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산책하기에 좋은 계절이 있다. 지루한 겨울을 지난 뒤, 연초록 봄이 그렇고 녹음 짙은 여름이 그렇다.
오뉴월은 뜨거움을 숨긴 채 맑고 그윽한 꽃향기를 가득 품었다. 밤을 희롱하듯이 깊게 들어온 여명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섰다. 여섯 시를 막 넘긴 시간은 한겨울엔 엄두도 못 낼 밝음으로 온 세상이 환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타박타박 밖으로 나섰다.
오늘은 좋은 소식이 올 거라며 까치가 꺅 깍 깍깍 나뭇가지에서 꽁지를 든 채 반긴다. 저도 누가 나오면 함께 길을 나서고 싶었던 모양이다. 까치 소리와 함께 내딛는 걸음이 한결 가볍다.
푸른 잎이 투명한 햇살을 튕겨낸다. 나무 두엇을 지나자 차도가 나오고 초등학교의 계단을 내려가면 붉은 양귀비며 노란 금계국이 화단 가득하다. 오밀조밀한 보도블록을 지나는 길가에 맥문동이 이파리를 단단히 세웠다. 주어진 한 시절을 구가하는 생명의 잔치가 햇살을 받아 더욱 눈부시다.
교문을 나서서 맞은편 길을 바라보며 걷는다. 이곳은 차들의 길이다. 사고로 가로등이 부서지거나 보도블록이 깨진 흔적이 낭자했던 곳이다. 인간을 위한 문명의 이기인 차가 인간을 해치는 이 아이러니는 언제쯤 사라질까. 문명은 세상을 밝히지만, 그만큼의 그림자도 생긴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길을 건너 강으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낮은 담장과 낡은 건물들이 적당히 눈높이에 맞게 들어오다가 비닐하우스에 이르면 갑자기 눈이 뜨인다. 비닐하우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푸른 부추가 자라고 있다. 자르고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저 부추의 매운 생명력이 새삼 부럽다.
좀 더 걷다 보니 물을 관리하는 수문이 있다. 주의하라는 관리자의 공고문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아마 태풍이나 홍수가 나면 이곳을 여닫아 물 높이를 조절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가뭄에 강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유속은 급하지 않고 넓은 강 중간쯤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배처럼 생긴 섬이 하나 있다.
지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갈 때 나는 이곳에 서 있었다. 콸콸 소리를 내는 물은 강둑의 목까지 들어차 모든 것을 삼키며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저 나지막한 섬은 물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장마와 홍수로 인해 강둑조차 파괴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물은 위세가 대단했다.
문득 유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린아이의 눈에 보이던 뒤꼍의 도랑이 장맛비에 살아 꿈틀거렸다. 세찬 물살에 떠내려가던 소와 솥과 나뭇가지와 잡동사니들이 흙탕물에 뒤섞였다. 소는 발버둥 치며 떠내려갔고 나뭇가지는 서로 얼기설기 엉키며 부피를 키웠다. 우르릉 천둥소리 쩌적 번개소리, 나는 엄마 옆에 붙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도랑물이 생전 처음으로 집을 삼킬 듯이 불어나자 동네는 소란스러웠다. 아득한 기억 속의 도랑물 소리가 지금의 강물 소리와 오버랩되어 두렵기까지 하다.
오십 년이 지나고서야 태풍의 이름을 찾아보니 ‘올가’라는 이름의 태풍이었다.
다행이다. 지금은 태풍에 잠겼던 섬은 푸른 나무와 잡초들이 무성하다. 군데군데 꽃들이 싱겁지 않게 장식한다. 섬 주위로 물고기들이 퍼덕거린다. 은빛 꼬리를 세차게 흔들자 중심에서 번져나가는 물결무늬가 종소리를 연상시킨다. 작은 숲이 살아있어 걷는 길이 충만해진다. 살아있다는 것, 얼마나 큰 기쁨인가.
나는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산책은 놓친 것을 되새김질시켜주는 힘이 있다. 때론 일상에 지쳐 머릿속이 잘 감긴 테이프처럼 끊임없이 반복될 때 잠시 멍 때리는 휴식을 위해 걷고 또 걷는다.
저 눈 부신 태양의 선물과 자연의 이름으로 부여된 각각 다른 모양의 꽃과 나무와 풀들이 기운을 내뿜는다. 나는 연초록 향연에 아득히 취한다. 가슴 가득 바람을 안고 총총히 강둑을 뒤로하며 집을 향해 돌아서자, 방전되었던 심신이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된 느낌이다. 일상이 천천히 다가온다. 산책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