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순수필가 몇 해 전부터 포구가 머릿속에 똬리를 틀었다. 모양이며 맛이 생생하여 눈앞에 삼삼하다.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커 큰 시장에 가 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맛이 그대로인지 확인하고 싶어 포구를 먹고 싶은 갈증은 점점 커졌다. 가을바람이 귓불을 스치면 입맛을 다시고는 몸살을 앓곤 했다.포구는 토종 보리수 열매다. 보리똥, 물포구, 보리수로 불리기도 하지만 내 고향에서는 포구라 불렀다. 동글동글 작은 알이 조롱조롱 모여 열린다. 빨간 열매에 흰 반점이 무늬를 만들고 속에 씨를 품고 있다. 산에서 만나면 알알이 눈을 붙잡아 손이 바빴다. 주섬주섬 따 먹으며 주머니에 담고 보자기에 싸서 집에 가져 왔다. 알불 아래서 깨끗이 다듬어진 포구는 어머니가 이고 장으로 갔다.포구, 알싸한 그리움으로 가는 티켓이다. 한 알씩 먹는 것보다 한 움큼을 입안에 털어 넣고 씹어야 맛있다. 와작 씹으면 살짝 떫은맛에 이어 새곰한 맛이 몸을 부르르 떨게 한다. 연달아 우물거리면 달큼한 맛이 혓바닥을 어루만진다. 어느 해의 일이다. 그때는 자취를 하던 때이고 전화도 없어 서로 연락이 잘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설탕을 솔솔 뿌린 포구를 먹으라고 주었다. 숟갈로 푹푹 떠먹었다. 어저께 먹어본 듯 선명한 감각이다. 입술에 붉은 물 들이며 뛰어다녔던 고향의 풍경도 스르르 살아난다.간만에 소꿉친구들을 만났다. 포구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는지 물었다. 산에서 포구를 따다가 가시에 찔렸던 일, 벌집을 건드려 줄행랑을 치다가 땄던 포구를 엎었던 일, 어느 골짜기에 많이 있어서 몇 번이나 따러 갔던 일 등. 그 시절의 추억담이 쏟아졌다. 포구라는 말에 저마다 잊었던 산천을 떠올리며 그땐 그랬지, 아련한 웃음이 걸렸다.나는 어릴 적 시간을 더듬는 여행이 잦아졌다. 포구가 만들어낸 길이다. 오징어게임과 숨바꼭질하던 골목, 산딸기, 머루, 망개, 포구를 따먹던 산이며 두레상에 오르던 무밥, 호박범벅, 콩죽 따위를 지도에 그리듯 마음에 새겼다. 고샅길로 연결된 놀이터에서 일어난 일이며 계절별로 먹었던 먹거리를 조금씩 수정하기 몇 차례였다. 그래서 정확할 거라 믿었지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맞춰보면 엉뚱한 것도 있었다. 순전히 나를 위한 나만의 맞춤형 여행지도일 뿐이었다.지도에 점으로 남은 것들은 지나온 시간을 연결하는 징검돌이다. 돌 주변은 희미해진 사건과 감정의 덩어리들이 부유한다. 언저리를 배회하는 흔적들을 잡아채서 얼기설기 엮으면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더러는 징검돌 사이를 연결하지 못해 끙끙대기도 하고 여기저기 전화질을 해서 기억을 이어보기도 한다. 담담히 시작된 순례길은 포구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는 횟수가 늘었다.이유를 알 수 없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누구나 가끔은 아궁이에 불씨를 뒤적이듯 추억 한자락을 곱씹는 날이 있다. 그뿐이다 답을 내리기에는 시원찮았다. 그 자리를 맴돌 때마다 무지근한 명치를 눌러야 했다. 기어코 포구를 먹어야만 몸살이 나을 것 같았다.자주 시장을 기웃거렸다. 난전에는 갖가지 채소와 가을을 담은 과일이 소쿠리에 올라앉아 손님을 부른다. 발소리 엇갈려 지나는 틈틈이 흥정하는 소리도 끼어든다. 나는 구석구석 바삐 눈을 굴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에 휩쓸려 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감을 소쿠리에 소복이 쌓아놓고 팔고 있는 펑퍼짐한 곡선의 뒷태를 본 순간이었다.포구, 나를 붙잡은 정체가 그이였구나! 나에게 포구의 맛을 알게 하고 포구를 팔던 야무진 장사꾼이자 내가 간절히 살 부비며 온기를 나누고 싶은 여인이다. 어떤 어려움도 끄떡없이 펄떡이는 심장으로 삶의 행로를 걸었으며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부족한 형편이지만 오남매 넘치는 사랑으로 키워 준 사람, 내 그리움의 여정에 언제나 불을 켜는 어머니.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수년째 병상에서 눈으로만 세상사를 읽으려 애를 쓴다. 뻐끔한 눈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포구의 붉은 물이 추억으로 가는 문을 열길 바란 모양이다. 젊었던 날을 기억하며 스스로가 잘 살아냈다 인정할 수 있기를. 포구즙같은 비가 눈앞을 가린다.
2021-10-13
정미영수필가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어느새 물안개가 되어 산자락 사이로 피어오른다. 물의 윤회 속에 녹아든 풍경을 눈에 담으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남흥마을을 거닌다. 세월의 더께가 쌓여 있고, 오래된 이야기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안동의 남흥마을은 언제 둘러보아도 상념을 잊게 한다. 바쁜 일상에서 가졌던 날선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고 편안하다.
2021-10-06
배문경수필가 낮 길이가 눈에 띄게 짧아진 추분(秋分)에 진평왕릉을 돌아본다. 여름의 흔적이 하나씩 지문처럼 지워진 자리로 단풍든다. 여름의 울울창창하던 시간이 버드나무의 짙은 그림자에 묻힌다. 주위는 논밭이 자리 잡고 있어 여름이면 개구리소리 요란하고 풀벌레 소리에 가을을 실감한다.진지왕과 선덕여왕사이인 신라 26대 진평왕, 그의 능으로는 아직 뜨거운 햇살 한줌이 고요히 내린다. 능을 휘돌아보면 그 흔한 호석도 없고 무신상과 문인상 하나가 없다. 그저 모든 것에서 해탈한 듯 보이는 능이다. 왕릉은 그대로지만 온 사람 간 사람의 추억이 여기저기 머물다 흩어진다.푸른 고요가 홰치는 아침과 함께 사라지면 돗자리를 들고 소풍 온 사람들과 웨딩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능 주위가 소란하다. 혹여 밤새 긴 연회로 왕의 곁에 있던 무희들도 휘모리장단에 맞춰 춤을 추었던 것은 아닐까. 빙그르르 돌던 놀이로 박제된 채 주름진 치마와 장구를 치는 모습으로 왕릉주위에 목석처럼 붙박이가 되어있다.오래전 문인들과 문화재 해설사가 왕릉주차장에서 만났다. 돗자리를 깔고 진평왕과 선덕여왕의 야사(野史)를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열세 살에 왕위에 오른 진평왕의 첫 여인이 미실이었다. 화랑세기에 ‘용모가 절묘하여 풍만함은 옥진을 닮았고, 명랑함은 벽화를 닮았고, 아름다움은 오도를 닮았다’고 하였다. 세 명의 왕을 모신 대원신통의 여자로 역사서에도 다시없을 미실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진진했다. 선덕여왕도 부친의 영향으로 풍채가 좋았다고 한다. 맞은 편 해가 저무는 야산이 꼭 부처가 누워있는 듯이 보이는 것도 이야기를 듣고서야 동감하며 다시 보았다. 두 부녀가 평야와 산기슭에 능을 만든 이유는 신라를 지키고자 하는 똑같은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진평왕은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중앙 행정부서를 설치하고 중국의 수·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통해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을 막았다. 왕릉에서 봄 벚꽃, 가을 코스모스가 피고 수로를 따라 걷는 길의 끝이 명활산성이다. 그때 산성을 보수하여 수도 방위에 힘썼다. 천사백년 전 신라 땅에서 일어난 일이다.신라에서 이어진 이 왕릉은 찾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준다. 큰 나무의 가지가 뻗은 곳 아래 벤치가 있다. 그를 ‘나의 의자’라 칭하고 삶의 고단함으로 지칠 때 그 곳에 앉아 왕의 무덤을 오래토록 바라보았다.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과 거리의 어디쯤에 왕과 마주친 운명의 시간이 있었던가. 알 길은 없지만 그 시간만큼은 편안했다. 왕릉의 소박함과 서있는 나무들의 생김새는 그 아래 있는 누구라도 품어 줄 것 같은 넉넉함이 있다. 설총이 태어난 남촌마을 곁의 햇빛이 소복이 모이는 명당이다. 삼년을 밤낮으로 찾던 시간이 지나자 기이하게 마음은 안정을 찾았다. 인(因)과 연(緣)의 화합에 의한 결과인지는 두고두고 나의 숙제다.가을태풍이 지나간 뒤 안개를 헤치고 들어서는 왕릉은 성처럼 넓으면서도 아늑하다. 왕의 신전에 도달한 내가 정원수들의 인사를 받으며 한 걸음씩 떼면 어디선가 궁녀들의 웃음소리 낭창하게 들리는 듯하다. 지나간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은 역사물을 많이 본 탓일까. 햇살이 안개를 가로지르면 신비한 상상과 공상은 지니의 램프처럼 사라진다. 어느 자리라도 좋다. 선 자리에서 나무와 왕릉을 바라보다 천천히 왕의 세계를 여행하면 된다. 아무도 금을 그어두지 않은 그곳이 안식처이며 평온의 세상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햇살이 눈부시면 눈부신 대로 비바람이 불면 우산 하나에 의지하거나 차 안에서 그냥 바라만 봐도 왕릉이 주는 신비한 아름다움과 평온함에 넋을 잃는다.시간여행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아무카페’에 앉아 능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린다. 카페라떼 한잔의 여유로움으로 왕릉과 주위의 나무에 눈길을 준다. 스친 숱한 인연과 역사와 희로애락이 저 푸른 팽나무와 버드나무로 남았다. 많은 왕릉과 과거를 잇는 문화재들이 경주에는 차고 넘친다. 그 중에서도 마음을 추스르게 할 왕릉이 여기 있으니 잠시 찬가를 불러본다.소슬한 갈바람에 추분의 아침고요가 지금 능을 감싸고 있다.
2021-09-29
백후자수필가 이팝과 아카시아가 다투어 속살을 드러낼 무렵, 봄바람이 차일구름을 밀어낸다. 하늘이 말개지자 봄빛이 더욱 화사하다. 이팝나무, 아카시아에도 햇살이 들어 뽀얀 쌀알 같은 꽃잎이 톡톡 향기를 내뿜는다. 꿀벌들이 꽃잎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엉덩이를 한껏 추켜둔다. 저 봄날의 밀어(密語)가 달콤하다.예천 지보면 대죽리로 간다. 언총(言塚) 즉 말무덤을 만나기 위해서다. 시골길을 한참 따라갔지만 안내판이 없다. 돌고 돌아 마을 입구에 닿았을 쯤, 저만치 조그마한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 옆으로 갈라진 작은 들길로 가란다. 들길을 따라가다가 솔숲이 우거진 곳으로 방향을 튼다. 길이 승용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다. 길옆으로 말(言)과 관련된 격언·속담이 새겨진 돌비석이 띄엄띄엄 줄지어 있다. 그것을 읽어가며 올라가니 평평한 등성이다.등성이 아래로 논밭이 펼쳐져 있고 마을이 길게 자리 잡았다. 마을을 등지고 돌아서니 말무덤이 보였다. 길을 건너 대여섯 칸쯤 되는 계단으로 올라섰다. 말무덤이라 표시된 둥그런 무덤 위에 풀이 자욱하게 덮였다. 이곳에 죽음의 형체도 없는 말(言)을 묻었다니, 말부터 기이했다.말무덤을 가운데 두고 노란 민들레가 지천이다. 민들레 꽃무리를 무심히 바라보다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방시레 웃는 민들레에게 말을 걸었다.“너는 아니, 이 무덤이 생긴 이유를?”“알지. 내가 이래봬도 이곳 토박이거든.”“한 번 들어볼까?”“사오백 년 전이었어, 이 마을에 각성바지들이 모여 살았거든. 그런데 사소한 말 한마디가 불씨처럼 틔더니 문중 간에 싸움이 일어난 거야. 그 싸움은 쉬이 끝나지 않았어. 그들은 얼굴만 마주치면 불을 뿜는 거야.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었어.”“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각 문중 대표들이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모였어. 그런데 대표들도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며 다른 사람들 말은 들으려 하지도 않았어. 갈수록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엔 또 싸움으로 이어졌지.”“그럼 다른 문중과는 왕래를 안 하고 살면 되지 않았을까?”“한 마을에 살면서 그럴 수 없잖아. 골목만 나서면 마주치게 되는 걸. 또 이웃 이야기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다 들리잖아. 안 좋은 소문은 더 빠르게 퍼지고 말이야.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다니니까 사람들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거야. 툭 건들기만 하면 펑 터져버렸지.”“다들 엄청 예민했나 보네.”“어느 매미소리 요란한 오후였어. 마을 가운데 정자에서 또다시 해결책을 논의하려 문중 대표들이 모였거든. 옥신각신 또 시끄러웠어. 그때 마침 지나가던 나그네가 왜들 그러느냐고 물었어. 자초지종을 다 들은 나그네가 처방을 내려줬어.”“어떻게?”“각 문중에서 뚜껑 있는 항아리 하나씩을 준비하시오. 그리고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항아리에 다 쏟아 담으시오. 그런 후 뚜껑을 꼭꼭 닫아서 무덤을 판 후 함께 묻으시오. 그러면 이 마을이 조용해질 것이오. 그러고 사라졌대.”“그렇게 해서 묻은 것이 말무덤이구나.”“그렇지. 참 희한하게도 말무덤을 만든 이후론 마을이 조용해지면서 평화를 되찾았다는 거야.”말무덤을 둘러본다. 저 안에 말이 묻혀 있다. 수백 년 전 그들이 뱉어낸 말들이다. 어쩌면 화근이 되어 마을을 혼란에 빠뜨렸을 말들이 항아리 안에 갇힌 채 잠들어 있다. 문득, 말들이 깨어나면 어쩌나 끔찍한 생각이 스친다. 내 모습을 본 듯 무덤 위의 민들레가 히죽 웃는다.말무덤에서 내려오는 길, 돌비석에 새겨진 ‘귀는 크게 열고 입은 작게 열어라.’는 말에 눈길이 간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험담하던 지난날의 한 순간이 머리에 스친다. 귓불이 훅 달아오른다.쉿! 자나 깨나 말조심.
2021-09-22
양태순수필가 추석이 코앞이다. 차례상에 올릴 제수용품을 메모지에 적은 후 식탁 구석으로 던져둔다. 모레쯤 시장을 한 바퀴 돌아야지, 혼잣말을 해본다.한때는 설레는 추석이었다. 선물을 들고 오는 언니 오빠들 기다리느라 꼬맹이들은 골목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해가 진 후에도 누군가의 집에 멀리 떠났던 식구가 돌아왔다. 저녁 늦도록 발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마을을 둥그런 달님이 반겨주었다.집집마다 고된 손에서 기쁨이 피어났다. 안팎으로 나뉘어 그릇 닦고 전을 부치고 청소하느라 마당을 도리뱅뱅이질 했다. 밤에는 멍석을 펴고 두레상에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다. 누가 예쁘게 빚는지, 누구 개수가 많은지 내기도 하면서 서로 놀리고 깔깔대느라 팔월의 밤은 깊어 갔다. 그렇게 날이 이울도록 어린 마음에는 분홍 물이 남실댔다. 우리 집은 인절미도 했다. 안반에 찰밥을 올리고 꿍떡꿍떡 떡메를 쳤다. 아버지와 오빠는 떡메를 치고 엄마는 밥을 욱여넣었다, 세 사람의 손이 장단에 맞춰 엽렵했다. 밥알이 떡이 되기까지 흥겨운 리듬은 귀로 듣는 춤사위였다. 초록 고물을 입은 인절미는 색이 고와서 자태가 우아했다. 씹으면 말랑하고 고소해서 입맛이 당겼다. 맛이 절미라고 인절미가 되었다는 말이 딱 맞았다.추석을 맞이하는 마음은 처지에 따라 변했다. 어릴 적에는 선물꾸러미와 인절미 생각으로 가슴이 부풀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무슨 선물을 사야 할까 고민했다. 결혼해서는 어떤 음식을 차릴지에 신경 쓰였고, 종일 지지고 볶을 일거리에 괜히 명절이 있다고 투덜대는 마음이 컸다.올 추석 마중은 마음이 무겁다. 유례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모임의 자유가 없어졌다. 또한 지역 간의 왕래가 조심스러워 동기간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대신 목소리로 안부를 전하고 건강해야 다음을 기약한다며 아쉬움 꾹꾹 담아 길게 늘여 보낸다. 추신으로 몸은 멀어도 마음만은 가까이 하자 덧붙인다. 더욱이 어머님의 갑작스런 투병으로 경황이 없다.어머님은 집안의 중심축이다. 결정권을 가져서가 아니고 경제적인 물주여서도 아니다. 형제들 사이에 기름칠을 하여 어머님을 중심으로 관람차처럼 적당한 거리를 벗어나지 않게 하는 축이었다. 추어탕 끓였다 불러모으고, 곰국 끓였다 나눠 주고, 오곡밥 먹으러 오라 기별을 했다. 명절을 비롯하여 기념일은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정을 쌓고 마음을 나눌 기회를 만들었다. 덕분에 시댁이 낯설던 내가 얼굴을 못 보면 궁금하고 보고 싶은 사이가 되었다. 어머님과 명절을 같이 보낸 지 삼십여 년이 되었다.어머님은 손이 컸다. 무엇이든 많이 해서 조상님께 올리고 자식들 먹이려고 일을 크게 벌였다. 그래서 음식 장만할 때 불퉁거릴 때가 있었다. 돌아보니 어머님을 돕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속 좁게 꿍얼거렸다는 후회가 든다. 아이들이 품을 떠난 지금은 투덜댔던 그 추석이 삼삼하다. 기름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우고 어른과 아이들 서로 무탈하게 웃고 떠들었던 날들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수시로 설거지통에 손 담그며 앞치마 마를 새 없이 부산했던 옛 추석이 좋았다 싶다.사라져가는 추석 풍경이 아쉽다. 가족을 웃고 울리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예전과 달라졌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인사차 들고나는 손님들로 들썩거렸던 분위기와 정겨운 말들도 건조해졌다. 아예 추석 인사말이라는 글귀가 정해져서 나온다. 그 시절 학교에는 운동회를 열었고 운동회는 학생들만의 놀이가 아니었다. 마을마다 어른들이 학교로 모였다. 줄다리기와 손님찾기 게임, 계주 달리기에 참여할 선수를 뽑아 열심히 응원하고 막걸리잔 기울이며 마음껏 즐기는 날이었다. 더이상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아련하다.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일하기 싫어 꾀병을 부리고 싶었던 명절이었다. 요즘은 가족끼리 송편을 빚었으면 싶고, 전도 푸짐하게 지져서 이웃과의 정을 수북하게 쌓았으면 싶다. 주고받는 인사에도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은근하게 마음을 전했던 옛 추석이 되기를 꿈꾼다. 지나간 것을 손으로 당겨 와 마당귀에 붙박아 놓을 수 없는 법인데 알면서도 꿈을 꾸는 내 마음을 모르겠다.달아, 내 마음이 보이니?
2021-09-15
정미영 수필가 사랑은 하나의 점이다. 임계점. 한 물질이 다른 성질의 물질로 변하는 계기를 임계점이라 하는데, 나에게 사랑은 임계점과 같다. 무뚝뚝한 내가 어설픈 애교를 부리며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를 만난다.나는 첫 번째 점을 하나 둘 셋 쿵짝짝, 왈츠를 추며 찍었다. 초등학교 5학년 체육 시간에 세계 민속춤 중의 하나인 왈츠를 배웠다. 선생님은 스텝을 가르쳐 주시며 남학생의 왼손바닥에 여학생의 오른손을 얹고, 여학생의 왼손은 남학생의 오른팔 위에 얹으라고 하셨다.우리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데 어떻게 손을 잡느냐고 너스레를 떠는 아이도 있었고, 남자끼리 여자끼리 하자고 타협하는 친구도 있었다. 시끄러운 소동에 선생님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셨다. 체육 실기를 왈츠로 한다며 잘 따라하라는 엄명을 내리신 것이었다.먼저 인사법부터 시작했다. 발의 움직임이 조화를 잘 이루어야 멋진 왈츠를 출 수 있겠지만, 그 보다 인사를 제대로 해야 격식이 갖춰진 우아한 춤이 완성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들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동작을 익히기에 바빴다.선생님이 카세트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움직였다. 멋쩍은 듯 웃으며 딴청을 피우던 아이들이 서서히 리듬을 탔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어느 정도 기본기를 익혔다고 생각하셨던가 보았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노래의 어린이 왈츠 율동을 가르쳐 주시며 모둠별로 시험을 본다고 하셨다. 마주보는 짝지와 손뼉을 치기도 하고,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면서 짝을 바꾸는 동작을 가르치셨다.노래를 따라 부르며 연습하던 중이었다. ‘친구를 기다려 한 사람만 나오세요. 나와 함께 춤추세’를 부르며 짝을 바꿨다. 그런데 내 앞의 남학생이 빙글 돌면서 다시 제자리로 왔다. 자기는 짝을 바꾸기 싫다면서. 나는 반 아이들이 보는 앞이라 얼굴을 붉히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으나, 속으로는 친구의 엉뚱함이 싫지 않았다.우리 둘은 소꿉놀이 친구였다. 스스럼없이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놀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 애를 멀리했다. 어느 날 알게 된 친구 아빠의 대학 교수라는 직업이 부담스러웠다. 두 집안의 생활 형편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졌다. 열등감은 때로는 진실이 아닌 것도 사실인 것처럼 믿게 만들었다. 친구네를 들락거리며 마주쳤던 그 애 어머니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구나, 스스로 단정 짓고는 마음 아파했다.그런 나 자신이 싫어 마음속에 울타리를 쳤다.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려던 친구의 마음이 넘어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사실은 그 애를 바라보는 것마저 설렜던 나 자신을 단속하기 위한 처방이었다.친구의 진심이 나비처럼 춤추듯 날아든 것은 순전히 왈츠 때문이었다. 설레며 두근거리는 내 마음의 박자와 왈츠의 리듬은 기분 좋게 일치했다. 그렇게 첫사랑은 왈츠를 추며 내 마음에 점을 찍었다. 임계점. 열등감이 옅어지며 더 이상 친구 앞에 섰을 때 주눅 들지 않았다. 예전처럼 친구의 집 서재 가득 꽂혀 있던 책을 빌려 읽기도 하고, 마당 한 켠에 붉게 익은 석류를 따다 함께 나눠먹기도 했다.우리 둘이 만들어 갈 이야기는 석류 알맹이처럼 빼곡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학년이 끝나갈 무렵, 친구네가 멀리 이사를 가면서 끝이 났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아쉬운 기억만을 남긴 채로. 그렇게 시나브로 내 기억 속에서 그 아이는 잊혀졌다.아니, 잊힌 줄 알았다. 살면서 문득 나도 모르게 ‘밀과 보리가 자라네~’ 노래를 흥얼거릴 때면, 고개가 저절로 까닥거려지고 발장단은 신명이 난다. 그러면서 유난히 머루처럼 까맣던 친구의 눈동자를 아스라이 떠올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첫사랑을 만날 것만 같은 기대 때문일까? 어렸을 때 내 눈빛이 가장 반짝였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리움이라는 또 다른 점 하나를 찍는다.
2021-09-08
배문경수필가 창밖에는 장맛비가 내린다. 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을 엘렌 그리모의 피아노로 듣고 있다. 귀에 익숙한 선율에 조금의 슬픔과 고요히 차오르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단순하고 아름다운 선율 때문일 수도 있고 아련한 시칠리아노 리듬 때문이거나 누군가를 떠나보낸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작가 최인호를 본 적이 있다. 2011년 말께 동리문학상을 수상하기 위해 경주를 방문했을 때였다. 작은 체구의 그가 위트가 섞인 대화를 하며 식장으로 들어설 때의 모습을 기억한다. 더더욱 침샘암을 앓고 있을 때였다. 그는 연단에 서서 수상소감을 밝히며 글 잘 쓰는 작가인 자신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 또한 한 사람의 독자로 그를 위해 기도했다. 오년의 투병이 그를 기다렸고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평화로워졌을 사후에 책으로만 그의 문학세계를 읽을 수 있었다.십여 년이 지난 어제, 지인 몇몇이 모여 그의 에세이집 ‘인연’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암 진단 후 인생이란 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을 통해 얻고 기억해낸 추억을 가감 없이 혹은 이야기 형식으로 남겨 둔 내용이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연이 만들어지고 흩어지는지를 보았다. 역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천재작가답게 편안하고 솔직담백한 글들이 길고도 짧은 내용들로 가득 차있었다.이름만 대면 알만 한 사람들로 빼곡했다. ‘고래사냥’으로 의기투합했던 배창호 감독과 ‘바람 불어 좋은 날’의 안성기 배우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다양한 감성을 전달했다. ‘바보들의 행진’, ‘깊고 푸른 밤’과 함께 그 시대를 대변할 아이콘들이 된 영화들을 만나보니 역시 작가의 끼와 입담이 느껴진다. 청바지와 장발의 그 시대가 실로 그립기까지 하다.인연만큼 인생 전반을 휘어잡을 단어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타로 나뉜 인연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가. 정자와 난자인 부모를 통해 이 땅에 삶의 의무를 띠고 태어난 이후부터 나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혈연관계와 태어난 땅에 의해 국가가 결정되니 인연이란 얼마나 큰 범위며 나를 규정짓는 잣대일까. 침략과 전쟁을 치르며 고통 받던 대한민국이 가난을 벗고 발전해가는 나라로 거듭남에 이 또한 감사한 인연이다.며칠 전, 오년을 함께 근무하던 동료가 직장을 관두게 되었다. 나간다고 할 때는 붙잡으려고 했지만 일이 힘들어 몸피가 반쪽이 된 모습에 잡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붙잡는 손에 힘이 풀렸다. 그래도 빈자리에서 불어오는 찬바람과 곳곳에서 함께 했던 추억들이 떠오르자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바람 불고 비 오는 시간들을 함께 견딘 날들이었다. 잠시 공원을 거닐며 지난 시간을 회상해보니 인연이 준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느끼게 했다. 인연은 어둡고 캄캄한 바다라는 인생을 항해할 때 어둠속에서 길을 제시해 주는 등대인지도 모른다. 그 등대를 벗 삼아 힘든 자갈길이며 진흙길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걸을 수 있었다.최인호는 전찻길을 건너다 철로에 떨어진 동생의 벗겨진 꽃신을 집어 들다 전차에 무참히 밟힌 어린 누이를 ‘죄가 있다면 이 가엾은 누이는 이 추악하지만 그래도 아름답고, 이 야비하지만 그래도 거룩한 생을 스스로 포기했다’라고 표현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쓴 작가의 깊은 마음속의 아픔이 아련하게 통점을 자극한다.결국 우리는 삶의 고리를 풀고 자유를 찾아 한 마리 새로 날아오를 때까지 얽히고설킨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더러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잡거나 더러 빈손에 좌절하지 않는 생애를 만든다. 하늘 높이 날던 조나단도 혼자 높이 멀리를 향해 날갯짓을 했을 때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래서 함께 할 때 더 많은 힘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나와 당신의 행보이기도 하다.나른한 봄날의 하루, 한 여름의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음악 속에서 느껴진다.아름다운 삶을 함께 나누어보지 않으시렵니까?
2021-09-01
백후자 수필가 “합시다. 러브. 나랑, 나랑 같이.”“좋소. 대답이 늦은 만큼 신중했길 바라오. 이제 무엇부터 하면 되오?”외나무다리 위에 마주 선 두 주인공, 국경을 초월하고 신분을 넘어선 애틋함이 내면에서 고요히 흐른다. 다리 아래로는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개울물이 그들의 마음을 안 듯 모른 듯 무심히 흐른다. 묵계리에서 길안천에 놓인 하리교를 건너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계곡의 물소리가 연인의 속삭임처럼 감미롭게 들린다. 송암계곡을 거쳐 송암폭포에 다다르니 시원하게 내뿜는 물줄기가 가슴팍의 땀까지 식혀준다. 폭포를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자연 속에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 만휴정이다. 만휴정 안으로 들어가려면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외나무다리는 개울 하나 건너는 길이에 한 사람이 설 수 있는 폭이다. 나보다 일찍 온 연인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외나무다리 위에 마주 선 연인의 모습에서 그 자리에 섰던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이 보인다. 애틋했던 그 모습과는 다르게 달달하다. 드라마의 영향으로 이 장소가 연인들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한 것 같다. 연인들도 이곳에선 드라마 속 주인공 못지않은 멋진 배우다. 얌전하게 또는 깜찍하게 그 순간을 연기하며 즐긴다. 풋풋하고 사랑스럽다.내가 건널 차례다. 여주인공처럼 조신하게 걷는다. 어깨가 좁고 가냘파서 한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던 그녀, 그러나 건장한 사내 못지않게 당차고 용맹했던 그녀가 섰던 자리에서 멈춘다. 시대가 주는 아픔에 사랑마저 아파야 했던 그들의 삶이 찐한 연민으로 자리 잡는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이 자리에 서서 사랑타령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냥 건너기엔 아쉬워 나도 여주인공 흉내 내며 추억 한 장 찍는다. 어느새 또 다른 연인 한 쌍이 줄 서 기다리고 있다. 새로 이룰 사랑도 없는 내가 얼른 다리를 건너 만휴정 안으로 들어간다. 안동 만휴정은 조선의 문신 김계행(金係行)이 말년에 독서와 사색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앞면 세 칸·옆면 두 칸이며, 앞면 쪽 세 칸은 마루 형태로 개방하여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이다. 양쪽 툇간에는 온돌방을 들였는데 학문의 공간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번잡하지 않고 소박해 보이나 품위가 느껴진다. 옛 정취를 오롯이 담고 있는 그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물소리 새소리 자연의 소리가 맑다. 불어오는 바람에 내 안의 탐욕이 모두 실려 간 듯 마음이 편안하다.보백당 김계행은 청백(淸白)을 보물로 삼았던 인물이었다. 만휴정에 걸린 편액에 그의 청렴한 마음이 한 구절 시로 반듯하게 깃들었다.‘吾家無寶物(오가무보물) 寶物有淸白(보물유청백)우리 집엔 보물이 없으니, 오직 보물이 있다면 청백뿐이니라.’청렴, 이 한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산들바람이 개울물을 타고 올라와 만휴정 우물마루에 앉는다. 보백당 선생이 산들바람과 벗하며 개울 건너 자연의 벗들도 부른다. 물 흐르듯 시 한 수 흘러나오고도 남을 듯하다.만휴정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외나무다리가 보인다. 여전히 사진 찍을 사람들이 띄엄띄엄 줄 서 있다. 다리 위, 마주 선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선 별이 총총히 쏟아진다.“통성명부터.”“아, 나는 고가 애신이오. 귀하의 이름은 아오.”두 주인공의 교차했던 감정이 한 방향으로 흘렀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가만가만 누르며 다가섰던 그 감정을 찾아보려 애썼다. 그 감정, 백분의 일도 찾지 못했다. 어찌 감히 그 감정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서로를 향한 마음이 차고 넘쳐 개울물을 타고 흘러 폭포수가 되었는걸. 나아갈 수도 물러날 수도 없다면 즐겨라. 외나무다리 위에 섰든, 폭포수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섰든 함께라면 무엇이 두려우랴. 그들의 사랑이 그랬다. 사랑이냐, 조국이냐. 그녀는 조국을 택했다. 그는 그녀를 택했다. 그녀는 나라를 지키고 그는 그녀를 지켰다. 둘은 한 방향으로 걸었다. 사랑은 외나무다리를 걷듯 둘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2021-08-25
양태순수필가 비가 온 뒤의 연못에 연잎이 활짝 기지개를 켰다. 해님은 찡긋 미소를 보내고 개구리가 연잎에 앉았다 물속으로 뛰어든다. 밀려가는 동심원 자락에 얹혀 있던 작은 곤충이 스르륵 사라졌다. 연못은 하늘과 구름을 담은 채 소리를 지웠다. 숨을 불어넣고 싶은 고요다.가만히 물속을 들여다본다. 비로 인해 한바탕 난리를 겪은 생물들이 연잎 아래서 동태를 살피고 있는지 기척이 없다. 손부채질을 하며 한참을 서 있으니 물 아래서 움직이는 것들이 있는지 물방울이 뽀글 일었다. 자세히 보니 붕어가 떼를 지어 왔다리갔다리 커다란 연(蓮)을 지분거린다. 살풋 간지럼을 타던 연들은 이내 새침한 표정이다.새침데기 연을 웃게 하는 것은 바람이다. 산바람 한줄기 징검징검 건너자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초록웃음을 푸르르 뱉어낸다. 돌연 연못에는 생기가 돈다. 어디에 몸을 숨겼다 나오는지 물맴이 맴을 돌고 게아재비 느릿느릿 물위를 걷는다. 몸을 낮추어 헤엄치던 붕어들도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더위를 피해 낮잠을 즐겼던 오리도 소리로 존재를 알린다.어미오리 뒤에서 새끼오리들의 해맑은 눈동자가 분주하다. 줄을 벗어나 곤충들을 쫓다가 부리나케 어미 품으로 달려오곤 한다. 발가락이 물속에서 어찌나 바지런한지 이쪽을 빙글 돌아 저쪽으로 쪼르르 간다. 어미의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궁금한 것을 곽곽 물어댄다. 어미오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시간이 걸려도 재촉하지 않고 혹시 닥칠 돌발 상황을 위하여 항시 가시거리를 유지했다. 자리를 맴돌며 곁에 있는 새끼오리에게 먹이를 잡아주고 무심한 듯 깃털을 골랐다. 틈틈이 길게 목을 빼 멀리 있는 새끼가 들을 수 있도록 꽈~악 울었다. 새끼오리가 돌아오면 날개를 털어 앞장서 길을 잡았다.새끼를 향한 사랑과 서로를 온전히 믿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모습이다. 나는 교육이란 이름 아래 아이들에게 늘 재촉과 채근을 했다. 정한 목표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모진 말을 해서 상처를 준적도 있다. 어미오리가 새끼를 기다려주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몰래 부끄러움을 삼킨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모자랐던 엄마였음을 인정하며 둘레길로 걸음을 옮겼다.연못 둘레를 걷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다. 나무가 있고 그늘이 있고 새소리가 있다. 시원한 바람까지 보태져 피부가 보송해진다. 가볍게 걸으며 연꽃이 언제 피려나 눈길을 주었다. 연들이 막바지 작업을 하는지 수런거리는 잎들 위로 색을 머금은 봉오리가 어른거린다. 곧 연꽃이 가득할 연못을 상상하며 사진 찍으러 와야지, 했다. 그때 ‘으으음, 으으음’ 소리가 들렸다. 오리의 울음이 이상했다. 개구리가 짝짓기를 할 때면 크게 울듯이 오리도 짝짓기를 하려나 싶었다. 멈춰서 귀를 기울였다. 오리가 저런 소리를 내는 것이 신기해서 친구들에게 알려주려고 바짝 귀를 세웠다. 마침 내 곁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황소개구리는 외래종, 덩치가 크고, 하면서 지나갔다. 웬 황소개구리? 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황소개구리의 울음이 황소울음 같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나는 눈에 보이는 오리만 생각한 아둔한 머리를 탓하며 황소개구리를 찾아 주위를 둘레거렸다. 수풀에 몸을 가린 황소개구리는 소리만 들릴 뿐 보이지 않았다.하마터면 실수를 할 뻔했다. 내가 가는 연못에 있는 오리는 꽉꽉 울지 않고 으으음 운다고 했다면…. 아찔하다. 요즘은 이것과 저것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이 한 박자 늦어져 뒷북일 때가 있다. 내 머리가 더이상 말랑하지 않고 굳은돌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그것도 모른다 숙덕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잰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오리는 꽉꽉 울어 새끼를 부르고, 황소개구리는 ‘으으음’ 울어대는 연못의 여름 오후가 산그늘을 늘이며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다가올 저녁에게 자리를 내주는 쨍쨍했던 햇살의 뒷모습이 불그레하다. 연못의 주인이 바뀌려는 지금 왠지 모를 숙연함이 찾아온다. 나는 연못에 어물거리는 여름을 연잎에 올려두고 후 불어본다. 또르르 달아나는 시간들을 손바닥에 가두고 싶은 오후다.
2021-08-18
정미영 수필가 개구리가 없어졌다. 양동이에 넣어두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들이 뒷산에 갔다가 개구리를 데려와 거실에 들여놓으려는 것을 내가 손사래 치자 현관에 두었다. 양동이 반쯤 물을 채우고 비닐봉지에서 개구리를 꺼내 담더니,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책을 덮고도 모자라 신발 한 짝까지 올려놓았다.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개구리가 없어진 것이다. 공기가 없으면 죽을 거라 여긴 아들이 손톱만큼 구멍을 열어두긴 했다. 그 곳으로 나온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온 집을 이 잡듯 들쑤셔 찾았다. 신발 속에 들어갔는지, 소파 밑에 들어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식구들을 들들 볶으며 찾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딘가에서 툭 튀어 나오거나 방 안에 죽어있을 거라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행방을 알고 싶었다.주말 아침부터 한 바탕 개구리 소탕 작전을 폈다. 구석구석 한참을 찾았다. 온 식구가 기운 없어 더는 못 찾겠다며 주저앉았다. 나도 지칠 대로 지쳤다. 빨래나 널어야지, 베란다로 가서 햇볕 잘 받을 수 있게 탁탁 펴 널었다. 간만에 베란다 물청소도 해야지, 배수구 옆에 세워둔 빗자루를 들었다.순간 배수구 안에 까맣고 동그란 것이 보였다. 화분에 물주다가 잔돌이 몇 개 빠져 배수구를 막았거니 했다. 손으로 꺼내려다 흠칫 물러섰다. 그 속에 뭔가 움직였다. 나는 두서너 발자국 뒤로 더 물러서서 작은 구멍을 유심히 살폈다.개구리가 쑤욱 튀어 나왔다.드디어 찾았다. 그 작은 구멍에 숨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뼈가 분명히 있을 텐데 작은 구멍에서 길쭉한 고무풍선처럼 몸통을 빼낸 것이 마술 같았다. 저렇게 좁은 틈을 들어갈 수 있으니 양동이쯤이야 쉽게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개구리는 양동이 속에서 물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현관에 있던 개구리가 다른 방으로 가지 않고 마루를 가로질러 배수구로 향한 걸 보면 분명 그러했으리라. 간간히 배수구를 타고 흘렀을 물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자기가 살았던 뒷산의 작은 물줄기를 찾아가듯 밤새 바쁜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그 물은 태어난 보금자리요, 생명을 이어주는 감로수기에.나도 언젠가 물줄기를 찾아 헤맨 적이 있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와 산에 나물을 하러 갔었다. 바구니 가득 나물이 채워질 때쯤이면 목이 탔다. 조금 전까지 신이 나 콧노래를 부른 나였지만 이젠 목마르다고 짜증을 냈다. 할머니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참아 봐라. 이 근방 어디 샘이 있었다 안카나.”나를 다독거렸다. 쉽게 찾을 것 같던 샘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옹달샘 찾아 비탈을 헤맸다. 나는 토끼마냥 그 뒤를 쫓았다. 드디어 물줄기를 찾았다. 땅에 귀 기울이기를 반복하던 할머니가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나무뿌리 근처에 정말로 손바닥만한 물이 고여 있었다. 겨우 목을 축일 정도였지만 나무 향이 깊게 밴 탓인지, 달콤했다.그 물맛이 그립다. 요즈음은 산을 찾아도 선뜻 계곡물에 목 축이기가 겁난다. 물이 오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은 생명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므로 모두가 보호해야 한다. 나 또한 내 작은 관심이 물을 지키는데 제일이라 여겨 실천하는 것이 있다. 쌀뜨물을 버리지 않고 미용 팩으로 활용한다. 어머님께 배운 것인데 쌀뜨물의 윗물을 버리고 남은 것에 약간의 밀가루와 올리브유를 섞어 걸쭉해질 때까지 젓는다. 그것을 얼굴에 펴 바른 뒤에 약간 꼽꼽해지면 떼어낸다. 곧장 물로 헹구면 물을 더 오염시키므로 꼭 떼어내고 얼굴을 씻는다.물은 누군가에게 소망이고 희망이니 참으로 귀하다. 가뭄이 심할 때는 농부의 소망이 되고, 물 부족 국가에서는 희망이다. 오늘 같이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은 시원한 물이 더 생각난다. 나는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맨 후,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줄 물줄기를 찾아서 뒷산으로 향한다.
2021-08-11
배문경 수필가 사람들로 웅성거리던 자리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번화했던 거리의 가게들이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았다. 가까운 은행도 이 환난을 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예전처럼 붐비지 않는다. 은행을 찾기보다는 집에서 손가락으로 인터넷 뱅킹을 이용했고 그 편리함으로 인해 은행을 찾는 횟수는 차츰 줄어들었다. 그래서일까. 영업이 어렵다던 은행은 결국 쇠문을 굳게 닫았다. 한여름 절규하듯이 우는 매미소리가 오히려 적막하게 들린다.몇 년 전, 병원 일층에 있던 은행이 길 건너편으로 이전을 했다. 큰 도로 하나를 건너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감수할 정도의 불편함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큰 글씨로 ‘임대, 매매’라고 써놓았다. 이 비싼 빌딩에 이만한 평수를 임대해서 운영하는 일이 만만찮았을 것이다. 빈 은행에는 버려진 집기류와 은행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홍보물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지니 사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둠 속으로 고요히 사라진다.사라진 것은 은행만이 아니다. 근무지의 응급실이 문을 닫았다. 밤늦도록 흥청망청하던 술꾼들이 사라지고 잡다한 사고가 줄어들자 찾는 이도 많지 않았다. 그로인해 응급실의 밤은 전등만 환했다. 십여 년 같이 근무한 동료가 일자리를 잃었다. 권고사직으로 얼마 동안 실업수당은 받겠지만 갑자기 직장을 잃은 그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24시간 환하던 공간이 저녁 6시면 자물쇠로 채워지니 가슴이 답답하다. 다들 어디로 내몰리는 것일까.십년이 넘도록 사용하던 사무실 문을 마지막으로 닫고 돌아섰을 때, 창가에 두었던 화분 속 꽃들도 말라비틀어졌다. 울컥했던 그 시간이 지나가서 차라리 다행이다. 과장실을 혼자 사용하다 직원이 여러 명인 검진실로 옮기며 그동안 사용했던 집기류와 살림살이를 꺼내놓자 구석구석 박혀있던 짐들이 두 세배로 늘어났다. 버리려고 내놓은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보며 지난날을 떠올렸다.삶이란 내려놓을 때 성숙해지는 것일까.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과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님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직원이 다 빠져나간 후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 은행에서 수명이 다한 물건 서너 개를 가져왔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앉았던 고객용 패브릭소파와 버리기 아까운 소품 몇 개를 챙겨왔다. 자물쇠로 채워진 서랍장의 열쇠가 한 꾸러미다. 열쇠에 매달린 종을 빼자 뎅그렁 소리가 울린다. 마술처럼 여기저기 닫혀있던 문이 열릴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것 같은 쑥부쟁이가 그려진 기왓장도 챙겼다. 쑥부쟁이 가득한 들판으로 나비 서너 마리가 날갯짓을 하자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듯하다. 버려진 기억이 누군가의 추억에 편입되었다.누군가가 떠나야만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선다. 물건도 낡아 버려야만 새 물건이 그 자리를 메운다. 하지만 사람이 일하던 자리를 때론 로봇이 차지한다. 좀 더 편리하고 쉽게 일하고자 만든 기계가 사람의 자리를 메우고 일자리를 빼앗는다. 나의 자리 너의 자리가 안전하지 못하다.많은 것을 잃고 헤매는 지금의 이 상황들이 가상의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일로 끝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존을 위한 일자리가 있어야만 그나마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이 소박한 바람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사치가 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지금도 은행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환한 미소와 친절한 목소리로 직원이 내게 말을 걸 것만 같다. 혹여 그들이 떠난 자리가 깨끗이 정리된 후 AI가 나를 맞는 것은 아닐까?“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나태주 시인의 ‘떠난 자리’가 생각난다. “나 떠난 자리 너 혼자 남아 오래 울고 있을 것만 같아 나 쉽게 떠나지 못한다. 여기 너 떠난 자리 나 혼자 남아 오래 울고 있을 것 생각하여 너도 울먹이고 있는 거냐? 거기.”
2021-08-04
양태순 수필가 입구에 녹색으로 된 숫자 ‘1’위에 힘차게 달리는 사람이 있다. 건강한 삶이 일등이라는 의미인지 조깅하는 사람을 연상시킨다(원제 ‘세계로 미래로’). 왼쪽에는 방문자를 흐뭇한 미소로 반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장승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할머니가 족두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오른쪽에는 송도 송림테마거리 지도와 주요시설, 이용수칙이 있다.거리 탐색을 나선 탐정마냥 꼼꼼히 살핀다. 거리에는 조형물이 여럿이다. 대부분은 스틸아트페스티벌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여름’이라는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아이가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슬리퍼를 신었고 고개를 숙인 채 내려다 본 곳에는 달팽이가 있다. 손바닥에 올려둔 달팽이의 더듬이가 생생하다. 관찰하고 있는지 심심해서 같이 놀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모습이 내 어린 시절을 연상시킨다. 그 밖에 날아오르는 풍선, 사랑 등의 조형물이 있어 동심을 자극하고 굳어가는 어른들의 감성에 부드러운 터치를 가하기도 한다. 또한 시원한 물이 개울을 굽이지며 흐르는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 분수와 물레방아를 설치하여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살린 것은 야경을 고려한 배치가 아닐까 싶다.숲으로 눈을 돌린다. 싱그럽게 품어주는 초록의 잎들이 내 눈을 맑게 한다. 나무 아래로 산책로가 있고 곳곳에 쉴 수 있는 의자가 많다. 천천히 걷는 길 주위에 공중걷기, 등·허리 지압운동, 양팔줄당기기 등의 운동기구들이 많이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지금도 숲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운동을 하고 수다 삼매경이 한창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건강의 척도로 허리인치 기준을 적어놓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한 것이다.거리에 치매에 관한 표지판이 많아 새로웠다. 표지판에 3권 즐길 것이라 해놓고 일주일에 3번 이상 걷기, 생선과 채소 골고루 먹기, 부지런히 읽고 쓰기라 적혀 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반가운 발견이었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치매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다니 일석이조다. 또 치매예방운동법, 치매예방다짐길, 추억회상길이 있다.나는 치매예방다짐길을 신발 벗고 천천히 걸었다. 삐죽한 돌이 빼곡하게 있는 길이 있고 징검돌 모양, 철길 모양으로 된 곳도 있어 발바닥 자극이 되고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발바닥이 화끈거릴 즈음 넓적한 돌이 기다리고 조금 더 걸으면 꽃인 듯 공룡 발자국 같은 돌이 예쁘게 수놓아져 있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다.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새소리 사람들의 발소리를 듣는다. 높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낮게 깔려 울리는 소리는 편안함을 준다.벽화마을에 들어섰다. 늘 먼데 있는 벽화거리를 찾아다닌 내가 부끄럽다. 어느 곳 벽화나 공통점은 그 시절의 건물과 생활모습을 담아낸다. 이곳 벽화도 웃음이 많고 수박 한 쪽을 나누어 먹던 70년대와 80년대를 배경으로 수수한 이웃들을 표현했다. 바다가 곁에 있으니 고래와 모래사장, 수영하는 모습이 태반이다.그 골목길에서 내 눈을 반짝이게 하는 것을 만났다. 연도 별 송도 해수욕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걸어둔 것이다. 1975년 송도해수욕장 사진 앞에서 내 모습을 찾느라 눈이 빠질 뻔 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도 처음 구경하는 해수욕장에 마냥 신이 났던 그 날이 생각났다.초등학생 때였다. 언니와 함께 찾은 해수욕장은 말문이 막혔다. 모래사장에는 사람들이 복닥거렸고 한눈을 팔면 길을 잃고 사람을 잃었다. 검은색 튜브를 빌려 수영복 대신 러닝셔츠와 팬티만 입고 바닷물에 들어갔다. 신나게 물놀이 하다 나올 때면 비 맞은 생쥐꼴이었다.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물속을 들락거렸다. 솔숲 그늘을 놓쳐서 볕 아래서 흰밥과 수박을 먹었지만 세상 행복한 날이었다.송림테마거리에서 어린 나를 만났다. 징검다리를 건너고 분수 앞에서 팔짝팔짝 뛰고 해수욕장에서 나만의 즐거움에 빠졌던 그 때를.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 그 모습을 되새기는 시간은 아련을 넘어 아릿하다. 순간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고 즐겼던 날들의 소중한 기억들이 희미해져가고 있다. 창고 한 귀퉁이에서 낡아가는 일기장의 내용을 되살리는 날이었다.
2021-07-28
정미영 수필가 간절히 기도하며 염원을 새기는 이의 마음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가늠하고 또 가늠하면서 암각화를 찾아 집을 나선다. 포항에는 암각화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데, 그 중 칠포 암각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다.1985년에 처음 발견된 암각화는 기계면 인비리에 있다. 기북면 초입에 늘어선 고인돌 중 하나에서 확인되었는데, 고인돌 덮개돌의 남면에 석검과 화살촉 모양을 새긴 것이 세 점 나왔다고 한다.내가 오늘 찾아간 것은 1989년에 발견된 곤륜산 중턱 모래암석에 새겨진 암각화다. 그림은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다. 석검 손잡이 모양의 검파형 암각화를 중심으로 장구 모양, 실패 모양, 알구멍, 돌화살촉 등이 새겨져 있다. 암각화에 새겨진 물상들을 살펴보는데 낯선 방문객의 눈길을 의식했는지, 바위 품에 있던 그림들이 기지개를 켠다.암각화는 오랜 세월 탓에 마모되었다. 하지만 존재 가치와 의미는 전혀 퇴색하지 않았기에, 내 경외감의 농도는 전혀 옅어지지 않았다. 자연이 만든 대상물 가운데 바위는 유독 변하지 않는 존재로 여겨져 예로부터 특별하게 생각되어 왔다.사람의 불안정성과 왜소함을 바위의 영속성과 견고함에 비교했던 탓일까? 선사시대 사람들은 다산과 풍성한 사냥을 기원하는 마음을 바위에 새기는 각수(刻手)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기원의 마음을 담아내느라 햇빛과 달빛 아래에서 부지런히 일손을 놀렸을 바위새김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그들은 바위에 곱돌로 그리고, 나중에는 참돌 새김칼로 새겼을 것이다. 부족사람들의 바람을 바위에 새기는 동시에 후손인 우리들에게 삶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기원의 마음이 깊었던 탓에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칠포 암각화는 소멸되지 않고 가부좌를 털고 앉아 조용히 묵언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간절히 염원하고 신념을 새기는 조상들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것 같아 내 가슴이 먹먹하다.할아버지도 새김이였다. 그들은 바위에 새겼지만, 할아버지는 옹기에 문양을 새겼다. 가마 앞에서 노심초사하던 할아버지의 어깨와 등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흙을 빚어 말린 물그릇에 건아작업을 거쳐 바짝 말린 다음, 가마에 넣어 구워내기를 반복하는 열정에는 존경심이 일었다.옹기를 만들 때 문양은 동물문과 화초문을 새겼다. 할아버지는 옹기를 사용하는 이들의 장수, 다산, 부를 기원했다. 옹기에 새와 나비를 그리고 연꽃과 모란을 그릴 때 할아버지의 손등에서는 푸른 힘줄이 튀어 올랐다. 조각칼을 잡은 손은 떨리면 안 된다. 마음을 다잡고 집중하는 모습에서 작품에 대한 의지가 엿보였다. 여러 형상을 표현하는 문양마다 할아버지의 눈물과 땀이 젖어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마음이 내 가슴에 무수한 언어로 전해졌다.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실 속에서 과거를 반추하는 것은 온고지신(溫故知新) 때문이다. 간절히 기도하며 마음을 새겼던 선사시대 조상들의 정신이 한 치의 오차 없이 후손들에게 전해졌기에, 우리의 새김 기술은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날 세계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수준이 되었다.칠포 암각화는 예술혼이 깃든 문화재다. 바위새김이들은 온갖 시련과 고난이 찾아와도 암각화에 기원의 말을 새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간절한 염원의 말은 소멸되지 않고, 암각화라는 예술을 피어 올렸다. 문화재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민족 구성원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다. 나 또한 바위에 새겨진 조상의 숨결과 아포리즘을 온몸으로 느끼며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주어야 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간절히 염원하고 신념을 새기는 이의 마음은 필연적으로 전해지리라.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니 조상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소중한 그들의 염원을 바위 품에서 내 가슴으로 옮겨와 곰비임비 쟁여본다.
2021-07-21
배문경수필가 전화벨이 한여름 매미가 한꺼번에 울어대듯 울린다. SNS로 노쇼(no show)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전화다. 한 사람 분량의 백신을 올렸다가 병원 업무가 20분간 마비되었다. 노쇼 예비명단을 A4용지 열장 가까이 갖고 있다. 외국으로 나갈 학생이나 무역업무가 관계된 사람들은 백신이 시급하다. 오죽하면 백신을 맞을 수만 있다면 한달음에 달려오겠다고 통사정을 할까. 서울에서 경주까지 KTX를 타고 온 예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유분이 많지 않다.근래엔 코로나예방주사로 병원이 예외 없이 붐빈다. 환자의 치료와 간호, 간병하는 일 속에 예방접종도 포함되지만 코로나19와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업무 속에는 환자와 의료진, 막 접종을 마친 사람과 대기자들로 병원 안은 종일 북새통이다. 특히 원무과 업무가 마비되었기에 노쇼 등록을 자제해 달라는 얘기가 나왔다. 나름의 어려움 속에서도 백신 접종행렬은 계속 진행된다.몇 달 전, 병원에 코로나 환자가 진료를 받고 입원했다. 그는 열없이 복통증세를 보였다. 그 환자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겹치거나 스치는 모든 사람이 감염 대상자로 분류되었다. 한 사람에 의해 전파된 조직도를 보면 거대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병원의 직원들과 입원한 환자들이 대상이었다. 확진자는 더 큰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남은 환자와 직원이 함께 병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절대 퇴원하지 않겠다는 소수의 환자들로 인해 의료진이 함께 병동에 2주간을 고립된 채 근무했다.최소의 인원으로 2교대 근무가 이루어졌다. 환자와 의료진이 외부와 단절된 채 일방적인 통로로 음식물과 필요물품이 전달되었고 밖으로는 배출이 되지 않는 감염차단 시스템이었다. 그들 모두가 일회 용기에 담긴 부족한 식사를 했다. 그래서 2주라는 시간 탓에 미혼의 남자 간호사가 주를 이루었다. 마스크에 페이스 쉴더, 그리고 가운에 장갑까지 중무장하고 주사를 주고 회진을 돌았다. 매주 검사를 통해 음성양성을 판가름했고, 2주를 손꼽아 기다리는 도중 릴레이처럼 한 명씩 양성이 나왔다.2주를 넘기자 의료진의 체력이 소진되어 음성이 나온 직원은 집에서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 그러면 대기하던 2차 의료인이 투입되었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은 모두를 지치게 했다. 격리병동의 환자들 사이에 전염과 전염이 거듭되면서 해제까지 한 달하고도 일주일이 걸렸다. 이제는 백신이 도입되고 국민에게 접종하면 끝이 보인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때는 페스트로 인해 죽음의 공포로 어둡던 암흑기 유럽의 도시를 보는 기분이었다.초기 코로나19로 사망자가 속출했을 때에 비하면 많이 안정세다. 하지만 다시 델타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빨간 비상등이 켜졌다. 2020년 2월부터 우리는 브레이크 등을 켠 채 서서 파란 등에 불이 와 주길 기다리고 있다. 간혹 짧게 앞으로 나아가던 차들은 다시 멈춤을 반복하고 있다. 좀체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 이 거대한 붉은 신호등 앞에서 좌절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하지만 한 달 두 달 갈수록 백신의 위력이 바이러스를 물리칠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이러한 희망이 없다면 누구도 불편을 감내하지 못할 일이다. 힘들지만 조금만 더 참자.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격려를 보낼 때다. 익숙해지고 있는 마스크로 들숨과 날숨을 쉬며 그래도 매일 답답한 일상을 잘 견뎌낸다. 이제 곧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폐활량을 극대화시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잘 견뎌야 할 것이다.노쇼의 발생분이 100% 접종으로 이어진다. 칠월(七月)의 아름다움 속에서 잠시 여유를 갖자. 까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불안과 공포에서 전염병을 이겨나가는 모습처럼 우리도 삶의 역사를 계속 쓸 것이다. 백신을 2차 접종하면 60~88%까지 예방효과가 있다고 한다. 덧붙여 ‘결혼 여름’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가져와 본다. ‘태양 속에서, 압생트의 향기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을’ 상상하며 오늘은 환하게 웃어보자.
2021-07-14
양태순수필가 이삿날을 잡았다. 날은 자꾸 가는데 마음만 분주할 뿐 몸이 선뜻 움직이질 않는다. 창고를 열어보고 방마다 기웃거린다. 자리를 차지한 물건을 보고 엄두가 안 나서 다음으로 미룬다.창 너머 펼쳐진 바다를 본다. 윈드서핑을 하는 사람이 많은지 점점이 하얀 돛이 남실댄다. 푸른 바다와 흰 돛이 어우러진 풍경은 나를 먼 나라의 호수로 데려간다. 햇살은 조각조각 부서져 내리고, 백조가 솔솔바람이 수면을 미끄러지며 만든 물결을 타는 모습이 숨 막히도록 고요하다. 곧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고대하며 지켜본다. 자꾸 손에 힘이 들어가고 목이 마른다. 마른 침을 넘기며 제발, 제발 하는데 소음이 귀를 때린다. 환상을 깨트리는 제트스키의 우렁찬 출발 소리다.나는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고 있다. 이집을 첫눈에 반한 이유가 바다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과 구름의 변화무쌍함을 잘 담아내는 바다다. 때로는 바다가 파랗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검푸른 날이 있고 너무 반짝여서 투명하게 보이는 날이 있는가 하면 파랗고 파래서 손톱에 물이들것 같은 날도 있었다. 오늘같이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로 데려가는 날도 있다. 멀리서 작은 물결이 물기둥을 밀어 올려 하얗게 해안으로 달려와 모래를 데려가는 날이면 나도 따라가고 싶어 들썩이기도 했다. 그 어떤 모습도 다 좋았다.집을 떠나려니 미련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 이사 와서 이십 년 넘도록 살았다. 해와 달을 넘기며 나쁜 일도 있었지만 기쁜 날이 더 많았다. 십 년 동안 이삿날을 기념하며 작은 파티를 했고 불빛축제에 넋을 놓았던 적이 여러 번이었다. ‘슈웅’ 올라가 펑펑 터지며 바닥을 향해 뿌려지는 형형색색 빛의 아름다움에 와, 와 감탄사를 나누었던 시간이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성장기를 같이 한 집, 언제나 가족과 단란했던 순간들로 남아 있을 집이다.마음을 다잡아 안방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옷을 꺼내 남길 것과 버릴 것을 분류했다. 옷을 들고 달막거리느라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몇 무더기 쌓이며 끝이 났다. 다음은 서랍 속 물건들을 꺼냈다. 옷보다는 수월하게 정리되고 있었는데 오래된 비디오테이프 앞에서 손이 멈췄다. 결혼식과 아이들 유치원 재롱잔치를 녹화한 것이었다. 이것이 여기 있었구나 싶어 가슴이 말랑해졌다.하던 것 버려두고 비디오를 돌렸다. 화면에 나온 딸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원복치마가 살짝 들려서 속옷이 보일락말락 한다. 그저 귀여워 웃음이 났다. 짧은 동요를 연주하는 내내 리듬을 타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기계음을 낸다. 저 때부터 저랬구나, 잘 웃지 않고 남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했구나. 지금껏 변하지 않은 딸에게 미안했다. 나는 크면서 변할 줄 알고 끊임없이 격려하고 끌어당겼다. 조금만 연습하면 나아지리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어설픈 엄마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남은 것은 나중에 보려고 주섬주섬 상자에 담았다.마음이 무거워 몸을 일으켰다. 커피를 마시며 둘러보니 난장판이다. 다른 곳은 다음으로 미루고 봉투에 쓰레기가 된 물건들을 담아 분리수거장으로 내리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며칠 동안 창고와 아이들 방, 부엌을 정리하는데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한두 번 손이 가고 다시 찾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언젠가는 쓰겠다고 모아둔 본품에 딸려온 사은품이 생각보다 많았다. 쓰레기로 전락한 물건들이 꼭 필요했을까? 저 많은 쓰레기가 마음속에 고여 있는 욕심의 크기인가 싶었다. 민낯을 보인 내 모습이 부끄러워 손부채질을 했다.요즘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아마도 의·식·주 해결에 필요한 것, 기본적인 것이 단출할수록 마음이 맑아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이것저것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품을 키우고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을 알아버려서다. 나는 이삿짐을 싸면서 버려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했다.바다는 데리고 가야겠다. 이 집에서 엮었던 우리만의 이야기도 겹겹이 싸매서 마음 창고에 담아가기로 한다. 대신 허황되고 헛된 욕심은 버리는 물건과 함께 쓰레기장으로 보낸다. 이사한 집에서는 미니멀라이프를 꿈꾼다.
2021-07-07
정미영 수필가 비 개인 해수면은 평온하다. 비바람과 씨줄날줄 설피창이로 엮였던 그 많던 빗방울들은 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물의 윤회 속에서 어쩌면 지금 내가 바라보는 바닷물로 거듭 되풀이 되었을 수도 있으리라.빗물에 사라진 길의 경계를 더듬어 걷다가 등대박물관에 다다른다. 그 곳에서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젖어 있는 등대를 만난다. 호미곶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등대로 1908년에 신설 점등되었다. 등탑은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붉은 벽돌만으로 조적된 팔각형으로, 18세기 중반 르네상스식 건축물이다.포항에 살면서 자주 찾아가는 것이 등대다. 무미건조한 현실에서 바다는 늘 동경의 대상이고, 등대는 내게 삶이라는 고해에서 희망의 해원을 향해 불빛을 비추는 이상향의 손짓으로 각인되는 연유 때문이다. 20년 전, 등탑 내부의 108계단을 올라갈 때였다. 각 층의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을 표상하는 오얏꽃 문양(李花紋)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역사 속의 한 시절을 가늠하자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아릿한 것이 올라왔다.등대는 배들을 안전하게 항구로 안내하는 구원자다. 등대의 불빛은 선박들에게 희망의 빛이요, 구원의 빛으로, 12초마다 한 번씩 40㎞까지 뻗어나간다. 호미곶 등대도 114년이나 된 오랜 세월 동안 칠흑 속에서 등명기를 깜박였다. 어선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부지런히 빛으로 타전(打電)을 부치면, 그 뿜어지는 불빛을 보고 멀리 고기잡이를 떠났던 배가 항구로 줄지어 돌아왔다. 가족을 위해 바다와 사투를 벌이고 돌아오는 피로한 어부들을 위로하듯 불빛은 포근하고 따스했다.등대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떠오른다. 예전에 아버님을 모시고 등대에 불이 켜지는 풍경을 자주 감상했다. 젊은 시절부터 아버님의 삶에는 무시로 태풍이 불었다고 들었다. 세상 바람은 모두 몰려와 아버님의 삶 속을 흔들고 다녔다. 큰집 형수님이 돌아가시면서 부탁한 조카 다섯과 당신의 자식 넷까지 건사하느라 생활에는 늘 짙은 해무가 끼였다.산골짜기의 급류도 종착지인 바다에 다다르면 잔잔한 법이다. 그러나 아버님의 시련은 끝이 없었다. 이제껏 굴곡진 생활을 견뎠으니 남은 생은 완만하고 순탄하게 흐를 일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런데 한동안 편찮으셨던 아버님이 병원 검사를 받은 결과, 담낭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아버님은 마치 오래되어 기능을 멈춰 버린 등대처럼 보였다.아버님은 한 때, 가족들의 든든한 등대였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아버님이 계셨기에, 자식들은 꿈과 희망을 갖고 삶이라는 바다를 누볐다. 잦은 포말을 만들며 바다가 울어도, 마음이 온통 슬픔으로 쟁여 있어도, 어부들은 바다로 나간다. 그들이 갯내음 비릿하게 풍기는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까닭은 등대가 집으로 오는 길을 변함없이 비춰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등대가 직접 고기를 잡아 만선의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부들의 마음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처럼.등대를 바라보며, 문득 내 삶의 언저리를 돌아본다. 나는 등대처럼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주위 사람들이 때때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헤맬 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었는지, 궁금하다. 살면서 문득문득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등대가 되어도 좋을 성 싶다. 그러면 삶의 무게가 버거워 쓰러질 것 같은 사람도, 등대로부터 위안을 얻어 세상을 향해 힘차게 항해할 수 있으리라.아버님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이 달빛에 부서진다. 나는 바닷가로 내려가 어우렁더우렁 달빛 윤슬을 잡으려고 바닷물에 손을 담근다. 해조음과 어우러진 손이 일정한 가락을 타고 중모리장단에서 휘모리장단으로 급물살을 타니, 내 가슴에서 눈이 시리도록 검푸르고도 깊은 그리움이 연신 토해진다.고요히 흐르던 호미곶등대 불빛 하나가 방향을 틀어 내 마음자락을 물들인다. 내 가슴에 아버님의 화신인양 등대 불빛이 환하게 피어오른다.
2021-06-30
배문경수필가 열어둔 창으로 빗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누워 빗소리를 들으면 잠마저 촉촉해진다. 우물 속을 바라볼 때처럼 아득하고 깊다. 세상을 찬찬히 적시다 내게 다가와 손길을 서서히 뻗어 쓰다듬듯이 낭창하게 마음속으로 어둠에 섞인 비를 뿌린다. 어느 유년의 한때 미루나무가 제 그림자를 뻗어내던 가로수의 그림자를 밟고 걸었던 시간과 오버랩 된다.바야흐로 번성의 계절이다. 덩달아 봄꽃 사라진 자리로 소소하게 금계국이 피고 석류꽃이 피어난다. 무논에 모내기 끝낸 자리로 자욱하게 개구리소리 요란하다. 온몸으로 울어대는 개구리의 떼창에 여름 더위가 깊어간다. 밤새 저 왁자한 개구리 소리는 언젠가 들렸던 화개장터의 요란한 정오 같다. 산 것들의 생식이 빚어내는 절묘한 절규다. 가야금을 서서히 켜다 자진모리로 달려가며 숨이 멎을 듯이 극으로 치닫는 소리 같다.개구리 소리가 사라지는 아슴푸레한 새벽, 먼 산에서부터 뻐꾸기 소리가 낭창하게 들린다. 나무와 나무를 오가는 새소리가 밤을 걷어낸다. 상쾌하고 발랄한 아침, 신선한 바람의 전령사처럼 금세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다.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농약 등으로 새소리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환희로 아침을 맞을 것인가를 묻는다. 나 또한 한겨울 날개를 제대로 펴지 못한 새들이 푸른 하늘을 나는 소리에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낀다.분황사에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 절문을 열면 한꺼번에 밀려드는 새소리는 아득하다. 천국이 있다면 천당이 있다면 필히 이렇게 아름다운 새소리가 있을 것이리라. 초록의 잎사귀가 하늘을 덮은 절집마당에 하늘과 땅이 온통 새소리로 인해 기쁨과 가득 찬 환희를 맛본다.여름이 깊어갈 즈음, 고목의 꼭대기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듣는다. 이미 개구리가 짝짓기를 끝내고 소리 없이 떠난 뒤이다. 자지러지도록 매앰맴 소리에 하늘이 쩍 갈라질 듯하다. 절창이란 말이 맞을 것이다. 칠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침침하고 캄캄한 땅속에서 견뎌냈으니, 어찌 작렬하지 않을까. 애벌레인 굼벵이가 땅속에서 올라와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치며 매미가 되는 모습은 불교에서는 해탈이고, 도교에서는 껍질을 벗고 새로운 몸을 얻기 때문에 재생이라고 한다.“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산채를 맵다는가 박주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에 뭇쳐시니 맵고 쓴 줄 몰라라.”이정선은 평시조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삶을 노래했다. 하지만 소음의 주범인 말매미는 플라타너스라 불리는 양버즘나무와 벚나무를 좋아하는데, 이 나무를 가로수와 정원수로 도로와 아파트 등에 많이 심으면서 번식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10마리 수컷 말매미를 대상으로 소리의 크기를 측정한 결과, 사람에게는 아주 고통스러운 수준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여름 소리에서 소음으로 전락한 매미 소리는 안타깝다.죽은 매미가 길가에서 발견되면 어느새 창 근처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 초입을 알린다.풀벌레 소리가 벼가 익는 소리처럼 익어갈 즈음 방안에 누워서 배가 아프다고 뒹구는 나를 달래던 소리가 있었다.“내 손이 약손이다. 내 손이 약손이다.”엄마는 배 위를 슬슬 쓰다듬으며 문지르며 자신의 손이 화타의 손인 양 아픈 배가 낫는다고 했다. 어느새 잠든 내가 깼을 때는 어둠이 대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태어날 때, 삼신할미의 손에 궁둥짝을 철썩 맞고서야 첫울음으로 자타(自他)가 세상에 자신을 알린다. 잘살든 못살든 한 생애를 끝낸 자리에 울음보로 예(禮)를 다하니 시작과 끝이 결국 소리의 한 생애가 아니던가.지금, 뭇소리 속에서 어둠을 헤치고 내게 온 개구리 소리가 흐뭇하기만 하다.
2021-06-23
양태순수필가 소록소록 자란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 숲이다. 매일 오르내리는 숲일지라도 어느 것이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가 없다. 식물이 자랐을 높이를 눈대중으로 짐작하여 고개를 갸웃거린다. 숲은 고요히 키를 키우고 품을 넓힌 탓에 어느 순간에 나무가, 꽃이, 풀이 자랐음이 확 다가온다.사람들이 숲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쉬고 싶어서 오거나 맑은 공기 마시고 건강해지려고 오고, 추억을 쌓기 위해서도 찾는다. 숲을 걸으며 마음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흙탕물이 아니라 밑바닥에 고인 앙금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숲이 주는 푸르름이 마음을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잡다한 생각들의 뿌리가 오롯이 자신을 향한 채 촉각을 세우는 순간이다.형제들과 제주도 비자림을 찾았다. 먼저 새소리가 반기고 이어 습하고 눅눅한 흙냄새, 뒤를 이어 상큼한 나무 향기가 반겼다. 가슴을 활짝 열고 저 밑바닥까지 숨을 들였다. 잠시 눈을 감고 몸속을 흐르는 기운을 느껴봤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신비한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설렘에 세포들의 기지개가 팽팽했다.안내판에 송이길이 있다. 송이, 송이가 뭘까? 무엇이든 궁금하면 찾아보는 네이버 검색기능을 사용했다. 화산 폭발 시 점토가 고열에 탄 화산석인 돌숯이라고 나왔다. 그냥 흙길 같은데 어디에 송이가 있다는 것인지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발바닥이 우레탄을 밟은 듯 푹신하고 약간 꿀렁거리는 듯했다. 맨발로 걸으면 좋을 것 같았다. 천천히 걸어가고 있으니 새소리에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눈을 들어 새를 찾아보니 포르르 날아다니는 모양새가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다. 눈 가는 곳마다 넓게 펼쳐진 융단에 오월의 싱그러운 색이 물을 들여 놓았다. 좋다, 참 좋다는 감탄사 외에 달리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숲을 찾아온 햇살은 인심이 후한가 보다. 잎과 잎 사이, 가지와 가지 사이로 숲에서 숨을 이어가는 모두에게 고루 빛을 나누어 주었다. 얼개미에 내린 가루처럼 보드라운 기운이 지나간 자리에는 잎들이 반짝이며 짙어가고 바람이 흔드는 소리는 더욱 맑아졌다. 천 년의 비자림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숲을 채운 종이 가지가지였다. 나무와 식물에 무지한 나로서는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몇 개 없었고 일일이 찾아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깥의 소리는 단절되어 숲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세울 수 있었다. 서로의 이파리가 부딪쳐 만들어내는 속삭임과 몸과 몸이 꼬여서 바람이 스며드는 소리, 낮은 키끼리 맞춰보는 화음이 시시각각으로 고막을 적셨다. 그것은 서늘한 청량함으로 마음에 쌓였다.숲에서 만난 비자나무는 생명력이 으뜸이었다. 나무가 부러진 채 누웠는데도 가지에 잎이 달렸다. 금년에 새로 돋은 연한 잎들이 팔랑거리며 존재를 알린다. 끈질기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벼락 맞은 나무란 표지석을 읽고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를 둘러보며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숲길을 걷는 동안 제자리에서 빛나는 존재들에게 장하다고 박수를 보냈다.숲에서 자라는 것은 다름을 곁눈질하지 않는다. 산 너머에서 자라는 동종의 터전을 기웃거리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는 이웃 종들에게 질투도 하지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물을 먹고 빛이 부족하면 고개를 약간 틀 뿐이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야무지게 하고 자연에 맞서지 않고 꿋꿋하게 내면의 힘을 키운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시간표대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이는 과정을 반복하며 깊어간다.자연의 시간표는 순리다. 비자림은 거슬러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인간의 욕심을 돌아보게 만든다. 계절을 무시하는 하우스 안의 나물과 과일들이 식탁으로 배달되는 현재를 아무런 저항이 없이 받아들여도 될지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또한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하여 쓸데없는 일이란 이름으로 묶인 일들을 과감히 도려내는 작업이 옳은 것인지 물어본다.천 년의 시간을 견뎌 온 숲, 비자림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물어본다. 스스로 풀어야 할 질문지를 받아든 손이 떨린다.
2021-06-16
정미영 수필가 이른 아침, 집 옆의 산책로를 따라 호젓한 탑산을 걷는다. 여기 탑산에는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 있다. 전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을 6월, 호국의 달이 되니 전보다 자주 찾아간다. 오늘도 이슬 젖은 흙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전승기념관에 들렀다 올 요량으로 길을 나선다.울울창창한 소나무 숲 옆 계단을 내려가면 전승기념관이 있다. 6·25전쟁 당시 포항지구 전투에 참가했던 학도 의용군을 기리는 곳이다.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펜 대신 총을 잡고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자진 참전했다. 세상에 남겨진 숱한 흔적들 중에 학도의용군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교복 입은 어린 저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처지는 어찌 되었을까?기념관 사무실에 가면 학도의용군 생존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1979년 8월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학도의용군 전적물 보존, 추념행사 및 현지 안보교육을 실시해 왔다고 한다. 1950년 그 날로부터 71년이 지났다. 전쟁 때 의용군들은 꽃다운 14세였지만 지금은 머리가 희끗한 80대 노인이다. 상흔을 지니고 살았던 그들처럼 우리도 전쟁의 아픔을 잊지 말고 후세에 전해야 한다. 못 다 피고 죽은 학도의용군을 기억하는 것이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은 길이기에.학도의용군의 숭고한 정신을 마음속에 새기며 전시실을 둘러본다. 포항여중 전투뿐만 아니라 장사 상륙작전, 독석리 해상철수작전, 천마산 96고지 전투, 형산강 전투, 기계 안강 전투, 다부동 전투 등에도 그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6·25 전쟁 당시 국내 학생 5만여 명과 재일 유학생 641명이 전투에 참가했다. 그들 중 7천여 명이 산화했고, 전국에서 제일 많은 학도의용군이 희생된 격전지가 포항이었다. 8월 9일부터 44일 간에 걸쳐 일어났던 낙동강 전투, 그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기념관을 나와 포항지구 전적비를 향한다. 솔숲을 떠도는 눈부신 햇살이 내 등에 업혀 같이 동행한다. 나라를 위해 군복도 군번도 없이 전쟁터에 참전했던 학도의용군들이 주는 교훈을 새삼 되새겨본다. 의연하게 호국(護國)에 가치를 두고 혼신을 다한 그들 모두의 가슴에 빛나는 훈장을 달아주고 싶다.전적비 옆에 있는 이우근 학생의 편지를 새긴 돌비 앞에 선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학도의용군에 자원했다가 전투가 잠시 멈춘 틈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꼭 돌아가겠다던 그 소년은 지금, 바람이 되어 이곳을 떠돌고 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어린 영혼을 가슴에 묻은 의용군들 어머니의 가슴은 한이 맺혀 어찌 살아갔을까? 그 어머니들을 생각해서라도 전쟁의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다시 생기지 말기를.64개의 계단을 오르면 전몰학도 충혼탑이 서 있다. 한참을 묵념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묵묵히 한 자리에서 세월을 이겨내면서도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죽은 영혼들을 보듬고 있다. 수많은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찾아왔을 때 한숨과 눈물을 받아준 탓인지, 슬픔의 농도가 짙게 배어있는 것 같다.충혼탑이 무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해 귀를 기울인다. 몇 번의 방문으로 학도의용군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엄숙하게 해본다. 새끼손가락 걸듯 충혼탑을 쓰다듬으며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의 말도 덧붙인다.학도의용군들을 가슴에 품는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는 지금 이 순간, 내 심장이 뜨겁게 요동친다.
2021-06-09
배문경수필가 카톡이 날아왔다. 열어보니 어머니가 살림에 필요한 물품을 올려놓으셨다. 띄어쓰기는 없고 연이어 붙인 낱말들이 긴 연의 꼬리처럼 느껴진다.작년 초 어머니는 글을 배워보고 싶다고 하셨다. 연세가 여든 가까운데, 괜한 고생을 하신다 싶었다. 가까운 곳에 한글 가르치는 장소가 있다는 현수막을 보셨던 모양이다. 흔쾌히 문해학교에 등록하신 후 배우러 다니셨다. 어머니는 보고 읽는 것은 되지만 글자는 발음대로 쓰셨다. 글자 하나하나가 삐뚤빼뚤하게 늘어졌다. 두 글자가 써진 단어를 쓰며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으셨다. 아이들 한글 깨치기와 비슷했지만 열의는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작은 상을 방에다 가져다 놓고 집중해서 연습하곤 하셨다. 코로나로 인해 쉬는 날이 많아 집에서 교재로 연습했다. 더러는 단톡에 단어를 올렸는데, 문장은 아니고 단어나열에 그쳤다. ‘희설타우유올리기름’ 아이가 쓴 글 같았지만 연이어 쓴 글자가 재밌었다.언젠가 컨벤션센터행사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은 작품이 전시된 것을 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크레파스로 색을 칠하고 그 옆에 짧은 단상을 적었다. 노인들의 시화작품 전시였다. 글을 배우니 너무 행복하다는 내용이었는데 꽃과 나비가 그려져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쓰고 그릴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그 심정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해져 뭉클했다.어머니 세대가 그랬다. 고통스러운 일제의 지배가 끝나나 싶으니 동족상잔의 전쟁이 터졌다. 먹고사는 일이 너무 힘들어 죽지 못해 살아온 세대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공부할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힘들게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노동으로 자식들을 뒷바라지한 세대다. 이제 자신을 위해 글씨를 배우고 그림을 그려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한다는 것은 말년의 행복이다.우리 삶에서 성공과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교육 부족이라고 했다. 특히 읽고 쓸 수 없다는 것은 앎에서 고립된다는 뜻이다. 전 세계 인구의 약 14%가 문맹이고 문맹의 2/3 가 여성이다. 전 세계 국가의 39%만이 남학생과 여학생에게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준다고 한다. 배우려 해도 교육 시스템이 부족하다.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란 책과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는 한나와 마이클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마이클이 책을 읽어주고, 나이 차이에도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후 마이클은 문맹인 한나에게 ‘오딧세이’와 안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를 읽어준다. 한나는 자신이 글자를 모른다는 것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 글자를 몰라도 되는 직업을 선택하며 마이클을 떠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책임자로 일을 한다. 이 일로 감옥에 투옥되고 법정에서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면서 무기징역을 받는다. 글자를 모른다고 실토했다면 4년의 구금으로 끝날 일인데.이후 다시 만난 마이클이 책을 읽은 테이프를 감옥으로 보내자 발음과 글자를 보면서 한나는 글을 깨쳐간다. 글자를 익힌 그녀는 마이클에게 고마움의 편지를 보낸다. 마이클은 한나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하지만 한나는 쌓인 책을 밟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문맹이 주는 비극은 관객의 심금을 오래도록 울렸다.단어와 단어가 연결되어 문장이 된다. 문장과 문장이 하나의 그림이 되고 의미가 된다. 글은 나의 마음과 생각을 세상에 알리는 기호이다. 글은 쓰고 읽는다는 수준을 넘어 문학적 작품이 되기도 한다. 영어권에서 영어를 모른다면, 한국에서 한글을 모르면 살아가기 힘든 것과 같다. 자신의 감정을 문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보다 답답한 일이 있을까.근무를 마치고 어머니가 써서 보낸 글자대로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다. 물건을 담을 때마다 어머니가 쓴 단어 하나하나가 띄워 쓰기 된다. 음식에 흰 설탕을 솔솔 뿌리는 어머니의 손길과 우유를 따라 마실 아이들과 올리브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는 계란프라이와 볶음밥이 만들어질 것이다.어머니가 보낸 글자가 맛난 글자로 거듭난다. 표현은 서툴지만 진솔한 마음을 담은 글꽃이 핀다.
2021-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