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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이하다, 슈룹(우산의 옛말) 아래서

등록일 2022-09-07 20:14 게재일 2022-09-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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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순 수필가
양태순 수필가

곧 추석이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태풍이 지나간다. 늘 탈이 없이 지나가길 바라지만 올해는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추석맞이를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슈룹이 간절하다.

태풍 ‘힌남노’가 지나간 자리는 끔찍하다. 시간당 쏟아부은 폭우로 포항의 일상이 마비되었다. 뉴스 화면에서 확인하는 곳곳의 침수 지역과 하천 범람, 정전 상태 등이 놀랍고 무섭다. 이맘때면 수확 직전인 과일, 막바지 힘을 내는 벼농사와 고추 농사가 재해 앞에 속수무책 당했으리라. 떨어지고 잠기고 무너진 처참한 모습에 망연자실도 잠시 모두가 원상복구에 손을 보탤 것이다.

어감의 차이가 미묘한 말이 있다. 사전에 찾아보면 어떻게 다른지 차이를 모르겠는 단어가 있다. 평안과 안녕처럼 맞이하다와 맞다가 그렇다. 맞이하다는 오는 것을 맞다, 맞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오는 어떤 때를 대하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엇비슷한 경우 둘 다 사용 가능하다고 한다. 태풍을 맞이하다와 태풍을 맞다가 아리송하다. 지금껏 맞이하다는 기쁘고 좋은 일에만 써왔는데 말이다.

그래서 맞이하는 일에는 가벼운 설렘이 따라온다. 손님을 맞이하려면 집을 깨끗이 하고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중에도 기분이 좋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지난해를 돌아보고 반성할 것은 하고 잘한 것은 뿌듯해하며 새날을 향한 다짐으로 희망에 부풀기도 한다. 생일이나 승진, 기념일에는 마음껏 축하하기 위해 작은 선물과 꽃을 준비하며 대상자보다 준비하는 사람이 더욱 설레게 된다. 일련의 과정이 번거롭긴 하지만 함께 하는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에 기꺼이 행한다.

맞다는 불시에 찾아오는 불청객인줄 알았다. 예정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맞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혼란한 상황을 만든다고 믿었다.

이번 태풍이 그런 상황이었다. 며칠간 뉴스에서 태풍 ‘힌남노’를 대비해야 한다, 어마무시한 초강력 태풍이라는 둥 엄청 열심히 홍보했다. 어디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당황하면서도 나름 대비를 했다. 일 층에 가게가 있는 사람들은 모래주머니를 쌓고 중요한 것은 높은 곳에 올렸고 집에는 창문 테이핑을 하고 자동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태풍은 상상하지 못할 상처를 남겼다. 악질인 태풍을 맞다고 해야만 할 것 같다.

인생에서 맞아야 할 것은 많다. 자연재해가 일부이긴 하지만 더 많은 경제적 감정적 문제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픔, 사고로 인한 정신과 신체의 어려움,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한 불안, 좌절, 사회생활에서 맞는 관계의 복잡성이 맞서 싸워야 할 문제다. 이럴 때마다 최선을 다해 견디다 보면 지나가고 있음이 느껴진다. 혹독한 태풍이 지나고 파란 하늘에 건재한 태양처럼.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으면 씁쓸하다. 사실 우산을 쓴다고 비를 다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신발이나 종아리는 축축하게 젖기 십상이다. 덩치가 큰 사람은 어깨도 젖는다.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은 우산이 걷는데 방해가 되는 듯해도 쉽게 우산을 접지 못하고 살대가 부러지거나 찢어져야 포기가 된다. 아마도 붙잡은 우산이 미약하지만 의지가 되는 든든함이지 싶다.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는 일이다.

부모님은 우산같은 존재다. 아주 어릴 때는 친구와 싸웠을 때 무조건 내편이 되어 우는 나를 어르고 달랬다. 친구를 혼내주지 않아도 힘이 되고 든든했다. 살면서 궂은일, 험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기댈 수 있는 뒷배가 되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나보다 더 기뻐하는 바보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루어도 내리사랑은 변함없이 비를 맞지 않도록 기꺼이 우산이 되어준다. 언제나 자식을 향한 마음길을 열어두고 눈비 걱정하며 그 그늘로 몸을 들여 쉬어가라 무언의 눈길로 어루만진다. 슈룹, 이름 안에 사랑을 내주고 가없는 사랑을 품는 뜨거움이 묻어난다.

올 추석에도 보름달이 뜰 것이다. 어깨가 젖을 것을 알면서도 두 사람이 쓰기도 하는 우산이다. 그것은 서로를 생각하는 따뜻함이다. 사랑이 가득한 우산 아래서 얼굴을 맞대고 상처를 보듬으며 오순도순 맞이하는 추석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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