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진 숲 사이로 길이 나있다. 그 길옆으로는 보랏빛 향기가 뿜어져 나올 맥문동이 그득하다. 그 사이 만들어진 길에는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맨발로 길을 걷는다.
얼마 전부터 만들어진 황톳길이다. 맨발로 걷다보면 황토의 붉은 기운이 힘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새소리며 다람쥐며 청솔모는 덤의 볼거리다. 처음에는 몇몇이 보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많아진다.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인기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을 자연스레 운동을 이끌어냈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맨발인 사람,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걷고 일부분은 기구를 이용해서 운동을 한다. 나또한 한 두 번은 키 큰 철봉에 매달리기를 하며 앞뒤로 시계추처럼 몸을 흔들어준다. 어깨에 좋다는 설이 있어 간혹 즐긴다.
계절마다 선물해주는 봄여름 가을의 향연이 눈부시다. 봄이면 연초록의 숲은 긴 겨울의 적막을 벗어던지고 가벼워진다. 잎들은 더욱 푸르른 빛으로 꽃들은 상큼하게 숲의 하루를 열어준다. 봄을 지난 숲은 더 깊어진 녹음과 매미소리로 풍성해진다. 망초가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숲 위의 하늘은 푸르고 더러 소나기로 더위를 식혀준다. 태풍이 지나고 난 뒤에 갔더니 황토는 말랑말랑 송편을 빚으려고 만든 반죽 같았다. 한두 명이 밟은 발자국 위로 다시 길은 사람들의 발에 의해 다져진다.
구월의 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럽힌다. 나의 아침걷기가 참으로 분주해질 때다. 맨발로 땅을 밟으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하나로 소통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곳곳에서 막혀있던 혈관이며 신경이 살아나 아침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의 그 순수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시력과 청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살아있음이 세포 곳곳에서 활성화된다는 생각에 빠르게도 걷고 느슨하게도 걸어본다.
인류의 신발은 무엇이었을까. 맨발로 생활하다 이족보행이 발바닥에 엄청난 압력을 주어 족저근막염 등의 고통을 주었을 수도 있다. 인디언의 모카신은 최초의 신발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데 한 장의 가죽으로 발을 감싼 뒤 가장자리에 구멍을 내어 묶어 신었다고 한다.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 문명의 산물인 신발을 벗어 칸만 있는 신발장에 두고 맨발로 땅을 밟는다. 초핀과 전족과 하이힐의 속박에서 벗어난 여성들처럼 문명의 이기를 벗고 자연인이 된 듯이 가볍다. 가벼워진 몸이 하늘을 날 것 같다.
지표의 약 10%를 덮고 있는 황토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점력(粘力)을 지니고 있다. 실리카, 알루미나, 철분, 마그네슘, 나트륨, 칼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러한 성분비와 다양한 효소들로 조성된 황토는 동식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원적외선을 다량 방사하므로 황토를 살아있는 생명체라 부른다.
황토에 발을 딛고 걷기 시작하면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황토에는 해독작용과 혈액순환 개선, 통증 완화와 피부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항균작용은 덤이다. 습도조절과 전자파차단이며 항암효과와 중금속 배출이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황토는 또 하나의 자연이득이 분명하다. 황토 팩이나 황토 장판, 벽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용되는 황토가 깔린 길을 구경하며 걷는다. 나뭇잎을 흔들던 바람 한줄기가 시원스레 이마와 목젖을 스친다.
옛 친정동네에는 오래된 초가집들이 많았다. 그 곳에서 유독 먼 친척 할아버지 집은 황토벽에 황토 구들장이 그대로 노출되어 때론 대나무가 황토벽 사이로 보였다. 얼기설기 짜 놓았던 그 벽과 구들장들이 아마 원적외선 노출이 되었던가. 얼마 전 귀농하신 지인의 집에서도 비슷한 황토 일색의 인테리어를 보았다. 아마 건강에 좋다는 이유일 것이다. 흙과 불로 이루어진 갖가지 제품들이 건강을 챙기려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아떨어진다.
아침산책길에서 운동화는 차에 벗어두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숲으로 들어선다. 새들이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자 숲의 나뭇잎이 더욱 푸른빛으로 답례를 한다. 황톳길에 발이 닿자마자 나도 숲의 일부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