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표정이 여느 날과는 달랐다. 할머니는 의자에 앉기 무섭게 하소연을 쏟아낸다.
내 말 한 번 들어봐라, 그게 그렇게도 힘드나? 매번 내가 속이 상해. 먼저 태어난 아들이 선수고 뒤따라 나온 게 차수거든. 얼굴은 고사하고 걷는 뒤태도 둘이 똑 같어. 지 식구들이야 알아보겠지만 동네사람들은 지금도 볼 때마다 헷갈리재. 하기야 선수는 눈가에 흉터가 있으니 자세히 보면 알거라. 에이그 그 상처가 참…
큰아들 선수는 말이다, 가끔씩 어디 갔다 오는 길이라면서 옥수수를 한 망태씩 사오거든. 그 많은 걸 누가 다 먹나. 그래도 어미 애비 생각해서 사오는 게 고마워서 내가 돈 십만 원을 주머니에 찔러줘. 그러면 길게도 말 안 해 ‘에이 뭘.’ 그러고는 두말 않고 받아. 걔는 뻥튀기도 잘 사오는데 한 비닐포대 갖다 놓으면 심심풀이로 요긴하지. 그러면 나는 또 집에 갈 때 통닭이라도 한 마리 사가라고 찔러 줘.
뱃속에서 열 달을 붙어 있다 나왔는데 성질 하나는 어째 그리 다른지. 차수도 가끔 고기를 사와. 장보러 갔다가 생각났던 모양이라. 늙을수록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한다나. 생각하는 마음이 참해서 슬쩍 지폐 한 장 주머니에 찔러 넣어 줬더니 괜찮다면서 그걸 식탁 위에 그냥 두고 가네.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말이라. 엄마가 뭔 돈이 있냐고 매번 그래.
그 것 하나 가지고 내가 이러지는 않는다고. 한 날은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사람은 없고 보따리만 현관문 앞에 있더라고. 뭔고 싶어 조심해서 풀어봤지. 작은며느리가 반찬을 조목조목해서 아들 편으로 보냈네. 아이고, 그것이 코빼기도 안보이고 줄행랑을 친 거라. 들어와 물이라도 한잔하고 가면 될 것을. 섭섭한 마음에 죄 없는 며느리한테 전화해서 쟤는 왜 그러냐고 쉰 소리를 해댔어. 며느리가 그러대. ‘엄니랑 산 세월이나 저랑 산 세월이 비슷한데 엄니가 못 고친 거, 저라고 고칠 수 있겠어요’ 참 할 말이 없데.
어제는 말이야, 늙은이 생일이라고 다섯 자식에 손자들까지 다 모였어. 받은 봉투가 두둑했지. 환갑이 다 돼 가는 쌍둥이 생일이 이틀 뒤인데 어미가 되어서 받고 그냥 있을 수가 있나. 봉투를 두 개 만들었디라. 밥을 먹다, 둘한테 똑 같이 봉투를 내밀었지. 내 선물이라면서 말이야. 그래, 할마이가 손자들 앞에서 폼도 좀 잡고 싶었다. 선수는 여느 때처럼 고맙다면서 쓱 지 주머니에 집어넣는데 차수는 또 그냥 쓰지 뭘 주느냐며 몇 번이나 손사래를 치는 거라. 내민 손을 도로 집어넣을 수가 있나. 지 마누라가 내 표정을 보고는 받으라고 옆구리를 쿡쿡 찌르더라고. 마지못해 받아서는 어쩌는지 알어? 바로 옆에 앉은 지 아부지 주머니에 구겨 넣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는 할머니에게 안 받으려는 돈을 왜 주느냐고 물었다.
걔들이 클 때 못해준 게 생각나서 그렇지. 그 시절, 사람 사는 게 다들 빤했지. 겨우 풀칠이나 할 정도라 노상 아껴 쓰라는 말은 기본이고 돈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니라. 시어른 모시고 다섯이나 되는 자식 건사하자니 그렇게 안 하고는 살 수가 없었거든.
살다보니 그것마저 다 떨어 먹고 걔들이 초등학생 때 서부동으로 이사를 갔디라. 그 동네는 전깃불 없는 집이 태반이었거든. 밤만 되면 암흑천지라. 쌍둥이 아니랄까봐 맨 날 천 날 둘이 붙어 돌아다니더니만 어디서 카바이드 등을 구해 온 거라. 카바이드라고 아나? 예전에 포장마차 같은데서 많이 했디라. 그걸 어린 것들이 뭘 잘못 만졌는지 고마 폭발을 하고 말았재. 선수는 눈알이 빠진 거 같고 차수는 머리 한 귀퉁이가 날아간 것같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나자빠졌는데 아이고,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린다. 어미한테 주고 싶었다는구먼. 그 날이 아직도 내 눈에서 나가질 않네. 차수 지 흉터는 머리카락으로 감추면 내 눈에 안 보이는 줄 아는 모양이재. 그 때 카바이드 등만 켜졌어도…
한숨이 삼킨 마지막 말이 할머니 눈에 얼비췄다.