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도의 자스민 탕에 몸을 담근다.
처음에는 앗! 뜨거워하다가도 어느 사이 뜨거운 물은 심신을 가둔 빗장을 벗겨 자유롭게 몸을 덥힌다. 사지를 쭉 뻗고 머리를 탕의 턱 위에 대고 눈을 감는다. 전신으로 열기가 번져나가며 온몸이 나른하고 편안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자주 목욕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목욕은 어쩌다 가게 되는 드문 일이 되었다. 더러 쥐가 났고 목덜미가 뻐근할 때가 많았다. 무리한 날은 온몸이 아팠다. 지인이 사정을 알고 “목욕하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그것은 빛처럼 환하게 답이 되었다.
평소 냉한 편인 내겐 한겨울에 만나도 손이 따뜻한 친구가 있다. 태생이 열이 많다는 친구를 늘 부러워한다. 간혹 몸살이 났거나 감기기운이 있다고 해도 잠시였다. 늘 건강하게 생활한다. 몸이 따뜻해서 인지 마음도 훈훈하다.
코로나시기에 학교 방과 후 수업을 하려고 등록을 한 상태에서 예상 밖의 일이 생긴 지인이 있다. 체온계에는 계속 37.2도가 뜨고 있었다. 하루 이틀 체크하다가 학교에서 도저히 수업진행을 할 수 없다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누구는 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평소 체온이라고 얘기하라고 했지만 이미 속이 상한 지인은 그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뜨거운 여자가 속상하게 된 일이다.
‘낮은 체온’은 만병의 근원이랄 수 있다.
‘체온 1도가 떨어지면 면역력은 무려 30%가 저하되고 체온1도가 올라가면 면역력은 5배 높아진다’는 이시하라 유미의 책에 실린 내용이다. 고로 몸이 따뜻하면 병이 낫는다는 말이 된다. 암과 당뇨, 고혈압, 알레르기, 비만과 우울증을 이기는 체온 면역 요법이 있다.
소식(小食) 또한 체온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고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섭취하고 차가운 음식을 자제한다. 반신욕과 족욕, 온몸을 탕에 담근 채 그 열기를 가늠해 보며 지인을 만나 조곤조곤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재미다. 예전에는 상대의 등을 서로 밀어주는 것이 친밀감의 표시이기도 했다. 이제는 목욕탕에서 잘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지만.
머리에 타올을 터번처럼 감은 여배우가 욕조에 앉아 와인을 들고 있는 모습은 온 세계여성들이 열광하던 장면이다. 신혼여행지에서 욕조에 양난의 꽃잎을 물위에 띄우고 와인을 마시는 모습을 연출한 사람들의 사진이 연예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인증 샷으로 SNS에 올리곤 한다. 때론 요염하고 때론 매력적이며 도발적이다.
서양의 중세인들도 목욕을 했다.
공중목욕탕이 있었고 십자군 전쟁이 끝난 뒤에 고국으로 돌아온 전사들은 튀르키예식 목욕을 전파하여 발전시켰다. 공중목욕탕에는 한증탕이 따로 설치되어 있었으며 씻기 전에 먼저 몸에 증기를 쐬었고, 나무로 만든 욕조에 몸을 담갔다. 공중목욕탕은 혼탕이었는데 남자와 여자는 벌거벗은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쥘 이슐레가 저술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목욕은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담쟁이덩굴로 덮힌 우물가에서 태어나 동천(東川)에서 목욕 후 광채를 발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죄수에게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목욕벌’을 내렸다고도 한다. 목욕재계(沐浴齋戒)는 제사나 기원하는 일에 앞서서 부정을 타지 않도록 몸을 깨끗이 씻고 몸가짐을 다듬는 일이다. ‘고려도경’에 고려인은 하루에 서너 차례 목욕을 했고 개성의 큰 강에서는 남녀가 혼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목욕의 역사와 나의 오늘은 연결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월(月)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어나 목욕탕에 가는 일은 즐겁다. 큰 탕은 김이 오르고 있고 아무도 밟지 않은 미지의 땅처럼 깨끗한 탕에 몸을 누인다. 여왕이 부럽지 않은 호사며 즐거움이다. 온몸이 나른하며 관절 하나하나가 부드러워지고 피부는 촉촉하다.
1도가 높아진 몸으로 햇살을 받으며 하루를 출발한다. 마음도 덩달아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