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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등록일 2022-07-06 18:08 게재일 2022-07-0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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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영 수필가
정미영 수필가

수술 받았던 친정어머니의 무릎이 시큰거린다고 하셨다. 병원에 함께 다녀올 요량으로 신발장에서 어머니의 빛바랜 운동화를 꺼냈다. 몇 년째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한 켤레의 신발로 생활하다 보니 군데군데 실밥이 터지고 뒤축이 닳아 테석테석했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신발에 스며든 것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

수술 전, 어머니의 무릎 통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약을 먹어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길을 가다보면 몇 발자국을 못가 절뚝일 때도 있었고,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가 싶으면 이내 주저앉았다. 가까운 곳에 볼일을 보러 가는데도 남들보다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앉을 데가 있으면 무조건 쉬어야 했고, 마땅한 데가 없으면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쉬어야만 걸을 수 있었다.

늘 푸른 물이 돌 것 같던 어머니의 육신이 쇠약해져 갔다. 내 어머니만큼은 세월이 비켜가기를 빌었는데, 자연의 섭리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음이 눈물겨웠다. 보다 못해 수술을 권했지만 한사코 망설였다. 나는 자식의 입장을 먼저 걱정하는 어머니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더는 수술을 늦추기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기에 어머니에게 퇴행성관절염 말기라는 설명을 하며 날짜를 잡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었다.

어머니가 병실에 있는 동안, 나는 구두를 사러 갔다. 전부터 어머니에게 구두를 사드리려고 했는데, 내 살아가는 형편을 핑계로 계속 미루었다. 구두를 고르는데, 어머니에게 묵혔던 구두에 대한 빚이 한 순간 빗장뼈를 세워 고개를 내밀었다.

초등학교 때, 우리 집 앞에 개울이 있었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자주 빨래놀이를 했다. 그 날도 세수 대야에 비누와 신발 몇 개를 챙겨나갔다. 신발로 물을 퍼내어 대야를 가득 채우고 나서 개울에 떠내려 보냈다. 그러고는 잽싸게 뛰어가 건져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한참을 뛰어다니면 지쳤다. 헐떡이는 숨을 고를 겸 물가에 자리를 잡고앉아서 신발에 비누칠을 했다. 이왕 빨 것을 찌든 때가 있는 빨랫감이나 걸레를 들고 갔더라면 칭찬 꽤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발에 어머니의 구두가 섞여 있었다. 가난했던 아버지가 내 입학식 때 신고 가라고 큰맘 먹고 어머니께 사다준 신발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가 구색을 맞춰야 하는 자리에만 신고 나갔던 하나뿐인 구두였다.

나는 잠시 뒤에 알았다. 구두는 물에 빨면 안 되고, 불 옆에 두면 안 된다는 것을. 말린다고 연탄보일러 주위에 젖은 운동화와 함께 구두를 세워 두었더니 일그러지고 눌어붙어 영영 신지 못하게 되었다.

정작 어머니는 야단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항상 자식 걱정이 먼저인 분이었다. 구두를 태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혼날까 봐 불안해 한다는 사실에 더 신경을 쓰셨다.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미안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어머니에게 구두를 사드려야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구두를 장만해 병실에서 꺼내 들고, 얼른 회복해 꽃구경 가자고 말씀드렸다. 자식이 마련한 선물을 귀하게 여겨 어머니는 구두를 들여다보며 흐뭇해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나는 새삼 코끝이 찡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새 구두를 신지 못했다. 무릎이 성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새 것보다는 예전 것이 좋다며, 운동화를 신었다.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진작 구두를 사다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후회가 밀려들었다.

“엄마, 미안해.” 내 후회의 탄식이 길게 여음을 남겼다.

나는 예전에 어머니의 구두를 연탄불 옆에 두었다가 눌어붙게 했던 날의 용서를 다시금 구했다. 어머니는 이제껏 마음에 두고 있었느냐며 본인은 벌써 잊었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도 늙으신 어머니는 자식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셨다. 세월이 흘러도 덜어지지 않는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결이 소실점으로 향한다고 해도 끝없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 속에 은은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노모의 사랑이 짙어지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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