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지가 떳떳했으면 날이라도 좀 밝은 다음에 길을 나설 수 있었으련만, 그땐 어찌 그리 처지가 부끄럽고 저주스럽기만 했던지. 그래 할 수 없이 새벽눈길을 둘이서 나섰다. 시오리나 되는 장터차부까지 산길이 멀기는 또 얼마나 멀더라냐.”-이청준의 소설 ‘눈길’부분
큰아들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마지막 집마저 남의 손에 넘어갔을 때 집주인에게 부탁해서 막내아들이 돌아오면 마지막으로 밥을 먹이고 살던 집에서 잠을 재우려고 어머니는 아들 오는 날까지 쓸고 닦았다. 모든 재산을 다 잃고도 아들의 가슴에 남겨둔 자신의 집 한 채를, 기억 속에 심어둔 어머님의 심정을 알기에 사는 일이 척박할 때는 ‘눈길’을 떠올리곤 했다.
친정어머니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수완이 좋아 돈을 벌고 집을 사고 논을 샀다. 만물상회도 하고 곰탕집도 하고 방앗간도 했지만 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는 촌의 허름한 집으로 밀려와 온 식구가 같이 살았다. 그곳에서도 방을 만들어 세를 받았고 도랑에는 오리를 길러 중풍에 좋다는 오리 알을 팔았다. 자식들이 객지에서 미용실을 한다며, 양재학원을 한다며, 오토바이센터를 한다며 어머니의 돈을 계속 가져갔다. 돈이 필요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만들어 보냈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가세가 더욱 기울어져 막내인 내 학자금을 대줄 여건이 아니었다.
투자된 돈은 나가면 다시 들어오지 않았고 집은 점점 빈곤해져갔다.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요란했다. 어머니의 삶은 객지에서 성공하고 올 자식을 기다리는 망부석이셨다.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유년을 보내야 했다.
나또한 낯선 식당업을 시작했다가 모든 것을 잃었다. 그때 피붙이도 아닌 사람이 빈집을 내주었다. 그냥 집이 팔릴 때까지라는 단서만 붙은 상태였다.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던 아이들과 시어머니와 부부가 같이 한 집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았다. 결국 몇 년 후에 아파트가 팔리고 우린 급작스럽게 같은 아파트에 있는 다른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지상에 많고 많은 집 중에 ‘나의 집’이 갖는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자리를 차지했다. 한 채의 집을 갖는다는 것은 지구상에 나의 몸을 뉠 완전한 공간이 생기는 일이다. 자식이 자라는 만큼 집을 사고 그곳에서 성장을 바라보는 뿌듯함은 부족한 집을 좋은 집으로 바꾸리라는 염원은 커져갔다. 작은 아파트 두 개를 사서 살게 되었다. 고부간의 갈등도 다소 사라지고 여아와 남아를 따로 키울 수 있으니 좋은 점도 있었다.
‘즐거운 나의 집’이란 노래가 있듯이 보금자리가 따뜻하고 안전해야 모든 것이 안정적이다. 아이들이 자라며 독립하게 되자 원룸을 빌리게 되고 매달 집값으로 나가는 금액이 수월치 않았다. 생각한 것이 아이들을 위해 집을 사서 조금씩 갚아나가자, 아이들은 스스로의 돈으로 원룸보다 넓은 공간을 활용하게 될 일이다. 내가 사는 집보다 넓은 공간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뿌듯하다.
이사에 대한 생각은 늘 해오던 것이지만 막상 저지르기까지 갈등은 깊었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날뛰고 젊은이들이 이생에서 집 한 채 장만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 즈음 집값이 폭락했던가. 마음을 내어 덤벼도 집값은 만만하지 않다. 아파트가격은 단단한 양파 속처럼 켜켜이 돈으로 뭉쳐져 여전히 부담되었다. 비어진 공간에 흰색 페인트로 곳곳을 칠했다. 벽지와 장판에 페인트자국이 묻어있어도 개의치 않아도 된다. 벽지와 장판이 새로 붙여지고 깔릴 테니까. 이전의 역사는 종이 뒤에 장판 뒤에 묻혀 질 테니 깨끗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살아온 날들의 힘듦과 절망과 눈물도 새 벽지나 새 장판처럼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 즐거워진 삶으로 연결되면 좋겠다. 삶의 뒤안길에서 울먹임도 이젠 안녕하며 만사형통이 되면 좋겠다. 씻고 닦으면서 뭉클하니 기쁨이 묻어난다.
어머니도 자식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듯 좋은 곳에서 우리형제를 키우고 싶었으리라. 이젠 어머니 나이가 된 내가 아이들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지상의 작은 집 한 채, 눈길 속으로 뽀드득 발자국 소리를 내며 앞서 길을 내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