한다. “누구세요”라는 어머니의 말이 엄마 손 잡고 놀러 나갔다가 길을 잃은 아이의 떨리는 목소리 같다. 울컥 눈물이 나다가도 자신의 병을 안다면 더 고통스러울 터인데,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에 치매를 감당해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이야말로 절망적이다. 다만 치매(癡呆)일지라도 치매(致梅)로 가는 길이라고 서로의 등을 어루만지며 한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저 어머니 머리에 환하게 피어나는 매화야말로 자식들의 세상을 밝히고자하는 매화등은 아닐까.봄으로 들어선다는 입춘과 동면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 사이에 있는 우수(雨水)를 지나도 겨울은 물러날 기색도 없이 영하의 날씨를 고집한다. 하지만 제주도를 출발한 꽃소식이 통도사 홍매화를 피워 올렸다. 이제 갓 어린아이 새끼손톱만 한 발긋한 꽃망울이 가지를 뚫고 올라온 것이 보인다. 추위 속에서도 매화가 꽃문을 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대견하다. 그래도 봄은 곧 올 터이니 나는 매화 향에 그윽이 잠겨 볼 참이다.
2022-03-02
백후자수필가 같은 길인데 다른 길 같다. 몇 년 전 여름에 찾았을 때랑 사뭇 달라 보인다. 계절이 다르니 그럴 만도 하겠지. 그때는 지나쳤던 저수지 앞에 멈춰 선다. 파리한 물결이 매섭게 맞이한다. 물결 안은 바람이 주머니 속까지 들어와 헤집고 설친다. 오늘은 무언가가 마음을 헤집을 듯하다.영지사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당시 이름은 웅정암이었다.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선조 36년에 다시 중창하면서 영지사로 개명했다. 영조 50년에 중수가 이루어졌고, 1992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대웅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0호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진 팔작지붕 건물이다.고찰인데도 불구하고 대웅전 단청의 빛깔이 바래지 않고 화려하다. 해체 복원 작업을 하면서 새로 색을 입힌 흔적이 역력하다. 고찰에 들어서면 오래된 빛깔이 주는 느낌이 참 좋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모아지면서 차분해진다. 고색창연한 느낌을 잃어버린 것 같아 많이 아쉽다.영지사 대웅전에는 다른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천장 들보의 반야용선대에 악착같이 매달린 악착동자다. 청룡과 황룡이 이끄는 용선대에 열 한 개의 종이 나란히 줄지어 있고, 그 중간쯤에 악착동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반긴다.악착은 ‘작은 이 악(齷)’과 ‘이 마주 붙을 착(齪)’이 합쳐진 말이다. 어떤 일에 기를 쓰고 덤벼들거나 끈기 있고 모질게 달려들어 해낸다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악착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부처님 경전에는 전해지는 바가 없지만 명나라 운서 주굉 스님이 편찬한 ‘왕생집’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명나라 경도에 유통지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평생 염불에 온 정성을 쏟았다. 쉰 두 살의 나이에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는 더욱 간절히 염불하였다. 그때 이웃에 살던 이백제라는 사람이 먼저 죽고 유통지도 죽었다. 그런데 아침에 숨이 멎었던 유통지가 정오 무렵에 다시 소생하여 가족들에게 말하였다.“정토로 가는 배를 탔소. 그 배에는 나를 포함하여 서른여섯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소. 이백제도 그 배에 타고 있더군. 그러니 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오.”어안이 벙벙한 가족들을 보며 유통지는 말을 이었다.“너무 서둘러 가다보니 옷이 이 모양이고 염주도 잊었지 뭐요. 내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염주도 챙겨야 하니 좀 도와주구려. 배를 타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소.”가족들은 서둘러 유통지의 옷을 갈아입히고 목에 염주를 걸어 주었다. 잠시 후 유통지는 배로 돌아갔다.이 이야기를 모태(母胎)로 여러 가지 설(說)이 돌고 있는 듯하다. 중요한 것은 악착같이 수행정진하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데 초점을 둔다. 뜻하는 일에 악착같이 매달리면 이루지 못할 바가 없다는 의미다. 줄을 타고 용선에 매달린 악착동자를 가만히 올려다본다. 비록 외줄에 매달렸지만 평온해 보인다.조용히 눈을 감는다. 악착같이 살았던 때가 있었던가를 더듬는다. 그동안 크게 이루어놓은 건 없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나날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건 인정하련다. 인간의 욕심이라는 게 한이 없고, 그 욕심 안에서는 만족이라는 단어가 꼭꼭 숨겨진 채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갖고 싶고 둘을 얻으면 셋을 노리는 게 욕심이다. 이젠 내려놓는 연습도 필요해 보인다.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면 평생 줄에 매달린 듯 불안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자신의 삶을 함부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나름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 하고자 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온 힘을 쏟는다. 또한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잡은 줄을 놓지 않는다. 때로는 줄이 끊어져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때도 있겠지. 그래도 악착같이 일어나 매달리는 것이 삶이다.악착같이 산다는 것,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이다.
2022-02-23
정미영 수필가 “소못 소랑햄수다.”제주도 동백나무 수목원인 카멜리아힐에서 장식용 족자에 쓰인 문구를 본다. 정말 사랑합니다, 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란다. 나는 곧장 동백나무 꽃말을 떠올려본다.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역시 필연성 높은 소품이군! 수목원 관리자가 숨겨 놓은 퀴즈문제를 나 혼자 맞힌 것처럼 값싼 자기도취에 빠져 나무 사이를 걷는 내내 뿌듯해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꽃향기를 따라 친구의 애틋했던 첫사랑이 떠올라 내 마음이 어지럽다.친구는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스쳐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들뜨는 대학 새내기,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상대는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어 사랑은 사치라고 했다. 그래도 친구는 멈추지 않고 가슴앓이를 했다. 슬픈 시만 골라 읽고 가슴 먹먹해지는 노래만 들었다. 떨어지는 꽃잎에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사랑을 떠올렸다.어느 날, 가느다란 손가락을 잘근 씹으며 선운사 동백꽃을 봐야겠다고 했다. 발끝을 내려다보는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무릎을 세우고는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었다. 친구의 작은 몸집 어디에 그토록 많은 눈물이 숨어 있었는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이 큰 눈물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시나브로 잊히는 듯했다. 동백꽃이 질 때쯤, 친구는 다시 선운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저러다 자그만 몸이 형체도 없이 삭아 내릴 것만 같아 지켜보는 내가 조바심이 났다. 어쩌면 선운사에 가서 동백꽃을 실컷 보고 가슴 가득 채우고 나면 힘든 사랑을 완벽하게 잊어버리지 않을까.우리는 기어이 고창 선운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 안에서 우리 둘은 침묵했다.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오히려 힘들게 할 것 같아 어색해도 참았다. 그 대신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송창식의 ‘선운사’ 노래에 몰입했다.‘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가던 길에 갑자기 비가 흩뿌렸다. 내리는 빗소리가 내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꽃이 또 떨어지겠구나, 괜스레 안타까웠다. 맑은 날 붉게 벙근 꽃봉오리를 보는 것이 훨씬 좋을 텐데. 노랫말처럼 바람 불어 설운 것보다 비가 와서 더 설운 날이 되면 어쩌나 애가 탔다. 내 마음을 모르는 비바람이 속을 휘휘 젓고 다녔다.다행히 도착할 즈음 비가 그쳤다. 멋스러운 선운산의 풍경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선운사 입구에서 절 뒤쪽 산자락에 빽빽이 들어선 삼천 그루의 동백나무 속에 친구가 부디 아픈 사랑을 묻을 수 있기를 바랐다.친구는 꽃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해 찾아왔지만 막상 보려니 두렵단다. 한 자락 남아 있던 그리움이 낱낱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질까 무섭다고 했다. 친구의 몸 속 깊은 곳에 고여 있던 그리움이 흔들리고 있었다.나뭇가지에서 막 떨어지는 꽃송이가 있었다. 꽃의 추락이었다.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지 않고, 꽃봉오리째 툭 떨어져서 슬프게 느껴졌다. 내 눈에는 꽃이 질 때가 되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가장 화려할 때 떨어지는 것 같아 더욱 애절해 보였다.친구의 사랑도 왠지 동백꽃을 닮은 듯했다.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식어간 첫사랑이었다. 그녀의 나이 스물, 빛나게 푸르러야 할 사랑이 금세 이울고 있었다.동백꽃 화가로 유명한 강종열 화백의 그림 속을 노닐 듯 까멜리아힐을 걷다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꽃잎에 고개를 든다. 꽃자리를 손끝으로 매만지면서 문득 생각해 본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듯, 기쁜 사랑이나 아픈 사랑을 경험한 후에 내적 성장을 이루는 것이 우리네 인생사라는 것을. 그러니 친구든, 가족이든,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겠다. 소.못.소.랑.햄.수.다.
2022-02-16
배문경수필가 찬바람이 불어도 할 일은 지천이고 하고야 마는 성질에 새벽은 늘 분주하다. 알람이 어김없이 머리맡에서 시끄럽게 들려오면 죽은 듯이 누웠던 나무토막 같은 몸이 습관으로 일어난다. 아! 살아있구나.
2022-02-09
양태순수필가 울진 매화리에 갔다. 만화 원작을 그린 벽화가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다. 골목길을 걷다 보니 추억이 돋는 그림이 많다. 만화가 이현세가 직접 그렸다는 벽화 앞에서 천천히 읽으며 걸음을 옮겼다. 나는 이 만화를 고등학생 때 읽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만 기억날 뿐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으면서 엄지는 왜 오혜성보다 마동탁을 더 좋아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나를 위해 야구 경기에서 져달라는 엄지의 부탁 앞에서 기가 막혔다. 혜성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되어 가슴이 쩌정 울렸다. 그때도 지금도 엄지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가정은 만약을 포함한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라면, 만약에 그렇다면을 생활에서 사용할 때가 있다. 이런 말은 대개 어떤 대처 방법을 묻는 뒷말이 따라붙는다. 듣는 상대방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게 된다.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가사로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영화가 있었다.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로 만든 것이었다. 영화 개봉과 동시에 주제가는 온통 거리를 점령했다. 커피숍과 백화점을 비롯하여 젊은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있었다. 데이트하는 연인 사이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기뻐하는 일이면 다 해줄 거야? 이런 질문으로 연인을 시험에 들게 하여 답이 마음에 안 들어 다투기도 했다. 친구는 이 노래를 좋아했고 우리는 손잡고 다니며 흥얼거리기도 했다. 내 젊은 시절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만화였다.나는 학생 때 만화가게에 자주 갔다. 안타나 홈런처럼 깔끔한 직설화법에 매력을 느꼈다. 시리즈로 빌리면 다섯 권에서 열 권이 넘는 것도 있었다. 용돈 대부분을 거기서 썼다. 밤새 읽느라 눈동자가 뻑뻑했다. 주제는 주로 축구, 야구, 복싱 등 스포츠 경기에서 갖은 고난을 이겨내고 선수로서 성공하는 스토리였다. 결론은 뻔했지만 만화책을 놓을 수 없었다. 소설처럼 문장이 화려하거나 사건을 베베 꼬지 않는 단순 명쾌함이 좋았다.나는 지금도 해피앤딩을 좋아한다. 드라마에서 고생 끝에 성공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살게 되었다는 결말에 웃음이 난다.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고 시청자의 상상에 맡기는 열린 결말을 만나면 짜증이 난다. 현실이 갑갑한데 드라마라도 행복하면 엔도르핀 충전으로 다운되었던 기분이 업되고 피곤한 뇌도 쉴 수 있으면 일석이조라고 생각한다.매화리에서 나에게 물어본다. 상대방을 위해 뭐든지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외인구단 오혜성은 시합에 져주기 위해 일부러 야구공에 눈을 맞기도 했다. 내 몸을 다치거나 꿈을 버리면서까지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내것을 아무것도 잃지 않는 선에서 타협할 확률이 높다. 아마 신체나 정신 둘다를 포기하지 않는 가정하에서 최선이란 이름을 붙일 것이다.나는 아직도 둘을 주고 하나를 얻는데 익숙하지 않다. 반값에 물건 사는 것은 좋아하지만 마음 계산법은 다르다. 목도리를 선물하면 장갑을 받고 싶고 밥을 샀으면 커피는 얻어먹고 싶다. 늘 받기만 하는 것은 미안해서 거리가 멀어지고 늘 주기만 하는 것은 쪼잔해서 불만이 쌓일 것 같다. 서로 간의 마음이 오고가야지 일방통행은 찜찜하고 눈치가 보여서 싫다. 마음을 쌓는데는 똑 부러지는 계산 말고 넉넉한 어림이 좋지 싶다.요즘은 언택트 시대다. 마주 앉아 밥 한번 먹기도 어렵다. 이 시기만 지나면 얼굴 보자는 인사를 한 지 2년이다. 그 사이 연락처에 오른 인물들 대부분과 마음의 거리가 늘어났다. 가족과 친구 몇 명만이 전화와 잠깐의 만남을 이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주파수 반경을 벗어났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과 나누는 정을 대신하는 것은 없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연결선 선로를 보수해야겠다.곧 봄이 오고 매화가 필 것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홀로 고군분투하여 만개한 매화는 늘 반갑고 어여쁘다. 힘들여 꽃을 피워 대가 없이 향기를 멀리까지 나누어 준다. 참 대견하다. 이번 봄에는 마음 계산법을 내려놓고 줘도 줘도 더 주고 싶은 일방통행 사랑법을 실천하리라. 두루 봄소식을 전하는 전화기에서 단내가 나고 웃음이 넘쳤으면 한다. 매화나무가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2022-02-02
백후자수필가 골짜기를 돌아든다. 산이 산을 겹쳐 안았다. 활엽수가 침엽수를 안고 침엽수가 등성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았다. 안고 안긴 풍경을 안고 안동 봉황사로 들어선다. 봉과 황이 조화를 이룬 봉황이 살고 있으려나. 용마루 위로 한 쌍의 봉황이 날아오를 것만 같다. 봉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13년에 창건되었다. 누가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 관음전, 만월대, 범종각, 만세루, 천왕문 등 여러 전각과 딸린 암자까지 갖춘 규모가 꽤 큰 사찰이었다. 하지만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 극락전, 남덕루, 요사채, 산신각이 있다. 봉황사는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 17세기 말경엔 대웅전만 다시 중건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당당한 격식을 간직한 조선 후기의 불전으로 보물 제2068호로 지정되었다. 천장의 우물반자에 그려진 오래된 단청과 빗반자의 봉황 그림이 고찰의 품위를 더해준다. 대개 사찰의 대웅전 법당 안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봉황사는 봉황 그림만 보인다. 구석구석을 살펴도 온통 봉황이다. 여러 사찰을 다녀 보았지만 봉황만 그려진 사찰은 처음이다. 봉황사에는 대웅전 단청에 유래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사찰을 창건할 당시였다. 단청을 할 화공이 왔다. 외모가 수려하고 품격이 남달라보였다. 그는 주지스님을 찾아 고아(高雅)한 모습으로 고개 숙여 청했다.“스님,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무엇인지 말씀해 보십시오.”“대웅전 단청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어찌 그러시는지요?”“신성한 기운이 빠져나갈까 염려하는 마음입니다.”주지스님은 화공의 청을 받아들여 그곳에 기거하는 모든 스님과 보살에게 당부했다.“대웅전 단청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들여다봐서는 안 됩니다. 혹여나 산사를 찾는 이가 있을 경우에도 꼭 그리하여야 합니다.”주지스님의 당부가 있었지만 스님들은 그곳을 지날 때면 궁금증을 누를 수 없었다. 문살에 바싹 귀를 들이대고 안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안에선 고요를 감싸 안은 붓질 소리만 공기를 타고 흘렀다. 붓질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하마터면 문을 열뻔한 일도 종종 생겼다. 어느 날엔 문틈을 비집고 보려다가 주지스님께 불려가 꾸중을 듣기도 했다.“자그마한 호기심이 큰 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호기심을 다스리는 것 또한 수양입니다. 그것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어찌 도량을 닦는다 할 수 있겠소.”이후 스님들은 마음을 닦으며 야릇한 호기심을 눌렀다.며칠에 걸쳐 단청을 그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화공을 못 보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공양간에서 일하는 보살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중얼댔다.“화공은 밥도 먹지 않고 일을 하나.”공양간 보살은 괜한 선심이 발동했다. 주섬주섬 먹을 것을 챙겨 대웅전으로 향했다. 주지스님의 당부 말씀은 새까맣게 잊고 보살은 대웅전 문을 빼꼼히 열었다.“화공님….” 어찌된 일인가. 열심히 단청을 칠하던 화공이 봉황이 되어 훨훨 날아가 버렸다. 법당 앞쪽은 단청을 다 그렸지만 뒤쪽은 아직 미완이었다.인간의 심리가 얄궂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다. 전해 온 이야기 가운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인간의 얄궂은 호기심으로 인해 대부분 일을 그르치고 만다. 단청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아서 잘 마무리 되었다면 어떤 이야기가 전해왔을지 궁금하다. 화공은 봉황이었을까. 단청을 끝냈다면 봉황이었던 화공이 사람이 되었을까. 전설 속으로 들어가 알아보고 싶다.봉황사 경내를 둘러보는데 보살님이 부른다. 점심공양하고 가라고 몇 번을 이른다. 때마침 출출한 차에 공양간으로 들어가 맛있게 비빈 비빔밥 한 그릇 비웠다. 주지스님이 상을 물리며 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데 봉지 하나를 쥐어준다. 몇 쪽의 떡이 들어있다. ‘아, 이것이 봉황사의 인심이었구나.’오래전 단청 화공을 부른 공양간 보살님의 마음이 보인다.
2022-01-26
정미영 수필가 아르떼뮤지엄에서 거장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로 만났다. 명화를 담은 빛의 정원에서는 르네상스부터 상징주의까지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만날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 모네, 피카소, 클림트 등의 작품들이 벽면 가득 펼쳐질 때마다 내 몸의 세포 인자들은 감동으로 소용돌이쳤다.설렘의 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사진을 찍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그림이 천장까지 펼쳐질 때에는 사이프러스나무 옆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다. 여행의 흔적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았다.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보았다. 고흐의 그림들을 살펴보는데 문득 전시관에서 만나지 못했던 화가의 다른 작품이 떠올랐다. ‘감자 먹는 사람들’이 연상되면서, 자연스레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썼던 편지도 생각났다. 고흐는 동생의 생일에 맞추어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내고 싶었지만,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말을 서두로 자신의 예술관을 적었다.“나 또한 물질적 어려움에 주춤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에 무너져 파묻혀 있을 수는 없을 거야.”나는 이 문장에서 목울대가 울컥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고흐는 살면서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직면했을 텐데도, 가난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고흐는 위대했다.산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 흔들리며 사는 것임에랴. 깃발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깃발이라 할 수 없고, 나무도 바람에 흔들려야 땅을 움켜잡고 안정적으로 뿌리내린다고 했다. 우리네 삶도 무수히 환경에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 그러니 인생을 ‘나답게’ 살기 위해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한두 개쯤 가지고 있어도 좋을 성싶다. 고흐의 예술적 신념이나 학생들의 공부 루틴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들로 개인의 내면은 단단하게 여물고 성장하리라.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초등학생들의 방학이 시작되면 특강 준비로 분주해진다. 우리 아이들이 방학동안 보람되게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강의를 기획하는 것이다. 특강은 차시별로 관련 책을 읽고 주제와 연계한 다양한 글쓰기 독후활동 및 북아트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의 창의력을 키워주고 다양한 영역으로 사고력을 확장시켜 준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다.그런 의미로 도서관 운영 원칙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2020년 여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방역 조치로 대면 수업으로 진행되던 강좌들이 열리지 못할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도서관 관계자들은 집에서도 안전하고 즐거운 독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비대면 강의를 제공했다. 그로 인해 오랫동안 도서관에서 강의를 해오던 내 삶의 조각들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온라인 쌍방향 수업을 할 때였다. 학생들은 어색함도 없이 눈빛을 반짝이며 수업에 집중했다. 그 때 나는 심훈 소설 ‘상록수’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일제의 압박으로 학생 인원을 줄여야 했던 영신의 안타까움과 배우고 싶어도 쫓겨나야 했던 학생들의 서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장면이었다. ‘누구든지 학교에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에 매달려서도 배우고자 했던 아이들의 얼굴과 코로나19로 외출이 힘들지만 비대면 도서관 수업에 열의를 다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고마웠다. 지금도 그 때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주인공 영신처럼 콧마루가 시큰해진다.2022년 1월, 올해도 도서관의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린이들이 인문학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매개체가 되고 싶다는 내 꿈도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었다. 독서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책을 통해 다양한 간접 경험을 쌓으며 세상과 소통했으면 좋겠다. 그 따뜻한 여정 속에서 학생들이 흔들리지 않고 꿈과 희망을 노래하기를 나는 소망해 본다.
2022-01-19
오전 내내 시끄러웠다. 아래층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망치를 치고 두드리는 뭇소리까지 들려왔다. 공사를 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현장을 보러 갔다. 유리 슬라이딩 문 안에서는 벽면의 타일을 깨고 이젠 쓸모없어진 장식물을 부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바닥엔 자재가 뒹굴고 꽉 닫힌 공간으로는 먼지가 빠져나가지 못해 뿌옇게 고여 있었다.안쪽을 들여다보자 나이든 늙수그레한 인부 한 사람과 러시아계의 노동자 두 사람이 제대로 마스크도 하지 않고 등산용 스카프로 대충 입을 가린 채 먼지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입구에 작업을 지시하는 사장님을 잠시 불러내서 “마스크라도 좀 드릴까요?”라고 의견을 제시하자 “저들도 숨쉬기 힘든데 일이 빨리 진척이 없어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가변 벽 너머 창문이 있으니 일부를 부수면 먼지가 빠져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옆방으로 가서 밖으로 난 창문을 힘껏 열어 젖혀두었다.오전 근무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다시 가서 보니 먼지는 좀 가라앉고 가변 벽이 부서져 뼈대만 남은 채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작업하던 인부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부서진 벽의 잔해 등을 실어 나르고 식사를 하러 간 모양이었다. 카페가 있던 자리도 이용의 목적이 달라지니 남김없이 벽면과 장식이 부서지고 사라진 상태였다.올여름 시 낭송을 야외에서 한다며 간 원성왕의 무덤인 괘릉이 생각난다. 작은 연못이 있던 자리를 돌로 메워 그 위에 묘를 만들었는데 물이 자꾸 배여 나와 왕의 시신을 땅에 놓아둘 수 없어 허공에 매달아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래서 걸 괘(掛)자를 써서 괘릉이라고 부른다는 설화이다. 그 능 앞의 무인상과 문인상은 정교한 조각이 훌륭해 여러 예술작품에도 제법 인용이 되곤 한다.그 무인상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곱슬한 머리를 보아 신라와 활발하게 무역을 하던 때 흘러들어온 페르시아 사람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한다. 손에 든 긴 칼을 보면 신라왕의 호위무사를 하겠노라 달려온 용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인상의 뒷모습을 보니 주머니를 차고 있다. 이국땅에 가서 돈을 벌어 오겠노라 고향을 떠나온 상인이었을까를 상상해본다. 그들이 아마도 안강읍에 위치하는 흥덕왕릉의 호위무사로도 간 모양이다. 신라인에 비해 덩치가 크고 단호하면서 부리부리한 눈매가 신뢰를 주었을 것으로 짐작해본다. 그들이 보디가드를 했다면 왕도 훨씬 편하게 눈을 감고 이승을 떠나지 않았을까. 저승에 간 후까지 왕을 호위하는 무사로 곁에 두고 싶었던 모양이다.그러고 보니 1960년대에 서독으로 갔던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광부와 간호조무사들이 그 험한 곳에서 살아남아 당시 대통령을 만나 눈물 흘리던 모습은 늘 마음의 한구석을 무겁게 만든다. 시체를 알코올로 닦거나 병원에서 모두가 외면하던 가장 더럽고 힘든 일을 해야 했던 이들과 컴컴한 탄광 속에서 이빨만 하얗게 드러내고 웃던 이들. 탄광의 저주인 진폐증에서 그들도 자유롭지 못했다. 배문경수필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사람들은 살아 숨 쉬고 있다. 영하의 날씨에도 새벽 노동은 이루어지고 한여름 폭염에도 공사는 진행될지니, 우리의 삶이 영속적이듯이 노동의 하루도 그렇게 이어진다. 새벽 어두컴컴한 도로의 길섶에 버스가 선다. 그곳에서 벗어난 외국인노동자들이 어둠과 함께 걷는다. 그들만의 언어로 피곤한 밤을 견딘 동료들과 대화가 깊다. 이제 따뜻한 잠자리에서 편안한 아침을 맞길 바라는 마음으로 옆을 스친다.카페가 사라진 자리로 종합 검진실이 자리 잡을 것이다. 새롭고 환한 의료 환경이 제공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들뜨기도 한다. 바닥은 무엇으로 채워질지 광고 간판은 어떤 걸 사용할지 얼마 후 이전 개업하게 될 새로운 공간이 먼 곳에서 달려온 낯선 사람의 손에 의해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삶도 두 손이 만들어낸 하나의 생(生)이란 건축물이다. 한 사람의 건축물이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며 인간의 역사가 된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위해 잠시 무인상을 닮은 노동자들의 안녕을 마음으로 빌어본다.
2022-01-12
양태순수필가 겨울 밤하늘은 시푸르다. 파랑물을 잔뜩 머금은 무명처럼 시린 차가움으로 깊이를 더한다.툭 건드리면 물방울이 아니라 은가루가 좌르르 쏟아질 것만 같다. 피터 팬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날아가는 웬디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자꾸 하늘을 더듬는다. 그럴 때면 내 머리에 숨어있던 기억들이 말랑말랑 파랗게 살아난다.달이 나를 따라다닌 적이 있다. 친구 선이집을 찾아가는 길이나 배꼽마당에 숨바꼭질 할 때, 뒷간에 볼일 보러 갈 때면 나를 따라왔다. 떡하니 나서서 내가 너를 지켜준다는 자랑이 아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은근하게 동무해준다. 든든하게 지켜주니 밤마실이 무섭지 않아 자주 친구집을 찾고는 하였다.섣달 보름날 달빛의 촉감은 벨벳 같았다. 절기상 엄청 추울 때인데 구름의 두께가 두꺼워진 푸근함이 있었다. 둥두렷이 떠오른 달의 주위에 오리온자리, 황소자리를 비롯한 별자리가 선명했다. 마치 땅으로 내려올 것처럼 가까웠다. 손을 뻗으면 공기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그 달빛이 가장 장관을 이룬 곳은 장독대였다. 마당 귀퉁이 장독대에 다다른 달빛은 교교했다. 둘레를 감싼 보송한 빛에 의해 검은 항아리는 은가루가 묻은 듯 은빛이 돌았다. 어머니께서 떠놓은 정화수에 별들이 내려왔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바람조차 살곰 지나다녔다. 그 무엇도 깨뜨릴 수 없는 신성함이 깃든 장소였다.나는 거미줄에 낚일 곤충을 기다리는 거미처럼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너무 신비스러워 숨이 막혔던 풍경은 감동이었다. 그후 고요하다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그밤의 장면이 재생되고 재생된다.그날부터 달은 그저 달이 아니었다. 뭔가 내가 모르는 비밀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아득히 먼 조상들부터 정화수를 떠 놓고 기원하던 의식이 단순히 무속적인 행위만은 아닐 거라고. 과학의 진실과는 별개로 작용했다. 성년이 되어 하늘 보는 날이 거의 없었지만 어쩌다 달빛이 창으로 스미는 날이면 두근거리며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밤 이후로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며칠 전 바닷가를 걷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한 곳에서 은빛 군무가 벌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밤바다는 검게 누워서 가는 코골이를 하듯 가릉거리는데 등대 주위에서 날비늘 같은 것이 파닥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물결에 음표를 걸어두고 엷은 날개를 파르르 흔드는 빛무리였다. 넋을 놓고 보았다. 심장 소리가 들릴까 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조각조각 나뉘어 희게 반짝이는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하늘에는 분명 달이 있었다.수십 년이 지난 섣달 보름이 다시 소환되었다. 그밤이 고요의 대명사라면 이밤은 바다에 생을 펼친 이들에게 축원을 바라는 신성한 춤사위였다. 욕심을 닦아낸 각자의 원을 조각에 담아 하늘로 올리는 숭고한 기원제 같았다.긴 세월 달은 하늘에 있었다. 믿지 못할 전설이 이어져 왔고 별자리에 얽힌 영웅들의 이야기도 전해 왔다. 그 모두가 이야기로만 끝난다면 우리의 가슴에는 물기가 마르고 심장은 딱딱해지지 않을까.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세계와 과학이 풀지 못하는 상상의 공간이 있으므로 인간은 보다 겸손해지리라 생각해본다.나는 두 번의 신비한 경험을 했다. 이제 달하면 달나라에 가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신성한 무엇으로 기억되는 달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무엇을 담아 달을 보는지에 따라 그 형태는 무수히 변할 것이다. 때로는 신령함이나 엄마를 대신할 포근함이 될 것이나 더러는 무시무시한 심판관으로 다가올 것이다.가슴에 새겨본다. 달이 조각으로 나뉘어 쏟아져도 빛의 형태가 변하지 않듯 마음이 조각으로 나뉘어 여럿에게 가더라도 마음은 줄어들지 않고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내게는 아직 감염되지 않은 싱싱한 마음이 있다. 아까워하지 말고 두루두루 나눠줘야겠다.
2022-01-05
정미영수필가 바람비가 세차게 내리는 겨울 아침이다. 길거리는 무채색으로 덮이고, 바람은 거센 파도처럼 휘몰아쳐 건물 사이를 돌아다닌다. 문득 임인년 새해, 라는 낱말을 떠올리자 호미곶에 가고 싶었다.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고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호랑이 꼬리는 국운상승과 국태민안을 상징한다고 하니, 좋은 기운을 받고 싶어 작정하고 호미곶으로 향한다.
2021-12-29
배문경수필가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서경주역을 지나 경주역(慶州驛)에 닿을 때까지 강을 건너고 너른 들을 지나쳤다. 강물에 기차여행의 행복감이 투영돼 물결도 덩달아 함께 달렸다. 철로 옆에서 달리는 소리를 오래도록 듣고 섰던 금장대도 경주역사가 사라진다 하니 무겁게 가라앉은 모습이다. 버선코처럼 하늘을 향해 날 듯이 뻗은 경주역의 기와지붕이 한겨울 추위에 더 파리해 보인다.
2021-12-22
양태순수필가 잎들이 떠나고 있다. 내내 붙들고 있던 가지에서 떨어져 바람을 잡고 날아오르거나 신발 밑창에 붙어서 어디론가 옮겨간다. 더러는 자신을 키워준 나무 주위를 이리저리 흩날리다 밑동에 엎드리기도 한다. 자신만의 색깔로 마지막을 마무리한다.때가 있다는 말이 크게 다가오는 계절이다.가로수에 몇 남지 않은 잎새에 새삼 마음이 간다. 친구들이 떠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연인의 떠난 마음을 귀찮게 하는 질척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은 끈적한 미련으로 보여 곱게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모두가 떠날 때가 같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스스로 지금이라고 여기는 순간이 가장 좋을 때가 아닐까.우리는 흐름의 물결에 휩쓸려 갈 때가 있다.마치 내 생각이나 존재의 이유는 없는 것처럼 따라간다. 앞서가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으로 나아가는지 알 틈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뒤처지지 않으려고 용을 쓸 뿐이다. 그래서 낭패를 보기도 한다.나는 가끔 다른 사람을 따라서 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유행이라는 이유로 사들인 옷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체적 특징이나 나이와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이외에도 헤어스타일, 여행, 맛집 등이 있다. 나에게 맞는다는 말을 잊은 선택이었다. 그중에 으뜸은 검색창에 뜨는 맛집 탐방이다. 수많은 리뷰가 맛있다고 하는데 막상 찾아가서 먹었을 때 이건 아니야, 느낀 적이 많다.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찾아본다. 남들과 어울려 가려면 같은 그룹에 속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이다. 내가 중심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하여 앞서가는 그룹의 끝자리라도 차지하면 잘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혼자 뒤처진다는 것이 무능력으로 비칠까 두렵기도 해서다.이성의 기능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 오십이 넘으면서 덜거덕거리며 더 심해졌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고 동작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음을 느꼈을 때부터다. 마음이 바빠지고 괜스레 허둥거리며 남을 의식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식에 얹혀간다면 보통은 하리라 믿으며 나를 주장하기보다는 나를 안으로 불러들였다.가로수 뒤로 공장 울타리를 만든 피라칸사스를 본다.봄부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익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사람들은 그곳에 겨울이면 빨간 열매가 있으리라는 걸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무심히 지나치는 풍경의 일부였다. 계절마다 눈을 빼앗는 갖가지 꽃들과 열매의 유혹에 넘어가서이다. 지금은 나무들이 잎을 떨구어 겨울이라는 여백을 만드는데 홀로 붉다. 근사한 작품으로 다가온다.지금부터 그의 계절이다. 바람이 차가울수록 마음이 시릴수록 더욱 돋보이는 피라칸사스다. 무채색 고요 속에서 흐트러짐 없는 존재를 붉게 드러내어 시선을 가둔다. 배고픈 새들에게 양식이 되어주는 보시로 사람들의 마음에 따스함으로 스며들기도 한다. 그 열매는 봄까지 가지를 붙잡고 있다.피라칸사스는 저만의 속도로 일 년을 산다. 온갖 꽃들이 앞줄에서 사랑을 받아도 시샘하지 않고 묵묵히 때가 되기를 기다린다. 기온이 널뛰기하듯 오르락내리락해도 서두르지 않고 줏대를 지켜 지긋이 내면을 키운다.무엇에 쫓기듯 달려가는 나에게 브레이크를 밟는다. 큰 숨 내쉬고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으련다, 쉽지 않겠지만 흉내라도 내야겠다. 그러다 보면 가슴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고 시린 바람 드나드는 마음 구멍을 메울 방법도 찾을 수 있으리라.산다는 것은 살아내는 일이다. 각자의 앞에 쌓인 문제를 풀어가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신의 호흡에 맞춰 인생시계를 설계하면 된다. 겨울 길목을 홀로 밝혀 건너가는 저 피라칸사스처럼.
2021-12-15
정미영 수필가 아파트 앞 양지바른 곳에 트럭이 왔다. ‘우산 수선’이라는 현수막을 붙인 차를 보니 처음에는 뜬금없었다. 입동이 한참 지난 탓에 제법 기온이 쌀쌀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비가 내리기는 했어도 우산을 고쳐 쓰기에 어울리는 시기는 왠지 장마철을 앞둔 시점일 것 같았다.하지만 나만의 편견이었다. 비는 지금껏 봄여름가을겨울 내렸고 눈이 올 때도 우산을 쓰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마침 내게도 우산 살대가 부러지고 손잡이가 끈적거려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기에 서둘러 챙겨 들고 나왔다.노인이 우산을 고치고 있었다. 노인은 손 때 묻은 도구들을 바꿔가며 부러진 살, 휘어진 대, 찢어진 천을 깁고 펴고 이어놓았다. 정성스레 깁는 모습에 믿음이 갔다.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볼 일을 보고 오라는 말에, 구경해도 되느냐고 말하며 앉은뱅이 의자에 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우산 고치는 분을 만나기가 어려워요.”노인은 우산 고치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요즘은 우산을 고쳐 쓰는 사람보다는 버리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가 아닌가? 처연한 웃음을 지으며 오히려 나에게 반문했다.“그럼, 어르신은 왜 우산 고치는 일을 하세요?”내가 어줍지 않은 말투로 묻자,“나야, 할 줄 아는 재주가 이것밖에 없으니까.”그러고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내가 맡긴 우산의 차례가 되었다. 우산 고치는 모습을 지켜보니 오랜 세월 한 가지 일에 몰두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부러진 살대를 교환하고 실로 이어놓는 손길이 제법 꼼꼼하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제 손질이 끝나면 우리 집에 있는 다른 우산들처럼 비 오는 날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학창 시절, 교실 입구까지 색 고운 우산을 들고 오는 친구엄마를 보면 부러웠다. 우리 엄마는 가게 일로 항상 바쁘셨기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려 우산을 챙겨가지 못한 날이면 나는 비에 젖어 집에 오기 일쑤였다. 몸과 마음이 흠뻑 젖은 채로 걷고 뛰기를 반복해 집에 오면 엄마는 미안하다며 수건으로 내 머리칼을 닦아주며 책가방을 받아 내렸다.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자식에게는 우산을 꼭 챙겨주고 싶었다. 그런데 올해 중학생이 된 딸아이는 우산을 잘 챙겨가지 않는다. 등교 전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면 접는 우산을 책가방에 넣어두지만, 나중에 보면 슬그머니 책상 위에 빼놓고 갈 때가 많다. 감기 걸리면 어떡해? 걱정스런 눈길로 물어보면 괜찮다, 라는 대답만 무심하게 돌아올 뿐이었다.노인이 우산을 다 고쳤다며 나를 불렀다. 우산에 대한 과거 속에 빠져 있던 나는 기억의 편린들을 바람결 따라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우산을 받아들고 손잡이를 살펴보고 살대도 잘 고쳐졌는지, 접었다 펴기를 반복해 보았다. 손잡이가 끈적임 없이 매끈하고 우산 살대도 마무리가 튼튼하게 되어 있었다. 만족스러워 하는 내 얼굴을 보자, 노인의 얼굴에도 수선을 마친 사람의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우산을 집에 들고 와서 다시 한 번 펼쳐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 언행과 습관이 잘못되었을 때에도 우산을 고치듯 제때에 수정하고 보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오면서 말과 행동의 실수로 후회하는 일이 많았고, 잘못된 습관은 나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간해서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순간순간 체득했다.지나간 삶은 우산처럼 수선해서 쓸 수 없다. 우산을 더 이상 고쳐 쓸 수 없을 때 새로 장만해서 사용하는 것처럼, 다시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마음속을 수시로 점검하고 수선하면 좋을 것 같다. 마음의 무엇이 부서져 있는지, 내 생각의 어디가 고장이 나 있는지, 자주 들여다볼 일이다. 그러면 앞으로 다가오는 생활 속에서 폭풍우가 쏟아져 감당하기 힘들거나 마음에 희뿌연 안개비가 내려 울고 싶을 때, 잘 견뎌낼 수 있으리라.
2021-12-08
백후자수필가 긴 세월을 묻어두었다. 어설픈 핑계들을 걷어내고 길을 나선다. 안동으로 향한 길이 한산하다. 산자락을 깎아 세운 터널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긴 터널 속 불빛 타고 애잔한 기억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2021-12-01
배문경수필가 가을이 익을 대로 익은 날 축제를 즐겼다. 경주 시민이라는 이름 덕분에 뮤지컬 ‘광화문 연가’를 볼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화려한 노래와 춤사위가 우리들의 가을에 군불을 지폈다. 고인이 된 이영훈의 자작곡들로 만들어진 이야기에 맞춰 노래가 울려 퍼졌고, 배우들의 열연이 이어질수록 관객들의 마음도 아랫목처럼 뜨듯해졌다.그중에서도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가슴속에 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두자는 노랫말은 뭉클했다. 삶을 살아내면서 많은 사람이 다가왔다가 멀어져 갔다. 시절 인연이란 말처럼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미련의 끈을 길게 늘였더랬다. 옛사람이 떠난 자리로 새로운 사람들이 틈을 메우는 것을 다 알지 못해 아쉬움에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다. 그렇게 떠남과 만남이 평생이란 인생을 만드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후배 순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즐겼던 십 대의 노래들은 거의 이문세의 노래로 가득했단다. 이문세가 ‘별밤지기’를 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는 인기 짱이었다고 말하는 얼굴이 환했다. 그 덕택에 그의 노래 제목이 어린 그녀와 친구들의 모임 제목이름까지 되며 요즘의 BTS만큼의 인기를 누리는 그 가수였다는 이야기가 뮤지컬을 보는 내내 떠올랐다. 그의 노래들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변색 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어느 학자가 그랬던가. 태어나 십 대까지 듣던 음악이 평생을 찾아 듣는 음악이 된다고. 20대까지는 신곡을 찾아 듣지만 30대가 되면서는 자신에게 익숙한 음악만 되풀이해서 듣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익숙한 노래들이 음악에 대한 기억저장고에 묻혀 있다가 이따금 사람이 그리울 때 꺼내 듣는다. 그래서일까. 나 또한 나이 차이가 나는 나훈아의 노래를 왜 좋아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가 꿈속에 나온 적도 있으니 어른들이 흥얼거리던 그 시절의 노래를 귀 너머로 듣고 자란 탓이겠거니 싶다. 지금도 나는 그의 음악과 열정이 묻어나는 리듬이 흘러나오면 쉽게 따라 하고 어깨가 들썩인다. 그리움처럼 말이다.나의 저장고에 각인된 노래야말로 다른 말로 하면 나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추억이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중에 앞면을 차지하는 곡은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노무라 소지로의 ‘대황하’, 최백호의 ‘작은 잎새’이다. 뒷면은 영화로 채웠다. 사랑스러운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로마의 휴일’이나 스스로 노래까지 부른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애송하는 노래처럼 쪽지편지로 접어서 마음 저장함에 넣어 두었다. 한 번씩 꺼내 보고 싶은 날, 넷플릭스나 OCN을 통해 다시 보면 추억의 그 영화가 내 등을 가만히 쓸어준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을 양산(量産)하는지도 모른다.퇴근하다가 문득 이름이 떠오르면 핸드폰에서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건다. 수화기 저편에서 어쩐 일이냐고 묻지만 반가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 기억 날 때 전화를 하지 않으면 다시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나의 말은 진심이다. 상대도 “ 그렇지, 세월이 너무 빨리 가고 있어.” 너무 바쁜 일상의 급류에 휩싸여 작고 귀한 것들을 잃어갈 때 듣는 친구의 목소리는 나를 가다듬게 한다. 오래된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영상기의 필름처럼 지나가며 세포 곳곳에 산소를 공급한다. 한동안은 견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옆에서 기차를 바라본 적이 있다. 기차에 탄 사람과 밖에 있는 내가 서로 겹쳐질 때가 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린 언젠가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서로를 단지 기억해내지 못할 뿐이란 생각을 하며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더러 데자뷔처럼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처럼 그것은 환영처럼 기억의 저편, 막힌 어느 부위를 긁는 느낌이다.11월 늦가을 들녘을 보니 경주의 벚나무에는 두 번째 꽃이 피고 은행나무는 이미 계절의 여운을 남김없이 거두어들였다. 연못에 비친 하늘과 나무가 데칼코마니다. 그리움이 그대로 투영된 것일까.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낙엽처럼 플레이리스트에서 흩날리고 있다.
2021-11-24
백후자수필가 가을이 만든 하늘·바람·빛을 먹은 이파리에 물이 든다. 초록이 빛을 잃으며 노란 물이 오른다. 노랑이면 단연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를 찾아 떠난 길, 바알간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 밭을 지난다. 나지막한 산길을 따라가서 다다른 곳은 청도 적천사다.일주문 대신 은행나무가 마중을 한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바람소리만 스칠 뿐 고요하다. 발소리를 죽이며 둘러본다. 젊은 부부 한 쌍이 공양미를 올린다. 둘은 부처님 앞에 공손하게 삼배를 올리고 한참 머물다 나간다. 어느 한때 내 모습을 보는 듯하여 저절로 눈길이 따라간다. 법당을 나선 부부는 천왕문을 나서서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나란히 걷는다.적천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천년에 가깝다. 고려 명종 5년, 보조국사 지눌이 오백 명의 수도승을 머물게 할 수 있는 큰 규모의 절을 중건할 당시, 절 부근 숲속에 도적이 들끓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조국사가 가랑잎에 범 호(虎)자를 써서 신통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풀어 놓으니, 도적이 겁을 먹고 도망쳤다고 한다. 당시 보조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곳에 은행나무가 자랐으니 천연기념물 제402호, 적천사 은행나무다.적천사 은행나무는 삼 미터까지는 하나의 줄기이다. 그 위로 세 개의 가지로 나뉘어 자란다. 높이 이십팔 미터에 둘레가 십일 미터 가량으로 암나무이다. 바로 옆에 또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수령은 다르나 비슷한 키 높이로 견준다. 두 나무는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늘어뜨려 맞잡으며 나란히 서 있다. 두 은행나무의 다정한 모습에 부부 은행나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둘 다 열매가 맺히는 걸로 봐서 암나무이다.적천사 은행나무의 특별함은 유주(乳柱)이다. 유주는 오래된 은행나무에 생긴다. 은행나무의 줄기에 상처를 입으면 은행나무는 스스로 치유하는데, 그것이 바로 유주이다. 특정의 방어물질이다. 대체로 동글동글하게 생긴 것이 모유의 줄기인 유두와 흡사하다. 그런데 적천사 은행나무의 유주는 모양새가 독특하다. 굵직하고 기다란 고드름처럼 생긴 것, 짧고 뭉뚝한 방망이처럼 생긴 것, 둥근 혹처럼 생긴 것도 보인다.유주는 여인네의 젖가슴과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글자 그대로 ‘젖기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근과 더 닮은 이유로 예로부터 아들을 낳고자 하는 여인네들의 등살에 도려져 나가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적천사의 은행나무 유주는 길쭉한 생김새가 남근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남아를 잉태하고자 하는 이들의 순례지가 되었다.법당에서 보았던 젊은 부부가 은행나무 밑으로 간다. 두 손을 꼭 모으고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가만히 유주를 쓰다듬는다. 아이를 간절히 바랐던 때가 있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젊은 부부를 가만히 지켜본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원하는 곳에 가닿기를 바란다.불투명한 일, 내가 가진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선 것 같을 때 인간은 신앙을 찾는다.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일지라도 내가 믿으면 신앙이다. 내 안의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곳, 내 안의 답답함을 기탄없이 다 들어주는 곳. 있는 자 없는 자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해주는 곳, 그것이 바로 신앙이다.모든 건 마음에 있다. 내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은행나무 아래 서서 유주를 바라보며 간절히 바란다면 그것 또한 신앙이다. 토테미즘이면 어떻고 샤머니즘이면 또 어떤가. 그 또한 마음이 가는 곳이다. 간절함의 끝에 닿으면 통한다고 했다.백 년도 채 못사는 인간이 천년 은행나무 아래에 선다. 울룩불룩 올라온 유주가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두 손이 저절로 모아진다.
2021-11-17
양태순 수필가 마음에서 말이 되기까지 순간일 적이 있다. 멋진 풍경을 볼 때, 늘 보던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여쁜 돌,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 떼, 서늘한 바람에 묵묵히 버티는 억새, 가을날 선물꾸러미를 터뜨리듯 툭 터지는 석류, 한겨울 몰래 피운 야생화들. 그것들을 마주하면 생각을 거치지 않고 바로 튀어나온다. 예쁘다와 좋다.울주군 간월재에 갔다. 억새가 일품이라고 너도나도 인증샷을 올려놓아서 가보고 싶어서다. 모처럼 나선 산길을 걷자니 눈이 시원해진다. 산 능선을 따라 오색 물결이 넘실거렸다. 골짜기와 골짜기가 겹쳐 빛과 그림자가 빚어내는 풍경은 명화 부럽지 않았다. 가을은 고개 위에서 떡갈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내려오고 있었다. 잎들을 개구쟁이 붓질하듯 휙휙 물들이며 오고 있었다.억새평원은 장관이었다. 좋다는 감탄사를 남기고 부리나케 간월재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밀려드는 사람이 많아서다. 그다음 주변 풍경을 둘러볼 여유가 되었다. 동서남북 두루 둘러볼 수 있었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되어 있고 억새는 그 위를 덮을 듯 무성했다. 바위와 억새가 만들어내는 가파른 길은 아득하였으나 색색의 옷들이 무늬를 더해 절경이었다. 다른쪽은 억새 뒤로 산 능선이 그윽하게 둘러쳐져 포토존으로 사람들이 복작였다. 은빚억새 위로 사람꽃이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나는 억새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걸으면서 냄새를 맡고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가을 안으로 들어간 듯하였다.산을 오르며 연신 좋다는 감탄사를 뱉었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굽이진 길을 오르내리며 다가왔다 멀어지는 풍경 앞에서, 스스로 잎을 떨구는 나무 아래서 보라색으로 존재를 알리는 꽃향유를 보며, 가족끼리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에, 좋다를 고명처럼 얹었다. 그리고 저 홀로 익어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잎들과 잎들이 만들어내는 가을잔치에 마음을 빼앗겼다. 밖으로 나온 말은 좋다는 한마디였으나 속에서 일어난 감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감정은 섬세하게 분화한다. 좋다는 두루뭉술한 덩어리에서 여러 결로 나뉘어진다. 내 처지나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파동이 다르다. 바꾸어 말하면 똑같은 감정이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밖으로 나온 말이 같아도 다르게 읽히는 순간이 있다. 서로 마음이 통하고 믿음이 있을 때는 따로 해석이 필요치 않고 저절로 필터를 거쳐 들어온다. 좋다는 말에 숨어있는 뉘앙스랄지 미묘한 차이를 캐치할 수 있다.좋다는 말을 열 번 한다고 같은 뜻이 아니다. 얼키설키 감겨오는 감정의 결에는 차이가 있다. 특별한 것이어서, 설레고 기뻐서, 영원할 것 같아서,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동행한 사람과의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다시는 못 볼 아름다움을 숭배하기 위해, 수없이 읽어서 너덜너덜해진 시집의 구절 등이 모두가 좋다는 말에 포함되는 다른 무엇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나는 적합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얼렁뚱땅 좋다는 말속에 밀어넣고 만다.간월재 억새평원을 걸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말들이 어째서 꼭 필요한 순간에는 숨어있는가. 그동안 읽은 책 속의 명문장들을 복기한 것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가. 나는 자연이 보여주는 풍경 앞에서 기껏 좋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인가. 내가 느낀 감동과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어서 머릿속이 쑥대밭이었다.시의 행간에 숨은 뜻을 읽어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몇 번을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일 때가 있다. 감정을 말로써 조곤조곤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생각을 끄집어내려 해도 마음 안에 뭔가가 있는데 건져지지 않을 때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느껴봤을 순간이다.마음의 눈이란 말이 있다. 사물을 볼 때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뒷면을 보는 것이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서 바람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는 이유를 알아야 풍경 속의 풍경을 풀어낼 수 있으리라. 아직도 나의 글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지 못하고 닫힌 문 앞에서 소멸하고 만다. 가을산에 촤르르 펼쳐진 멋진 문장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깝고 안타깝다.솜씨를 부린 글이 아니라 질그릇에 담아내는 정(情) 같은 글을 쓰고자 뾰족하게 날을 세우는 가을이다.
2021-11-10
정미영 수필가 립스틱을 바른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매끄럽게 덧발랐더니 색감이 선명해진다. 화장의 완성은 립스틱이라고 했던가? 그 순간 자신감으로 충만해져 거리로 나선다.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로 인해 립스틱 바른 입술을 드러내 보이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예뻐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본능에 가깝다. 립스틱은 신분이나 국적, 나이를 막론하고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5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보석을 갈아서 입술에 화장을 했고, 클레오파트라는 딱정벌레와 개미로 만든 붉은 색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1세는 피부 톤을 하얗게 하고 입술은 붉은 빛으로 표현하는 화장법을 유행시켰다.립스틱 효과라는 말이 있다. 요즘처럼 경기가 불황일 때, 저렴한 가격으로 여성 소비자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해서 유래되었다. 대학 졸업반이었을 때 나는 립스틱 효과의 수혜자였다. 취업의 벽에 가로막혀 앞길이 막막했다. 직장을 못 구해 힘들어 하고 자신감을 잃을 때마다 심리적 압박과 우울한 기분이 밀려왔다.도전과 좌절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꿈을 향한 목마름으로 굳게 닫힌 취업의 문을 열려고 애를 써도 현실은 냉정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주름지고 눈동자는 흔들렸다. 푸를 것 같던 젊음이 점점 시들해지고, 마음은 흔들다리 위를 건너는 것처럼 위태로웠다.학기 중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직장을 구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과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혼자서 긋고는 열등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취업 고민에 어깨가 처져 있던 날은 매서운 바람이 내 옷깃 속으로만 유독 몰려드는 것 같아, 잔뜩 긴장하며 몸을 움츠렸다. 그런 탓에 자주 허방을 딛고 다녔다.그 시절, 주머니가 얄팍해 다른 화장품은 못 샀어도 립스틱만은 발랐다. 마음이 팽팽하지 않고 느슨해질 때 입술 선을 따라 색을 입히면 정신적 허기가 채워졌다. 립스틱이 마치 심리적 대변자라도 된 듯, 내 가슴에 담긴 수많은 문장들이 입술 색으로 표현되었다.립스틱을 바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맨얼굴에 립스틱만 바른 채 학교 도서관으로 향할 때면,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보이지 않는 실체지만 내가 꿈꾸는 이상향을 세밀하게 소묘하기를 반복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의 흔적은 어떤 무늬로 그려질까.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도했다.혹독한 마음의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내게도 봄이 찾아왔다. 마침 적성에 맞는 일자리에서의 까다로운 면접까지 무난히 합격했다. 다행이었다. 봄빛 머금은 발랄한 색상의 립스틱은 일터로 향하는, 생기 넘치는 발걸음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립스틱은 때때로 자국을 남긴다. 첫사랑을 심하게 앓은 남자 동창생은 상대를 떠올리면 분홍 빛깔의 입술이 선명하게 떠올라 아직도 마음이 달뜬다고 한다. 처음 소개팅 자리에서는 밋밋한 인상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을 감으면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그녀의 얼굴이 펼쳐졌다고 한다. 청순해 보이는 립스틱의 분홍 빛깔이 풍부한 사랑의 언어로 탈바꿈해 그녀의 입술 위에서 빛났을지도 모른다. 예쁜 빛으로 물들여진 사랑의 언어를 받고도 사랑에 빠지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헤어진 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까지 그 빛깔을 잊지 못하는 것을 보면, 다분히 그럴 것이다.가끔은 즐겨 바르는 색 대신에 붉은 립스틱을 발라본다. 일상의 변화를 바라는 내 시도가 익숙한 안일을 밀어내고 싶은 순간에 입술 색을 바꿔보는 것이다. 그럴 때면 무언가 도전하는 일도 잘 마무리될 것 같고 용기도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내 생활에 있어 당당함의 밀도가 느슨해져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 때 나는 립스틱을 짙게 바를 것이다.나의 립스틱에 대한 관심은 멈추지 않는 진행형이다.
2021-11-03
배문경수필가 청하에 내렸다. 도로변에 차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섰다. 시장 안쪽을 보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다. 청하(淸河)가 ‘공진’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태어나면서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 ‘갯마을 차차차’라는 순한 드라마 덕분이다. 억 소리 나는 액션도 대단한 기획 의도도 없는 요즘 보기 드문 소박한 드라마다. 포항 근교 어촌에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사랑과 조연으로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정을 나누는 에피소드가 모여 따뜻하게 마음을 덥혀준다.청하라는 지명은 육청에서 유래하여 ‘맑은 시냇물’ 때문에 지었다는 설이 있다. 시냇물은 삶을 거스르지 않고 순하게 흘러 바다에 몸을 맡기고, 그 냇물을 곁에서 보고 자란 사람들은 저절로 순하게 됐다. 그래서 드라마처럼 순박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우리의 마음에 맑고 시원한 물 한 잔처럼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청’하면 치아 사이에 말이 동굴을 빠져나가고 ‘하’소리에 온몸의 나쁜 기운도 덩달아 모두 밖으로 배출하는 모양새다. 고여 있던 마음이든 소리이든 한꺼번에 넓은 바다로 몰려나가 저 넓은 대양이 되는 것이다.그런 청하라서 파도 소리도 순하다. 호미곶에 한 번 부딪힌 물결이 밀려와 은은하고 정다운 파도가 되어 모래펄을 훑고 사라락 부서진다. 파도를 응시한 바위 위 갈매기들은 퍼덕거리는 날갯짓으로 파도와 동무가 된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찬란히 빛나는 모래를 안으러 왔단다.’ 어릴 적 아이들과 손을 잡고 두 패로 나뉘어 왔다 갔다 하다간 틈을 봐서 상대를 잡아당기던, 아련한 추억처럼 파도는 가볍게 밀려와 모래펄 앞에서 나지막한 더미에 몸을 내맡긴다.청하는 바람 소리 또한 착하다. 아름다운 관송전 숲을 통과한 바람은 푸른빛으로 가슴을 쓸어안는다. 아름드리 숲은 청하중학교와 기청산 수목원을 감싸고 있다. 마을 어디에서도 숲을 지나는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나무와 꽃이 사시사철 피고, 다양한 새들이 향기에 취해 날아오고 매미와 잠자리, 벌 나비가 수시로 넘나드니 사람과 숲이 동고동락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엔 해가 걸리고 달과 별이 걸린다. 잠자는 시간에도 어둠 속을 지키느라 나무와 별은 밤새 호위무사가 된다.착하고 순한 사람은 얼굴에 ‘나 착함’이라고 새겨져 있다. 내겐 삼십여 년을 함께 사는 순한 어른이 계신다. 시어머님이시다. 쉰 중반에 남편을 여의고 큰아들 가족과 지금껏 함께 산다. 오래전 기사 식당을 했던 솜씨로 만드는 음식은 예사롭지 않다. 더러 이웃에게 김치라도 나눠주면 어머님 솜씨 덕분에 내가 인사말을 늘어지게 듣기도 한다.그 지극정성을 먹고 자란 손자 손녀 셋이 사회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낸다. 현관문을 열면서 “할머니, 할머니” 외치는 아이들에겐 어미는 없고 할머니만 있다. 음식을 오물오물 맛나게 먹으며 눈을 반짝인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반찬이 제일 맛있어.” 그 말에 힘이 나신다는 어머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챙기느라 하루가 부족하다. 오늘도 식탁 앞에서 막내는 갓 만든 김치를 맛보며 엄지 척을 한다.이젠 칠순을 넘은 몸으로도 가족을 건사해주시는 모습에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낄 때가 많다. 따뜻하고 정성들인 음식은 밖에 나가서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란 착한 두드림이다. 힘내 살라고 말보다 몸으로 늘 응원해주시니 그 순한 눈빛에서 힘을 받는다. 이젠 좀 편히 쉬시라고 해도 그 일을 관둘 수 없다는 어머님의 얼굴이 ‘청하’하다.맵지 않고 순한 드라마를 보다가 멋지고 황홀한 배경을 보면 어머님을 모시고 간혹 여행을 떠난다. 그곳을 찾아가서 배우가 연기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나도 어머니도 주인공의 순한 몸짓을 흉내 내어 본다. 우린 그 순간 그 누구나가 될 수 있으니까.코로나로 답답한 나를 밖으로 부르는 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코스모스를 흔드는 바람과 이제 막 머리부터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나무가 떨어뜨리는 잎새. 여행은 한쪽으로만 쏠려가는 나를 일으켜 세워 눈이 깊은 사람이 되게 한다. 10월, 아직 햇살이 눈부시다. 한나절 청하에서 홍반장이 되고 윤혜진이 되어본다.
2021-10-27
백후자수필가 구름아, 좀 비켜주렴. 하늘이 푸른 산이 보고 싶어 애원했지만 구름은 들은 척도 안 한다. 지나가던 바람이 구름을 밀어댄다. 구름은 밀리지 않으려고 찔끔찔끔 눈물을 흘린다. 구름이 머물다 가는 곳, 하늘 아래 첫 동네에 부슬비가 내린다.
2021-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