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한 염부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라는 첫 문장에서부터 강렬한 소금밭의 묘사로 시작되는 박범신 소설가의 ‘소금’을 떠올린다. 나는 3일간의 일정을 잡아 휴가 중이다. 태안반도의 채석강과 적벽강, 내소사는 꿈에서조차 나를 유혹한 곳이었다.
나는 지금 곰소다. 곰소는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졌으며, 전라북도에서 군산항 다음으로 규모가 큰 어항(漁港)이었다.
이미 소문난 슬지제빵소로 사람들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다. 후배에게 찐빵과 커피를 사달라고 부탁하고 도로에서 벗어나 염전을 살핀다. 소금부족으로 염전에서 죽은 염부인 그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주인공. 소설처럼 나도 검은 타일이 박혀있는 염전의 바닥과 소금을 나르는 레일을 훑어본다. 그리고 소금창고를 본다. 비가 내리고 있다. 염전의 휴일이다.
한국의 중요 문화유산인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여 전통기술과 소금장인의 노하우를 이용해서 만들었다. 바람과 햇볕만으로 수분을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하는 전통어업활동이다. 곰소의 소금은 국내 생산되는 소금 중에 으뜸이라고 했다. 소금이 서로 붙지 않고 맛이 최고라며 시어머님께서는 가는 김에 소금을 꼭 사오라고 당부하셨다.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그 맛을 낸다는 것을. 류시화 시인의 ‘소금’이란 시다.
바닷물이 짜듯이 세상사 인생살이에 상처와 아픔과 눈물이 있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래서 삶에 참맛이 있다는 뜻은 아닐는지. 혼자 비에 젖은 염전을 보며 생각에 잠겨본다.
양수는 바닷물과 같은 염도다. 사람의 혈액 속에는 0.9%의 나트륨이 있고 출혈이나 전해질의 발란스가 깨지면 생리식염수를 공급한다. 우리의 시조는 바다에서 왔으리라는 정황이 조금은 설득력이 있다. 바다가 썩지 않고 버티는 것도 소금 때문이리라. 성경에서 조차 세상에 소금이 되라는 말은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고 음식에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최후의 만찬’이란 작품에서 유다 앞에 소금그릇이 넘어져있는 상황은 유다가 예수를 배신하며 신뢰를 깨뜨릴 것을 암시했다. 그리고 소금은 부의 상징이었다. 서양에서는 소금을 대접할 때 은이나 보석으로 장식한 그릇을 내놓았다고 한다. 벤베누토 첼리니(미켈란젤로의 제자)가 금으로 만든 그릇작품(16c 소금통 살리에라)이 600억을 호가했다고 한다.
친정어머니는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에 소금을 담아두면 간수가 빠지고 단맛도 난다며 내게 보여주셨다. 소금 독은 그 아래 네모진 나무를 두 개 놓아 보이지 않는 수분증발을 도왔다. 결국 김치며 찌개에 맛난 간이 되었다. 그 뿐이랴 된장위에 벌레가 혹여 들어가 상할까봐 소금을 가득 흩뿌려두고 촘촘한 흰 천으로 독의 목에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두었다.
햇빛이 맑고 좋은 날 항아리들의 뚜껑이 걷히고 흰 천들이 걷어지면 위가 꾸들꾸들 말라있었다. 늘 장맛이 좋아 된장찌개는 숟가락 전쟁이었다. 윗집에서는 간혹 된장을 얻어가곤 했다. 메주가 된장이 되고 간장이 될 때 소금은 새로운 탄생을 돕는 착한 역할을 했다.
시어머니는 현관 앞에 둔 달항아리에 소금을 한 가득 담아 두었다. 액운은 모두 사라지고 좋은 복만 들어오란 뜻이리라. 사람의 몸도 정신도 세월에 늙어가지만 정신만큼은 혈액에 담긴 소금의 영향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류의 역사보다 장대한 채석강의 단층을 보며 세월의 단면에 감동한다. 바위사이로 파도가 치자 어린 소라와 고동, 조개가 생명을 지켜나간다. 산 것들은 늘 신비롭고 아름답다. 소금이 오늘도 신비한 뭇 생명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