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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

등록일 2022-08-24 17:17 게재일 2022-08-2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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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 수필가
정미영 수필가

시간의 곡선을 따라 흐르던 푸른 바람 줄기가 소나무에 부딪쳐 태고적 소리를 내는 오후다. 토함산 숲, 햇살로 잘 엮은 빗살문을 열어젖힌다. 수천 년 쌓여진 바람층의 느낌표를 음미하며, 불국사 주차장을 지나 동리목월문학관을 찾아간다. 바람결에 문인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가만히 느낌표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인다.

문학관은 김동리 소설가와 박목월 시인의 문학과 삶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곳이다. 동리문학관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황토기’가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되고, ‘무녀도’의 내용이 담긴 모형들이 있다. 목월문학관에는 테마 공간을 목실과 월실로 구분하여,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구성해 놓았다.

저마다 공간에는 작가들의 서사가 넘쳐흐른다. 두 분의 문학적 성취를 천천히 음미하며 박목월 시인의 문학 동반자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향한다. 시인이 문학의 길로 나아가는 데 김동리 선생님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글귀를 읽고 또 읽는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고독감을 달래고 문학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단다. 또한 조지훈 시인과 박두진 시인을 만나면서 문학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는 전시 글을 읽으니 내 가슴에 짙은 여운으로 남는다.

나에게도 문학의 동반자가 있다. 포항수필사랑 동인들이다. 십칠 년을 만났으니, 정분이 나도 보통 난 것이 아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남편보다 오래 붙어 있고, 취미가 같으니 사춘기 딸보다 소통이 더 잘 된다. 수필을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을 열었기에, 때로는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나의 편이다.

우리는 격주로 만나 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모임에 성실하게 참석하기 위해서 모두가 잠든 새벽에 수필을 쓰려고 깨어 있을 때가 많다. 고요함 속에서 촉촉한 안개 속살 더듬거리듯 나 자신 안에 고인 언어들을 탐닉한다. 내 안의 수많은 느낌표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소멸해 버린다. 꽃잎이 떨어져 날리면 어느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런 탓에 꾸준히 수필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희미해져 가는 기억의 편린들을 부여잡아 초고를 쓰고 퇴고를 거치면, 한 편의 잘 다듬어진 글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설렘 가득 안고 글을 챙겨 길을 나선다. 문학의 동반자인 나의 정인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조지훈 선생님도 박목월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1942년 봄비가 꽃잎처럼 흩날리는 날, 경주로 찾아왔던 일화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박목월 작가는 한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건천역에서 조지훈 작가를 기다렸고, 그런 그를 조지훈 시인이 알아보고 플랫폼에서 내리자마자 얼싸 안았다는 장면은 유명하다. 그 후로 두 작가는 열흘 동안 매일 문학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분이 문학적 동반자로 거듭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고향인 영양으로 돌아간 조지훈 시인은 목월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썼다. 거기에는 ‘목월(木月)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완화삼(玩化衫)’ 시가 적혀 있었다.

“구름 흘러가는/물길은 칠백 리/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조지훈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감격한 목월 시인도 밤새 화답시 ‘나그네’를 준비했다.

“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고 했던가. 시를 써서 마음을 주고받았던 두 작가는 대단히 낭만적이다.

나도 수필로써 동인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 내 문학적 동반자들의 글을 가슴으로 읽고, 정독하며, 경청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달콤한 수필 향기가 오랫동안 널리 퍼지기를 기원해 본다. 문학관의 존재가 새삼 고맙다. 이곳을 방문한 덕분에 오랫동안 수필 주위를 맴돌고 싶은 나에게, 글 쓰는 실력만큼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게 해준 날이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공감해야 한다는 관계의 중요성을 동리목월문학관에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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